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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레인』 by 제임스 리 버크 | 2018년(90) 2018-11-2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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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온 레인

제임스 리 버크 저/박진세 역
네버모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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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레인』 의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 데이브의 나이는 알지 못한다. 단지 그가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고, 그때의 기억은 꿈속에서 매일 악몽으로 오버랩되어 전쟁의 포화 속에 그를 밀어넣으며, 한때 알콜중독자였고, 아내는 딴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났으며, 보트를 집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바라는 소망은, 몹시 소박하고 정의로워서 눈물 날 지경이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우직해서 답답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포함해 사랑하는 연인 애니와 하나 뿐인 가족인 지미까지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입힌다. 왜? 데이브는 원칙주의자에게다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피곤한 스타일이니까. 그가 원하는 세상을 이루긴 힘들겠지만, 우리는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가 옳은 일은 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데이브의 주관적 서술에 따라 진행되므로,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뉴올리언스 경찰서의 데이브 로비쇼 경위는, 젊고 건강한 흑인 여성이 협소한 늪에 버려진 것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그녀를 죽일 의도로 주사를 놓고 익사를 가장한 살인이 명백했지만, 관할 경찰서의 보안관은 손쉽게 익사로처리한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데이브는, 그녀의 가족들을 비롯해 다수의 연결선상에 놓인 인물들을 탐색한 결과, 죽은 흑인 여성이 돈많은 백인 남성 '홀리오 세구라'의 노리개였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묘하게도 동료 경찰들을 비롯해 다수의 주변인들 모두 사건의 진실을 원치않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사건은 데이브의 관할서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사건에 뛰어들고, 마치 나비효과처럼 파생되어 나오는 사태는 더 큰 사건과 죽음을 불러온다. 그가 혼자 감당하기엔 거대 마약조직의 연루, 재무부 직원의 죽음, 하류인생과 협력한 무기거래상을 확인하고 배후 세력을 자각하면서도 싸움을 멈출 수 없다. 페이지 중간중간 베트남전에서 겪은 전쟁의 상흔은 그의 삶을 좀처럼 갉아먹고, 알코올의 유혹이라는 자신과의 싸움까지 이어간다.

과거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것을 썩어 가는 기억으로 간주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거는 우리의 본래 모습을 헤아릴 수 있는 유일한 척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와 어디에 있었는가가 우리를 말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부활시켜야 한다. 과거를 위한 기념물을 세우고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기 위해 과거를 계속 살아 있게 해야 한다. -p197

어두운 암흑가, 범죄와 죽음이라는 다소 음습한 주제와 사건을 다루는 소설임에도 작가의 유려한 문장력과 서정성은 읽었던 내용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되고 곱씹게 만든다. 경험 많고 노련한 작가를 통해,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것은 옵션이요, 삶의 통찰력은 선물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와 작품이지만, 1987년부터 현재까지 21편의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는 제임스 리 버크의 '데이브 로비쇼'는 미국 범죄문학계를 대표하는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애드거 상 2회, 골드대거 상, 그랜드 마스터 상 등 굵직한 상을 수상한 경력이 다수 있는 만큼, 제임스 리 버크는 미국 문학계 전반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단편집 2편을 포함해서 현재까지 총 38권의 작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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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고 살인자가 된 아버지의 외로운 추적,『방황하는 칼날』 | 2018년(90) 2018-11-23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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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방황하는 칼날

이정호
한국 | 2014년 04월

영화     구매하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을 동명의 영화로 풀어낸 『방황하는 칼날』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영화는 관객에게 넌지시 묻는다. 소년범죄를 이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해야 마땅한 것인가? 날이 갈수록 잔인해지는 소년범죄의 심각성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딴 나라 이야기도 아니며, 개인을 떠나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가해자가 미성년이란 이유로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나오는 게 현실이라면, 범죄 피해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받을 엄청난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거 소년범죄를 처리했던 형사 억관(이성민)은, 가해자가 풀려난 직후에도 행동반경을 예의주시한다. 피해자 가족들은 평생동안 고통을 수반하며 살아가는 데 반해, 가해자의 일상은 지나치게 해맑다. 엇갈린 그들의 삶에서 감지한 억압된 분노가, 딸 수진을 잃은 상현을 향해 동정으로 작용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은 법에서 규정한 범주대로 행동하는 직업이다. 제목을 '방황하는 칼날'이라 차용한 이유다. 똑같은 죄를 지었어도 미성년이어서 가벼운 형벌만 채우고 빠져나가고, 성인이란 이유로 죄값을 호되게 받는 것이다. 

