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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이슬람의 문제는 어쩌면 이 시대 최고의 공안이다 | 명암(사회,경제,미래) 2022-03-3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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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슬람과 유럽 문명의 종말

유해석 저
실레북스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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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 이슬람의 폐해나 유럽의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본서는 그 시절에 제가 가진 많은 의문, 생각들과 비슷한 논조로 유럽과 이슬람의 문제에 주목하는 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읽고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깊이 듭니다.

 

본서를 아직 다 읽기 전입니다. 전체 6부의 내용 중 4부까지를 읽었습니다. 책을 완독하기 전에 리뷰부터 작성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인상 깊은 자료들, 저자의 인용문장인 정보들을 기록해 두려 리뷰를 작성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인용하고 싶은 자료들과 정보들이 너무 너무 많다보니 어찌 리뷰에 옮길지 엄두가 나지 않네요.

 

그래서 4부까지의 저자의 논리와 주장을 따라가다가 핵심 안건이다 싶은 몇몇 문장만을 인용하려 합니다. 요즘 들어 긴 문장은 도통 써내려가거나 인용할 엄두를 못내겠습니다. 일종의 번아웃 상태인가 싶기도 합니다.^^;

 

1부 유럽의 이슬람 인구 성장 배경
1. 유럽과 문명의 충돌
2. 유럽의 노동력 부족
3. 유럽의 저출산
4. 유럽의 고령화 사회

2부 유럽 이슬람의 성장 원인
1. 무슬림의 이민
2. 무슬림들의 다산
3. 무슬림의 결혼 제도
4. 현지인들의 무슬림으로의 개종
5. 무슬림 난민들

3부 서유럽과 북유럽의 이슬람
1. 영국의 이슬람
2. 프랑스의 이슬람
3. 독일의 이슬람
4. 네덜란드의 이슬람
5. 스웨덴의 이슬람
6. 노르웨이의 이슬람
7. 덴마크의 이슬람

4부 유럽의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의 배경
1. 무슬림에 의한 테러
2. 무슬림에 의한 성폭력
3. 폭력적인 범죄
4. 마약의 만연

5부 유럽 이슬람 인구 증가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


6부 다문화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정부의 역할
 

제가 읽은 4부까지의 소제목들은 리뷰에서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되게 복붙했습니다.

 

본서는 이슬람의 폐해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 주제는 유럽에서 야기되는 이슬람과의 충돌입니다. 유럽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오랜 숙적이었다가 근래 들어 그 관계가 완화되기는 했습니다만 이제는 다른 세기의 다른 문제들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저 문화 차이만이 있겠지 또는 언젠가 유럽 문화에 귀속될 한시적인 소요일뿐이겠지라고 우습게 여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성찰하게 만드는 저작이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본서의 1부의 주제와 소제목들을 봐도 유럽에서 이슬람 인구가 유입된 것은 유럽의 고령화 문제와 저출산, 그리고 그로 인해 야기되는 노동인구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노동인구의 유입과 이민으로 유럽 각국은 노동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의 무슬림들을 받아들인 이후 이들 문명의 다산문화와 본국에서 결혼할 사람을 데려오는 문화, 그 가족들과의 결합을 위해 2차 3차 이민이 진행되었고 유럽에서의 무슬림들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기존의 유럽 각국 원거주민들의 문화와 전통이 유지하기에도 벅찬 1차적인 문제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기존의 유럽의 법을 무시하고 무슬림의 법률인 샤리아를 근거해, 기존 유럽 각국의 법의 울타리가 해체됨을 유럽인들은 경험해야 했습니다.

