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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식을 전환하는 인류학 | 책 리뷰 2023-02-2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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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저/류재화 역
문예출판사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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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에 대한 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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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로 유명한, 문화 인류학의 거장 레비 스트로스가 1986년 일본에 방문해 '현대 세계의 문제들에 직면한 인류학'이란 제목으로 쓴 강의록이다. 일본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보니 일본, 한국, 중국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오래전에 쓰인 내용이지만 그가 말하는 인류학이 시사하는 바는 여전히 유효하다.

 

레비 스트로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대표작 <야생의 사고>혹은 <슬픈 열대>를 읽어야 한다. 나름대로 핵심을 요약하자면, 미개인의 사고와 문명인의 사고의 차이는 구분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다양한 사회를 비교함으로써 차이보단 결국 일정한 질서를 찾을 수 있기에 우리가 특정 사회를 구분 짓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그의 사상이 나타나며, 문화 인류학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려준다. 그를 단순히 문화 상대주의자라고만 부르기엔 논의되는 주제가 상당히 다양하고 깊은 수준이다.

 

그는 먼저 서구의 혁명 이후 진보하는 것 같았던 세계가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환경파괴와 같은 모습을 나타낸 당대의 사회상에 대해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면서, 아니 이용하지 않아도 인간의 존재 자체가 어마어마한 파괴 수단이 되어 인간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비판한다. 그렇게 첫 번째 강의에서 서구 문화 패권의 종말을 말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이란 "넓은 맥락에서 '인간 현상'에 대한 연구"라 말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는 사회성을 갖고있는 대상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렇기에 역사학과도 맞닿아있고, 인류학은 매우 오래된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학, 고고학 같이 확정되고 중요한 갈래로 나뉜 학문들 사이에서 인류학은 부산물들은 모은, "독특하고 이상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점들을 해부하면 유사한 점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그 중요성이 인식됐다. "우리는 보통 차이를 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만, 고유한 속성을 보기 위해선 차이를 관찰해야 한다.", "단순한 분류를 통해서도 인간 사회의 다양성 속에 있는 어떤 일정한 질서 체계를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역발상으로써 차이를 관찰한다. '차이'는 인류학의 핵심 중 하나다. 물론 이는 차이 자체를 강조하고자 함은 아니다.

 

"원시사회는 우리가 어떤 단계의 과거를 거쳐왔는지 조명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 조건의 공통분모라 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양과 동양의 고도 문명이 오히려 예외성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시사회는 한편으론 좀 더 끈끈한 인간관계의 연결로 볼 수 있다. 또 다양한 소통 체계를 개발하지 않았기에 인간 조건의 공통분모를 더욱 보기 쉽다. 원시사회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에 있어서 특이점이 발생한 현대사회보단 인간의 본모습을 더욱 잘 보여준는 것은 원시사회일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세계가 그동안 서구식 발전에 맞춰왔지만 이 모델이 위기에 봉착했으니,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통합해 보며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고 이에 인류학이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인류학의 이점은 "부유하고 강한 우리 문명국 구성원들에게 겸손함이라는 미덕과 지혜를 가르쳐 준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인간이란 같은 종으로 본다면, 한 문명은 그저 인간 산물의 한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문화와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더 편하고 유연하게 타인과 소통할 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할 다양한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이것이 인류학이 우리에게 유용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식민주의와 같은 목적에 쓰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성, 경제발전, 신화적 사고를 주제로 다른 문명의 관점을 비교한다. 이 주제들은 문화별로 도드라지게 대비되는 모습을 가졌다. 그렇게 인류학적 관점에서 이런 다른 방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논의한다. 그 예시 중 하나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노동'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나타난다. 서구 사회의 관점에서는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경제적 성격이 강한 행위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기술적이고 문화적이며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행위일 수 있다. 한편 뉴기니 민족의 축구게임에서는 한쪽의 승리를 추구하기보단 양 진영의 승패가 균형에 이를 때까지 경기를 한다. "더 이상 패자가 없다는 확신이 들 때" 경기를 끝낸다. 경제와 경쟁의 모습에서도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며 이는 근본적 사고가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인류학자는 "문화의 차이점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존중" 하며 그 모습을 가감 없이 나타낸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적 연구가 "'사고 전환의 차원'에서 현대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은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간주하는 것이 사실은 사물의 질서에 근거하고 있는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우리 문화에 고유하게 있는 제약이나 습관적 편견 등을줄여줄 수 있"다. 다른 사회가 왜그러는지, 왜그렇게 기능하는지를 알 수있게 하는 것이다. 또 인류학은 오랫동안 이어진 인간의 실제 삶과 사회의 모습을 수집한 것으로 "인간 본성에서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고 인류학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이런 것들이 어떤 틀 안에서 전개될 것인지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우리 입장에서 충격적이여도 그들 나름대로 평화롭게 굴러가는 체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류학은 그 시스템을 그대로 기록하며 연구한다. 말 그대로 사회과학적 탐구이기도 하다.

