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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부터 도덕을 정당화하는 시도에 대한 비판적 사고 | 책 리뷰 2022-12-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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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로레인 대스턴 저/이지혜,홍성욱 역
김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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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움에 대한 당위성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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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 로레인 대스턴> 우리는 보통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거나 듣는다. 또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때의 자연스러움의 대상은 자연의 모습일 수도 법이나 사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자연스러움을 강조할까? 또 어떤 방식으로 사회질서를 자연스럽다고 정당화할까? 우리는 자연스러운 것이 대게 좋다(혹은 당연하다) 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저 추상적인 이미지나 표상으로써 받아들인다. 이 책은 그런 당위적 구조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저자는 우리가 '자연적이다'라고 도덕적 규범을 이끄는 자연을 '특정 자연', '지역적 자연', '보편적 자연법칙'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인간은 이렇게 정형화된 '자연스러운'규범에서 벗어나 부자연스러움을 맞이하면, 경이로움, 두려움, 공포와 같은 격정을 느낀다. 한번 정형화되어 일어난 감정은 그것을 유발한 것이 도덕적인 것이냐 자연적인 것이냐의 차이를 뭉갤 정도로 강하다.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려는 것에 대해 철학자 이언 해킹은 인간은 표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우리가 이미지화하는 것이 본성임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정당화를 함에 있어서 표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자연에 의지하는 걸까?'

 

우리는 질서를 부정하기에 질서가 주는 힘은 너무나 강력하다. 어느 사회는 규범이 존재하듯 우리는 질서를 추구한다. 그렇기에 질서가 있는 자연은 우리 사고의 근본이 되고 자연은 그 근거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또 자연은 무한한 근거들이 있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수많은 재료의 세계다. 우리의 직관으로, 경험적으로 반복해서 인식하는 자연은 더 신뢰할만하고 영구적이기에 질서가 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직관이 정당화를 이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당연하기' 때문에 이는 정당화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자연이라는 단어 자체가 본질상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되어버린다.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충동은 질서에 대한 이중적인 통찰에 뿌리를 둔다. 규범성은 질서를 요구하고, 자연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서에 대한 예시를 제공한다", "자연은 상상 가능한 질서의 창고다 "

 

"자연은 도덕적 질서의 모델로서 이점이 있다"라고 말하는데, 다음과 같이 근거를 제시한다.

1, 자연은 흔하고 이용할 수 있고 친숙하다 꾸며낼 필요가 없다

2. 자연이 모든 질서의 저장소라는 것. 자연은 그 가능성이 너무 풍부해서 지금까지 인간의 창의력을 앞질러왔다

 

인간의 어떤 것보다 엄청나고 지속적이고 초인적이라면 단순 표상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로서 기능한다. 과거의 학자들이 자연을 일종의 신학과 결부시켜 인식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실험을 하며 신의 뜻인 자연을 해부하겠다고 주장한 이들조차 신의 세상을 탐구하기 위해 객관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도 했으니.

 

하지만 저자는 '자연적 근거 들기'를 비판한다. 자연의 근거가 다양하기 때문에 반대하기 위해서도 자연을 들 수 있기에, 오히려 상대주의적 설명에 빠져 설득력을 잃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호소는 근본적으로 자연 질서와 규범성 그 자체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지 어떤 특정한 자연 질서와 어떤 특정한 집합 또는 규범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연 질서 자체는 규범성을 따르는 것이지 특정적인 하나의 인간 질서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런데, 저자는 하나 더 짚고 간다. 그렇다면 자연이 무조건 옳은 것으로만 연결 지어졌을까? 그것은 아니다. 자연의 이미지는 복잡하게 섞이거나 때론 야만의 이미지로 기능했다. 인간은 도덕적 질서를 판단하기 위해 자연적 질서의 측면을 이용한다.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런 경향이 없어 보이는 것도 정당화로 연결 지어진다. 의미 없는 것 혹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나아가면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시대의 여성상, 남성상이나 성의 구조 같은 것들도 단순히 자연적이라고 근거를 들기에는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분명 다른 생물에도 여성 중심적 가족관이나 동성애의 경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어느 정도 맥락에 의존하고 있다는 그녀의 연구와 일치하는 답이다. 진리조차도 언제나 바뀔 수 있고 사회적 맥락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프래그머티즘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럼 우리 인간의 규범은 자연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이성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저자는 이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쪽이다. 우리가 특정 힘을 표상화하는 것은 일종의 신학적인 자연숭배일지도 모른다.

