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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벅머리 페터 &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 See feel 2015-11-3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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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호프만 『더벅머리 페터』

우리나라에서도 번연 출간된 책이 있는 줄 오늘에서야 알았다.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시리즈, 제67권이다.

 

더벅머리 페터

하인리히 호프만 글,그림/엄혜숙 역
마루벌 | 2007년 05월

 

독일 베스트셀러 고전동화 *

하인리히 호프만의《더벅머리 페터

출처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61161&memberNo=1524636

 

 

프리드리히는 여동생에게까지 채찍을 휘두르는 난폭한 아이였어요. 어느 날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데 프리드리히가 채찍으로 개를 후려쳤어요. 개가 으르렁거리자 더 세게 때렸지요. 그러자 개는 프리드리히의 발을 꽉 물어버렸어요. 못된 프리드리히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고 개는 채찍을 물고 집으로 달려갔어요.

집에 혼자 있던 파울린헨은 예쁜 성냥갑을 발견했어요. “엄마처럼 불을 붙여봐야지.” 옆에 있던 고양이들이 말렸지만 파울린헨은 불장난을 해버렸어요. 불이 그녀의 옷을 태우더니 손에도 머리에도 불이 붙었어요. 결국 파울린헨은 한 줌의 재와 구두로 변하고, 고양이들은 눈물을 흘렸어요.

말썽꾸러기 세 아이가 지나가던 흑인 아이를 잉크처럼 새카맣다고 놀렸어요. 그때 성인 니콜라스가 엄청나게 큰 잉크병을 들고 나타났어요. “얘들아. 그 아이 좀 그만 놀려라.” 하지만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고 더 심하게 웃어댔어요. 화가 난 니콜라스는 흑인 아이를 놀린 아이들을 검은 잉크병에 푹 담궈버렸어요.
 

 어수룩한 사냥꾼이 토끼 사냥을 나왔다가 풀밭에서 잠이 들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토끼가 사냥꾼의 총과 안경을 몰래 집어왔어요. 토끼는 사냥꾼의 안경을 쓰고 사냥꾼에게 총을 쏘았어요. 미련한 사냥꾼은 헐레벌떡 달아나다 우물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토끼가 쏜 총에 사냥꾼 아내의 커피 잔이 두 조각나고 아기 토끼의 코에 커피가 쏟아졌어요.

 

콘라드는 손가락을 심하게 빠는 아이였어요. 어느 날 엄마가 외출하며 콘라드에게 경고했어요. “자꾸 손가락을 빨면 재단사가 나타나 엄지를 싹둑 잘라버릴 거야!” 하지만 콘라드는 엄마가 나가자마자 또 손가락을 빨았어요. 그 순간 재단사가 나타나 콘라드의 엄지를 종이처럼 싹둑 잘라버렸어요. 앞으로 콘라드는 엄지손가락 없이 살아야 해요.
 

공처럼 둥글고 통통한 카스퍼는 어느 날 갑자기 소리쳤어요. “나, 수프 안 먹을래! 안 먹어! 싫어!” 다음 날에도 홀쭉해진 카스퍼는 또 소리쳤어요. “나 수프 먹기 싫어! 안 먹어! 먹지 않을 거야!” 결국 카스퍼는 실처럼 가늘어져서 죽고 말았어요.

 “필립, 오늘은 식사할 때 제발 얌전히 앉아 있어!” 아빠는 엄한 어조로 아들 필립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필립은 아빠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소란을 피우다 뒤로 넘어져버렸어요. 필립은 식탁보를 뒤집어쓰고 그릇은 깨지고 음식은 모두 바닥에 쏟아졌어요. 엄마, 아빠는 화가 많이 났고, 이제 먹을 것도 없어요.

