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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푸른 저녁'의 시인에게.. | √ 책읽는중.. 2021-02-1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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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 오늘 읽은 책 참여

[ '어느 푸른 저녁'의 시인에게 ]

 

날마다 내 안에서 뛰쳐나가

아득히 사라지는 아이를 보며 나는 영원이라는 말을 상상 속에 가두어버렸다

 

시를 쓰다보면 벌레를 닮은 글자들, 일제히 깨어나 슬금슬금 흰 종이를 기어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어딘가

높은 데서 쳐다보면 사람도 벌레처럼 보여서

모퉁이마다 시간이라는 약을 놓아서는 조금씩 우리를 먹이고 있을 것 같아

 

시인이 되면

숨어 다닐 수 있을까 했다

 

모든 계절은 습관이 되고 모든 날들은 순서가 되는 생활의 텅 빈 자하실에서

똑, 똑, 똑, 낙숫물처럼 듣는 저녁이 천장에 열어놓은 어느 푸른 눈망울로부터

 

...  소/라/향/기  ...

어느 푸른 저녁

강성은 등저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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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빈집에 갇혔네.. | ○ 그니 리뷰 2021-02-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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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설날 연휴 1일 1리뷰 이벤트 참여

[도서]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저
문학과지성사 | 2000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 빈집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노인들 ]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 오래된 서적 ]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을 생각도 못햇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 엄마 걱정 ]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무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그집 앞 ]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사랑 잃었네

 

[ 입 속의 검은 잎 ]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일이 터졌다, 얼마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럼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소/라/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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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21        
사랑님의 바다가 부러웠는데.. 나도 그 바다를 보겠구나.. | ♩그니일기 2021-02-1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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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의 논문제출을 축하하며 한잔하기로 한 약속은

자꾸만 미루졌다.. 나의 게으름때문에..

 

몇주전 설연휴로 보기로 확정아닌 확정을 하면서..

처음엔 대학로에서 오후 2시에 보자했었다.

그러다.. 민이에게  스케줄 세워보라 권했고,

오전11시~오후2시 사이의 시간이면

난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

민이는 그럼 11시에 종로에서 보자고 했었다..

 

11시에 만난 우리는 종로부터 걸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거리는 참 여유로웠다..

내일도 휴일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다며..

천천히 걸어도 좋은 이시간을 즐겼다..

그동안의 추위에 대한 보상인지 걷기 참 좋은 날씨였다..

 

인사동에 도착했는데..

많은 가게들은 설연휴로 쉬었고,

또 많은 가게들은 폐업으로 문을 닫아있었다.

고르다가 들어간 '인사동그집'..

소머즈 귀를 가지신 친절하신 사장님도 좋았고,

나온 음식들도 정갈하니 좋았다..

 

요즘 고민이 많았던 민이는 한잔하더니

바다를 보고싶다고 했다..

부산,여수,강릉.. 3개의 후보중 강릉에 가고싶다고..

그자리서 검색을 시작했는데.. 

담주는 이미 매진, 연휴인 27일도 이미 매진..

다행히 28일은 자리가 있다며 바로 예약을 했다..

 

사랑님의 바다가 부러웠는데..

28일엔 나도 그 바다를 보겠구나..

28일 움직여도 우리에겐 3월1일의 휴일이 있으니

이또한 부담이 없다며 웃으니..

'인사동그집'사장님이 낮술을 즐겁게 마신다며

미역국도 갖다주시고, 맛있는 양념장도 갖다주시며 살뜰히 챙겨주셔서 맛있고, 편안한 자리였다.

 

평소 빅백을 좋아하는 나..

인사동을 돌다 마음에 든 가방을 발견하고는

가게안으로 들어가 가격을 흥정했다..

현금으로 사면 10% 해주신다는 사장님..

망설이다 나오려는데.. 조금더 깍아주셔서..

결국 20% 할인을 받아 저 가방을 샀다.

