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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 기본 카테고리 2019-11-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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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딸에 대하여

김혜진 저
민음사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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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엄마라면, 딸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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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작가의 소설을 접하면서 꽤 읽기 쉽고 수월해서 가볍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83년생의 젊은 작가가 썼지만 좀 더 묵직한 느낌이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가 대학교 시간강사로 일하는 동성애자인 딸과 딸의 연인에 대하여 쓴 글이다.

 

 

p. 62

그건 딸애의 착각이 아닐까. 아직은 어리석고 순진한 이 애들의 오해가 아닐까. 그래서 며칠이 지나면, 몇 달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던 일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을 구겨 버리고 아주 작게 만들고 멀리 던져 버릴 수 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모른다고 여기면 얼마간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들. 아무것도 모를 때엔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들. 그러나 뭐든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 그것들은 발톱을 세우고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다. 진실과 사실, 그런 명백한 것들의 속성. 언제고 그것들은 사납게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는 딸아이의 동성연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 당장 몰랐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알게되어 불편한 사실에 대한 그녀의 되뇌임은 어쩌면 엄마라면 당연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딸이 그러하다면 엄마의 심정은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심정으로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그 상황이 펼쳐지고 나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갑갑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p. 97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렸다.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딸이 대학생이 되어 이후 독립생활을 하면서부터, 엄마는 딸이 더 이상 자기 품에 있던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엔 교사로 일했지만, 이후 딸을 홀로 키우기 위해 교습소, 도배, 유치원 통학버스 운전, 보험 세일즈, 구내식당 등 현재 요양 보호사로 일하기 까지 그녀는 딸 하나를 바라보며 억척같이 일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생계를 홀로 지탱할 수 없는 딸아이의 도와달라는 이야기, 자신 또한 집 한채 외에는 가진 것이 없기에 요양 보호사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일하고 있는 현실일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실들이 딸아이의 현실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일생을 열심히 살았는데도 죽기보다 살기위해 여전히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화자 입장에서, 강사로 변변치 못한 수입으로 홀로 생활을 꾸리지도 못하는 딸이 동성애자인 시간강사가 학교에서 이유없이 해임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온갖 시위를 하고 다니는 것 또한 이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일테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요양 보호소의 문제, 동성애자 인식의 문제, 비정규직에 관한 문제 등은 모두 개인보다는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보여진다. 어느 누구도 자세히 밝혀서 보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그러한 현실에 직면한 주인공들의 삶은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기에 더욱 암울하고, 엄마는 왜 하필 내 딸이 그러한 현실에 직면한 것인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화자인 엄마는 평생을 홀로 살면서 미국에서 이민자 자녀를 돌보는 일을 하다가 결국 요양소로 온 젠을 돌보면서 자신의 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는데 결국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고, 생애 마지막은 요양소에서 이렇게 마무리 해야하는 신세가 된 젠을 그녀는 무척 안타까워 한다. 결국 집에 데려와서 마지막 운명까지 보는 그녀 또한 딸의 고집처럼 어떤 고집이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단순히 요양 보호사로서 기계적으로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연민을 느끼고 일자리를 박탈당하면서 젠을 보호하고자 했던 그녀 역시 딸과 닮아 있다.

 

 

소설은 화자가 엄마이기에 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오롯이 잘 전달되어있지만, 딸은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딸은 자기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바빠서 엄마를 그렇게나 생각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 집에 살 뿐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을 보면 소통은 거의 안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엄마와 딸도 다들 이런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엄마는 지극한 모성애를 가지고 다 큰 딸의 앞날을 계속 걱정하지만, 어쩌면 딸들은 그러한 엄마의 뒷받침을 너무나 당연한듯 받아들이고 요구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엄마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근사근한 딸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특히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그러한 대화조차 귀찮게 생각하는 딸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나 또한 딸의 입장이면서 앞으로 딸을 가진 엄마가 되기에 이 소설이 여러 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틈을 준 것 같다. 시대에 따른 엄마와 딸의 입장은 계속 다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딸인지, 어떤 엄마가 되어야할지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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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왜 싸우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19-11-2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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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동은 왜 싸우는가?

