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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1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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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648쪽 | 924g | 135*204*35mm |
ISBN13 | 9788954644037 |
ISBN10 | 8954644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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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가정 형편 때문에 어릴 때 부모님과 헤어져 산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사람이든, 물건이든 제가 참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책이 많아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책 읽는 것밖에 없다보니 자연히 좋아하게 되었고 책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책을 무한정 끼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책은 공간을 많이 차지합니다. 책 먼지로 기관지가 괴롭습니다. 비염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이사할 때도 엄청 부담됩니다. 이사할 때마다 일하시는 분들에게서 듣는 불평은 애교 수준입니다. 이사 당일에 사다리차가 책이 너무 많다고 그냥 가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보니 가족과 친지들이 책과 헤어질 것을 강요합니다. 집에 있는 책을 보면 꼭 한 마디 합니다. '제발 팔든지 어디든 갖다 버리든지 해라. 집안 꼴이 이렇게 정신없어서 어떻게 사니?' 저도 공감합니다. 책이 많은 것은 답답하고 불편합니다. 그래도 헤어지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막상 독한 마음을 먹고 버릴 책을 고를라치면 손에 잡힌 책마다 서려 있는 추억이 호소를 해와서 미련이 아주 많이 남은 연인처럼 주저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 뿐입니다. '아, 정말 집이 넓어서 이런 고민 안하고 살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나 봅니다. 책 지름의 끝은 집 지름이라고.
그런 사람이 정말 있더군요. 다치바나 다카시라고.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요, 독서가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오로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보관하기 위해 건물까지 지었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냥 건물도 아니고 몇 층이나 되는 빌딩을요.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내가 그토록 바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 건물엔 어떤 책들이 입주하여 오손도손 살고 있는 것일까?' 너무 궁금하여 당장 책을 사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라는 책이었습니다. 제법 묵직하고 가격도 부담스러웠지만 관음증에 가까운 호기심 앞에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책을 통해 대리만족 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스트 커버를 벗긴 모습입니다.)
책은 서문부터 시작했지만 냅다 건너 띄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의 글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어서 건물 내부와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니 문자 그대로 압도적이었습니다. 고양이 빌딩만 해도 지상 3층과 지하 2층의 건물인데 그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가 일하는 릿쿄 대학과 산초메에도 서고가 있었고 그 모든 공간이 책으로 가득했습니다.
(사진에서 좌절하고 있는 아이는 오늘의 책 정리를 위해 다카시가 부른 학생이에요.^^)
서가의 책들을 자세하게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어때 굉장하지?'라고 말하는 분이 다치바나 다카시 랍니다. 파랗게 쓴 이름이 잘 안 보일 것 같아서...)
20만권이나 되는 책을 일일이 그렇게 찍었다니 그 수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책 한 권 한 권을 마치 제 집의 서가처럼 상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제목들이 다 일본어나 영어이긴 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관음증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 바로 이 곳인데요. 서가의 전체 모습을 옆으로 길게 다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빌딩 각층의 서가 실제 모습을 여기를 통해 볼 수 있어요. 모조리 펼치니 무슨 미로처럼 보여서 그걸 한 번 나타내 보았습니다.)
