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 Solitary>은 1969년 9월 11일 저자인 조라 롬이 이집트 상공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하던 중 이집트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자신이 타고 있던 미라쥬기의 꼬리부분에 맞아 추락하는 과정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사일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비상탈출마저 되지않는 순간, 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조라 롬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며, 저자의 운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비상낙하산을 간신히 펼치고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안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쪽 팔이 말을 듣지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정보를 제거하고 착지를 해야했던 위기의 순간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극복해낸다.
이집트의 어느 마을에 착지를 한 후 적국의 마을에서 마을사람들로부터죽음을 가까스로 면한 조라 롬은 이집트군에 포로가 되어 3개월 간의 포로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분량은 조라 롬이 이집트에서 겪은 포로생활에 대한 회상이다. 이어지는 나머지 3분의 1만큼은 포로교환으로 다시 이스라엘로 귀국한 이후 저자가 겪게되는 새로운 생활의변화와 그 결과를 담고있다.
포로생활에 대한 저자의 기록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희귀한 경험이기도 하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저자는 3개월 간의 심문과정과 치료과정(제대로된 의학적 치료라고 할 수 없는)을 겪으며 스스로를 추스린다. 이 과정은 일반독자로서 상상하기 힘든 경험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만나는 다양한(적국의)사람들에 대한 면밀한 관찰도 놓지않고 있었다. 자신을 구타하던 거대한 수단인을 비롯하여, 외유와 협박을 하는 심문장교들, 그리고 고문을묵인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의사와 적대적인 혹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인간으로서의 박애정신을 갖고 일하는 간호사들의 모습 등, 적국에서도 다양한 인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기도하다.
우리가 전쟁 중에 적국의 포로가 되었을때, 우리가 상상하듯 적국의 심문과정과 고문과정은 가장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나의 예상을 뒤엎고 독방에 고립된 경험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전쟁포로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든 것은 신체적 고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 알고 있다. 고문도 끔직하지만 적어도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그리고 마침내 회복이 된다. 그러나 외로움, 굴욕, 완전한 불확실성, 외부 세계와의 끝없는 단절, 포로 생활이 끝날 날이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들은 사람의 핵심적인 부분을 서서히 파괴한다.”(195면)
특히 조라롬은 고문이나 심문의 과정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독방에서 감금됨으로써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과 근본적으로 나타나는 실존적인 두려움이라고 회상한다. 독방에 감금된 상황에서 저자는 부상으로인하여 움직임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시간 관념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자신에 대한 자각 그리고 자신이 어느 공간에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마비되면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에게도 어김없이 정신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면부족 상태를 조성하기 위해 밤늦게 시작하여 새벽 3-4시에 끝나는 심문과 협박, 생존 및 미래에 대한 절대적인 불확실성은 사람으로하여금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주요소가 되고 있다.
베트남전쟁이나 걸프전(미국-이라크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던 미군병사들에게서 스트레스장애 징후가 보고되어 관심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흔히 PTSD라고 불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끔찍한 사건이나 전쟁과 같은 상황을 겪은 이들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스트레스 증상을 의미하곤 한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극복하고 생존했던 강인한 정신으로도 저자는 이 PTSD증상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특히나 포로생활을 마치고 생환한 이후 다시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을 얻고, 나아가 미라쥬전투기의 조종석에 앉은 후 저자가 시시때때로 맞딱드리게되는 심리장애, 불안감 등의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집트의 독방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포로생활을 하던 중 그는 이스라엘로 돌아가 다시 비행을 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로 돌아온 직후부터 조라 롬은 새로운 불청객을 상대하고, 내면의 전쟁을 시작해야만 했다. 결국 생존한 자에게 생존자체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조라 롬이 밤에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누군가 자신을 끝도없이 쫒아오고, 자신은 얼굴없는 이 추격자들로부터 도망치는 상황, 다른 하나는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벽이 점점 자신을 향해 조여들어 공간이 줄어드는 압박감을 주는 꿈이었다.