 

한스는 언제나 하늘만 바라봐요. 자기 코앞도 보지 못하고 지나가던 개와 부딪쳐 넘어지기도 해요. 한눈팔던 한스는 강가를 지나가다 물속에 빠지고 말았어요. 다행히 가까이 있던 아저씨들이 한스를 긴 막대로 건져주었어요. 한스는 온몸이 흠뻑 젖어 꽁꽁 얼어버렸고, 가방은 멀리 떠내려갔어요.

 

비가 쏟아지고 폭풍이 치는 날에 아이들은 집에 얌전히 있어야 해요. 그런데 로베르트의 생각은 달랐어요. “이런 날에 바깥은 틀림없이 재미있을 거야.” 우산을 쓰고 나간 로베르트는 바람에 날려 하늘로 날아가버렸어요. 구름을 뚫고 날아간 로베르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더벅머리 페터Struwwel Peter》는 독일 정신과 의사 하인리히 호프만이 1844년에 쓴 3~6세 아동을 위한 동화책이다. 세 살짜리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림책을 사러 돌아다니다가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어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 창작한 그림책이다. 출간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되어 2,500만 부가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고전 동화가 되어 유럽에서는 스테디셀러로 꼽힐 만큼 고전 동화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문제는 동화가 동화적인 요소가 아닌 끔찍한 공포물을 떠올린다는 점이다. 살짝 엉뚱하고 코믹한 요소를 지니고는 있지만 아이들이 하는 잘못된 행동을 너무 극단적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 자신은 아이 스스로 깨달아 고쳐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위함이었다지만 소아정신과 의사가 쓴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못된 장난을 하고난 뒤 아이가 받는 대가 치곤 너무 끔찍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교육에 공포심을 이용한 그림과 서술 방식이 아동심리 발달에 역기능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 공포심이 명품 스릴러를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을까? 우선은 무척 재밌다. 가독성도 끝내주고 스릴러 장르 마니아라면 일독을 권한다. 안드레아스 그루버의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은 잔혹동화 <더벅머리 페터>에서 모티브를 따 온 소설이다. 소설은 유년 시절, 부모가 아이를 지키려는 노파심이 폭력으로 변질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트라우마는 스물세 살로 성장한 청년에게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살인 투사된다. 그것은 아동기부터 접한 모든 여성을 향한 적대성과 공격적 성향으로 옮겨가 연쇄살인을 불러냈는데 청년이 유년시절부터 들어왔던 끔찍한 동화 <더벅머리 페터>에 나온 모습의 순서대로 죽음을 실현한다. 자고로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모의 방법이 문제시되어선 안된다. 올바른 훈육이 무엇인지 스스로 숙고하는 기성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왜 자신을 학대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부모의 잣대에 의해 정당화한다. 본능적으로 그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자신이 말썽만 일으키고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맞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로 인한 '자존감 결핍'은 살아가는 내내 계속될 것이며 아이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을 것이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소설은 픽션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아동 학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무심코 던진 부모의 분노가 아이의 자존감에 어떤 상처를 입힐지 자문해 볼 일이다.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안드레아스 그루버 저/송경은 역
북로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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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by 안드레아스 그루버 | 2015년(125) 2015-11-30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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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안드레아스 그루버 저/송경은 역
북로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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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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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잔혹동화 《더벅머리 페터》를 1년간 연구했고 그것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소설은 유년 시절, 부모의 폭력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스물세 살로 성장한 청년에게 어떠한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투사되는지를, 뇌가 병든 사이코패스의 억압된 감정이 어떻게 살인 투사되는지를 보여준다. 한 아이의 죽음이 가족에게 파멸을 안겨줬고 그것은 아동기부터 접한 모든 여성을 향한 적대성과 공격적 성향으로 옮겨가 연쇄살인을 불러냈다. 사건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파국과 혼돈을 초래했고 범인이 잡혔다고 안심한 찰나 또다시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납치 사건이 개입된 날짜는, 살인범의 가족이 태어난 6일과 아버지가 죽은 20일이라는 점, 바흐 작품을 전문적으로 연주한 성당 오르간 연주자라는 점,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검은돈의 출처 등은 상당한 섬세함과 디테일의 대미를 장식한다.