눈을 실컷 만족시킨 다음 바로 글로 들어갔습니다. 제 안에 한껏 고조된 부러움이 얼른 이런 집을 갖게 된 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라고 닦달했으니까요. 그에 대한 자세한 통성명을 굳이 이 글에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력 같은 것은 서점에서 이 책의 책날개만 펼쳐봐도 아니면 온라인 서점의 소개글만 읽어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게 제 관심사도 아닙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기에 저렇게 많은 책을 껴안을 수 있었나?' 그 역시 저만큼이나 책이 늘어나는 것에서 불편과 고통을 당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집을 덩쿨처럼 둘러싸고 있는 책들을 보며 정리하라고 말했을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축소가 아니라 확장을 택했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자료도 놓치기 싫어 건물을 지어버렸습니다. 과연 그에게 책이 무엇이었기에, 책이 그를 어떤 사람이 되도록 인도했기에 그럴 수 있었는지 저는 정말 궁금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인간형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책이 그 무엇보다 삶의 전부였던 사람, 책을 누구보다 많이 읽고 그 책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할 정도로 사랑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인지 말이죠. 일을 제외하고 일상의 가장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며 또 죽을 때까지 그것을 계속할 각오인 저로서는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에 나온 다치바나 다카시의 현재는 바로 저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에 비한다면 턱없이 적게 읽었고 그건 앞으로도 다를 게 없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비슷하므로 유사한 경로를 따를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꼭 지금의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인간을 봐야만 했습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었어도 칭찬이나 좋은 말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제가 쓸데 없는 책을 읽는다고 혼내기만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 뜻을 따르지 않으면 어려서부터 이상한 책만 잔뜩 읽어서 저렇다는 말부터 돌아왔습니다. 그건 학창 시절도, 사회에 나와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책은 사귐 보다는 고독을, 대화 보다는 침묵을 제게 더 많이 가져왔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여전히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 편 두려움이 따라왔습니다. '이렇게 책만 읽어도 괜찮을까? 사람들 말대로 이상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다가도 문득 이런 질문 속에 하염없이 빠져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요즘처럼 상식이 무너지고 지식이 오히려 불법의 교묘한 도구가 되는 것을 허다하게 보노라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질문들에 다치바나 다카시는 답해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40년에 태어나 평생 독서가로 살아온 그가 도달한 현재를 보면 내 모습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고 요행이 따른다면 희망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요행이 따라준 것 같습니다. 희망을 얻었으니까요. 느낀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제게 다치바나 다카시는 존재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솔직히 그의 서가보다 그가 더 놀라웠습니다. 이 책은 서가에 꽂힌 책을 다치바나 다카시가 손수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고양이 빌딩의 지상 3층(옥상에도 있습니다.)과 지하 2층 그리고 산초메와 릿교 대학 어디에 있는 책이든, 그가 책을 손에 쥐기만 하면 그 책이 무슨 내용인지는 물론 관련한 모든 지식까지 막힘없이 줄줄 흘러나왔으니까요. 책이 열쇠가 되어 내부에 봉인된 무한의 지식을 해방시키는 느낌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무런 경계 없이 역사와 문화, 과학과 철학, 종교와 신비주의 그리고 예술을 넘나드는 것이었기에 제게는 도서관 자체가 한 인간의 몸으로 육화한 것 같았습니다. 말에 현장감이 넘치는 것을 보면 아무리 봐도 원고는 아닌 것 같고 구술한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학자 칼 포퍼를 소개하면서 '학문 체계 전체를 한 덩어리로 사유해갈 수 있었던 드문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게는 다치바다 다카시야말로 그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뛰어난 고고학자가 하나의 도자기 파편에서 전체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는 것처럼 협소한 범위에 제 앎을 한정시키지 않고 이왕이면 지식 전반에 대해 고루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숨은 맥락까지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좁은 방안에 있으면서도 세계 전부를 손바닥 보듯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말이죠. 오래도록 골방에서 나만의 세계에 칩거하다보니 반대로 바깥과 연결되려는 욕망이 커져버렸나 봅니다. 분명 과거의 기억이 가져오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니 마음만이라도 세계와 포옹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나오는 주인공 한탸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지하실에서 수많은 책을 분리 소각하는 일을 합니다. 35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곳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거기가 자신이 가진 세계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전혀 스스로를 불행하다거나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구원한 책과 그것의 독서를 통해 누구보다 더 큰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 자유 속에서 세계는 스스로 그에게 다가와 그와 하나가 됩니다. 당연하게도 한탸는 실제 세계로 나아갈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한탸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의 인물. 