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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조남주] 이름은 예의이자 최소한의 책임 | Memento 2021-08-1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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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그녀 이름은

조남주 저
다산책방 | 201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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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책임지고, 미래를 대비하는 행위다.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야만 '그녀 이름이' 역사에 기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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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여러 대답이 있지만, E.H.카 가 말한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가장 유명하다. 과거와 현재, 대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모습이 달라진다. 매우 좁게 해석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역사학이나 고고학에 가까워진다. 반면 그 범위를 매우 넓게 정할수록 대체역사나 픽션에 해당한다. ‘역사라는 외피를 쓴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 스펙트럼 안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가끔은 이를 벗어나는 얘기들이 생긴다. 분명히 허구지만, 사실에 근거하기도 한다. 사실에 근거했지만 엄연히 창작물인 경우도 있다. <그녀 이름은>은 여기에 해당한다.

역사는 전통적으로 승자의 기록이다. 그리고 남성(His-story)의 기록이다. 역사에서 여성의 기록은 찾기 힘들며 이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마찬가지다. 아주 예외적인 기록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남성들의 세상에서 남성들을 지배했던 여성(여왕)이거나, 아주 악독한 마녀로 그려지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대부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는 고려대상 조차 되지 못했다. 여성만이 아니라고 항변 할 수 있다. 평범한 남성, 장애인, 성소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성이 인류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턱없이 적은 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82년생 김지영>의 저자가 모아낸 <그녀 이름은> 의미가 있다. 역사에서 호명되지 못한 이름없는 여성들을 불러낸다. 그녀로 하여금 스스로의 이야기를 당당히 전하게 한다. (비록 진명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경험은 당당하게 기록으로 남는다. 여기에 우리가 있다고. 유별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여성의 경험, 기억, 이름을 추가하는 게 눈치 없는 짓이고, 괜히 분란을 만든다고 책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여성이 불행한 세상은 남성도 불행하다. 인류의 절반을 불행하게 하면서 인류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일이 얼마나 허황된 노력이 될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저자는 자신의 얼굴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82년생 김지영>덕에 유명세를 얻었고, 그만큼 논란의 인물이 되었다. 모든 여성을 대변하지 못하고 중산층의 여성들만 부각시켰다는 질타에서부터 그저 메갈이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들어야 했을테다. 그렇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말한다. 안 해야 하는 말을 안 하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p.26)”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그녀 이름은>이다. 우리가 단순히 놓쳐버리고 있는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여동생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재현했다. 김지영 외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냈다.

역사는 과거를 기록함으써 현재를 책임 지고 미래를 대비한다. 그 옛날 선조들은 그래서 실록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누구든 책임지는 어른이 되(p.259)”고 싶다면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우리는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대는 신뢰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자주 쓰여 이제는 식상한 시. 김춘수의 꽃은 말한다.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이 될 수 있다고. 그것이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고,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존재에 대한 예의이자, 각자의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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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랬어, 우리 때는 더 했어, 라는 말을 하는 메인작가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안 해야 하는 말을 안 하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 삼킨 말, 다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p.26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과 열정을 대신할 기술과 제품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p.50

눈치 없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언니 말이 맞다. 눈치가 없다는 것은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의미부여를 해야 할까. 잘못한 건 사돈어른들이지 형부는 아니잖아. 형부는 그저 어느 한 부분에서 생각이 짧을 뿐인데 싶다가, 사람이 자기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되도록 생각이 짧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남자는 커도 어린애라거나, 평생 철이 안 든다거나 하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나도 그런 말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될까. 낯선 어른들이 서서히 내 삶에 끼어들어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철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면서 살게 될까. 아닐 것이다. 드레스에 대해 부드럽게 돌려 말한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남자친구였다고 믿는다. 그는 눈치를 보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p.88

오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너무 힘드네.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p.136)는 생각이 들어. 생계, 대출, 이자, 육아, 그런 것들.” p.137

언젠가 딸이 회식했다고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서는 엄마 미안해, 하면서 펑펑 우는데 마음이 참 안 좋았어. 그게 왜 걔가 미안할 일이야. 걔는 내가 가르친 대로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근데 진명 아빠, 나 사실 좀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그래. 울 아버지 딸, 당신 아내, 애들 엄마, 그리고 다시 수빈이 할머니가 됐어.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 p.190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단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태도와 가치관에 따라 얼굴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는 내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기만 하지 않는다. 내 삶과 태도와 가(p.258)치관이 주변의 사람들을, 조직을, 더 넓게는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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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미예] 신선한 상상력, 다소 뻔한 느낌 | Memento 2021-08-1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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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달러구트 꿈 백화점 : 잠들어야만 입장 가능합니다

이미예 저
북닻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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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대한 설정은 너무나도 신선하지만, 전하는 얘기는 너무 뻔한 느낌이다. 아직 그 얘기가 끝이 아니기에 속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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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특이한 존재다. 머리 속에서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이 환상의 세계는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 가설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감정을 조절하고 고통을 완화시켜준다고 한다. 증명되지 않았지만 꿈에 대한 많은 증언들이 존재한다.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로또 번호!), 위대한 발견과 발명(케쿨러의 꿈과 벤전 고리) 을 계시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가설들과 확실하지 않은 얘기들이 넘쳐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꿈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가 뇌에 대해서 잘 모르듯, 뇌의 작용에 따른 꿈 역시 많은 부분이 숨겨져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이 미지의 영역을 신선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우리가 꿈꾸는 이유는 꿈 백화점에서 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비용은? 꿈을 꾸고 난 뒤의 감정으로 지불한다. 다만, 깨어나서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마치 우리가 꿈을 꾼 다음날 꿈을 기억하지 못하듯, 백화점에서 꿈을 구매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 많은 꿈 제작자와 판매자들이 있고, 그 중에서 가장 전통있는 곳이 바로 달러구트 백화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 백화점에 갓 취직한 신입 판매원이다.

