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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by 정해연 | 2021년 2021-04-29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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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원의 날

정해연 저
시공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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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은 영인강 불꽃놀이 축제 인파 속에서 여섯 살 아들 '선우'를 잃어버렸다. 하필 남편 '선준'이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던 때였다. 영특했던 선우는 엄마 아빠의 휴대폰 번호와 집 주소를 외우던 아이였다. 유괴를 당했다면 요구사항을 위해 연락이 올텐데 그마저도 없이 3년의 시간이 무심하게 흘렀다. 예원은, 가슴팍에는 '아들을 찾습니다'라는 빨간색 글씨가 새겨지고 선우의 사진이 크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들고 다니는 낡은 가방에는 선우를 찾는 전단지가 가득 담겨 있다. 매 순간 선우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선우를 봤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두 사람은 그곳이 어디든 찾아갔으나 매번 실망 뿐이었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똥통에 빠져버렸네.

p9

 

고통의 3년 동안 예원의 분노조절장애도 최고치에 달했고 급기야 정신 요양원에 입원한다. 그곳에서 선우처럼 동요 가사를 똑같이 바꿔 부르는 사내아이 '로운'을 발견하곤 무작정 데리고 나온다. 보호자 허락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왔으니 범죄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예원의 집에 걸린 가족사진을 본 아이가 "선우다, 이선우예요"라며 알아본 것이다. 이에 예원과 선준은 로운이야말로 선우를 찾을 수 있는, 거역할 수 없는 희망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이가 말한 금평 '울림 기도원'은 지도에도 없고 인터넷 검색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알고 봤더니, 그곳은 부모의 사랑을 빌미로 아이를 저당잡아 전 재산을 몰수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이었다.

 

관심받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아이

p94

 

스물네 살인 로운의 엄마 '주희'는 열여섯 살에 아이를 낳았고 아빠는 책임을 면피했다. 그녀는 모성애가 발현되기에 앞서, 외면하고 싶은 버거운 현실만이 존재했다. 반면, 로운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엄마의 무관심에 절망했다. 자해 증상을 보였고 정신 요양원에 입원중 예원을 만났다. 예원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같이 따라갔다. 선우를 찾아나선 여정에서, 로운과 예원이 맞잡은 손은 필수불가결한 관계로 이어진다. 폭주하는 예원을 로운이 위로하고, 로운의 애정결핍을 예원이 채워주며, 부정적인 감정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로운이의 외로움이 가여워서 울었고, 아이를 향한 예원의 죄책감에 울었고, 3년이란 고통을 또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다던 그네들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들을 향한 스스로의 비난에도 울컥했다. 내 아이를 찾겠다고 남의 아이를 유괴한 예원과 선준. 그들의 진심과 그 간절함을 알기에, 담당 형사도, 유괴된 아이 엄마도, 아이를 놓친 병원장도, 모두가 합심해 동정을 구한다. 과연, 내가 아이를 잃는다면 어땠을까? 또한, 주변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구원의날 #정해연 #시공사 #국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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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KARMA POLICE』 by 홍준성 | 2021년 2021-04-27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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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르마 폴리스

홍준성 저
은행나무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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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서양 고전 문학일 것만 같은 이 소설은 순수 한국 작가가 쓴 순도 백퍼센트 한국 소설로서, '가시여왕'이 지배하는 가상의 도시 '비뫼시'를 배경으로 한다. 책 제목이 영국의 얼터너티브 락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노래 제목과 동명이어서일까, 2021년 런던북페어 화제의 한국 소설로 큰 호평을 받았다.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하며 직조해낸 현대의 우화, 무게감 있는 서사를 관통하는 젊고 활달한 문장!'이란 찬사가 전혀 무색하지 않다.

 

 

소설은 고서점 다락방에 날아든 한마리의 박쥐가 책벌레들을 집어삼키며 행복에 겨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재정난을 견디지 못한 고서점은 이내 폐업을 맞게 되고, 보금자리를 잃은 박쥐는 갑작스레 출현한 송골매의 발톱에 즉사한다. 송골매 역시 잠복한 고양이에 의해 죽음을 맞고 이를 본 노숙자가 '난쟁이 약재상'에게 팔아넘긴다. 이어서 지독한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중인 '유리부인'이 관절염에 박쥐가 신통하다는 약재상의 말에 속아 고아 먹는다. 뒤이어 뜻밖의 희소식(근섬유의 주된 원료인 정액)을 접한 유리부인은, 남편과의 밤일을 열심히 수행하던 중 십년만에 '원치 않던' 아이를 잉태한다. 아이의 태몽은 박쥐였다. 서막에 등장하는 박쥐는, 시종일관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소재이자 상징이자 줄거리로 자리한다.

