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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대화란 무엇인가』 | 새소식 2021-10-1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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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봄 저/강혜정 역
에이지21 | 2021년 10월

 

신청 기간 : 10월 15일 까지

모집 인원 : 5명

발표 : 10월 18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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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규범이 강요당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 | 기본 카테고리 2021-10-0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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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저/김욱동 역
민음사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사회 규범이 강요당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을 담은 작품. '인간은 실존의 감옥에 사는 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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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 Ethan Frome

이디스 워튼 (Edith Wharton) 지음 | 김욱동 옮김 | [민음사]

 

사회 규범이 강요당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1년에 퓰리처상을 받게 된 순수의 시대는 작가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이다. 워튼의 또 다른 대표작 이선 프롬은 이보다 10년 전인 1911(당시 49)에 작가가 자신의 불행한 결혼을 염두에 두고 쓴 자전적인 소설이다. 사랑, 결혼, 불행 혹은 죽음은 소설 혹은 예술의 형태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재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삶의 본질을 반영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는 독특하게 액자소설의 구성 속에서 화자가 한 인물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이선 프롬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농부로 대학공부까지 조금 맛보았던 남자다. 병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이선의 어머니는 친척인 지나의 보살핌을 받았다. 이선은 지나의 보살핌에 고마워하면서도 그녀와 애정이 없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 날에야 신랑·신부의 얼굴을 보았다는 우리의 전통 결혼 문화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충돌이 생겨났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삼는 남편을 맞이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평생을 다정한 친구처럼 금슬 좋게 살아온 노부부의 사연도 간간이 접하지만 그만큼 드물다. 부부 사이에 애정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부부 사이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그 관계는 서로에게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이선 프롬은 바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던 작가의 아바타였다.

 

소설에서도 부조리한 결혼 생활이 배우자 사이의 갈등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결혼 제도는 사회 규범과 도덕적 인습, 구체화된 제도가 결합된 복합적인 공동체 유지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우자 사이의 갈등은 곧 개인과 사회의 대립 국면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 혹은 공동체가 개개인에게 요구하고 강요하는 규칙과 역할은 애초에 어긋난 관계로 고통 받고 괴로움을 겪는 이들을 옭아매는 문명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이선과 지나의 무기력한 결혼 생활에 어느 날 지나의 사촌 매티가 등장한다. 매티는 이선의 하루하루에 활력소를 주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이선의 마음을 느끼고 이선 역시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지만, 규범이 지배하는 현실의 질곡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 손발이 꽁꽁 묶였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143)

 

한 집안이 가장이자 병든 아내를 돌보아야 하는 남편, 게다가 자신이 관리해야 겨우 돌아가는 농장의 주인 이선 프롬. 그는 이 모든 역할을 하루아침에 벗어 던지고 사랑을 택할 수는 없었다. 인용된 문장은 이선의 절망과 좌절감이 집약된 표현일 테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인습과 제도가 기대하는 역할을 집어던질 때 사회 혹은 공동체로부터 날아올 비난의 화살을 감당하는 것은 고스란히 이탈자의 몫이 된다. 사회의 비난, 나아가 구성원으로서의 제약과 제재는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무섭게 짓누르기 마련이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를 벗어난다는 것은 추방행위와도 다를 바 없다. 추방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살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작가 이디스 워튼은 인습과 제도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사랑과 자유를 추구하며 벗어날 수 없었던 고뇌와 고통을 이선 프롬의 행동과 입을 통해 표출했을 것이다.

 

지나가 매티를 내보내기로 결정했을 때, 이선과 매티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도덕과 윤리의 장벽으로 내몰린 셈이다. 부인 지나는 사회적 규범을 무기삼아 두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고 압박한 것이다. 사회 혹은 공동체가 강요하는 윤리의 테두리에 내몰리고 압박을 받는 구성원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다시 현실의 질서 속으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인습의 테두리를 벗어던질 것인가. 혹은 이러한 국면이 지나친 고뇌와 갈등 끝에 자기 파괴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선과 매티가 어두운 밤에 함께 썰매를 타고 동반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을 함께 한 것 역시 어느 쪽으로도 결정하지 못한 이들의 몸부림일 것이다. 역자의 표현처럼 인간은 작품 속 주인공처럼 실존의 감옥에 사는 수인인 셈이다. 이는 이선과 매티가 놓인 상황을 정확히 요약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 고뇌가 여실히 반영된 이선 프롬은 길지는 않지만 묵직한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 사회 규범과 제도, 인습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역할과 기대와의 불화 혹은 대립에 관한 진실을 독자가 인식하게 한다. 하지만 독자가 문학 작품을 통해 보편적인 진실을 접할 경우, 독자는 보다 현명해지는 것일까? 나는 가끔 이점이 궁금했다. 공동체의 규칙을 파악하고 준수하면서도 개인은 자유와 욕망을 추구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자신의 몸을 기차에 던지지 않고 그녀의 남편이 안나를 비난하지 않고 수월하게 이혼을 해주었더라면, 안나는 사랑과 아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을까. 소설 속의 선택은 현실 속의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보여줄 뿐이다.