실제로도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다치바나 다카시가 가능하다고 알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도. 바로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이런 위로와 응원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발터 벤야민은 책벌레만큼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없지만 그만큼 쾌락을 누리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사물이 자신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로 그 사물 속에서 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물 속에서 산다는 게 어떤 뜻인지 잘 알 수 없었는데, 이 책에 재현된 책벌레 다치바나 다카시의 모습을 보니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것을 아는 게 내게 무슨 쓸모가 있을지 전혀 따지지 않고 오로지 알아간다는 즐거움만 순수하게 추구하는 것.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 자신 좋아했던 콜린 윌슨도 마찬가지였지만, 앎을 위해서라면 과학과 종교 혹은 신비학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같이 서로 반대되는 영역마저 기꺼이 섭렵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배울 기회가 된다고 하면 세상 그 어디라도 또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무시하는 이라도 찾아가 답사하고 인터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知)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자신을 열어놓고 모든 것에 자신을 접속시켰습니다. 세상이 정한 모든 경계와 영역은 알고 싶다는 열망 앞에 모조리 녹아버린 것처럼 그는 살았습니다. 이것이 사물 속에 산다는 뜻이 아닐까요? 나와 너의 구분의 없는 상태에서 내가 아는 것을 주장하기 보다는 너가 무엇인지 들으려 더 애쓰는 합일 같은 것.
순간, 내가 왜 책을 읽으면서도 동시에 불안과 걱정을 느끼고 있었는지 바로 이해했습니다. 제가 너무 계산적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늘 다음을 생각했습니다. 책을 지금보다 좀 더 괜찮은 나, 보다 뛰어난 나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독을 잊기 위해서거나 오늘의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책을 찾았을 뿐이지 알아가는 것의 순수한 기쁨이나 독서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 책을 찾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모르고 있었던 게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책을 매개로 세상과 억지로 연결되려 하면 할수록 세상과 더 멀어지지만 책 자체가 주는 독서의 기쁨에 몰입한다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연결의 욕망은 구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그런 단정이 그 자체로 온전한 것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구분이란 협소한 시야에서만 생겨나는 환상인데 말이죠. 제가 그런 착각에 빠져 있었고 그래서 독서마저 도구로 여겨왔다는 것을 이번의 독서를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는 것의 기쁨을 순수하게 쫓는다고 해서 전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책에서 보여준 핵발전소에 대한 태도만 해도 아는 것이 일천하여 설득력있게 반박은 못하겠지만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타산과 예단 속에서 독서를 수단으로 삼아온 그동안의 저를 돌이켜볼 때 반성의 의미도 더하여 한동안은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배우고 익히는 것의 순수한 쾌락 속으로 풍덩 빠져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새롭고 올바른 앎을 위해서 과거의 앎을 지우고 백지 상태에서 다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에드문트 후설의 충고대로 말입니다. 그래야 책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이나 이념 혹은 동물을 포함한 세계의 그 어떤 것도 더이상 수단이 아니라 먼저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배울 수 있는 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없었던 독서의 재미를 순수하게 추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진도 그렇게 찍어보았습니다. 사진 속 연출과 대사들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면 유머에 능숙하지 못한 제가 그나마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 본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적 편력의 세계,
그 세 번째 바다로 첨벙 빠져보자!
-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포토리뷰 -
(이 리뷰의 전반부는 사진 위주, 후반부는 글 위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블로그 원문으로 읽기를 권합니다. 제 예스24블로그 외 다른 페이지에서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생뚱맞게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지난 1월 초에 국내 개봉한 후 340만 관객 수를 돌파하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은 그 작품의 여러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하는 음반, 달력, 일러스트집, 캐릭터 피규어, 엽서, 소설화된 단행본, 출판만화 등의 다양한 형태로 확대 상품화되어 역시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그런 상품을 ‘굿즈’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원소스 멀티유즈’의 전형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 작품의 관련 굿즈(작품 관련 파생 상품) 중에 ‘너의 이름은 비주얼 가이드북’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실재 장소 사진이나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인터뷰, 캐릭터 원안 등 해당 작품의 뿌리부터 열매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담은 도서 형태의 굿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진1. 책의 앞표지 - 차분함과 무게감이 있는 멋진 디자인입니다.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책의 묵직함이 마음에 듭니다.