박정욱 저
지식프레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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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 아랍권에 대한 역사에 무지한 분들이라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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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된건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를 읽고나서 아랍, 중동국가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해외뉴스에서 이란, 쿠르드인, 이슬람 등과 관련한 뉴스가 나오면 그냥 채널을 돌리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또한 최근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중동 전문가 박현도 교수가 호르무즈 파병과 관련하여 강의하는 것을 듣고서는 중동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책이 좋을까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였다.

 

 

중동하면 이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슬람교의 원천부터 1장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신의 계시를 받은 무함마드부터 4대 칼리파까지...

 

 

p. 33

이슬람 국가가 세워질 때 주권은 군주나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움마가 확대되어 만들어진 이슬람 국가의 주권은 신에게 있었다. 신의 계시를 기록해놓은 <꾸란>이 곧 헌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슬람국가는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 <하디스>에서 국가 운영과 백성들의 삶에 필요한 법을 도출해냈다. 문제는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꾸란>이 변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알라가 한 번 계시한 말씀은 영원불변하다. 이슬람 법학자들이 경전 해석을 통해 시대에 맞는 유연성을 발휘할 따름이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에서는 '주권이 신에게 있다'는 관념이 계속 이어졌고 근대 유럽에서 등장한 '인민 주권'의 개념이 들어서기 어려웠다. 이는 20세기에 도입된 민주주의와 공화제가 중동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유럽은 국가와 기독교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다가 국가에 의해 기독교가 포섭된 형태이나, 이슬람은 종교공동체가 확장되어 국가로 발전했다. 시작부터 국가가 종교와 한 몸이었고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이슬람 국가는 다른 국가와는 다른 특이성을 띈다. 그래서일까? 많은 국가들이 서구 선진국을 롤모델 삼아 '민주주의'라는 근대화를 추구했으나,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서구 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종교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아서가 아닐까싶다.

 

시아파와 수니파

기독교에서 장로파, 감리파 등의 종파가 있는 것처럼 이슬람교도 시아파로 수니파로 나뉜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을 따라 후계자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시아파'와 능력에 따라 후계자를 정해야한다는 '수니파'간의 갈등이 이어진다. 우리는 같은 이슬람교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갈등이 이란, 이라크 등의 나라에서 계속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분열된 이슬람교도 갈등의 요인인것 같다.

 

 

이란 vs.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은 시아파 종주국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종주국이다. 이란과 사우디가 갈등하는 것은 단순히 시아파/수니파의 종교적 문제는 아니다. 현재 이란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공화정을 채택한 반미 성향의 국가이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친미국가이다. 이슬람혁명 이전의 이란 팔라비 왕정 때에는 이란도 왕정 국가였고 미국의 우방이었으나,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이 공화정으로 바뀌고 반미 노선을 채택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란의 힘이 강해질 경우 공화정의 지지여론이 높아져 왕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사우디아라비아는 꺼리는 것이다.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유

우리나라와 한참 멀리 떨어진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유가 그 당시 터키의 외교 정세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처음 안 사실은 꽤나 많다. 그런 이유로 주변에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위협에 늘 시달렸는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극체제로 재편되고나서 소련의 위협을 피하고자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에 가입하고자 했다. 나토는 기본적으로 유럽을 지키기 위해 결성한 군사동맹으로 유럽 국가들은 터키의 나토 가입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에게 나토의 동맹으로 인정받기 위해,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미군이 참전한 후 가장 먼저 달려오게 된다.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의 병력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이 되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이 일로 인해 터키와 한국간의 관계가 조금 특별해진 것 같다.

 

 

이 책에는 알카에다와 9.11테러, 시리아내전, 쿠르드족의 독립국가에 대한 열망 등 최근 우리가 결론적으로 아는 일들에 대한 역사가 잘 나와있어서 국제정세와 함께 그에 대한 배경을 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우리가 뉴스로 접하는 극히 일부의 사실들이 이렇게나 실타래처럼 엮여있다는 것을 알게되니 역사책을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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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과거 | 기본 카테고리 2019-11-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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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빛의 과거

은희경 저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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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새로움. 은희경 작가의 팬이 아니더라도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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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은희경작가다. 너무 잘 읽혔고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은 책이다. 중년의 여성인 김유경이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을 읽게되면서 소설 속 자신의 기억을 짚어보는데, 결국 인간이란 자신이 느끼는대로 임의적으로 기억을 편집하는 동물인가보다. 어느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은 주관적인거니까. 각기 삶을 대하는 태도와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아마도 개개인 모두의 기억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갖지 않나 싶다.

