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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그리고 넥서스 | 책을 읽으며 2011-01-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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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뷰케넌의 <사회적 원자>를 읽기 시작한다.

이 책에 대한 소개나 비평을 볼 때도 생각을 못했고

이 책을 구입할 때도 생각을 못했는데

읽기 시작하면서 저자 소개를 받더니 낯익은 저자이다.

바로 <넥서스>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기억은 별로 없다.

아마도 바라바시의 훌륭한 책 <링크>를 읽은 후

<넥서스>를 읽었던 것 같은데

<링크>의 명확함과 풍부함에 비해 뭔가 빈약하고

머리에 쉽게 박히지 않았던 기억만 난다.

번역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잘 읽히지 않는 책을 만나면 번역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앞부분을 읽어본 결과,

<넥서스>에서 받은 '아무런 느낌 없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이 책을 덮을 수 있을 것 같단 예감이 든다.

 

그리고 저자의 이력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바로 그가 <네이처 Nature>의 편집자였다는 사실.

과학자라면 그 이력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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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 책을 읽으며 2011-01-2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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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세일러의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은 제목만 보며 오해하기 쉬운 책이다. 마치 과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아마도 영국 정치가 디즈데일리의 얘기로 잘못알려진 세 가지 거짓말이 있는데,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데서 가져온 게 분명한 이 제목은 원래의 말이 통계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뉘앙스이기 때문에 더더욱 과학이 거짓말의 한 종류, 그것도 악질의 것으로도 보이게 하고 있다. 게다가 책 표지도 새빨간색이니.

 

그런데 책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물론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잘못 설계된 연구와 또 의도적인 연구 부정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지만 대체로는 과학의 연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주로 언론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 센세이셔널한 것을 원하는 언론의 제목 짓기와 연구 결과의 편향적인 해석 등에서 과학 연구가 거짓말처럼 들리게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대중들이 오도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극복하고, 제대로 과학 연구 (혹은 과학 보도)를 읽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만 신경쓰고 훈련을 한다면 과학 보도 이면의 것을 충분히 깨우칠 수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언인가 하면… (조금 야박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된다. 300쪽도 되지 않고, 활자도 큰,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전문적인 지식도 그리 필요치 않은 책이니 더더욱.

 

그런데 아쉬운 것이 있다면, 책에서 들고 있는 예들이 너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고, (원저에는 어떨른지 모르지만) 참고문헌이 거의 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이 훨씬 두꺼워지겠지만 과학의 거짓말, 혹은 과학 보도의 거짓말, 혹은 과장 등을 좀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서 소개하는 예들이 좀더 자세했더라면 하는 것은 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좀더 지적인 책이 되기 위한 조건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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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분야의 연구비가 늘어야 하는 이유 | Science 2011-01-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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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과 항생제 내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언급하는 게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그림을 제시하면서인데,

 

 
 
 

항생제가 개발된 이후 항생제 내성은 꾸준히 느는데 반해, 1990년대 이후에는 새로이 개발되는 항생제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성 세균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의 종류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이러다간 큰일 날 사태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큰 제약회사에서 항생제 개발에 들이는 연구개발비를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선 몇 년 전에는 커다란 미생물 또는 감염 관련학회의 단골 session이었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인데, 그 이유로는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새로운 target을 찾기가 힘들다. 사람한테는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세균은 죽여야 하는데 그 target을 찾는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두번째로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개발 기간이나 임상시험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다른 약들과 비교해서도 그렇단 얘기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개발해도 (부작용이라는 관문까지 통과하더라도) 내성이라는 문제가 가로막고 있다. 기존의 것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갖는 항생제라야 기존의 항생제 내성을 비껴갈 수 있고, 비록 새로운 메커니즘을 갖는 항생제라고 하더라도 세균은 금새 내성을 갖게 되는 것이 그동안의 사례였다. 그래서 애쓰게 개발한 항생제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수 있다.

 

이제부터가 내가 하려고 하는 얘기인데, 제약회사에서 항생제를 별로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항생제는 감염 환자가 그 약을 처방 받아 치료되면 끝이다.

그리고 다음 감염이 똑같은 항생제를 사용하는 세균에 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으니 그 때마다 새로운 항생제가 쓰인다.

그러니 한번 아프면 평생 가면서 약을 써야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정확히는 치료제가 아닐 수 있다)를 개발하는 것이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다. 예를 들어, 당뇨, 고혈압 같은 것이다. 그게 완전히 치료된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평생 관리를 해야하는 것이지.

