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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된 정치를 향해서 | 책 리뷰 2023-06-06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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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꼰대 정치의 위기, 90년대생의 정치질

황희두 저
포르체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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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두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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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희두'를 프로게이머로만 알고 있었다. 이전에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그가 정치영역에 발을 들일 줄은 몰랐었다. 그는 민주당 소속이다. 또한 정치관련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청년세대에 속하는 이 저자는 어떤 관점으로 정치와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렇게 프로게이머와 청년이라는 정체성과 현재 정치를 연결시킨다. 정치를 게임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큰 이유는 템플턴 대학교 사건이다. 아직 실체가 없던 학교가 학생을 속였던 것으로, 법적 다툼을 통해 결국 이겼던 내용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프로게이머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살려 정치의 요소들을 게임에 비유를 한다. 그의 설명은 조금 중립적이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까. 우리의 삶은 다양한 논제로 나뉘기 때문에 아무리 포부가 좋더라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사실 크게 알맹이가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책의 내용은 정치학적 내용이나 내용 증명같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와 그가 정치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점과 자신의 정치철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볍게 읽기에는 좋은 책이다. 가독성도 괜찮았다. 한 청년 정치인의 솔직한 후기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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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타강사의 역사인물 이야기 | 책 리뷰 2023-06-0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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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웅숭배론

토머스 칼라일 저/박상익 역
한길사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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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자, 아프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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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주의 역사관'이라는 것은 역사를 배울 때 한 번씩은 등장하는 것이었다. 역사에는 영웅이 존재한다거나, 영웅이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로서는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정도일 것이다. 영웅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평가한 19세기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이 있다.

 

그의 책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최근까지 역사 스토리텔러로 유행했던 설민석, 유시민, 썬킴 같은 인물들처럼 역사 이야기꾼으로 나섰기에 유명해진 책인 것 같다. 그는 시대별로 영웅을 설정해 자신이 왜 그들을 영웅으로 생각하는지 설명한다. 그 이름들 한 번 보자.

 

오딘, 마호메트, 단테, 셰익스피어, 루터, 녹스, 존슨, 루소, 번스, 크롬웰, 나폴레옹

 

그가 뽑은 영웅의 리스트를 보면, 단순히 한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웅은 시대별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웅의 외면보다는 공통된 숨겨진 특성이 중요하다.

 

"영웅은 자기가 태어난 세계의 종류에 따라서 시인, 예언자, 왕, 성직자 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영웅으로 뽑은 이유와 당대 사람들이 숭배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시대에 따른 영웅숭배의 모습도 단계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신적인 존재에서 예언자로, 또 예언자에서 다른 모습으로 넘어가는 것을 단계로 구분했다.

 

그의 영웅적 기준은 단연 "성실함" 이었다. 진리에 대한 성실한 탐구라고나 할까. 진실됨 또한 중요 요소였다. 모든 영웅의 특성으로 사물의 외관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 위에 서는 것을 말했다. 외관이 아닌 내면의 것을 보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영웅인 것이다. 영웅들의 생애를 바탕으로 그들의 특성을 설명하기에 해당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좋다. 없어도 좋다. 그가 인물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영웅에 대한 찬양만 하지 않는다. 인물에 대한 비판 또한 소개한다. 하지만 칼라일은 그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영웅으로 뽑힐 수 있는지를 피력한다. 칼라일의 서술, 특히 단테와 같은 인물을 설명하는 서술에서 일종의 호들갑으로도 느껴질 수 있을 만큼 과한 칭찬들을 하지만 오히려 그런 문체가 글의 재미를 더해준다.

 

칼라일은 미래 혹은 현재의 사람들은 과거를 낡은 것으로 보거나 가치 절하해 멀리하지만, 과거의 숭배는 결코 가치가 없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은 일종의 '역사주의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는데, 그는 지나간 인간들에 예의와 존경을 표하며 역사라는 장엄한 관점에서 개인을 바라보고 있다.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들은 설령 그것이 현재의 시각에서 잘못되었다 생각하더라도 미래의 발판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그는 기독교(정확히는 칼뱅주의자) 인이었지만 오딘이나 마호메트를 영웅으로 꼽은 것을 보면, 그가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인정했던 것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객관적 기준으로 영웅을 선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당대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그의 역사관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가슴속에서 진리로서 정직하게 살아있었던 모든 사상은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신의 진리에 대한 정직한 통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안에 본질적인 진리가 있으며, 그 진리는 모든 변화를 초월하여 우리 모두의 영원한 소유물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싫어한 것은 18세기의 만연해진 회의주의였다. 그는 세상을 기계적으로 보는 것을 혐오했다. 세상은 나무 같은 것이지 기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가 기독교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정신을 중요시했다. 물질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모든 것의 근본이자 시작이라 여겼다. 또한 그는 보수주의적이기도 했다. 루소를 영웅의 자리에 위치시키기도 했으나. 대체로 비관적이며 비판적인 서술을 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중간중간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그는 과거의 유산을 소중히 다루며 믿음의 가치를 믿는 입장으로, 기계주의적이고 자만심 넘치는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있다.