 

종교가 그저 신앙의 대상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지켜야 할 불문률인 무슬림들에게는 유럽은 자기들의 종교와 제도로 변모시켜야 하는 대상이기만 했습니다. 기존의 기독교나 불교에서는 융화의 여지가 있고 화합을 도모할 틈이라는 것이 존재했지만 이슬람은 생활의 하나하나까지를 장악하고 있는 종교 아닌 제도이자 율법입니다. 무슬림 여성은 타종교를 믿는 이와 결혼할 수 없으나 무슬림 남성은 종교와 인종에 관계 없이 어느 여성과도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피임을 영적 타락이나 훼손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구 증가는 타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유럽 각국마다 인구 증감율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본서에서 예를 드는 유럽 각국의 경우를 취합해 보면 무슬림의 출생율은 2.3명, 기독교인들의 출생율은 1.3명, 무신론자들의 출생율은 0.8명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유럽 원거주민들의 경우 결혼제도 자체를 점점 더 거부하는 추세다 보니 이러한 출생율 문제는 앞으로 보다 큰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기도 합니다. 

 

: 예를 들어서 어떤 사회가 1.8명의 총 출산 인구를 유지한다면 한 세기가 끝난 무렵 인구는 80%만 남게 된다. 1.3명의 총 출산율을 유지하는 사회(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그리고 발트해 국가들)는 4분의 1의 인구만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 

 

(여기서 출산율이 0.8명인 한국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본서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유럽의 문제만을 보자해도 인구문제에 있어 유럽 원거주민과 무슬림들의 심각한 인구 역전 현상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 통계에 의하면 독일 여성의 24~30%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밝혔다. :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에서 가장 출생율이 높은 나라인 프랑스의 경우 총 출생율이 1.8명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수치는 출생율이 매우 낮은 프랑스 원거주민 여성과 출생율이 매우 높은 이민자 여성을 합한 수치라고 하는군요.

 

인구문제는 점차 무슬림이 유럽인구의 다수를 차지해 유럽이 서부의 이슬람이 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고 유럽 지식인들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민 문제도 유럽의 이슬람화를 가속시키고 있는데 '2017년까지 독일에 약 141만 명, 프랑스에 40만 명, 이탈리아에 35만 명, 스웨덴에 33만 명, 오스트리아에 17만 명의 난민들이 정착하였다.' 고 합니다. 

 

: 퓨 리서치에 따르면 유럽 내 불법 이민자는 2014년 300~370만 명, 2015년 330~490만 명, 2016년 410~530만 명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

 

유럽 각국에서 수용하는 합법적인 이민자들을 제외하고도 불법 이민자들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난민 인정을 못받을 불법 체류자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 불법 체류자의 70%는 독일과 영국 이민자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독일에 사는 불법 체류자는 2017년 기준 100~120만 명으로 유럽 국가 중 1위를 차지 하였다. 영국에는 80~120만 명의 불법 체류자가 있다. :

 

이러한 난민 문제 불법 체류자 문제에 있어 같은 이슬람의 부호 국가들은 도대체 왜 손을 놓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오만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 국가들은 단 한 명의 시리아 난민도 받지 않았다. :

 

2015년 9월 경 3살된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터키 해변에 밀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럽의 많은 국민들이 이 난민 아기에게 가련함을 느꼈고 유럽이 다시 난민문제에 관대해 지는 계기가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쿠웨이트 공무원 파하드 알 살라미가 '프랑스 24시'와의 인터뷰에서 걸프 국가들이 시리아 난민의 망명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하는 데 아주 가관입니다. '쿠웨이트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의 물가가 비싸서 근로자들에게는 적합하지만 난민들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는군요. 

 

: 2015년 위기의 절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살만 국왕은 단 한명의 난민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대신 독일에 새로운 이민자를 위하여 새로운 모스크를 지어주겠다고 제안하였다. :

 

