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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행복 vs 내 행복 | 기본 카테고리 2021-07-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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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완전한 행복

정유정 저
은행나무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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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속으면 안 된다!

<완전한 행복>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에 행복한 이야기일거라고 예상했다간 큰코 다친다.

중반부를 넘길 때까지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재미가 없어서라기 보단 읽어나가는데 점점 기분이 나빠지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다 읽었지만 이런 느낌 정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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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를 읽으며 이건 소설이 아니다! 영화다!라며 얼마나 낄낄거렸는지 모른다. 그 후로 출간되는 책마다 사서 읽었다. 소설마다 갈수록 세지는 싸이코패스의 등장에도 기분 나쁘다는 생각보다는 궁금해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그 힘은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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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도 촘촘하게 엮여진 이야기 구조에 감탄하며 읽었다. 하지만 주인공 신유나에게 설득당하지는 못했다. <종의 기원>에서 유진으로 정점을 찍었기 때문일까. 이번 주인공은 유진에 비할 바 못된다. 물론 유나를 싸이코패스 최상위 포식자 유진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유나는 남편과 아이를 가스라이팅 하는 능력이 교묘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없애버릴 수 있다. <종의 기원>의 유진도 패륜적 행위를 했고 유나보다 훨씬 잔인함에도 유진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갔고 기분 나쁘단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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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나는 유나의 이야기에 언짢아지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유치원생이 언니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도 아이를 키워봤지만 애가 저럴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표정과 눈빛을 변검처럼 수시로 바꾸는 능력, 제 맘대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태도, 거기에 또 넘어가는 사람들! 타고난 미모도 한 몫을 했을 거다. 나는 유나가 싫어졌다. 보통은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유나에게는 감정이입은커녕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유나의 딸 지유가 너무 불쌍했다. 저 아이가 겪은 저 상처를 안고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깝깝했다. 딸에게 어마어마한 상처와 고통을 주는 이가 다름아닌 엄마 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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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에서 작가는 유진을 타고난 포식자로 상정해 두었기 때문에 인정하고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까지는 아니었지만, 나중에는 유진 엄마의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내용에도 설득이 되었다. 그럼 유나에게는 왜 그렇지 못했을까? 읽을수록 유나의 심리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유나의 1인칭 시점이 없었다. 모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묘사되는 유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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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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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은 화자가 아니다. 단 한 번도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에 지퍼를 채워 커튼 뒤에 세워둔 셈이다. 이야기의 목적을 위한 선택이었다.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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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의도를 읽고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한 사람이 그와 연결된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유나같은 캐릭터는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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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행복을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고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한다는 말은 일리있어 보이지만 유나에겐 그 요소들이 사람이라는 게 놀라운 지점이다. 제 행복을 위해 거슬리는 사람은 없애버리는 태도에 설득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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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건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 설명해 내는 일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유나를 잘 안다고 자부해왔으나, 막상 까보니 착각이었다. 안다고 여겼던 건 유나가 아니었다. 유나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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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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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 언니 재인의 생각이다. 타인의 행동의 의미를 설명해 내야 비로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타인의 행동을 눈에 보이는 대로 서술할 수는 있겠으나 그 의미를 설명하긴 힘들다. 결국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말이다. 왜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며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자신의 삶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 속에는 누군가와 함께 행복하고 싶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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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의 마지막 문장, 자신이 행복할 권리 못지않게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 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며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옆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내 발밑에 깔고 그 위에 서서 내 행복을 부르짖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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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를 논박하다! | 기본 카테고리 2021-07-2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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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굿 이너프

다니엘 S. 밀로 저/이충호 역
다산사이언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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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하면 다윈! 다윈이 쓴 종의 기원, 갈라파고스 제도? 이런 순서로 연상작용이 일어난다면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덕분? 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과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를 상식이라 여길 것이다. 나도 비슷한 수준이지만 진화생물학과 관련된 미디어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산북스의 신간 <굿 이너프>의 소개 문구,

“적자생존의 허점 고발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해석한 문제작!”

