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놀이, 공부가 하나인 윤구병의 교육 이야기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는 공동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교육에 대한 글이다. 변산 공동체의 삶을 통해 교육에 대한 생각을 엿보는 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녀 교육 이야기, 학교를 포함한 사회 일반에 걸친 교육에 대한 메시지, 그리고 윤구병 선생이 생각하는 공동체 학교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무엇을 ‘할 줄 아는’ 아이로 기르는 것, 그래서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이것이 아이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을 미래로 연장시키려는 소망을 가진 부모들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그이는 조기교육, 영재교육은 소용없다고 한다. 그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산이나 들판에 나가 마음껏 스스로 뛰놀고, 구김살 없이 뒹구는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고 행복해할 수 있다면,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틀림없이 훌륭한 미래의 책임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쳤다.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살아 있는 ‘미라’로, ‘강시’로, ‘좀비’로 바뀌고 있는데도 아무도 이 아이들을 살릴 생각이 없다.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교육이란 별게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보살피는 일, 제 손발 놀리고 제 몸 놀려 먹고, 입고, 자는 나날의 삶을 알차게 꾸려가는 길을 열어주는 일, 사람 새끼는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이웃과 함께 서로 도와가면서 오순도순 살 수 있게 너른 마당을 마련하고 튼튼한 울타리를 둘러주는 일, 나아가 모든 목숨 지닌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삶을 잔치로 바꾸는 놀음을 거드는 것이 교육이 맡은 일이고, 교육자가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 온 세상 교육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힘을 기르는 일은 뒷전에 두고, 남의 몫을 가로채는 법, 남에게 기대 사는 법, 몸 놀리고 손발 놀려 살 길을 여는 게 아니라 잔머리 굴려서 불쏘시개감도 못 되는 돈만 산더미처럼 쌓아올리는 게 유일한 꿈이라고 여겨 주식시장, 증권시장 같은 도박판을 기웃거리면서 마지막에는 패가망신하는 노름꾼이 되는 법 …… 들만 가르치고 있다. 하루에 열 시간이 넘게 딱딱한 걸상에 궁둥이를 붙이고는 살아가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대학입시용 교과서만 달달 외우게 밤낮으로 몰아대고 있으니, 이게 무슨 학교 선생이 할 짓이고, 부모가 할 짓인가. 짐승들도 비록 남의 새끼일망정 이렇게 모진 학대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랑의 이름으로, 교육의 이름으로, 위에서는 대통령, 수상이라는 연놈들부터 아래로는 어중이떠중이 연놈들까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아이들을 집단으로 학대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집단 학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유대인 학살보다 더 참혹한 게 지금 온 세계의 교육 현실이다. 이 미치광이 놀음에 가장 앞서고 있는 땅이 ‘대한민국’이다. --- pp.5-6, 머리말 〈망할 놈의 세상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중에서
농부가 된 철학자 윤구병이 사유하고 실천한 삶의 정수를 묶다
농부가 된 철학자 윤구병. 그이는 평생 한결같은 마음으로 뭇 생명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다른 이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소박하지만 소중한 존재’로만 그이를 바라보았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도 많이 변하다 보니, 그이의 삶에서 ‘보이지 않았던 가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함께하는 삶’, ‘자연과 인간을 살리는 생명’, ‘일과 놀이, 공부가 하나되는 배움’이 그것이다. ‘오래되어 사라진 이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 다행히 그이의 몸과 마음 곳곳에 ‘오래되어 사라진 이것들’이 스며들어 있다. 그것을 이어보고 싶었다. 1970-2000년까지 그이의 생각을 담은 글을 하나하나 읽으며 세상 미물들에 대한 사랑과 그이들과 함께 살고자 한 그 애씀의 과정을 복원하여 남겨야 했다. 그래서 그이의 마음을 ‘공존’, ‘생명’, ‘교육’이라는 주제로 묶었다.
함께하는 삶을 일군 윤구병의 공동체 에세이 『흙을 밟으며 살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윤구병의 생태 에세이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일, 놀이, 공부가 하나인 윤구병의 교육 에세이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가 그것들이다. 이 세 권의 책은 ‘30년 묵은지’의 지혜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윤구병이 사유하고 실천한 삶의 정수를 묶은 에세이로써 그이가 쓴 글들 가운데 ‘지금, 여기에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소중한 가치’를 담은 글을 선별하여 묶은 책들이다.
윤구병! 그이는 창조하는 삶을 살았다. 모두가 꿈꾸었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못한 꿈을 현실에서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였고, 그 꿈을 오롯이 행동으로 옮겨 드디어는 변산 코뮨(공동체)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이는 없었던 세상을 새로이 만든 창조자이다. 그이의 생각, 말, 행동 그 자체가 철학이고 교훈인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의 단일한 세상이 아닌 다양한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윤구병 선생은 자신의 꿈을 현실에서 이루어내 변산공동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창조자’이다. 그리고 그는 고정된 세계를 벗어나 새롭고 다른 운영체계로 움직이는 세계를 제안한 ‘혁명가’이다. 끊임없는 갱신과 노력으로 점철된 윤구병 선생의 삶 역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 ‘창조적 삶’이다. 그이는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실천하여 만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속에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생각, 말, 행동 그 자체가 철학이고 교훈이다
윤구병 선생은 서양철학, 그 중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리스 자연철학을 공부했다. 대학교수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는데, . 교육이 없으면 사람도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과거 삶의 체험을 부모에게서 몸으로 물려받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것인데, 자신이 그런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개체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교육은 종(種)으로서 부모에게서 지식으로 생명이 이어지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그이가 생각하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나는 교육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목적, 인류가 이 땅에 때어난 때부터 인류가 없어질 때까지 변하지 않는 교육목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웃과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중에서도 함께 사이좋게 사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독수리, 범과 같은 맹수 종류와 달리 어울려서 잘 살지 않으면 못 사는 생명체거든요. 또 스스로 앞가림을 하는 힘은 혼자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길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 공동체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윤구병 선생은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스스로 제 앞가림할 수 있는 교육을 할 능력, 이웃과 사이좋게 살게 하는 방법을 가르칠 능력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15년의 대학 교수 생활은 불행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농사를 짓자’, 나부터 제 앞가림을 할 힘, 이웃과 함께 할 힘을 기르자고 마음먹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사람이 제 앞가림도 못하고, 이웃과 어울리지도 못하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없다고 봐요. 결국 공동체가 복원되지 않으면 인류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복원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낼 때라야만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구병 선생은 농사만 짓는 농사꾼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였다. 그이는 자기 자신도 먹고살기 바쁜 세상을 뒤집고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주곡농사’만으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위대한 상상’을 했다.
“인구의 50% 정도는 농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열악한 교육환경, 문화시설 때문에 못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 자급경제, 자율적인 문화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합니다. 나눔의 울타리가 커지고 전통양식과 현대적 기술이 접목된다면 그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앞으로 변산 공동체가 경제, 교육, 문화 생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대안적인 삶의 본보기는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구병 선생은 변산공동체가 사람과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넉넉한 살림을 함께 꾸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잖아 지역 농민들도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로 커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윤구병! 그이는 아무도 기획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고, 그것을 현재까지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