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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미터O》 이준영 SF 장편소설 | 문학 2021-01-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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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라미터O

이준영 저
황금가지 | 202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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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건투를 빈다, 최후의 인간."

 


 

이준영 작가의 SF 장편소설 《파라미터O》는 인류 멸종 위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방사능에 노출되어 더 이상 생산을 할 수 없게 된 인류는 개체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은 생존자들은 보호복 없이는 나갈 수 없는 사막 황무지로부터 몸을 피해 보호 시설 속에 틀어박혀 살아간다. 이 시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조슈'가 주인공이다.

 

'조슈'는 몇 년 전 사고로 시설에서 추방당해 바깥세상을 전전하고 있는 엄마를 찾기 위해 조사를 하던 도중 자신을 '이브'라 칭하는 작은 로봇을 만나게 된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반전과 통찰로 가득한 이 작품은 내게 하나의 사고 실험으로 가는 초대장 같았다.

 

 


 

 

최후의 인류가 사는 보호 시설엔 생존에 필요한 시설 내 산소를 생성하는 인공 광합성 장치 '나무'와 사용자에게 강력한 쾌감을 선사하는 헬멧 '쾌감기' 가 있고 이전 세대 인류의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유전자가 보관된 '씨앗 탱크'가 있다. 이 씨앗 탱크를 보존하는 것이 남은 인류의 사명이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감옥'이다.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폭력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의 뼈대를 보는 것 같았다. 피해자의 용서와 가해자의 뉘우침만이 둘 사이의 격리를 해제시킬 수 있다. 인류의 생존에는 폭력과 잔인성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따라옴을 강하게 긍정하는 동시에 그것이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쾌감기'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상기시킨다.

 

 

사회로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 용서를 받아 '피해자'와 '가해자'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는 이 소규모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원칙 중 하나였지만 그것 때문에 영원히 감옥에서 썩을 수도 있었다.

258쪽.

 

 


 

 

'조슈'가 황무지에서 만난 '이브'는 다른 로봇들과 사뭇 달랐다.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고 작동 방식도 달랐다. 시설의 로봇들이 프로그램된 대로 청소나 식량 배급 같은 작업을 수행하는 반면, '이브'는 파라미터O에 입력된 값에 따라 행동한다. 파라미터O는 인간으로 치면 삶의 목적이다. 만약 기계종 처럼 삶의 목표가 순식간에 수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이것은 삶의 목적에 숭고함과 고결함을 부여하는 관점과 상충된다.

 

소설 속 인간들은 재차 의문을 던진다. 어차피 기억해 주지도 못할 업적을 위해 삶을 바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이 질문은 파라미터O가 설정되지 않은 기계종이 사명이 없다면 자기 존재에 모순이 온다고 말하는 장면과 겹쳐지면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 사명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저희는 사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어떤 것도 사명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모순을 불러옵니다. 사명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25쪽.

 

 


 

 

'이브' 같은 기계종을 만든 수수께끼의 인물은 누구인가? '조슈'의 추적은 계속되고 그것은 인류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어쩔 수없이 맞딱드리게 되는 근본적 질문과 이어진다. "어떻게 해야 자멸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238쪽) 인류 멸망 직전에서 시작한 이 소설에 응당 가장 어울리는 주제다.

 

지금까지 파라미터O를 '자율'로 설정한 모든 개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기적이고 불안정하게 변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값이 그나마 최선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들이 자멸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

238쪽.

 

 

그리고 만약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면, 지구의 다음 주인은 누가 되어야 마땅한가? 작품 속 생존자들은 그렇게 물으며 기계종에게 인간의 조건을 시험하려 든다. 인류를 대신해서 지구를 물려받을 만한, 도구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종種을 찾고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주체성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은 작중에서 재차 언급되는 부분이다.

 

단순히 도구로서 생활을 보조 했던 기계종들이 객체에서 주체가 되는 순간이 올까. 뛰어난 지능과 감성이 인공이라는 근거로 부정당해 왔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공식적으로 인류의 자손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인가.

 

인류는 이미 한번 멸망했다. 다중 우주론을 믿는다면 인류에게 자멸이란 낯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파라미터O라는 소재를 통해 작가가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인간 사회의 생태계는 SF 소설의 목적을 증명한다. 바로 사고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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