익명의 문자로 받은 주소지로 찾아간 상현은 그곳에서 딸이 강간 당하는 장면이 녹화된 테이프를 낄낄거리며 보고 있는 가해자와 마주한다. 분노를 참지 못한 상현은 가해자를 난자하듯 죽인 뒤 또다른 가해자를 얼굴도 모른 채 찾아나선다. 피해자 가족인 상현이 용의자가 된 순간이다. 
도망친 또 다른 가해자를 쫓는 상현을 막기 위해 경찰은 지명수배령을 내린다. 미성년인 가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형사의 숙명, 상현을 향한 인간적인 연민 사이에서 고민하는 형사 억관의 갈등과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성인이라는 이유로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하는 답답한 현실에 관객들의 분노 게이지도 함께 상승한다.
 
영화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소년범죄와, 그것을 지켜본 피해자의 아버지가, 어린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상현(정재영)의 마지막 독백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같은 세상에서 호흡하며 산다는 것을 끔찍하다는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이 아팠다. 딸을 가진 모든 부모가 아플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들을 가진 모든 부모가 꼭 봐야 할 영화다. 기회가 된다면, 원작 소설로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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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 See feel 2018-11-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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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들고 온 책 중에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사과일까?>가 있었다. 사과를 단지 사과로만 보는 고정관념을 깨고, 전혀 다른 관점의 그 무엇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기발하고 독특하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색다른 사고방식을 일깨워주니 아이도 나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것에 이어 <이유가 있어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작가의 남다른 발상에 반한 아이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을 한꺼번에 사달라고 졸랐다. 아이에게 읽으라며 사준 책인데 내가 먼저 읽어버렸다. 

<심심해 심심해>는 "심심해"라고 말하던 아이가 갑자기 "심심한 게 뭘까?"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공벌레도 심심하다고 생각할까? 어른들은, 그리고 사물들은 심심한지 궁금하다. 심심한 것은 분명 재미없는 것을 두고 얘길 한 건데 요상하게도 "재미없는데 재미있네? 신기하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불만이 있어요>는 아이가 평소 어른들에게 불만이 많았던 점을 아빠에게 시시콜콜 따져 묻는다. 여기서는 아빠의 능청스러운 대답, 아무말 대잔치가 관건이다. 어찌나 뻥을 쳐대는지~ㅎㅎ 그럼에도 착한 우리 아이는 어른들도 참 힘들겠다며, "사랑하는 우리 아빠가 언제까지나 아프지 않게 그리고 꼭 대머리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까지 한다. 그 기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이 어찌나 뚱해 보이던지 그림이 참으로 절묘하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로 인해 허전함을 느끼던 아이가 특별한 노트를 통해 찾아낸 천국에 대한 엉뚱한 질문과 발상으로 웃음을 되찾게 된 뭉클한 이야기이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은 먼저 간 할머니를 천국에서 만나기 위함이니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아이는 지갑을 챙겨 공책을 사러 나간다. 할아버지와 같은 천국에서 뭘 할지 기록하기 위함이다.

《아홉 살 첫사랑》은 128페이지로 제법 분량이 되는 동화책이다. 2학년 같은 반이 된 하루와 카나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카나만 생각하면 자꾸만 얼굴이 빨개지고, 카나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카나야, 하루가 싫어?" "좋아해." 말해 보니 그건 간단한 말이었다. 말해 보니 그건 따뜻한 말이었다. 여기서 요시타케 신스케는 글쓴이가 아닌 그림 작가이다. 그의 사실적이면서도 사랑스런 표정이 잘 드러난다.
 
