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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What Money Can't Buy

Michael J. Sandel
Farrar Straus Giroux | 201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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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의 어떤 것까지 판매 대상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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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선생님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린 그 답으로 '사랑'같은 무형의 가치를 말했다. 그 무형의 가치는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인간들 끼리의 특정 감정이나 의식의 교류일 것이다. 도덕이나 공동체의식 같은 것을 포함해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돈으로 많은 무형의 가치를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퍼져나갔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샌델은 논의를 시작한다.

 

먼저 샌델은 서두에서 문제의 핵심을 언급한다.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에 다가설 수록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Inequality',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누린다는 것. 다른 하나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한데, 'Corruption'의 문제다. 상품에 가격을 매길 때 그것의 가치는 변질된다. Market은 단순히 가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되는 물건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때문이다.

 

"Sometimes, market values crowd out nonmarket values worth cariong about." 우리가 세상의 기준을 돈 혹은 시장으로 바라보면, 다른 가치들을 몰아낸다. 어찌 됐든 샌델이 표현한 대로 우리 사회는 마켓 그 자체가 돼가고 있다. "We drifted from having a market economy to being a market society."

 

우리 사회는 어떻게 시장, 자본 친화적 사고를 만들어 왔을까. 샌델은 먼저 이에 대한 다양한 예시들을 나열한다. 돈을 낸 대가로 줄을 서지 않는 것, 돈을 내고 전용 차로를 이용하는 것, 대신 줄 서주는 사업과 매표의 증가, 의사의 진료를 빨리 받기 위해 돈을 더 내는 것 등등 Free Market Economy 생각에서는 이런 줄 세우기, 매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근거는 Respecting Individual Freedom과 Maximizing Welfare, or Social Utility이다. 이런 사고는 80,90년대 이후에 굉장히 만연하게 퍼져나갔다.

 

샌델은 이런 자유시장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큰 간절함을 말해주는 것일까? 높은 가격은 지불하는 의지 뿐 아니라 '능력'의 영역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한 사람이 가장 만족도가 큰지도 의문이다. 공공선의 영역을 사적인 이익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줄을 선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라는 것은 공공연한 룰이다. 하지만 돈을 지불함으로써 그런 규칙을 파괴한다.

 

이는 분명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공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사유화 해버린다. 우린 어디까지, 어떤 가치까지 Market화 할 수 있을까? 종교적 의례? 생명? 우린 이미 과거 면벌부를 판매한 종교의 모습을 봤다. 자유로운 선택의 기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린 판매대에 물건을 올리면서 자발성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물건 자체는 Corrupt 된다.

 

돈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샌델은 최근에 도입된 인센티브 개념의 다양한 사례들을 든다. 성적에 대한 보상 지불 시스템이 효과가 있을까? 돈을 줘서 건강검진을 받게 하는 것도 효과가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행동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급하는 것은 장기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못했고, 또 행위 자체의 의도를 바꿔버렸다. 인센티브적 행위는 단기적 효과를 위한 것일 뿐이며 돈을 줘서 건강검진을 받게 하는 것은 그 스스로의 건강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돈을 받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돈 뿐만 아니라 다른 가치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인센티브를 도입해 행동을 유도할지라도 가치절하가 된다. 또 이는 우리의 사고 자체를 바꿔버린다.

 

한 가지 재밌는 예시가 있는데, 심리학으로도 유명한 실험이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가 늦을 때는 미안함을 표시했지만 지각을 하지 않도록 벌금을 부여했는데, 벌금을 내면서 늦게 오는 부모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늦게 오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돈만 내면 늦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자유시장은 경쟁이라는 명분으로 살 수 없었던 것을 살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흔히 도덕, 예의 범절이라고 하는 것을 돈으로 바꾸어 놓는다. 편하게 바꿀 수 있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렇게 도덕의 서비스화가 된다. 벌금의 요금화가 진행되어 '그냥 내고 말지'의 사고가 된다. 벌금의 요금화는 돈이라는 것을 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고를 만들어낸다.

 

샌델이 자유시장주의에 제시하는 또 다른 반론은 '선물'에 관한 예시다. 모든 것을 돈으로 기준으로 한다면, 선물은 필요가 없다. 경제학적으로는 현금을 주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선물은 '사려 깊음의 표현'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라면 사랑 표현도 돈의 액수로 여겨져야 한다. 결국 상품화, 현금화는 그 본래 가치, 취지를 하락시킨다.