신입 판매원이 백화점과 동료들을 알아가고, 꿈을 판매하는 과정을 배워가고, 꿈 제작자들과 소통한다. 과정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얘기를 알아간다. 그 과정에서 뻔한 희망을 얘기한다. 소재를 구상해낸 상상력은 너무나도 신선했지만, 그에 비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다소 뻔하지 않나 싶다. 희망을 얘기하지만, 많은 얘기를 하려다가 피상적으로 반복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밉지는 않다. 다행히도(?) 2권이 있고, 달러구트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앞으로를 더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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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요?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 맛이죠.” p.134

내가 생각하는 대단한 미래는 여기에 없단다. 즐거운 현재, 오늘 밤의 꿈들이 있을 뿐이지.” p.143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p.169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올해의 제가 바로 그랬죠.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 번, 만 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저는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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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한스 라트] 한 명의 의인 | Memento 2021-08-1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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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

한스 라트 저/박종대 역
열린책들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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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사라진 세상은 악마가 차지했다. 소돔과 고모라는 현실에 임했다. 우리에게 남은 한 명의 의인은 악마와 계약을 맺을까? 영혼을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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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의 후속작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전작이 심리치료사 야콥 야코비 앞에 나타난 신과의 상담이라면, 이번에는 악마가 나타나 계약을 맺자고 조른다. 야콥 야코비의 영혼 매매 계약이다. 영혼을 판다면 인간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한다. 신이 왔으니, 이번에는 악마의 방문. 그저 그런 속편이라 예상한다면 큰 실수다. 한스 라트는 본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속설을 확실하게 부숴준다.

야콥 야코비는 철저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눈 앞에서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고, 악마의 위력을 체감하더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그 어떤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지킨다. 영혼을 판다고해서 그 어떤 제약이 생기지 않더라도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고자 애쓴다. 그렇다고 딱히 신을 믿는 건 아니다. 어렴풋이 신과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끝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한다. 주변 사람들이 욕망에 무너지고, 위기에 처해도 꿋꿋하게 버텨낸다. 물론 신의 도움이 있지만.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는 얼마나 힘겨운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스스로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끊임없이 번뇌하고 고민해야 한다. 신이 사라진 자리에 자신을 세우지 못하면 그 순간 인간은 무너진다. 악마의 유혹은 그 순간 우리에게 다가온다. 악마는 간교하다. 치밀하다. 때로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방심하는 순간 영혼을 잃고 추락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일은 그 어떤 이익을 주지도 않는다. 영혼을 판단고해서 당장에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수많은 이익이 생긴다.

신의 공백은 악마가 차지했다. 지옥은 더 이상 지하에 있지 않다. 지옥의 불구덩이는 현실에 임한다. 스스로의 영혼을 지키지 못한 자들로 인해 지옥은 현실에서 불야성을 이룬다. 모두가 행복하다. 다만, 고통받는 사람은 스스로의 영혼을 지킨 사람 뿐이다.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다. 영혼을 지킨 의인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과연 야콥은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지켜내는지 궁금하다면 당장 책을 집어들어라. 그리고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를 통해 한 명의 의인이 어떻게 세상을 구할 수 있는지를 함께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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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화살을 쏘려면 먼저 화살촉에 꿀부터 바르라는 말이 있죠다카하시가 말한다. “, 멋진 말이네요.” 내가 즉시 화제를 바꾼다. “공자 말씀인가요?” “아뇨, 마라케시의 한 벨리 댄서한테서 들은 얘기입니다.” p.131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말라고.” “훌륭한 말이네요.” 내가 말한다. “이건 설마 공자님 말씀이겠죠?” 다카하시는 고개를 흔든다. “아뇨. 엘비스 프레슬리의 말입니다.” p.137

양봉업자라고 벌침에 면역이 되는 건 아니듯 심리학자도 노이로제에 면역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p.138

도미누스 보비스쿰 Dominus Vobiscum. 미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경구인데, 보잘것없는 내 라틴어 실력과 아득한 종교수업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이 말은 충분히 번역할 수 있다. 주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시니. p.207

인간은 모두 똑같아요. 사랑, 증오, 질투, 복수, 탐욕, 허영, 향락, 이런 문제들 앞에서는 교황도 다른 평범한 인간들과 차이가 없어요. 그저 약한 존재죠. 그래서 하늘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기도하려고 두 손을 모은 동안에만 죄를 지을 수 없을 거라고. 나는 거기다 이렇게 덧붙이고 싶어요. 하지만 어쩌랴, 인간은 점점 기도를 하지 않는걸!” p.298

마음속에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절대 완전히 나쁠 수는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잠시 후 덧붙인다. “설사 그가 악마라고 하더라도.”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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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재팬-브래드 글로서먼] 피크 재팬에서 피크 코리아를 보다 | Memento 2021-08-1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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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

브래드 글로서먼 저/김성훈 역
김영사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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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의 미래다. 그들이 가진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일본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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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웃나라일본은 우리의 미래다. ‘일본에서 일어난 일은 10년 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배틀로얄에서 그려진 왕따와 따돌림 이야기가 그렇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발생할거라고 충분히 예견 가능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문제가 심각해진 지금은 강력한 처벌만을 외치고 있다. 강력한 처벌만으로 해결된 문제였다면 먼저 겪은 일본에서 왕따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 테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그 결과 자국 내 문화 작품으로 표출되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본의 모습에 따라 근대화를 이루었고, 그 뒤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피크 재팬과 마찬가지로 피크 코리아역시 머지않은 미래가 될지 모른다.