이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벗지 말걸 그랬어>이다. 웃겨서 배꼽 빠질 뻔~ㅋㅋ 그야말로 표지 그림부터 빵 터진다. 배꼽을 드러낸 채 옷가지에 매달린 모습부터 귀엽고 사랑스럽다. 엄마가 목욕하자고 말하자, 혼자서 웃옷을 벗다가 옷이 그만 목에 걸리는 바람에 벗지도 입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서부터 아이의 상상력은 기가 막힐 정도로 코믹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발상으로 가득하다.


벗지 말걸 그랬어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유문조 역
스콜라 | 2016년 05월

 

아홉 살 첫사랑

히코 다나카 글/요시타케 신스케 그림/유문조 역
스콜라 | 2017년 08월

 

이게 정말 천국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고향옥 역
주니어김영사 | 2016년 10월

 

불만이 있어요

요시타케 신스케 글/김정화 역
봄나무 | 2016년 01월

 

심심해 심심해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고향옥 역
주니어김영사 | 2017년 08월

 

이유가 있어요

요시타케 신스케 글/김정화 역
봄나무 | 2015년 08월

 

이게 정말 사과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고향옥 역
주니어김영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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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죠, 마흔입니다』 by 키어런 세티야 | 2018년(90) 2018-11-1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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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떡하죠, 마흔입니다

키어런 세티야 저/김광수 역
와이즈베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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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죠, 마흔입니다』는, 중년의 도전을 이겨 내기 위해 배워야 하는 철학적 성찰을 다룬다. 이를 테면, 상실과 후회, 성공과 실패, 원했던 삶과 실제 삶에 대한 괴리감,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삶의 유한성,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공허함 등에 대한 의문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이다. 어느 세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허함을 풀어내는 것이니, 굳이 중년으로 국한할 필요는 없어도 되겠다. 하지만 안내서라고 해서 '명쾌한 대안'은 아니다. 근본적인 삶의 의문에 대해, 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마음 처방전'이라 하면 옳다.

죽음이라는 불운은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사라지고 부족하고 비었다는 의미에서 불운이다. -p174

전통적 불교도들의 관점에서는 무지(無知)가 핵심이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아나타(anatta)' 또는 '무아()'라는 혁명적인 형이상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 -p229

 

 


 
'중년의 위기'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으나, 중년의 혼란이 야기한 중년의 위기에 대한 반발은 하나의 현상에 대한 과민반응일 수 있다. 새로운 출발의 필요성 속에서 중년의 위기는 행복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향과 마주해야 맞다. 중년은 불확실성과 퇴행이 아닌, 능력과 개인적 성장의 시기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못 했는지,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중년의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사상가로 성장한 '존 스튜어트 밀'과 성공회 신부였던 '조지프 버틀러'는 '이기주의의 역설'이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즉,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것을 행복의 중요 요건을 보았다. 현대의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가득한 '경쟁과 결핍'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갖게 된다는 조지 오웰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유형화되기 전에 그 시기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선택권을 갖는 것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이미 잃어버린 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잘되고 있음에도 불평하고 있는가? 원하는 전부를 가질 수 없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가지지 못한 것을 상쇄하거나 보상할 수 없는 것은 '약분 불가능성'의 결과이다. 상실감은 삶의 잉여에 대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대가로서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상실감의 대안은 무엇인지 정의해 본다. 여기서 '데이비드 놉'의 소설 레지널드 페린의 삶을 통해 비치는 것은, 삶은 도망칠 수 없는 감옥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세상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실수와 불운, 실패 등으로 훼손된 삶에 대한 후회를 무시해야 한다. 내 삶을 힘들게 했던 과거의 사건들은 더 이상 바꿀 수 없으며, 두 번의 기회 역시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수나 실패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과거를 향한 집착은 망상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나 수치심도 무뎌진다.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애초에 기대한 것보다 나은 무언가로 뒤바꾸는 것이다. 결정 자체는 나빴을지 몰라도 과거를 끌어안는 것이야말로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자세다. 실제 삶이 충분히 괜찮고 충분히 위험 회피적이라면 지금까지의 상황에 만족하는 것은 당연히 합리적이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불이익이 무엇일지 알고 있을 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하는 순간이야말로 고통이 수반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아이 대신에 가졌던 '올랜도'라는 책은 그 이상이다. 후회를 회피하려면, 회고에 작별해야 하는 이유다. 

