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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듣고 싶은 철학 연주 -《반철학이 뭡니까?》 기다 겐 저 | 비문학 2019-09-1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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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반철학이 뭡니까?

기다 겐 저/장은정 역
재승출판 | 2019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두껍지 않지만 안이 꽉 찬 철학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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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철학이 뭡니까? 

/ 기다 겐의 철학 연주



   



   반철학이란? 

   저자는 자신이 하는 작업을 ‘철학’을 비판하고 그러한 사고법을 뛰어넘으려는 것이라 설명하고, 이를 ‘반철학(anti-philosophy)’라고 부른다. 

19세기 말 니체 이후 등장한 사상가들의 작업도 ‘철학 비판’, ‘반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에 요양생활을 하던 중에 가제모토 다다시와  철학을 주제로 나눈  인터뷰 형식의 대화 녹취록을 원고로 정리하여 잡지 《파도》에 연재한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초자연적 원리를 설정하여 그것을 토대로 자연을 바라보는 사고법, 즉 철학을 ‘초자연적 사고’라고 한다면, 반대로 ‘자연’에 둘러싸여 살며 그 안에서 하는 사고를 ‘자연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반철학’은 그러한 ‘자연적 사고’를 가리킨다. 


   따라서 같은 ‘철학’이라도 소크라테스/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이른바 초자연적 사고로서의 ‘철학’과,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적 사고와, 그것을 되살려 ‘철학’을 비판하고 해체하려 했던 니체 이후의 ‘반철학’은 구별해야 한다.  (24쪽.) 


 

   저자는 꼭꼭 눌러담은 절제되고 정제된 문체로 서양철학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한줄 한줄 군더더기 없이 정보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각 챕터에 할당된 양이 많지 않아도, 하루에 한 챕터씩 천천히, 생각을 곱씹으면서 아껴서 읽었다. 중간 중간에 언급되는 문학 이야기는 책의 분위기를 밝혀준다.


   역사이야기는 주로 사상가의 약력을 소개할 때 나오는 데, 이 또한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으로 작용해서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던 중 1851년에 런던에서 제1회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철골과 유리로만 만들어진 광대한 수정궁을 무대로 산업혁명의 정수를 모은 기술의 성과가 전시되었고 관객들은 이에 압도되었다. 이것이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보급을 촉구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만국박람회장이 된 수정궁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곳에서 본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미래사회의 모습에 위기감을 품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는 당시 그의 감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 있다. 


(중략)


예술이 어두운 그늘에서 긴 발효 기간을 끝내고 비로소 개화하는 것이라면, 과학에 비추어져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 보이게 되어 음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밝은 세계에는 새로운 예술 같은 것이 싹틀 여지가 없다. 이러한 예감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 등 이른바 세기말 예술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인식이었다. 한낮의 태양처럼 모든 것을 밝게 비춰내는 기술사회에서 기술문명은 만개하겠지만 예술은 엄청난 위기를 맞을 것이다. 니체도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무렵 전등은 아직 보급되지 않았지만 가스등이 보급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완전한 어둠이 차츰 사라지고있었다. (201쪽.) 





   300쪽이 채 안되는 짧은 책안에 모든 이야기를 넣을 수 없었음을 작가 자신도 맺는 말에서 아쉬워하고 편집 형식의 한계점에대해 언급한다. 이 점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특히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인터뷰 형식을 고수하거나, 아니면 담론의 산만한 느낌이 남아 있지 않게 원고를 다시 정리하는게 좋았을 것 같다.

 

   책 중간중간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럴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 왜! 더 듣고 싶은데!’라고 한탄했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은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특히 데카르트!) 그때의 고통을 덜어주는 부분도 있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울다가 웃고, 무릎을 탁! 쳤다가 다시 머리를 쥐어짰다. 책을 덮고 정리를 하는 지금은 정말 잘 읽었다는 만족감에 잠겨있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칸트, 니체, 하이데거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고 재미있게 읽은 부분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처방전




담당 의사: 니체

환자명: 19세기 유럽

병명: 심리적 니힐리즘


증상

환자는 모든 것이 무의미,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며, 비탄에 잠겨 있다. 