 

 

p. 12

...그러나 그녀에게는 사람을 대할 때 미묘한 권력관계를 만드는 습성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의 자장을 만들어내고 우월감과 피해 의식을 번갈아 써가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거기에는 증인이 필요했다. 결국 나로 하여금 위성처럼 그녀의 궤도를 따라 돌며 그녀라는 일방적이고 변덕스러운 광원을 반사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소설속 주인공인 김유경이 본 김희진의 모습이다. 아마도 김희진은 치열하게 살아온 환경 속에서 자존감이 높은 인물로 주변인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만은 않은 그런 인물 같다. 스스로를 '고독과 가난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은 모욕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실제의 고독, 가난, 모욕보다는 자존감 높은 그녀가 스스로 느낀 감정을 합리화하는게 아닐까.

 

 

p. 116~117

모범생들은 눈치를 본다. 문제를 낸 사람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기준, 즉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려는 것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기는 권력에 따르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저 권력에 순종했을 뿐이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범생의 착각이다. 그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완강한 틀에 맞춰가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진짜 모범생은 아니었다.

 

 

주인공 김유경이 자신을 묘사한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모범생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모범생이다. 자신의 의사표현을 크게 하지도 않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늘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중고등학교까지 모범생으로 살아오다가 갑자기 대학생이 되고부터 급진적으로 사람이 변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녀는 소심하면서도 주변인들에게 크게 자기 의견을 밝히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김희진의 직설적인 말투와 남과의 비교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해야하는 그녀의 성격이 불편해도 그녀를 오랜 친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회생활 할 때 볼 수 있는 무난한 성격의 보통 사람 같다.

 

 

모범생에 대한 저 문구를 보았을 때 내가 든 생각은 사실 우리 사회가 모범생을 원하는 것은 어떠한 조직 체계이든 잘 순응하고 순종적인 것을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눈치를 잘 보고 자기를 어디에 맞춰야하는지 아는 사람. 이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바래왔던 상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창의성 등을 운운하며 무언가 다른 인간상을 원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큰 조직에서는 상명하달 식의 의사결정구조와 빠른 추진을 위해 모범생을 원하는 것 같다. 다만 빠른 사회 변화 때문인지 다양한 경험을 해본 모범생(?)을 선호하면서 그들이 마치 창의성을 탑재한 인간상이기를 동시에 바라는 듯하다.

 

 

p.279

긴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들의 인생을 각기 포물선 그래프로 그려보면 뜻밖에도 서로 맞닿는 경우가 적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치 시소게임 같다. 한 사람이 오르막길로 상승할 때 다른 사람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한 사람이 언덕마루에 서서 경치를 내려다볼 때 다른 한 사람은 바닥에서 헛발질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침에 볕이 들었던 자리가 저녁이 되면 싸늘해지듯 빛은 자리를 옮겨 다니는데 어둠은 규칙없이 찾아온다.

 

 

오랜 친구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아서 연락이 계속 닿을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바닥일 때 자신을 드러내고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잘 나가는 친구는 연락이 잘 닿아도, 그렇지 못한 친구의 소식은 잘 알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동창회는 잘 나가는 친구를 볼 수 있고 계속 소식을 전할 수 있는게 아닐까.

 

 

우리가 동창을 만나면 항상 과거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우리가 공유한 그 기억만큼 우리의 감정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에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희노애락을 다 이야기할 수도 공유할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동창보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p.319

비관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나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므로 심신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빠져든다. 신체의 운동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에도 힘이 필요하다. 힘내라고 할 때 그 말은 낙관적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향과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성향이 극 반대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람의 기질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지속적으로 안 좋은 환경에 처하면 비관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을 때, 100번 도전해도 실패만을 경험할 때, 과정보다는 그러한 결과로 자신이 평가받을 때 등등.

 

 

김유경도 비관적인 성향이 아님에도 기숙사에서 친한 사람들과의 이별, 신문사를 그만두는 일 등 여러가지 환경이 겹치면서 그 당시만큼은 비관론자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연애도 실패하고 능동적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 때만큼은 기억이 흐릿했겠지.

 

 

p.337

우리 둘 중 누군가의 기억이 틀린 것일까. 아닐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만나 차이라는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되어 돌아온다"라는 말처럼

 

 

김유경과 김희진의 기억에 관한 차이를 이렇게 묘사할 줄이야!