 

"규범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자질이다. 이는 무엇이라는 것과 무엇이 되어야만 하느냐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을 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게다가 이 불일치에 대한 슬픔을 경험하게 해주는 자질이다." "신의 의지의 행위는 기적을, 인간 의지의 행위는 도덕적 자유를 낳았다"

 

아무래도 번역서에 과학철학 성격이 강해 말이 어렵다. 물론 압축되어 사상을 서술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제를 보고 다시 읽게 되면 저자가 써놓은 열쇠가 보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녀의 연구분야를 설명하는 해제 부분이었다. 그렇게 해제를 읽고 다시 읽으니 곱씹을 것들이 많았다. 작은 책에서 상당히 많고 다양한 사고들이 교차한다.

 

자연을 왜 도덕에서 찾는가, 왜 자연에서만 찾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할 것인가. 또 정당화에 성공하는 사람이 자연과 사회 모두 지배할 수 있다는 사고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런 어려울 수 있고 주목받지 못하지만 중요한 저서들을 번역하려는 번역가와 출판사를 응원한다. 최근에 상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는 복잡계를 담은 <자연은 협력한다>를 읽은 것과 대조되는 내용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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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협력하고 우리는 거기서 해답을 얻는다. | 책 리뷰 2022-12-24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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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연은 협력한다

디르크 브로크만 저/강민경 역
알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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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복잡하고, 내 머리도 복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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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작가의 <떨림과 울림>에서 복잡계에 대한 내용을 잠깐 읽고 사색에 빠진 적이 있었다. 우리가 세상을 작은 것들로 쪼개어 설명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이면 그 조각들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생기기 때문이고, 이것이 물리학적으로 보이지만 일종의 사회의 모습과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정도 생각으로 멈췄었는데, 최근 복잡계 연구와 관련해 <자연은 협력한다>라는 책이 나와 흥미가 생겨 서평단을 신청했더니 당첨되어 책을 받게되었다.

 

<자연은 협력한다/디르크 브로크만> 이 책은 최근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복잡계 과학을 다양한 예시와 함께 쉽게 풀어쓴 교양서적으로, 본판인 독일어 판은 아마존 과학/기후 분야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저자는 전염병 모델링 전문가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활동한 자신의 경험도 책에서 다루고 있으며 복잡계 특성상 과학과 사회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

 

복잡계는 무엇인가?

복잡계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복잡계 연구는 완벽히 정의하긴 힘들지만 어렵지 않다. 대체로 복잡계 연구라고 하면 물리학, 생물학적인 패턴과 사회 구성 요소들이 다양하게 주고받는 상태를 비교 연구하는 것이 떠오른다. 그래서 복잡계 연구는 겉으로 보기에 전혀 다른 자연현상과 사회현상 사이의 분명한 연관성과 공통점을 알아채고 그 근본을 탐구하도록 돕는 것이다. 책에 후반부에 나오지만 복잡성 연구는 결국 협력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우주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원자들이 모이면 원자들 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과 역할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존재들은 또 그 존재들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수없이 세상은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복잡계 연구는 동떨어져 있어 보이는 것들을 모아 공통점을 찾아보며 원칙을 찾고, 모델링을 해본다. 그렇게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단순한 방법론, 환원주의를 무시하며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책에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복잡계 예시가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전염병 예방에서의 모델링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개체(한 사람)가 단순히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단순한 집단면역으로 전염병을 해결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초연결 된 슈퍼 전파자가 존재하고 그에겐 그만큼 이웃이 많기에, 사람들에게 다른 이웃에게 예방접종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임을 찾아낸다.