<피크 재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저자는 한국의 가장 큰 실패는 일본의 실패를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p.15)”한다고.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히 일본의 현재만을 나타내지 않고, 우리의 미래까지 보여줄 수 있다. 일본을 이해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이 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 정점에서 내려오는 것이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본이 정점에서 내려온다고 해서 향후 한국의 대전략에서 일본은 배제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p.575)” 좋으나 싫으나 일본과는 이웃으로 살아야 한다. 그들이 가진 힘과 규모는 여전히 강하다. 역자 역시 강조한다. 당장 인구만 해도 프랑스와 영국을 합친 규모이며, 아시아식 근대화의 원형인 셈인데, 이를 토대로 수많은 변형된아시아식 근대화가 이뤄져 왔(p.580)”기에 일본의 변화는 살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일본의 위상변화는 우리의 삶에 직결된다. 이를 놓쳤을 때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이미 충분히 겪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했고,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식민지 경영을 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패전 후 위기 속에서 한국전쟁을 통해 기사회생했고, 1980년대의 경제 부흥을 통해 강대국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강대국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이 일본의 정점이라고 본다. 현재까지 일본은 메이지유신 영향력 아래 있다. 지금의 일본 극우세력은 과거의 가치관으로부터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망을 찾(p.454)”고 있으며, 그 과거의 가치관이 바로 메이지 유신이다. “아베 정부 시기는 일종의 막간에 해당하며, 국위를 선양하고 아시아 지역과 전 세계 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확보하려는 전통적인 강대국주의자가 마지막으로 애를 쓰는 순간(p.538)”이라 평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근대화 성공비결을 지방 분권으로 인한 다양성의 힘으로 생각한다. 다른 아시아 국가는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체제였다. 왕만 포섭된다면, 붕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일본은 지방의 권력들이 막부 정권에 저항하면서 자신들만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천황중심으로 중앙집권적인 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다. 약점이 강점으로 작용한 셈인데, 지금은 오히려 그 강점, 과거의 성공의 경험이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판단한다.

역자의 요약을 살펴보면 일본의 문제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편협한 민족주의(복고주의적 관점)’생활보수주의적 성향(공동체 강조 관점)’이 맞물리면서 개혁의 흐름을 막고 있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우리가 매번 경험한다. 이는 일본이 주변국과의 역사인식 문제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적 기반으로 작용한다. 생활보수주의적 성향은 내향적 자기보호 성향으로 사토리 세대의 인식과 유사하다. 큰 변화에서 오는 불확실성보다는 오늘날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선호(p537~538)”한다. 거대한 담론이나 사회보다는 자신의 생활과 안정을 추구하는 내향적인 성향이 강화될수록 “‘편협한 민족주의가 야기할 수 있는 외교적 소란을 반기지 않(p.574)”게 되고, 편협한 민족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동력이 상실한다. 편협한 민족주의가 야기하는 주변국과의 분쟁은 정책결정자와 유권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고, 우선순위(p.194)”를 바꿔버린다. 한국과의 역사 분쟁,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일본이 떠들썩한 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바다.

여기에 정치인의 리더십 부재(관료들이 배를 물에 띄워놓았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백이야말로 지정학적 불안정이 요동치는 순간에 일본의 안보와 번영에 갈수록 위협이 되었다(p.92)”), 공고한 시스템의 역설(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되었건 간에 ... 시스템을 통해 성장해야 하고, 이 시스템은 그런 사람을 솎아내도록 되어 있다. ...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면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억제하거나 사고를 바꾸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이 조직의 힘이다.(p.215)”-다마모토 마사루)은 일본의 변화를 더욱 더디게 한다. 그 결과 대재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사회 내부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메이지시대의 영광을 바라지만, 그때의 정신은 현 세계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일본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에서 독립해야 한다. 일본은 탈아하기로 결정했던 메이지 시대의 결정적 요소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 선택은 당시에는 타당했지만, 그 이후에는 일본의 선택을 가로막았다(p.543)” 게다가 “2020년 도쿄올림픽은 ... 일본의 재부활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오히려 정점을 찍은 일본에 대한 작별을 고하는 계기(p.558)”가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축소된 올림픽은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여로 모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 특성상 한국과 일본은 대륙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다. 미국과의 동맹최선의 전략적 선택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끼여 있다는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점(p.14)”을 숙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넌지시 강요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아남는 일에 일본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변화는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그 옛날의 아픔이 역사가 아닌 현실로 되살아 날 수 있다.

앞서 말한대로, 일본의 일은 우리 사회에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일본은 모든 선진 민주주의국가가 궁극적으로 직면할 문제들과 이미 당면해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을 강구하는 중요하고도 잠재적인 실험실(p.34)”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것으로만 생각했던 왕따 문제,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이미 우리에게 심각한 현안으로 다가왔다. <피크재팬>은 우리에게 말한다. 일본의 정점과 하강은 우리의 미래라고, 우리가 일본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우리의 하강이 시작되는 지점일 수 있다고. 그말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 책을 읽고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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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유사성과 한일 양국 정부가 내린 결정에 따른 잠재적인 전략적 후과도 마찬가지로 우려스럽다. 한국은 스스로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힘이 있다. 한국은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끼여 있는 새우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처럼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다. 나는 미국과의 동맹이 한일 양국으로서 최선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믿지만,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하며 이 선택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것이다. 끼여 있다는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p.14

한국의 가장 큰 실패는 일본의 실패를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웃 국가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불안한 한일 관계는 양국을 둘(p.14)다 전략적 차원에서 취약하게 만든다. 동북아시아는 군사 역량을 현대화하고 강화하는 적들이 있는 불안한 지역이다. p.15