 


뮌헨 경찰서 현장출동 대기팀 최연소 여형사 자비네 네메즈는 범죄수사국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와중에 전직 초등학교 교장인 어머니가 대성당 파이프오르간 다리에 사지가 묶인 시신으로 발견된다. 살인 현장에서 아버지의 지문이 검출되면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비스바덴 범죄수사국에서 뛰어난 직감과 최고의 사건 분석가이자 범죄심리학자인 마르틴 S. 슈나이더는 해당 사건으로 자비네 팀에 합류한다. 감정이입이나 배려심과는 거리가 멀고 세 손가락을 무례하게 치켜들어 본질적인 사항만 듣고 싶어하는 인물인데다가 군발두통을 들먹거리면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하이탈 서점에 앙심을 품고 책을 도둑질하는 남자다. 자비네 어머니 사인(死因)은 뜻밖에도 만년필용 검은색 잉크 2리터에 의한 익사였고 납치 감금된 동안 '물과 소금이 뿌려진 프레첼 2개'를 먹은 것을 확인한다. 한 달 전 비슷한 살인 사건이 라이프치히와 쾰른에서 있었던 점에서 자비네는 《더벅머리 페터》와 똑같이 진행되고 있음을 자각한다. 어머니를 납치한 살인범을 검거해야만 아버지가 혐의를 벗고 무죄를 입증할 수가 있기에 자비네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슈나이더와 비공식 파트너가 된다.  

 

상담치료사 헬렌 베르거는 전직 범죄심리 프로파일러였다. 돈으로 매수된 아동 살인사건과 연관된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그녀의 명성에 오점을 남긴 사건이었고 그녀의 유일한 편이었던 당시 담당 검사 프랑크와 결혼해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담자인 안네 레너의 손가락이 납치범에 의해 잘려서 헬렌의 집 우편함에 도착된다. 함께 담겨있던 반지에는 '안네-프랑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헬렌은 납치범의 협박 사건 한가운데에서 안네를 살리기 위해, 남편의 외도를 확인하기 위해 사건을 침착하게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안네가 헬렌에게 상담치료를 받기 전에 치료했다던 로제 하르만 정신과 의사의 예기치 않은 진실에 접근한다. 카를 보니는 코카인 소지, 스토킹, 여성 폭력으로 고소를 당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써 재판 결과는 집행유예 3년이지만 판사는 '처벌 대신 치료'를 강요했고 그의 정신과 치료는 로제 하르만 박사가 맡았다.


희생자를 납치한 뒤, 희생자의 주변 인물에게 빨간색 펠트 천이 들어 있는 상자 안에 희생자의 신체 절단 부위를 보낸 뒤, 기계로 변조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납치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48시간 내에 희생자를 납치한 이유를 알아내야 하며, 답을 못 풀거나 경고 사항을 어기면 희생자는 죽는다. 또한, 시간 안에 답을 풀면 바로 그 사람이 인질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이 납치범의 규칙이다! 일명 '48시간 추리 사건'에 살인범은 서로 가까운 두 사람을 대립시킨다. 끔찍했지만 슬펐다. 살인범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은, 일곱 살 생일이었는데 아버지로부터 유일하게 맞지 않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가 왜 자신을 학대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정당화한다. 본능적으로 그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자신이 말썽만 일으키고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맞은 것이라 자위한다. 그로 인한 '자존감 결핍'은 살아가는 내내 계속될 것이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아동 학대는 은연중에 벌어지고 있다. 무심코 던진 부모의 분노가 아이의 자존감에 어떤 상처를 가져올지 생각할 문제다.