 

"이 우주를 기계로만 보는 사람은 우주의 깊은 신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극히 치명적인 오류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념에서 모든 신적 존재를 제거한다는 것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비인간적인 과오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는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칼라일의 역사 교과서'는 아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그 기준으로 평가한 역사 인물들의 이야기라고나 할만하다. 그가 영웅들의 어떤 점을 칭찬하고 어떤 점을 비판하고 있는지 본다면, 당대의 '영웅상'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그의 글은 과격할 수 있으나, 그의 감정이 고대로 묻어 나오기 때문에 지금도 재미있게 읽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웅주의 역사관과 기독교 중심적 서술, 프랑스 혁명에 대한 보수적 입장, 정돈되지 않은 서술 등으로 비판할 점이 여럿 있다.

 

그가 전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라면, 우린 세상의 진리를 알아야 하고 성실히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하는 것. 세상을 죽어있는 시체처럼, 기계적으로만 보지 말 것. 칼라일의 입장에서 그 진리란 기독교적인 의미였지만, 결국 우린 나름의 관점에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성실하고, 또 진실한 마음을 갖는다면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영웅은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칼라일은 우리 또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칼라일은 빈곤과 같은 역경이 영웅의 조건일 수 있음을 말한다. 최선을 다해 삶의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해 보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고 깨달으며, 세상의 진리를 이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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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원조의 고질적 문제분석 | 책 리뷰 2023-05-3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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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로버트 칼데리시 저/이현정 역/허성용 해제
초록비책공방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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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정의적 발전도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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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빈곤과 원조에 대한 내용은 꾸준히 인기 있는 주제였다. 특히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같은 책은 세계화, 신자유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아프리카 빈곤을 이야기했고 이는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최근에는 안젤리나 졸리가 UN을 비판하며 특사에서 물러났고 현재 국제기구 비판론자들과 함께 국제기구와 국제 원조의 실효성에 의문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아프리카는 최근 지정학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중국과 서방의 세력 싸움의 공간이 되었고 자원이나 소비시장과 같은 미래를 위한 투자, 특히 아프리카 인프라 구축을 대가로 중국의 공격적 차관 투입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도 아프리카를 저개발적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팩트풀니스>같은 저서와 아프리카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제 아프리카가 어느 정도 개선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장밋빛으로 발전하고 있지만은 않다. 최근 수단 내전으로 교민들이 대피한 뉴스가 보도됐고 영화 모가디슈가 인기를 얻으며 소말리아 문제가 조명 받았다. 짐바브웨 같은 국가 문재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보통 서구 식민 지배의 도덕적, 역사적, 경제적 책임과 인권보호 따위를 근거로 그들에 대한 원조를 정당화하지만, 계속해서 서구 식민 지배의 유산을 들먹이며 아프리카의 혼란한 상황을 서구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의 저자 로버트 칼데라시는 기존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는 세계은행의 국제 개발 분야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인물인데, 직접 경험하고 분석한 내용으로 아프리카 개발과 원조를 비판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은 2005년에 발간됐지만 고질적 문제의 비판과 시사점은 유효하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참담한 상황을 설명하는데, 식민주의적 역사관으로도 비칠 만큼 비판적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의 주장을 들으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 아프리카 나름의 문제가 존재함 볼 수 있고 저자가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서구 혹은 국제기구는 그동안 수많은 돈을 아프리카 원조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돈들은 대체로 부패한 정치인들의 손으로 들어가고 시민들은 돈이 어디로 쓰이는지도 모르며 정치적 분쟁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저자는 대체로 정치적 지도자가 문제인 경우가 다수라고 비판하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고질적 문제임을 분석한다.