한일 양국은 새로운 가능성을 움켜쥐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새로운 제약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중요한 부분에서 두 나라는 이런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에 상당히 적합하지만, 성공 여부는 두 나라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를 냉철히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p.16

일본은 모든 선진 민주주의국가가 궁극적으로 직면할 문제들과 이미 당면해 씨름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을 강구하는 중요하고도 잠재적인 실험실이 될 수도 있다. p.34

역사학이란 많은 경우에 상승했다가 궁극적으로 주저앉아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국가의 궤적을 그려가는 작업이다. p.37

관료들이 배를 물에 띄워놓았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백이야말로 지정학적 불안정이 요동치는 순간에 일본의 안보와 번영에 갈수록 위협이 되었다. p.92

일본의 우울한 성과는 일본 지도자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다루지 못했던 구조적 문제의 산물이다.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인 치코 할런은 201210월에 일본을 짓누르고 있던 우울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한때 번영과 권(p.123)력을 어떻게 거머쥐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던 세계적인 모델이 이제는 장기적 슬럼프에 빠졌을 뿐 아니라 달아날 수 없는 쇠퇴에 접어들었다.” p.124

희망과 자부심을 다시 불어넣으려면 극단적 조치가 필요(p.138)하다고 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강한 위기의식절대적으로 필요하며국민은 우선 사안과 관련하여 극단적 조치를 각오해야 한다. 이러한 표현은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국가 전략실과 전략가들이 오늘날 일본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와 단절해야 하는 용기와 통찰력, 결의가 요구되는 메이지 시대와 같다는 상황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p.139

이런 정책적 수렴은 양대 정당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일본 정치는 유혈 스포츠가 되었고,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하거나 좌절시키려는 두 정당의 의지도 확고해졌다. ... 전술이 정치적 계산을 지배해왔으며, 더 큰 국가 이익에는 관심이 없거나 아주 작은 관심만 두었다. p.189

민주당 집권 시절에 우울한 경험을 하고 나서 일본 국민은 일본 정치 시스템(과 일본)을 괴롭히던 문제가 일당 지내나 자민당 지배 또는 뒤베르제의 법칙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일본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치인과 졸렬하게 고안하고 실행한 정책, 놀라울 정도로 변화를 거부하고 쉽게 원상회복하는 정치, 경제구조, 개혁시도를 효과적으로 침묵시키는 보수적 문화와 국민 정서 그리고 불행 등이 결합하여 절뚝거리고 있었다. 또한 국내외에서 발생한 사건이 계속 끼어들면서 정책결정자와 유권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고, 우선순위(p.194)도 바꿔버렸으며 정책 결정을 만들고 집행하는 환경을 변화시켰다. p.195

료마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그는 당시 일본이 직면했던 가장 시급한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대응 방안을 강구했다.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일본의 위치는 어디인지, 편안한 질서를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되었는지 여부 등 그 당시와 똑같은 질문이 오늘날 일본 사회를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 즉 그에 대한 답을 주었다는 점에서 료마는 글자 그대로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 료마가 표상했던 가치관이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중이 믿을수록 그만큼 일본에서 료마를 영웅시하는 현상도 심해진다. 오늘날 그러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료마가 현대 일본에서 중요해지는 것이다. 2008년 정계에서 은퇴한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당선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p.202)리의 아들은 료마와 그의 동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합하다고 본다. ... 그 또한 영감을 받기 위해 마찬가지로 메이지 시대를 되돌아보았다. p.203

이런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투쟁이다. 다마모토 마사루가 설명한 바와 같이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되었건 간에 ... 시스템을 통해 성장해야 하고, 이 시스템은 그런 사람을 솎아내도록 되어 있다. ...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면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억제하거나 사고를 바꾸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이 조직의 힘이다.” p.215

현상 유지를 고수하는 경직성은 문화적으로 편견이 아주 강하면서도 극도로 위험을 기피하려는 일본인 대다수의 성(p.215)향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마모토는 만일 위험을 감수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셈이다. ... 하지만 일본에서는 모든 사람이 위험을 감수할 때만 당신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모든 살마이 다 같이 실패하거나 성공한다. <7인의 사무라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소작농에 관한 영화다. 일본에는 귀족이 없다. 일본은 자기 자신을 관료라고 부르는 소작농이 관리하는 소작농 사회다.” p.216

정치인의 자식은 값진 통찰력이나 정치의 속사정에 노출될 기회를 얻을 뿐 아니라 습관이나 가정, 절차 등도 물려받는다. 특히 정치적 출세에 매우 중요하면서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인간관계또 물려받는다. 이는 정치가 원활히 진행하도록 해주고 인간관계를 결속시키기 때문에 일본 정치의 기본이 되는 후원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가장 쉬운 일은 기다리는 법이라고 인정했던 하야시 의원의 경우 4대째 세습 정치인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p.217

일본 국민은 현재의 도전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인의 모습에 갈수록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일본인은 어떤 면에서 시스템의 실패라면서 유권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p.218

투표율 하락은 국민이 체념했다는 신호로 보일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점령했던 미(p.219) 군정 당국이 일본인에게 민주주의를 부여했기때문에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본인은 민주주의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의 의무 사항을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p.220

일본으로서는 메이지 시대 세계관에 있는 아시아와 서구라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는 시급성이 더욱 커졌다. p.298

결국 311일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일본인은 근대화의 도전을 직시해야만 했다. 후쿠시마원전의 실패는 21세기 일본 사회의 더 큰 실패를 상징했으며, 강대국이 되겠다는 야망 때문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소비와 지칠 줄 모르는 성장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경제모델에 휘말려 일본의 근본적 성격과 본질에서부터 소원해진 게 아닌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p.303

