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모든 질서가 뒤흔들리는 지금, 더욱더 자신만의 플랜B가 필요하다
달라진 세상에서 새로운 성공의 기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돌아보면 나희선이자 도티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언제나 플랜B였다. 메이저 언론사에 취업하는 플랜A가 순탄치 않았을 때 플랜B였던 유튜브에서 미처 몰랐던 재능과 꿈을 발견했다. 유튜브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불안과 좌절감에 빠졌을 때 샌드박스는 플랜B가 되어 인간 나희선이 새로 숨 쉴 수 있게 해주었다. 플랜B는 플랜A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책이 아니라 플랜A와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며 다양성이다. 저자는 다른 누군가가 정해놓은 플랜A에 얽매이기보다 나만의 플랜B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모든 질서가 뒤흔들리는 지금, 이런 때일수록 더욱 자신만의 플랜B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플랜C, 플랜D가 끊임없이 발견되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자신만의 플랜 B가 얼마나 큰 성공을 만들어내는지 『도티의 플랜B』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플랜B의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그래, 나도 마흔 전에 10억을 벌자.’
자기소개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해
국내 MCN 기업을 대표하는 샌드박스네트워크를 창업하기까지
가치 있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 선택들과 과정에 대하여
700점을 넘지 못한 토익 점수에 스펙이라곤 전혀 없는 취업 준비생. 친구들과의 스펙 경쟁력을 고민하다 수업 시간에 들었던 유튜브가 떠올랐다. 구독자 1000명쯤 되는 채널을 보유하면 자기소개서 한 줄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유튜브. 그것이 국내 최고의 크리에이터, 도티의 시작이었다. 이 책에서 도티는 명문대에 입학하고도 뚜렷한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했던 시간들부터 취업 준비생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기까지, 나아가 유튜브의 성공에 취해 있을 법한 순간에 샌드박스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기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불행과 희망으로 뒤섞인 도티 이전의 삶, 그리고 그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던 극적인 성공의 순간들에 대해 털어놓는다.
학회에 떨어지니 자괴감이 들고 더욱더 이른바 좋은 기업엔 입사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대체 취업은 어떻게 하는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연세대가 나를 잘못 뽑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집단이든 3퍼센트 정도는 잘못 뽑는다던데, 혹시 내가 거기에 속하는 건가?’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책했다. _본문 중에서
도티는 대학교 동기인 현 샌드박스네트워크 이필성 대표와 투자를 받으러 다니면서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MCN 비즈니스의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게 무슨 비즈니스야?” 하는 반응도 많았다. 그런 반응의 근저에는 ‘인터넷 방송하는 애들이 무슨 사업을 해? 걔들이 사업적으로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어?’라고 깔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번번히 거절을 당하고도 이쯤에서 사업을 접자는 말은 둘 중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는 일이라면 너도나도 뛰어들 테고, 그러면 자신들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리어 도전해볼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은 것이다.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들을 이런 마음으로 버텨냈다.
“이게 사업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내 생각에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은데.” 확신에 차서 열심히 설명하다가도 이런 소리를 들으면 의기소침해졌다. 우리도 해보지 않았으니 솔직히 100퍼센트 확신은 없었다. 자꾸 주눅이 들었다. ‘그런가? 안 되는 일일까?’ 아무 성과 없이 어깨가 축 처진 채로 터벅터벅 걸어 나올 때마다 불안과 걱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젊음의 기회비용을 날리는 건 아닐까? 아마 필성이는 나보다 더했을 것이다. ‘잘 다니던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이것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는 건 아닐까, 여기서 허송세월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왜 없었겠는가. 세상은 샌드박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도 잘 알고 있었다. _본문 중에서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주목받기 시작할 초기, 기적적으로 투자를 받았고 그렇게 대표들과 직원 포함해 총 4명으로 샌드박스네트워크가 시작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크리에이터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5개 채널로 시작해 그게 10개 채널이 되고 20개, 50개, 100개로 꾸준히 늘어났다. 회사가 차근차근 규모를 키워가는 동안 예상대로 유튜브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모든 것이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급속하게 성장했다. 샌드박스는 스타트업 세계에서 가장 핫한 회사가 되어 있었다. 도티는 지금도 이 현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가만히 누워 있노라면 옛날 하숙방에 누워 있던 때가 가끔 떠오른다. 자신이 이렇게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운명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게 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나를 위해 무얼 준비해놨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지금 괴롭다면 당신이 본래의 운명을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안 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무조건 잘돼야 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도티를 있게 한 소중한 변곡점들
