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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중독의 증상이 나오는데... | 끄적이다 2011-02-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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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책중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 초기 증상쯤으로는 여겨지는 행동이 나오고 있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에서 책중독(biblioholism)’의 가장 중요한 증상으로 꼽는 것은 책방에서 한 무더기의 책을 사는 것과, 같은 책을 몇 번이고 사는 것이다.

토요일. 아내는 처형, 처제와 함께 백화점을 간다고 해서, 근처 서점에 아들과 함께 떨구어 달라고 했다. 그냥 시간을 좀 보내다 백화점에서 합류를 해서 점심이나 먹을 요량이었다. 아들이 원하는 책 한두 권쯤 사고. 나야 이미 사둔 책이 몇 권 있으니 책을 살 생각은 전혀없었다.

그런데, 나올 때 나의 손에는 어김없이 세 권의 책이 들려져 있었다.

(이것이 첫 번째 작은 증상이다.)

 

두 번째의 증상은 방금 전에야 확인을 했다. 출근을 하고, 주로 작업하는 책상 뒤쪽에 작은 책상에 놓인 책들을 살펴보았다. 앞에서 이미 사둔 책들이라고 한 책들이다. 이런! 같은 책을 두 권 산 것이다. 바로 댄 애리얼리의 <경제 심리학>.

<상식 밖의 경제학>을 읽었던 터라 그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수첩에 이미 적어놓은 책이었다. 그것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걸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이미 산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난감한 것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냐는 것과 함께 내 이 증상이 과연 건망증인지, 책중독증인지 어느 쪽으로 봐야 하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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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세기 | 책을 읽으며 2011-02-2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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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를 다 읽다. 3주 이상 꾸준하게 붙잡고 겨우겨우 끝장을 덮었으니 전체적으로 이 방대한 책을 평할 만한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몇 개의 단상만 적는다.

 

1. 우선 일본에 대한 시각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우연히 생긴 제국이라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본 것이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만주에 대한 서술에서 나온 것이지만) 새로운 식민지 개발에 전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었다, 즉 그 이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발달했다는 시각은 나로서는 상당히 역겨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전혀 관계없는 나라의 숫자와 문헌만 가지고 노는 학자의 시각이겠지만

 

2. 20세기를 증오의 세기(History’s Age of Hatred)’라고 규정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서로 다른 인종과 민족에 대한 증오를 의미한다. 그런 증오는 아마도 선사 시대부터 있어왔고, 20세기 이전에도 상당한 살육이 있어왔지만 그 증오가 표출되는 가장 격렬한 장면은 20세기에 와서 볼 수 있다. 수만, 수십 만도 아니고 수천 만 명이 죽었다는 서술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내가, 우리가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싶었다. 혹은 나의 조상들은 어느 편이었을까도 궁금해졌다. 운이 좋았거나, 비겁했거나, 아니면

 

3. 저자가 이 책을 끌고 가는 데 한 가지 중요한 가정은 인명 피해라는 관점에서 한 제국의 최악의 시간은 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할 때” (838)라는 것이다. , “이 시기는 반란자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정부 당국이 잔인한 무력에 의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이기도하다는 것이다. 물론 제국은 아니지만 리비아를 떠올린다.

 

4.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편견과 증오에 나약하게 빠져들 수 있는지. <증오의 세기>를 읽고 조금만 더 가면 인간 자체에 대해서 증오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 추악함과 편견을 깨달으면 조금이라도 보편적으로 인류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걸 바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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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 책을 읽으며 2011-02-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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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열흘쯤 전 일요일.

딸의 첼로를 들어주면서 제 책을 딸에게 들렸습니다.

딸이 매주 일요일마다 근처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첼로를 배우는데 (그야말로 취미로) 그 때마다 함께 갑니다. 대체로는 아내와 함께 셋, 혹은 아들까지 넷이 가는데 가끔은 저 혼자 데려다 주곤 합니다. 저는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반드시 가지고 가는데 그걸 딸에게 맡깁니다.

그 일요일에 딸이 책을 받아들면서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빤 책중독자야!”