결론적으로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사건은 단순히 재난으로 발생한 혼란의 결과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절망적인 수준으로 훼손된 것처럼 보였던 정치와 규제 차원을 넘어, 기획조차도 불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속성의 산물로서 총체적 실패였다.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는 311일 사건이 왜 중요한지 더욱 강조해준다. 사후 조사 결과 일본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똑같은 믿음과 똑같은 제도가 그날 있었던(p.317)던 사고의 근원이었다고 판명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311일 발생했던 사고의 원인을 들여다볼수록 일본인에게 자신들을 성공하게 해주었던 요인이 이날의 실패를 초래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되묻게 한다. p.318

일본 정치에 대한 미국 내 손꼽히는 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문제의 책임이 문화라고 딱 집어서 말하는 것은 극단적인 변명이다. 만약 문화가 행동을 설명한다면, 누구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p.322

자연과 정치는 진공을 싫어하며, 민주당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자 아베와 자민당은 궁극적으로 다시 권좌로 빨려들어 갔다. 민주당은 통치 역량이 없다고 판명되었으며, 실질적인 위협(311일의 재난)과 잠재적인 위협(험악한 이웃(p.424) 국가들)으로 말미암아 역량 부족의 대가가 크다는 사실도 부각되었다. 2012년 선거 후 한 평론가는 만약 일본이 목적의식이 있는 지도자를 발견한다면 중국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p.425

적극적인 일본의 방위 태세는 일본의 무임승차 또는 저임승차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미국이 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p.430

자신감을 고취하려면 일본 국민에게 자부심을 불어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창 잘나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의 성공과 겉으로 보기에 멈출 수 없었던 일본의 부상이 일본인의 사고를 옥죄었다. 잃어버린 10년이 반복되면서 일본인은 행복감과 목표의식을 상실하고 제2장에서 제5장까지 설명했던 충격, 특히 311일의 사건으로 삶의(p.453) 균형이 깨지고 불안해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공허함을 메우려면 극단적 조치와 미지의 미래에 대한 담대한 접근이 필요했다. 이 같은 시도에는 일본재생전략이나 일본판 뉴딜 추진 촉구등의 이름이 있다. / 하지만 몇몇 다른 사람은 과거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 ... 이들은 과거의 가치관으로부터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망을 찾는다. p.454

냉전이 끝나자 거품이 붕괴했고, 이후 일본 정부는 경제적 역동성과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려고 분투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 둘은 상호 연계되어 있고 어느 한쪽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른 한쪽의 목표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이 과거에 성공을 거두었고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기울였던 관심이 크며 문제가 시급하다는 점을 감안(p.475)할 때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p.476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믿음직하고 갈수록 매서워지는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진전이 없다는 사실이 현대 일본의 가장 큰 수수께끼다.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대중을 엄청나게 동원했고 크게 성공을 거둔 전력이 있는 나라가 도대체 왜 외부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국내적 침체를 해소하지 못하는가? 이런 무기력은 정책결정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중을 동원할 수 있었던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대내외적 충격을 감안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다. p.481

일본 문화와 전통에 대한 거의 모든 언급에서 다양성과 관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인(p.498)이 개혁에 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과거 그 자체와 과거라는 틀이 형성하는 관념이 그들의 사고관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주 강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또한 일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도 추가적으로 일본을 바꾸는 데 강력한 걸림돌이 된다.(p.499) ... 단체를 강조하는 사고방식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둔감하게 하고 더 큰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도록 해서 불행이나 좋지 않느 결과를 수용하는 성향을 강화한다. 개인의 경험이 폄하된다면 변(p.500)화를 촉구하거나 개혁을 추진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국가의 통제 완화와 개인의 자율권 부여에 기반을 둔 자유화는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극도로 이질적이다. ... ‘를 요구하는 문화는 전체적으로 사회에 집중하는 풍조를 한층 심화시킨다. p.501

일본인의 관념과 전통, 문화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정체성은 변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태도를 점진적으로 만들어냈다. p.515

일본인의 시야가 좁아졌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더 많은 일본인이 성장과 발전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을 다시 생각해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새롭고 발전적인 사고방식은 일본의 정체성에 대한 실용적이면서 철학적인 고려, 일본의 미래와 잠재 능려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편가, 새롭고 큰 것이 반드시 항상 더 좋은 건 아니라는 이롭ㄴ의 근대화에 대한 생각의 변화 등을 내포하고 있다. p.530

한계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은 거의 체념하는 듯한 위험한 정서이며 21세기 일본의 기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정서는 일본에 널리 만연한 것처럼 보이는 불만과 그럼에도 현상 유지를 지속하겠다는 정서를 조화시킨다. 일본의 미래가 과거만큼 밝진 않지만 그래도 현재의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일본인은 잃을 것이 너무 많으며, 자신들이 서서히 침식되고 있다는 생각에 점차 물들어가면서도 큰 변화에서 오는 불확실성보다는 오(p.537)늘날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선호한다. /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일본이 정점을 찍은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아베 정부 시기는 일종의 막간에 해당하며, 국위를 선양하고 아시아 지역과 전 세계 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확보하려는 전통적인 강대국주의자가 마지막으로 애를 쓰는 순간이다. p.538

