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지리교사로서 한국지리를 가르칠 때 중요하게 언급하는 도시 중 하나가 거제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산업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어서 한국지리 교과서와 수능에 주요 내용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70년대 이후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방향전환을 할 때, 중화학공업 입지로 인해 한적한 시골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산업도시로 변모한 경우가 생겨났다. 이때 발달한 산업이 제철,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등이 있는데, 경상남도 거제는 이 중에서 조선산업으로 인해 상전벽해를 경험한 도시이다. 조선산업이 발달한 도시로는 거제, 울산 등이 있고, 그곳들의 위치와 남동임해공업지역, 중화학공업 및 '장치산업'의 특성 정도만 알면 관련 문제를 푸는 데는 큰 지장은 없다.

* 우리나라의 공업지역. 출처 : 천재교육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 

  하지만 정말 이 정도만 알아도 괜찮을까? 우선 내가 조선산업을 수업시간에 거론할 정도로 조선산업의 발달 과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보았다. 대학 다닐때 학교에 조선해양공학과가 있었는데... 조선이면 조선이고 해양이면 해양이지 왜 조선해양이지? 해양플랜트인가 뭔가 뉴스에서 들어보긴 했는데... 그런데 배 만드는 데 엄청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텐데, 사람은 얼마나, 어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지? 우리나라가 조선산업이 잘나가긴 한다는데 진짜 기술력이 있긴 한가?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도체, 전자산업 같이 첨단산업이나, 4차산업혁명에 대비해야지 언제까지 조선산업 같은 옛날 국가주의 시대 재벌중심 산업에 투자해야 할까?... 그렇다. 수업시간에 조선산업을 거론하면서도 피상적인 지식만 알고 있었을 뿐, 이런 깊이있는 질문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는 부끄러운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뉴스에서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위기, 중국 조선산업이 급부상한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그래 우리나라 조선산업도 이제 끝이네, 중국한테 먹힐 산업 굳이 회생시킬 필요 없지 않을까?"라는, "선무당 사람잡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초창기부터 비교적 최근인 2010년경까지 호황을 누린 조선산업의 비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중공업이 호황인 도시는 1인당 GRDP가 엄청 높아서 유흥가가 북적인다고 하던데...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 말고 실제 그 산업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산업도시의 도시경관이 산업의 흥망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알게 되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실제 거제의 조선소에 취직해서 근무한 특이한 저자의 경력이 흥미를 끌었다. 저자는 잘나가던 산업도시 거제가 위기를 맞았던 격동의 시기 2010년대에 거제에서 5년간 일하다가 지금은 경남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조선산업의 도시 거제의 삶, 그리고 조선산업의 변화와 거제의 사회변화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은 내가 겉핥기 식으로 알고 또 가르쳤던 조선산업의 도시 거제의 민낯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제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제3자로서 피상적 이야기만 알고 있던 나에게, 저자는 거제의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영욕의 조선산업 발달사와 조선소 종사자들의 가족구조, 산업과 노동의 변화에 따른 '중공업 가족'의 영광과 위기, 전망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거제의 조선산업 발달이 단순히 70년대 국가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자연스럽게 뚝 떨어져서 갑자기 세계 1위가 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찾아 거제로 모여들었고, 남성중심 직장에서 일을 하고 기술을 습득하고 가족을 이루고 직장 내 관계를 이루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공업 가족'이라는 거제의 신화가 탄생하였다. 중공업 가족은 조선소에서 일하는 아빠의 월급으로 4인가족이 먹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중산층 핵가족 형태가 다수를 차지했던 것이다. 또 중공업 가족이란 호황을 누리는 산업의 '대기업' 노동자가 직장과 거제 시내에서 작업복을 입고 활보하며 경험하는 '가족같은' 모습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순탄하던 중공업 가족의 삶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고 조선산업의 사정이 달라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남성 중심 고용구조로 인해 거제의 딸들은 거제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젊은 기술자들은 거제에서 중공업 가족이 되기보다는 서울에서 연구기술 업무를 맡으면서 자기계발을 하는 삶을 더 원한다. 거제에서 오래 일해서 암묵지가 많은 현장 엔지니어와, 서울의 연구실에서 학습과 혁신을 추구하는 엔지니어 간의 갈등도 생겨난다. 해양플랜트 사업 이후 노동과정이 바뀌면서 이중노동시장의 민낯이 드러나고 위험의 외주화 등의 문제도 노출된다. 2010년대 이후 거제의 아파트 미분양이 많아지는 현상도 흥미로웠다. 

* 조선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환경변화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판단도 중요하지만, 로컬 차원에서 노동과 거제 사회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하겠다.

  이처럼 이 책에서 저자는 거제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 노동, 사회, 가족 등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조선산업과 거제의 위기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애정어린 대안을 제안하려 한다. 저자의 꼼꼼하고 깊이있는 관찰과 분석 및 대안 제시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책을 통해 조선산업의 도시 거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깊이있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지리교사의 장점이라면 변화하는 세상의 여러 모습을 수업시간에 다루면서, 세상은 넓고 멋지고 재밌는 장소가 많다는 점을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역으로 얘기하면, 내 지적 수준과 정보 습득 및 소화능력이 역동적인 세상의 변화를 다 받아들이기 버거울 때도 있다. 게다가 고등학교 지리 교과라면, 학생들이 진로희망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텐데...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을 예측을 하지는 못할망정, 피상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면 안될 것이다. 이 책과 같이 생생한 지역의 모습을 담은 양서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부지런히 이와 같은 책을 읽고 소화해서, 한국지리를 배운 학생이 앞으로 우리나라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