 

이 정도만 해도, 시장주의적 관점이 어떻게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지, 샌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My point is simply that market reflect and promote certain norms, certain ways of valuing the goods they exchange." Market은 우리가 대상을 교환하는 방식, 기준을 바꿔버린다. 그것을 하나의 Norm, 규칙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린 이미 '돈이면 다 돼'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90년대 이후 인센티브 단어 사용이 급증했고 시장주의가 확대 되었다. 시장주의의 목적은 Social Utility의 극대화다. 물건 거래에서 Market Reasoning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문화와 인간 행위에서 Market Reasoning이 적용 가능할까? 그리고 그 적절한 가치 측정이 가능할까? 샌델은 계속해서 일상의 다양한 예시를 들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돈으로 사고 파는 순간 그것의 특성은 바뀌고, 그것의 가치를 몰아낸다'라는 것이다.

 

헌혈의 예시를 보자, 영국에선 헌혈 행위는 자선적이고 미국에선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다. 상품화는 내적 동기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공공선과 Civic Duty를 Bribe로 바꿔버린다. 돈을 안 받는 사람이 되려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된다. 사회 내에서 주고받는 공공의 규범, 사회적인 문화가 변질된다. 이타주의, 시민성, 공동체성을 부식시킨다. 우리나라에서도 헌혈이라는, 자선적 행위로 공공의료가 활발히 돌아갈 수 있게 한다. 만약 철저하게 시장 중심이라면, 이런 시민성과 사회적 상호 호혜성은 사라질 것이다.

 

샌델은 시장이라는 것 또한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 가능한 도구가 아니며, 인센티브는 효과가 그리 강하지 않으며 도덕적 가치를 물질적 교환 가능한 대상으로 보게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덕, 시민의식, 사랑 같은 것은 애초에 시장규칙에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니며 시민성이라는 것은 소비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 게 샌델의 주장이다.

 

인간은 어디까지 상품화 하고 무엇까지 팔 수 있을까. 인간은 생명, 죽음까지 돈 버는 수단으로 만들었다. 샌델은 사람의 보험을 사고파는 것, 또 이미 죽을 것이라 예상되는 사람의 보험을 채권처럼 사고파는 것 문화를 비판한다. 보험의 가치는 그 대상의 부재에 대한 충격의 완화지만 이제는 변질되어 돈 버는 상품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상품화가 되어버리니, 환자가 오래 살수록 손해 보는 상품의 구조가 되어버려 적게 살기를 바라는, 생명을 담보로 한 배팅이 되어버린다. 더 나아가 한 때는 유명인이 어떤 기한 내에 죽을 것인가를 두고 배팅을 했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일에 돈을 개입시킬 수 있는가? 죽음은 상품화 되었고 파생상품을 낳는다. 이 상품을 산 사람은 그 내막을 몰라도 잘못일까?

 

마지막 주제는 Naming right, '이름을 짓는 권리'이다. 스포츠에 자본의 영향이 커지면서 선수들은 자신의 명예, 인기를 굿즈로 만들어 사고 팔아버리는 대상으로 만든다. 그렇게 경기 중 특정 타자의 홈런볼은 법정 다툼의 대상이 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 돼버린다. 또 게임 요소 하나하나 까지 마케팅의 요소가 되어 광고로 도배된다. 스타디움은 기업의 이름이 붙는다. 싫증을 느낀 사람들은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업적 도배의 일정'선'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야구'라는 스포츠의 형식이 자본의 성격으로 바뀌어버렸다. 샌델은 'MoneyBall(머니볼)'을 언급하는데, 이는 기존의 비싼 선수 말고 출루율이 높은 저평가된 선수를 저렴하게 영입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작전을 말한다. 이 방법으로 미국 야구계는 매우 큰 효과를 본다. 그러나 이 방법을 다들 따라하면서 다들 다양한 타법을 사용하지 않고 출루를 위한 모습만 보이며 게임의 모습이 지루해진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Market Mechanism이 게임의 즐거움, 덕을 향상시킨 것일까? 묻는다.