어떤 사람들은 꾸란의 예외적인 단 몇 구절만을 들어 이슬람이 관용적이고 연민어린 종교이자 문화라고 호도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런 일화들을 알게 되니, 자신들 문명권의 재난에도 그것을 공감하고 함께 감당하기 보다 타 문명에 짐을 전가 시키는 놀랄울 정도로 이기적이고 약삭빠른 문화가 이슬람의 본모습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만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우크라 사태에 39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 난민들을 걸프국들에게 수용해 달라고 했다면 그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어쨋건 이렇게 유입된 무슬림들이 유럽에 잘 동화하고 화합하였다면 이슬람과 유럽 문명의 종말을 이야기 하는 이런 저작 자체가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입된 난민들의 문제는 폭력과 테러와 성폭력으로 유럽 각국의 치안 체계마저 동요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안들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너무도 세세하고 방대해서 저는 도무지 인용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2014년 2015년의 기록은 등장하지 않는 것도 있던데 그런데도 이렇게나 방대한 범죄 기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각국에서 무슬림들로 인한 유럽 원거주민 여성들에 대한 강간 사례가 늘고 있으며 적반하장 격으로 무슬림 남성이 너무 많다는 발언에 마저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 각국의 각 지역 도시와 소도시마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곳은 여성들의 차림이 범죄를 불러온다며 여성의 옷차림을 단속하고 혼자다니지 말라는 것이 그곳 경찰들의 범죄에 대한 대응이라고 합니다. 강간범이 무슬림이라는 통계를 내놓거나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인종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맹폭격을 해대기 때문에 사회에서 강간과 무슬림을 연결한 발언 자체를 할 수 없다고 하네요. 

 

그 중 스웨덴이 서구 사회에서 가장 강간 범죄율이 높은 지역인데 스웨덴 범죄 예방 담당국 BRA은 2012년 여름 한달 만에 총 1,091건의 강간 사건이 보고되었다고 팔표 했으며 15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하는 강간 범죄는 같은 기간 53% 급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스웨덴의 강간 범죄율은 2017년이 되면서 10% 더 늘었다고 합니다.

 

유럽의 타 지역들도 이런 추세가 하루가 갈수록 더 높아간다고 하는군요. 강간 범죄는 무슬림들이 일으키는 것이 거의 전부이고 발생빈도는 이민자들과 이민 2세 3세가 주로 거주하는 지역들에서 나타나는데도 이런 사안을 언급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기에 전혀 공론화하지도 사적으로도 언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왜 여성들을 강간했느냐는 질문을 하자 이들은 거리낌없이 무슬림 여성이 아니라서 강간했다고 답변했다는데도 말입니다.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각 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 자체를 막는다는 게 옳은 일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인종차별이라는 프레임으로 문화의 차이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인식과 문제 해결의 여지를 거세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접근인 것일까요?

 

각종 테러와 마약 등의 중범죄에 무슬림들이 연루되는 것은 그들이 연루되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범죄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각 지역에서 인구의 몇 %밖에 차지 하지 않으면서 유럽 각국마다 전체 감옥 수감자의 50~70%를 차지 하거나(프랑스 감옥 수감자 중 무슬림은 약 50%를 차지하며, 특히 교외 감옥에는 무슬림 수감자가 80%에 육박하기도 한다는군요. 2002년에 한정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002년 이미 프랑스의 범죄율은 10만명당 4,244건으로 그 당시 이미 미국 범죄율을 능가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범죄는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전체 복지 비용의 40~60%를 소진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일간지 [질란트 포스텐]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에게 복지예산의 40%가 지출되며 코펜하겐의 모든 범죄의 70%를 무슬림이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유럽에서는 이런 문제제기만으로도 인종차별주의로 낙인 찍혀 오히려 맹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왜 이런 부조리가 만연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미 1960년대 부터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입되어 왔고 그들로 인한 사회문제가 차츰 문제시 되었을텐데 왜 급격한 난민 수용까지 하여 문제가 증폭되도록 관망했을까요? 이에 대해 서구의 연구자들은 이민자 수용은 노동력을 충원하여 유럽경제를 부양할 것이라며 장밋빛 해답을 제시하여 왔습니다. 고작 얼마후면 AI와 로봇기술로 인해 노동력 50%를 대체할 시기를 앞두고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현재입니다. 2015년에도 미래학자들은 이런 시대가 이렇게 조만간은 아니더라도 근미래에는 등장하리라 예측하였을텐데, 왜 난민수용이라는 과도한 무리수를 유럽 각국은 선택했을까요? 