​ 1845년 독일의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프랑크푸르트 검시 의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은 익명으로 자하리아스 뢰벤탈스 출판사에서 1천 5백 부 한정판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와 익살스러운 그림들》('더벅머리 페터'의 구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3~6세 아이를 위한 15가지 이야기'를 펴낸다. 원래는 세 살짜리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림책을 사러 돌아 다녔으나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자신이 직접 그림책을 그려 이 책을 선물한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공포심을 유발하는 장면이 묘사된 고전 그림책 《더먹머리 페터》는 출간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되어 2,5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독일의 고전 국민 동화다. 잔혹동화 스릴러인 이 소설은 동화에 나열된 순서대로 진행되는 연쇄살인사건과, 범인과 형사가 벌이는 치열한 두뇌싸움, 배신이 부른 참극과 심리전으로써 풍부한 볼꺼리까지 스릴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달이 환하게 뜨면 어두워질 거야.
자동차 한 대가 번개처럼
서서히 모퉁이를 돌면
초록색 평야 위에 얼음이 깔려 있어...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어.
말없이 대화에 깊이 빠져서 말이야.
그때 총 맞아 죽은 토끼가
쏜살같이 평야를 뛰어갔어.

그 뒤에는 이제 갓 열일곱 살이 된
늙은 숙모가
검은색 페인트로 칠한
진청색 관 속에 누워 있어.

그 위에 까마귀처럼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 쪼그리고 앉아 있어.
살 만큼 다 살아서 머리는
이미 새하얀 백발이 되어버렸지.


상반된 의미를 가진, 서로 모순되는 개념을 표현하는 본문에도 실린 이 독일 구전 시는 모순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비웃는 듯하다. 실제로 세상은 미쳤고 비논리적이며 희한한 곳이지 않은가! 이 시처럼 미쳐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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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by 안도현 | 2015년(125) 2015-11-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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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안도현 저
도어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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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詩가 되는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는 안도현 작가의 삼십 년 문학 에센스를 녹여낸 책이다. 아포리즘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안도현의 아포리즘이다. 책은 매일 대하는 삶의 본질과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짧고 간결하지만 사물과 현상을 관통하는 통찰력이 담겨 있고 서너 페이지의 비교적 짤막한 에피소드도 자리한다. 두 가지의 차이는 시와 산문의 정도, 잘 모르겠다. 같은 맥락에서 이 모두는 휴식을 주고 여운을 남긴다는 것 뿐. 때로는 가볍게도 읽히고 체증처럼 묵직하게도 얹힌다. 때때로 아프게도 찔러오는 사유와 충고에 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내가 신은 구두는 한 짝이 너무 크고, 나머지 한 짝은 너무 작은 게 아닌가.

우리들의 삶이란 늘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볍다. 딱 맞는 크기를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한 짝은 항공모함 같고, 한 짝은 티코 같은 그 서먹서먹한 구두를 신고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구두에 길들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빠르게 달린다는 게 최고는 아니다. 천천히 가야 꽃도 보인다. 그래야 꽃도 기차를 볼 수 있다. 그래야 기차도 꽃을 향해 손을 흔들 수 있다.

-p49 <천천히> 전문

가장 공감했던 구절이다. 삶이란 늘 내게 맞는 맞춤복이 아닌 내가 그 틀에 맞춰야만 하는 기성복이었다. 너무 크거나 작고, 너무 무겁거나 너무 헐거운.


맥주는 흔들지 않으면 거품이 일어나지 않는다. 외로운 맥주병은, 고요한 맥주병은 거품이 없다.