또래들과 조금만 달라도 놀림감이 되는 어린 시절, 도티에겐 아버지가 없었다. 그리고 체구가 작았다. 엄마와 단둘이 세 들어 살던 주인집의 누나는 같이 놀다가 수틀리면 꼭 이렇게 심통을 부렸다. “아빠도 없는 게!” 그러면 아무 말도 못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해마다 거의 1번을 차지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없다는 결핍, 몸이 왜소하다는 불리한 조건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약점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는 것이 도티에게는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자신이 선택한 조건은 아니지만, 결핍은 스스로 채워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 그럼 알아서 해! 전학도 안 시켜주고 아무것도 안 해줄 테니까.” 홧김에 한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 말을 정말 지켰다. 전학시키지 않은 것이다. 호적상 아버지 밑에 있으니 아버지가 전학을 시켜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다. 성남에서 인천까지 통학은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군자역 근처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편도로 2시간 30분이 걸리는 길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5호선 첫차를 타고 마흔여섯 정거장쯤 지나면 송정역에 도착한다. 송정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한 시간쯤 더 가면 검단에 도착한다. 그렇게 통학하는 데만 하루에 네다섯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아버지한테 지기 싫어서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두 손을 들었다. 나는 2학년이 되어서야 전학을 할 수 있었다. _본문 중에서
도티는 학교 공부도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이 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치른 반 배치고사에서 충격적인 등수를 받아들고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침에 등교하면 우유 급식용 플라스틱 우유박스에 그날 볼 참고서를 다 넣어서 책상 밑에 두었다. 자리에 앉으면 점심시간에 한 번, 저녁 먹을 때 또 한 번,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 집에 갈 때 마지막으로 한 번 일어났다. 이렇게 하루 종일 세 번만 일어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규칙을 정했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고등학교 1학년 마지막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을 처음 달아보니 너무나 짜릿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졸업할 때까지 내신 성적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미움, 상처, 오기, 용서…….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 것은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청자들과 얼마나 잘 소통하느냐가 성공하는 크리에이터의 조건이기도 한데, 도티는 그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런저런 경험 덕분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시청자들의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채널의 주 시청자인 10대 친구들은 종종 게임과 관계없는 가족관계 혹은 성적에 대한 고민을 도티에게 털어놓는다. 그럴 때면 진심을 담아 상담해줄 수 있었다.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받고 나쁜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 일을 마주하는 자세다. 나쁜 일과 맞닥뜨렸을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소화하면 자산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독으로 쌓아둘지 자산으로 축적할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구독자 250만 명의 크리에이터는 무엇이 다른가
최초, 최고,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1세대 크리에이터 도티
그가 경험으로 터득하고 결과로 확인한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한 마인드셋과 노하우
“유튜브는 이미 레드오션이라 더는 새로운 소재가 없지 않을까요?” 너도나도 유튜브에 뛰어드는 요즘에는 당연히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어디 다른 행성에서 오지 않은 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소재란 비슷비슷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내 콘텐츠를 차별화할 수 있을까? 도티는 소재보다 그것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똑같은 게임이나 먹방을 소재로 삼더라도 크리에이터가 어떤 매력을 지녔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게임 콘텐츠도 어떤 사람은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 목적을 둘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게임 클리어보다 그 과정을 잘 설명하고 흥미진진하게 포장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은 게임을 아주 빠른 속도로 클리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다. “게임 콘텐츠는 레드오션이야”라는 말은 게임 자체에 초점을 둔 것인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인구수만큼의 개성이 생길 수 있다.
처음에는 콘텐츠가 재미있어서 시청자가 유입된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면 시청자는 자연스레 크리에이터를 좋아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팬덤이 형성되면 그 크리에이터가 진행하는 방송은 모조리 보게 된다. 이처럼 팬덤이 생기는 단계가 되면 소재는 거드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애정을 품고 오래 할 수 있는 소재를 찾는 것만큼이나, 그 소재를 다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계속 보여준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확률이 커진다.
유튜브를 시작한 초반에는 조회수가 200~300회 정도 나왔다. 많지 않은 수치였지만 나는 이것도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20분짜리 영상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100회 나오면 내가 누군가의 2000분을 책임지는 셈이잖아? 대박인데!’ 누가 들으면 코웃음 칠지 모르지만 나는 워낙 의미 부여를 잘하는 성격이다. 자기만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누군가의 시간을 책임진다는 생각이 들자 큰 책임감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_본문 중에서
만 원짜리 헤드셋으로 유튜브에 올인한 지 2~3개월이 지났을 때 조회수가 천 단위로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첫 수익은 30만 원이 채 안 됐지만, 스스로 만든 콘텐츠가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도티가 유튜브를 시작한 2013년까지만 해도 유튜브에서는 키워드 정리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도티’라는 키워드는 한국 유튜브에서 검색 1위를 차지했다. 유튜브가 한국에 론칭한 이래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은 키워드가 ‘섹스’였는데, 그 1위를 처음으로 갈아치운 키워드가 ‘도티’였다. 엄청난 인기를 데이터로도 입증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매번 단 한 번의 방송을 위해 어떤 타임테이블이 존재하는지, 어떠한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하루에 네 시간씩 자며 매일매일 영상을 제작, 업로드했던 시절을 회상하고, 지금 돌아보면 발견할 수 있는 성공 승부처에 대해 곱씹어본다. 나아가 편집의 중요성, 섬네일의 가독성, 전략적인 편성 등 경험으로 터득하고 결과로 확인한 디테일한 노하우를 공개한다. 더불어 매력을 공감으로, 그리고 만족할 만한 수익으로 이끌어내는 크리에이터의 다섯 가지 역량을 강조하면서, 기댈 언덕 하나 없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터닝포인트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해낸다. 책을 통해 도티는 인생에 있어서 다가온 기회들을 놓치지 않으며 성공의 사다리를 이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최초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