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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 빛과 영원의 시계방 | 기본 카테고리 2023-02-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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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빛과 영원의 시계방

김희선 저
허블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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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다운 문학을 해보겠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 모두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틈틈이 취미 삼아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필요에 의해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회의 여러 가지 직종들 중에서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택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좀 제대로 해보자 하는 생각을 안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늘 서평 할 김희선 작가는 약사와 소설가의 일을 병행하고 있다. 보통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병행하게 되면 퀄리티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두 가지 일 모두 좋지 않은 완성도를 보이는 게 특징이지만 놀랍게도 김희선 작가의 글을 보면 소설 하나만큼은 전업작가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근본적인 생명력과 같은 것으로서 언제나 인간의 삶 한가운데 존재하게 마련이다. 삶은 꿈을 실현시키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꿈을 지향하는 생명력으로서 욕망은 어떤 현실 원칙의 억압과 검열 아래서도 살아 있고, 그것이 살아 있는 한 당연히 현실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불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인간의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러나 불가능성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SF 소설이라는 장르는 허위의 욕구가 아닌 욕망의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 욕망의 목소리로 표현되고 결코 정형화될 수 없는 언제나 새로운 시도로 그 불가능성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다. 오늘은 <빛과 영원의 시계방> 수록된 8개의 단편 중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다룬 3편의 단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공간 서점>은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시계방 천금당이 이제는 공간 서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주인공인 아들은 아버지가 말했던 무언가가 공간 서점 어딘가에 있다며 사설탐정에게 의뢰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주 오래전 한 대학생에게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수리해 주고 한 푼도 없던 그에게 수리비 값으로 대신한 이상한 책 한 권을 받게 된다. 책의 표지에는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게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

아버지는 그날부터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저녁에 집에 오지 않고 가게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 날 오랜만에 집에 온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믿지 못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 어디든, 어느 시간으로든 다 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고 시운전까지 끝낸 상태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 단정 지어 버리고 나중에 마저 들려달라며 자리를 일어나자 그는 풀이 죽더니 조용히 안방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주인공은 대학생이 되었고 집과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얻어 지내던 중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는 그 대학생에 얽힌 이야기며, 책을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길 들려주었다. 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외쳤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돌아가서 할 일을 해야 할 때 말이야.

기계는 완벽히 작동하고 시운전도 여러 번 해보았으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지.

주인공은 계속 건성으로 대답했고 꼭 돌아가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쓸쓸하게 웃으며 주인공에게 "오랜 후의 넌 잘 지내고 있더구나."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는 자취방 계단을 내려갔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지방 도시의 의약품 도매상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오후 업무를 마치고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차 유리를 두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눈을 떠보니 그건 나이 들고 노쇠한 아버지가 아니라 사라지기 직전의 아직 장년의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미친 듯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만 아버지는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은 어쩌면 지금껏 아버지가 했던 말들이 모두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사설탐정에게 의뢰를 맡기게 된다.

허버트 조지 웰슨의 타임머신과 영화 타임머신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8편의 단편 중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은 길을 되돌아가는 것처럼 시간을 되돌릴 순 없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음은 당연했다. 열망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다른 표현이고 결국 인간은 상상 속에서라도 시간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인류에게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SF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회환' 형상화한 변함없이 사랑받는 소재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달을 멈추다>는 인류는 예전 인류가 가졌었던 비효율적 감정들 예를 들어 분노, 슬픔, 격정, 사랑, 같은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휴먼 3.0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느 날 군나르 순두 베리라는 인물이 자신의 전생이 월명사라는 스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은 '미타찰' 전원이 끊이지 않는다면 영생불사할 수 있는 공간 즉 전뇌 에뮬레이션의 첫 번째 실험자가 된다.

처음엔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나에겐 원대한 꿈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뭔지는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꼬박 이틀하고도 12시간이 지난 업로딩 끝에 에뮬레이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연구원은 보고 하였다. 순드베리는 인터넷상에 살아있고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누군가에게 예고 없이 나타날 거라 이야기하지만 예상과 달리 순드베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군나르가 업로딩된 컴퓨터 내부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 자신을 군나르 순드베리라고 칭하는 자가 보낸 메일이 세계 곳곳에 보내졌고 그와의 교리문답식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듯 머리에 전극을 부착한 채 영원한 잠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곧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소립자가 어떻게 미래를 바꾸지? 물론 기술적으론 이해가 가. 뭐,