 

황소 고환에 무엇이 있는가? 여기엔 정액이, 그리고 그 정액엔 고농도의 순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는데, 그게 바로 근섬유의 주된 원료가 됩니다. 그러니까 황소 고환이 물건도 강직하게 하고 근육도 불끈불끈하게 만드는 것이죠. p38

 

 

 

'볼더 협곡 주변의 댐 사업'을 추진중인 가시여왕은, 댐 사업 계획에 쓸데없는 변덕을 부려 수정할 것을 지시한다. 안전기준에서 벗어난 댐 공사는 기록적인 폭우를 만나 통째로 붕괴되고 빈민들의 거주 지역인 북쪽 외곽은 완전히 박살나고 수장된다. 이에 남편과 유리부인은 모두 숨을 거뒀으나 아이는 참혹한 현장에서 처음으로 구조된 생명이 된다. 신성한 언덕 위에 지어진 상류층들의 저택엔 아무런 흠집 하나 없었다. 왜? 북쪽 외곽이 방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전염병이 돌았고, 신원 확인이 되지 않던 노숙자를 비롯해 정부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싸늘히 죽어가는 시체로 넘쳐났다.

 

 

철학책을 갉아먹은 책벌레를 잡아먹은 박쥐를 고아낸 국물을 마신 퇴행성관절염 환자의 자궁에서 박쥐를 닮은 아이 '42번(42는 대홍수가 났던 해에 대량으로 발생했던 고아들에게 부여된 일련번호)'이 탄생한 것이다. 42번은 열악한 몬세라토 수도원 부속 고아원에 보내져 중이염을 앓고 청각에 장애가 생기면서 묵독에 관심이 옮겨가고 책읽기에 빠지게 된다. 또한, 가히 엽기적일만큼 천재적인 기억력과 독해력을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가시여왕도 왕자를 낳는다. 쿠데타로 정권을 꿰찬 궁재와 결혼 직전에 가고일 조각상으로부터 일종의 계시를 받은 연유였을까, 박쥐(가고일)을 닮은 왕자가 태어난다. 그러나 왕자는 자폐증 돌연변이 증상을 보였고, 궁전의 깊은 지하감옥 속에 철가면이 씌워진 채 유폐된다. 이에 여왕은 왕자를 쏙 빼닮은 대역을 찾으라 명령하고 박쥐를 닮은 42번이 적임자가 된다. 요약하자면, '책벌레들을 잡아먹던 어느 박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그 박쥐를 달여 마신 유리부인과 가시여왕의 단순 변덕으로 이어지는 난삽하기 짝이 없는 연대기'(p248)라는 것이다.

 

 

빈민들은 분노했고 그 방향은 시 당국을 향했다. 이에 댐 설계 수정안을 마련했던 건축사와 건설부 차관이 정부가 파놓은 함정의 희생양이 되지만 종국엔 도시 전체가 집단 히스테리와 폭동으로 잡아 먹힌다. 궁전 역시 미쳐버린 왕자에 의해 초유의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고서점의 참 주인은 허무의 벗, 책벌레였듯 비뫼시의 참 주인은 허무의 벗, 인간벌레임을 정의한다. '기적이 사라진 해로부터'라는 내용이 잊을만하면 본문에 등장한다. 다만, 그 해가 언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알 길은 없다. 우리에게 기적은 존재했었나?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인력사무소 소장 배불뚝이, 난쟁이 박제상, P수사, 난쟁이 약제상, 참된 양심 젤링거 박사, 왕가의 충실한 사냥개 알도 파스칼리노, 가시여왕의 허수아비 남편 샌님, 21번, 무정부주의자들의 큰형 앗도 등 수많은 인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허투루 쓰인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놀라웠다.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후작의 사랑을 고아들에게 베풀기로 했던 것이다(p78)'에서 노련미와 위트를 느꼈다. 사드 후작에게서 비롯된 음란성 가학증인 사디즘과 P수사를 연결시키는 고리가 절묘했기 때문이다. 왜 작가가 오마주를 통한 '상호텍스트성'을 지향하고 있는지, 이를 또 얼마나 영리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여러 차례 탄성을 질러가며 읽었다. 낱낱의 행보가 모여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고, 사소하게 느꼈던 나비의 날개짓이 토네이도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감하는 걸작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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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 『벚꽃나무 아래』 by 가지이 모토지로 梶井基次郞 | 2021년 2021-04-1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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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벚꽃나무 아래