 

저는 이것이 의도된 한 수라고 생각합니다. 난민 수용으로 인한 테러 위협과 치안 불안을 불러와 대중이 기꺼이 대중통제를 자발적으로 요구하도록 하려는 한 수였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불안과 위협 속에서 자발적인 통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사회는 그런 양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대중통제 시대에 대해 예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여러 지성들이 있지만 저로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해결안이라고 생각되는 제안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혁명이나 저항이라느니 소규모 집단 사회로의 회귀라는니 하는 해법들이 이 시대에는 적용되기 힘들 것 같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발전한 테크놀로지에 의지한 직접민주정치 시대로의 진입이라는 기대어린 해결안을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진정한 해답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초고속 결속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디스커넥트의 시대이기도 한 현재, 게다가 분열이 화두인 시대이기에 지금까지의 대안들과는 혁신적이면서 획기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적 시대를 풀어나갈 방법이 안보이기에 난감합니다. 

 

어쨋건 분명한 건 유럽이 실패하고 포기한 다문화라는 과제가 이제 한국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구감소를 불안해 하며 다문화를 부추기는 지금 이 시대는 오히려 인구가 간소해야 풀어나갈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량실업자의 시대에 인구란 것은 오히려 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인구는 결국 분열과 충돌을 극대화 하게 될 것입니다. 유럽을 보고 우리는 느끼고 대비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본서는 더더욱 일독은 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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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발표]『달라이라마의 마지막 수업』 | 선정 2022-03-3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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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마지막 수업

달라이라마 저/소피아 스트릴르베 편/임희근 역
다산초당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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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서로에게 이방인이다 | 인상(문학과 극문학) 2022-03-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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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방인

알베르 카뮈 저/이정서 역
새움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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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 1, 2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물론 다른 역자의 책이었지만. 지금까지 본서의 역자가 이야기하는 그런 번역상의 오류들이 있다는 것은 인식도 못했다. [이방인]은 내겐 그저 짧은 잔상 같은 이미지 몇 개로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 장례. 태양. 그날 이후 언젠가의 총격 살인. 오해 받는 재판정. 사형 판결 ... 이 몇가지 이미지가 내겐 [이방인]에 대한 인상의 전부였다. 딱히 그에 따른 감상이랄 것도 없었다. 단지 막연히 부조리한 판결이고 한 인간에 대한 깊이 없는 판단이었다는 해석이 당시의 내 감상의 전부였을 뿐이다. 막연히 뫼르소의 정서가 메말라 있었다고 느끼던 것과는 이번 독서로 다른 감상을 갖게 되었다.

 

청소년기의 감상과는 다르게 자칭 청년인 중년이 된 지금의 독서로는 뫼르소는 메마른 인간이었다 거나 뭔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었기에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과는 다른 감상이 일었다. 

 

[이방인]을 통해 사형을 판결 받은 것은 뫼르소만이 아니고 나 자신까지 였다. 세상의 많은 '나'가 이 소설을 읽으며 사형을 판결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방인은 결코 뫼르소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 많은 '나'들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과장된 생각을 품게 된다.

나는 반대로 모든 것이 단순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우리가 사형받는 이유는 '나'가 결국 타자에게 있어 미지의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방인이었다. 병자를 치료하며 사랑을 말하고 겉옷을 원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며 동행하라던 그가, 칼을 주러왔다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하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마다하지 않던 바로 그였다. 그는 대중에게 단정지을 수 없는, 정형화할 수 없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천국을 말하다가 종말의 시기를 말하면서 너희 세대 안에 그날이 닥칠 거라던 것도 그다. 어느 모로 보나 그 시대 사람들과 지도층들이 불안해 하기에는 충분했다.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과 어울리던 그였지만 정작 대중들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너희는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살리겠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대중은 망설이지 않고 도둑인 바라바를 선택했다. 예수의 모든 말과 행동은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것들이었다. 그는 미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나름 신중한 판단을 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있어 이방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방인들이 우리 시대에는 무수히 흩어져 있지 않나 싶다. 대중은 또 손쉽게 사형을 판결할 것이다.