 

아프리카인은 왜 이런 부패한 정치인들을 두고 볼까? 저자는 이 원인을 문화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인종 차별적으로도 비칠 수 있는데, 만약 문제를 설명하거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설득력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정치인들의 지속적 부패에 대한 원인으로 아프리카의 문화와 부패, 정치적 정당성을 든다.

 

아프리카인은 주변 세계와 동화되려는 성향이 있고 자신의 삶 개선에 무관심하다. 이는 서구의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아프리카의 집단주의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족 우선주의와 눈앞의 상황만을 보는 성향과 합쳐져 저축과 미래에 대한 계획 부재와 가까운 사람을 챙기는 부정부패로 이어졌다. 성에 대해 보수적이기에 에이즈가 잡히지 못하고 숙명론적 인식이 강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다. 또한 부패는 일종의 관행이 되어 정의감 넘친 인물도 금세 동화되고 야당은 부정부패를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그 부패된 권력을 누리고자 기회를 노릴 뿐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아프리카의 역사적 사실을 들며 으프리카의 현실을 설명한다. 서구의 평화유지와 정치적 안정 시도에도 정치적 증오와 인종적 차별로 서로를 말살한 것, 부패한 법과 사법제도, 단순한 구호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 서구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한 백신과 구호물품 거부의 모습이 현실이었다. 넬슨만델라 같은 희망의 경우도 물론 존재했지만 문제는 그것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사회주의적 자립 시도인 탄자니아의 사례와 자본주의적 자립 시도인 코트디부아르의 사례를 비교하며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한 국가가 일어서는 것은 체제도 체제지만 굉장히 고려할 것이 많고 어려운 문제임을 느꼈다. 국제기구의 원조 프로그램 또한 문제가 있었고 지역의 세부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부패는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문제다.

 

이런 고질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에 앞으로의 원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또한 서구가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심과 역사적 인종적 죄책감, 아프리카에 대한 낙관,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그는 아프리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조금 더 구체적인 10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자금의 투명성과 정치의 투명성 추구, 원조의 효율성 개선, 민주주의의 발전, 에이즈의 극복, 시민사회 발전, 인프라 및 국가 연결과 국제기구의 통합적 운영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시장중심주의적이고 대부준의 원인을 아프리카 내부에서 찾기 때문에 비판점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진 단순한 원조와 서구의 자기만족적 원조 프로그램을 개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해 의미가 있다. 개선과 개발은 서로 맞물려야 굴러가는 것이다.

 

그는 이미 그가 받은 비판처럼 스스로도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진 못하지만 최선의 방법임을 설명한다. 가장 강조되는 메시지는 원조도 원조지만 아프리카 국가 스스로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농민들의 튼튼한 성장과 자립, 시장의 정상적 작동, 국민의 민주적 의식 함양 같은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아무리 선의와 상상력을 동원한 프로젝트라 해도 서규 및 아프리카 정부가 동일가치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 정부들은 서구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개인적이었으며 자신의 이익을 챙겼고, 투명한 자금 흐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을 단순히 문화나 관점의 차이로 봐야할까. 저자는 그동안에 이루어진 시행착오들을 보여주며 왜 계속해서 원조가 효과가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아프리카의 상황을 보면서 한 국가가 발전하는 데 얼마나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고, 또 경제개발에 있어서 민주의식과 효율적 예산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낀다. 한국과 같은 국가가 만들어지려면 그것도 상당한 운이 따라야 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맞물려 돌아가야 했음도 느낀다. 이 책에는 아프리카의 역사와 정치문제가 실려있기도 하고 세계은행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국제관계나 원조 시스템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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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 색채 표현가 | 책 리뷰 2023-05-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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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호퍼 A-Z

얼프 퀴스터 저/박상미 역
한길사 | 202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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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요한 화가를 꼽으면 그중 하나로 항상 등장하는 에드워드 호퍼. 산만한 친목 다짐을 했던 당시 예술계, 특히 유럽계 미술인들과 거리를 두고 매우 미국적인 활동과 작품을 이어나갔다. (호퍼와 피카소는 1살 차이다. 그런데 호퍼는 유럽여행 당시에도 피카소의 존재를 몰랐고 뒤늦게 알게 된다.)