아이러니하게도 항생제 개발의 문제점은 그게 너무 잘 들어 치료를 해버린다는 데 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대략 이러한 이유들로 제약회사에서 연구개발비를 줄이고, 정부의 연구 예산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실은 이러한 상황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게 된 것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을 읽으면서 이에 대해서 짧지 않게 언급한 대목을 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의 10대 사망 원인을 제시하고, 연구비 지원 내역을 비교했을 때 전염병에 의한 사망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데도 불구하고 연구비 지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정부의 연구 예산을 이 분야에 더 많이 지원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쓰고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위에 내가 제시한 제약회사가 연구 투자를 꺼리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전염병 연구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마땅한 근거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전염병은 예측 불가능하다. 늘 새로운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있으며, 새로운 종류는 범유행병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민간 부분에서는 이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만성 질환 치료제보다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에 더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길 꺼린다. 에이즈 치료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는 환자가 복용하는 기간이 비교적 짧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약처럼 돈벌이가 되는 약은 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계속해서 매일 복용해야 한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늘 새롭게 진화하기 때문에 기껏 개발해 놓은 약이 금방 효과가 없어지는 일도 가끔 있다. 따라서 민간 회사들은 전염병과 맞서 싸울 방법을 늘 새로 찾아야 할 동기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공공 기관이 궂은 일을 떠맡는 게 타당하다.” (203)

 

또한 연구 예산이 적은 이유로 한 가지를 더 들고 있는데 그건 대중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 우리는 항생제의 효과에 대해서 굉장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감염 쯤은 정복할 수 있는, 혹은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이 알츠하이머나 당뇨, 심혈관 질환 보다는 덜하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슈퍼 박테리아 등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그렇지 않다는 경계심을 가지게 되지만, 글쎄 정말 일반인들의 인식이 그럴까 하는 것은 의문이다.

 

이러한 내용이 내게 더 와닿게 되는 이유가 있다. 2월은 연구비 지원을 신청하는 기간이다. 얼마전에 한국연구재단의 공고가 나왔고, 설이 지나면 그것에 매달려야 한다.

위와 같은 시세일러의 지적을 염두에 두고 이 분야에 연구비 지원이 늘었으면 좋겠다. 아니 늘어야 한다.

-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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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언론에 직접 발표된 연구 결과는 위험한가 | 책을 읽으며 2011-01-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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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보도를 통해서 아주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접할 때가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어떤 journal (그 중 많은 수는 Nature Science이고)에 논문의 형식으로 발표된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엔 논문 발표에 대한 얘긴 없이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되는 경우가 있다. 솔직하게 난 그런 연구 결과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검증을 했다고 하겠지만 오랫동안 과학계가 만들어놓은 논문 발표라는 검증의 단계를 건너뛰었다는 것은 무언가 신뢰하지 못할 구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유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러한 결과에 대해 상당한 정도로 진실을 의심해볼 이유가 더 많다고 여기는 것이다.

 

셰리 시세일러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에서 이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심각한 일이긴 하지만 이러한 결점(우수한 연구를 거부하거나 형편없는 연구를 통과시키는 경우, 혹은 조작 데이터가 심사 위원의 감시를 통과하여 학술지에 실리는 경우 등)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결점이 있다고 해서 과학적 심사 과정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동료의 비평이나 심사를 피하고자 어떤 주장을 직접 언론에 공개하려는 시도는 지적 사기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징후다.” (54)

 

지금의 대부분의 학술지에서 채택하고 있는 심사는 영어로 peer review (우리말로는 동료평가)라고 하는 것이다. , 그 분야의 복수 동료 전문가로부터 평가를 받아 수정할 부분을 수정하고 게재 여부를 판정받는 것이다. 물론 불만스러운 점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부당하게 게재가 거부당하는 경우를 나도 여러 번 겪었고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억울한 경우도 당한다. 또한 황우석 박사의 경우처럼 조작된 데이터가 엄청난 스포라이트를 받으면서 최고의 journal에 실리기도 한다. 그래서 peer review라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해야할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방법을 전면적으로 바꾸었을 때 어떤 다른 심사 방법이 더 나을 것이라는 게 나오질 않는다. , 아마도 1800년대부터 이 peer review system은 갈고 닦아져 온 방법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 system을 건너뛰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기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는 것이 바로 셰리 시세일러의 얘기인 것이다. 다시 한번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언론에 직접 보도된 과학적 주장은 의심의 눈초리로 볼 필요가 있다. 다른 과학자들이 의심을 표시할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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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 | 책을 읽으며 2011-01-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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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은 기회 비용의 의미이기도 하다. 책읽기가 직업이지 아닌 이상 책읽기라는 행위는 기회 비용일 것이다. 나는 소설이니, 역사서니 하는 것들 보다는 다른 읽어야 할 것을 쌓아놓고 있다. 그것들을 제쳐놓고 전공과는 별로 상관없는 책을 읽는 것은 물론 그것이 더 좋아해서이겠지만, 그래도 꽤 상당한 포기라는 단어를 써야만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돈을 치르고 산 책을 순식간에 읽게 되어 버리면 서로 정반대의 생각이 동시에 든다. 하나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사서 읽게 된 데에 대한 뿌듯함. 또 하나는 이렇게 빠르게 읽어버리는 책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된 데에 대한 아쉬움. 결국은 어느 쪽이든 대체로 그 책에 대한 좋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논문을 읽어야 할 시간을 버리고(?) 그 책을 읽었던 나의 행위에 대해서 조금 더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빠른 기간 동안 책 한 권을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하루의 시간을 더 많이 들였다는 얘기이니.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피처>가 그렇다. 3일이다. 특히 3부는 오늘 출근 길, 퇴근 길,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다 읽어버렸다. 다른 일(가령 책읽기)을 하더라도 아무도 상관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게 내 방이지만 출근해서는 다른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거의 단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벤 브래드포드에서 게리 서머스로, 그리고 앤드류 타벨로. 그렇게 자신을 버리고,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나도 순식간에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1, 2부가 조금 지루했다는 인터넷 상의 누구의 평을 인정할 수도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3부의 스마트하고 흥미진진한 진행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여겨지는 것일 수 있다고 보인다.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벤 브래드포드는 과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일까? 그게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의한 것이어도 그걸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결코 벤 브레드포드의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어떤 계기가 주어져 어쩔 수 없이 다른 삶을 살아야만 하게 될 때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그 삶을 선택했을 때, 나는 만족하게 될까? 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삶이 있을까?