 

어떻게 나는 사형 집행보다 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요컨대 그것만이 한 인간이 정말로 관심을 가져야 할 유일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우리는 사형 판결을 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늦게 그런 판결을 받는 사람들을 뫼르소가 느꼈듯, 특권을 지닌 것으로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들은 심각한 고문 휴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 ... 그런데 우리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러이러하다.'이네.

우리가 이곳에 끌고 온 사람 가운데 우리에게 끝까지 맞선 자는 아무도 없었네.

모두 깨끗이 치료되었네. ... ...

난 그들이 점점 약해져서 흐느끼며 바닥을 기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네.

그것은 고통이나 공포로 인해 흘린 게 아니라 진정으로 참회하며 흘린 눈물이었네.

심문이 끝났을 때 그들은 단지 인간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지"

 

[1984] 중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고문하며 한 이 말처럼 대중의 대다수는 끝내 깊은 고문 속에서 인간의 껍데기가 되어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에 사형 판결을 일찍이 받을 수밖에는 없다. 사형 판결을 받는 이들 역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수도 뫼르소도 진정 그들을 이해한 이들로 부터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사형을 판결하고 교화시키려는 어느 누구도 그들을 오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무엇보다 판결을 하고 교화를 하려는 어느 누구도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이 소송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전부 사실이면서 사실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뫼르소의 변호인에 변론 중에서

 

사람들은 사실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눈에 담기는 것은 오해 이상인 것이 없다. 2+2가 5가 되는 현실에 익숙해져 버린 이들에게는 2+2는 5뿐만이 아니라 1도 2도 3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더이상 사실을 판별할 의지를 잃어간다. 그러니 자연히 자유는 구속도 억압도 되고마는 것이다. 서로가 이렇다는 것을 분별하고나면 누구나가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고 서로에게 사형을 판결하고야 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은 영원히 지속될수도 있다. [1984]에서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개인에게서도 사회에게서도 영원히...

 

"여기에서 자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간에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걸세"

 

나는 재판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싶지도 않고 어느 사제에게 교화의 대상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오해 아닌 이해를 받고자 애원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당당히 이방인이 될 것이다. 그런채 떠날 것이다. 세상에 머물더라도 세상을 떠나있고 싶다. 그러게 이방인임을 떳떳히 밝힐 것이다. 

 

뫼르소에게서 '나'를 찾은이들은 결국엔 자신이 이방인이었음을 언제나 자각하던 이들일 거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깨닫게 된 이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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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맛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 인상(문학과 극문학) 2022-03-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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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984

조지 오웰 저/정영수 역
더클래식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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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화 

자유는 구속

무지는 힘

 

디스토피아... 이 소설은 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앞서간 시대의 창조적 소설이다. 소설이 출간된 시대가 1949년이기에 조지 오웰이 바라본 미래 1984년은 우리에게는 이미 과거이다. 하지만 그가 전망한 시대가 과연 소설가의 공상에서 그치지만은 않다는 걸 느낄 수도 있는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몇 차례의 전쟁들을 거치며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1903.6.25.~ 1950.1.21)를 보면 그가 어떤 전쟁들을 거쳤을지 짐작 가능하다. 그가 목도한 시대를 이 시대에는 소설이나 영화로 즐기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 몰라도 조지 오웰 자신에게는 겪어내지 않고는 지나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굴레였을 것이다.

 

그러한 시대를 겪으면서 조지 오웰은 개인의 자유와 사상의 힘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체주의는 인간에게 부여된 천성을 제한하고 국가나 공동체의 부속물로 인간을 폄훼하는 제도로 인식했던 듯하다.

 

이 글 맨 위의 슬로건은 그가 그리고 있는 1984 속 오세아니아라는 국가의 대중적 구호로서 모든 것이 전도되어 있고 대중을 심리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소설 속 정부와 지배층의 속살을 도입부부터 엿보게 하는 매개이다. 이런 얼토당토 않은 구호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통제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소설 종반에 이르러서는 이것은 가능하고 남는 체제이구나 하는 갑갑함이 일고 만다. 