이제 본론입니다(^^);;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이루어온 책과 독서세계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 빌딩’을 하나의 작품이라고 본다면, 이번에 국내에 출간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이 ‘고양이 빌딩’이라는 작품의 비주얼 가이드북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에게는 이 책이 그런 ‘굿즈’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책이 너무 많아서인지 고양이 빌딩을 벗어난 책들이 있는 장소가 소개되기도 합니다만.
사진2. 띠지 - 압도적인 지(知)의 세계로~!!
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치바나 다카시나 마쓰오카 세이고 같은 독서의 대가들을 동경하기 마련일 텐데요.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유한 책들이 가득 있는 서재, 혹은 서고라는 장소 또한 큰 로망일 것입니다. 이 책은 그중 대표적인 인물인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과 산초메 서고, 릿쿄 대학 연구실에 잔뜩 꽂혀 있고 쌓여 있는 책들의 풍경을 사진으로 거의 모두 담았고, 각각의 층마다 어떤 책들이 어떤 사연으로 있게 되었는지 저자가 편안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에 따라서는 편안하지 않고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네요...
사진3. 책등 - 정면표지와 마찬가지로 책의 존재감이 잘 드러납니다. 제가 수령한 책의 겉표지 책등부분에 제목 인쇄 위치가 약간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조금 아쉽네요 ㅎㅎ 정중앙에 딱 맞춰서 입혀졌으면 더 좋았을 걸... 이런 건 괜히 찝찝해서.. 제가 별난 건가요? ^^;
사진4. 책의 뒤표지 1
사진5. 책의 뒤표지2 - 하나의 주제로 시작해 잘 자란 나무처럼 사방으로 펼쳐지며 지식의 열매를 맺고,
그것을 나누는 저자의 인생처럼 저의 인생도 그렇게 풍성하기를 소망해봅니다.
사진6. 겉표지를 벗긴 모습 - 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질 만한 디자인입니다. 요즘은 이런 서재 스타일의 벽지도 나오는 것 같던데 실제 책으로 사방을 둘러칠 수 없다면 대신 이런 스타일의 벽지로 실내 장식을 하는 것도 좋겠다,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진7. 겉표지 - 겉표지를 펼치면 이런 느낌입니다. 멋지죠?^^ 어떤 분들은 겉표지가 귀찮은데 떼어내서 어디 두기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곤란해하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겉표지도 하나의 기념품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펼치면 멋진 한 장의 일러스트가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사진8. 책의 아랫부분(책발) -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두께를 자랑하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책발에서 어둡게 보이는 부분은 다 사진입니다. 사진의 비중이 꽤 되기 때문에 실제로 읽는 글의 양이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다는 것이죠.
사진9. 책 속 중간 부분에 이렇게 펼쳐서 볼 수 있는 서가 사진들이 있습니다.
사진10. 각 장의 앞부분에서 서가 전체의 모습과 그 서가의 부분들을 확대한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은 그 사진들 속에 있는 책들 중 몇 권을 저자가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층마다 사진으로 먼저 책들을 보고 이어서 본문을 읽는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책 사진들은 얼핏 비슷한 이미지의 반복으로 느껴져 대충 넘겨보고 지나가는 부분이 될 수도 있는데 독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중간쯤 가면 본문을 먼저 읽고 사진을 보는 방법으로 바꿀 수도 있겠네요.