현재 일본 지도자들이 보이는 보수주의는 불신 받고 있는 과거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되살리려는 시도로 비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위험해 질 수도 있다 아베 총리가 안보정책 개혁을 추진하면서 보여주었던 실용주의와 신중한 태도는 그도 이런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며, 일본 국민과 아시아 지역에 있는 불안감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는 현재까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 아베가 과거사를 잘 활용한다면 일본을 아시아에 다시 통합시키려는 노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 문화와 전통이 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좀(p.542) 더 예리하게 이해하고 평가한다면 아시아로의 복귀를 촉진할 것이다. / 그래서 일본은 탈아하기로 결정했던 메이지 시대의 결정적 요소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 선택은 당시에는 타당했지만, 그 이후에는 일본의 선택을 가로막았다. 일본은 아시아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더는 아시아에 남아 있을 형편이 못 된다. 어떤 새로운 관계라도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새로운 사고방식에 달려 있다. 아시아 지역은 이제 단순히 일본의 관심 대상으로만 남거나 일본이 이끌어가야 하는 국가들의 집합체로만 여길 수 없다. 일본은 덜 계층적이고 더욱 평등한 질서를 추구하며, 진정한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한국 및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세 나라 모두가 이런 비전을 실현하려 협력해야 한다. p.543

만약 모든 것이 잘된다면 그리고 만약 올림픽경기 이전에 놀랄 만한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2020년 도쿄올림픽은 일본을 축하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재부활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니라 오히려 정점을 찍은 일본에 대한 작별을 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p.558

이 책의 핵심적인 분석 대상은 그 해법이 정책 변화에 속도감 있게 반영되지 않는 지체 현상이다. p.564

저자는 일본에서 발견되는 과제 해결 지체의 원인으로 일본 사회가 선호하는 국가 비전이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논의되는 개혁론과 상이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개혁론에 대한 비판적인 일본적국가 비전을 두 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일본적 가치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동일하지만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복고주의적 관점과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공동체 강조 관점을 구별하는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복고주의적 관점은 저자도(p.573) 우려하고 있는 일본 내 편협한 민족주의를 말한다. 이는 일본이 주변국과의 역사인식 문제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적 기반이다. 공동체 강조 관점은 편협한 민족주의와 유기적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공동체 강조 관점은 현재의 삶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변화에 대한 거부의 내향적 생활보수주의 성향이다. 생활보수주의적 성향은 기본적으로 안정 추구적이라는 측면에서 편협한 민족주의가 야기할 수 있는 외교적 소란을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보수주의의 내향적 자기보호 성향은 거시적 정치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생활 안전성을 확보해주겠다고 목소리를 내는 리더십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 쉽다. 생활보수주의의 내향성이 강화될수록, 정치권이 편협한 민족주의로 향할 때 이를 제어하는 사회적 힘은 왜소화된다. p.574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이 정점에서 내려오는 것이 몰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본이 정점에서 내려온다고 해서 향후 한국의 대전략에서 일본은 배제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p.575

일본은 1980년대까지의 성공에 너무 도취되어서 변화를 거부하며 서서히 동력을 잃고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덩치가 있다. 당장 인구만 해도 프랑스와 영국을 합친 규모다. 그리고 일본은 가장 먼저 아시아식 근대화를 주도한 국가라는 상징성이 있다. , 아시아식 근대화의 원형인 셈인데, 이를 토대로 수많은 변형된아시아식 근대화가 이뤄져 왔다. 앞으로도 일본의 중요성이 유효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p.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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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진중권] 새로운 서사가 필요할 때 | Memento 2021-08-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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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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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논리는 낡았고, 진보세력의 기득권화로 민주화 서사 마저 붕괴했다. 기존 것을 고쳐쓸 것인가, 제3의 길을 찾을 것인가. 전자를 위해서는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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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어떤 명분을 가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신뢰하는 정치인을 다시 잃을 수 없다는 마음, 정당한 권력을 행사해 민생을 부양해 달라는 의사, 비리를 척결하고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대의. 그 어느 명분도 이 명제에 예외를 부여할 수 없다. 비판 받지 않는 권력은 어긋날 수 밖에 없다. 마치 살찌는 것과 같다. 권력의 몸집이 커지는 만큼 자기통제가 어렵고, 공격 받는 면적이 커진다. 각종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과연 이러한 사태를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는 걸까. 비난의 강도는 점점 거세진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창출이다. 그렇기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정치성향을 떠나 행정의 신뢰성과 정책의 지속성에 관한 문제다. 역점으로 꼽았던 부동산 문제는 선거와 표를 의식해서 누더기가 되었다. 정책의 미비를 보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행보는 혼란과 분노만 가중할 뿐이다. 방역도 마찬가지다. 말 잔치속에서 희망보다는 고통이 부각된다. 통계와 숫자 속에서 K만이 난무할 뿐, 정작 국민들은 K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들이 본받고자 했던 사람의 정신에는 실책을 겸허히 인정했던 사람이 있지 않았던가.

진중권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강하게 비판한다. 노선을 갈아탔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비교적 피아구분 없이 모두를 까는 사람이다. 관종이라면 할 말 없지만, 괜히 모두까기 인형이라 불리는게 아니다. 진중권은 말한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서사와 함께 민주화 서사도 파탄(p.332)”났다. 수저를 잘못 문 대다수 젊은이들은 민주화의 위선을 경멸하며, 민주화한 사회의 현실에 절망한다.(p.333)” 변화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젊어지려면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살해당해야 한다.(p.334)”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비장하게 만들었을까.

