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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 기본 카테고리 2020-09-0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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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저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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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거를 이어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더 지체하지 말고 한 가지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난날들을 보내면서 하지 못했던 일들도 좋고, 취미와 소질이 있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도 좋을 것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만이라도 계속해 살려간다면, 늦게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보다 더 큰 행복과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돈과 경제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관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후진사회에서는 경제 문제 해결이 무엇보다도 선결조건이다. 그 빈곤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주의 문제는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다고 해도 돈과 경제는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이며 과정일 뿐이다.

 

역사가들은 '로마가 왜 무너졌는가'라고 물었다. 일을 적게 하거나 안 하고, 부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빈곤이 로마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은 포기하고 주어진 유산으로 사는 젊은이들이 성공하거나 행복해지는 예는 없다.

 

 

의사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슈바이처의 노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되었다. 자신도 특별한 건강을 타고났기에 가능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의사 자격을 얻은 후에는 열대의학에 관한 분야까지 추가로 공부해야 했다. "몇해 동안 자신을 잊고 강의와 의학 공부에 열중했고, 그 모든 일을 끝냈을 때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또 한 가지 뒤따르는 문제는 경제적 후원이었다. 그가 아프리카로 간다고 해서 재정적 후원을 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사재를 정리가고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뷘과 같이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프리카에 정착한 그는 무로부터 유를 창출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자기 손과 아이디어로 진행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학문 연구와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도 시간을 할애했다. 오르간이나 피아노를 갖고 올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널빤지에 오르간 건반을 그려놓고 한두 시간씩은 연주 연습에 시간을 바친곤 했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그런 한계가 없다. 노력만 한다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만일 성장이 정지되는 75세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늙기 시작하는 것은 75세부터라도 보아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80세가 되면 노년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 나이가 되면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인생이 정착되거나 평가의 대상이 된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40대라고 해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하게 된다. 차라리 60대가 되어서도 진지하게 공부하며 일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과 도전을 포기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

 

80쯤 되면 모든 사람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스스로 나는 행복했다고 인정하며, 주변 사람들이 존경스러운 일생을 살았다고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론, 스스로 쓸모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부끄러움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 사회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는 자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과거를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50부터는 80이 되었을 때 나는 적어도 이러한 삶의 조각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준비와 계획과 신념과 꾸준한 용기를 갖고, 2의 마라톤을 달리는 각오로 재출발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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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 | 기본 카테고리 2020-09-0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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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행복의 기원

서은국 저
21세기북스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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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방글라데시가 매우 행복한 국가라는 언론 보도는 학계의 결론과 다르다. 너무나 똑똑한 현대인들의 실수는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삶을 바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행복의 본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 이 둘의 공통된 원천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는데 진통제가 효력 있다는 연구도 있고, 따스한 스프를 먹으면 덜 외로워진다는 논문도 있다.

 

 

종의 각 개체는 유전적 변이 등에 의해 조금씩 다른 모양과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 60억 인구의 생김새와 성격이 서로 다르듯, 이런 특성 중 어떤 것은 특정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더 적합하고, 어떤 것은 불리하다. 후세에 대물림(유전)되는 개인 간의 '매우 사소한 모든 형태의 차이'가 결국 진화의 긴 과정에서 증폭되어 생존 여부를 가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섬의 씨앗이 모두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다고 하자. 이 섬에서 태어나는 참새는 튼튼한 부리를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 이 섬에서는 큰 부리 참새들이 많이 살아남게 되고, 그들이 후손 중에는 '큰 부리 유전자'를 가진 녀석들이 점덤 많아진다. 이 과정이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지속되면 이 섬은 결국 큰 부리 새들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들을 관찰하며 얻은 영감이다.

 

 

그러면 개는 왜 그토록 새우깡을 먹으려고 했을까? 새우깡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먹을 때 개의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 혹은 즐거움 때문이다. 개는 이 쾌감을 다시 느끼기 위해 새우깡을 계속 원하게 된 것이고, 그 과정의 누적이 서핑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사실 나는 개도 서핑도 관심 없다. 하지만 이 예시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본질적 속성을 아주 쉽게 설명한다. 한마디로 행복의 본질은 개에게 서피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서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점이다. 서핑과 생존. 차원이 다른 두 목표지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이 필요하다. 개 주인이 사용한 수단은 새우깡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렬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라, 개가 새우깡을 통해 얻는 쾌감을 인간도 최대한 자주, 많이 느끼기 위해 고기와 이성에 몰두한 것이다.

