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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나는 해낼 수 있다 | 기본 카테고리 2023-02-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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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자의식 강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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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낼 수 있다]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네 단어 | 기본 카테고리 2023-02-2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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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해낼 수 있다

보도 섀퍼 저/박성원 역
소미미디어 | 2023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나의 삶을 결정짓는다. 답은 ‘나는 해낼 수 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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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기계발 저자들보다 더 유명한 저자로 꼽히는 분이 보도 섀퍼일 것이다. 그의 저서 국내 판매량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저자의 책이 많이 읽힌다는 것은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또 책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이란 의미와 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나는 해낼 수 있다』의 저자가 보도 섀퍼다. 그는 이미 세계 최고의 머니 코치이자 경영 컨설턴트로 손꼽힌다. 섀퍼는 세계 전역에서 경제적 자유와 성공에 관한 강연을 이어나가며 청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그가 집필한 『돈』, 『멘탈의 연금술』,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등의 저서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아 밀리언셀러로 등극하였다.

우리는 왜 이처럼 보도 섀퍼에 열광할까. 그 이유는 그가 ‘인생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 성공한 자수성가형 리더’이기 때문이다. 보도 섀퍼는 부잣집 자제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26세에 고액의 채무를 지어 파산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절과 낙담에서 빠져나와 4년 후인 30세에 재정적 자유와 정서적 자유를 거머쥐었다. 그는 어떻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 수 있었을까? 저자를 포함해 성공한 사람들이 반드시 실천하고 있는 비법이 이 책에서 밝혀진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저자에 대한 설명을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 쓴 것이어서 인기가 있다는 설명이다. 독자가 생각하는 바와 얼핏 다르기도 하지만 결국은 같은 뜻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이 책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보도 섀퍼가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쓴 책으로, 저자의 인생과 그의 성공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다. 평범한 인생을 살던 주인공 ‘카를’이 어느 날 일어난 자동차 사고를 계기로 장차 자신의 둘도 없는 멘토가 될 ‘마크’를 만나며 시작되는 이 책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해 가독성을 높이고 색다른 독서경험을 제공한다. 그와 동시에 저자가 경험을 통해 직접 배운, 성공적인 인생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제시한다.

책에서 저자는 누구나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것이 바로 ‘자의식’이라고 언급한다. 자의식이란 ‘나는 내가 마음에 든다’,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내적 확신을 가지는 것,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의미한다. 저자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코칭과 멘토링을 하며 자의식이 없으면 멋진 삶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의식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청년 카를이 자의식을 고양해 꿈을 실현하고 성공하는 여정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낸 자기계발서다. 이야기는 주인공 카를이 어느 날 자동차 사고를 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카를이 들이박은 앞차의 주인은 바로 ‘세계적인 자의식 전문가’ 마크였다. 그는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하는 카를에게 ‘자의식’에 대해 설명해준다.

“모든 것, 정말로 모든 것은 각자의 자의식에서 출발한다는 거야. 건강한 자의식을 지녀야만 충만하고,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모르지. 자의식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니까.”(p.29)

 

 

이 책에서 카를은 마크와의 만남을 계기로 자의식이란 무엇인지, 우리 인생에서 자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나가고자 한다. 부모님의 의향에 따른 법학 공부를 계속하는 것보다도 배우가 되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꿈이긴 해도, 카를은 처음에 자신은 배우가 될 수 없다고, 자신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크를 비롯한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의식 강화법을 배우고, 배우라는 자신의 꿈을 똑바로 마주해 이를 실현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책은 카를만의 이야기로 그친다면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어쩌면 아예 쓸 생각도 없었으리라. 저자는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임을 직시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파악했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품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적확했다. 이에 따라 독자들은 카를의 스토리에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를 되돌아보고 자의식을 키워 경제적 자유와 정서적 자유를 얻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남이 나에게 질문할 때 스스로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이 책이 제시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 "나는 해낼 수 있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 나는 아주 멋져, 아주 특별해.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 훌륭해."

 


 

카를의 일상은 계속된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던 카를은 어느 날 ‘자의식 전문가’ 마크를 만나 자의식에 관한 세 가지 핵심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저자는 마크의 입을 빌려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세 가지 질문에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양질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질문들은 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자의식의 중요한 세 가지 요소에 관해서도 알려준다. 첫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지, 둘째,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셋째 자신을 신뢰하는지 여부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모여야 자의식이 형성된다. 카를이 영감을 받는 장면이다.