크기도.. 소가죽의 부드러운 느낌도..

무엇보다고 가방안에 칸나눔이 딱 내맘에 들었다..

 

인사동의 거리가 좀 붐벼졌다..

거리공연도 몇팀있었고, 음악은 흥겨웠으며..

원하는 가방을 사서 좋았고,

한잔해서 더더 기분이 좋아진 내가 어깨춤(?)을 추니..

민이녀석은 자꾸만 챙피하다며.. 그래도 활짝 웃으며 숨는듯하면서도 보디가드마냥.. 날.. 챙겨주며..

창동역까지 데려다 준다는 걸 환승역에서 보냈다.. 그녀석도 피곤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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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 √ 책읽는중.. 2021-02-1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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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집 앞 ]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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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사랑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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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저
문학과지성사 | 200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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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당신, 그립지 않아요.. | ○ 그니 리뷰 2021-02-1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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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설날 연휴 1일 1리뷰 이벤트 참여

[도서]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저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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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안개 ]

원했던 건 그렇게 먼 곳으로 흘러가요

다 흘러가요

 

안 보이는 것이 이토록 다정한 거요

 

복면한 사람 중에 당신이 있었어요

 

서로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기쁨이 자욱했던 것

 

다가갈수록 흐릇해지는 이것을

누군가 진실이라 말하기도 했어요

 

암전


 

세계는 던져둔 위반에 시달렸으니

 

우리가 도모할 일은 이제 사라졌어요

 

그러니 안개가 숨겨줄 거라고 한번 믿어봐요

 

어리석은 인과

우리는 우리를 벗어날 수 없지만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 다행이었어요

 

다시 암전

 

그럴 수록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당신

그립지 않아요


 

[ 이후 ]

 

봄은 오는 게 아니라 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손목은 너무 세게 잡지 말고

갈때 놓아주도록 살며시

 

살며시, 라는 말 울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빽빽한 숲에서도 한눈에 드는 나무가 있지

놓아준 나무

놓아준 손목

시끄러운 곳에서도 뒤돌아보게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놓아준 것이야


 

그 소리 목소리도

가고 있는 거

원했던 건 가고 있는 거

 

가고 있는 건 고요가 되겠지

비유 너머에 있는 그것

너머라는 말도 울고 싶은 말이었는데

거기 알 수 없는 그늘이 있지

느릅나무 분재는 겨울에도 가득 초록 잎을 달고

놓아줄 때를 잊고서

오래 머무는 건 정말 무서웠는데

 

쓸쓸하게도 머무는 사이 우는 법을 알아갔을 것이다

 

나무가 풍경에서 나갈 수 있도록

손목이 약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  소/라/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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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 ○ 그니 리뷰 2021-02-1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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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푸른 저녁

강성은 등저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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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

 

우연찮게 그 길을 지나치게 되었다

우연찮다는 것은

꼭 우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의도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길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다

필연적인 자세로

반드시의 직립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눈빛으로

사람들은 길가로만 걸았다

자신이 있을 곳은 귀퉁이라는 듯이

언저리에서 맴돌다 사라지겠다는 듯이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무표정도 표정이다

침묵이 말이듯이

어느 때는 가장 강력한 말이 되기도 하듯이

끈질기게 묵묵했다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보도블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림자 하나도 빠질 수 없을 만큼 틈이 없었다

견고했다
 

블록을 들어내면 암호가 있을 것 같았다

해독될 수 없는 암호

마침 아무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암호

마침내 해독되지 않는 암호

 

때마침 칼바람이 불어왔다

길 한복판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기에 그가 서 있었다

예외처럼

맥없이 풀려버린 암호처럼

 

종이 인형처럼

나풀거리며

비틀거리며

입체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평면처럼

고개를 수그려

맨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맨홀에 빨려 들어갈 듯

지나칠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러나 나는 길로 나아갔다

길 한복판으로

공사 현장으로

전속력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고

리듬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도 구두는 필요하다고

 