이제(!) 본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고양이 빌딩의 각각의 층들과 나머지 서고들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6쪽 - 이렇게 내 서가의 전체 모습을 찰칵찰칵 찍힌다는 것은 그리 기분이 좋은 일이 못 된다. 나의 빈약한 머릿속을 엿보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 빈약한 머릿속? 어떻게 이런 표현을! 그럼 보통 일반 독자들의 머릿속은 뭐가 되나요~ (그런데... 본문에서 ‘전체 모습을’이 아니라 ‘전체 모습이’ 라고 해야 문장이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안 그런가요?)
7쪽 -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보인다.(제 서재? 혹은 책이 있는 방을 보니..ㅜㅡ)
고양이 빌딩 1층에는 의학, 생물학, 심리학, 핵발전 관련 책들이 주로 소개되어 있는데, 제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111쪽 ‘최신 핵발전 기술’, 117쪽 ‘도리어 핵발전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사건이 될 수 있었다’, 121쪽 ‘연구의 자유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122쪽 ‘퀴리 부인의 나라’, 124쪽 핵발전 연구에 적극적인 러시아, 126쪽 ‘중국이 핵발전 대국이 된다’ 등 책에 대한 소개보다 핵발전 관련 이슈에 대한 저자의 의견과 설명이 주로 나온 부분이었습니다. 즉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크게 일어나고 있지만, 막상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지난 시절의 과오를 넘어 현재까지 엄청난 발전이 이뤄진 상태이기 때문에 핵발전은 굉장히 안전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제는 이거죠. ‘인간의 실수만 없다면’. 그런 조건이라면 핵발전은 여전히 가장 위험한 에너지 공급수단인 것 같은데 ㅡ.ㅡ;;
고양이 빌딩 2층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다룬 역사 자료와 일본 고대사 관련 자료들이 주로 소개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특히 그리스도교 주요 교리의 정립과 특정 주장이 이단이냐 아니냐 등 기타 종교적 갈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랫동안 열려왔던 공의회의 진행 과정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나 마리아 신앙 등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사항들에 대해서는 더 깊은 이해를 위한 가이드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이런 내용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한편 일본 고대사 연구와 관련해서는 엉터리 같은 내용의 책도 많이 출판되지만 고대사 이해의 특성상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을 진실이라고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무조건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저자의 생각을 전하기도 합니다.
3층으로 가볼까요. 고양이 빌딩 3층에는 신비주의, 신화, 종교(기독교와 이슬람교), 과학(우주과학과 레이저 기술) 등에 관한 자료들이 즐비해있었습니다. 유럽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성서나 그리스-로마신화 못지않게 아서왕 전설, 성배 전설도 중요하다는 내용은 저에게 새로웠습니다. 게임이나 영화 같은 데서 쓰기 좋은 소스 정도로 알고 있던 저의 무식함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215쪽에서는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말하면서 종합미디어로서의 책의 생명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눈에 띄네요. 237쪽에서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성경과 코란을 ‘상당히, 찬찬히’ 읽어왔다고 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 이 두 종교는 상호이해가 불가능해 보이며 최소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합니다. 영원한 갈등이라는 스포츠가 있다면 이 문제는 단연 주 종목이죠...
255쪽에서는 프리먼 다이슨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미국의 물리학자가 소개되는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과학 관련 이야기들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어서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리처드 파인먼도 등장하는데 그의 책이 출판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또 흥미로웠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과학을 표현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제 눈에 띈 부분은 저자 나름의 독서론이라고 할 만한 생각이 드러나는 내용인데, 이를테면 수준에 맞는 독서, 또 수준을 맞춘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자가 책과 임피던스를 맞춘다’ 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286쪽에서는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 나오는데요, ‘궁극의 물리학은 신학과 결부되어 있다’ 는 내용입니다. 빛과 물질, 에너지의 ‘과정 없는 전환’이라는 양자역학적 현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본질은 같으나 상황에 따라 그 페르소나(위격 혹은 역할)가 달라지는 그리스도교 신의 삼위일체 개념과 연결시켜 파악하는 부분은 눈이 새롭게 뜨이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자는 나아가 물리학과 철학과 신학이 삼위일체 관계에 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의미를 확장하는 의견을 보이기도 합니다.