 

또 최근에 문제가 되고있는 sns에서의 정치 양극화 문제에서도 우리가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세력을 형성하는지를 모델링을 세워 분석하고 이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찾아본다. 복잡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 중 하나는 이런 사회현상을 수학적으로 풀어내고 모델을 세우며 연구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행동을 비교 분석한 복잡계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매우 작은 동물들과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느끼는 인간들의 행동이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한다. 또 우리는 통계학적으로 세상은 대게 극과 극으로 나누어져 있고, 평균값으로 세상을 오해하며 우리가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다며 말하는듯하다. 하지만 이런 모델을 통해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딨을까. "모델은 우리가 여러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저자는 공생 발생이 생명체의 근원이라는, 공생 관계에 관한 린 마굴리스의 연구를 설명하며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다윈과 이기적 유전자의 사고방식에 균열을 낸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계는 단순히 인과성이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을 넘어서 사고 방식 혹은 사고의 근본을 바꿔보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세가 우리가 앞으로 극변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도구이자 무기임을 강조한다. 스티븐 호킹도 언급했듯 우리의 세기는 복잡성의 세기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연결시키고 또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독자라면 이 복잡계를 연구하거나 연구 결과를 사용할 가능성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계가 주는 중요한 통찰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세상의 많은 경우들이 연결되어 있고 협력하고 있으며 이는 특이한 것이 아니라 많은 생물과 사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잡계 연구는 그것을 사회로 연결시켜 해결 방안을 찾고, 결국 자연의 방식 그대로를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도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연결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고 크게 휘는 공을 찰 수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서 어떤 사건을 이리저리 굴리며 측면도 봤다가 거꾸로도 봐야 한다."

 

+사실 복잡계 연구가 체계적인 연구는 아니다보니, 관련 연구를 보거나 책들을 읽다보면 이걸 이렇게 연결시킨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오는 나름의 신선한 충격들도 있고 오히려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들도 얻게된다. 정재승 교수가 어느 프로그램에서인가 책에서 전혀 연관되지 않은 것들을 연관시키는 것의 유용성과 즐거움을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복잡계 연구 자체가 어떤 깊은 사유의 학문이라기보다 우리의 관점을 바꾸고 우리가 사회를 인식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해 결국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개발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가 복잡해 보이는 것들도 이해하기 시작하면 복잡한 것이 아니고, 어느정도 수학적으로 모델링을 할 수 있음을 보면 복잡계 연구에도 어느정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결국 인간들도 자연의 일부이고 우리가 이 생물학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복잡계 연구도 이런 맥락을 따라가는 것이고, 공생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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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세상에서 어떤 등불을 들고 살아갈 것인가 | 책 리뷰 2022-12-22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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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저/이상헌 역
사이언스북스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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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려는, 강압적이지 않지만 날카롭고, 편안한 인간의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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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저자로 알려진 과학자 칼 세이건이 유사과학과 과학의 태도를 비교하며 통찰을 쏟아낸 책이다. 우리는 어떤 것들을 믿으면서 살까, 무엇을 믿으면서 살아왔는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낸다.

 

"과학은 경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유사과학 역시 그렇다. 대중화를 소홀히 한 과학은 이러한 틈새를 허용했고 그 자리를 사이비 과학이 재빨리 채웠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감정에 약한 존재이다. 우리 인간이 과학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 후 이성적이라고 자부했지만, 근대 이후 프로이트는 무의식으로 그 자신감에 균열을 내버렸고, 현재의 심리학자들과 행동경제학자와 같은 이들은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는 않음을 알려준다. 최근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진지하게 믿는 이들도 등장했고, 과학이 그렇게 발달했다는 이 현재에 각종 미신들 또한 넘쳐난다. 그리고 지금의 사회는 과학과 종교가 비슷한 영향력으로 나름대로 공존하는 사회이다. 우리는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먼저 세이건은 인간이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의 발전을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흔히 철학의 시작이라고 하는 이오니아 지방 철학자들 이전까지 사람들은 대체로 많은 현상들을 신의 뜻으로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고 해결할 수 있다는 실험정신의 이오니아 정신으로부터 우리 인간세계는 바뀌게 된다. 하지만 미신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서 지금도 상당수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신비한 현상이나 종교적으로 이해한다.