 

광고산업은 스포츠 뿐만 아니라 정말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책의 내용에 침투하거나, 인간의 몸에도 문신을 세기는 방식까지 나아갔다. 인간의 존엄은 돈 앞에서 무너진다. 이런 사회를 정말 개인의 자유와 책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장주의에 제기되는 비판은 두 가지다. 첫 째는 선택이 비자발적이라는 것이고, 둘 째는 Dmeaning, 즉 가치의 절하 혹은 손상이라는 것이다. 교도소와 학교에도 기업이 침투해 많은 이들의 뇌에 로고를 집어넣는다.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물품도 기업에게 지배되었다. 이제는 자발적으로 공공기관이 나선다. 이제는 공공의 영역에서도 자연스럽게 자본의 법칙이 적용된다. 지원받으니 기업의 침투를 허용해도 좋을까? 그것이 결국 좋은 것인지 의문을 가진다. 기브앤테이크식의 사고에선 기업에게 부정적인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만능주의는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자본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바꿔버렸다. 이런 시대에서 샌델은 Goods와 Social Practice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Marketization으로 사람들은 분리되고 양극화된다. 그렇게 사회는 나뉘고, 교류는 적어지고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잃는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어떤 사회라고 부르는가?

 

그렇기에 그가 마지막에 남기는 말은 어느 정도 여운을 남긴다. "Democracy does not require perfect equality, but it does reqiure that citizens share in a common life", "The question of markets is really a question about how we want to live togerther. Do we want a society where everything is up for sale?"

 

책을 읽고 나서 씁쓸함이 남는다. 그가 설명하는 것들은 현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본의 자유가 더욱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의 모습은 여기서 드는 예시들과는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몇몇은 현재 우리나라에도 벌어지고 있다. 지하철 역은 이제 기업들, 상권들의 이름으로 변해버렸다. 이는 시민들의 불편함으로 나타나지만, 기업 측에선 예산의 문제로 이를 정당화한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 많이 점유하는 공간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되기보단 광고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어디까지 용납 가능하고, 또 그것들을 용납할 것인가.

 

우리가 무언가를 판매대에 올리는 것은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든 어떤 법칙이든 평가를 기다리는 경매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매대'에 어떤 것들을 올려놓을 것일까. 또 어떤 것을 올려놓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올리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없을까? 샌델은 그것엔 굉장한 숙고, Deliberation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올리는 행위 자체가 그것의 가치를 부식시키니까. 그러니, 이것을 팔아봐도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 자체에 의문을 가지란 소리다. 이런 숙고가 부족하기 때문에 각종 양심 없는 판매행위들이 반복된다. 우린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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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폭력성에 대한 고찰 | 책 리뷰 2023-03-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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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린리히 뵐 저/김연수 역
민음사 | 200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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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추락할 명예가 없는 인간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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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폭력성에 대한 고찰

성실하게 살아왔던 카타리나 블룸이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에 의해 끔찍한 삶을 살게 되는 내용이다. 먼저 카타리나 블룸의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사건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 이후에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 읽으면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기자 퇴트게스를 살해한 후 경사에게 찾아가 자백한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그녀가 왜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볼테스하임 부인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간 카타리나는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부인의 집을 떠나 함께 자신의 아파트로 간다. 그 후 괴텐이 아파트를 나가는 것을 돕는데, 괴텐은 검찰과 경찰이 쫓던 인물이었고, 카타리나는 그에게 동조한 혐의를 받는다.

 

그 이후부터 카타리나는 의심의 대상을 넘어 무분별한 의혹 제기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차이퉁>지는 대대적으로 카타리나를 막스주의자, 헤픈 여성, 범죄자로 몰아가는데, 그런 보도가 시작되면서 카타리나의 집에는 경고 편지와 이상한 전화와 쪽지가 오고 협박 전화까지 받는다. 이후 루트비히 괴텐에 대한 신문 보도의 내용은 대부분 카타리나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지며 지속적으로 무분별한 의혹 제기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기자 퇴트게스는 암 수술 이후 쉬고 있는 카타리나 블룸 어머니의 병실에 페인트공으로 위장 후 들어가 카타리나에 대한 취재를 하고 또 부인의 말을 왜곡하여 기사를 썼다. 퇴트게스는 진술을 바꾼 이유로 "그는 기자로서 "단순한 사람들의 표현을 도우려는" 생각에서 그랬고, 자신은 그런데 익숙하다고 해명했다." 이후 충격을 받은 그녀의 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그 기사는 분명 블룸 부인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한다. 어릴 적에도 울어본 적 없었던 카타리나는 부인의 시체 안치소를 떠나며 목 놓아 운다.