그리고 부제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을 읽는 순간, ‘어머 이건 꼭 읽어야 해!’ 하며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 ‘다니엘 S. 밀로’의 긴 머리말을 읽으면서 책 전체를 요약해주는 친절함, 다윈의 이론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오랜만에 과학서적을 재미있게 읽겠구나 싶었다.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 “우리 모두가 이만하면 충분히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굳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에서는 궁디팡팡의 효과까지~~

 

 

1부 진화의 아이콘 에서 <종의 기원>을 토대로 다윈의 이론에 반론을 제시한다. 2부 굿 이너프 이론 은 저자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고, 3부 우리의 승리와 그 부작용 에서는 굿 이너프 이론을 호모 사피엔스에 적용해 인간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이 책은 과학, 진화생물학 관련 전공자라면 전문적 배경지식이 있으므로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어렵게 느낄 수 있겠으나 전공서적이 아니라 대중서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저자가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1부를 읽으며 든 생각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직접 읽지 않았어도 저자가 다윈을 반론하기 위해 인용한 내용들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윈의 이론에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자의 반론에 재반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 정도라면 전공자인가?ㅎㅎ

 

포문을 여는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린에 대한 것이다. 생물시간에 배운 내용으로는 기린의 목이 원래 저렇게 길지 않았는데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이나 열매를 먹으려고 목을 자꾸 늘리다보니 길어졌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레마르크와 다윈의 이론으로 배웠는데 아니란다! 그럼 새로운 이론이라도 출현한 건가? 그건 아니고 여러 학자들의 반박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기린은 주로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의 풀을 뜯어먹으며, 높은 목으로 혈액을 펌프질해야 하기 때문에 혈압이 높아 위험하고, 목 길이가 긴 수컷이 짝짓기에 유리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다윈의 가축화의 오류(내용 이해가 쉽진 않았다)를 짚다가 자신의 굿 이너프 이론과 슬쩍 연결한다.

 

p.104

인위 선택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더 좋은 것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좋은 것에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것으로 양성적이고 방향성이 있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움직임을 촉진하는 반면, 자연은 더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 심지어 좋거나 나쁜 것에 무신경하다. 자연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이 살아남아 번식을 할 만큼 충분히 훌륭하기만 하면 된다.

 

※ 여기서 잠깐! 역자의 굿 이너프 이론에 대한 설명(p.26)을 발췌한다. - 굿 이너프 이론 (good enough)은 직역하면 ‘충분히 훌륭한’이지만 적자가 아닌 평범한 생물도 살아남고 번성하기에 충분히 훌륭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적자생존 이론과 상대되는 의미여서 ‘범자(凡者)생존이론’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지만, 적절한 용어는 학계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하고 이 책에서는 굿 이너프 이론으로 부르기로 한다.

 

 

1부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한정된 이론을 다윈이 너무 일반화시켰다는 것이다.

p.122

갈라파고스 제도는 자연선택을 연구하는 데에는 흥미로운 자연 실험실이긴 하지만, 지구 전체를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의 상상력에 불꽃을 일으켰고, 마땅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그 불꽃을 계속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그 섬들과 다윈이 방문한 다른 곳에서 나온 상반된 증거뿐만 아니라, 그 섬들의 특이한 성격-기후와 지형과 격리-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가축화 유추 때문에 측면 시야 가리개를 너무 단단히 쓴 나머지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태계에서 자연 선택이 자연계 도처에서 적자를 낳는다고 확인해주는 증거를 보았다. 그 결과는 다소 이상한데도, 이 전설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설은 대개 기이한 것을 강조하는데, 갈라파고스 제도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즉 이 섬들만이 지닌 독특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 전설은 갈라파고스 제도를 평범한 섬들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섬들에서 일어난 자연의 놀라운 작용이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저자는 갈라파고스의 동물들 사례를 하나하나 예로 들면서 반박하고, 다윈도 스스로의 허점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p.151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주의가 보편적으로 옳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물 제 1호로 간주돼왔지만, 섬의 동물상은 실제로는 다른 원리가 옳음을 보여준다. 그 원리는 바로 생물학은 상대 빈도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모든 변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법칙은 없다.