 

인류는 과학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상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농업혁명을 일으키고 그 뒤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강조했듯이 우리는 과학이라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을 발견했으며,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과학적 태도의 발전을 누군가는 안타까워하지만, 세이건의 책을 읽다 보면 과학은 인류의 자기 비하나 혼란을 이끈 것이 아니었고 과학이 종교나 미신을 완벽히 부정한 것도 아니었음을, 또 과학적 관점이라고 무작정 기존의 관습을 파괴하자고 과격히 주장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과학은 지식 이상의 것이다. 과학은 생각의 방식이다." 그리고 과학적 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의주의 사고이다. 과학은 우리가 던져진 실제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었고, 오히려 종교적 관점에서 신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탁월한 방식이었다. "우리는 운 좋게도 많은 현상을 비교적 적은 수의 간단한 자연법칙으로 '환원'할 수 있는 우주에 산다." 몇 개의 수식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이 경이를 세이건은 오히려 창조주에게 기대할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유사과학만을 고집하는 자세는 "실제와 마주함으로써 하게 되는 마음고생을 훨씬 쉽게 회피할 수 있게 해주"는 지적 게으름의 표시이기도 했다. 세이건이 비판한 것은 종교나 미신이 그 자체라기보다,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적인 태도였다. 변화할 수 있는 세상에 대응하는 것, 자신의 논리나 삶의 모습에 근거를 붙여주는 것은 과학이다.

 

그렇다고 과학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인가? 세이건은 과학만능주의적 자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과학의 발전에서도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다. 과학 자체도 객관적 지식과 미신적 믿음을 같이 가지고 있었던 과학자들이 발전시켰고, 위대한 과학자들도 오류를 갖고 있었으며, 과학이 부정적 방향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과학을 앎으로서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얻었고,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과학은 내재적으로 수정 장치를 가지고 있기에 부패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

 

세이건은 사후세계를 믿거나 망자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진짜 문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영매나 채널링 관련 이야기는 죽음이 주는 슬픔과 고통을 줄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준다. 나약하고 한계가 정해져 있는 인간의 삶에서 비롯되는 무력감이나 우울함을 극복하게 해준다. 거기에 신비로움의 흥미까지 돋아준다. 그러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이 이러한 유치한 기적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통 종교와 비슷한 것을 약속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생명이나 영생 같은 것 말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 의심을 가지게 되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근거를 제시하게 되면 많은 이들이 과학을 위험시한다. 그런데, "세상일이 우리 소망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의 잘못일까?"

 

세이건은 과학적 태도를 말하면서 사회적인 비판 또한 아끼지 않는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도 국가 대사를 결정하기 전이나 정기적으로 점성술사나 신비주의자나 무당 또는 아무개 법사의 자문을 구한다"라고 하며 "정부나 사회가 비판적 사고 능력을 상실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수 있다."라며 국가 대사에 미신적 요소가 개입되는 것을 경계했다. 또 지식 검열에 대해 경고를 하면서 스탈린 시절 고전 유전학 탄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정부가 미는 이데올로기나 대중의 편견이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후 세계나 미신의 강조는 종교나 국가가 팔아먹기에 좋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과학이 정부적이어야 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과학적이어야 하는 것이며 이는 당연히 민주적이어야 함을 말한다.