 

그렇게 고통받던 카타리나 블룸은 침착함을 되찾고 퇴트게스를 살해할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이야기의 서두에서 나타난, 카타리나가 권총으로 퇴트게스를 살해한 후 자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카타리나 블룸은 언론의 폭력을 물리적 폭력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해결이란 말이 옳은 것일까? 정말 해결된 것일까)

 

저자는 이 사건을 이렇게 말한다. "어느 젊은 여자가 즐거운 기분으로 쾌활하게 전혀 위험하지 않은 댄스파티에 갔었는데, 나흘 후에 그녀는 살인자가 된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신문 보도 때문이었다." 결국 악의적인 보도가 파국적 결과로 몰고 간 것이다. "한 인간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부당하게 요구한 나머지 가차 없이 살인이라는 종말로 치닫게 되는 갈등이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인물과 사건은 자유롭게 꾸며낸 것이라 말하지만, 많은 이들은 실제 있었던 <빌트>지를 대상으로 한 언론 비판에 대한 글이라 확신하고 있다. 해설에서 설명하지만, "이 작품의 모델은 1972년 1워 바더 마인호프 일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 해직까지 되었다가 나중에 무혐의로 복직되었으나 상당한 명예 실추를 경험했던 하노버 공대 심리학 교수 페터 브뤼크너로, 뵐은 이 모델을 지식인이 아닌 가정 관리사라는 평범한 보통 사람 카타리나 블룸의 체험으로 허구화 했다." 더불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부제는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물리적 폭력은 직관적으로 부정의함을 인지하지만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이런 배경들을 고려한다면 저자 하인리히 뵐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더더욱 우리는 실감하게 된다.

 

악의적인 보도란 무엇인가. 객관적 사실 추구와 거대 담론을 위한 취재라는 기자의 숙명을 벗어나 스스로의 욕망을 한 서사로 발현시켜 그 서사에 끼워 맞추게 된다면, 그것은 기자가 아니라 그저 추리물 소설가가 아니면 무엇인가. 기자의 본분이란 무엇인가. 또 그것에 쉽게 휘둘리는 비이성은 무엇인가.

 

나는 한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며 엄청난 언론의 조리돌림 후에 그렇게 다뤄졌던 사건, 의혹들이 무죄로 발표되는 것을 봐왔다. 기자들은 사실 보도를 떠나 그것에 서사를 붙이고 기사 제목으로 왜곡하며 전문가의 발언조차 자신의 서사대로 '이용'한다. 그 대상에 실질적인 한 두가지의 불법이나 도덕적 잘못이 있으면 그들에겐 더욱 좋은 먹잇감이 된다. 최근엔 언론사조차 팩트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기사가 삭제되거나 수정되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많아졌다.

 

한국의 민주화 시절 강하게 외치던 것은 언론의 독립이었다. 그저 사실을 말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발언을 할 수 있는 그 귀중한 가치를 부르짖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유산을 넘겨받은 시대의 저널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먼저 이 사회가 민주적인 사회라 믿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의 독립과 정직함일 것이나, 그것을 넘어 민주주의에 신뢰를 주는 것은 언론의 질이다.

 

이런 비판은 수십 년 전에도 제기된 것이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AI에 의해 기자도 결국 대체될 것이라는 말이 들려오지만, 결국 데스크는 사람이 쥐고 있다.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것의 생산자든 소비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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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비극을 낳고 구원의 열망을 심는다 | 책 리뷰 2023-03-20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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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5도살장

커트 보니것 저/정영목 역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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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오히려 블랙유머로 묘사할 때 더 효과적일 떄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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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을 겪은 저자 커트 보니것이 반전 소설을 쓰는 내용이며, 책 제목은 주인공이 지냈던 수용소의 이름이다. 전쟁 후유증이 있는 빌리 필그림이라는 주인공에게 저자 자신을 투영해 전쟁의 참상을 드러낸다.

 

빌리 필그림은 전쟁 포로로 잡혀가 독일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하지만 생존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일상 생활을 이어가지만 이후에 스스로 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시공간을 초월한 4차원 세계인 '트랄파마도어' 세상이 존재하고, 그곳에 가봤다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생각한다. 빌리 필그림은 시간 여행을 하며 자신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간이 계속해서 바뀌며 서술된다. 그래서 처음에 읽어나가기 쉽지는 않지만, 그것이 그의 세상일 뿐이다.

 

책은 '죄의식''무력감' 두 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이들을 살리지 못했던 자신의 죄책감과 그런 현실 앞에서 매우 무기력해진 주인공의 심적 상태가 계속된다. 또 책 곳곳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스며들어있고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는 트랄파마도어라는 천국과 같은 공간을 도입해 그 곳에서 죽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그는 단순히 반전 메시지만 던지지 않는다. 소설 곳곳에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 스며들어있다. 소탕과 전쟁이라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전쟁광들, 물질 만능주의의 미국인, 트라우트의 책에서 나오는 인간상, 라디오에서 오류 가득한 말을 하는 사람, 타임스퀘어 서점에서 성인영화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 각각의 인물을 배치하고 그만의 블랙 유머로 세상을 바라본다.