저자는 우리의 잠재의식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그대로 실현된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스스로를 믿을수록 더욱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탄탄한 자의식이 정서적 행복을 만들고 경제적 자유를 이룩하는 밑바탕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자의식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카를의 이야기를 통해 자의식의 개념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자의식이 충만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사고법과 연습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자의식 강화의 A to Z를 알려준다.

“이 책의 이야기는 나 역시 똑같이 거치며 배워야 했던 일들이다. 이 책에 담긴 중요한 교훈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저자 보도 섀퍼 또한 태어날 때부터 자의식이 탄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도 이 책에서 카를이 체험했던 일을 똑같이 거치며 배워나갔다고 말한다. 그는 스물여섯 나이에 파산하고 좌절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그의 코치를 만났다. 자신이 유약한 존재라 느낀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존재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수시로 변하니까요.”(p.344)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자서전적 기술을 보여준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제 3자를 내세워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거의 모두에게 설득력 있는 주장이 전개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기술법이다.

그는 코치가 말한 대로 자신이 유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법을 익힌다. 이로써 좌절과 낙담에 빠져 있는 시간을 단축하고, 실패를 새로운 힘을 내는 계기로 삼아 경제적 자유를 이룩함과 동시에 정서적 자유까지 손에 넣는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이런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의 코치이자 멘토가 되어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때로는 좌절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카를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비춘 거울상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카를의 이야기는 우리 세상에서 성공을 거두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스로 성공을 이룩한 보도 섀퍼의 정수가 담긴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나는 해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 찬 삶으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멘토이자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에는 이 땅에서 성공을 거두고 행복하게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이 녹아 있다.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당신도 ‘나는 해낼 수 있어’라는 확신을 갖기를 바란다."(p.13) 「서문」 중에서

 

저자 : 보도 섀퍼(Bodo Schafer)

 

독일 최고의 금융전문가에서 세계적인 머니 코치이자 강연가로 25년 넘게 활동하며 수천만 명의 삶을 바꿨다. 대학 졸업 후 능력을 인정받고 경력을 쌓으며 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했지만 ‘돈은 나쁜 것이다’, ‘돈은 사람을 망친다’ 등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돈에 대한 파괴적 신념으로 26세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파산하게 된다. 이때 부의 원칙을 가르쳐준 멘토를 만나게 되고 돈이 불어나는 원리를 깨우쳐 4년 후 30세에 가진 돈의 이자만으로 평생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게 된다.

그는 단순히 경제적 자유를 이룬 데 멈추지 않고 돈과 성공, 행복의 문제를 꾸준히 연구했다. 그리고 돈에 대한 마인드를 바꾸는 데 있어 데일 카네기, 세네카, 토니 로빈스, 로버트 기요사키, 디팩 초프라 등 다양한 분야의 전설적인 멘토들이 말해온 나와 세상, 사물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부를 쌓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자신이 직접 깨닫고 경험한 부의 축적 원리를 정리해 강연과 집필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의 강연과 세미나는 유럽 전역에서 화제를 불러모으며 경제적 자유에 대한 돌풍을 일으켰고, 20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온 스테디셀러 《보도 섀퍼 부의 레버리지》 에는 그가 단 4년 만에 어떻게 압도적 부를 이루고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됐는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과 마인드가 담겨 있다. 또 보도섀퍼가 직접 만들어 제안하는 자산을 증식시키는 공식도 소개된다. 현재 직업으로 얼마를 벌고 있는지, 어떤 경제적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이를 이루기 위해 일과 돈, 인생을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도록 12가지 부의 원칙과 수입을 불리는 15가지 계명 등을 전한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저자가 그동안 더욱 발전시켜온 돈을 버는 기술적인 조언과 진정한 성공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더했다. 저서로는 《보도 섀퍼의 돈》,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멘탈의 연금술》,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등이 있다.