현재의 상황은 진보세력의 보수화, 기득권화에 있다. 민주당이 진보세력,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면 국민의 힘당은 보수세력, 산업화 세력을 대변한다.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보수세력은 무너지고 진보세력이 3번째 정권을 쟁취한다 산업화 시대의 논리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파열음은 민주화 시대의 논리가 현재 사회와 괴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화 세력의 “‘존재는 오래전 기득권층으로 변했으면서, ‘의식으로는 자기가 진보라 믿(p.331)”을 따름이다. 몸과 생각이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갇혀 현재를 보지 못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 운동시절 대중과 함께 했었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일했고, 대중과 함께 행진했다. 하지만 기득권 된 그들은 대중과 괴리되었다. 특히 청년 세대가 그렇다. 그들이 전쟁 이야기에 넌더리를 냈던 것처럼, 요즘 젊은이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늘어놓는 민주화 서사를 냉소한다. 그들이 외쳤던 기존의 도덕은 변화된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잘난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은 상속과 세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p.333)”이다. 자신들은 최소한 일자리와 아파트 한 채라도 받았지만, 현 세대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그들만의 먹고사니즘과 내 자식을 위한 내로남불은 젊은 세대의 분노를 일으킨다. 낡아버린 그들만의 도덕은 청년세대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타도하고자 했던 괴물을 어느새 타도한 사람들이 닮어버린 셈이다. 아니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p.332)”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촛불혁명에 따른 촛불정권은 본연의 서사를 상실하고, 코로나19 속에 휘청이고 있다. 하지만 꼭 코로나19 탓만은 아니다. 혁명은 성공하는 순간 반혁명이 된다.(p.261)” 이는 불가피하다. 또한, 우리가 접하는 수 많은 비리와 부패는 진보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권력은 늘 그 자리에 있(p.56)”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결국 기득권이라면 부패한다. 결국 우리는 제3의 길을 모색하거나, 기존의 것을 고쳐써야 한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룩한 새로운 시대에 화두는 무엇인가. 기존의 정치, 좌우가 쇄신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저 거수기로 남아있는 청년세대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에는 거기에 대한 대안 제시가 없어 아쉽다. 다만, 우리가 기존의 것을 다시 써야 한다면, 진중권의 비판은 참고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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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의 어원은 라틴어 팍툼(factum)이다. 팍툼은 만들어진이라는 뜻이다. 결국 사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p.16

기술적 상상력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서 바람직한 사회의 비전을 가져와 지금 여기에 실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선동가들은 대중이 가진 이 기술적 상상의 욕망을 흘러간 과거로 데려가, 이미 벌어져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은폐하고 변명하는 가망 없는 노력에 낭비하게 만든다. p.19

현대의 대중은 사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루한 일상에 충분히 지쳐 있다.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멋진 환상이다.” - 괴벨스 p.25

비리가 터질 때마다 도대체 청와대나 정권실세 이름이 빠질 때가 없지 않은가. 정권은 바뀌어도 권력은 늘 그 자리에 있다. p.56

이 이론은 그 어떤 유신론보다 더 원시적인 것으로 호메로스의 사회이론과 유사하다. 호메로스는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올림푸스의 신들이 벌이는 공모의 결과라 믿었다. 사회의 음모론은 이 유신론, 즉 신의 변덕과 의지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믿음의 한 변종이다. 그것은 거기서 신을 떼어내고 대신 이렇게 물을 때 성립한다. ‘신이 아니면 누가?’ 신의 자리는 이제 여러 유력자 혹은 유력 집단들로 채워진다.” (칼 포퍼) p.57

사회란 각 개인, 계층, 계급의 욕망을 필연적 법칙이나 우연적 계기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합력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고대에는 사회과학이 없었기에, 그 시절 사람들은 모든 사회 현상을 신화로, 즉 신들이 끼리끼리 속닥거려 세상을 움직인다는 이야기로 설명하곤 했다. / 음모론은 인간의 의식을 과학에서 신화의 시대로 되돌려 보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퇴행이 아니다. 현대의 음(p.60)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 신화와 달리 나름 합리적 추론과 과학적 논증의 외양을 띠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절반은 사실, 나머지 절반은 상상이다. 절반의 거짓이 그냥 거짓이듯이 절반의 사실도 실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허구는 사실의 자격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반박하는 것은 아주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p.61

음모론은 일견 합리적 추론의 외양을 띠나 그것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음모론은 대개 비경제적이다. 그것은 설명해주는 것보다 설명해야 할 것을 더 많이 남긴다. ... 둘째, 음모론은 편집증적이다. 그래서 고려해야 할 수 많은 요인 중 특정한 것에만 집착한다. ... 셋째, 음모론은 망상적이다. 그리하여 음모의 효과를 과대평가 한다. p.62

음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서 이처럼 과학(?)의 지원을 받곤 한다. 전문가들의 개입은 사실과 상상이 뒤섞인 이 허구에 과학의 외관을 입힌다. 그들의 권위에 기대어 시민들은 자기가 합리적으로 추론한다는 착각에 빠진 채 미신을 믿게 된다. 이렇게 음모론에 동원되는 순간 과학은 신화의 도구로 전락한다. p.65

팬덤은 상상의 공동체. 팬에게는 오직 팬 객체만이 중요하지만, 팬덤에게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이 집단정체성이야말로 팬 현상과 구별되는 팬덤의 본질이다. ‘정체성은 본디 배타적인 것. p.74

팬덤은 지지자가 아니라 구축자다. 그들은 팬 객체를 통해 자신들의 상상계를 실현하려 한다. 그들에게 정당이란 리비도적 나르시시즘의 수단일 뿐. ‘너희는 현실을 연구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그 현실을 너희들은 나중에 연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팬덤의 멘탈리티다. p.80

정치가 마케팅이 되면 정당은 기업이 된다. 기업의 목적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정당이 기업이 되면 공공선은 더 이상 활동의 목적이 아니게 된다. p.88

유권자가 정치 서비스 시장의 소비자로 행세하는 곳에서는 당연히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 등장할 수 없다. 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수동적으로 대중의 니즈에 영합하는 무색무취의 정치인, 아니면 능동적으로 대중의 니즈를 조작할 줄 아는 포퓰리스트 선동가뿐이다. / 마케팅 정치는 공적 사안을 사적 용무로 바꾸어놓는다. 공적 활동으로서의 정치가 사적 소비행위로 사라질 때 위기에 처하는 것은 공화국의 이념이다. p.91