북반구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그런 얘기잖아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주인공과 영주는 기계 속으로 들어가 순드베리(월명사)의 의식에 일으켜 지금에 사태를 막을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영주는 먼저 저쪽 세계로 떠났고 그도 지금의 파국을 되돌리기 위해 월명사가 있는 과거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려있는 '관내분실'에 나오는 마인드 업로딩 등장한다. 인간의 마음, 정신을 컴퓨터에 전송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기억과 화학 반응을 칩과 같은 외부 장치에 기록해낼 수 있다면 인간의 뇌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인간의 뇌에 있는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를 모두 분석하여 재현해 내는 것이 현재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것이 가능하다고 하여 컴퓨터로 재현해낸 마인드가 실제 인간과 동일하다가 간주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과 똑같은 인격체로 업로딩 되었다면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미 전뇌화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에서 먼저 소개되었다. <달을 멈추다>와 비슷한 소재의 단편이 하나 존재하는데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감독의 전뇌가 들어가 있는 박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전뇌에 연결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내용의 단편이 있었다. 월명사가 계획한 마인드들의 거대한 커뮤니티. 돌아가기 싫을 정도의 완벽한 공간으로 초대라는 소재는 무척이나 매혹적인 소재이다.

<가깝게 우리는>은 W시 외곽의 버려진 물류창고 부근에서 한 노인이 폭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더운 여름날 프로판 가스통을 등에 메고 있다가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 폭발로 노인은 산산조각 났고 남은 것이라곤 쭈글쭈글하고 검게 그은 데다 일부는 녹아버리기까지 한 플라스틱 가짜 손이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탓에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노인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세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 지나고 한 달 후 어느 남자의 트위터에서 다시 그 손을 보게 되었고 플라스틱 손이 거대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던 노인의 손이 꽉 지고 있던 주먹을 펴자 거기서 녹슨 황동 빛 태영 하나가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 손은 곧바로 그걸 다시 움켜쥐었다.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혹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듯.

"태엽"

노인을 처음 만난 곳은 W의 시립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자서전 쓰기 강좌에서였다. 노인들 대부분이 주인공의 강의를 듣고 이제 겨우 한글을 뗀 정도의 글쓰기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냥 전체적인 줄거리를 봐주면서 다섯 번의 강의만 채우면 된다는 다섯 번의 강의만 채우면 된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진수 김 베르너'라고 밝힌 기이한 노인에 의해 뒤집히고 말았다.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듬성듬성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원고지 열 장씩을 나눠주고는 가져갔던 소설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졸고 있는데 '홍농종묘'라고 쓰인 야구모자를 쓴 노인이 원고지를 달라고 한 것이다. 기이한 할아버지는 조만간 자서전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글을 찬찬히 봐달라고 할 참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손으로 쓴 원고 뭉치를 들고 와 건넨다

원고의 내용은 세계 기능장 올림픽에서 금상을 탄 그는 고향에 있는 작은 시계 방의 점원으로 취직했다. 어느 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자신을 따라오라며 이것은 조국의 부름을 받아 가는 거라고 하며 그들과 함께 검은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그에게 스위스로 밀항을 해 그 프랑스인 사업가가 운영하는 비밀 공방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자케 드로의 오토마톤을 만난 뒤 그에게서 자동인형 만드는 법을 빼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어떤 것에도 세뇌되지 않고 열심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24시간 일할 수 있는 자동인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케 드로에게 오토마톤 만드는 법을 배웠다니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 사람은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 장인이고

죽은 지도 200년도 훨씬 넘었단 말이에요.

주인공은 노인의 글에서 자서전적 진실을 느끼게 되었고 진수 베르너의 원고의 다음 편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지만 그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자케 드로에게 오토마톤 만드는 법을 정말 배웠는지, 정부가 요구하는 24시간 일하는 인형을 만들어 주웠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과연 노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정부의 노동권을 위해 투정하던 사람들을 모두 자동인형으로 교체하기 위해 그를 스위스로 파견한다는 황당한 내용의 이 소설은 <야근>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황석영의 <야근>이라는 단편소설에서 황석영은 공장 노동자들의 특이한 노동쟁의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초보적인 부당노동행위의 개선을 요구하던 공장 종업원들이 일제히 약속된 시각에 작업을 중지하기로 결의하였으나 그 결의를 어긴 일부 종업원에 의해 단체행동이 좌절되자 한 사람이 고압 동력선을 꺼 버리고 자기는 감전사를 당하는 내용으로 서술적인 설명을 일체 배제하고 긴장된 문체의 간단한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엮어진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소설에는 산업 노동자의 노동현실의 일부가 압축되어 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값싼 노동력의 문제가 있고, 어용화한 노동조합이 있고, 힘을 가진 자와 힘없는 자들에 대한 무시와 횡포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들 사이를 갈라놓는 억압적 메커니즘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들어 있다.