함구한 채로 포효했다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붙들어 맨 풍경이 있었다

 

지나치되

지나치지만은 않아서 기억이 되었다

 

[ 빈집에 갇혀 나는 쓰네 ]

 

빈집에 초대되었습니다

헐겁게 잠겨 있던 문을 열고 들어와

스스로를 가두고 나는 씁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검은 개처럼

허옇게 변해가는 빨래처럼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길고 축축한 혓바닥이 되어 온종일 벽을 핥아대도

반쯤 잘린 귀가 되어 천장을 훑고 다녀도

비어있는

비어있어

유지되는 모두의 가여운 집

인사는 말자

저녁마다 산책을 떠났다가

돌아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빈집에 갇혀

돌아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빈집에 갇혀

나는 쓰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초대하는

 

[ 역 ]

밤이 있고

한 사람이 있다 아무도 그를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려 하는지

손에 쥔 것이 승차권인지 쓰다 만 엽서인지

아니면 그냥 휴지 조각인지

버릴 수 없는지

 

버린 지 오래인지

 

아무런 기색이 없다 말이 없고 슬픔이 없다

아니면 그냥 잠깐 잠이 든 건지

눈을 감지도 않은 채로

어떤 꿈속을 걷고 있는지 밤의 한 점을 행해

 

그가 무엇을 보는지 그것은 정말 밤인지

밤 너머 또 다른 종착역인지, 철골이 비어진 건물들 사이

고요한 폭설은 쏟아지고

 

길을 떠올릴 수 없어 불현듯

멈춰 선 건지 고장 난 가등 아래 셔터를 내린 철문은 불현듯

어떤 빛을 읊조리는지

 

문을 두드리는지 다만 문 앞에 서성이는지

바닥에 질퍽이는 낙서 같은 표정을 세차게 문지르면서


떠나는 중인지 돌아오는 중인지

그를 기다리는 누군가 있는 지 아직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오고 또 가는 사이 흐느끼며 가서는 다시 오지 않는 사이

 

한 사람이 있다

밤이 있고

 

벗지 못한 외투가 있다 무거워진 가방이

있다 불현듯

기적이 울고,

감춰 쥔 무언가를 꾸깃대며 떠는 손

 그 곁의 누구든 불러 세우려는지

저기요,

 

아니면 그냥 잠깐 잠이 든 건지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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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서적 ]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을 생각도 못햇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 엄마 걱정 ]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무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소/라/향/기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저
문학과지성사 | 200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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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 √ 책읽는중.. 2021-02-1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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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노인들 ]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  소/라/향/기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저
문학과지성사 | 200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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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우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 ∬같이봐요.. 2021-02-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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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面)

                        - 정현우

 

                        면과 면이 뒤집어질 때, 우리에게 보이는 면들은 적다
                        금 간 천장에는 면들이 쉼표로 떨어지고
                        세숫대야는 면을 받아내고 위층에서 다시
                        아래층 사람이 면을 받아내는 층층의 면
                        면을 뒤집으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복도에서, 우리의 면들이 뒤집어진다
                        발바닥을 옮기지 않는 담쟁이들의 면.
                        가끔 층층마다 떨어지는
                        발바닥의 면들을 면하고,

                        임대 희망아파트 창과 창 사이에
                        새 한 마리가 끼어든다.
                        부리가 서서히 거뭇해지는 앞면,
                        발버둥치는 뒷면이 엉겨 붙는다
                        앞면과 뒷면이 없는 죽음이
                        가끔씩 날선 바람으로 층계를 도려내고
                        접근금지 테이프가 각질처럼 붙어있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 때 내 면을 볼 수 없고 네 면을 볼 수 있다 반복과 소음이
                        삐뚤하게 담쟁이 꽃으로 피어나고 균형을 유지하는 면, 과 면이 맞닿아 있다