 

그렇게 원시의 삶은 우리 삶은 한가지 원칙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며 인간 본성의 것을 찾길 원하거나 인간 본성적인 행복을 위한다면 다양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원시의 삶에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선 그런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이 사라지고 획일화 되고있다.

 

레비 스트로스가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지적하는 점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저개발국가라고 하는 국가들에서는 각자 작동하던 체제, 시스템이 있었는데, 서구식 발전이 들어오면서 세상은 매우 단편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모델을 씌워놓고선 그들을 단순하고 수동적이라 비판한다. 경제모델이 바뀌며 사회 종교적 제도까지 모두 붕괴된다. 이게 전체 인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옳은 것일까 질문하는 것이다.

 

또 현인류는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신화라는 것을 구시대적 산물이라고 비판하는데, 이 또한 분석해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신화라는 것을 다른 모습으로 바꿔 이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현재 인류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동원해 각자의 해석을 내놓지만 이는 역사를 상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그 점에서 역사는 신화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신화는 현재의 원인을 나타내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과학도 이런 모습과 떨어져 있을까? 과학도 일종의 역사의 자리를 차지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신화, 역사, 과학은 맞물리게 된다. 열망과 편견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써 이용될 뿐이다.

 

세 번째 강의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재인식'이다. 여기서 지적하는 인종차별적 주장들은 이미 구시대적 발상이며, 우리는 수많은 과학자나 역사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격파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진보를 바라보는 시각일 것이다. 일반적인 진보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판 대상이 되는데,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한 흐름으로서 연속적으로 필수적으로 순순히 발전해 나간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발전의 모습은 되게 복잡하며 시간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특성 또한 갖고 있다. 레비스트로스의 문화인류학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가 모습을 단순히 완벽하게 나눠서 진보니 아니니 할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모습의 차이는 진보의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층상을 드러내는 것뿐이며 우리가 발전 단계라고 하는 것이 한 번에 모두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한다. "두 사회는 동일한 발전선상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행하는 길을 따라가면서 역사의 매 순간마다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선택을 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진보 방식은 어땠는가. 인류는 각각의 문화가 발견, 발명한 것을 서로 교류하거나 영향을 미치며 발전했다. 또 각각의 상황과 배경에서 만들어진 문화로써 그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조합시키거나 버리며 결국 좀 더 괜찮은 것을 만들어 발전했다. 그것을 레비 스트로스는 어떤 개념이나 취향이 일직선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원을 그리듯 순환하고 있을 뿐이며, "출발점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에서 그냥 한 바퀴 돌아 대담하고 비약적인 진보를 이루는 식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 발견된 요소(발명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문화가 이것들을 조합하고 취하거나 버리는 방식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덧붙여 "인류학은 분리된 사실들의 알람표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선택들을 왜 하는지 그 숨겨진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라고, 인간 사회 특유의 방식을 분석하는 것이다. 인류 교류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다면 우리가 단순히 문명을 구분 짓고 특별한 문명이나 인종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교만한 행위임을 알 것이다. 우리는 시대에 큰 역할을 한 문명 정도는 인식할지라도 모든 시기에 완벽한 답을 가지고, 모든 것에서 모범적인 그런 문명은 볼 수 없었다.

 

그러니 결국 '한 가지 관점에서만 보지 말라'라는 말로 요약은 되지만, 그의 주장을 차근차근 읽어본다면, 단순히 도덕심에서 나온 상대주의적 결론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류학은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켜준다. 타인을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우리를 타인의 눈으로 보게 한다. 서구의 입장에서 원시사회를 낮은 단계로 바라보는 것도 기술적, 경제적 수준에서 바라보는 것일 뿐이다. 역으로 그런 사회는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내세우는 것뿐임을 말한다.