 

"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 나의 간결하고도 건조한 답은 "생존, 그리고 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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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노자 이야기 | 한줄평 2020-09-0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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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통해서 노자 읽기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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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이야기 | 기본 카테고리 2020-09-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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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자 이야기

장일순,이아무개 공저
삼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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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왜 살다가 곤혹스런 일을 당하면 산으로 들어가시지 않던가? 산에 들어가 임재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깊이 묵상하고 자기를 비우는 일을 계속하시거든.

 

예수는 결국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지우는 일에 성공한 사람이었지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를 최후 순간까지 실천한 사람 아닙니까? 그건 철저한 자기 부정 또는 자기 포기지만 그보다 더 완벽한 자기 긍정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특히 불가의 禪防에서 흔히 있는 일인데, 절실한 선생이기 때문에 제자에게 주먹을 후려치거든, 그러면 또 깨달음의 순간 제자가 선생을 후려친단 말씀이여. 그래도 선생은 깨달은 제가가 그 엄청난 근원에 도달한 것을 보고 희열에 넘치지 않는가? 두들겨 맞으면서도 말이야. 바로 그게 중요한 거라.

 

그럼 그것이 자연의 란 말이지.

 

하긴 사철이 운행하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봄은 봄이 할 일을 열심히 하지요. 그래서 싹이 나고 움이 돋고 꽃이 피고 하다보면 어느새 여름이거든요. 여름은 여름의 일을 한 다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어느새 가을이 와 있지요. 어느 철도 자기 공을 내세워 그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단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공을 다투고, 나아가 자기의 공이 아닌 것까지 차지하려고 하니, 얼마나 자연의 와 거리가 먼 모습입니까?

 

 

사람이 자기가 만든 것에 노예가 돼서는 안 되지. 그러니까 일체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자는 건데 그것은 여기서 노자가 얘기하는 바, 와 합일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 인간이 스스로 설정해 놓은 질서 속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 그래서 옛날에 석가라든가 그런 분들이 제자들에게 자기를 넘어서라고, 자기를 깨뜨리라고, 그러시잖았는가?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거기에 묶여 돌아가지 말라는 거야.

 

엊그제 한 후배가 와서 저에게, 공동체 운동을 좀 해야겠는데 분명하지 않다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공동체 운동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고 그럼 너에게 분명한 것은 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한참 생각한 끝에, 하느님을 잘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그러더군요. 전도사거든요. 그래서, 그럼 우선 너에게 분명한 것부터 실천하라고, 그러다 보면 그게 공동체 운동으로 될 수도 있고 사회 변혁 운동으로 될 수도 있는 게 아니겠나요, 그렇게 대답해 준 일이 있었지요. 물론 그것과 이것이 별개의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은 자기에게 분명한 것부터 시작해야지, 잘 모르겠는 것을 잡고 뭘 해보려고 하니까 억지도 부리게 되고 술수도 부리게 되고 그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노자가 말하는 무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무지가 아니거든. 죄다 겪고 난 뒤에 그것들을 넘어서는 무지란 말이여. 사실이지 사람들이 너 지금 뭐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게 별로 없고 무엇을 희망하느냐고 물으면 그것도 없고…… 그냥 사는 게 하루하루 즐거울 뿐이지. 그냥 즐기는 거라. 고요하여 아무 의도나 욕심이 발동하지 않으면 천하가 스스로 바르게 되는 거라.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결국은 세상사 아니겠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 통신사로 다려농 사명대사에게 선조가 영의정을 제수하려고 했을 때, 그때 사명당의 대답이, 소승은 그 자리를 받을 수 없다고 말이지, 소승은 솔바람 부는 산속에서 칡덩굴 사이로 달빛이 비추는 그 속에서 뭐냐 하면 좌선이라도 하고 있는 게 맞지 저에게는 그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고사하고 떠나거든. 그게 그러니까 뭐냐 하면, 선승이, 를 닦는 사람이 자기 주변에서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적엔 말이지 스스럼없이 떨치고 일어나서 그들을 도와주다가 그 일이 다 끝나면 공적을 다투거나 세상이 주는 명예와 부를 누리려 하지 않고 다시 제 자리로 초연하게 돌아가는 거라.