 

 

2부 굿 이너프 이론 내용은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전체 내용 중 가독성이 가장 떨어졌다. 자신의 이론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에 실험 결과를 많이 인용했지만 쉽게 이해되진 않았다. 압축적 내용이 있어서 발췌한다.

p.254

다윈주의는 수직적이고 대부분 질적인 진화를 설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윈주의의 주 개념은 적응이다. 굿 이너프 이론은 다윈주의가 누락한 것을 설명함으로써 다윈주의를 보완한다. 그것은 수평적이고 대부분 양적인 진화로, 종내 다양성과 선택적으로 중성인 종간 차이를 낳는다. 다윈주의가 자연사에서 기묘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반면, 굿 이너프 이론은 종의 일상적인 존재, 특히 공존한 표본들에서 두루 관찰되는 변이의 첨가를 설명한다. 굿 이너프 이론의 주 개념은 중성이다.

 

 

3부는 동물에서 인류로 넘어온다. 사람 얘기라 더 잘 읽혔다. 인류 이동의 추동에 대한 가설들은 흥미로웠다. 아프리카 탈출 이유를 연구한 과학자들이 찾아낸 유전자는 DRD4-7R이라고 한다. 되게 거창해 보이지만 일명 ‘역마살 유전자’!ㅎㅎ

 

 

부성이 인류 생존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얼마 전 팟캐스트에서 진화생물학 교수님의 사례로 든 실험이야기가 생각났다. 젊은 여성들에게 남성 사진 몇 장을 보여주고 가장 호감이 가는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대부분 아기를 어르는 남성 사진을 골랐다고 한다. 잘 생긴 남자를 고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옛날부터 부성을 표현하는 남성이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인류존속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말!

 

 

아기 운반도구(우리나라의 경우 포대기) 덕분에 자신과 아기를 보호하고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은 포대기가 여러 기능을 했다는 것이다. 침팬지같은 영장류는 새끼가 자석처럼 어미등이나 배쪽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어미가 손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데 인간 아기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포대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굿 이너프 이론에 대한 설명이 3부가 더 쉬웠고 주요 문장을 옮긴다.

 

“자연은 매우 관대하지만, 사회는 그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자연은 ‘혁신하면 죽는다’라고 경고하는 반면, 인류는 ‘혁신하지 않으면 (따분함으로) 죽는다.”

“우리는 생존하고 생식하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없다.”

“인류는 언제나처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때문에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저자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과감히 거부하면서 평범한 생물도 살아남았고 번성하고 있다면서, 충분히 훌륭하다고 했다. 이 책이 다윈의 이론에 대한 논박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정글로 비유되는 사회에서 1등을 강요받고, 정해진 기준안에 들지 못하면 루저 취급받는 이들에게 ‘평범해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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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와 열대의 교집합 찾기! | 기본 카테고리 2021-07-2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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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열대

모리미 도미히코 저/권영주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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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페르시아에 샤흐리야르라는 왕이 있었다. 어떤 계기로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왕은 지독한 여성 불신에 빠져 매일 밤 처녀 한 명을 데려오게 하고는 순결을 빼앗고 이튿날 아침 목을 벤다. 그런 끔찍한 소행을 보다 못해 나선 사람이 대신의 딸 셰에라자드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진하여 왕을 침소에서 모시며 기이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셰에라자드는 날이 밝으면 이야기를 중간에 멈추기 때문에 뒷이야기가 궁금한 왕은 그녀의 목을 벨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셰에라자드는 매일 밤 목숨을 부지하며 자신과 백성을 구하려 한다.

 

위 내용이 <천일야화>의 줄거리라는 것을 대부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천일야화를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분명 책으로 나와 있음에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으며 어디선가 들은 내용으로, 혹은 어릴 적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으로 본 기억으로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열대>를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아는 <천일야화>는 TV 애니메이션 <신밧드의 모험>을 본 게 다라는 걸!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안나이트>, <신드바드>, <알라딘>, <알리바바>는 모두 <천일야화>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이후 <천일야화>가 서양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들어간 이야기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천일야화>의 내용은 저런 태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흡수해 확장된 것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모두 <열대>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천일야화>에 대해 모두에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열대>가 <천일야화>를 모티브로 했으며 책 속에서 계속 언급되기 때문이다.

 

<열대>가 시작될 때 등장하는 소설가의 이름을 실제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 그대로 써서 이것이 소설인가 아닌가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미 여기서부터 독자는 낚인거다. 모리미는 대학 4학년 때 ‘사야마 쇼이치’가 쓴 <열대>라는 기이한 소설을 읽게 되는데 다 읽지 못한 채 분실한 것으로 내용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그 책을 찾으려고 수소문 했지만 16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다가 ‘침묵 독서회’라는 모임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열대>를 만나게 된다.