색감 사용에 탁월한 화가가 있다면 인상파를 시작으로 로스코, 호크니 같은 인물을 들 수 있지만 특히 어두운 색감으로 멜랑꼴리함을 전달하는 화가는 단연 에드워드 호퍼를 최고로 뽑을 수 있다. 흔히 그를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표현한 화가라고 칭하는데, 그의 작품에서 특히 도시의 어두운 모습에서 색감 대비, 때론 과장을 통해 특정 분위기를 강렬히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 영화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까운 예시라면 공효진과 공유가 나왔던 SSG(쓱) 광고, 특히 히치콕의 영화와 <더 샤이닝>, <로마의 휴일> 등을 들 수 있다. 영향은 상당해서 따로 검색해서 봐도 될 정도다. 이미 그의 영향은 알게 모르게 미디어에 녹아들어 있다.

그가 매우 미국적인 이유는 그가 대륙 장거리 여행을 즐기며 차에서도 작품을 그리는 등 활동과 영감의 주 무대가 미국이었기도 하지만 작품의 대상이 주유소, 자동차, 식당, 미국식 주택, 어두운 도시 같은, 미국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괴테와 같은 시인을 좋아해 그 흔적이 작품에도 녹아있는데, 작품은 무거운 느낌을 주며 그 느낌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또한 무의식을 드러내면서 색감의 대비 혹은 과장을 통해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의 일부 요소는 그의 표현을 위해 비현실적으로 그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어려운 메시지나 정신 사나운 요소들을 때려 박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분위기와 호퍼의 시선에 집중하게 되며,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야말로 사로잡힌달까. 등장인물들이 생각하거나 바라보고 있는 대상들이 생략되면서 더더욱 깊은 생각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호퍼는 폴 고갱과 같은 화가가 현대적 관점에서 비판받는 것처럼, 가부장적이며 아내 조세핀의 능력을 억압하고 폭력하며 때로 작품으로 그녀를 비하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조세핀은 호퍼에게 영향을 주고 나름대로의 예술가적 능력을 가졌지만 무시당하며 그를 내조하는 역할에 그쳐버린다. 하지만 조세핀은 많은 호퍼 작품의 모델로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이 조의 우울함일지도 모르겠다.

고갱에게 타히티 여성이 있고 호크니에게 물이 있다면 호퍼에게는 숲과 빈 방이 있었다. 특히 빛이 비치는 공간에 집중했는데, 그의 그림을 보면 인상주의의 화풍이 남아있는 동시에 명암의 대비를 통해 특유의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화풍을 개발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상주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호퍼를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호퍼는 자신의 그림이나 표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모든 예술의 큰 부분을 무의식, 잠재의식의 발현으로 보았기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과 화풍에 영향을 미친 작품의 발전과 성장 과정을 보는 것도 일종의 재미다.

<호퍼 A-Z>는 알파벳순으로 키워드를 정해서 호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호퍼의 주요 작품과 동시에 주요 내용을 전달해 이해를 돕는다. 단어와 작품을 이어주기에 읽는 재미가 있고 쉽게 읽힌다! 현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호퍼 전시를 가기 전에 보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퍼 전시회에 대표 작품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는 평이 있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들을 곱씹으면 인물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호퍼 작품을 선호하진 않는데, 그가 비교적 온실 속 화초처럼 살기도 해서 그런지 특유의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일종의 우월의식이 비치고 혁신적 시도가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 취향이 팝아트나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라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인기 있는 화가는 이유가 있고, 그 내막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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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라는 퍼즐의 뒤늦은 완성 | 책 리뷰 2023-05-2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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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저
창비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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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건내는 화해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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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죽고 난 뒤에 나타난다고 하지 않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장례식장에 조문 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7p)

 

유물론, 사회주의라는 장엄한 이데올로기를 믿고 살아온 것에 비해 아버지의 죽음의 순간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의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은 모습이었다. 죽음의 순간도 인간답다고나 할까. 책의 내용은 죽음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어떠한 죽음을 맞았는지가 아니라 은 이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저자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다양한 조문객을 만난다. 잘 알고 있는 친척부터 처음 보는 인물들을 맞이하면서 별의별 곳까지 영향을 미친 오지랖 넘치는 노인네였음이 나타난다. 동네 아이부터 그를 증오했던 이들까지. 그의 관계망은 인간의 정이랄까 비슷한 것으로 묶여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자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릴 적 가정의 모습을 돌아본다. 현실주의자인 저자에게 아버지란 고집불통의 이해불가한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를 집 갈 때를 놓쳤다고 딱하다며 집에 데려오질 않나 다른 집의 일을 봐줘야 한다며 자신의 시간, 심지어 재산까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질 않나. 타인의 일이 곧 자신의 일이었다. 다문화 가정의 보상금도 제일처럼 받아내줬다. 저자의 말처럼 인내할 줄 아는 자는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 행동하는 아버지였다.