 

나는 인류학과 구조주의 매력은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인간의 정신이 다양한 곳에 적용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고가 전환된다. 여기에 우열은 없으며 인류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러면 그 방식을 분석하게 되고 거기서 상당한 다양성을 경험하면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과학적 탐구와도 연결된다. 우리는 이 방식을, 인간 사회의 작동 방식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새로운 해결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레비 스트로스가 이 강의에서 바라는 바일 것이다. 실로 다양성의 세기다. 다양한 것이 섞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경이로운 것이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유지되는 시스템 또한 실로 대단하다.

"우리가 사는 방식과 믿고 있는 가치가 가능한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인류학자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삶의 유형과 다른 가치 체계를 통해서도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류학은 일종의 관점의 차이로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구조주의적 해석이라든지 다른 논의보단 관점, 사고 같은 주제로 진행이 되는데, 옮긴이의 해설에서 어느정도 보충해준다. 그래도 입문서로는 나쁘지 않으며, (사실 그냥 완전한 초보 입문자가 읽기에도 그리 쉬운 책은 아닌듯 싶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들을 가지고 있다. (굳이 나누자면) 우리가 단순 사실만을 나열하는 책보단, 우리의 사고체계를 바꿀 수 있는 책이 더 영향력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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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문화해부학 | 책 리뷰 2023-02-2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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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저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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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사고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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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화를 잘 안 본다. 순간순간, 한 장면을 보고 수많은 생각과 분석을 하는 나에게 영화는 단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며 이해하며 분석해야 하는 대상이기에 부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블 영화 같은 소비성 영화는 더더욱 시간 내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의미가 있는 판타지나 사회 비판 영화를 선호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소공녀' 같이 재료는 투박해도 무엇인가 우러나올 수 있는 영화다.

 

그런데, 독서모임 책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책을 정하게 되었다. 그것도 설명하는 절반 이상의 영화들이 본 적 없는 영화들이었다. 이후에 서술하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그것이 신형철의 글이 가진 매력이 아닌가 한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신형철>은 신형철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영화를 주제로 발표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늑대소년, 설국열차 같은 영화부터 논란의 김기덕 홍상수 같은 감독들의 영화, 또 해외 영화와 각종 찬사를 받은 영화들을 4가지 주제 '유명한 사랑의 논리’ ‘욕망의 병리’ ‘윤리와 사회’ ‘성장과 의미’로 묶어 서술한다.

 

최근 영화를 해석하는 유튜버들이 늘어났고 이들은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영화 서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가볍게 볼 수 있었지만 그것들 나름대로 질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영상보다 글로 서술된 해석이 더욱 더 깊고 탄탄하다고 느꼈다. 영상에서는 영상을 동원할 수 있는 일종의 이점이 있었지만 글로 서술한 것은 상황 묘사에 대한 고뇌와 독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런 문화해설의 도서를 읽으며 느꼈던 것은 설명하는 눈높이가 어떻게 되느냐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신형철은 흔히 불리는 '배운'해설자다. 그래서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욕망이론 등의 많은 학자들과 이론들을 넘나든다. 그래서 텍스트를 조금 더 섬세하게 읽는다면 더 깊은 사유가 가능하지만 그만큼 단순히 즐겁게 읽을 수만은 없었던 글이다. 그렇게 신형철은 자기만의 논리로 해석을 시작한다. 읽으면서 정말 다양한 감정과 사고들이 떠다녔는데, 그 중 가장 이야기 하고싶은 것들로 추려보겠다.

 