 

역자 : 박성원

 

이화여자대학교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뮌헨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공부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 번역가에 선정되었다. 지금은 전문 통역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 『린켄 할머니는 못 말려』, 『상사병도 쓸 만한걸』, 『사랑은 금발을 부른다』, 『꿈꾸는 소금통』, 『기억을 잃어버린 여우 할아버지』, 『레나의 인형 친구들』,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디지털 중독자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마음의 감기』, 『마음의 오류』, 『리더십, 전략적 사고 따라가기』, 『백자/분청사기』, 『자유놀이의 시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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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인간과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불굴의 거장 | 기본 카테고리 2023-02-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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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블로 피카소

이종호 저
인물과사상사 | 2023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20세기 거장으로 누구든 파블로 피카소를 꼽는다. 그는 자신이 신이 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의 인간의 한계 투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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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파블로 피카소』는 그가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탐색한다. 부제도 「거장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로 피카소의 생애와 작품을 중심으로 그가 '거장'임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한 피카소는 역사상 가장 많은 미술품을 남긴 화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피카소가 그린 유화는 1만 3,500점이었으며, 700여 점의 조각품, 판화, 데생은 물론 도자기 등 다양한 형태의 미술품 5만 점을 생전에 제작했다. ‘피카소 재단’은 피카소가 78년 동안 1만 3,500점의 그림, 10만 개의 판화, 3만 4,000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창작했다고 적었다. 작가와 비평가들은 피카소를 마술사로 여겼으며, 붓을 한 번 휘둘러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술가였다고 설명한다.

피카소의 작품은 한 화가가 그렸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시기별로 극명하게 다르다. 92세에 달하는 장수의 영향도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피카소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피카소는 단순히 자수성가한 부유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매우 성실한 '일중독자'였다. 거의 매일 8시간씩 그림을 그렸고, 죽기 1년 전에도 200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또한 죽기 12시간 전까지도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피카소는 평생에 걸쳐 5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기네스북에 오른다는 자체가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피카소가 예술 분야에서 이를 추구했다는 것은 더욱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피카소가 현대인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예술가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불굴의 투지라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많다. 1973년 92세의 나이로 운명했지만 그가 갖고 있던 인간의 투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1881. 10. 25~1973. 4. 8)는 흔히 입체주의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양식과 매체의 변경에도 기교, 독창성, 해학에 한계가 없이 작품을 제작했던 20세기 최고의 거장임도 분명한 사실이다.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종합적 입체주의까지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했다. 아방가르드 미술 모임의 핵심 인물로,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의 천재성은 20세기 미술을 지배했고, 상대적으로 20세기의 모든 미술가들은 그의 그늘에 가려진 것처럼 보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같은 대선배들의 계보를 잇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피카소는 기교, 독창성, 해학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없었다. 피카소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양식과 매체를 변경해가며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으나,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독창적이었고 때로는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조르주 브라크, 앙리 마티스, 페르낭 레제와 같은 동시대의 미술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아실 고르키, 윌렘 데 쿠닝, 데이비드 호크니를 포함한 후대의 미술가들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는 일찍이 화가인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열한 살이 되던 해에 라코루냐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공부했다. 피카소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놀라운 사실주의 작품인 〈첫 영성체〉(1896)를 그렸다. 이 작품은 그가 옛 거장들의 구도와 색채, 그리고 기법을 완전히 습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카소는 다른 미술가들의 양식을 받아들였는데, 그 결과 그의 작품 <페파 아주머니의 초상>(1896)은 마치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처럼 보이고, 〈푸른 옷을 입은 여인〉(1901)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904년에 피카소는 파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작가들의 모임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프랑스에서 살았다. 피카소가 초기에 제작한 회화와 판화, 그리고 조각 작품들은 청색 시대(1901~1904), 장미 시대(1905~1907), 원시 시대(1908~1909),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1908~1912), 종합적 입체주의 시대(1912~1913)로 나뉜다. 청색 시대의 작품들은 우울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피카소는 청색의 색조를 자주 사용했고, 알코올 중독자, 거지, 매춘부, 방랑자, 빈민들이 마치 엘 그레코의 인물들처럼 길쭉하고 수척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특징의 작품으로는 〈비극〉(1903)이 있다. 장미 시대에는 핑크색과 오렌지색의 색조가 두드러지며, 〈곡예사 가족〉(1905)에서처럼 어릿광대, 곡예사, 서커스단원들이 등장한다. 원시 시대에는 고대 이베리아 조각과 아프리카 미술, 그리고 오세아니아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선구적인 작품인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을 선보였다. 인물들을 각이 지게 묘사한 이 그림은 입체주의로의 전환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동료 미술가인 브라크와 함께, 피카소는 구상 작품인 〈기타를 든 여인〉(1911)과 정물화인 〈죽은 새들〉(1912)을 제작하면서, 3차원적인 형태를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하는 입체주의 양식의 독창적인 기법과 이론들을 정립시켰다. 또한, 피카소는 〈기타〉(1912~1913)와 같은 입체주의 조각들에서 3차원의 물체들을 거의 그림같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 공간적인 순서를 반대로 처리했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 종합적 입체주의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식탁 위의 병과 포도주 잔〉(1912)과 같은 작품에서처럼 신문, 종이, 헝겊을 콜라주 기법으로 그림 위에 덧붙였다.