가지이 모토지로 저/이현욱,하진수,한진아 공역
위북(webook)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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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벚꽃나무 아래』는, 단편소설이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산문집 분위기를 풍긴다. 그가 십대에 앓기 시작한 폐결핵은 죽을 때까지 이어져 31세라는 이른 나이에 서둘러 생을 마감하도록 재촉했다. 7년의 작품 활동을 했고, 사후에 더 큰 명성을 얻었으며 지금까지 천재 작가로 불리고 있다. [작가 연보]에 소개된 작가의 삶을 작품에 투영한 자전적 소설임을 발견하게 되지만, 일반 소설처럼 우발적 사건이 다뤄지지 않을 뿐더러 책 속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대화체도 적으며 대부분 일인칭 화자의 독백 형식을 취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사물을 대하는 독특한 그의 시선과 기이한 상상력 덕분일 것이다.

 

 

작가 자신이 대부분의 삶을 병약한 육신에 의존해야 했으나 사물을 향한 굴절된 모순에서, 보통 사람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그만의 방식으로 정밀하게 관찰하고 해석해냈다. 그 표현방식은, 문학적 기교에 강한 개성이 더해져 일상의 문체가 결합된 파스텔톤의 풍경화 같은 느낌이다. 잦은 병치레로 인해 우울함과 죽음을 전하지만, 허무나 절망이 아닌 위트와 기발함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있다. 이는 <겨울 파리>와 <레몬>에서 한층 부각되어 보이다가 책과 동명의 제목인 <벚꽃나무 아래>에서 절정에 이른다.

 

 

 

병이란 결코 학교의 행군처럼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을 행군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다. 마지막 죽음의 골로 갈 때까지는 어떤 호걸이든 겁쟁이든 모두 같은 줄에 서서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p41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한 카페에서 두 청년이 만나 '창문을 보는 취미'에 대한 담론을 이어간다. 이쿠시마는 남녀의 베드신을 목격한 것을 들려주고, 이시다 역시 같은 욕망을 갖고 있다. 이내 이시다는 이쿠시마가 알려준 벼랑 위에서 수많은 창문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낯뜨거운 베드신 현장에 주목하기보다 다른 창문 안에 갇힌 사람들과 또다른 창문 안에 갇힌 사람들의 온도 차를 발견한다. 인간의 죽음과 음탕함이 칸 하나 사이로 교차한다는 것을.

 

 

<겨울 파리>

'겨울 파리'에 대한 정의가 평소 우리들이 느꼈을 정서와 아주 잘 부합한다. '여름철의 뻔뻔함과 밉살스러울 정도의 민첩함을 잃어버리고 온 것', 겨울 동안 함께 주인공의 방에서 살았던 겨울 파리들의 이야기이다. 창문을 열어 두어도 결코 바깥 공기 속으로는 나가려 하지 않고 병자인 주인공 흉내를 내는 것 같은 겨울 파리들은 햇빛 속에서 교미를 하며 아등바등 살고자 하는 생명들이다. 헌데 주인공이 사흘 동안 방을 비운 사이, 파리가 모두 사라졌다. 닫힌 창문과 데우지 않은 방 탓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변덕스런 조건이 자신에게도 있을 것 같아 우울해한다.

 

 

<레몬>

초라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주인공. 그에게는 한 푼의 돈도 없지만 무기력한 그의 촉각을 유혹하는 것을 찾는 중이다. 뜻하지 않게 획득한 레몬은, 오랜 시간 자신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걷히고 굉장히 행복해진다. 이내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둔 레몬을 두고,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중량으로 환산한 무게'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평소 피해가던 마루젠을 들어가고, 책으로 성을 쌓은 뒤 꼭대기에 레몬을 올려두고 나간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 재밌을 것 같다는 흥분에 휩싸인다. 레몬이 폭탄이 된 순간이다.