삶의 자세는 소극적이며, 우울증에 시달린다. 

“어차피 죽을 텐데 열심히 살아서 뭐해.” “신은 죽었어.” 등의 

말을 자주 한다. 


원인

플라톤 이후 유럽의 철학과 종교와 도덕은 존재하지도 않는 초감성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봐야 그러한 

있지도 않은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음을 마침내 알게 되고, 그간의 노력이 

헛것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자 공허한 허무적인 ‘심리적 상태’에 빠졌다.


치료법

신의 죽음을, 즉 최고 가치의 상실을 소극적으로 한탄할 것이 아니라, 

최고 가치가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부정해야 한다. 새로운 가치 체계를 자연과 생에서 찾는다. 

예술을 추구하여 현상 확보에서 유지하는 생에서 벗어나 고양을 

추구한다. 육체는 예술을 수행하며, 따라서 정신보다 우위이다. 

육체의 기능, 생의 기능의 최고치 실현인 예술을 정신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인식에 대한 예술의 우위를 복권한다. 

 



   만약 니체가 정신과 의사였다면 이런 처방전을 내리지 않았을까? 니체는힘에의 의지: 모든 가치를 전도하려는 시도을 통해 유럽의 니힐리즘을 병으로 진단하고 그것의 원인을 밝혔으며(제1권 유럽의 니힐리즘), 치료법을 강구하고(제2권 최고 가치에 대한 비판), 병을 치료할 궁극적인 처방전을 내렸고(제3권 새로운 가치 정립의 원리), 일반 대중에게 이 처방전을 알리려고 했다(제4권 훈육과 육성).


‘참이다’, ‘참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도달한 현 단계를 확보하고 그곳에서 안정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가 날조한 것이지, 사실은 바뀌고 달라지면서 생성해 나가는 세계에 투영을 강요하는 ‘술어’이자 ‘기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29쪽.)


“진리란, 그것 없이는 어떤 종류의 생물이 살아갈수 없는 것 같은 일종의 오류이다.” (230쪽.)


   니체가 진리와 인식을 바라보는 관점은 날카롭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불변의 진리라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해 쏟아 부었던가?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은 늙기 마련이고, 사랑이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고, 미의 기준도 변하고, 가치관은 서로 종종 부딪혀서 깨지며,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범주도 확장되거나 축소된다. 인간이 그 변화를 부정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혐오과 우울증으로 가는 가장 최단코스라고 경험을 통해 장담할 수 있다. 도착점이 없어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경주에 다신 참가하고 싶지 않다. 


니체가 《힘에의 의지》 제1권의 표제로 선택한 '유럽의 니힐리즘'이란 인도와 중국의 니힐리즘과 구별되는 유럽의 니힐리즘이라는 의미도 아니거니와, 단순히 19세기 후반의 유럽을 덮친 허무적 기분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유럽이라는 문화권, 또는 유럽이라는 역사적 고동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근본적인 역사적 운동을 가리키는 명칭인 것이다. 이리하여 니체는 제1권에서 병의 증상을 진단하고 원인을 확인하고는, 제2권부터는 병을 치료하는 수단을 강구한다. (218쪽.)


   '니체가 진단을 내렸다'는 저자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울증, 자기 혐오 등의 삶을 갉아먹는 것들을 더이상 그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냉철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병으로 취급받는 것을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병은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할 수 있다. 내가 힘든 이유에도 원인이 있고, 그것을 완화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슬픔의 늪에 빠져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평온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단순한 철학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 문학, 역사적 지식을 곁들여 풀어나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몰입도가 높고 어렵지만 재미도 있다. 두껍지 않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읽고 나면 서양 철학의 흐름이 머릿속에 잡히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의 끝에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들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가 소개 하는 자신의 책 여덟권 중에 한국에 번역된 책은 《반철학이 뭡니까?》와 현대 사상 지도》 두 권뿐이다. 당장에 기다 겐의 모든 책을 읽을 순 없겠지만, 다른 책을 읽으며 철학의 세계에 빠져보려 한다. 이 책은 《반철학 입문》이라는 원제에 걸맛는 철학 입문서로서의 기능을 충실히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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