 


 

피카소의 후기 작품들은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조각상처럼 견고한 신고전주의적인 구상 작품들을 제작하다가, 1920년대에는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옮겨갔으며, 1930년대에는 뛰어난 기교를 선보인 에칭 작품인 〈미노타우로마키〉(1935)에서처럼, 신화적인 주제들을 탐구했다. 그는 활동기간 내내, 구성과 공간, 그리고 기법과 색채에 신경을 썼고, 투우, 기타, 어릿광대와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채택했다. 피카소는 스페인 내란 중에는 벽화 〈게르니카〉(1937)를 제작하여 파시즘에 저항했다. 그는 〈게르니카〉 이후에도 드로잉, 에칭, 회화 연작을 통해 전쟁의 고통을 표현했는데, 에칭 작품인 〈우는 여인〉(1937)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피카소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새롭게 해석한 〈시녀들〉(1957)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선배 미술가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1960년대에는 색채주의 작품들을 제작했으며, 이 중 일부는 신표현주의로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

피카소의 개인사는 그의 미술 양식의 변화 과정만큼이나 유동적이었다. 그는 두 번 결혼했고, 세 명의 여자로부터 네 명의 아이를 가졌다.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항상 독창적이었던 거장 피카소의 작품들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는 방탄유리 뒤편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려 있다. 이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에칭 연작 '전쟁의 참화'(1810~1820경) 이후로 전쟁의 공포와 잔혹성을 가장 잘 요약한 작품일 것이다. 1936년에 스페인 내란이 발생했을 때 피카소는 프랑스에 살고 있었다. 공화국에 충성하던 피카소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1937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을 위해 작품을 출품해 줄 것을 의뢰받았다.

 


 

공화정부에 불복한 파시스트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요청으로, 독일의 비행대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인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을 하여, 사망자가 1,600여명에 달했다. 피카소는 이 참사를 의뢰받은 그림의 주제로 채택하여 파시스트들에게 강력히 항의하고자 했다. 가로 23피트(7.8미터), 세로 11피트(3.5미터) 크기의 거대한 캔버스에 회색과 흰색의 제한적인 색채가 칠해졌다. 단색의 색조는 참사의 슬픔을 나타내고 신문 보도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황소, 말, 백열전구, 믿기지 않는 공포에 괴로운 표정으로 허둥대며 달리는 사람들, 꽃을 든 팔, 부서진 검 등 풍부한 이미지들에 다양한 해석이 내려져왔으나, 피카소는 그들에게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는 여인상의 의미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그림은 파리를 시작으로 해서 유럽을 순회하며 전시되었고, 이후 뉴욕 근대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스페인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 때 반환해 달라는 피카소의 요청에 따라, 프랑코가 죽은 후, 1981년에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피카소는 1937년 〈게르니카〉라는 대작을 완성했다. 죽은 아이들과 불길에 휩싸인 집, 깨진 동물의 머리 등을 그려 전쟁의 참혹상을 고발했다. 그런데 그는 이 그림에서 유독 붉은색을 쓰지 않았다. 참혹함을 강조하기 위해 오히려 검정, 흰색, 회색만을 썼다. 흑백의 대조만이 강조되는 거대한 화폭에는 폭탄도 전투기도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피카소의 그림은 전쟁의 참혹상을 처절하게 보여주었고 지도상에서 사라진 마을 게르니카를 사람들에게 증언해 주었다.