 

1984의 시대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3개의 대륙 국가로 나뉘어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오세아니아에 속한 정부 공무원으로 출판되거나 보도되는 모든 문장들을 검열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 시대에는 신어라고 해서 신조어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기존의 어휘들을 대대적으로 폐기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윈스턴은 신조어들도 다수 만들어내 그 시대의 창의성과 자기주도성을 완전히 억압받는 기조에서 나름의 자유를 영유하고 있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소설 중후반에서 그의 동료가 구속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딸이 잠든 자신이 반국가적 잠꼬대를 한 것을 고발해서 구속되었다며 자신의 딸을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개개인들의 깊은 세뇌가 일상이기도 한 시대이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전쟁과 구속과 세뇌와 함께 언제 폭격받을지 모르는 황폐한 시절을 그리고 있다.

 

그 상황에 윈스턴은 지식인다운 것인지 국가에 반하는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다가 형제단이라는 혁명단체에 끌리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결혼과 출산까지 강제하는 국가에서 원치도 않던 결혼을 하여 형식적인 결혼 생활을 했던 그는 아내와 사별 후인지 이혼 후인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혼자가 되어있다. 그는 줄리아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강간을 하고 죽일 마음을 먹었는데 어찌 줄리아는 그에게 반해 그와 내연의 사이가 된다. 국가는 결혼과 출산 뿐만이 아니라 섹스와 사랑까지도 통제하고 있기에 그들의 관계는 다만 몰래 하는 간통으로 간주되고 비밀리에 이어진다. 

 

반국가 단체 형제단에 매료되어 있던 윈스턴은 정부요인 오브라이언을 권력에서 밀려나 형제단에 가입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에게 접근하지만 그와의 대화를 받아주던 오브라이언은 알고 보니 언제나 정부의 핵심인물이었을 뿐이다. 

 

몰래 일탈이되던 줄리아와의 만남 중 윈스턴과 줄리아는 결국 구속되어 끌려간다. 여기까지가 시대 상황과 윈스턴의 내면을 탁월하게도 묘사한 장면들이다. 이후 구속되어 심문 받는 윈스턴과 취조한달까 사상교육이라는 세뇌를 한달까 하는 오브라이언과의 장면들이 이 소설의 백미이자 진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그들은 당신이 무엇이든 말하게 할 수 있어요. 뭐든지요.

하지만 믿게 할 수는 없어요. 당신의 마음속에까지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윈스턴과 줄리아의 밀회 장면에서 혹시라도 당에 발각되면 어떡하나 두려워 하는 윈스턴에게 줄리아가 하는 말이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소설의 대미에서 윈스턴의 말로末路는 너무도 설득력있으면서도 치밀하고 완숙한 소설가 조지 오웰의 이 소설에 깊은 침묵이 일게 할 정도다. 결국 오브라이언의 말대로 그는 '치료'된 것이다. '온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말이다. 끝내 '인간의 껍데기'가 되고 만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출간 1932년)와 조지 오웰의 '1984'는 자주 비교되며 지금의 시대는 1984와 유사하다 또는 멋진 신세계와 더 가깝다는 평들을 흔히 들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그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이 현시대가 아닌가 한다.

 

빅브라더와 텔레스크린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세계 도처가 감시역량이 완연하고 우리의 손이나 호주머니에서는 언제든 우리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아이폰이나 스마트폰이 우리를 옭죄고 있다. 간단한 해킹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발가벗겨질 수 있는 시대다. 더더군다나 아직은 미미한 저항이 있다고는 하지만 AI나 빅데이터를 통한 맞춤광고가 일반화된다면 우리의 기호마저도 노출될 수도 유도될 수도 있는 시대이다.

 

태어나면서 부터 세뇌되어 아무런 저항없이 정형화되어 살아가는 '멋진 신세계'적인 세계상도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이고, 감시되고 제어되며 강제 세뇌 당하는 '1984'적인 세계상도 우리의 일상 중 하나이다.