 

추적 60분 프로그램과 랜디가 제작한 사기극인, 초능력을 가진 쇼를 보여주는 알바레스 사건을 이야기한다. 언론 매체가 모두 이 사기극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의심하지 않고 보도했고, 그렇게 사기극에 열광한 사람들은 진실이 드러난 뒤조차도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까지 보여준다. 이를 보면 언론 자체의 문제와 또 언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 또 인간이란 얼마나 고집스럽고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속임수에 낚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너무나 괴로운 탓에 사기꾼에게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고 나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그는 과학을 민주주의랑 비교한다. 또 과학은 완벽한 도구는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자기 오류 수정 기능을 가진 집단적 작업인 것이다." "과학에서는 해서는 안 될 질문이 없다." 과학에는 스스로 내장된 오류 수정 장치가 있다. 차별을 하지 않고 다양성과 논쟁이 가치 있는 것이다. 그의 세상에 대한 겸손함의 태도에선 몽테뉴의 사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물론 과학적 태도에서 벗어난 과학자들의 사례도 언급한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오류를 가진 존재임 또한 기꺼이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건 인간이기에 그런 것이지, 과학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학의 종사자들도 자신들이 성장해 온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실수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검증 가능한 가설을 세워보고자 애쓴다는 점, 어떤 아이디어를 확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실험을 찾는다는 점, 알맹이 있는 토론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다는 점, 부족한 것이 발견된 아이디어들은 기꺼이 포기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 "인간으로서 가진 한계를 깊이 반성하고 진리를 찾고 지속적 가치를 수호해라."

 

"샤머니즘, 신학, 뉴에이지 교리와 양자역학이 다른 점은,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양자역학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 전체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그 이론이 무엇을 예측하는지 알 수 있다. 또 과학은 자기 오류 수정 기능을 지닌 집단적 작업이기에 이것이 다른 학문에 비해서 과학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렇다. 과학은 인생과 다르게 실험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도구이다.

 

세이건은 인간 자체의 불완전성과 미디어에 취약하고, 과학적 사고와 지식을 잃어하는 사회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인간과 대중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과학이 발전한 시간은 매우 짧았고, 우리는 이 어려운 것을 태어날 때부터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많은 경우 과학적으로 살아왔다. 원시인들은 과학적 성향으로 채집과 사냥을 하며 현실적인 보상을 받아왔으며, 역사 서술은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왔다. 인간의 "과학적 성향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문화에서든 늘 우리 안에 깊게 자리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인가.

먼저 과학 대중화를 위해서는 가장 쉬운 어휘를 써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과학 대중화에서는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감성에 불꽃을 당겨 주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과학에 접근하기 쉽게 만들고, 또 그를 통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발견한 것은 절대 잊히지 않음을, 그의 경험을 통해 강조한다. 우리는 의심할 줄 아는 정신과 경이를 느낄 줄 아는 감성이 필요하다.

 

세이건은 흑인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 이야기를 하면서 읽고 쓰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과거엔 읽고 쓰는 것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고 그들의 계층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독서와 비판적 사고를 체제 전복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위험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가 등장하고 위대한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책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민주적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열쇠"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이능력은 매우 귀중한 것이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힘이다. 그런 관점에서 세이건은 비교적 낮아진 식자율을 보며 미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우리는 바라봐야 할 것이 또 있다. 대중매체의 중요성과 과학자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세이건은 UFO와 같은 기이한 현상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대량 제작되었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과학 프로그램은 왜 그만큼 만들어지지 못했나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기존의 대중매체의 과학자라 함은 매우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들을 주장하는 '과학 너드'로 묘사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세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도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고정관념을 없애주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과학 프로그램이 그 다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시청자들은 더 많은 과학 프로그램을 보길 원하고 대중이 과학을 이해한다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것이라 세이건은 믿었다.

 

과학에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들이 많다. 세이건은 맥스웰의 업적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말하며 정치와 뗄 수 없는 과학기술의 모습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과학적 지성과 정치는 어떤 관계여야 할까?

