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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9년 1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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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330g | 113*185*23mm |
ISBN13 | 9791170400097 |
ISBN10 | 1170400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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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두번째 서평이네요.)
몇 달 전에 읽고 너무 좋아서 주변에 선물했던 책이다.
나태주 시인의 신작 시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애송시와 나태주 시인이 사랑하는 시들로 구성된 시집이어서 그런지 마음에 닿는 시들이 많았다.
지난 여름에 읽고 가을이 되어 다시 읽으니, 지난번과는 다른 시들에 마음이 가기도 하고, 같은 시도 새로운 마음으로 읽히기도 했다.
많은 시들 중에 가을 느낌을 주는 시들로 골라 직접 써 보았다.
[풍경]은 뭔가 약간 오글거리는 드라마 대사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좋은 풍경, 그림 같은 풍경에서 ‘너’가 없다면 얼마나 외롭고 슬플까.
[이 가을에] 더웠던 여름의 열기가 모두 식어버리고, 푸르렀던 나뭇잎 마저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만 남겨지는 모습이 우리의 마음에 쓸쓸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일까. '아직도 잊지 못한 너'를 떠올리게 하는 가을은 화자의 슬픈 마음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나 보다.
[시] 시인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의 보석들을 줍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만 보여지는 아름다운 빛깔들의 시를 말이다. 떨어진 가을 낙엽을 줍다가 이 시가 생각났다.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물든 낙엽들은 누구에게나 빛나는 보석인가 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가을의 빛깔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니까...
[바람이 부오] 푸르던 나뭇잎들은 이제 아무렇게나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다. 촉촉한 생기는 어디가고 밟으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나뭇잎들... 선명한 색들은 사라지고 빛바랜 기억만 남은 화자의 마음도 밟으면 바스락 소리가 날까...
시와 친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읽히는 시들이어서 좋다. 가까운 마음들을 노래하는 시들이어서 좋다. ‘나도 시집 한 번 읽어볼까?’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선물하기 좋은 시집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나태주 시인. 나태주라는 이름은 몰라도 이 시를 아는 사람은 무척 많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도 걸려 있었고,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도 종종 인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용의 횟수보다도 그 따뜻한 마음에 감동 받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았던 것이 아닐까. 이번에 발간된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역시 그러한 시편들로 그득하다.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이라 그런지 여느 시집들과 다르게 두툼~하다. 소설책 만한 두께다. 매수도 300페이지를 훌쩍 넘기니 글자수와는 별개로 웬만한 시집 서너 권 분량은 족히 된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사랑과 기다림,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입체북처럼 툭 하고 튀어나오기 때문에, 굳이 앞장부터 펼쳐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아마 그 시선이 가 닿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이 시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머리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손잡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가득하고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나태주의 시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차분하고 섬세한 응시와 관찰을 통한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 그를 통해 얻는 마음의 위안. 표지 삽화도 제목과 참 잘 어울린다. 눈이 내리는 숲속, 개를 한 마리 앞세우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 개와 사람이 함께, 나무와 눈이 함께, 이 모든 것과 하늘이 함께. 이들이 모두 나와 함께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길의 끝에 ‘너’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너’를 향하고 있다면 내가 가는 곳 어디든지 여행길이 되는 것이다.
<따스한 손>
날씨 많이
추워졌다
네 손을 쥐여다오
머플러가 아니고
양말이 아니고
장갑이 아니다
바람까지
많이 쌀쌀해졌다
따스한 손을 좀 잡자
나에게는 이제
네 손이 머플러이고
양말이고 또 장갑이란다
어제도 딸아이와 길을 걷다 내 손을 잡더니 “아빠 손은 참 따뜻하네.”라고 말했다. 아내와 연애를 할 때도 그랬다. 날이 춥건 덥건 몸에 열이 많은 나는 손이 늘 따뜻했다. 누군가 추울 때 핫팩을 건네는 것도 좋지만 따듯하게 데워진 손을 내밀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내 손이 따듯하지 않아도 좋다. 내 손을 마주잡는 사람이 그것을 머플러로, 양말로, 장갑으로 생각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있어 내 인생은 즐거운 여행의 길이다. 그런 여행의 중간에 내게는 서점을 만나는 것이 오아시스같은 느낌을 주는데, 시인도 그런 모양이다.
<서점에서>
서점에 들어오면
나무숲에 들어간 것같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딘가 새소리가 들리고
개울 물소리가 다가오고
흰 구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서점의 책들은 모두가
숲에서 온 친구들이다
서가 사이를 서성이는 것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서성이는 것
책을 넘기는 것은
나무의 속살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
오늘도 나는
숲속 길을 멀리 걸었고
나무들과 어울려 잘 놀았다
광대무변. 너르고 커서 끝이 없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나무 한 그루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시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나이가 70이 넘어서도 진심으로 대상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상대방이 너무 예뻐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왈칵 쏟을 수 있는 섬세함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렇게 아이처럼 늙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인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텐데, 그 비결은 담은 시를 읽어본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마지막 구절이 재미있다. 자세히 보고, 자세히 보면 그것을 이해하게 되므로 이웃도 친구도 연인도 될 수 있다. 관계 형성의 본질을 이렇게 간명하게 정리해놓고 이것은 비밀이라면서 눙치는 여유. 충청도식 유머다. 막연하게 위안의 느낌을 받는 것도 있지만 혼자라고 느끼며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줄 구체적인 처방전도 있다.
<혼자서>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 있다.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홀로 서 있는 것이 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가 있으므로 너무 힘들어 할 필요가 없다는 토닥거림이다. 한번만 더 곱씹어 보면, 당신은 이미 꽃이기 때문이다. 아, 이것도 비밀이네.
아이들을 재우고 읽는 이 책에서 잠든 우리 아이들의 이마를 쓸어보게 하는 시도 있다.
<사랑에 답함>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일에 지쳐, 아이들과의 부대낌에 지쳐 그저 나중에, 조금만 이따가 하면서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아이의 마음을 닫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아이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이렇게 여러모로 내 삶과 내가 만나는 것들을 자세히 보고 느끼면서 살다보면, 아마 이런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섰을 때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유혹 많은 세상에서 ‘그저 보통의 사람’으로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겸손한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작년에도, 올해도 내 컴퓨터 모니터 앞에는 겸손하자는 금언이 붙어있다. 남의 비난과 비판에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칭찬에 목말라하고 쉬이 그것에 만족해버리기 때문에. 그런 나에게 시인은 마지막으로 이런 충고를 건넨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받는 찬사는
찬사가 아니다.
동지로부터 받는 찬사도
찬사가 아니다.
그것은 욕설이요 소음이요
낭떠러지로 가는 눈먼 길이다.('사십' 중에서)
관찰, 응시. 위로. 긍정. 사랑. 기다림. 겸손. 나태주 시를 관통하는 키워드이자,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에 가득한 위안의 언어들이다. 곱씹으며 읽다 보면 나와 타인에 대한 긍정을 넘어 결국 나 스스로가 꽃이 되는 지점에까지 이를 것이다. 한 생애의 질곡을 두루 겪고 넘어 결국 손에 쥔 소박한 언어들이 주는 울림을 접해 보자.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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