 

단순히 시간을 여행하는 정신병자 이야기라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은 빌리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무시한다. 하지만 빌리는 일부러 입을 다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알아봐 주길 기대하진 않은 것 같다. 나는 오히려 빌리가 현실적 인간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지 그가 보인 무기력과 중간중간 나타나는 긍정의 모습들은 오히려 그가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의 모습같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정말로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까? 전체적으로 그는 삶에 대해 비관적이고 무기력하나 책의 후반부에선 영원한 삶에도 멋진 순간이 많음을 고마워한다. 사실 그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 아닐까. 무기력한 자신을 위로하고 계속해서 말을 건네고 있는 것 아니었을까.

 

책 전반부에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나온다. 간단한 성경 속 줄거리를 말하면,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가 타락해 하나님이 심판(멸망) 시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롯과 롯의 부인은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 것을 잊고 롯의 부인은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다. 이 사건을 두고 보니것은 "나는 그 점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다. 정말 인간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것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금기둥이 쓴 것이니까."라고 덧붙인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매우 인간적이었던 한 존재가 쓴 소설인 것이다.

 

트랄파마도어의 영원한 시간성, 즉 4차원적 공간구성은 그의 죄책감을 해소하고픈 욕망이었다. 빌리의 죄책감은 책의 전반부에서 늙은 빌리가 사람들에게 트랄파마도어를 설명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어쨌거나 빌리의 주름진 심장은 타오르는 석탄이었다. 그게 그렇게 뜨거웠던 건 시간에 관한 진실이 수많은 사람을 위로할 것이라는 빌리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의 광적 믿음은 그들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소망의 발현으로, 오히려 구원받아야 할 이가 타인의 구원을 갈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쟁의 참상은 정신착란으로 보이나, 그곳엔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외면하지 못한 개인의 울부짖음이 있을 뿐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설명은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게 단순히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인 것인지 생각을 하게 한다. 원폭 개발과 일본 원폭 투하를 발표한 트루먼 성명이 나오고, 데이비드 어빙이 쓴<드레스덴 파괴>라는 책의 일부 내용이 나온다. "드레스덴 폭격이 큰 비극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생략) 그것은 전시에 가끔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 가운데 하나로, 여러 상황의 불행한 결합이 초래한 일이었다. (생략) 핵무장 해제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면 전쟁이 견딜 만하고 품위 있는 것이 되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드레스덴의 운명을 깊이 생각해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전쟁의 책임은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있다거나 한 대상의 탓만을 할 수 있을까. 드레스덴 폭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보니것은 묻는다. 또 앞으로 70억이 될 인구 모두가 존엄을 원할 것이라는 말처럼, 과거의 그 존재들도 존엄을 원했을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반복해서 나오는 "뭐 그런 거지"라는 대사는 그의 무기력함과 그 상황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나타낸다. 보니것의 문체는 블랙 유머다.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뭐 그런 거지"라는 대사는 개인의 무기력감을 나타내기도 하나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딸의 결혼식 날 밤 잠이 안 와 샴페인을 따며 거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빌리는 전쟁 영화를 거꾸로 본다.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며 전투기들도 뒤로 돌아간다. 또 "모두가 아기로 변한다.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생물적으로 공모하여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의 완벽한 두 인간을 생산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의 참상을 되돌리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하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담과 이브라는 존재까지 도달한다. 아담과 이브는 사과를 먹은 원죄의 상징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이런 참상을 그려낼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그는 트랄파마도어의 비행접시에 탑승한다.

 

해설에서 설명하듯 그는 적극적으로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설을 쓰지는 않았다. 어린 소년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것을 소년 십자군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는 책의 전반부에서 비유적 상징을 사용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놓고 말하고 있다. "나는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학살에는 참여하지 말라고, 적의 대학살 소식을 듣고 만족하거나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커트 보니것에게는 전쟁이 나쁘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굳이 흔하고 쉬운 방향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책이 나올 때는 68운동이 한창 벌어지는, 전쟁은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커트 보니것은 통계적 수치를 제시해 전쟁의 참상을 입증하거나 직접적인 깨달음을 전달한다거나 반전운동의 메시지를 격렬히 전달하지 않고, 빌리라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전쟁이라는 참상이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그의 세상을 다양한 도구를 통해 설명한다.