 

과학에게는 힘이 있다. 사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정치적인 움직임 또한 바꿀 수 있다. 마녀사냥과 스탈린의 사례를 들면서 인간의 권력과 현세적 이익을 위해 사상과 종교를 이용하고, 사실을 조작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회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 분자가 된다는 뜻"이지만, 세이건은 은연중에 이런 위험 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현재는 과학자들이 발견하는 것들의 위험성을 말하며 또 다른 모습의, 책임감이 필요한 과학자들의 자세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든 것은 맨해튼 프로젝트이다. "과학이 어느 때보다 강대한 힘을 가지게 된 현재, 우리는 전례 없이 강력한 윤리를 마련해 과학을 감시하고 과학자의 열정과 관심을 이 문제로 돌리게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과학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공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이건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자' 인 것이다.

아메리카 합중국 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은 인간의 실수와 인간의 부끄러운 역사를 잘 알았기에 "인간이 어떠한 실수를 하더라도 자유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수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과학자였다는 것이다.

 

세이건은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인, 존경하는 토마스 제퍼슨을 이야기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전 세계로 퍼뜨린 제1의 공로자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매우 옹호했으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지하고 정치적 안전장치를 고안한 인물이다. 세이건은 과학과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비교한다. 과학은 결국 민주적이며 민주적임은 과학적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정수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와 "개인의 양심의 자유"라는, 쌍둥이 원칙을 강조한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일궈놓은 권리들을 사용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권리와 자유, 그것은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

 

결국 세이건은 이 책을 통틀어 인간의 모습들을 감싸기도 하며 비판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같이 논의하며, "과학의 방법"과 "권리 장전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 모든 아이들이 배워야 함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몰아쳐 오는 암흑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그것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세이건의 생각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무지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보단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측은함이 느껴졌다. 인간이 유사 과학을 믿는 이유는 무지를 드러내지 않거나 모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기도 하며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갈망하는 개인적인 힘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의 불공평함을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기에, 또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린 사람들은 위안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세이건의 글을 읽을 땐 잠깐 흠칫했다. 우리는 정말로 사후세계에서 무엇인가를 보상받길 원하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현재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지지대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기 때문이다. 세이건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오류가 많으며 부족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과학이라는 도구를 들고 살아간다. 종교적 믿음으로 우리는 심리적 위안을 얻지만 "위안을 주는 공상보다는 냉혹한 사실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에는 대개 사실이 공상보다 더 많은 위안을 준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어느 정도 성취했지만, 진정히 자유를 어떻게 누리는가에는 서투르다 비판하는데,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사고를 갈망하지만, 과학적 호소력은 이용하고 싶지만 그 방법은 따르지 않는, 과학적 사고를 대하는 것에 서툰 사람에 대한 비판이 느껴진다. 세이건은 리처드 도킨스처럼 어떤 성서에 대한 내용을 강력하게 반박한다거나 강하게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그러기에 종교인이든 과학자든 상관없이 보기 좋은 책이다.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에서 자신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교육받았다는 내용을 봤었다. 그것이 과학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겸손과 회의주의, 민주주의적 정신을 포함하는 과학은 세상과 조화롭고 현명하게 살아가게 해주는 방식이자 태도다. 미디어가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고, 각종 가짜 뉴스와 미신들이 판치는 시대에 우리는 회의주의적 사고를 견지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떤 방식과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과학이 너무 어렵다고 과학을 멀리하는 것은, 미래를 책임질 능력도 함께 포기하는 것이다. 권리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확신에 찬 주장을 만나게 된다면 헛소리 탐지기를 준비하라."

 

 

+칼 세이건의 책은 코스모스로 통한다. 그러니, 코스모스를 읽고 나서 이 도서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에선 코스모스에서 자세히 구술된 과학자들의 우여곡절들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기반으로 깔고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진 않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풀어내며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특정 대상을 비판하지만 그 자신의 말 또한 틀릴 수 있다는 유머를 남긴다. 사람 자체와 책의 모습을 둥글게 바라보면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많기에 그의 저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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