기억의 옳고 그름은 없다. 단지 다를 뿐이다.

기억의 차이가 새로움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신선했다.

 

 

은희경 작가의 소설은 단순히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 외에도 중간중간 인생의 단상에 대해 묘사한 글들이 나를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특히 이러한 장편 소설에서 긴 호흡의 서사를 이끌어가면서도 튀지않게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글들이 계속 빠져들게 만드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녀의 소설을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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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북클러버 2019-11-1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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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매슈 워커 저/이한음 역
열린책들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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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또는 잠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볼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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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는 이유는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 내내 아데노신은 계속 쌓이고, 그로 인해 뇌는 자고 싶은 욕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습관적으로 마시는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수면 신호를 인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아데노신이 고농도로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뇌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카페인이 분해되면 그 때까지 쌓인 아데노신으로 졸음이 더 강하게 밀려온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카페인을 분해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하루에 한잔만 마셔도 잠을 자는데 영향이 있지만, 어떤 이는 하루에 서너잔을 마셔도 잠만 잘 온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이 잠을 잘 자는지, 수면의 질에 영향이 없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이를 먹을수록 뇌와 몸이 카페인을 분해하는 것은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나는 커피를 마시는 습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졸려서 마신다기 보다는 하루에 한잔 습관적으로 마시고 있었는데, 어느날은 오전에 마신 한잔이 밤에 내게 불면증을 안겨다주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수면의 질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쩌면 의도적으로라도 차를 마시는 습관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름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체할 음료가 무엇인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사람은 약 90분 주기로 깊이 잠드는 비렘수면과 꿈을 꾸는 렘수면을 반복하면서 잔다. 잠잘 때 처음에는 비렘수면이 주도하고 아침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렘수면이 주도하는 수면 양상을 띤다고 한다. 비렘수면은 새로 학습한 정보를 뇌의 장기 기억 저장소로 옮기는데 기여를 하고, 렘수면은 창의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렘수면 때 서로 관련이 없던 정보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창의적인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뇌과학 책에서 단기기억이 해마에 저장되어 있다가 전두엽의 피질로 옮겨가면서 장기기억으로 변환된다고만 나와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잠을 통해 뇌가 이러한 역할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이 잠을 많이 자야하는지, 과제에 치여서 밤에 공부를 더 하는 것보다 편히 잘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필요한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또한 잠을 잘 때 뇌파 활성이 이뤄지는데 이러한 수면방추가 강하고 잦을 수록 바깥 소음에도 더 잘잔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잠을 깨는 한편, 나는 누가 엎어가도 잘 정도로 깊게 잠을 자는 편인데 아마도 이는 엄마와 나의 수면방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잠이 없어진다는 말을 한다. 이 책에서는 노화할수록 수면리듬이 퇴행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멜라토닌이 저녁에 더 일찍 분비되어 노인이 되면 이른 저녁에 졸음이 밀려오고, 밤에 분비되는 멜라토닌의 양도 줄어든다고 한다. 또한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극적으로 퇴화하는 뇌 영역이 깊은 잠을 생성하는 중앙 전두엽 영역이기 때문에 깊은 비렘수면이 많이 줄어들고 밤에 깊이 푹 잠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기억력 저하나 수면 악화와도 관련이 있다.

 

 

결국 노인은 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잠이 필요하지만 수면리듬의 퇴행으로 생리적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것이다. 노화에 따른 수면리듬의 퇴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카페인이나 알코올 섭취까지 더한다면 잠은 더 잘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생활습관도 잠을 자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드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것까지 신경써야하다니 참 슬픈 일이다...)

 

 