 

현시대의 교육제도는 각 가정의 개성있는 양육 환경을 단일한 교육으로 무력화 한 후 보편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 군상들을 대량 양산해내고 있으니 '멋진 신세계'적이랄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정치성향이나 사회생활에서의 정보들을 각기의 색깔을 지닌 해석으로 정제된 언론 매체를 통해 전달 받기에 '1984'적이랄 수 있다. '1984'적인데 자신이 흔쾌히 맞추어 따라가기에 '멋진 신세계'적이랄까. 

 

"니 편 내 편으로 분열적인 사회상이 그렇게 전체주의적인 것은 아니잖아!" 라고 보는 이에게는 해줄 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는 단지 백신 의무화 하나만으로도 이 세계가 얼마나 전체주의적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인간을 부속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접종 이후 반드시 몇 %는 부작용을 앓고 몇 %는 반드시 죽는 백신을 강제 접종하겠다는 판단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국민의 80% 이상이 접종하고도 거듭 확진자들이 나오고 사망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효용이 의심스러운 그것을 강제접종하겠다는 것은 일부가 죽거나 불구가 되더라도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전체주의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시대 상황이 말해주고 있다. 너희는 전체주의 세상에서 달콤하게 세뇌되어 쌉쌀하게 통제받으며 살아가다가 불맛을 보며 죽어갈 것이라고 말이다. 

 

이번 20대 대선의 결과는 윤석열 당선인의 당선으로 완만하게 결정났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당의 부정선거 증거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래서 5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걸고 유투브를 올리고 sns에 기록을 남기고 리트윗을 했다. 결과는 400명하고도 몇 십명의 사람들이 기소된 것이다. 기소 이후의 뉴스는 보지 못했으나 기소가 취하된다고 하더라도 증거들 마저 있는 사안들에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드는 현상황은 1984가 그리고 있는 시대 상황 보다 나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때 이미 당시 여당의 부정선거가 논란이 되었었다. 정권이 교체 되고는 총선을 부정선거로 물들였고 대선에서도 시도 하다가 탄로나자 국민을 난동자와 범죄자로 둔갑시키고 있다. 여야가 모두 돌아가며 부정선거 전적이 있기에 부정선거 사범은 사형인 한국법의 준엄함 앞에서 결코 여야 정치인 중 그 누구도 부정선거를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 현상황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대중은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있다. 설마 설마 하고 있다. 부정선거로 우리의 권리가 침해 당하고 있고 이번에도 침해 당할 뻔 했다. 그런데도 설마 설마 한다. 전세계가 백신 의무화를 강제하기 시작하고 있고 한국도 그러자는 후보가 단일화를 하더니 인수위에 앉아 있는데 이 역시 그러려니 설마 설마다. 모든 것이 온전히 세뇌 받아온 현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래 아직은 백신 의무화나 미접종자에 대한 규제가 드러나지 않으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헌데 백신 의무화 이후에도 대중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 이 나라 대중들에게는 답이 없는게 아닌가 한다. 아직은 깨어날 수 있을 여유가 있을 때다. 이 시기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다음이 있으리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달콤하고 쌉쌀한 게 싫다. 그리고 끝까지 불맛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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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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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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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을 넘어서 우주적 영성으로
달라이라마와 나누는 연민과 공감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화
“아흔 살, 나는 지금도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삶의 작별을 앞둔 달라이라마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위대한 꿈 이야기!

 

이 책에서 달라이라마는 지난 시대의 전쟁과 테러를 돌아보면서 이 비극들을 어떻게 희망으로 바꿀 것인지 차분한 음성으로 말한다. 반은 승려이자 반은 과학자인 달라이라마는 기존의 혁명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며, 최신 과학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연민이 우리의 뇌를 바꿀 수 있고 나아가 지금 젊은이들이 사는 동안에 가장 인간적이고 평화적인 연민 혁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파한다. 환경 파괴에 대응하는 기후 정의, 프랑스대혁명과 마르크스에 대한 아쉬움, 67명의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절반을 갖고 있는 기현상, 현대 물리학이 증명한 이타주의의 필연성,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남겨진 일들까지, 이 책은 달라이라마와 나누는 연민과 공감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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