아무래도 책 제목과 같은 글,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선 성 소수자의 삶을 그려낸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와 <가장 따듯한 색, 블루>에 대해서 논한다. 성소수자의 이야기이다 보니 특수성을 띌 수 밖에 없었으나, 결국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는 분위기를 띈다. 그러면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비교하는데 신형철은 이런 둘의 비교가 좋은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우리가 표현을 보편적으로 하는 것이 더 편하기에 편한 것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것일까? 무엇이 좋은 영화인지는 신형철도 쉽게 정의 내리진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더 정확한 영화'가 있음을 말한다. 감정과 사물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 노력하는, 그 각각의 개인이 느끼는 고유의 감정을 정확히 재현하려 노력하는, 누군가를 완전히 감화 감동시키는 서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후 사랑에 대한 논의는 <아무르>에 대한 설명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사랑이라는 것은 각 개인의 서사에서, 각자의 느낌과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사랑은 경험할 때와 해부할 때 다른 것으로 느껴진다. 결국'유명한 사랑의 논리'라는 챕터에서 공통으로 질문하는 것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사랑이라는 것의 정의는 매우 모호하다. 매우 모호해서 무분별하게 쓰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이라는 것을 다양한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감독이 이 사랑이라는 재료를 어떻게 구체적인 음식으로 나타내느냐를 눈으로 보고 또 음미해 본다. "사랑에 대한 대개의 정의는 시도되는 순간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랑은 전칭명제로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매번 개별적인 사례로 존재한다."

 

다음은 논란의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의 영화이다. 신형철은 이 둘의 작품을 들어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 두 감독의 영화는 보통 성욕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감독은 사생활과 표현방식으로 수많은 비판 내지 비난을 받았기에 누군가는 신형철의 분석 시도 자체만으로, 불륜이나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못하는 욕망의 실현을 옹호했다고 말한다. 나는 신형철이 이 감독들의 영화가 옹호라기 보단 왜 주목을 받는 것인지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욕망의 표현'이다. 나 또한 두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서사로 꾸며나가든 결국 성적으로 대표되는 욕망과 그 실현 사이에서의 인간의 고뇌를 담았을 뿐이라 느끼며 그렇다고 해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처럼 독특한 한 개인의 삶의 자기고백을 이끌었다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도 사실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조물주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가 인간에게 욕망이라는 것을 만들어 넣은 것은 인간이 계속 살아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는 인간의 삶이 그 욕망과 더불어 장차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미리 계산하지 못했거나 안한 것 같다. 그 계산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부른다." 욕망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인간의 통제다. 욕망은 항상 통제와 붙어있다. 그저 표현에서 끝나야 하는 것일까? 시적 허용과 영화의 판타지성은 일종의 도피와 무책임으로도 작용한다. 나는 욕망을 '통제'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 의미 있는 것이지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영화는 확실히 찜찜함을 남기며 이런 사고가 그들의 인생으로써 보이는 것이 아닌가.

 

또 사회와 관련된 부분에서 <더 헌트>를 통해 무죄 추정 법칙을 설명하는 부분이 뇌리에 박혔다. 영화에서 소녀 클라라의 고백을 유치원 선생님 루카스가 거절하자 그녀는 루카스의 성기를 보았다고 원장에게 말하며 루카스는 '성추행범'이 돼버린다. 그렇게 그 마을은 난리가 나지만, 증거도 없고 클라라의 말이 바뀌는 것을 종합해 ‘이성적인 근거'로 법원은 무죄를 내린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가 제대로 된 판결을 받지 않았다 생각하고, 이러한 집단 광기는 결국 누군가 그를 총으로 쏘게 만든다.

 

신형철은 여기서 광기와 이성을 나눈다. 이것을 감정과 이성이라고 구분해도 되겠다. 여기서 보이는 마녀사냥은 일반적이지 않다. "마녀사냥이 광기의 산물이라면 이 영화의 그것은 '이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광기의 창궐로 열린 지옥의 문은 이성으로 닫을 수 있지만, 이성의 집단적 사용이 자체의 한계 때문에 열어버린 지옥의 문은 무엇으로 닫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이성을 최고의 것으로 판단한다면 이성적으로 잘못내려진 결과는 결코 되돌릴 수가 없을 것이다. 또 아무리 진실이어도 그 진실 자체가 설득을 하지 못하면 아무런 힘이 없음을, 또 아무리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지만 그것을 복구시키는 것에는 많은 힘이 든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면서 신형철은 인간이 흔히 저지르는, 근본적인 사고를 비판한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쉽게 유죄추정의 원칙에 몸을 싣는다." 우리가 작품을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운다면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한테 관대하긴 하지만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성자가 아니며 각자 하나의 도덕적 결함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결함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우리는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지만 타인을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는,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 어디에 단순한 삶과 단순한 모습이 어딨겠는가. 이는 항상 말하지만 지적 게으름의 산물이다.