체험이나 경험은 한 인간의 사고나 행동 양식, 그리고 글쓰기를 결정하는 기본 요소이다. 그 체험이 한 인간의 내부에서 쌓이고 쌓여서 심리적 복합체를 형성한다. 그 심리적 복합체와 글쓰기의 관계는 창작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보여주곤 한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그의 개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그의 체험과 경험 때문이다. 김희선 작가의 글들에서는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느껴져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 군사정권, 부조리한 정부의 시책, 코로나 사태 등의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체험과 경험이 녹아 있는 SF 소설의 탄생은 이 시대의 어떤 전반적인 경향에 대한 하나의 진단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깊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김희선 #빛과영원의시계방 #허블 #동아시아출판사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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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형 / 말과 꿈 | 기본 카테고리 2023-02-2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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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말과 꿈

양선형 저
자음과모음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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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서 없는 대상만큼 낯설고 기이한 것은 없다. 평범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말이 안 되는 사건의 흐름이 우리에게 친숙하다는 것은, 의식으로 의식의 세계를 볼 때 또는 무의식으로 무의식에 대응할 때의 느낌일 뿐이다. 그의 세계에서 가장 낯익은 것들이 그것을 뒤집어 놓은 시선에서 포착되는, 자기 자신마저에 대해서까지 느끼는 낯설음. 무의식 혹은 잠재된 의식으로 바라볼 때 친숙해 온 모든 것들이 이질감, 이물감, 낯설음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을 확인한다.

 

그는 여전히 실종된 말을 찾을 수 있다는 관념이 무척이나

황당하게 여겨진다는 사실과 싸우는 중이었다.

 

꿈에서 만난 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써 내려간 이 작품은 활주로에서 도주한 말을 찾는다는 목표로 떠나는 도중 신비롭고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오로지 주관이 경험한 바에 따라서만 때로는 극사실적으로, 때로는 초현실적이라는 관형어로는 충분치 않을 만큼 꿈결같은 이 작품은 종잡을 수 없는 진행과, 현실과 꿈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이완 없는 긴장 상태를 오래 유지해야 하는 피로가 독서 과정 내내 나를 괴롭혔다.

 

<말과 꿈>을 느끼면서 느꼈던 양선형 작가의 정밀한 묘사는 하성란 작가의 마이크로 묘사를 떠올리게 했다. 모든 사물의 동작과 내면의 움직임이 세밀하게 포착된 관찰자의 시선은 그의 상상에서, 자신의 의식세계 안에서 주관적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된 모습과 행위 자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하게 해 보고 타인의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매우 상투적이고 친숙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전혀 낯선 장면을 본듯하고 거기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몇 해가 흐르고 그 나라에 큰 지진이 있었소. 지반이 침하해 도로가 갈라지고 가옥들이 붕괴했소. 대피하지 못한 사상자들이 속출했소. 가족과 집을 잃은 난민들이 거리로 나앉았고, 도시는 와해된 판자와 어마어마한 규모로 내려앉은 돌무더기 사이에서 어수선한 폐허가 되어 있었소. 나는 매일이 절박한 심정이었소. 대사관에 전화해 뒤늦게 오열하며 딸의 소식을 물었다.

"나는 딸의 안부를 규명할 수 없었소. 나는 뉴스를 보았지. 황톳빛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어린아이의 굶주림, 현장에서 시신을 운구하는 어깨가 가냘픈 승려들, 바닥에 모포를 깔고 김이 나는 양철통 주위에 둘러앉아 수프를 끊이는 낯선 사람들을 보았소. 딸이 살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었소. 그들에게 분배된 비탄과 절망이 내가 기억하는 딸의 얼굴에 환영처럼 드리워졌다오. 그래도 나는 딸이 재해에 휩쓸렸으리라는 가능성은 상상하지 않았소. 그것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든 딸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오. 나는 구호 작업을 벌이는 사람들과 황폐한 거리에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퍼더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소. 나는 나를 안심시킬 긍휼한 착각을 갈망했다오. 그들 사이에서 혹여 딸을 닮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희박한 확률임을 예감하고 있었소. 애통한 수심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한 공포와 불면이 켜켜이 퇴적된 그들의 얼굴을 녹화된 비디오의 일시정지 화면 속에서 일일이 헤아리며 뚫어져라 바라보았소. 나는 그렇게 딸의 실마리를 찾아다녔소. 그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딸이 그곳에서 짓고 있을 어떤 표정의 그림자를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오. 이내 기사 할아버지는 트럭 적재함에 쪼그려 앉은 난민들 사이에서 딸의 뒷모습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노후한 적재함 안쪽으로 헐벗은 난민들과 암소나 노새 같은 가축들이 더불어 바글거렸소. 석회 분진에 오염된 자줏빛 벙거지를 쓴 여자가 카메라를 등진 채 털이 민둥한 작은 원숭이에게 노란 참외를 먹이고 있었소. 저 나라에도 참외는 노랗구나. 나는 생각했다오. 이내 기사 할아버지는 그 사람이 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사했던 것처럼 그 사람과 닮은 자신이 딸이 무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p.79

