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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종말주의자 고희망 | 기본 카테고리 2022-09-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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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종말주의자 고희망

김지숙 저
자음과모음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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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은 김지숙 작가의 청소년 장편소설로, 종말에 관한 소설을 쓰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희망은 동생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여기며 벌 받는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그에게는 소중한 친구 도하와 지수, 그리고 항상 마음을 헤아려주는 요한 삼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표정 없이 침묵하는 아빠와 칼처럼 날카로운 엄마 때문에 희망은 자주 외로워하고 우울해한다. 자신의 일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부모님 때문인지, 희망은 때때로 죽음과 종말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에 자아가 투영된 것인지, 소설 속 주인공 H도 자신에게 빨리 종말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동생을 잃고 난 뒤 희망의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동생 소망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소망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엄마의 식탁에는 약 봉지가 쌓여갔다. 큰 상실을 겪은 사람들은 어딘가 망가진 모습을 보이게 된다. 10년 동안 좁은 집의 한켠을 차지하던 피아노를 처분했을 때가 생각난다. 작은 꽃병 하나가 사라졌다면 액자나 다른 장식품으로 대체할 수 있을 텐데, 피아노가 사라진 빈자리는 다른 것으로 곧바로 대체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결국 빈자리를 채우지도, 완전히 비우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희망의 가족들에게는 소망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했다. 소망의 죽음을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기억으로 치부하는 것은 모두에게 해가 되는 일이었다. 어떤 기억을 딛고 살아가려면 더 많이 생각하고 쏟아내고 다시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종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 우리는 같은 세계에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

희망의 소설 속 주인공 H가 스스로 사라지기를 원할 때 친구 D가 건넨 말이다. 소중한 사람과 같은 세계에서 만나기 위해서라도 혼자서 죽음을 택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내용이다. 이 문장을 봤을 때, 역설적이게도 희망의 삼촌이 본행사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소중한 가족을 지키려다가 자기 자신을 신경쓰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무대에 올라선다. 극한에 처한 상황에서 소중한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에 관한 의견이 부딪친다. 소설 속 H의 마지막 선택은 이러한 두 가지 의견을 모두 반영한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이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내가 죽음과 종말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삼촌의 조언대로 직접 유서를 써보던 희망이 깨달은 바이다. 결국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희망은 삶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며 고민해왔던 것이다. 희망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어린 마음에 반항도 하고, 진솔하게 속마음을 고백하는 등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도하의 제안을 듣고 종말이 아닌 희망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자 생각함으로써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청소년이 주변 사람들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아를 성립하고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소설이었다. 마음이 어지럽게 얽힌 사람이나 감정을 배출하지 못해 엇나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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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짜 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 기본 카테고리 2022-09-1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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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짜 노동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저/이수영 역
자음과모음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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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는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하는 노동의 헛된 속성을 밝혀낸다. 현대인의 노동 시간 중 많은 부분이 쓸모없는 일을 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궁극적으로 의미 없는 활동에 허비되는 에너지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들어 현대인의 '가짜 노동'을 비판한다. 그들은 일단 가짜 노동을 인식하고 그 비합리성을 인정한다면 이로부터 사람들이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고 믿는다. 이에 가짜 노동을 경험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짜 노동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헤치고 드러냄으로써 노동의 본질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또 이러한 가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노동의 세계에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현대인이 효율적인 방식으로 노동할 것을 권고한다.