 

나는 여기서 법철학적 논의도 엿보았지만 현대 사회의 광기와 무지성을 보았다. 특히 성폭력 판결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더 헌트>의 서사는 무고죄와 관련되어 있다. 현대의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의 발언이 증거입니다"라는 주장을 비꼬는 식으로 역 이용하고 있다. 그렇게 성폭력 판결에 대해서 무고할 수 있다는 사고가 증가하게 되었고 그만큼 사회적 논의들은 더욱 열기가 더해져 비난과 비꼼으로 가득한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성폭력 판결은 우리가 단순히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적고, 또 그것을 준비하거나 증언하기까지 수많은 심리적, 정신적 압박이 다가오고 이 모든 일들을 해내려면 수 개월 혹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증언이 중요하다. 하지만 증언 자체만을 보진 않고 그것의 일관성, 연관성 등을 판단한다.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피해자 중심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은 한편에선 피해자의 말에 무조건적 신뢰를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피해자의 말에 신뢰를 부여하는 것은 일종의 응원이나, 심리적 압박의 해소에 의미다. 하지만 양 극단에서 유죄추정의 사고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화되고 있다. 우린 이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또 이들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그 무지성적인 시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대게 이성 하나로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결정 내려지면 그것의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이며 그것을 정말로 진실하다 부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아니 '난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저자가 이런 주제를 영화를 통해 말하는 것만 해도 굉장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이만큼 한 주제 한 주제가 상당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 사유할 것이 굉장히 많다.

 

이 책이 잘 쓰인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몇몇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순한 한 가지 질문만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여기서 언급하는 영화들 대부분을 몰랐기에 영화를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알고 읽었을 때는 나의 생각과 비교를 하며 음미할 수 있었고, 모르고 읽었을 때는 그가 설명하는 논의에 좀 더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화 제목을 먼저 내세우지 않은 것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 자체의 해석이라기보단, 하나의 주제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 윤리라고 하는 것들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서사를 가지고 표현된다는 것을 말한 것 같다. 영화라는 것은 이렇듯 각자 비슷한 주제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보는 안목일 것이다. 그가 말했듯 하나의 장치로, 그저 감독의 의도를 위해서 쓰이다가 버려지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는 그리 좋지 않은 영화라는 것에 동의한다. 한 인물을 곱씹어 볼 수 있고, 그 개인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인물들을 배치시키는 것이 좋은 영화이고, 재해석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또 재해석에 참여하는 것이 감독이고, 또 문화해설자들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감독의 의도 해석이라기보단 신형철의 문화 해부학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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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노트 리뷰 | 문구 리뷰 2023-02-20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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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GIFT]세계문학 양장노트 vol1

노트
YES24발송 GIFT상품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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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용으로 괜찮은 양장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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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노트 찾아보고 있었는데 너무 어린이들이 쓰는 것 같지도 않고 가벼워 보이지도 않고 어느정도 고급스러워 보여서 구매했습니다. 초등학교6학년 선물로 책이랑 같이 샀어요. 깔끔하고 좋아요:) 양장이라 보관하기도 좋고 튼튼한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편리한 노트를 선호하지만, 선물용으로 추천합니다. 다른 디자인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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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을 사는 그대들에게 | 책 리뷰 2023-02-18 14:38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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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저/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 2020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인간의 자유의지에 희망을 걸어본다. 인간의 본 모습은 나약할 때 더더욱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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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가 전기가 통한 느낌을 받은 것처럼, 상당한 의미를 주거나 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는 것 같은 책들이 있다. 나에겐 이 책이 그런 책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책은 크게 두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는 저자가 경험한 강제 수용소 수기이고, 두 번째는 저자가 깨달음 바탕으로 발전시킨 로고테라피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용소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면 첫 챕터만 읽어도 된다.