 

그렇게 중간 중간 나타나는 기도문도 빌리의 삶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바꿀 수 없는 것은 인생이다. 그것은 빌리의 세계다. 트랄파마도어로 대변되는 그의 세계엔 지구인의 삶은 모든 것이 정해져있고 구조화돼있다. 어쩔 수 없었던 죽음과 전쟁과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트랄마파도어인들은 좋은 것만 보고 살라고 말하고 있다.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으니 차라리 좋은 것만 보라고. 그에게 부족한 것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였으며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이런 책이 잘 쓰인 책이라 생각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처럼 그냥 단순히 보면 이해하기 힘들고 이상한 인물이나 이야기지만 그를 한 인간으로서 대하며 하나하나 이해를 시도해 볼 때 숨겨진 무엇인가를 찾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니것은 빌리라는 주인공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세상은 구조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어 바꿀 수 없었고,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에 너무 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당신은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음을. 인간의 시선을 초월한 곳에선 죽음이란 크게 슬픈 것이 아님을. 대학살에 대해 새가 그저 "지지배배뱃" 대답하는 것처럼, 빌리는 자신만의 언어로 최선을 다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소리를 냈다.

 

나에게 나름대로 이 포스트모던한 소설 구조가 시사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구절에서 느낀 것이다. "우리는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가서 포드 자동차 회사와 월트 디즈니가 보여주는 대로 과거가 어떠했는지 보고, 제너럴 모터스가 보여주는 대로 미래가 어떠할지 보았다. 그리고 나는 현재에 관해 자문했다. 현재는 얼마나 넓고, 얼마나 깊으며, 그 가운데 내 것으로 챙길 것은 얼마나 되는가." 트랄파마도어는 모든 시간을 알고 있고, 나의 삶 또한 알고 있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우린 과거를 보고 미래를 낙관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떻고 내 것으로 만들 것은 얼마나 될까.

 

구원의 소망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난다. 그 대상이 자신인지 타인인지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의 트랄파마도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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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만이 답이 아님을, 처벌로써 끝이 아님을 | 책 리뷰 2023-03-1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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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왜 소년범을 변호했을까

김광민 저
인물과사상사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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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받지 못한 존재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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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배우 김혜수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소년심판>을 봤었다. 소년범죄를 담당하는 판사가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말까지 하며, 소년범죄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이는 당시에 퍼져있던 촉법소년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대변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촉법소년이라고 부르는 제도는,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을 '형사미성년자'로 정해 형사처벌을 가할 수 없게 한 제도다. 민사상 처벌은 가능하고 보호 처분을 통해 최대 2년간 소년원에 있게 할 수는 있다.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지만 촉법소년이라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데, 당연히 제한을 낮추고 처벌을 강화해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의견은 당시 청소년 강력 범죄가 뉴스에 보도되면서 더더욱 힘을 얻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것은  피해자를 생각하면 정의롭지 않은 것이었다. 또 김혜수가 물건을 훔친 아이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을 보며 일종의 통쾌함을 느꼈다. 어찌 됐든 잘못된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처벌하고 나면 모든 게 끝일까? 사건은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되지만, 가해자인 청소년의 삶은 사회와 엮여 지속된다.

 

변호사인 저자는 자신이 맡았던 소년범죄 재판들을 소개하며, 현재 퍼지고 있는 소년범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말하고 있다.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말하지만, 그저 감정적으로만 사건을 대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다루었던 사건들을 본다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들이 소년범들과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성인들이 청소년을 이용한다. 청소년의 법적 지위와 법적 허점을 이용해 중고차 불법 판매를 하고, 막 졸업한 아이에게 대출을 받게 한다. 범죄 수법을 배운 청소년들이 다른 청소년들에게 또 알려주거나 악용한다. 그렇기에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피해자인 경우가 상당수이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저자도 그것을 모르진 않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그것에 대해 수없이 고민한 흔적을 보인다. 모든 잘못을 잘했다며 괜찮다며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니다. 법과 마주할 때 최소한의 보루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의 청소년들은 전문 변호사를 고용하기 힘들고, 일반 판결처럼 증거의 적절성을 논할 수조차 없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증거 채택을 두고 보호소년과 검사가 치열하게 다툴 수 없는 구조를 비판한다. 어리숙한 청소년은 법정에서조차 불리하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 딜레마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할까. 소년들에게 벌을 내리면 돈을 구해야 하는 아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또 처벌을 받은 소년들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고 소문이 퍼진다. 또 공부해야 하고 올바른 제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리고 특히나 집안에서 꾸준함을 훈련받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자기를 절제하지 못한다. 그렇게 스스로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한다.