 

내가 놀란 건 내가 책중독자라는 게 맞는 말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다는 데 있지 않고 바로 그 얼마 전에 구입한 책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톰 라비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딸에게는 뭐에 중독된다면 책중독이 그래도 가장 봐줄만 하지 않겠냐고 했고, 딸은 재미없다고 했습니다. 톰 라비의 책을 구입하면서도 내가 책중독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딸의 말 때문에 한번은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내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근처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는데, 오로지 그것만 하고 돌아올 계획임에도, 책 한 권을 끼고 나가는 저를 보고 혀를 찼지요. 그런데 그걸 꼭 책중독이라고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저 비는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위가 책읽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구입하고 내 사무실 한 켠에 두었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을 어제 낮에야 이동 중에 읽기 위해 들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다른 두꺼운 책들을 들고 나가기엔 무게 자체가 부담이 되었으니까요. 과연 전 책중독자는 아니었습니다. 책으로 온 집안을 가득 채워놓는다거나, 아니 몇 채의 집을 채워놓는다거나 한 가지 책을 몇 번, 아니 수십 번 사들이는 행위를 한다던가 하는 정도가 되어야 책중독자라는 병명을 얻게 되는 것이었지, 애인 (혹은 아내가) “책이냐, 나냐했을 때 조금이라도 망설이지 않을 저는 절대 책중독자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읽지도 않을 책을 그저 책이라는 이유로 사들이는 짓도 하지 않을 뿐더러 토르콰토 타소처럼 고양이 눈의 광채에 의지해 책을 읽는 무모함도 갖지를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봐줄만 할 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게 봐주지 않을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어쨌든 중독이 좋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그럼 뭘까 해서 봤더니 좋은 게 있더군요. 바로 애서가’. 여기에도 아직 많이 모자라겠지만 그래도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면 더없는 영광이 되겠다 싶습니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을 읽으며 감탄하고, 부끄러워하고, 안심하고, 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책을 좋아하는 습성을 구별짓는 데는 역사적으로 애서가bibliophilia와 장서광bibliomania, 이 두 가지 용어가 사용되었다. (중략) 장서광은 책을 손에 넣어 소유하고자 하는 반면, 애서가는 소유에 반대하지는 않으면서 그보다는 책에 담긴 지식과 지혜를 얻고 싶어 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구분은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장서광은 도가 지나친 애서가이다. 장서광은 확실히 언젠가 될지는 모르지만 장차 읽으려고 책을 사재기 시작했을 것이고, 결국 사재기를 위한 사재기를 하는 만큼 그런 느낌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책에 대한 갈망을 달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책을 소유함으로써 책과 책읽기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서재의 가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으로만 측정된다. 진지하게 책의 양에 올인하는 것이다.

(중략) 장서광이 그 거죽 때문이라면, 애서가는 그 안에 쓰여 있는 것 때문에 책을 사랑한다. 장서광에게 책은 보호해야 할 보물, 박물관 소장품, 진기한 물건이라면, 애서가에게는 즐겁게 지내는 친구다. 장서광이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사거나 책을 탐욕스럽게 찾아다닌다면, 애서가는 감수성 넘치는 자질로써 책을 고른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87 ~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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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닮은 히틀러와 스탈린 | 책을 읽으며 2011-02-2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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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에 가장 큰 오판은 소련 침공이라고 한다. 소련 침공으로 전선이 넓혀지고, 또 예상과는 달리 빨리 해치우지 못하면서 서부 전선에서의 유리한 형세가 흐트러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스탈린의 영웅적인 전쟁 지휘에 대해서도 읽은 바가 있다. 그게 히틀러의 야심을 무너뜨린 한 가지 요인이었다고.

 

그러나 히틀러와 스탈린은 죽이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독소 조약을 맺었고, 그래서 폴란드를 함께 먹어치웠고, 전쟁 초기에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배신(실은 히틀러는 처음부터 소련을 침공하려고 했다고 하지만)을 했고, 스탈린은 엄청나게 당황하고 초반에 엄청난 패배를 경험했지만 더욱 예상치 못하게 전쟁의 승전국이 되어 전후 미국과 함께 양극체제까지 만들 수가 있었다.

니얼 퍼거슨은 그 히틀러와 스탈린의 닮은 점을 적나라하게 쓰고 있다. (앞에는 히틀러와 루스벨트에 대해서 썼는데 이 히틀러와 스탈린에 대한 얘기가 더 재미있다. 물론 전세계에 엄청난 참화를 가져온 그런 얘기지만)

 

우선 재미있게 쓰고 있는 것이 이 둘의 출신이다. “그루지야 제화공의 아들 이오시프 주가시빌리가 오스트리아 세관 세무원의 아들 아돌프 쉬클그루버를 만났을 때, 자신보다 어린 그 사람과 마음이 맞는다고 느낀 것 같다.” – 여기서 앞의 그루지야 제화공의 아들은 바로 스탈린이고, 오스트리아 세관 세무원의 아들은 바로 히틀러이다.

 

, 그럼 둘은 어떻게 비슷한가?