 

워튼의 시대와 나의 시대 사이에 100여년의 격차가 있지만, 그의 작품이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개개인의 삶 속에서 드러난 문제에 정답은 없다. 답은 각자가 내리는 것일 테니. 그러면 고전문학은 우리의 삶에 과연 어떤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각자의 해답 찾기 과정에서 여러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독자는 문학이 제시하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국면을 검토하고 각자의 진실 찾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문학은 독자 나름의 해답 찾기 혹은 진실 찾기 과정에서 멍석 까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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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해준 독서 | 기본 카테고리 2021-10-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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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홍범도

송은일 저
바틀비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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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을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준 소설. 우리는 누구였는가, 그리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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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범도

송은일 지음 | [바틀비]

 

우리는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해준 독서

 

저 산 아래에는 나의 목숨을 노리는 수많은 적이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어떻게 싸워야할 것인가?’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날아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유해가 봉인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를 잃고 타국의 숲 속에서 싸워야 했을 그의 고뇌와 결의를 막연히 상상해보았다. 그가 아내와 큰 아들을 적으로부터 구하지 못한 단장의 슬픔을 삼키고 국경을 넘은지 113년 만에 귀환하는 장면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제작년의 3·1절 기념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기로 했다는 대통령의 발표를 들었을 때만해도, 나는 장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소설가 송은일의 나는 홍범도를 읽고서야 장군의 업적만이 아니라 역사 속의 개인으로서 그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소년 홍범도는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 홍범도는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대와 일본에 부역하는 상관의 명을 거부할 줄 알았던 까닭이다. 바람에 휘지 않으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그는 부당하게 참수형을 받았다. 하지만 의식 있는 다른 인물의 도움으로 청년 홍범도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는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야할지 분명히 깨닫고 행동에 옮긴 인물이었다.

 

홍범도의 연보를 보면서 그가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십 수 년 전에 이미 국내에 들어온 일본군과 대적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여러 계층에서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기득권자들과 엘리트 계층은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했던 이들도 생겨났다. 오히려 더 이상 기댈 데 없는 사람들,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싸웠다. 특히 포수가 많았던 함경도에서의 저항이 거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봉오동을 품은 산 속에서 나날이 강해지고 거대해지던 적군을 보고 홍범도 장군은 수없이 회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기어코 시작하고 이어나간 사람은 위태로운 나라와 가족의 운명 속에서도 떳떳한 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전우들의 신뢰와 결의로 끝끝내 이긴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 테다.

 

소설을 읽으며 홍범도와 나의 시공간에 가로 놓인 무한히 많은 평행우주를 상상해보았다. 그의 결단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나라와 수많은 이들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기에 그만큼 더 고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으는 홍범도라는 별명을 얻은 무적의 장군이었지만, 그 역시 거대한 세계사의 물결과 국제 정치의 역학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무장해제 요구에 불응하여 많은 동지들이 전사하고 러시아군에 강제 편입되었던 자유시 참변을 비롯하여,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수송열차를 타야 했을 장군과 고려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홍범도는 머나먼 타지에서 고국의 해방을 눈앞에 두고 서거했다. 만약 그의 부대가 무장해제 당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면 해방을 맞지 않았을까? 질 수밖에 없었던 싸움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운명과 역할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고뇌했을까.

 

지난여름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 소식을 접하고 소설을 읽으며 새삼 우리 근대사에 대한 무지를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패배의식과도 같은 잔재를 내 안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작가의 말을 통해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같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용기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작가의 고백은 현재의 의식에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 역사에 대해 앞으로 더욱 알아가자고 격려하는 말로 들렸다. 의연하게 싸웠던 조상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절실히 잡아야할 호시기는 어쩌면 그릇된 역사관의 영향을 받은 패배의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호시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던 셈이다. 우리 후손에게는 나라를 침탈한 적들과 떳떳하고 용감하게 싸운 선조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총을 들고 싸운 이들을 도왔던 이름 없는 사람들 또한 기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군은 의병들을 도왔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 부분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일군에 대항하여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연합군은 청산리 일대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인 5천 여 명을 학살했다. 이 사건은 이후에 벌어질 일본군의 대량학살과 비인간적인 만행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의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희생당한 양민들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무기력하게 나라를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해방을 2년 남기고 서거했던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까지 장군의 묘역을 지켜온 고려인들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세대를 이어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들이다. 지난여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서거 이후 유해 발굴 작업 시까지 정성을 다해 묘역을 관리해왔던 고려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갈대가 우거진 척박한 타지에서 땅을 일구고 벼농사를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자랑스러운 동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내에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묘역을 잘 관리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려인들에 대한 역사도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역사엔 고난과 애환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간직해온 자랑스러운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과 독서를 계기로 그와 의병들의 업적뿐만 아니라 이들을 도왔던 많은 양민들의 희생,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온 고려인들을 생각해보았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모아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은 후손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테다. 우리의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되돌아보고, 올바른 길을 한 발씩 내딛는 일이 오늘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이는 우리는 누구였고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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