-p73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4> 중에서

사랑이란 게 그렇다. 상대가 나를 흔들었다고 하지만 모두 자기 할 탓이다. 첫눈에 가슴이 주책없이 뛰어서는 안된다. 사랑도 삶의 한 페이지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한 뒤에 사랑을 하든가 말든가 하자.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를 제대로 알기나 하고 살아가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는 1~12편까지 진행된다. 아무래도 작가가 아내에게 맺힌 한이 많은가 보다. 나와 시어머니를 견주어 생각해 보면, 나는 '아내'보다는 '어머니'의 모습에 근접하다. 백화점은 일 년에 한두번 갈까말까이고, 아이들 옷을 고를 때도 한 치수 항상 큰 것을 고르며 스커트는 길든 짧든 아예 걸려있는 게 없고 발목까지 오는 원피스 한 벌이 전부다. 하루 세 끼는 무조건 밥을 최고로 여고, 아이가 남긴 밥과 국을 당연스레 먹으며, 가족들 생일을 잊은 적도 없다. 마당이 있다면 텃밭은 가꾸고 싶고, 두 아이에게 모두 모유 수유를 했으며, 이십 년 전에 입은 옷까지 장롱 서랍을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공감하는 게 있다면 아이가 싸울 때 같이 때리라고 가르친 점이다. 두 아이 모두 때리면 맞고만 오기 때문이다.


다시 가을이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돌아오는 것도 여행이다.

이 가을, 나는 어디로?

나는 나 자신한테로 돌아오고 싶은 것이다.

-p147 <여행에 관한 몇 개의 단상 6> 전문

이 책을 집어들 때 가을이 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어딘가를 찾아 나서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나는 상처로부터 해방되었나? 지난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도 여행이다. 몸이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는 상태, 마음이 떠나고 돌아오는 여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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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by 한귀은 | 2015년(125) 2015-11-2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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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별 리뷰

한귀은 저
이봄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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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이별 리뷰 』는, 지인으로부터 4년 전에 선물로 받았던 것인데 내 선택을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던 책이다. 잠깐 서서 프롤로그를 읽어 내리다가 저자의 문체에 매료되어 한참을 자리에 눌러앉게 한다. 한 문장씩 짚어가며 음미하는 가운데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으나 문학적인 포만감으로 충만해진다. 얼어붙은 감수성에 반짝이는 전등 스위치 역할을 한다. 책은 이별을 완성하는 여정을 담고 있는데 이별에서 애도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실연-부정과 슬픔-분노-우울-애도>의 절차에 따라 문학 작품을 선정했다. 책에서의 여행은 관광지나 명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가까운 카페나 자기만의 방 속이 여행지가 될 수 있고 문학 속의 그 혹은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그들은 이별을 한 사람들이고 '걷는 여행'이 아닌 '읽는 여행'이다. 여행의 종착지에 닿았을 때는 마침내 이별을 완성하고 희망을 얻어가는 것이 이 책의 소명이다.


이별은 익명적이고 비인칭적이다. 이별은 특정인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이별은 도처에서 복류한다. 사랑도 이별의 모라토리엄이며, 삶도 죽음의 유예이며, 때때로 우리는 일에서도, 믿음에서도 이별을 당한다. 그러니 이별은 병소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별은 삶에 수시로 개인되는 하나의 사건이며 이 사건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증상을 스스로 조형해야 한다. 신파의 울증이나 아이러니한 조증이 아니라 이 울증과 조증에서 전향하는 새로운 길을 탐색해야 하는 것이다.

-p4 <이별 여행을 시작하며> 

이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지 않고 명쾌하다. 논리적인 문장으로 완성된 이별의 정의다. BC 1300년경에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책이 있는 곳(도서관)을 '영혼의 치유 장소'로 불렀고 BC 300년경 고대 그리스 도서관 입구에는 '영혼을 위한 약'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사랑을 끊어버린 후의 금단 증상과 공황을 책과 문학으로부터 치유할 것을 종용한다. 나를 어딘가로 무단 방류하여 책과 여행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별의 과정을 극복한 성숙한 사람의 조언이 아니라 <실연-부정과 슬픔-분노-우울-애도>에 따라 각 장에 해당하는 나약함과 자존감 회복 상태까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느닷없이 찾아오고 이별은 사랑의 또다른 옵션처럼 들러붙는다. 이별은 여전히 가차없는 폭력처럼 아플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용감하게 사랑하고 싶어하고 대책없이 아팠으면 한다. 이 책에 실린 32편의 문학작품을 통해 그들의 이별을 향유함으로써 이별에 대한 극단적인 상실감과 패배감으로부터 벗어나 희망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희망을 찾기가 어렵다면 이별조차 추억이 되는 삶의 지점에서 이별을 객관화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과거의 되풀이가 아닌 미래의 나를 놓고 현재의 이별을 과거의 지향점으로 돌려보는 방법으로 본문에는 '앞먹임'이라고 표현했다. 스무 살이라면 서른 살의 나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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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전쟁』 by 김진명 | 2015년(125) 2015-11-2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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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글자전쟁