두 사람 모두 학생일 때 거센 반항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히틀러는 실패한 예술가였고, 스탈린은 신학교를 중퇴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둘 다 나중에 자신이 전복한 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던 혁명가였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노동자 정당에서 당원으로서 집권 과정에 참여했다가 이후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일도 불규칙하게 했는데, 밤늦게까지 일하고 여름엔 별장에서 일하길 좋아했다.” (<증오의 세기> 565)

 

그리고, 다음은 나비효과 같은 얘기들이다.

둘 다 여자들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히틀러가 맹목적으로 사랑했던 조카딸 겔리 라우발은 1931 9월에 총으로 자살했다. 스탈린의 아내 나데즈다 알릴류에바 역시 겨우 14개월 뒤에 똑같이 자살했는데, 그녀 역시 지나칠 정도로 집착이 심한 나이 든 남자의 등쌀에 못 이겨 자살했다. 양쪽 다 나이 차가 스물두 살이나 났다. 두 여인 모두 더 건장한 타입의 여성들로 대체되었다. 건강해 보이는 여비서 에바와 풍만한 스타일의 가정부 바트체카가 두 사람의 연인이 되었다.” (565)

 

등등. 정권의 모양새까지도 비슷했으니 “1930년대 말의 나치 예술이 소련 예술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에, 스탈린은 히틀러를 표절자로 비난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둘은 또한 달랐다 한다. 한 사람은 선동정치가였고, 다른 한 사람은 꼼꼼한 관료주의자였다. 어떻게 인정해야할 지 모르지만 한 사람은 그래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고, 또 한 사람은 음모를 통해 집권했다. 등등.

 

그런데 가장 아이러니한 것으로 적고 있는 것은 스탈린 같이 음모적인 인간이 어떻게 히틀러에게 속아 넘어갔느냐는 것이다.

스탈린은 현대사에서 가장 심한 과대망상에 빠진,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질 만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지적한 대로, 최고의 아이러니는 소련의 독재자가 유일하게 믿은 사람이 불행히도 역사상 가장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다.”

 

슬프고도 경악스러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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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승리와 나이팅게일 | 책을 읽으며 2011-02-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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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 코언의 <수의 승리>를 읽으면서 과학자로서의 나이팅게일을 처음 알았었다. 사실은 엄밀하게 과학자를 '어떤 새로운 것(something new)'를 만들거나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과학자라고 하기가 힘들겠지만, 과학, 정확히는 수학, 더 좁게는 통계를 잘 이용하고 보여줄 수 있었던 정책가로서의 나이팅게일이 과학의 한 분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수의 승리>에서 나이팅게일은 그야말로 "수의 승리"를 입증해주는 마지막 예로 소개되고 있다. 그만큼 나이팅게일을 통계를 잘 이용할 줄 알았고, 또 그것을 설득력있게 정책 입안자들과 대중에서 보여주는 방법을 알았다고 한다. 
 
"나이팅게일은 통계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점에서 개척자나 마찬가지였다." (<수의 승리> 195쪽)
"그녀는 하느님의 법칙을 밝히는 일이란 신념을 굳혔다." (<수의 승리> 212쪽)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통계를 향한 열정은 진실로 숫자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수의 승리> 220쪽)
 
그런데 최근 <과학동아>의 기사는 그 나이팅게일이 통계를 잘 이용함으로써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나는 통계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하고 있다. 논문을 쓸 때 필요한 통계를 부탁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후회막급이다. 아주 초보적인 이해만 가지고 논문을 쓸 수는 없으니까 이제라도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그저 마음 뿐이다. 물론 핑계지만. 
<과학 동아>의 기사이다.

 

 

 

 

통계로 세상을 구한 나이팅게일 (공개)
| 글 | 김종립 기자│이미지출처 위키미디어
 
나라를 운영할 사람들은 통계활용법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누굴까. 통계학자일까. 아니다. 우리에게 백의의 천사로 알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남긴 말이다. 나이팅게일은 나라를 바르게 운영하려면 통계를 잘 이용해야한다고 믿었다. 사랑과 희생으로 전쟁터를 누비며 죽음의 문턱에서 병사를 구한 여성으로만 알았던 나이팅게일의 과학자적인 면모를 살펴보자.  

 

[나이팅게일이 자신의 열병 치료를 마치고 간호를 하기 위해 크림반도의 스쿠타리 야전병원으로 돌아온 모습을 그린 그림. 제리 바렛이 1856년에 그렸다. 영국 런던에 있는 나이팅게일의 동상. 나이팅게일은 등불을 들고 헌신적으로 병사를 돌봤다.]