에피쿠로스에게 죽음은 존재의 영원한 끝을 의미했다. 죽음의 공포를 불식시키는 것은 부재(존재하지 않음)라고 했다. 미겔 데 우나무노의 '죽지 않으려는 욕망'은 죽지 않기 위해 너무나 필사적이다. 불가능한 것을 고통스럽게 갈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불운처럼 한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과도한 운명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탐욕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원하는 바를 얻었다면, 욕망은 충족된 것이고, 행복해야 하는데, 방향을 잃고 우울해진다. 왜?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 또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완성에 집착하는 계획 때문에 삶이 고갈되는 문제는 성공에 이르러서야 중지할 수 있는 구조다. 사회심리학자 엘런 랭어의 말을 빌리지 않고라도, 현재에 집중하면 활력은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례 경험하고 있다. 미완료형 활동은 최종 상태를 목표로 하지 않으므로 삶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완료형 사고방식의 공허와 자기 파괴를 되돌려 주려면, 현재의 후광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불교의 팔정도와 서양식 사유가 만나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는 과정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활용해 봐야겠다. 결과가 없어도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저자는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읽어낼 수 있도록 쉽게 썼다'고 하지만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몇 번씩이고 되뇌이며 곱씹어야 할 철학서에 가깝다. 단어와 문맥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피치못할 난해함이 자주 작용한다. 아무래도 저자의 직업이 MIT 철학 교수인지라, '존 스튜어트 밀'을 위시해 '루크레티우스', '미셸 드 몽테뉴', '시몬 드 보부아르', '엘리엇 자크', '알베르 카뮈', '수전 울프', '쇼펜하우어', '엘런 랭어' 등 철학가와 사상가들의 견해를 두루 담아 해석하고, 저자 자신의 철학까지 담았으므로 분량과 달리 진도는 더디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위기의 중년들에게희망을 구축하기 위한 최상의 노력이므로 반갑게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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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의 비밀 편지』 by 스텐 나돌니 | 2018년(90) 2018-11-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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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틸다의 비밀 편지

스텐 나돌니 저/이지윤 역
북폴리오 | 2018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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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의 비밀 편지 Der Gluck des Zauberers』는 마법사의 삶을 살면서도 외피로는 건강한 인간으로 살았던 106세인 '파흐로크' 씨가 111세까지의 이야기를 손녀 '마틸다'에게 편지 형식으로 전한 기록이다. 생후 3개월인 마틸다가 5살 6개월이 될 때까지의 기록은 파흐로크의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왕복한다. 그가 마틸다에게 유독 특별한 애정을 보인 것은, 아기인 마틸다가 팔을 길게 늘여서 사물을 잡아채는 일명 '팔 늘이기'라는 천부적인 마법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편지 열두 통에는 마법 한 가지씩을 주제로 삼아 중요한 마법 경험들을 전하고 있다. 편지는 2030년 이후에 마틸다에게 전달돼야 한다고 유언하지만, 마법 기술에 관한 구체적인 서술은 하지 않았다. 내용은 한 세기를 넘치게 살아왔던 지혜로운 경험들로 가득하다. 히틀러의 등장과 유대인 학살, 제2차 세계대전, 무너진 베를린 장벽과 통일, 1969년 최초의 달나라 착륙, 전직 영화배우 도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소식, 고르바초프를 겨냥한 모스크바 소식 등 독일의 역사를 포함해 시대적 상황을 유머러스한 단어를 차용해 함께 살펴보았다.




