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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09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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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322g | 130*194*20mm |
ISBN13 | 9791130641225 |
ISBN10 | 1130641228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황석영 『철도원 삼대』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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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의 날/예스24 X 난다] 가장 오래된 고백의 이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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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14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자신이 똑바로 설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p. 105)
인생이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지나온 삶의 이력을 살면서 거쳐 온 집을 빼놓고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와 같은 노래 가사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 ‘집‘이 있다. 우리가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의 지나온 삶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곁에 있어야 아버지죠. 궂은 날도 좋은 날도." (p. 124)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의 지나온 삶을 대변하는 건 집이라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그 공간을 매개로 기억 한켠에 놓여 있는 시절(시절)들일 것이다. 현재까지 삶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행복했던 기억, 아픈 추억, 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은 대부분 집이라는 공간과 얽혀있다. 다정한 존재와 함께 한 행복했던 기억, 불현 듯 찾아온 믿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지나고 나면 삶의 한 시절이 된다. 한 시절을 구성하는 건 궂은 날도 좋은날도 변함없이 내 곁에서 기쁨을 나누고 고통을 인내하며 그 순간을 온전히 함께 하였던 삶의 동반자들 즉, 가족이라는 존재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살아가다보면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각각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로서 그러한 경험을 함께 하며 더 단단해진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서로 기대어, 또 종종 두 배로 기뻐하며 삶의 굴곡을 함께 헤쳐간다. 가족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지는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플라멩코를 추는 남자>를 읽으며 나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의 개념을 사라지고, 원자화된 개인이 새로운 형태의 분자 가족을 형성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반평생을 굴착기 기사로 살아온 67세의 남훈씨는 은퇴를 결심한 뒤 그동안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뒷전에 미뤄두었던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과제들을 실행한다. 이는 과거를 반추하며 더 나은 노년의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남훈씨만의 버킷 리스트다. 리스트에는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같은 소박한 것부터 ‘스페인어 학습‘, ‘플라멩코 배우기’처럼 긴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과제도 있다. 어느덧 60대 후반의 노인이 되어 버린 남훈씨에게 흐릿한 기억력으로 낯선 외국어를 학습하고, 좋지 못한 무릎과 체력으로 플라멩코를 배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제들 중에서도 남훈씨에게 남겨진 가장 어려운 과제는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자신의 또 다른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짜 가족을 되찾는 것이었다.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청년이 말했다.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그러신 것 같아요. 뭐에든, 누구에게든."
갑자기 몸이 굳어 남훈 씨는 돌처럼 서 있었다. 무슨 일을 하려다 말고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으려는 걸 남훈 씨는 꾹 참았다. (p. 86)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에서 남훈씨는 과거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또 앞으로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다양한 이들을 만난다. 남훈씨의 굴착기를 빌려간 과거의 자신과 닮은 늙다리 청년은 남훈씨가 아버지로서 딸에게 빚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는 그 빚을 청구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 또한 청구하더라도 그 시기와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딸에게 달려 있음을 인지시켜주었다. 마지막으로 플라멩코를 가르쳐 준 선생은 남훈씨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을 지탱할 든든한 체력을 갖게 해주었다.
“플라멩코를 출 때 말이죠. 가장 중요한 건 사랑입니다. 그건 이성 간의 사랑만 뜻하는게 아녜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거죠.“ (p. 254)
플라멩코는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는 춤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 담기지 않는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마치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고,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인간의 삶과 같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것이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 온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인내와 노력을 동반하는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멩코를 추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춤>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소설을 읽으며 서로에게 또, 상대방의 삶에 가닿기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의 행적과 삶의 궤적을 따라서 걸어보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삶의 단면들과 불편한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이는 상대방을 이해해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실한 삶에 눈을 뜨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의 마음에 가닿기 위한 방법은 상대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기반 위에서 간결하게 진심을 다해 건네는 한 마디 말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마치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며 에둘러 살아온 남훈씨가 더 이상 변명으로 가득찬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주어 - 목적어 - 동사‘ 로 구성되는 한국어 어순 대신 '주어 - 동사 - 목적어'로 이루어지는 스페인어 어순으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그동안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오늘에야 너를 찾았네. 미안하다.' 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대신 '내가 미안하다. 오늘에야 너를 찾아서.' 라고 마음을 담아 건네는 남훈씨의 진심은 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은 통하게 되고, 딸도 아빠의 삶과 아빠의 언어를 이해하려 시도하게 된다.
“배우기 시작했어. 아빠의 언어“ (p. 267)
남훈 씨는 여정의 끝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가족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에 따라 변하게 되고, 가족 구성원들도 남훈씨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 관계의 각별함을 일깨워주는 남훈씨의 놀라운 여정은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동안 얼마나 더 사랑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에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비록 속도를 조금이라도 올리는 순간 차체가 덜덜 떨리고, 때론 브레이크도 말을 잘 듣지 않는 오래된 굴착기라 할지라도 그 방향만 정확하다면 말이다.
<플라멩코를 추는 남자>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소설이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때로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어 삶을 구속하고, 절망에 빠지게 만들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힘든 현실의 일렁임을 극복할 때 한층 더 성숙한 삶, 사랑이 충만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걸 우리는 남훈씨의 여정을 지켜보며 깨닫는다. 굴곡진 삶을 견뎌내야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묵묵히 지켜봐 주고 지지해 줄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조언 아닐까? 세월의 일렁임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즉,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완전한 조각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존재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한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동반자와 나누는 몇 마디 대화로 울적함이나 불안은 어느 순간 털어버릴 수 있고, 사랑스런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부정적 감정을 떨쳐낼 수 있다.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니, 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안을 얻는다.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상적인 가족상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형태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듯이 이상적인 가족은 획일화된 답지가 아닌 개개인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우리 각각은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우리 각각이 이루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도 완전하지 않지만 가족과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의 삶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더 나아진 삶"으로 이끈다.
#플라멩코추는남자, #허태연, #혼불문학상,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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