 

야나기다 세이잔이 쓴 달마를 읽자니까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사물에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도 없으며 거스름과 순응함도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물에 맡기지 않고 자신에게 맡기기 때문에, 취함과 버림이 있으며 거스름과 순응함이 있다. 만약 마음을 활짝 열고 사물에 맡겨 최후로 천하를 잊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사물에 맡겨 시간에 따르는 것이다. 사물에 맡겨 시간에 따르는 것이 易行이며 저항하여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은 難行이다. 사물이 오면 그에 맡겨 거스리지 말며 떠나가면 떠나가는 대로 좇지 말며 무엇을 말하였든지 간에 지나간 것은 후회하지 말며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염려하지 말라. 이를 두고 을 행한다고 한다."

 

 

전에 형무소에서 보니까 사형수들이 있어. 대개 사형수들이 죽음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혈혈단신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마련이지. 그렇게 됐을 적에 뭐냐 하면 형무소에서 주는 밥을 사분지 일쯤 남겨가지고 창가에 새들 먹으라고 놔주기도 하고 또 마루 구석에 쥐를 위해서 놔주기도 하는데 새들이 와서 사형수 어깨에 앉기도 하고 머리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 쥐는 사형수 손바닥에 안기기도 하고 그러더라구. 그러니까 세상에 대한 미련도 없고 俗氣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사형수들한테는 말이지 그런 미물까지도 다 형제요 벗이 되는 거라.

 

경남 어느 암자엔가 독사하고 한 방에서 살아가는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빨을 뽑거나 한 것도 아닌 완전한 독사인데 한 방에서 살고 있답니다. 낯선 손님이 들어오면 한 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잔뜩 경계하다가 스님이 손님한테 잘 얘기해서 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풀어지면 뱀도 경계심을 늦추고 부드러워진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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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임대소득자가 되어야 하나? | 기본 카테고리 2020-09-0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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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동산의 미래

김장섭 저
트러스트북스 | 2016년 06월

 다시 말해 1958년부터 매년 100만 명씩 태어났던 사람들이 앞으로 30년간 꾸준히 은퇴한다는 얘기이고, 30년을 함치면 총 3000만 명이 근로소득 외의 기타소득으로 70살 이후를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2주 만에 2억 이상을 날린 사람도 있는데 그깟 몇 십만 원이 대수일까요? '총각네 야채가게'로 유명한 이영석 대표도 2년 동안 트럭 행상을 따라다니면서 월급 한 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서울과 1기 신도시 정도만 임대소득의 입지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통일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오늘날 세계화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부자가 되었고 중산층은 제조업의 공동화와 자영업 창업실패 등으로 인해 그 수가 엄청나게 줄었습닏.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의 대부분 가계의 자산인 부동산의 몰락으로 가처분소득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1990년대 일본이 딱 이랬습니다. 가계가 저축하고 기업도 저축했습니다. 은행이 돈 굴릴 데가 없으니 일본의 채권과 주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은행은 보수적이어서 주식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자기나라 국채를 사기 시작했습니다. 국채를 은행이 대량 매입하니 국채의 수익률이 떨어졌습니다. 10년 국채수익률이 무려 0.2%까지 떨어졌는데도 계속 국채를 매입했습니다. 1990년대 일본과 2016년 한국이 비슷한 상황입니다. 최근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국채를 계속 매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채금리는 더 떨어질 테고 KDI의 예상처럼 10년 후에는 1%가 될 것이며 일본처럼 0에 수렴할 수도 있습닏. 그러니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이자율도 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도 돈을 저축하고 가계도 저축하고 은행도 국채를 사서 저축하고 심지어 중국인도 와서 국채를 삽니다. 한 마디로 투자흔 아무도 하지 않으면서 모두 저축만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자가 오르겠습니까? 그러니 대출 받을 때 고정금리로 갈아타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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