 

홀로코스트나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내용은 책 <안네의 일기>, 슈피겔만의 <쥐>, 프리모 레비의 저서부터 영화 <피아니스트>까지, 많은 곳에서 묘사된다. 하지만 이들도 현실 그대로를 나타내진 못한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면 유대인 시체를 그저 가축처럼 구덩이에 밀어 넣는 장면은 평범할 정도다. 한나 아렌트가 조금 더 멀리서 인간의 멍청한 무조건적인 복종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식으로 홀로코스트를 바라봤다면 빅터 프랭클은 직접 경험한 수용소 생활을 통해 인간의 날것 그대로를 보며, 개인의 의지와 자유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유대인 의사였던 저자는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수용소로 끌려갔다. 노동할 수 있는 청년들 빼고 대부분이 죽음을 당했고, 수용소에서조차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곳저곳 가축처럼 실려 다니고 이름 아닌 번호로 불리며 인격적인 모든 것들이 박탈당했다. 영양실조, 적은 수면시간, 추운 몸, 부종과 동상, 정신적 퇴행 증상을 겪으며 모두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였다는 이유로 요양소에서 병자를 돌보는 일을 하거나 할 수 있었고 상담을 해준 한 카포에게 어느 정도의 편의를 제공받기도 했으나 그것은 잠깐이었고, 목숨만 부지하며 고통의 삶을 살아가다 이후 나치가 전쟁에서 패하며 전선이 점점 다가오게 되고 결국 그는 구조된다.

 

프랭클은 비극 속에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타인뿐 아니라 변해가는, 순간마다 좌절과 가축의 모습이 될 유혹에 빠지는 스스로의 모습도 바라본다. 그러면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느낀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 절망에 적응하면 자살을 선택하지도 않고 되레 웃을 수도 있다는 것, 죽음과 괴롭힘이 일상화되면 그것에 대한 어떤 감정도 못 느낄 만큼 인간의 감정이 메말라 간다는 것들을. 감정이 사라진 인간은 방금 죽은 사람의 옷을 자신이 살기 위해 그냥 가져갈 수 있었고 죽음에도 놀라지 않았다.

 

저자가 수용소 생활을 하며 그토록 궁금해했던 것은 '인간의 정신적 자유'에 관한 문제였다. 그것은 인간은 수동적일까 하는, "인간은 단순히 여러 조건과 환경적 요인이 만들어낸 하나의 피조물일까" 하는 질문으로 나타났지만 그는 삶의 마지막 상황에서도 빵을 나눠주는 수용소 사람을 보며 이내 진리를 깨닫는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에 달려있다. 상황은 주어지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수용소에서도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의 동물, 가축 같은 존재가 될 것인가 고고한 인간이 될 것인가는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존재한다.

 

그는 세상을 탓하거나 한탄하지는 않았다. 그보단 시련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에서 시련은 필수적인 것이며 시련 사이에서도 우리는 무엇인가 결정할 능력이 있다. 시련을 통해 우리는 성장할 기회를 가진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있다. 그리고 이 결정을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난다." 그렇지만 그와 다른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은 시련이라기에 너무나도 거대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여기서 자유는 정신적인 자유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유, 즉 일종의 희망의 의미로도 다가오는 자유는 소중하다. 우리 삶을 고귀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고통의 순간에서도 프랭클은 아내를 생각하며 사랑을 느낀다. 그가 느끼는 사랑은 그 고통을 견디게 했고 일종의 희망을 맛보게 했다. 진리는 사랑이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믿었다. 사랑은 많은 이들의 피난처이며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이기도 하다. 사랑이 메말라 버린 상황에서 사랑을 찾는다. 그것이 자유의지가 향하는 목적지일까. "이렇게 내면세계를 극대화함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일시적일지라도 사소한 행복이 거대한 절망을 가려주었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절망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다 말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그렇다. 내 삶은 누군가가 대신 살아주지 않고 이렇게 사고하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의 사고, 나의 행동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것이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세상이 고통스럽고, 힘들게 구는가?

프랭클은 사회나 무엇인가를 변화시키지 말자는 무기력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개선하거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위를 하고 불만을 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연대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프랭클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정신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자신 있게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의지의 문제이며, 일종의 태도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 