 


 

1944년 파리가 해방 된 후, 피카소는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정치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한동안 그의 주제는 ‘전쟁과 평화’였다. 1951년에는 〈한국에서의 대학살〉, 1954년에는 〈전쟁과 평화〉를 그렸다. 그가 〈한국에서의 대학살〉을 그렸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였다. 1953년 한 잡지의 표지화로 스탈린의 초상을 그리면서 그는 다시 공산당과 충돌했다. 표지에 실린 스탈린의 얼굴이 너무도 젊었던 것이다. 공산당원들의 비난 중 하나는 이러했다. “오늘 스탈린의 가혹한 죽음이 찾아온 것에 이어 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피카소는 혼란과 몰이해의 씨를 뿌릴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피카소는 이제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역사를 포기했다. 가장 강한 것은 그림이다. 그는 어느 노트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썼다. “그림은 나보다 강하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게 만든다.” 그는 대가들을 상대로 버거운 대결을 시도했다. 대가들의 그림이 심하게 변형되어 그의 화폭 안으로 들어왔다. 1957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그의 화폭에서 변형되었다. 그리고 1960-61년에는 세잔의 〈풀밭 위의 점심〉도 변형되었다.

80대로 접어들어서도 그림과 도예 작업을 계속했다. 특히 이 시기는 판화의 시기였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실험을 계속했다. 피카소는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판화의 역사가 쌓아온 기존의 규칙들을 무시했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피카소는 1973년 4월 8일. 프랑스 남부 무쟁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아흔두 해 삶 동안 많은 친구와 여인이 있었다. 그들은 그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카사게마스의 자살은 그의 그림을 청색으로 가득 차게 했고, 페르낭드는 그 청색을 화폭에서 몰아냈다. 러시아의 발레리나 올가는 그의 그림에 한동안 질서와 안정을 부여했다. 도라 마르는 〈게르니카〉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인으로 나타났고, 프랑수아 질로는 빛이 가득한 앙티프 시절을 지배한 여인이다. 그의 임종을 지켜 본 부인 자크린은 화가와 모델 연작의 중심을 차지한 인물이다.

 


 

1989년 〈라팽 아질에서〉가 407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한때 자신의 캔버스를 땔감 삼아 추위를 녹여야 했다.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단 한 점도 사지 않았던 프랑스의 미술관들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피카소의 국적은 에스파냐이지만, 그를 키운 토양은 분명 프랑스이다.” 피카소가 없었다면 큐비즘이 있었을까? 에디슨이 없었더라도 전구는 발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큐비즘은 그렇지 않다. 20세기 미술 최대의 혁명, 큐비즘은 피카소의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큐비즘도 없었을 것이고, 현대 미술은 많은 부분이 현재와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피카소 이후 화가들은 남의 마음에 드는 그림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릴 권리를 소유하게 되었다. 한 번도 어린아이처럼 서투른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던 그 사내 덕분에···.

 

