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책이 항상 쌓여 있지만 수시로 신간 검색을 하게 되는데, 딱 내 레이더에 걸린 책이었다. 가지고 싶은 책으로 포스팅을 해 두었는데 서평단 책으로 올라왔으니 얼마나 반가웠을 지는 두 번 말할 필요도 없고 도전!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아담한 사이즈에 스테인드 글라스 느낌이 나는 표지의 양장인 책은 자꾸 자꾸 책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사진으로 보고 실제로 만났는데 외모는 일단 준수하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성품을 알아볼 차례다.
이십 년간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시류에 영향 받는 견해들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의 본연성을 탐구하는 경이와 감동이 있기 때문에 17세기 이전에 쓰인 고전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어느 날 신호등을 기다리다 불현듯 상황별 맞춤 책을 제안해보자는 깨우침을 얻었다. 불면증으로 힘드신가요? 폭설로 고립되었다구요? 그럼,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것은 어때요? 약은 약사에게 책은 이수은 작가에게. 이수은의 독서 테라피다. 총 5부로 나뉘어져 있고, 22개의 상황에서 56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필망의 연애법- 사랑할 때 하면 안 되는 53가지 행동. 이런 제목의 책을 써 볼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53번째로 남자에게 차인 후였다. 참 꾸준히도 망해 왔구나. 이쯤 했으면 그만 끝낼 때가 됐어. 평생 혼자 고독사할 것을 내다보고 상조에 가입했다. 어언 십수 년 전의 일이다. 상조회비 납입 만기는 아직 몇 년 남았는데. 그래도 이제 장례 걱정은 덜 하고 산다. - p 126
너무 너무 울적한 상태였는데 이 문장을 읽고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남자에게 차이고 상조에 가입한 사람이 이수은 작가말고 또 있을까? 그런 저자가 처방한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베르테르는 집착성 환자로 분명 정상은 아닌듯 보였다. 저자는 그럼에도 맨 정신으로는 제 아무리 냉소할 지언정 막상 사랑에 빠지고 나면 누구라도 예외없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소설이 되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말했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서는 사랑은 자신의 삶이 누군가와 촘촘히 이어지는 상태를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두 작품 모두 읽어본 적이 없지만 저자의 말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같다.
싸우러 가기 전에 읽어 둘 책이란 제목을 보고는 이 파트를 읽고 병원에 갔어야했는데라고 생각했다. 교통사고로 움직이기 힘든 엄마 대신 약을 타러가서 만난 의사는 환자 분 몸은 어떠시냐라고 묻지도 않고, 이렇게 오지도 않고 검사도 제대로 받지 않을거면 개인 병원에나 가라며 반말을 내뱉았다. 치료가 가능할까요? 라고 묻는 말에 내가 의산데 니가 그런 질문을 나에게 왜하느냐 철이 있냐 없냐하면서 화를 냈다. 황당해서 나왔는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제대로 대꾸하지도 못하고 나온 나에게 너무 너무 화가 났다.
'싸우러 가기 전에 읽어 둘 책'이라는 제목에 혹해 여기까지 오셨다면 ,이제 아셨을 거다. 싸우기 위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거나 심지어 책을 읽어야 할 정도라면 해 보나 마나다. 싸움에 능한 사람은 맞으면 바로 때린다. 공격 당한 즉시 역공하거나 맞기도 전에 먼저 때린다. 싸움은 반응 속도다. 빠르면 맞짱이지만 느리면 뒷북이 된다.-p 142
난 뒷북만 쳤다. 사회화된 인간이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는 본능을 제어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고 나의 도덕적 본성을 외면하고 사회성을 해체해야한다는데, 나는 그러기엔 너무나 사회화된 인간이었다.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 <소크라테스의 변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 권의 책을 다루고 있었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의 살인범은 완전 범죄를 위해 자살까지 한다.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할지 결정을 해야한다고 한다. 하지만,때론 이기고 지고 떠나서 싸웠다는 것만으로 마음이홀가분해지는 일도 드물지만 있다는 말에 어느 순간 내가 사회화된 인간성을 누르고 할 말을 다 내뱉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책 읽기의 본질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독 '경청'이라는 말에 시선이 갔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했던 많은 책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지하게 만나고 싶은 책들이 생겼다. 처칠의 <폭풍의 한가운데> (당신에게 필요한 용기가 국가를 구해야 할 만큼 거대한 도전은 아닐지라도, 삶의 험한 파도에 맨몸을 던져야 할 때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큰 격려가 되어 줄 것이다. -p 59),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 (지금 가고 있는 길에 회의가 밀려올 때, 그런데 다른 어느 방향을 택해야 할 지 알 수 없을 때, 큰 결단이 찾아올 때까지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서.-p 87),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 댕땡하게 부어오른 마음속 화농을 가라앉혀 주는 고약 같은 책, 미세먼지 자욱한 삶에 공기 청정기 같은 책-p 194) 등. 그 책들에 귀를 기울이면 내 마음 속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이런 심리적인 처방도 좋았지만, 어렵다고 생각했던 책들에 도전하고싶은 마음도 들었고, 읽었던 책들에 대해 다른 관점을 보면서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되어서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었다.
책은 개인의 성향, 상황에 따라 다르기에 정확한 처방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교집합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마음이 울적 할 때,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을 때 나는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를 꺼내 들것이다. 곳곳에서 유쾌한 글들로 웃음을 주시고, 내 마음을 달래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외모만큼 성품도 좋은 것으로......
YES 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