 

(지금 찾아보니 영화는 다 만들어졌나 보네요. "L'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 The Big 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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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 책을 읽으며 2011-01-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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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의 또 한 대목

(오늘 읽은 부분에서 고른다)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물질적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가짜일 뿐이고, 언젠가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등에 짊어진 건 그 물질적 안정의 누더기 뿐이라는 걸.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소멸을 눈가림하기 위해 물질을 축적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축적해놓은 게 안정되고 영원하다고 믿도록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결국 인생의 문은 닫힌다. 언젠가는 그 모든 걸 두고 홀연히 떠나야 한다.” (251)

 

38살의 변호사가 깨달은 인생이다.

, 40대 초반의 대학 선생이 깨달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물질적 안정’? 아내는 인정을 하기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없는 사람들보다는 나은 편일 테니 이룬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내가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해야할까? 그런데 나는 그걸 누더기처럼 짊어지고 있을까? 내가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은 과연 그런 물질적 안정일까?

 

어느 날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 무엇이 나를 기억하도록 할까 생각해본 적 있다. (누구라도 해보았으리라) 그런데 그건 38살의 변호사가 얘기한 물질적 안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보잘 것은 없지만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발표한 논문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과학적 업적들? 그러나 그게 나를 가장 정확하게 말하는 것일까? 늘 나는 아마추어 과학자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가지고 살 정도로 거기에 모든 것을 바쳐오지 않았는데?

 

그럼 가족? 그래 가족은 어쨌거나 내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그리고 필연적인 관계이니까. 하지만 가족들 자체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가족들에게 나는 얼마나 투영되고 있을까? 내 딸, 내 아들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에 내가 심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건 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그럼 무얼까? 오늘 밤 좀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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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쉬웠으니까." | 책을 읽으며 2011-01-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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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소설 <빅 픽처>의 한 대목:

나는 항복하고, 포기하고, 움츠러들었다. ? 그게 쉬웠으니까. 안전하기도 했으니까.”

 

또 다른, 가고 싶은 길이 있었을까? 그래 있었지.

그런데 왜 나는 그 길을 가지 못했을까. 가지 않았을까.

그래 난 위험한 길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지금으로의 길이 절대적으로 안전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분명히 안전한 길이었고,

절대적으로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쉬어 보였다.

단 한번도

항복하지도, 포기하지도, 움츠러들지도 않았다고 스스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나는 항복하였고, 포기하였고,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가지 않은 길? 후회?

글쎄. 그런 건 없다.

여전히 그 길은 쉽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재능도 부족했으므로 다행스런 포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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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 책을 읽으며 2011-01-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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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을 다 읽었다. 이 경우에 다 읽었다는 표현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한시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저자가 번역해놓은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단지 읽었다는 이유로 책장을 넘긴 게 한두 장이 아니니 말이다. 그저 읽었으니 다 읽었다고 인정해달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투정이나 다름없다.

 

1 12일에 읽기 시작하여 21일에 다 읽은 것으로 표시를 했으니 딱 열흘인 셈인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오며 가며,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서, 백화점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 중에 이렇게 읽어 열흘이다. 뭐랄까. 공을 들인 책을 다 읽었을 때의 대견함이랄까... 그렇다.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번역이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와 같은 양주동의 번역이 놀랍지 않을 정도이다. 그저 번역한 한시만을 읽더라도 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물론 원래 한시의 공이기도 하지만 번역한 저자의 공이기도 하다.

