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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중단편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저 | 문학 2020-07-1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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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저/장성주 편역
황금가지 | 2020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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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에 얻어맞았다’라고 썼다. 

《종이 동물원》은 내게 그런 작품집이었다. 

그게 지난 1월에 있었던 일이다. 켄 리우 작가의 글은 나의 내면을 뒤바꿔놓았다.




한국판 오리지널 중단편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로 그의 글을 다시 만났다. 1월에 내가 봤던 그 신비한 동물이 표지에 떡하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조각가 츠치야 요시마사의 2010년 작 <기린 Qilin>이다.

전설 속 동물, 기린은 켄 리우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동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종이 동물원》이 갓 물 밖으로 나온 야생 동물 같았다면, 이젠 그 녀석이 아름답게 꾸며진 수족관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걸 내가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초월’이라는 주제로 느슨하게 엮인 12개의 작품은 어딘가 온순하고 길들여진 느낌이다. 《종이 동물원》에게 귀싸대기를 맞았으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낀 걸지도.



내가 생각하기에

과학 소설이 하는 일,

또는 적어도 내가 이야기 속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오히려 희망과 공포로 가득한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확대경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본문 9쪽,

저자 머리말 중에서.


여러 작품이 실려있는 중단편집이다 보니 독자마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다를 텐데, 그 감상을 비교보는 것도 이런 책을 읽는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카르타고의 장미』 ― 『뒤에 남은 사람들』 ―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로 이어지는 싱귤래리티 3부작은 순서대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유연하게 이어진다.



『카르타고의 장미』, 『뒤에 남은 사람들』을 읽는 동안 단편 『시뮬라크럼』이 생각났다. 《종이 동물원》에 실린 그 단편에는 피촬영자의 의식과 행동양식을 저장해서 홀로그램 형식으로 투사하는 기술이 나온다. 싱귤래리티 3부작에선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 세계로 업로드하는 기술이 등장한다. 그 결과물을 실재의 재현 또는 모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인공지능 인형을 만드는 공학자 엘레나가 나오는 『사랑의 알고리즘』이다. 엘레나는 총 4개의 인형을 만든다. 제작 순서대로 척척박사 로라™, 재치 만점 킴벌리™, 에이미™, 타라™다. 왜 중간부터 앞 수식어 없이 그냥 에이미나 타라로 이름 붙였을까? 엘레나는 사람같이 행동하는 정교한 인형을 만들면서 철학적 난관에 부딪힌다. 그것이 엘레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인조 피부 조금, 합성 고분자 겔 조금, 알맞은 수량의 모터와 영리한 프로그래밍 능력을 잔뜩 동원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술로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일.

본문 153쪽.



같은 맥락에서 『곁』도 좋았다. 먼 미국 땅에서 원격 접속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임종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로봇으로 간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이 로봇은 죄책감을 덜어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239쪽)" 『사랑의 알고리즘』에서 엘레나가 만든 인형들에도 목적이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며 인간의 생활상이 변해간다.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고,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작품집에는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지켜야 할 가치가 뭔지(212쪽)" 고민하는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한다. 유한한 생, 연약한 몸의 한계를 '초월'할 준비가 이들은 아직 되어있지 않다. “인간성에 대한 믿음.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한 믿음(223쪽).” 때문이다.


문명이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점점 더 정교해지는 거짓말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본문 236쪽.



역사학 교수 유발 노아 하라리는 국가, 기업, 돈, 법, 종교 등이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를 믿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십대 중국인 남자 장원차오의 이민 신청을 돕는 변호사 샐리 러스가 나오는 『달을 향하여』는 '이야기'라는 게 뭔지 질문한다. 켄 리우는 서문에서 "우리는 저마다 각자가 만든 장대한 판타지의 주인공(10쪽)"이며,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공감', '관용', '애국심'이나 '정직' 같은 가치를 배워간다고 한다. 한편으로 "국가는 역사라는 덫에 붙잡혀서는 안 되며, 개개인은 단지 경험의 총합에 머물러서는 안 됨(11쪽)"을 강조한다.


작품 중 변호사 샐리 러스는 어려서부터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변호사로서 지켜야 할 규칙과 장원차오가 지어낸 이야기 사이에서 갈등한다. 샐리가 지키려고 하는 규칙 또한 인간이 만든 이야기의 일종이다.



“우리는 그저 규칙대로 하려고 애쓰는 것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정해져 있지요.”

“나는 진실이 듣고 싶어요!”

장원차오는 껄껄 웃었다.

287쪽.


책에 실린 작품 중에서 《종이 동물원》에서 받았던 켄 리우의 느낌과 가장 닮아 있는 것은 『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지』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니 미국판 《종이 동물원》엔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바라보며 탐구하는 두 문화의 접촉. 삼국지의 명장이자 군신으로 칭송받는 관우를 똑 닮은 ‘로건’이 어째서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미주리 주로 오게 된 걸까?



원작을 옆에 두고 읽지 않아도, 문장이 착 달라붙는 느낌에 감탄하는 번역본이 있다. 개인적으로 《종이 동물원》, 《냉정과 열정 사이 Blu》, 《허삼관 매혈기》가 그랬다. 켄 리우의 작품들은 장성주 번역가님이 계속 맡아서 한국에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다. 최신 단편집 소식도 들려오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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