김진명 저
새움 | 201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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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라는 장치를 사용하지만 드러난 사실보다 더 깊은 수면 아래의 진실을 캐낸다는 뜻으로 '팩트 서처'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p155

작가가 본문에 실린 '전준우'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지만 이는 곧 작가 자신을 지칭한 말이라는 것을 독자는 뻔히 알고 있다. 김진명은 매번 출간되는 소설들마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반도가 직면한 과제나 문제의식을 핵폭탄급으로 터트린다. 이번 역시 허구라는 장치를 동원했지만 수면 아래의 진실을 추구한다. 주인공인 '이태민'이 전준우로부터 건네받은 소설을 펼치면서 그의 죽음과 한자의 내막에 가려져 있던 진실에 도달하는데 소설은 이야기 속에 또다른 내부 이야기를 지닌 '액자 소설'이자 5천 년간 잠들어 있던 거대한 진실의 위용을 드러낸다.

 

리나라 초대 문교부 장관이었던 안호상 박사의 1960년대 장관 시절, 중국의 문호 임어당(린위탕, 林語堂) 선생과 저녁을 같이 했는데 "당신네 중국인들이 한자를 만들어 머리 아파 죽겠소. 왜 그렇게 복잡한 문자를 만들어 우리 한국인들까지도 한문혼용이냐, 한글전용이냐로 이렇게 골치 썩이며 대립하게 만드는 거요" 하고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이에 임어당은 잔뜩 경멸하며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건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하며 핀잔을 주었다는 일화다. 중국인이었던 임어당이 지적했듯 '당신네 동이족'은 곧 우리의 뿌리임을 가리킨다.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자가 '은나라' 때의 것이고 그 은이 '한족(중국)'이 아닌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니 한자는 결국 우리 글자라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본문에도 언급되었고 사람들 입에 자주 회자되었던 유명한 일화지만 그것을 두고두고 기억해서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우리의 글자를 다시 회수해보겠다는 결심은 부족했던 것이다. 의식의 변화와 객관성을 주장하려면 최초의 오류부터 거슬러 올라가 수백억의 인식 전환 문제와 충돌할 것이다.