 

시의 정신과 한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얘기했지만, 거의 다 읽으면서 딱 한 가지 더 바라고 싶은 것이 생겼다. 중국의 한시와 우리나라의 한시를 비교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한시라는 것이 당연히 중국에서 온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흉내만 낸 것은 아닐 것인데, 과연 어떤 점이 다를까 하는 것이 궁금해졌다. 그 다른 점이 저자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소리 높인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의미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 과거를 온전히 이해하고 현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나라의 한시에서 그런 작업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그게 궁금하다.

 

바로 앞에서 언급했지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책 전체에서 저자의 목소리는 뚜렷하다. 시라고 속삭이고 있지만은 않다. 저자의 낮지 않은 목소리는 책을 더 또렷이 읽을 수 있게 하는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에필로그에서 더 커진다. 하고픈 얘기라서 그렇다. 혹은 어떤 하소연 같기도 하고, 또는 자신이 하는 학문에 대한 존재 이유를 설파하는 선언 같기도 하다. 이런 것이다.

옛날은 그 때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훗날의 옛날이다. 현재에 충실하라. 그러면 그것이 훗날의 모범이 된다. 옛것을 맹종치 말라. 그 옛것도 그 때에는 하나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세월은 흘러간다. 오늘의 주인공이 내일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지금여기가 차곡차곡 쌓여 역사가 된다.” (660)

 

그리고 또한 이런 것이다.

한시 연구에서 논문을 쓰자는 것인지 위인전을 쓰고 있는지 분간 안 되는 연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애나 역사 배경을 죽 늘어놓고, 거기에 작품을 꿰어맞춰 일대기적 구성으로 재배열하거나, 자기가 연구하는 시인이 언제나 최고가 되는 당착은 병폐가 된 지 오래다. 툭하면 현실인식이고, 입만 열면 역사의식을 말한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학성이 담보되지 않은 의식이란 대자보나 설교와 무엇이 다른가?” (669)

 

오래 전의 한시를 읽지만, 그건 그저 읽자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자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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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성향은? | 끄적이다 2011-01-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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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생물학자' 김우재의 블로그(http://heterosis.tistory.com/284)를 찾았다가
나도 내 정치성향 자가진단을 해보았다.
(http://h21bbs.hani.co.kr/politicalcompass/)
다음은 나의 결과이다.
말하자면 김우재의 말처럼 커밍아웃인 셈인데...
 

 

 

점성술을 믿지 않는다고 답해놓고,
이러한 설문 조사 방식으로 한 사람의 정치 성향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말하자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그냥 재미(?)인 셈인데,
그냥 재미라고 하기에는 문항들이 좀 심각했다.
 
나의 결과를 보면 중간쯤 되는 좌파에, 중간쯤 되는 자유주의자인데
이름을 붙이면 '자유주의적 좌파'라고 해야하나?
사실 쉽게 동의는 하지 못한다.
명사들의 결과를 보면 나처럼 쉽게 동의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좌파이고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는 결과인데,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 사회가 이렇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로 의문이 드는 것이 정몽준이나 심대평 같은 이가 '좌파'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자유주의적 좌파'라는 이 결과를 믿을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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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과 미숙아 | Science 2011-01-21 16:55
http://blog.yes24.com/document/303628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PNAS에 실린 미숙아의 장내 미생물 연구입니다.
Morowitz et al. Strain-resolved community genomic anlaysis of gut microbial colonization in a premature infant. PNAS 2011; 108(2):1128-1133.
 
저도 여러번 소개했던 질병과 미생물 사이의 관게에 대한 microbiome 연구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몸 속의 미생물의 총체적인 분포가 질병이나 비만 등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기존에 비만이나 특정 질병 등에 대한 연구가 나왔다면 이번 연구는 미숙아(premature infant)에서 장내 세균이 어떤 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살펴본 것입니다. (23주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기이고 첫 3주 동안 대장의 세균을 본 것이네요.)
결과를 간단히 보면 Citrobacter의 증가가 가장 도드라졌다는군요. 그 밖에도 많은 결과와 분석들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이런 community (여기선 지역사회란 의미가 아니라 세균들이 모여 있는 것을 이런 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차원의 연구가 의학적으로 중요한 세균을 판별해내는데 중요하게 쓰일 것이고, 세균의 community와 관련된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Our results demonstrate that a community genomic approach can elucidate gut microbial colonization at the resolution required to discern medically relevant strain and species population dynamics, and hence improve our ability to diagnose and treat microbial community-mediated dis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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