 

현대사의 흐름에서 빨치산의 가족이라는 것은 분명히 큰 단점이었다. 특히 저자의 작은아버지는 형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의 순수한 마음이 오히려 가정을 파탄 냄으로써 형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조카는 꿈이었던 육사를 합격하고도 빨치산 친척 때문에 신원 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감옥에 가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대신했다. 빨치산의 딸인 저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당연히 그녀는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사망선고와도 같았으니 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224p) 굉장히 힘들고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색깔마다 다른 것일까. 아버지는 끔찍하게 딸을 아꼈다. 딸과 이야기하길 즐겼고 딸인 저자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항상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은 둘을 갈라놓았다. 감옥에 들어갔던 아버지와 몇 년간 떨어진 딸과의 간극은 그 이후 쉽게 채워지질 못했다. '감옥에 갔다 온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을까.

 

사람 사는 세상은 이데올로기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아버지는 물론 빨치산이었지만, 그의 사상을 누구에게나 강요하거나 강하게 드러내고 다니진 않았다. 물론 아버지에겐 이론이 중요했다. 농사 자체도 책자만을 따르길 고집하다 망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때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론은 놓을 수 없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실제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 대부분은 빨치산 고상욱이 아니라 친절한 동네 아저씨, 과거에 잘 어울리던 친구, 위기를 극복하게 도와준 사람 따위로 그를 기억했다. 그는 타인과 같이 살길 원했고, 타인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될 정도로 나와 당신의 구분이 없었다. 그 천성이 그를 산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존재의 부재 상황에서 그 존재를 떠올리며 우린 무슨 생각을 하며 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가 남긴 이야기를 보면 삶이라는 것은 그리 단순하게 말할 수 없고 녹록지 않은 것임을 느낀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관계의 그물망은 다채롭고 탄탄했다. 사람 사는 꼬순내가 풍긴다. 인생의 일부를 공유했던 존재의 죽음 앞에서 우린 어떤 것을 가장 먼저 기억하고 느낄까. 거 참 복잡 미묘함이랄까. 인간의 정이라고나 할까나. 무엇인가 마음을 움직인다.

 

추억이란 떠오르면 저절로 향하는, 마음으로 가고 싶은 공간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장례식장을 찾아온 이들이 그런 마음의 발현으로 “또 온다”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존재가 부재한 곳에는 추억만이 남으니까. 저자는 추억을 곱씹으며 아버지를 이해해 본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 혹은 이해하려 노력할 때 무지했던 과거의 순간들에 사과를 건네고 세상과 화해를 시도한다. 세상은 입체적이다. 빨치산의 구호를 외치는 아버지도 인간이었고,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물리칠 수 없었고 이상으로 살 수만은 없었으며 예상치 못한 삶의 연속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품고 있었던 그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부대끼고 같이 살며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버지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는 지향점의 표현일 뿐 인간 삶의 영역에서는 그런 구분이 무용하다. 또 인생의 특징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하며 관계 맺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저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살고자 하며 '인간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마음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다. 이념의 갈등 앞에서 동료들이 잔인하게 죽고 가정이 분해되고 인생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었지만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는 정치적 성향을 떠나 누구와도 함께 지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린 '나'라는 관점에서 사람을 해석한다. 그리고 '나'라는 입장에서 상대와 관계 맺는다. 그렇다면 우린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살면서 자신만의 그물망을 만들고, 사람은 죽어 이야기를 남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었고, 딸의 원망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혹은 그를 거쳐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해방되었달까. 한 인생은 저마다 다르게 기억된다.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268p)

 

사실 아버지 고상욱 본인은 죽음과 슬픔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이고 뭐고 신경도 안쓸 것 같다. 사람은 죽어 썩고, 사람 사는 세상이 뭐 다 그렇지 하고 있을 듯 싶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 그를 보는 것이기도 하고. 종종 느끼는데, 한 인생은 꿈처럼 남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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