 

[나이팅게일 집안의 소유였던 집. 나이팅게일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천하고 힘든 직업이었던 간호사가 됐다. 결국 그녀는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꿨다.]

'보라, 저기 허술한 집에서 어두운 방에서 방으로 램프를 든 젊은 여인이 천사와 같이 지나는 것을. 병사들은 구원의 꿈을 보는 듯 어스름한 벽에 비치는 그 그림자에 입을 맞춘다.’

이 시는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나이팅게일에게 바친 시 ‘산타 필로멜라’의 일부다.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롱펠로가 읊은 것처럼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병사를 밤새 보살핀 ‘백의의 천사’다.

그렇지만 나이팅게일은 영국 군대와 도시의 위생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통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버나드 코헨은 나이팅게일이 통계를 이용해 19세기 영국의 군대 및 공공보건과 사회개혁에 기여했으며, 통계 정보를 한눈에 들어오게 시각화하는 방법을 개선했다고 평가했다.

나이팅게일은 왜 통계에 주목했으며, 통계를 이용해 어떤 활동을 했을까. 어떻게 과학자도 아닌 그녀가 통계를 활용할 수 있었을까.
 
수를 사랑한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은 1820년 영국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흔치 않은 생각이었다. 덕분에 나이팅게일은 아버지로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으며, 역사와 철학을 배웠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숫자로 각종 정보를 정리하는 일을 즐겼다. 가족과 함께 유럽을 여행할 때 매일 여행한 거리를 계산하고, 출발하고 도착한 시간을 기록했다. 여행한 지방의 법률과 토지관리체계, 사회상황과 복지기관들을 관찰해 통계를 냈다. 수에 관심이 많던 나이팅게일은 스무 살이 되던 해, 개인 수학 교사를 두고 수학을 정식으로 배워 전문적 통계 정리의 기초를 닦았다.

유럽과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며 나이팅게일은 여러 병원을 둘러봤다. 낡은 간호체계의 실상을 목격한 뒤 간호의 중요성을 느껴 간호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가족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긍정적으로 보던 아버지조차 반대할 정도였다. 당시 간호사는 천한 사람이 하는 고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나이팅게일은 가족의 반대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영국에는 간호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독일의 병원 겸 고아원 ‘카이저베르트’까지 가서 간호교육을 받았다. 1853년 나이팅게일은 런던에 있는 여성 간호소의 감독관으로 임명됐고, 그곳의 간호 여건을 크게 향상시켜 명성을 얻었다.

통계로 부상병을 구하다

1854년 러시아와 연합국간에 ‘ 크림전쟁 ’이 일어났다. 많은 영국 군인이 부상과 질병으로 죽었다. 영국의 국방장관 시드니 허버트는 나이팅게일에게 크림 반도의 야전병원으로 가 간호활동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이팅게일이 가기전 야전병원에서는 부상병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 벌레가 들끓을 정도로 불결했으며, 붕대와 환자복 같은 기본 비품도 부족했다.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병동을 청소하고 부상병의 옷을 빨았다. 뜨거운 물을 공급해 병사들이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는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병은 더럽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병실이나 방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이팅게일은 좋은 간호를 하기 위해선 우선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나이팅게일의 통계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의 위생을 개선하기 위해 숫자로 야전병원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가 통계를 내기 전까진 아무도 크림전쟁에서 죽은 영국군의 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통계를 작성하기 위한 통일된 기준조차 없었다. 세 가지 기록체계가 있었는데, 기준이 각기 다르다 보니 결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나이팅게일은 먼저 통계 작성기준을 세워 기록체계를 통일했다. 기준에 따라 입원, 부상, 질병, 사망 등의 내역을 매일 상세히 작성했다. 이 기록을 토대로 영국 정부에 크림전쟁의 상황을 전하고 야전병원의 위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나이팅게일의 보고서를 본 영국정부는 야전병원의 위생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화장실과 오수구덩이를 청소하고 환기구를 설치했으며, 필요한 비품을 공급했다.

개선사업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자 야전병원의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42%에 달하던 환자의 사망률이 2%까지 떨어졌다. 당시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며, 깨끗해지면 왜 사망자가 줄어드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이 제시한 통계는 깨끗한 위생이 사람을 살린다는 증거가 돼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다.
 
[승선을 기다리는 영국군 부상병들. 윌리엄 심슨이 그렸다. 나이팅게일이 오기 전 크림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병사들은 위생이 열악하고 물품이 부족해 큰 고통을 받았다.]
 
