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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8년 06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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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595g | 148*210*30mm |
ISBN13 | 9788993285086 |
ISBN10 | 899328508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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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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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연애와 사회,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바람직한 방법
“(염상섭을 모델로 한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야기한-인용자) 사건을 통해 김동인은 모델 소설이, 그 소설의 주인공으로 거론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모델 소설 쓰기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는 좀 더 만만한 대상을 골랐다. 근대 문학 최초의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 그녀가 희생양으로 선택됐다.” (p163)
연애는 사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인 한, 연애 역시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근대가 형성되던 그 시절의 연애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 개인의 ‘연애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는 연애담의 주인공을 ‘살해’하기도 한다. 물론, ‘사회’가 손발 달린 짐승도 아닌 법, 살인범은 사회의 구성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김명순의 경우 사회적 살인의 첫 출수를 담당한 이는 ‘김동인’이었다.
스스로를 초보라고 소개하는 저자는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을 “비극”과 “낭만”, “충격”과 “혁명”이라는 4개의 쳅터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제목만큼이나 선정적이며 그래서, 일단 손에 쥐면 놓기 쉽지 않다. 한마디로 누구한테 추천해도 욕 안 먹을 만큼 재밌다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평이하고 담백한 어법으로 씌어진 이야기들이 읽는 이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슨 소리냐고?
“비극”이라는 쳅터에서 작가는 기생과 신여성 그리고 여급이 연루된 ‘정사’, 사랑 때문에 벌어진 자살 사건을 소개한다. ‘기생’에서 ‘신여성’, 다시 ‘여급’으로 이어지는 글 싣는 순서는 근대적이자 서구적 현상인 ‘연애’를 감행한 여성 집단의 순번이며, 동시에 그 시대의 남성들이 연애 상대로 지목한 여성 집단의 순번이기도 하다. 돌려 말하면 저자는 ‘사랑 때문에 벌어진 자살 사건’을 통해 연애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저자는 일종의 연애의 사회사라 할만한 이 확장의 과정을 인문사회과학적 글쓰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개개의 사건의 앞과 뒤를 당대의 ‘신문, 잡지’와 후대에 남겨진 ‘회고록(!)’을 통해 차분하게 구성해나갈 뿐이다. 그럼에도 이철 작가의 20-30년대 ‘연애의 사회사’는 분명한 색깔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저자가 사건을 ‘여주인공’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애는 사적이다. 그러나 누구한테나 사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여성 연애인의 스캔들은 치명적일 수 있다. 한발만 삐끗해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누구나 알 듯이, 우리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약자다. 1920년대라면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기생이던, 신여성이던 그녀들은 연애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가부장적 사회의 윤리를 무너트리는 더럽고 천박한 무리였다. 이중적 시선. 작업의 대상이자, 경멸의 대상. 그 가혹한 비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살’ 밖에는 없었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의찬미’로 잘 알려진 ‘윤심덕’은 죽은 후에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여성을 희생양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욕망하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의 완성을 죽음으로 여기는 염세적인 낭만주의는 동시에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욕망의 징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정사 사건은 공히 남녀 모두가 동반 자살한 케이스들뿐이다. 그러니까 저자는 가부장제 하에서의 성적 불평등에 주목하면서도 여성 주체들을 대상화시키는 오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기술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연애 사건을 여성의 관점에서’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단지, 개별 연애사건이 갖는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맥락’을 드러내고 보니, 결과적으로 ‘여성의 관점’이 주요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권력 관계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가리지 않는 법이니까.
따라서 “낭만”을 다룬 챕터에 소개된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흔히 하듯이 ‘연애에 내재된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무시’함으로써 만들어낸 ‘낭만’이 아니다. 차라리, ‘연애’가 갖고 있는 불평등을 참으로 순진하게도 몰랐거나, 무시했던 혹은 극복하려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다. 서두에 인용한 김동인의 모델 소설 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급기야는 타국에서 광인으로 떠돌다 죽어야 했던 소설가 김명순은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순진하게도 열심히 글 쓰고 공부해서 극복하려다 남성 소설가의 필봉 한방에 무너지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분류 기준은 ‘낭만적 연애주의 혹은 여성주의’가 아니었을까?
“충격” 챕터에는 동성애와 남편 살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충격’에서도 저자는 동성애라는 현재와 달리 당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에 주목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당시에는 빈번했던 현상이라는 남편 살해 자체보다, 어떻게 ‘김정필’ 사건이 충격적 사건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었는가에 주목한다. 과거는 현재와 다르면서도 똑같다.
“혁명”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지워진 영역인 경성 시대 공산주의자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유의할 점은 “혁명”의 분류 기준이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성 시대 가장 투철한 항일 투사였던 공산주의자들의 연애담은 동시에 가붕장주의에 맞선 가장 혁명적인 연애담이기도 하니까. 좌익들이 주인공이라고 너무 볼멘 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앞 선 세 챕터에 우익들은 흐르고 넘치니까. 물론 저자는 공산주의자들의 연애담이라해서 적당히 다루지 않는다. 경성 시대의 인물이며, 공산주의 역시 우리 지난 시대의 좌절과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으니까.
이 책, 연애라는 소재가 갖는 선정성을 떠나서도 재밌다. 그런데도 때때로 고통스럽다. 저자는 사랑과 연애를 ‘낭만’적으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 관계 안에 고스란히 작동하는 권력 관계를 저자가 결코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를 둘러싼 사회의 복잡다단한 맥락을 모른척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와 연결된다. 과거를 발언하는 것은 실은, 현재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럼 점에서 이 책 속의 연애담들은 끊임없이 사회와 연결될 뿐 아니라, 현재와 연결되기도 한다.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은… 저자가 현재를 결코 발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 전체를 통해 저자는 20-30년대 경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무섭고 고통스럽다. 김동인의 소설 하나로 끝장나버린 여류 소설가의 이야기가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존경 받는 당대의 지식인들이 ‘더러운 피’ 운운하는 모습을 보며, 그거 옛 일이라고 치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인’을 둘러싼 언론과 대중의 게임은 다양한 측면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혁명가들에게 오명을 씌워 살해한 권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 한번도 현재를 발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11개의 연애담은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연애와 사회를,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하게 그래서 때로는 고통스럽게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과 사회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개인을, 과거를 발언할때 그것이 갖는 무게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 무게를 잘 알고 있기에 평이하면서도 담백할 수 밖에 없었던 저자의 글쓰기를 나는 지지하고 싶다.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끄덕이고 싶다. 동시에 4개의 쳅터를 구성하고, 그 각각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자신만의 논리를 엄격한 방식으로 구현한 저자의 글쓰기를 격려하고 싶다. 다음 번 책에 대한 기대와 함께 말이다.
덧)
‘신문과 잡지’에서 배제된 자들은 누구일까?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남정네들이 엘리트였고, 덕분에 그 정도로나마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저자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궁금한 것은 ‘신문과 잡지’에도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누구였으며, 그네들의 연애는 어떠했을까 하는 점이다. 더불어… 당대의 미디어는 어떤 선택과 배제의 논리를 갖고 있었을까? 저자가 앞으로도 ‘신문과 잡지’를 주요 텍스트로 삼을 요량이라면 이 문제를 숙고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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