 

침묵 독서회에서 시라이시라는 여성이 그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액자 구성의 끝판왕을 시작된다. <천일야화>의 액자구성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열면 또 다른 인형이 나타나듯 <열대>도 그렇다고? 아니다! 몇 배는 더 심하다. 거의 양파 수준이다. 까도까도 계속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인내심이 약한 독자라면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대체 결말이 뭔데? 소설 속 소설 <열대>를 읽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하고 게다가 아무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는데 내가 들고 있는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끝나는 건데? 라며 궁금해 하는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책 맨 뒤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랬다.

 

그런데 맨 뒷장, 그 앞장, 몇 장 더 앞장을 읽어봐도 모르겠는 거다. 그러니까 소설 속 소설<열대>의 결말도 알 수 없었고, ‘나’로 등장하는 이가 맨 처음에 나온 소설가 모리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거였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530페이지를 다 읽어야만 알 수가 있다는거...

 

사전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므로 힘들었지만 끝까지 다 읽어야 했다. 해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앞부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 쳐놓았다. 그 부분들만 다시 훑었다. 그렇게 해두지 않고 여느 소설처럼 줄줄줄 읽기만 했다면 다 읽고도 내용 이해 어려울 뻔 했다. 그만큼 작가가 수수께끼처럼 숨겨놓았다.

침묵 독서회와 학파 소속 사람들의 이름과 소설 속 소설 <열대>와 연관된 사연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거의 도표를 그려야 할 정도다. 작가 모리미는 <천일야화>와 이 소설을 섞고, 소설 속 소설 <열대>와 등장인물들의 사연까지 샌드위치처럼 집어넣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거기다 제각각 <열대>에 대한 다른 가설들을 주장하고 있어 그것까지 따라가려면 벅차다. 나는 이 사람이 독자들 약 올리려고 아니, 괴롭히려고 이러는 건가 싶었다.

 

이 소설 속에는 소설과 이야기와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문장들이 많다. 그 문장들에 꽂히면 독자는 잠시 머물게 된다. 줄거리 파악은 잠시 접어두고 자신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p.47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 장강명 작가가 어떤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들이 소설나부랭이나 읽으니 세상이 이 모양이라며 호통치던 에피소드! 황당했던 장작가는 소설이야말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동의한다. 문학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상당하다. 상상력과 어휘력은 물론이고 공감능력의 차이가 제일 크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타인이 겪는 심정을 책으로나마 간접 경험할 때 다른 사람을 이해까지는 못해도 공감할 수는 있다.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소통하며 어울려 사는 건 어려울 것이다.

 

p.136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야기는 계속 된다.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과제 같은 것들이 있다. 하나를 끝내면 다른 하나가 기다리고 있고, 큰 중요한 일이 지나가면 더 이상 다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또 새로운 게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그게 인생이다.

친정 아버지는 팔순이 다 되어가는데 지난 달에야 생업을 접으셨다. 평생 여러 가지 직업을 이어오셨고 마지막으로 하신 가게는 20년 넘게 하신 일이었다. 몇 년 전부터 그만하시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이어오시더니 코로나로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더 이상은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그저께 우리 집에 오셨다가 발열과 구토증상이 있어 깜짝 놀랐다. 코로나 감염인가 싶어 검사받았는데 음성으로 나왔고 피검사 상 염증수치가 너무 높다며 각종 검사를 했다. 조실부모 후 평생을 맨몸으로 일만 하며 살아오신 아버지가 이젠 좀 편히 쉬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생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인생이라 부른다지만 제발 비극만은 아니면 좋겠다.

 

p.157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리하지 않으면 너는 원치 않는 것을 듣게 되리라.

☞ 위 두 문장은 <천일야화>에도 나온다고 한다. <열대>에도 몇 번이나 인용되는데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남의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래서 영화 <올드보이>가 떠올랐다. 오대수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15년간 감금당한다. 감금으로 끝난 게 아니라 급기야 원치 않는 말, 천형같은 말을 듣기에 이르지 않나...