양자역학의 내용은 매우 어려우나 그 특성을 이용한 기술은 벌써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고 하면서 예로 든 것이 바로 ‘레이저’입니다. 이 레이저 현상과 관련한 이야기가 또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레이저 기술이 미래 산업의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인데 일본이 그 선두에 서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내용들을 하나하나 읽고 있자니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나 육성 문화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 일본과 너무 비교가 되어 안타깝고 약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자국의 이런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실이 대중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자가 지적하는 일본 교육의 문제점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휴~ 이까지만 해도 내용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이제 고양이 빌딩의 지하 1층과 2층으로 가봅시다. 메이지 유신, 임사체험, 석유와 중동, 이스라엘과 중동 문제, 핵발전, 스파이, 일본공산당 연구에 관한 자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문제는 앞서 나온 종교, 정치, 역사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인류의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될 것 같네요.
다음으로는 고양이 빌딩의 계단과 옥상을 살펴볼까요? 여기서는 현재의 유럽이라는 곳을 보다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로마제국 쇠망사’나 ‘루이 16세’, ‘부르고뉴 공국의 대공들’, ‘중세의 가을’,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관련 책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넓은 의미에서 서양사를 이해하기 위한 책들로 고양이 계단이 채워져 있습니다. 그밖에 화이트헤드, 괴델 등의 철학 관련 책들을 잠깐 소개하고 이어 막스 베버의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책을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에 따라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분간할 수 있다, 고까지 표현하고 있네요. 이 책은 국내에도 출판되어 있어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416쪽에서 저자는 ‘서가는 그 소유자의 지적 편력의 단면이다’라고 말하는데요, 다치바나 선생 같은 분들은 뭐... 그 단면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니!
고양이 빌딩 옥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력적인 인물 두 사람이 소개되고 있군요. 콜린 윌슨과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다방면에서 뛰어난 지적 재능을 펼친 콜린 윌슨의 경우, 저자의 고양이 빌딩 같은 공간이 있는데, 저자처럼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책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저자는 이에 대해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것을 조사해 자료를 모아가면, 결국 저서 한 권 당 작은 방 하나를 건축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것,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는 것은 보통의 경지를 뛰어넘는군요. 비트겐슈타인은 그때까지의 철학이라는 학문의 흐름에 대해 전면 부정하면서, 물음을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으며 그 원인은 잘못된 언어의 사용에 있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흐름으로 일거에 뒤집어버린 대단한 인물입니다. 저자는 콜린 윌슨의 책 ‘종교와 반항아’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을 처음 접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초메 서고-릿쿄 대학 연구실을 살펴봅니다. 이곳은 미술, 음악, 영화에 관한 자료들과 고양이 빌딩에 미처 다 보관할 수 없었던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 부분을 읽다가 저자의 나이가 이제 꽤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라는 책으로 이 분의 팬이 된 게 대체 언제 적 이야기였던가요...
저자는 지금 이 순간,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지금을 기준으로 과거 200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역사 교육에 대해 현재에서 과거로 조금씩 거슬러올라가면서 배우는 방식을 권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지금처럼 저 먼 과거에서 시작해 현대로 오는 방식의 교육에서 느껴지는 시간적, 공간적, 역사적 괴리감이랄까요. 그런 것들이 역사와 친숙하게 되는 것을 방해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11. 이것이야말로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세계를 온전히 말해주는
삼위일체의 현현(顯現)인가요??*^^*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한 개인의 서재라는 공간을 한번 쭉 둘러보는 방식으로 구성된 책이기 때문에 다양한 내용이 산재한 경향이 있으므로, 제 리뷰도 읽는 도중에 어떤 부분이 좋았고 이런 느낌이 들었다, 정도로 쓸 수밖에 없었네요. 하지만 지적 편력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장점을 더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리뷰어의 등장을 기대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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