                        어제는 누군가 엿듣고 있는 것 같다고
                        사다리차가 담쟁이들을 베어버렸다
                        삐져나온 철근 줄이 담쟁이와 이어져 있고
                        밤마다 우리는 벽으로 발바닥을 악착같이 붙인다
                        맞닿은 곳으로 담쟁이의 발과 발
                        한 면으로 모여들고 있다

                      《조선일보  2015 신춘문예 당선 시》

 

첫 시집 펴낸 '노래하는 시인' 정현우

"문학적 음악 들려주고 싶어요"     

 

정현우(35)는 노래하는 시인이다.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2007년 가수로 먼저 데뷔했고,
이후 ‘시인의 악기상점’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2019년 EP 앨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냈다.

이름만큼이나 ‘문학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가 최근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창비)를 펴냈다.
등단 6년 만에 펴낸 첫 시집인데도
출간 3주 만에 4쇄를 찍는 등 독자 반응이 뜨겁다.

 

“잘못을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용서할 수 없는 것들로 나는 흘러갑니다.”

 2019년 4회 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비롯해,
시집 전반을 관통하는 것은 ‘슬픔’의 정서다.

 

시인은 드러나는 순간 사라지거나 부정되는
슬픔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얼마나 많은 슬픔을 깨뜨려야/
 사람이 인간이 될까”

(‘유리 주사위’)라고 자문하기도 한다.

지난 2일 전화로 만난 정 시인은
 
제게 시 쓰기는 슬픔을 털어내는 과정이었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이나 친했던 친구의 죽음과
같은 슬픔의 감정과 기억들이 시로 되살아난 것 같다”
고 말했다.


정 시인은 시집을 통해
 “가난에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안데르센 <눈의 여왕>을 보고 부러워
 어머니께 그 책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어요.
결국 그 책은 못 사고 어머니가 대신
윤동주와 릴케 시집을 가져다 주셨는데,
 어린 시절 그렇게 윤동주의 시를 처음 접하고 따라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일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가난과 결핍 속에서도 맑음과 신비로움을 유지하는 정서를 윤동주 시를 통해 배웠습니다.”

20대 초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이후 ‘라임(Lime)’이라는 예명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매년 신춘문예 투고를 계속했다.

열여덟 살부터 10년 넘게 투고한 끝에
‘면(面)’으로 2015년 등단했다.

 ‘시인의 악기상점’에선 보컬에 작사·작곡까지 맡고 있다.
정 시인은
“시나 음악이나 감정적으로 교류되는 것은 비슷한데,
시는 가사에 비해 어떤 제약이 없어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같다
고 했다.



2019년 그가 12년 만에 발표한
EP 앨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는
 ‘음악하는 시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김민정 시인의 시집에서 앨범 제목을 가져와
 시의 느낌을 담은 가사를 썼고,
수록곡 ‘빛의 호위’는 조해진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노래다.

 문학과 음악의 일종의 ‘컬래버레이션’인 셈이다.


“음악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잖아요.
‘문학적인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앞으로도 문학작품을 토대로,
제 나름의 감정선을 담은 가사를 써서 문학작품집처럼
 CD 형태의 앨범을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 시인은 자신의 시를 노래로 만든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다.
“시집의 첫 시가 ‘세례’인데,
 세례에는 씻겨 내린다는 의미도 있잖아요.
사람이 슬프거나 힘들 때 할 수 있는 일은 그 슬픔이 씻겨 내려갈 때까지 힘껏 울고,
있는 힘껏 슬퍼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슬픔 속에서도 세상의 끈을 놓지 말고
그 안의
아름다움을 붙잡고 살자는 마음을 시집에 담았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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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님의 일력은,

 제겐 선물 같았습니다..

 

이.. 선물같은 일력을 구입해주신 이웃님..

선물같은 하루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배돈 적립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소/라/향/기  ...

나태주, 시간의 쉼표

나태주 글그림
서울문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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