잠이 부족하면, 즉 깊은 비렘수면이 줄어들면 아밀로드이드를 제거하는 능력이 약해진다. 아밀로이드가 쌓일수록 깊은 수면은 줄어들고, 깊은 수면이 줄어들수록 아밀로이드는 더 쌓이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악순환이 일어난다. 여기서 말하는 아밀로이드는 알츠하이머와 관련이 있다. 물론 수면부족이 알츠하이머를 일으킨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위험요인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의 절반이상은 잠을 8시간은 자야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고, 수면의 질을 좋게 해야 건강하고, 면역계도 좋아서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너무 환한 조명은 멜라토닌 분비량을 억제시키면서 잠을 자는 신호를 방해하기 때문에, 잠자기 전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자제해야 한다고 한다. 종이책을 보는 것이 전자책을 보는 것보다 낫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카페인이나 알코올 섭취를 자제하고, 실내온도는 선선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어느 정도 우리가 조절가능한 환경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컨트롤하기 힘든 것은 알람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우리의 출근시간 또는 등교시간이다. 각자의 신체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근시간에 맞춰서 일찍 일어나서 비몽사몽 출근하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상쾌하게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결국 컨트롤 불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환경들은 고려해볼만하다. 수면의 질을 높여서 삶이 더 쾌적해진다면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환경들에 집중해보자. 밤에 드라마를 보면서 맥주 한잔 하는 것이 삶의 낙이라면, 커피한잔을 하면서 독서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자기 전에 하루의 뉴스를 훑으면서 멍때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나만의 여유라면, 고민이 될만하다. 수면이 뭐라고... 이러한 것을 포기하고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저렇게 해야한다는 말인가 하고.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질좋은 수면을 위해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은 중요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잠도 잘 잘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니 아주 약간은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여운이랄까.

 

나는 평소에 잠을 잘 잔다고 생각했고, 잠에 대한 고민이 없었지만 이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만약 잠을 잘 못 드는 편이고 잠을 잘 자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수면과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 책을 정말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알게되는 사실이 많을수록 더욱 신경쓰기 마련이니까, 그런 면에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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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인문학 | 기본 카테고리 2019-11-1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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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리 샘과 함께하는 시간을 걷는 인문학

조지욱 저
사계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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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책은 내가 주로 읽는 책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아이와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되는 엄마로서 이런 책을 읽고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읽어보게 되었다.

 

2장 '우리와 또 다른 사회를 연결하는 길'을 읽고난 후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가 도로 발달이 더딘 이유가 잦은 침략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넓은 도로는 적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도로 건설에 소극적이었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은 우리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도로 건설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로마는 도로 건설을 적극적으로 하여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침략이 아닌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제도와 문화를 빠르게 전파하고, 식민지로부터 빼앗은 노예와 물자를 로마로 들여오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도로는 성장, 번영, 발전을 의미했을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괜한 말은 아닌 것이다.

사실 이러한 역사적 지식과 길의 역할을 알리 없었던 나로서는 유럽여행을 가면 운치있는 돌길을 밟을 수 있어서 좋아했다. 콘크리트가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길이라 그런지 사진 한장을 찍어도 멋있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고 보니 그 길은 과거 번영했던 그들의 찬란했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65퍼센트가 산이라서 산맥이나 고개를 넘어야 교류할 수 있다. 산맥을 따라 지역을 구분하기도 하고, 문화도 다르다. 예를 들어 대관령을 기준으로 동쪽을 영동, 서쪽을 영서라고 하는 것처럼.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산악지역에 터널이 생기면서 통행시간은 단축되고 있지만, 풍경을 바라보는 뷰는 사라지고, 그만큼 사람들의 여유는 사라지는 것 같다.

 

 

부모님 세대가 과거 미시령고개를 회상할 때 우리는 알 수 없는 그 느낌. 빠름이 주는 편리함과 맞바꾼 것은 마음의 여유 말고도 추억할 수 없는 길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장인 '자연환경과 길은 공존할 수 있을까'는 내가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추진하려 했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국 녹조가 심해진 4대강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인 아라뱃길 또한 화물 운송의 역할은 커녕, 주변 자전거길로 쓰이고 있는데 그 많은 비용이 투입되어야만 했던 것도 의아하다.

 

댐 건설이나 새만금 간척 사업 등도 각 정권마다 다른 의견을 내고 추진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자연과의 공존이 우리에게는 아직 갈 길이 먼것처럼 느껴진다. 미국과 프랑스는 댐이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이유로 댐 건설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해체한다고 하고, 독일과 미국은 간척지를 간석지(갯벌)로 되돌리는 공사를 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환경보호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이 우선시되는게 아닌가 싶다. 후손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해보아야 할 시기인 것 같은데, 언제까지 경제발전만을 이유로 이렇게 계속 할지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걷는, 지나가는 길들의 유래를 알고 보니 좀 더 자세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길도 점차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길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동양에서의 길은 사람이 지나가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움이 특성이었다는데 그러한 길의 의미도 이제 많이 퇴색되고 계획화된 길들만이 남아 더욱 더 세상을 삭막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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