“내 경우에는 이 세션을 통해서 내가 평생동안 지속되는 트라우마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219면)
“내 안에 있는 나를 힘들게 하는 억류에 대한 지식은 신체와 의식 속에 스며들어 있어서 매순간 되살아 났다.”(247면)
다시 전투기 대대의 중대장으로 공습임무에 투입되는 조라 롬은 트라우마와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자신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 영공에서 매일같이 삶과 죽음의 순간이 지나가는 도중에도 지상에서는 아무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독백하는 장면은 기억에 특히 남는다. 적기가 출현하고, 세 대의 미사일이 꼬리를 만들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 그리고 눈앞에서 동료의 비행기가 폭발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저자의 내면에서 만나게되는 무기력감과 공포심은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은 조라 롬과 같이 강인한 정신을 가진 이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인간이란 존재의 회복성, 탄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조라 롬은 이집트의 독방에서 얻게된 트라우마와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독방(비행기 조종석)을 택했다. 이것이 자신의 숙명이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으며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의 위대함으로서라기보다 상당히 섬세하고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더 주목해본다. 정신과 신체라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육체적인 상처는 다 아물지라도 한 번 입게된 정신의 상처는 역시 몸이 기억하고 있는 부분과 함께 그 치유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어둠은 더 의미심장한 어둠이다.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우울함이 여기 우리 삶의 기본 가정들을 뒤덮고 있다. 이 어둠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누군가가 불빛을 다시 켜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리라. 우리는 전쟁중인 것이다.”(306면)
이 책은 결국 최정예 조종사였던 이스라엘 군인이 자신이 회상한 것을 기록했다. 사방이 아랍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그만 이 나라는 언제나 전시체제이다. 군인들 특히 전투기 조종사들은 내일 자신이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는 운명에 있다. 적의 미사일은 베테랑이건 신참자이건 가리지않으며, 자신과 친한친구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가리지않고 삶을 위협한다.
다시 출격임무를 수행하기 전 가족을 방문하러 부모님의 현관에서 초인종을 눌렀을 때 두 살 반짜리 딸(네티)과 마주하고, 마당에서 보내는 둘만의 장면들, 딸의 얼굴을 기억해두려는 조라 롬의 모습에서 여느 아버지의 모습을 역시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의 독방에서 친지가 보내준 동화책 <곰돌이푸>를 읽으며 언젠가 이스라엘에 돌아가게 되면 딸에게 읽어주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그가 독방에서 생존하려는 희망을 유지하도록 해준 존재역시 가족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나는 전쟁의 진실 또한 배웠다. 내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처럼 조종사인 대니 엥겔이 내 승리의 날에 전사했다. (…) 한 손에는 임무의 완수가 있고, 또 한손에는 소중한 생명의 손실이 있다. 이것이 전쟁이라는 짐승의 본색이다.”(102면)
조라 롬에게 전쟁의 진실은 자신이 임무에서 살아남은 날 친구의 죽음이 상존함을 일깨워준다. 이 책에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주지만, 결국 진실을 바라보는 ‘제한적인’ 측면이 있다. 그가 ‘임무를 완수한 날’은 이집트에 있는 누군가가 소중한 생명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언급한 ‘소중한 생명의 손실’에는 그의 친구뿐만이 아니라 이집트, 나아가 적국의 인명에 대한 손실이 있었음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쟁을통해 수반되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와 인명손실 그리고 양측이 입게되는 상처의 기억과 집단무의식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의 상실 등은 ‘전쟁이라는 짐승’이 가져오는 또다른 진실일 것이다. 나아가 한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로부터의 회복이 그토록 힘겨운 과정이자 또하나의 전쟁이었음을 상기할 때, 국가공동체가 입은 집단적 상처와 기억은 그 치유가 결코 쉽지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군대와 전쟁의 한 단면이 드러난 이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특히 역자가 후기에서 ‘대한민국의 지정학적인 안보현실을 감안할 때 모든 국민 특히 군인과 학생들에게 필독서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언급하는대목을 읽을 때 더욱 불편해진다. 이 책은 분명히 ‘보안성’ 검토 도장이 무난히 찍힌 후 진중문고에 추가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한 영웅에 대한 책으로 보이기보다 전쟁의 진실을 떠올릴 때, 한 진영에서의 진실이 다른 진영에서 또다른 진실이 상존할 수 있음을 깨닫는데 더 좋은 기회였다고 믿는다.
내가 일과 관련하여 만나게 되는 유대인들이 보여주는, 겉으로 쾌활해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냉소적인 모습과 농담들은 이들이 보여주는 하나의 집단적인 정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 냉소적인 또는 신랄한 농담을 담은 진실들은 어쩌면 언제나 전시상황에서 그리고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아온 이들이 두려움을 내보내려는 노력이자 자신을 자신이 처한 현실과 거리를 두는 제스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만나본 이스라엘 회사의 직원들은 거의 대부분 젊은 시절 군생활을하며 낙하산을 타거나, 탱크를 몰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분명히 부모님이나 아들이 전사한 사람이 있었다. 이들에게 내가 발견하는 냉소적 또는 신랄한 농담과 같은 태도들은 어쩌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신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족이 전쟁임무 수행중 전사한 사람은 이들에게 어디에나 흔한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현재진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