 

p.434 존재하지 않으면 만들어 내면 돼.

p.436 창조한다는 건 지배한다는 뜻이다.

☞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사람, 작가가 지배자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작가 모리미의 스웩이 들어있는 문장으로 읽혔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긴 했지만 사실 <천일야화>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주 어릴 때 애니메이션으로 본 경험과 여기저기서 짜깁기 형식으로 주워들은 것들로 <천일야화>를 읽었다고 착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아랍어 직역은 없고 ‘앙투안 갈랑’이 불어로 번역한 것을 임호경씨가 한국어로 번역한 게 있다.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6권짜리 세트이다.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 덕분에 제대로 된 <천일야화>를 읽어보게 됐다. 조금 미안하긴 한데 <열대>에서 <천일야화>를 사용했기 때문이니 작가 본인도 뿌듯할 것 같다.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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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죽이러 간드아!!! | 기본 카테고리 2021-07-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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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명소녀 투쟁기

현호정 저
사계절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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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지리 작가의 팬이다. 그의 소설 전권을 다 읽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지 못한다. 31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박지리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없다는 건 아쉬움보다는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꾸준히 소설을 내는 다른 작가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기대에 차서 읽은 다른 소설가들의 신간이 실망감을 안겨줄 때마다 박지리라는 별은 내 손에 잡을 수 없기에 더욱 반짝이는 거라며 자위했다.

 

 

작년에 사계절출판사에서 박지리 문학상을 공모한다는 기사를 박지리의 뒤를 잇는 작가 탄생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215편의 응모작 중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가 대상으로 뽑혔다. 제목을 본 순간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 했다. 요절한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의 첫회 수상작의 제목에 ‘단명’이란 단어가 들어가다니! 출판사에서 사전 서평단을 뽑는다기에 주저없이 아니!! 득달같이 신청했다. 다행이 뽑혀서 이북으로 먼저 읽었고 며칠전 종이책과 마우스패드도 받았다.

 

표지가 아주 강렬했다. 주인공 수정은 당돌하고 용감한 소녀이지만 그 얼굴을 연상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림엔 아주 젬병이라 그렇기도 있지만 저렇게 당당한 소녀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옳다구나! 싶었다. 그래, 저런 수정이니까 스무살 전에 죽을 거라는 점쟁이 말에 “싫다면요?” 라고 맞받아쳤겠지.

 

 

그렇다! 제목처럼 단명소녀는 수정이고 단명의 예언을 거부하며 자신의 죽음을 죽이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투쟁기가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두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 이것은 환상동화인가? 아니면 퀘스트를 깨고 레벨업 해나가는 어떤 게임의 텍스트판인가? 게임 종류라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로선 무슨 게임과 유사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말과 출판사 리뷰를 보니 이 소설의 모티브가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이라는 설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명의 예언을 들은 소년이 99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소녀로 바꾸고 설화 속 소년과 달리 스스로 자신의 명을 쟁취하는 것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상황들이 황당무계해 보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예컨대 백설기를 끓여 죽을 만들어 노인 7명을 먹이는 상황, 흰 죽이 끓는 솥 바닥에서 얼룩처럼 잠겼다 떠올랐다 하는 것이 조각배 같았는데 어느새 그 조각배에 수정과 이안이 타고 있는 장면, 헌데 그 죽은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다! 한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이런 상화들은 장면마다 연출된다. 즉 수정과 이안이 진입하는 퀘스트마다 발생한다.

 

이안은 누구인가? 점쟁이 북두가 수정에게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면 죽음을 맞닥뜨릴 시간을 벌수 있다고 해서 혼자 출발한다. 그 출발점이 G시의 지하철역이다. 역을 빠져나오면서 ‘내일’이라는 이름의 개를 만나고 연이어 이안과도 조우하게 된다. 이안은 수정과는 반대로 죽고싶어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며 수정과 같은 나이인 열아홉이었다.

 

 

- 혹시 살러가요?

- 네?

- 살고 싶어서, 남쪽으로 도망가고 있는 거냐고요.

