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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공허한 십자가 | 기본 카테고리 2022-05-2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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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저/이선희 역
자음과모음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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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사형'을 비롯한 형벌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형 폐지론에 대해, 지나치게 한쪽의 입장만을 몰아붙인다기보다는 두 입장 모두에 관해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 문제에 대해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생각하게 되는데, 이야기가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은 비단 딸만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소중한 것을 수도 없이 잃어버렸다. 인간관계도 어색해졌다. 배려 때문인지 어색함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직장의 업무도 달라졌다. 그는 이미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아내의 환한 웃음을 볼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이리라."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유족들은 가해자의 사형만을 목표로 살다가 재판이 끝나면 공허해져 삶의 의욕을 잃는다고 한다.

"사쿠조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각오는 했지만, 역시 세상 사람들은 살인자의 가족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흉악범과 피가 이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리적 혐오감에 휩싸인다는 것은 그녀도 이해할 수 있다. 반대 입장이라면 자신도 그랬을 테니까. 어쩌면 그렇게 위험한 사람을 왜 방치했냐면서 책임을 물었을지도 모른다."

가해자의 가족이 견뎌내야 하는 사회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다. 단지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범죄자를 일정 기간 복역시켜서 범죄를 막는다는 발상 자체가 환상이 아닐까. 국가의 책임 회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런 형벌 시스템은 한시라도 빨리 재고해야 한다고 이전 취재를 통해서 통감했다."

사요코의 기사 내용이다. 인간이 인간을 처벌하는 데 명확한 해답이 있을까. 범죄자는 교도소에서 교화될 수 있을까.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흔히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곳을 지났다고 해서 앞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극복하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 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사형 폐지에 반대하는 사요코의 말이다. 유족에게 가해자의 사형이란 당연히 구형되어야 하는 처벌이고,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서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인 것이다.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평생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것과 평생 다른 사람들을 구하며 사는 것, 무엇이 진짜 속죄일까. 후자가 공리주의에 적합할지라도 죄를 인정하고 알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전말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유족들의 심정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속죄의 방식은 그들이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형벌 제도에 관해 여러 의문점을 제기하고 살인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에 대해 아프고 날카롭게 다룬 소설이다. 독서토론을 위한 책으로 선정해도 좋을 정도로 토론거리가 많다.

다만 사오리와 하나에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닮아있다는 점, 하나에가 남편의 실체를 알고도 오히려 감동하는 장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오리와 하나에를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조금이라도 덜 헌신적인 인물로 그렸다면 이 소설은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단순한 추리소설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할 거리가 다양하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결코 빠르고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살인사건이나 유족과 관련된 뉴스를 본다면 <공허한 십자가>가 종종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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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언제 올지 모를 희망 말고 지금 행복했으면 | 기본 카테고리 2022-05-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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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언제 올지 모를 희망 말고 지금 행복했으면

송정림 저
자음과모음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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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과 표지를 보고 뻔한 에세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익숙하고 소중한 '헤세'의 이름이 보였다. 헤세의 따뜻한 문장들과 함께 위로를 건네주는 책이라니,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이에 차라리 제목에 헤세를 넣었더라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책 자체가 귀엽고 여백이 적당히 있어서 가독성도 좋다. 글과 글 사이의 따뜻한 일러스트도 기분을 한층 좋아지게 만든다. 작가는 헤세의 문장을 제시한 다음 이와 관련된 자신의 일화나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따뜻하게 풀어나간다. 친한 언니가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다.

뇌리에 박혀 있는 헤세의 문장이 나올 때마다 반가웠다. 읽어보지 못한 문장이 나오면, 그 책을 찾아 읽고 싶어진다. 작가는 헤세의 모든 문장에 주목하고 이를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독자에게 효과적인 위로를 건넨다. 헤세의 문장을 탐닉하고 작가의 삶에 잠깐 다녀올 수 있던 시간이었다. 얻은 것도 많다. 어른이 되고 나서 겪은 많은 고민의 시간들을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의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아낌없는 위로와 토닥임을 받을 수 있었다.

평소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헤세의 문장과 함께하니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헤세의 책들을 경험한 뒤 다시 한번 펼쳐보고 싶다. 그냥 지나쳤던 문장들이 새롭게 보일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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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사랑인지 | 기본 카테고리 2022-05-03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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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욕조가 놓인 방

이승우 저
작가정신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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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남자의 움직임과 그에 따라 떠오르는 그녀와의 기억, 사랑에 관한 깊은 숙고로부터 빚어진 문장들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문체가 특이해서 (마치 번역체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잘 읽히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금방 적응하여 빠져들 수 있었다. 작가는 사랑을 분석적으로, 철학적으로,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망설임 없이 묘사한다. 다소 심오한 은유를 사용하여 여러 번 읽게 만드는 구절도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책의 작은 크기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서사 중심이라기보다는 사랑에 관한 분석적 서술 위주의 글이기에, 마치 논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매력을 가지는 까닭은 중후반으로 갈수록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남녀의 서사가 심히 낭만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타국이라는 배경부터가 반칙이며 두 인물이 바다를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소설다운'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이성적이고 심지어 비관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여겨지는데도 왜 역설적으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아득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서로 속얘기를 나누는 상황에서 감히 누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간단히 평하자면, 이 책은 사랑이라는 이상하고 예외적인 감정에 대해 분석적으로 서술하며 '그럼에도 왜 사랑인지'를 타당하게 주장하는 글처럼 보인다. 이를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쓰인 남녀의 이야기는 낭만과 현실을 함께 각인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대체 사랑이 뭔지,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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