삶은 행운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건 마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p386

순수 인디언이었던 부친의 혈통을 이어받은 파흐로크는 베를린 태생인 모친의 영향으로 독일 시민권을 얻는다. 파흐로크의 부친은 독일 국적을 갖기 위해 참전했으나 이내 전사하고 만다. 세계대전으로 세계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1916년, 파흐로크의 '팔 늘이기'는 유용하게 쓰인다. 손만 뻗으면 모든 것을 손에 넣는 생계형 도둑질과, 이웃에 이사온 뒤 스승이 되어준 '슐로스제크'의 도움으로 가족들은 배고픔을 해결한다. 스승은 파흐로크가 젖먹이였을 때 팔 늘이기를 하는 것을 보곤 마법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다. 파흐로크에게 마법 수업을 가르치고, 그의 가정의 안위를 돌보고, 학업까지 과외 지도를 해주는 등 음과 양으로 두루 보살펴준다.

동네에는 마법사 유전자를 가진 '슈나이데바인'이라는 사내아이 하나가 더 있었다. 파흐로크와 슈나이데바인은 서로에게 마법이라는 공통점을 확인하며 많은 것을 함께 하지만 사소한 어긋남으로 인해 서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경쟁자로 돌아선다. 슈나이데바인은 슐로스제크 선생님께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길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나치당에 가입한 그는, 살아생전 파흐로크의 삶을 파멸로 몰 궁리만 한다. '엠마'가 파흐로크의 아내가 되자 파흐로크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과 슐로스제크 선생에게까지 치명적인 행사를 한다. 

또 한 명의 위대한 마법사 '바벤첼러'는 죽음의 마법이 허락된 악마로 알려져 있지만 소문과 달리 죽음에 개입한 적이 없었다. 도리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착한 마법사였으며, 나쁜 광대 역할을 맡은 외톨이 같은 존재였고, 공포 유발자일 뿐이었다. 슈나이데바인을 제자로 두긴 했으나, 훗날 파흐로크에게 마음을 쏟게 되는데,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사랑한 것이다. 그를 통해 파흐로크는 '생각읽기'와 '돈 만들기' 마법을 익힌다.

마법 능력은 혈통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띄는 마법은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마법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숨어서 일해야 하고, 일종의 위장술로써 의심을 사지 않을 만한 소시민적 신분을 가져야 한다. 또한, 마법은 체력 소모가 심한 활동이므로 일상 업무를 위임할 수 있는 충성스러운 조력자가 필요하다. 비행 기술은 파흐로크에게 해방감을 선물했지만, '하이스터바흐 타임슬립 현상'으로 인해 2년을 시간의 틈 사이로 잃어버린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마법의 힘으로 인간의 생을 끌낼 수 없다. 능숙하게 쓸 수 있는 마법도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의도로 사용하면 마법 능력이 이내 사라지고 만다. 투명인간 마법은 상해를 입히거나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거나 은밀하게 부를 축적하는 데는 최고의 기능을 발휘하지만 마법의 사용과 관련해 정해진 규칙을 지킬지는 온전히 본인의 결정에 달려있다. 

파흐로크는 마법이라는 능력 없이도 밥벌이를 제대로 해냈을 인물이다. 발명에 심취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새로운 기술을 탐닉하는 열정과, 교회 관리인으로서의 사명은 기업 경영 전문가까지 자처할 정도로 쌓아올린 풍부한 그만의 경험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서 책을 몇 초 만에 읽을 수 있고, 한 나라의 언어를 4분만에 독파한다는 점에 있어 마법은 정말이지 매력덩어리다. 대량의 지식을 순식간에 섭렵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물론 돈 만들기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최상의 마법이다.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세속적이고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화물선을 바꿔가며 2년 동안 세계 여행을 다닌다는 것 또한 낭만적이다.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라니~ 마법이기에 가능한 꿈이리라.

미래의 2032년은 마법을 행하는 자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있었다. 미래의 정부는, 파흐로크의 두 번째 아내였던 '레일란더'의 마법 능력을 제거하고 뇌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마틸다는 레일란더를 구하기 위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익힐 수 있도록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한다. 파흐로크가 소망했던 마법사 연합이 꾸려졌더라면, 레일란더의 희생은 없었을까? 시대의 구멍을 만들어내는 시간 수정을 통해 거룩한 계획이 실현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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