 

시각적으로는 평범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사변적이며 지극히 주관적이기도 한 문장들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평범한 의식에서 무언가를 사유하게 되는 것이 정상의 상태이며 우리에게 안도감을 주는 계기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의식과 무의식이 착종하여 위치가 뒤바뀔 때는, 사유를 한다는 것은 긴장의 끊김이다. 그것은 잠에서 깨어나기 전 내던져 저 무한한 하강을 시작하는 순간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다.

 

죽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죽어서 싱그러운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고요?

 

누군가에 의해 깨어났지만 그 깨어남조차 의심되기 시작했다. 꿈인지 현실의 상태인지 모를 세계에서 받은 죽음이란 질문은 어떤 의미인 것인가. 그가 얻은 깨달음이란 말을 찾기 위한, 활주로로 가기 위한 그 여행이 결국엔 제자리, 곧 삶이 시작되기 이전의 죽음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죽음만이 우리를 자기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은 아닌가. 여행 내내 등장했던 뱀의 존재도 죽음의 다른 모습이며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다양한 시간 체험을 통해 '영원한 죽음'을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양선형 #말과꿈 #트리플 #자음과모음 #필사하기좋은책 #선물하기좋은책 #어른을위한동화 #한국문학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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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별의 시간 | 기본 카테고리 2023-02-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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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별의 시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민승남 역
을유문화사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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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가장 신비하고 고귀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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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에는 작품 속에 얼마나 심오한 사상을 담을 것인가가 중심 과제이지만 작가의 사상을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한 그릇으로서의 형식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는 문학적 전통을 완전히 파괴하는 경우에도 실은 그가 문학적 전통을 숙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새로운 사상을 파격적으로 새롭게 묘사하기 위해 문학적 전통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그녀의 글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그러하다. 기존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상투적이고 공허한 요소들, 이러한 요소들은 작가로 하여금 자신의 인물들의 의식이 사회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들이 비인간적 사고 및 감각에 얽매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쓰는 작가인 나만이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그녀 때문에 고뇌한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별의 시간>에서는 자신을 숨긴 채 한 사람의 남자 내레이터로서 등장한다. 그는 리스펙토르 또 다른 자신이며, 이 소설을 쓴 작가이면서 마카베아이기도 하다. 그녀는 원인도 알 수 없는 그러한 사건 진행을 혐오하지만 철저히 거기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연극에서의 중개자의 위치와도 닮아 있다.

브라질 북동부 지방 알라고아 출신의 너무나도 어리석고, 순수한 주인공 마카베아. 허황된 거짓말쟁이에, 독단적이고, 정형화되고 유형적인 상투어들을 말하는 올림피쿠와의 강력한 대비는 소설을 읽는 내내 눈을 사로잡았다. 닮아있는 것 같지만 상반된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극적 효과를 도출해 냈다. 그녀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형상화하는 경우는 대게 자신의 전체적이고도 개별적인 방식들, 모순적 성향들, 그리고 개인적인 인상들을 포함하여 실제적인 것을 폭넓게 재현하려는 욕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여자 주인공 마카베아가 태어난 알라고아는 리스펙토르 가족이 브라질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배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자전적인 성격은 리스펙토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큰 특징 중 하나이다.

 

난 세상에서 혼자이고 난 아무도 믿지 않아요.

모두가 거짓말을 해요, 때론 사랑을 나눌 때조차도 그러죠,

난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진실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실은 꼭 내가 혼자일 때만 찾아오는 거예요.

 

리스펙토르의 작품 전반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을 이해하려면 당시 브라질 사회의 역사와 그녀의 전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20년 12월 10일, 영하 20도에 이르는 혹한과 끔찍한 질병, 잔인한 학살을 피해 달아나는 난민 가족의 매독에 걸린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리스펙토르. 그녀는 여성으로서, 작가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어려웠는데 당시 브라질은 보수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며 리스펙토르가 글을 쓰기 위해 외교관인 남편과 헤어져 브라질로 돌아왔을 당시에는 이혼이 합법도 아니었다. 만성적인 불안과 불면에 시달리다 수면제 복용 후 불붙은 담배를 손에 쥔 채로 커튼이 쳐진 창가에서 잠이 들었고 불붙은 담배로 인한 화재로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허황된 희망을 품은 체 죽음을 맏이 하던 마카베아의 인생 그 자체이며 당시 남성 우월주의의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는 모든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마침내 자신으로부터, 우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두려워 말라, 죽음은 순간이며,

그러니 순간 속에서 지나가는 것이다.