수정은 이안의 물음을 곰곰이 되새겼다. 체하지 않기 위해 떡을 꼭꼭 씹듯 마음으로 잘근잘근 내씹었다. 그러자 단물이 입안에 퍼지듯이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사는 건 죽는 것보다 낫다. 용기 있는 건 쟤가 아니라 나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러나 그런 생각을 끝도 없이 주워 담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살고 싶냐는 저 애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느니 그냥 죽는 게 낫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수정은 딱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 딱히 살고 싶다기보다는,

- 네,

- 죽고 싶지가 않아서요.

- 네.

- 싫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좀 억울하다고 해야 할까, 이해를 못 했다고 해야 할까.

 

p.28~29

 

 

분명 정반대의 목적으로 길을 떠난 둘인데 함께 한 여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들이 겪는 상황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래서 게임을 글로 풀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그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몸을 움직이고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느낀다. 거짓임을 분명 알면서도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게임이고 레벨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이다. 테트리스나 같은 그림 맞추기 정도밖에 해 보지 않은 나로서도 수정과 이안의 최종단계는 어떻게 될지 기대되었다.

 

 

마지막 저승의 신과의 결전에서, 수정이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라고 하자 저승의 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잔해를 떠안고 살아가. 고약한 피 냄새에, 무질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

 

수정은 이렇게 응수한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

 

이어 쫓아오는 그동안 처리했던 모든 것들이 수정과 이안에게 달려들고 수정은 내일에게 이안을 부탁한다. 이렇게 끝나는가? 둘의 최후와 마지막 장의 반전 내용은 이 리뷰에 쓸 수 없다. 책으로 직접 만나보길 권한다.

 

 

그동안 읽었던 소설과는 분명 다른 스타일의 소설을 만나는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그러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연명설화, 게임이 진행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스토리텔링, 독특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특히 ‘내일’이라는 개의 매력을 그냥 지나치긴 쉽지 않을 것이다.

5장에 등장하는 ‘오늘’이라는 개를 만나며 ‘내일’의 현신이 아닐까 가슴 두근거리게 된다면 현호정 작가의 글맛에 빠져버린 게 맞다!

 

 

나는 그랬다. 앞으로 박지리 문학상 출신이라는 이름표가 현호정 작가에게 자랑하고픈 휘장이 되길 바란다. 그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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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캉스 소설 추천!! | 기본 카테고리 2021-07-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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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 번째 여름

류현재 저
마음서재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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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

예스24 카드뉴스 발췌

본격 미스터리 스릴러라 했고, 처음부터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는 것에 혹했다. 여름휴가용 소설로 딱일 것 같았다.

주인공 정해심 검사는 성추행범에게 가차없다. 그 어떤 변명도 피해자가 입은 고통에는 비할바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 정해심 검사의 아버지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전화를 받는다. 믿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치매환자. 피해 여성은 파킨슨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기막혔다. 병원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뜯어말렸다는 요양보호사의 증언을 들으니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 피해자의 아들 하영석이 합의금으로 1억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렇게나 빠르게? 세상에 알려지기전에 사건을 수습하려는 원장이 합의를 종용한다.

이렇게 서두부터 이야기 속으로 훅 빨려들게 만들었다. 성범죄 전담 검사의 아버지가 성폭행 현행범이라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상황인가. 정해심 검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추리하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자신이 검사가 되어 사건해결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뭐가 있는지 눈 크게 뜨고 찾아볼 것이다. 70이 넘은 치매환자가 과연 그게 가능했을지, 실제로 벌어진 게 맞는지에 초점을 맞춘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임팩트 있게 시작하여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직접 추리해 나가도록 실마리를 여러 갈래로 던져둔다.

독자가 어떤 갈래를 잡아당기느냐에 따라 작가의 떡밥을 덥석 무는 붕어가 되어버릴 수도, 작가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올 수도 있다. 어떤 독자는 자신이 놓친 부분을 확인하며 이마를 칠 것이고, 또 다른 독자는 자신의 추리에 흡족해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추리 스릴러 소설을 읽는 맛이다.

정해심 검사는 아버지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어서 CCTV를 돌려보며 확인한다. 일을 저질렀다는 상황 전후와 며칠 전까지 돌려보니 강제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여성이 아버지에게 다가와 친근한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피해여성의 이름이 자신과 같은 해심이라는 것, 아버지와 그 여성의 고향이 같은 남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녀는 이 사건의 이면에 뭔가가 더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공간이 다른 곳으로 독자를 훌쩍 데려간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격동의 시기, 푸르른 남해 바다로. 그곳이 고향인 정해심의 아버지 정만선과 하영석의 어머니 고해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살짝 실망했다. 나는 피비린내 나는 뭔가 과격한 일들이 벌어질거라 예상했었다. 앞서 말한대로 스릴러 소설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러브스토리였다.