가짜 노동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일단 누군가가 일을 만들어내기 때문인데, 누군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을 사용할 새로운 방식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되풀이되면서 사람들은 끝없는 노동의 궤도에 갇히게 된다. 저자들은 가속화의 역설에 대해서도 논하는데, 우리를 해방시켜주리라 기대했던 기술이 결국 더 많은 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한히 증식하는 일들 가운데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과연 얼마나 될지에 관한 의문이 남는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이나 타인에 대한 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 시간을 특권으로 간주하던 시대가 끝나고 일에서 특권이 나오는 시대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은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노동이 무의미하고 허위로 가득 차 있을 뿐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하며, 성실한 일꾼이자 회사에서 중요하고 대체 불가능한 직원으로서의 이미지를 보호하려 한다. 또한 동료나 상사에게 중요해 보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전혀 바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바쁜 사람인 것처럼 꾸며내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다. 저자들은 바쁜 것이 좋고 필요하고 도덕적이라는 생각은 가짜 노동을 낳은 합리화 중 하나라고 말하며 속이 텅 빈 형태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짜 노동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야 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본업을 방해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보고서나 형식에만 치중한 매뉴얼 등은 정말로 중요한 일에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를 감소시킨다. 저자들은 가짜 노동에 맞서기 위한 방책으로 '타인에 대한 모방을 멈추는 것'을 주장했다. 할 일이 끝났음에도 타인을 의식하여 바쁜 척 쓸데없는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타인을 모방하는 대신에 자신이 할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가짜 노동은 회사와 조직이 보상을 주는 뒤틀린 거울방에 의해 유지될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자존감과 자아상에 깊이 뿌리내려 유지되기에 웬만한 도전에 꿈쩍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가짜 노동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의 13장-변화를 위한 우리의 전략에서 고안한 해결책은 눈치보지 않고 퇴근하기, 회의 짧게 하기, 가짜 노동 명확하게 구분하기,
타인에 대한 모방 경계하기, 시간으로 계량하지 않기 등이 있다. 일단 첫 번째 해결책만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가짜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일개 사원이 이러한 해결책들을 수행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가짜 노동을 통해 체면을 지키는 관행을 이어온 조직이나 기관에서부터 변화를 도모해야 개인들도 효율적인 노동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짜 노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해보았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의 본질과 그 실체에 관해 낱낱이 파헤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직장인들의 사례를 함께 들어 설명해줌으로써 설득력을 더했고, 실제로 이 사회에 가짜 노동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다. 가짜 노동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가짜 노동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본인도 가짜 노동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책은 이러한 노동의 현실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벗어나 제대로 된 노동에 힘쓸 수 있는 해결책도 제시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잘못된 노동 관행을 바로잡고자 노력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텅 빈 노동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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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 기본 카테고리 2022-09-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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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듀나 저
네오픽션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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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한국 SF의 거성이자 장르문학의 대표주자인 듀나의 소설집이다. 10주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는데, 호흡이 짧고 간단하게 읽히는 소설부터 깊은 비유를 담고 있는 소설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마니아층이 굳건하다는 듀나의 소설을 직접 읽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그는 첫 번째로 실린 소설에서 간단히 동전을 튕기는 것만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불과 몇 페이지만에 독보적인 듀나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을 것이다.

'동전 마술'과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는 독자들을 그의 세계로 초대하는 오프닝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두 소설은 독자의 흥미와 궁금증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아주 간단하게 끝을 맺는다. 독자들은 마지막에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파편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하고 나아가 상상하며 각색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뒷이야기나 숨겨진 의미는 전부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소설은 이러한 스토리상의 공백을 남겨둠으로써 독자가 소설 속 세계에 직접 들어오도록 유인한다.

표제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는 다소 읽기 힘든 묘사나 설정이 있었지만 거의 모든 대상에 상징적 의미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스포주의) 살아남은 아이들이 진화를 거듭한 끝에 결국에는 진호와 청수가 살던 시기의 인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고, 때로는 죽이거나 미워했던 브로콜리도 본래의 형태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인간과 같은 형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은 실재하는지, 지구와는 완벽히 다른 행성에서도 지구의 윤리를 따르고 아이를 아이로 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워낙 다양한 형태의 소설들이어서 전반적으로 어떻다고 설명하기가 애매하지만, 전부 처음 만나보는 세계에 대해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메리 고 라운드'와 'ABCDEF'는 비현실적이거나 sf적인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촉발되는 인간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작가는 '모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속에는 인간성과 사회에 관한 의미를 숨겨둠으로써 독자 스스로 이를 '아는 세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 두 번 읽었을 때 더 크게 와닿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그냥 넘어갔던 요소들이 모여 커다란 상징을 이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듀나의 소설은 강렬하고도 첨예한 비판을 통해 독자에게 여러 생각할거리를 제공한다. 독자가 아는 만큼 보이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더 많은 경험을 쌓은 뒤에 다시 읽으며 전에는 몰랐던 의미를 파헤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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