 

 

<애무>

검표 펀치로 구멍을 뚫어보고 싶은 고양이 귀, 고양이 발톱을 전부 잘라버려서 나무에 못 오르게 하고 싶은 심술까지 상상하다가 결국 기력을 잃고 죽지 않을까 슬퍼한다. 이내 그의 꿈엔 '고양이 앞발로 만든 화장도구'까지 등장한다. 그걸로 파우더를 얼굴에 펴 바른다면 고운 털로 감싸인 벨벳 느낌이 간질간질 날 것만 같다.

 

 

<벚꽃나무 아래>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왜냐하면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이유엔 설명하기 힘든 모순이 담겨 있다고 역설한다. 주인공에겐 멋진 벚꽃에 대비되는 잔인하고 슬픈 사건이 필요하다. 그런 균형이 있어야만 자신의 이미지도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단편선 #벚꽃나무아래 #가지이모토지로 #위북 #일본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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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를 내어가는 문 『시구문』 by 지혜진 | 2021년 2021-04-17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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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구문

지혜진 저
특별한서재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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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중에 최악의 왕을 꼽으라면 선조와 쌍벽을 이루는 인조를 꼽는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가 작용한 탓도 있거니와, 인조가 시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향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으니 시대적 타깃이 타당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인조라는 얘기는 없지만 정묘년과 병자년에 이은 두 번의 호란으로 죄다 황폐해진 농토라든가, 광해군을 떠올리는 '폐위된 선대왕'이란 표현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구문』에서, 왕은 당시 자신을 보필하고 직언하던 한 신하를 참수시키는 인물이다. 이는 왕 자신의 허물을 감추는 것이며 그의 딸(소애)까지 본보기 삼아 노비로 전락시킨다. '소애'는 김 대감 집 노비로 팔려가는데 아마도 인조반정 일등공신으로 승승장구하며 반대파를 탄압했던 '김자점'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시구문의 정식 명칭은 ‘광희문’이다.

 

 

주인공 '기련'은 시체를 내어가는 시구문 길목에 서서 고인의 원한을 풀고 극락왕생을 빌어줘야 한다는 등의 속임수로 푼돈을 버는 열다섯 살의 당찬 소녀다. 기련이 돈을 버는 목적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함인데 이는 어머니를 향한 반항심 때문이다. 멀쩡했던 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얼마 후 어머니는 무당이 되는 내림굿을 받았다. 어머니는 '서방 잡아먹은 년'이 되었고, '딸년도 제 어미 인생 따라갈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 사람들에 대한 미움은 어머니에게로 옮겨갔다. '무당 딸년'은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기련의 또 다른 이름이며, 어머니와 별개인 자신을 싸잡아 비난하는 이 말을 죽도록 싫어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되니, 그것은 바로 어머니가 자신을 대신해 신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련이 건너편 버드나무에 걸린 그네를 타려 했을 때, 괜한 트집을 잡는 사내아이 '동구'와 몸싸움이 벌어진다. 도중에 기련은 개울가에 빠지게 되고 졸지에 아버지 유품인 주머니까지 놓치면서 동구마저 다친다. '소애 아씨'와 그녀의 몸종인 '향이'가 기련을 구하고, 주머니도 찾아주고, 다친 동구의 약값까지 대주면서, 그들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백주'가 일하는 '창수 주막'은 신당골에서 가장 장사가 안되는 집이다. 그래서 백주가 아무리 좋은 나무를 골라 잔뜩 갖다줘도 돈을 받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주모인 창수댁은 악덕업자 그 자체였다. 백주 어머니는 여동생 '백희'를 낳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백주 아버지는 병약한 사람이라 약을 써야 했고, 어린 백희까지 있어 세 식구 입안에 거미줄 걷어내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백주는, 기련이 신당골에 왔을 때 처음 말벗이 된 동무다.

 

 

그런데 기련은 언제부턴가 알 수 없는 풀피리 소리를 듣게 되고, 누군가의 죽음을 앞둔 순간마다 들리는 소리의 정체가 궁금하다. 소애 아씨의 아버지였던 주 대감이 역모죄로 참수를 당한 날, 백주의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같은 날 두 동무가 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기련은 비록 속임수를 쓰며 돈을 벌지언정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다. 병약한 할아버지의 잔뜩 굽은 허리 위에 놓인 손녀딸의 시체에는 자신이 신고 있던 버선을 벗어주고, 세 식구를 책임지는 동무 백주에게는 병약한 아버지의 약값과 음식을, 소애 아씨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시구문 시체의 터럭을 자를 용기를, 자신의 온몸으로 백주의 어린 여동생 백희를 구한 것 등이다.