 

소년 범죄를 다루면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많다. 저자는 8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성기를 만지는 사례를 언급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성폭력으로 봐야 할까? 아이가 정말로 성적 욕망에 의해서, 악의적 마음을 가지고 행한 행위일까? 사건을 읽으면서 나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다. 피해를 당한 사실 자체가 존재하고 피해자는 어찌 됐든 트라우마가 생겼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아이를 성범죄자라 낙인찍고 처벌해야 하는 것에는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청소년은 기본적으로 성인에 비해서 욕망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나 사회적 인지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기에 우리가 법을 다르게 적용하고 최소한 중고등학교까지는 교육한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자. 인식능력이 완벽했는가. 만약 잘못되었다는 인식조차 할 수 없다면, 또 그 책임은 대체로 부모에게 묻지만 만약 부모가 없거나 알려주기 힘든 상황이라면?

 

물론 특이한 사건이 있을 수 있다. 사이코패스라든지 악의적인 마음을 먹었다든지. 또 아무리 부족한 상황이라도 부도덕한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말도 옳다. 하지만 모든 청소년이 같은 모습으로 바르고 곧게 자랄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그들이 자기 객관화를 하기는 힘들지 않은가. 특정 한 두 명을 잡겠다고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을 개정해야 할까? 굉장히 조심스럽고 수없이 논의해 봐야 할 주제다. 깊은 논의를 거치지 못하고 초기에 감정적으로 휘둘린 학교폭력과 관련한 정책도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감옥에 가둔다면, 그를 감당할 사회적 자본 또한 소비되며, 소년범들은 더더욱 늘어난다.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춘다 해도(실제 법 개정으로 줄어들었고 관련 통계도 존재한다) 통계를 분석했을 때 범죄율이 줄어들거나 확실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예방하려 노력하는 것이 더 효과가 크지 않을까. 많은 사례들에서는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채워주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범죄의 이야기보다 가정의 이야기가 매우 중요했음을 기억한다.

 

그러니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자. 그저 단순히 강한 형벌로 청소년을 벌주면 정의롭고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굉장히 난처하고 어려운 문제다.

 

저자는 촉법소년 연령만 줄이면 많은 소년 범죄가 해결될 것 같은 환상을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처벌에만 당위적 감정을 이입하지,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복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않는다. 특히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언론은 사건에 감정을 부울 수 있는 그 이음선을 제공한다. 기존의 체계가 어떤지 분석하는 것보다 사건 자체에 중점을 두는 보도들은 더더욱 영향이 크다. 문제 제기보단 해결을 해야 할 차례다.

 

해결을 위한 예산과 지원은 부족하다. 저자는 재비행방지 효과를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호관찰이나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 처분을 내려 보호관찰관의 지도를 받으며 프로그램을 받게 해 비행을 예방하는 것으로 사회와 분리시키지 않는 방법을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하는 청소년이 100명이 넘으며, 아동시설이나 소년보호시설 또한 매우 부족하며 행정체계도 통일돼있지 않다. 위탁받는 지원비는 식비 정도밖에 안된다. 과연 소년범들은 개인 그 자체로 잘못되었을까. 사회적인 제도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법은 법대로, 잘못했으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고가 먼저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처벌과 별개로 그들이 존재함을, 사회가 존재함을 인식해 볼 필요가 있다. 직접 그들의 삶과 마주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삶의 이야기다 보니 굉장히 쉽게 읽히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다. 또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 봐야 할지 기존 생각에 많은 주석을 달아준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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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생각하다 | 책 리뷰 2023-03-0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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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저/박세연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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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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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있던 도서였는데, 웅진지식하우스 서평단 모집에 당첨돼 제공받았다 :)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어도 살 수 있을까? 죽음은 '옳은 것'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번 쯤 죽음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해 봤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이야기해 볼 수는 없을까. 셸리 케이건은 죽음에 대해서 같이 한 번 논의해 보자 말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이 책은 '죽음'이라는 주제로 예일대 철학과 교수인 셸리 케이건이 진행한 소크라테스식 강의다(물론 혼자서 제시하고 반박한다. 그의 스타일이 그렇단 말이다). 교양 수준의 강의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깊은 이론이라든지 어려운 말들이 등장하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다. 죽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철학적 논의들을 논하며 논리적으로 사고를 뻗어 나간다. 하지만 그저 가볍게만 다루진 않으며 독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계속해서 묻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곳곳에 스며있는 그의 유머까지.