저자 :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한국발명교육학회 논문상, 고려대학교 이정덕 건축상,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았다.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해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과학저술가)으로 신문, 잡지 및 인터넷에도 활발히 기고하는 등 과학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직업』,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피라미드』, 『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 『영화 속 오류』,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등 100여권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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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기본 카테고리 2023-02-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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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계보를 가로지르며 ‘여성-딸-어머니-인간’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성찰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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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딸의 사모곡으로 완성한 어머니의 제자리 찾기 | 기본 카테고리 2023-02-2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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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 저
휴머니스트 | 2023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논픽션 작가가 쓴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 ‘어머니’와 그녀의 삶을 정의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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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제인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I never had a mother)”는 에밀리 디킨슨이 편지에 썼던 유명한 문장이라고 한다. 이 선언 같은 문장은 모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고, 내 안의 ‘여성적 힘’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선언은 어머니의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며, 나를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 여성에게는 모두 어머니가 없다. 이 책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작가 하재영이 어머니의 생애를 인터뷰하며 그와 교차하는 본인의 이야기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재해석한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사적’으로 자신과 가장 가깝고 자신이 거의 모르는 한 여성,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필경사가 되었다.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어머니라는 텍스트를 읽기 위한 저자의 치열하고 용감한 시도 끝에 피어난 두 여성 사이의 교감이 우리 시대 어머니를 해석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의 자존감, 문해력, 창의성, 영어, 수학, 과학, 미술, 돈···. 제목에 ‘엄마’가 포함된 책을 검색하면 자식을 키우는 일에 관한 어머니의 온갖 책무가 쏟아진다. 먹이고 입히는 일이 당연함은 물론이고 한 인간의 성장과 관련한 일이 오로지 어머니의 손에 달린 것만 같다. 시대에 따라 ‘훌륭한 어머니’ 상은 달라지고 있지만, 오늘날 ‘어머니 역할’은 더 촘촘히 분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이 모든 영역을 관장하기를 기대하는 것,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가까스로 다가서면 상찬을 바치고 미치지 못하면 가혹한 평가를 쏟아내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어머니도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실패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찬양과 불가능한 기대로 박제된 명사 ‘어머니’를 넘어 한 ‘인간’으로 그를 대면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저자 하재영은 "나와 가장 가깝지만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 바로 ‘어머니’를 쓰기로 한 것은 자신이 아니면 어머니의 존재마저 잊혀지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어머니를 잊는다면 자신의 존재감마저 무의미해질지도 모르는 위기의식에서였을까? 사실 모든 사람에게 ‘엄마’는 한 사람의 개별자이자 생을 통해 연결된 존재이기에, 그를 알고자 하는 모든 자식들에게 ‘난제’다. 특히 딸이면 더욱 어려운 문제로 닥칠 것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삶을 경청하고, 해석하고, 감응하려는 치열한 시간을 통해 또 한 번 모녀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저자와 어머니의 관계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정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어쩌면 가장 평균적인 가정일지도 모른다.

1955년생, 남 앞에서 엉덩방아 찧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스케이트를 배우지 못한, 문학과 영화를 사랑하는, 결혼 후 목소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30년 시집살이를 견디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가족을 부양한,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고된 시간을 통과한 지금의 내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고선희. 어머니의 이력서에 쓰일 만한 일반적 사항이다. 이는 이 무렵의 어머니 나이를 가진 분들의 평균, 혹은 조금 윗 줄에 자리할지 모르겠다. 딸인 저자도 마찬가지다. 1979년생, 고집 세고 자신만만하던, 발레와 함께 어린 날을 보낸, 타고난 신체로 평가하는 세계에서 환영하지 않는 몸이기에 좌절한, ‘일’과 ‘폭력’의 관계 안에서 수없이 꺾이고 꺾여야 했던, 생존자임를 감각하는 행위로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자, 하재영.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모녀 관계의 두 여성을 만날 수 있다. 저자 하재영은 유년에서 청년, 중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고선희의 삶을 인터뷰하며 엄마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딸이자 그와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되새긴다. 누군가의 딸로 살아가는 여자들은 알 것이다, 엄마와 마주 앉아 생을 돌아보는 일의 지난함을. 딸과 엄마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혹은 알아주기를 기대하기에 어쩌면 상대의 진실에서 가장 먼 사람들일지 모른다. 서로에게 닿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모녀는 타이핑한 문서와 육필로 쓴 글을 사진으로 찍어 서신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서로의 삶으로 들어서고 물러나는 시간을 통과해 공동의 회고록을 완성해냈다.

이 책은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을 떠올리는 엄마의 이야기. “내가 처한 상황을 견디느라 엄마를 멀리했던 시절” 감당해야 했던 생의 무늬를 돌아보는 딸의 이야기다. 앞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 여성의 시간이 교차하는 기록 속에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왔는지 그 세월의 흔적이 남긴 상처와 긍지가 섬세한 필치로 펼쳐진다. 동시에 모녀가 ‘여성’이라는 조건 안에서 세대를 넘어 경험한 공동의 지형은 무엇이었는지 짚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자기의 시간을, 어머니의 역사를 떠올릴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는 모녀라는 관계의 타자로서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 또는 알기에 엄마에 대해 쓰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을 실행하기에 이 작업의 결말은 확실시된 실패이지만 의미 있게 실패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엄마와 딸 외에도 중요한 인물이 한 사람 더 등장한다. 바로 하재영의 할머니이자 고선희의 시어머니, 송영임이다. 고선희는 송영임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며느리이자 딸이고, 말동무이자 시녀였어. 그분의 세계에서 그 모든 역할을 감당하는 유일한 사람.” 하재영의 기억 속 송영임은 고선희의 그것과 다르다. “나에게 할머니는 애증의 대상이다. 할머니를 사랑하기에 두렵다. 나의 글쓰기로 우리의 사랑을 배반할까 봐, 할머니를 단순하고 납작하게 ‘나쁜 시어머니’로 만들어버릴까 봐.”(p.194)