근대 이후 삶은 과도하게 진지해졌다. 놀이는 삶의 주변으로 밀려나 아이들의 것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도 안 되어 아이들도 놀지 못한다. p.94

구술사회는 항상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구술사회는 늘 현재에 살기에, 이제는 필요 없게 된 기억을 지움으로써 평형 혹은 항상성을 유지한다.” (윌터 옹) 구술사회는 늘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의 기억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필요 없는 기억을 지워버려도 되는 것(p.118)은 물론 말은 글과 달라서 발화되는 순간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리라. p.119

숨은 신은 하늘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우리 안의 저 깊은 곳에 계신다. 그리고 거기서 역사하신다. p.136

전광훈 목사는 한국의 기독교가 아직 종교성의 현대적 수준에 이르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개신교 일각의 이 중세적 광신이야말로 이 땅에 횡행하는 수많은 이단의 밑거름인지도 모른다. p.139

그러므로 두려워하자. 하지만 정확히 두려워하자. 그리고 연대하자.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것이 혐오 바이러스다. p.162

선교사들은 이 땅에 먼저 병원과 학교부터 세웠으나, 그 후예들은 구약으로 과학을 대신하고 기도로 병원을 대신하려 한다. p.174

진화론이 등장했다고 해서 기독교가 무너지지는 않았(p.174). 그것은 교회가 세심한 해석을 통해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말씀의 본질을 보존해왔기 때문이다. 해석학적 무능은 성서에서 미신과 편견만 읽어냄으로써 기독교를 시대에 뒤진 종교로 만들 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타인을 죄인이라 부르는 것은 외국에선 처벌받는 범죄이며, 무엇보다 성서에 위배된다. 예수는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p.175

민주주의의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반대편에는 꽤 견고한 견제세력도 존재한다. 고로 이 정권을 파시스트 정권으로 규정한다면, 그 역시 부당한 선동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커뮤니케이션이 강한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인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p.207

정치가 피아 구별로 이해되고 민주주의가 다수결(p.231) 환원될 때, 1930년대 독일처럼 민주주의는 반대물로 진화한다. p.232

그들이 원하는 것은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이 아니다. 그들의 손에서 두 대통령은 이미 마케팅에 필요한 상표로 전락했다. p.249

소련의 예가 보여주듯이 혁명은 성공하는 순간 반혁명이 된다. 권력을 잡은 혁명은 그 권력으로 먼저 혁명가들부터 제거하기 때문이다. p.261

법이 작은 원이라면, 윤리는 그것을 포함한 큰 원이라 할 수 있다. 큰 원에서 작은 원을 뺀 여집합이 법적 판단과 별도로 존재하는 윤리적 판단의 영역이다. 바로 거기가 지도자의 도덕 역량이 발휘되는 영역이며, 거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엿본다. 하지만 =윤리라는 야쿠자 등식은 그 영역을 증발시킨다. 설 곳을 잃은 통치 철학은 이제 지지율의 정치공학으로 대체된다. p.274

대통령 윤리는 그가 자기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정해주는 기준을 통해, 혹은 의회와 법원이 그들에게 정해주는 기준을 통해 가장 잘 알려진다.”(S.C. 길먼) 즉 대통령은 기준을 정해주는 행위로써 국가공동체의 성격을 결정한다. p.275

원래 공화국은 공무(re publica)’를 뜻한다. 그런데 마음에 빚이 있다라는 말은 사적 감정의 표현으로, 공화국의 대통령이 공식석(p.275)상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국가 공동체의 가치를 세워야 할 대통령이 윤리적 판단의 영역을 없애고, 그 공백을 내 식구철학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p.276

그것은 그저 통계학상의 추상적 수치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할머니, 남편과 아내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개의 생명과 개개의 인간의 존중받는 공동체입니다.” - 메르켈 p.287

팬덤 정치의 문제는 대의민주주의 절차를 건너뛰고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정당정치의 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이다. p.291

권위주의 파괴의 연출이 필요한 것은 정권이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라는 얘기다. ... 연출은 그게 일상이 아닌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p.298

정체성이란 이렇게 현실적 자아를 이상적 자아로 착각하는 오인의 결과로 발생한다. p.317

한국 정치는 그동안 두 개의 큰 이야기로 움직여왔다. ‘산업화민주화서사. 이 두 서사는 동시에 두 세대를 대표한다. 산업화를 이끈 할아버지 세대와 민주화를 이룬 아버지 세대. 202021대 총선을 통해 사회의 주류는 전자에서 후자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산업화에 대한 민주화 서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586세대가 주류로 등극함으로써 민주화 서사 역시 해당 서사로서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p.324

존재는 오래전 기득권층으로 변했으면서, ‘의식으로는 자기가 진보라 믿는 것이다. p.331

그들은 이렇게 바꿀 것보다 지킬 것이 더 많은 보수층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 산업화 세대는 적어도 그들에게 일자리도 얻어주고 아파드도 한 채 갖게 해줬다. 하지만 586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도 아파트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식들에게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느라 그 검은 커넥션을 활용해 다른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다. p.332

산업화 서사와 함께 민주화 서사도 파탄이 났다. 우리(p.332) 세대의 전쟁 이야기에 넌더리를 냈던 것처럼, 요즘 젊은이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늘어놓는 민주화 서사를 냉소한다. 그 잘난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은 상속과 세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난 소수를 제외하고, 수저를 잘못 문 대다수 젊은이들은 민주화의 위선을 경멸하며, 민주화한 사회의 현실에 절망한다. p.333

사회가 젊어지려면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살해당해야 한다.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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