 

 

한편, 김 대감 댁 마님이 세상을 떠난 날, 어린애가 와서 슬피 울어주면 극락왕생한다며 백희더러 잘 울면 돈을 주겠다는 말에 기련도 장례일을 위해 따라나선다. 그곳에서 노비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소애를 다시 만나게 된다. 백희는 시체와 함께 관속에 담길 마님이 아낀 여러 물건 중 금반지를 소맷부리에 슬쩍 하고, 이내 사라진 것이 탄로나자 백희와 기련을 멍석말이를 당한다. 매맞는 기련과 백희를 구하기 위해 백주는 자신이 모두 시킨 일이라 거짓 자백을 하고 뭇매를 이기지 못해 끝내 숨지고 만다. 곳간에 갇혀 있던 기련과 백희는 소애의 도움을 받고 셋은 탈출에 성공한다.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돈도 학벌도 아닌, 오로지 신분이 우선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양반, 흙수저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양반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노비, 임금이 신하를 모함해 참수하고, 양반집 자제가 노비를 때려서 죽이고, 양반이 한순간 노비로 몰락하는 건 일도 아니다. 조선의 멸망이 잘못된 신분제도에 있음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다. 그들의 고단한 삶과 희생에 읽는내내 마음이 울컥했다. 이 책에는, 생사의 길목인 시구문을 소재로 한 무당의 딸, 몰락한 양반가 규수,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부모의 부재와 삶의 결핍과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며 조금씩 단단해진다. 시구문을 넘어서면 과연 그들에게 새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솔직히 희망보다는 빤한 절망만 보여서 서글펐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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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by 미야자키 마사카츠 | 2021년 2021-04-15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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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처음 읽는 음식의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저/한세희 역
탐나는책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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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놓인 모든 음식과 재료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 인류의 역사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문화의 기초는 있는 그대로 먹는 생식에 있다. 그러나 인류는 계절이나 지역 등 한정된 공간이나 식자재의 부패를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덕분에 수많은 요리법을 개발해냈다. 그 결과, 우리는 대량의 간편식과 패스트푸드에 둘러싸여 중독될 위험에 처해 있다. 거기엔 언제라도 각종 질병을 일으킬지 모를 위험천만한 화학약품과 인간 중심의 세계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의 위태로움이 보인다.

 

인류가 약 50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의 지구대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수렵 채집 시대를 지나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에 농경과 목축이 출현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었으니 이른바 '농업 혁명'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토기의 발명으로, 재배와 사육으로 얻은 식자재가 식탁을 채웠다. 곡물은 4대 문명이 꽃피던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인류와 함께 번영했다. 농경을 시작한 인류에 의해 목축도 이뤄졌으며 사육된 동물을 통해 고기를 얻었다.

 

과거에는 살고 있는 나라와 환경에 따라 음식과 식자재가 달랐다. 유목민들은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연료를 전부 가축으로부터 얻었고 가축의 젖은 그들의 중요한 식자재였다. 그래서 젖의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발효 식품인 치즈가 탄생했고, 동양에서는 생선이나 고기를 소금을 넣어 젓갈로 보존했으며 유럽에서는 와인으로 식초를 만들어 보존했다. 벌꿀을 통해 얻었던 달콤함은 이후 사탕수수와 사탕무를 통해 얻었다. 몽골 제국에서는 한 명의 병사가 예닐곱 마리의 말을 이끌고 원정을 떠났는데 필요할 경우 말을 죽여서 식량으로도 이용했다. 괴혈병 예방과 치료를 돕는 레몬과 라임, 4대 향신료로 꼽히는 후추, 시나몬, 클로브(정향), 너트메그(육두구) 소개가 가장 흥미롭다. 특히 후추는 중세 유럽에서 화폐 대용으로 쓰일 만큼 귀했는데, 현지에서 싼 가격에 구매하려는 욕구는 대항해 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된다. 후추는 중세 유럽에서 희소성 덕분에 높은 신분과 지위를 드러내는 식자재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전 지구적인 규모로 식자재의 교환과 생태계의 변화로 인류의 식문화는 '대항해 시대'에 접어든다. 유럽인의 이주와 개발로 신대륙의 생태계는 구대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고 이제껏 없었던 동식물이 대량으로 신대륙에 유입된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자본주의 경제가 싹튼다. 한편, 기근 구제와 인구 증가에 공헌한 식량으로 옥수수, 감자, 고구마를 소개한다. 영국은 청교도 혁명 기간 중에 토마토 재배를 금지했는데, 토마토를 '사랑의 사과(love apple)'나 정력에 좋다는 뜻인 '늑대 사과(wolf apple)'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신대륙에 이어 아시아 각지에서도 상품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주요 상품은 설탕이었고 이는 자본주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설탕은 중국의 홍차와 이슬람의 커피와 결합해 유럽에 새로운 기호 문화를 만들었고 사탕수수 수확을 위해 19세기 초까지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홍차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으로는 '보스턴 차 사건',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홍차에 대한 과세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세기 런던 주요 도시에 커피 하우스만 3천여개가 넘을 정도였다니 대중화된 기호품은 커피였다. 이슬람 세계에서 독점하던 커피가 브라질과 서인도제도에서 대량 재배되면서 18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기호품이 된다.