타고난 비상한 두뇌로 스탠퍼드 석사 과정까지 마친 '이태민'은 학자의 길이 아닌 돈의 길을 따른다. 무기제조업체에 일개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미국 정보계통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부상하는 헤비급 사원으로 이름을 날리지만 그 명성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 사직서를 제출하고 국내 최대 무기 에이전트인 '이 회장'과 무기 구매의 '심리분석'을 전략으로 동업을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5년 안에 5백억을 달성하여 미련없이 이 땅을 뜨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과 맞물려 해군 함정들이 줄줄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이 회장에게까지 압수수색 명령이 떨어지자 태민의 예금까지 범죄수익 은닉이라는 명목으로 몰수당하고 만다. 대통령 특명으로 방산비리 합수부가 차려지면서 태민은 검찰 출석 전날 베이징으로 도피한다. 그곳에서 무기 중개상의 직업적 전략을 위해 북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을 찾아내는데 베일에 가려진 인물 '킬리만자로(전준우)'에게서 USB를 건네받게 되고 사흘 뒤 공안으로부터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USB에는 전준우의 유고작이 담겨 있었고 그 속에는 한자가 중국의 것이 아닌 우리의 뿌리인 동이(東夷)족이 만든 문자라는 놀라운 진실이 들어있었다. 전준우의 소설을 요약하면 '吊'는 유학에 통달한 중국인 '석정'이 고구려에 가지고 온 글자이고, '弔'는 풍장의 풍습을 가진 고구려의 '서맥족'이 가지고 있다가 빼앗긴 글자로 작가는 이 두 글자를 대립시키는데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치명적인 약점의 시발점이다. 전준우의 죽음과 맞물린 한자의 엄청난 진실로 인해 태민은 공자가 뚫고 사마천이 포장한 거대한 시나리오를 찾아내고야 만다. 문명이 처음 생기고 글자가 만들어지던 시절로부터 거슬러 올라간 왜곡의 역사는 너무도 길었고 이제는 동이의 후손들조차 자신의 조상을 부정하는 데 길들여져 은자를 남의 글이라 부정하고 배우지 않도록까지 했으니 공자와 사마천이 그들의 사상에 의거해 가감첨삭한 기록과 공략은 대단한 성공작임에 틀림없다. 이젠 그들의 왜곡된 사상과 역사와 달리 고고학은 대한민국이 동이족의 나라임을 뚜렷이 가리키고 있으니 과학으로 검증해야 할 때다. 결말에는 이태민이 수배에 쫓기면서도 글자전쟁을 위해 5년 징역형을 감수하고 한국으로 자수하러 온 인물로 미화된다. 돈과 쾌락이라는 것에만 탐닉했던 그가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반성을 거듭했다는 점은 또다른 감동을 준다. 그러나 수배 중에도 일을 놓지 않았던 그의 무기 에이전트 사업은 그토록 바랐던 쾌거를 이루고 태민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끝을 맺는다. 역시 사람이 변하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후훗~

 

 

이것은 침략이다. 창과 칼의 침략보다 천 배는 무서운 침략. 천년이 흐르도록 우리를 지배하고 천하를 발밑에 두겠다는 무서운 음모를 가진 침략이다. -p222

화하는 생겨난 근원을 알 수 있는 글자들을 추려 오랜 세월에 걸쳐 없앴습니다. 물론 모든 글자를 자신들이 만들었다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p270

아니, 어째서 한국말이 그대로 중국 자전의 발음기호가 되어 있는거죠?

... 어떤 글자가 있으면 그 글자는 가장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가 있을 수밖에. -p291

소설에서 흉노 선비는 공자가 주나라 무왕이 은을 정벌하는 모습을 기록한 「서경」무성편을 해석해 장원을 했고 사마천이 도깨비인지 귀신인지를 보고 스스로 궁형을 선택한 후 쓴 책 또한 「은본기」였다. 두 장면, 아니 천하에 위명이 쟁쟁한 한 사람의 성인과 한 사람의 위인은 이렇듯 '은'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전준우는 두 사람의 부정적 이미지를 좇았다. -p302

동이족이 요하에서 이룬 문명을 요하문명 혹은 홍산문화라고 해요...... 이게 황하문명보다 최소 500년 이상 1500년까지 오래된 거예요. 그래서 4대문명이 아니라 5대문명이라 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논의가 있는데... 중국이 잽싸게 과거에는 자기들 게 아니고 동이족의 것이라 하던 요하문명을 자기네 걸로 둔갑시켜버렸어요. 동이족의 상징 치우를 어느 날 갑자기 제 조상이라며 염제, 황제와 같이 자기네 인물로 포장하고 지금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잖아요? -p312

이것은 전쟁이에요. 과거 문명이 생기고 글자가 만들어지던 때로부터 시작된 전쟁. 피해 회복은 범인을 잡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오류를 바로잡는 데 있어요. 한둘의 범인이 아닌 수천만, 수억의 의식을 바꾸는 데 있단 말이에요. 그게 나의 전쟁이에요.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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