그도 홀로코스트 시대에 인간이 한 개인으로서 크게 세상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바꾸자는 허황한 발언보단, 이 세상이 우리 삶에 부여하는 것에 반응하여, 고귀한 삶을 위해, 가치있게 살아가라 말한다. 우리가 세상과 삶에 대해서 무엇을 내놔라, 어떤 것을 간절히 내놓으라 할 수는 없다. 자신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질 수는 있으나 항상 그럴 수 있지도 않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모습은 각자마다 다르고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그 의미는 다르다. 이런 것에서 우리가 만사형통한 삶의 해법이나 비결을 찾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떤 대단한 법칙으로 모든 삶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답은 우리 스스로 개인이, 한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묻고, 찾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알 수 없고, 또 부조리하며 행운에 의존한다. 빅터 프랭클의 경우엔 불행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을 만큼 고통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가 존재함을 그의 삶 자체로 경험했고 깨달았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우리에게 고통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살 수 있고, 그 자유는 나름대로의 축복이라 말하고 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빅터 프랭클이 얻은 깨달음에서 발전시킨 정신분석 치료 개념이다. 환자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야 불안함의 악순환을 막고 그것에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 "로고테라피는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와 피드백 기제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도와주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로고테라피를 설명하는 다음 글에는 수용소 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나타나있다.

"아주 오랜 기간 정신 의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았고, 그 결과 정신 질환 치료를 하나 테크닉으로만 간주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종류의 꿈은 충분히 꾸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평선 너머로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심리학의 얼굴을 한 의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의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을 그저 하나의 기능인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환자를 병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있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에겐 자유라는 축복이 있음을,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존재임을 계속해서 말한다. 우린 가치 있다. 각종 유혹과 고통이 다가올 때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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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보는 재미가 늘어난다 | 책 리뷰 2023-02-1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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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명옥 저
BOOKERS(북커스) | 2023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저자가 도슨트가 되어 명화들을 함께 둘러보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 서평 모집이 떠서 신청했는데 당첨되어 편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이명옥> 미술작품을 보는 것은 재미이자 고충이다.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것은 흥미를 돋구지만 아는 만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비나 미술관 관장이자 문화 예술 기획자인 저자는 독자들이 그림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게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꼽아 설명하며 명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설명한다.

 

총 30명의 화가들을 뽑아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마티스, 피카소, 프리다 칼로와 같은 유명한 화가를 포함해 그들에게 영향을 준, 미술사에서 중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 또한 소개한다. 이들이 누군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된다.

 

저자는 단순히 화가의 연보나 작품들을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한 두 개의 작품을 골라 어떠한 의미 혹은 사회적 의의가 있는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른 철학자나 비평가들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작품세계를 이해하며 우리 모습 또한 마주하게 된다.

 

설명을 들으면서 흥미롭게 느낀 점은 미술은 감상하는 작품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술작품은 화가를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시대를 고발하기도 하고, 당대의 고정관념을 볼 수 있기도 하다. 루이 다비드처럼, 미술은 정치선전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부르주아계급을 비판한 마네처럼 풍자하는 기능을 하고, 모네처럼 당대의 편견들을 물리치고 결국 인정받는 인간승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품은 당대의 권력구조나 사회, 개인 사정과 얽혀있고, 또 다양한 학문들과도 결합되기에 설명을 들으면 들을 수록 더 알고 싶은 점이 늘어난다.

 

"뭉크는 왜 그렇게 우울한 색채와 감정이 드러나는 그림을 그렸을까", "제임스 앙소르는 왜 그렇게 많은 가면을 그렸을까", "모딜리아니는 왜 그렇게 길고 이상하게 사람 얼굴을 그린 것일까", "빛을 포착하기 위해 모네는 무엇을 했을까" 같은 질문들에 답을 구해볼 수 있고, 나름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미술 교양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화가가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고뇌의 과정들이 있었는지, 그 배경은 어땠는지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 작품은 개인을 대변하고, 대체로 그림에 메시지를 넣는다. 우리는 그것과 마주한다.

 

저자는 하나의 도슨트가 되어 모든 정보들을 써 내려가기보단,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춰 설명하며 알고 보면 더욱 재밌다는 말을 하고 있다. 대게 많은 것들이 그렇다. 아는 것이 많아질 수록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고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가 재밌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너무 깊게 들어가지도 않고, 필요한 만큼 설명하며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작품을 전달한다. 작품 따로 읽어도 좋고, 틈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저자가 말한 대로 많이 경험하고 배우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렇지만 너무 지루한 것도 아니고, 배경이나 화가를 이해한다면 작품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또 보는 재미를 살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런 책들을 하나씩 읽어가면 어느 순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 기대해 봄 직하다.

 

우리가 이런 기본 지식 혹은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해하면, 작품 앞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즐거움은 더할 것이며 관람비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편하게, 배경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는 대중 서적으로서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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