 

19세기 후반 전 세계를 대상으로 철도와 증기선을 이용한 대량 운송, 부패를 방지한 통조림 제조 산업이 성장했다. 유럽의 식자재는 넘쳐났고 부유층 사이에 미식이 유행했다. 가공식품의 증가는 사람의 입맛을 바꿨고 식품첨가물은 식품의 일부가 되었으니 음식의 제3차 혁명이다. 18세기 말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레스토랑이 등장했다. 파리의 레스토랑은 프랑스 혁명 이후 대폭 늘어났는데, 국왕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귀족의 특권이 사라지자 그들이 고용했던 수많은 요리사가 직업을 잃고난 뒤 레스토랑을 연 이유다.

 

나폴레옹 시대, 식량을 장기간 보존할 목적으로 '병조림'이 만들어진다. 이후 병조림은 통조림이 되고 19세기 식품 가공 분야 챔피언이 된다. 이후 주석 깡통을 이용한 깨지지 않는 '통조림'이 나왔고 이후 깡통 테두리를 꾹 눌러가며 돌려 따는 따개가 발명되면서 19세기는 식품 보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건조 보존식, 농축 우유, 버터의 대용품인 마가린이 발명되면서 전통 식품을 새로운 공업 기술로 창조한 대용식품이 등장한다. 파스퇴르의 저온 살균법 개발로 도시에서 신선한 우유를 마시게 되었고 냉장고를 만들려는 여러 발명가의 노력으로 냉장선을 이용해 소고기를 대량 수송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19세기 서부 초원 지대에는 6천마리 정도로 추산되는 버펄로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서부 개척이란 미명 아래 파괴된 서부의 자연을 상징하는 동물이 되고 말았다. 버펄로가 멸종된 것이 불과 30년, 서부는 육우 방목지로 완벽하게 변화됐다. 대륙 횡단 철도가 완성되고 식품의 장거리 운송을 가능하게 한 냉장 화물 열차가 개발되면서 미 서부의 소고기가 유럽의 식탁으로 배달됐다. 그리고 콘벨트에서 재배한 옥수수를 먹여 육질이 부드러운 소로 키우는 방법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됐다. 현재 우리들이 소비하는 대부분의 소고기가 바로 옥수수 사료를 먹는 일종의 각종 성인병에 시달린 소이다.

 

1920년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라는 미국이 주도한 대중문화는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전 세계로 퍼졌고 가장 큰 변화는 1960년대에 급속도로 진행된 콜드 체인이다. 식자재 생산의 급증으로 자연 파괴가 가속화 되면서 인류는 자신들의 생존 자체인 지구를 빠르게 파멸중에 있다. 방대한 식량은 인류를 포식의 시대로 만들었고 여러 가공식품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각종 성인병과 당뇨병으로 시름중이다. 자동차와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는 현대인의 걸음수를 줄였고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어트가 성행한다. 농촌 사회가 해체되고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균형과 각종 문제가 양산됐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20%는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반면, 선진국 아이들은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40배가 넘는 자원을 사용해서 성장한다.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의 증가는 더 많은 석유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는 자연과는 동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이래 자연에 의지했던 온갖 동식물이 인공 식자재로 돌변했고, 양식장의 연어와 송어를 비롯해 생태계를 위협하는 화학 비료에 의존하는 농업 생산도 우리 몸에 결코 안전하지 않다.

 

#처음읽는음식의세계사 #미야자키마사카츠 #탐나는책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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