 

<별의 시간>에 등장하는 소시민적 인물들이 개인적 본질을 지닐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언어적 본질을 지닐 수 없으며, 그래서 그 인물들은 진정한 소통 능력을 상실한 채 고독하고 격리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노정시킨다. 그녀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아무것도 미화하거나 과장하여 만들지 않았다. 전통적인 것을 거부하고 그녀만의 문학으로의 완성을 꿈꾸며 기존의 문학을 파괴하고, 우상을 무시하며, 기존 질서를 파괴하려는 리스펙토르의 몸부림은 아름답고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작품으로 귀결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계속 읽어 나가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신비하며 고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그녀의 위대함을 아는 모든 이들을 대표해 <야생의 심장 가까이>의 빅뱅과 함께 탄생한 그녀의 문학적 우주가 언어의 벽을 넘어 독자들과 함께 계속 팽창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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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 나의 아름다운 날들 | 기본 카테고리 2023-02-1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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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저
은행나무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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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남북전쟁에서 북에 가담된 아버지로 인해 입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나가던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도 소멸할 듯 아파하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덧없음 위에 서 있었다. 인간은 시간에 비해 짧은 세월을 산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지나치는 것은 사람이지만 시간의 자국을 새기는 것은 지나간 추억이다. 추억의 흔적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고 삶에서 얻어진 상처를 바라보는 것은 시간에 기대어 있는 슬픔들이다. 누군가의 추억과 마주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각과 흔적을 밟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의 나의 추억을 얹히는 것이다. 책을 펼치자 정지아 작가의 가슴 깊은 어딘가에 새겨져 있던 그리운 존재들, 사무치는 존재들, 좀 더 소중했어야 했던 존재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숲의 대화'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순심을 자신의 종의 자식으로 태어난 운학에게 보내고 빨치산의 행렬에 가담하다 매복에 걸려 혁재는 죽음을 맞아했고, 혁재의 아이를 임신한 순심을 아내로 맞이한 운학은 평생 아내만 바라보며 살아왔으나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혁재에게 향해 있었다. 젊었을 때 모습 그대로의 혁재의 영혼과 늙은 은학의 대화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서로의 '신념'을 이해하게 되고, 한국 전쟁을 남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으로 인정할 때 이 전쟁의 비극은 진실로 극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느껴졌다.

'천국의 열쇠'에서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한국으로 시집온 옆집에 사는 베트남 여인 호아를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숨겨주게 된다.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일구어낸 3000평의 헛개나무 과수원에서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호아를 바라보며 헛개나무 과수원을 둘러싸 있는 철조망 문의 열쇠를 건네줌으로써 남편에게 구타당하면서도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서의 도피처, 즉 안식을 위한 공간의 공유로 타인의 아픔을 감싸주고 있었다.

'브라보, 럭키 라이프'에서는 23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지만 경제적으로 사정이 좋지 않은 큰아들의 돕기에는 이미 재산은 바닥이 난 상태다. 자신의 생활마저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들을 포기할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은 어쩌면 미련하다고 말할 정도로 애처롭게 다가왔다. 큰아들은 소리 내어 원망하며 뛰쳐나가고 식물인간 상태에서 조금씩 호전을 보이던 아들이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며 버둥거리자 그런 버둥거림마저 기적이 일어났다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가슴이 매여왔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보지 못한 것이 가슴이 걸린다. 무슨 날에 보내드리는 액수가 세월만큼 많아진들 그게 어디 얼굴 내밀며 찾아뵙는 것에 비할까? 자식과 부모의 거리는 아무도 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흐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을 살고 있으며 그 시간이 비록 상처와 비루함으로 점철된 것이라 할지라도 살아감이란 바로 그것들을 긍정하고 따뜻이 감싸 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상처받아 아파하고 절망밖에 없는 삶이라도 그럼에도 자신의 상처와 마주함으로써 그 상처를 치유해 내는 모습은 자신의 상처보다 더 큰 사랑과 생명력으로 껴안아 극복하려는 정지아 작가의 모습 그대로이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아픔을 지닌 이들이 상처받은 현실과 능동적으로 화해하려는 작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탄생된 이 소설들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일 '구원'을 형상화한 한국문학 역사 속에서 빼어난 소설로 자리매김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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