 

책의 전반부에서는 죽음의 '형이상학'을 다룬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을 죽음이라고 정의하는가?" 따위를 묻는다. 말 그대로 죽음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제논의 역설을 떠올리면 되는데, 그 대상이 죽음으로 바뀐 것이다. 먼저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 지로 시작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논한다. 여기서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원론, 육체 자체로 인간이라는 일원론과 물리주의 관점, 영혼 자체가 인간이라는 유심론적 관점을 제시하며 각각의 주장을 전달한다. 특히 플라톤의 <파이돈>을 언급하며, 사후세계에 관한 소크라테스와 제자들 간의 대화들을 다시 뜯어보며 논리적 전개를 재구성해 본다. 그러면서 케이건은 자신의 주장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영혼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며, 물리주의적 관점을 가진다고 말한다. 우린 어떤 주장이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후반부에서는 '가치론'에 주목한다. "죽음은 왜 나쁜 것일까?" "영생은 좋은 것일까?" 하는 질문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왜 죽음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지, 영생이 과연 좋은 것인지,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와 같은 논의를 한다. 죽음에 대한 논의를 쌓아 올리면서, 13장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에서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을 한다. 어찌 됐든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케이건은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신중하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을 운명이기 때문은 아니다. 객관적인 차원에서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목표가 매우 '많이' 있고, 그런 목표들을 달성하는 게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에 비해 우리의 수명이 너무 짧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전해야 할 목표가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이루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는 식으로 인생을 허비할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결국 이 짧은 삶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어떤 목표가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으며 의미 있는 것인가?", "우리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셸리 케이건은 단순한 죽음의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결국 '삶'에 대한 논의이라 생각한다.

 

사실 논의하면 할 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그의 논의는 풍부하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삶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이자 이후이기도 하지만, 논의를 이어간다면 죽음 이전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논의를 이어가다 보면 사색에 빠지게 하는 핵심적인 질문들을 마주한다. 가령 "영생을 누려도 좋을 만한 형태의 삶이 존재하는가?", "죽음은 삶이 줄 수 있는 축복을 앗아가기 때문에 나쁜 것이지만, 삶이 나쁘다면 죽음은 오히려 좋은 것이지 않을까?" 같은 것이다. 이 질문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셸리 케이건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이란 하나의 답을 찾아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이런 질문에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철학이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사고하는 과정 자체 말이다.

 

그저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죽음은 단순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고 철학적으로 사유하다 보면 인간이 왜 특별한 존재인가를 넘어서 '왜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근거들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논의에서 살펴봤듯이, 근거를 쌓아갈수록 또 다른 모순에 부딪힌다. 케이건도 완전하고 탄탄한 논리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의 주장의 허점을 파고드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그렇게 케이건은 가치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 장 "자살,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에서 자살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를 논의한다. 결론적으로 의무론과 공리주의의 대립을 통해서 서로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음을 말하고, 시원한 이론적 답을 내리진 않는다. 그래서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심사숙고하고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자발적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자살을 선택한다면 존중해줘야 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시원함을 기대하기보단, 우리는 논의 자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철학은 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케이건은 공리주의와 의무론이라는 대표적인 도덕적 관점에서 자살을 들여다 보길 시도하고 있지만,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문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자살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기 쉬운가 하는 것이다. 답을 찾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던지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삶을 가진 사람이 자살한 상황을 보고, 왜 자살을 했을까 혹은 자살은 나쁜데 왜 자살했을까? 하며 묻기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길래 자살을 선택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자살을 어느 정도 용납하는 개별적 사례를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이론적인 논의만으로 우리가 자살은 무조건 나쁘다고 외치고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살의 정당성을 논의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자살은 물론 나쁘다. 지양해야 할 행위다. 우리는 이미 이를 생물학적으로나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죽음을 떼어낸 상태로 죽음을 논하기에는 다소 장황하고 의미가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 우리는 의식적으로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서도 자살은 안되지만 무의식적으로 삶을 포기할 의지를 인식하고, 또 유혹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죽음은 항상 곁에 있다.

 

결국 내가 죽음에 대해 논의하면서 도달한 점은 이것이다. 우리 삶과 사회는 죽음에 대한 논의와 같다고. 케이건이 말했듯이 죽음을 생각하며 우리 삶의 가치를 묻는 것도 옳지만, 우리가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논리구조, 또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이 넘쳐났듯이 우리의 삶과 선택들은 상당한 사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의미를 찾는 것처럼, 모든 일들이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위해서, 또 그런 사회가 되길 원한다면 그 끝(죽음 혹은 파괴)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죽음이란무엇인가 #셸리케이건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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