하재영은 모녀도, 자매도, 친구도 아닌 두 여성의 관계를 둘러싼 시간의 흔적을 살피며 가부장제 안에 있던 ‘두 명의 갇혀 있는 자’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또 한 사람, 고선희의 어머니 채무식은 어디로 갔을까? 저자의 글이 ‘모계의 기록’에 충실하려면 책의 첫 장은 엄마의 엄마에게서 시작되어야 했고, 마지막 장은 엄마의 엄마에게서 끝나야 했을 것이다. 이 책에 채무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재영은 “이 책의 숙명적 한계는 어느 장에서도 나의 모계,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에 대한 ‘서사적 단서’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가 엄마의 삶을 기록해야 했던 이유는 “우리의 계보에 ‘비존재’인 할머니가 있음을 기억하고, 할머니와 달리 엄마를 ‘존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저자는 미시사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앞 세대 그리고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의 사유를 종횡무진 통과하며 삶과 공부를 하나로 직조해낸다. 에밀리 디킨슨, 시몬 드 보부아르, 에이드리언 리치, 베티 프리던, 수전 구바, 샌드라 길버트, 수전 손태그, 리베카 솔닛, 정희진, 김영옥, 하미나… ‘글 쓰는 여자’의 계보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유려한 문장을 따라 독자들은 ‘여성-딸-어머니-인간’으로서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어머니와의 관계는 독자 각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어머니를 낯설게 바라보며 대화를 시도하는 이도, 끝내 해결할 수 없는 의문과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백 쌍의 모녀에게는 백 가지, 아니 그 이상의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가 어떤 텍스트이든 흉터로 영광으로 내 안에 남고 우리는 그로부터 나아간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수많은 어머니의 경험과 기억이 흩어지고 부유하다 휘발하지 않도록 하는 일, ‘모계를 기록’함으로써 단독자이자 연결된 자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돌아보게끔 하는 단초가 되어줄 것이다. 엄마에 대한 모름을 앎으로 바꾸기 위한 저자의 시도로 시작된 글은 다음과 같은 어머니의 말로 끝을 맺는다. “나는 네 덕분에 또 조금 성장한 것 같다.”(p.263) 생을 용감하게 마주하고 살아내는 또 하나의 길이 우리에게 열렸다.

 


 

기나긴 문학사에서 소수자인 여성 작가의 책을 읽었더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처럼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천사와 괴물 둘 다 ‘죽이는’ 울프적인 행위”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더라면, 그리하여 여성 작가가 되는 것은 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로부터 이어져온 계보의 말단에 나를 위치시키는 일임을 깨달았더라면 나의 삶과 글은 달라졌을까?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쓴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문학에서의 부권 은유를 다루는 첫 장 ‘여왕의 거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작가에게 자아 정의는 자기주장보다 반드시 선행한다. 창조적인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한다면 언어화할 수 없다. 그러나 여성 예술가에게 자아 정의의 본질적 과정은 그녀와 자신 사이에 끼어든 모든 가부장적 정의 때문에 복잡해진다.(p.73)

 

저자 : 하재영

 

논픽션 작가. 2006년 계간 〈아시아〉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2018년부터 논픽션을 쓰고 있다. 버려진 개들의 삶과 죽음을 담은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집과 여성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어린이를 위한 동물권 논픽션 『운동화 신은 우탄이』를 썼다. 개인의 미시적 서사가 사회에 대한 증언으로 확장하는 이야기, 공적 주제가 한 사람의 내밀한 삶으로 수렴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타자와 연결되는 글쓰기를 소망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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