단순하지는 않다. 순애보, 삼각관계, 질투, 애증까지 사랑이라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가 다 들어있다. 성추행 사건을 다루고 있는 현재의 정해심 검사의 상황과 성폭행 가해자로 몰린 아버지 정만선의 어린 시절이 교차로 서술되는데 독자가 어디에 포인트를 맞추느냐에 따라 소설적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다를 것이다.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피해자의 진술을 100퍼센트 신뢰했던 정검사는 아버지의 상황을 겪으며 그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과 증거를 토대로 법에 맞게 구형한다고 장담했던 정검사는, 그간 자신이 확신했던 것에 균열이 생기자 당황스럽다. 작가는 정검사를 딜레마에 빠지게 해놓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과연 공정한 잣대는 존재하는지를!

정만선과 고해심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독자라면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 나는 사실 많이 놀랐다. 아니 내 편견에 놀랐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정만선과 고해심, 그 둘 사이에 낀 여성 하덕자와 박문희의 애증어린 행동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덕자와 박문희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숨겨졌던 정만선과 고해심의 사랑 역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 둘의 사랑은 마치 빙산과도 같았다. 겉으로 조그만 덩어리처럼 보였지만 수면 아래에는 거대한 산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둘의 사랑은 그랬다.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서 각자 다른 이와 결혼했지만, 사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다. 몇십년이 지나도, 아니 죽을 때까지!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너무 놀라웠다. 또한 그 옛날 둘의 사랑이 이토록 애절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것에 놀랐다. 몇 십년이 지나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믿기 어려웠다. 치매에 걸려도 파킨슨 병에 걸려도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있고 싶어하다니... 어릴 적 둘이 만났던 비밀 장소를 기억해낸 둘의 행동이 남의 눈엔 범죄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놓고, 꽃같이 아름답던 어린 시절을 잠깐 서술하고선 그 사이 간극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작가의 실력에도 놀랐다.

시대적 상황과 부모 세대의 업보 때문에 내놓고 사랑하지 못했던 둘의 사랑은 정만선의 시로 표현된다. 꿈틀거리는 바다의 생명력 속에 해심을 향한 만선의 사랑이 육감적으로 표현된 시는 짧지만 격정적으로 서술된 둘의 어린 시절 사랑과 닮아있었다. 그 시에 반했던 기자 박문희는 정만선의 사랑을 평생 갈구했으나 결코 얻지 못했다. 둘의 사랑을 시기했던 덕자 역시 만선의 사랑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만선을 향한 덕자와 문희의 애증은 안타까웠다.

늙은 사람들에게도 젊은 시절은 있었고 사랑도 하고 살아왔을 터인데, 나는 그것을 부정했다. 또 죽을 때까지 평생 못 잊을 사랑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네번째 여름>을 읽으며 내 편견을 확인했다. 어느 시대나 어디서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죽을 만큼 사랑을 하고 질투하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사람들! '현실에 이런 사랑이 있을까? 소설이니까 이렇게 극적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가의 말’을 읽으며 고개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바다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지난 여름, 큰 바람이 지나가고 죽은 사람 하나가 떠밀려왔다. 놀란 사람은 나처럼 도시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외지인들 뿐이었다. 하지만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 생명을 품고 있는 줄만 알았던 바다는, 동시에 죽음도 품고 있었다.

바다가 얼굴색을 바꾸고, 구름과 안개 베일을 두르면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바다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 바다가 밀어낸 죽음의 형상으로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네번째 여름> 작가의 말

여름에 어울릴 간담서늘한 스릴러 소설일거라 기대했는데 뜨거운 사랑이야기였다. 류현재 작가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방송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영화한편 보는 것처럼 흡입력 있었다. 이 소설은 영화화해도 좋을것 같다. 정만선 역할에 남주혁 얼굴이 번뜩 떠올랐다. 훔... 이제 어린 고해심과 하덕자 박문희를 캐스팅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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