[용어설명 - 크림전쟁1854년 3월부터 1856년 3월까지 지속된 러시아 제국과 연합국 사이의 전쟁. 연합국에는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제국이 참가했다. 전쟁의 대부분이 흑해에 있는 크림 반도(색칠한 부분)에서 일어났기에 크림전쟁이라 불린다.]

알기 쉬운 도표로 어려운 통계를 설명하다

나이팅게일은 복잡한 숫자들이 나열된 통계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통계를 이해하기 쉽게 그림(도표)으로 보여줬다. 나이팅게일의 장미 도표(Rose diagram, coxcomb)는 위생 개선 사업의 극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이 도표는 프랑스의 토목공학자 찰스 미나가 그린 도표와 함께 19세기 최고의 통계그래픽으로 손꼽힌다.

크림전쟁의 사망원인에 따른 월별 사망자를 표현하기 위해 나이팅게일은 원을 12개의 쐐기로 나눴다. 원의 중심에서부터 세 개가 겹쳐진 모양으로 그려진 쐐기의 넓이는 월별 사망자 수를 나타낸다. 각각의 색이 다른 쐐기는 서로 다른 사망원인을 표현한다. 오른쪽 도표가 1854년 4월부터 1855년 3월까지의 사망자 수이고, 왼쪽의 도표가 1855년 4월부터 1856년 3월까지의 사망자 수이다. 파란색 쐐기는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고, 빨간색 쐐기는 부상으로 죽은 사람이다. 검은색 쐐기는 기타 이유로 죽은 사람을 뜻한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대체로 파란색 쐐기가 크지만 왼쪽의 그림을 보면 파란색 쐐기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나이팅게일은 이 도표를 통해 군 병원의 위생상태가 개선되면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이팅게일의 도표는 영국의 통계학자 윌리엄 파르의 도표를 개선한 것이다. 파르는 나이팅게일과 비슷한 자료를 갖고 월별 사망원인을 분석한 도표를 그렸는데, 월별 사망자 수를 넓이가 아닌 원의 반지름 위에 길이로 나타내고 그 점을 연결했다. 이 도표를 보는 사람들은 선의 길이가 아닌 면적이 사망자 수를 뜻한다고 착각한다. 결과적으로 월별 사망자 수의 차이를 과장하게 된다. 나이팅게일은 파르의 도표가 갖는 문제점을 간파해 선의 길이가 아닌 쐐기의 면적으로 사망자 수를 나타낸 새로운 그림을 그린 것이다.

통계와 도표로 영국을 개선하다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이 끝나자 영국으로 돌아왔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뿐만 아니라 영국 본토도 열악한 위생으로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녀는 크림전쟁 중 영국에서 조성된 ‘나이팅게일 기금’으로 1859년 런던의 세인트토머스 병원에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설립했고, 같은 해 ‘간호론’이라는 책을 써 간호학의 기초를 세웠다.
 
[1. 나이팅게일이 기금을 모아 세운 나이팅게일 간호학교의 모습. 런던에 있는 성 토머스 병원에 설립됐다. 현재는 런던 킹스칼리지에 소속돼 있다.

2. 전쟁이 없던 시기에도 군대의 사망률은 민간 사망률보다 두 배나 높았다. 나이팅게일은 통계와 도표로 이런 사실을 알렸다.

3. 나이팅게일이 쓴 ‘간호론’에는 질병의 치유와 예방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정리돼 있다.]



그녀는 영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 통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쟁이 없는 시기에도 영국 병영 내 사망률이 민간의 사망률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것을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크림 반도의 경험과 통계를 근거로 삼아 병영의 위생을 개선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1860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통계대회에서 나이팅게일은 병원 기록 양식을 통일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당시 영국 병원의 기록양식은 서로 달랐다. 병을 분류하고 기록하는 양식이 제각기 달라서 기록을 모아도 쓸모가 없었다. 따라서 어떤 정책을 실행해도 실제 효과가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나이팅게일은 병원 기록 양식이 통일되면 쓸모 있는 통계 자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의 위생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도의 모든 영국군대에 설문지를 보낸 뒤, 결과를 분석해 200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에는 인도 주둔 군대의 사망률이 1000명 당 69명에 달한다는 사실과 사망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가 불결한 위생 때문이라는 내용이 수치로 기록돼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보고서에 근거해 위생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10년이 지난 뒤 사망률은 1000명 당 18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통계를 통해 세상을 바꾼 공로를 인정받아 나이팅게일은 영국통계학회의 첫 번째 여성 회원이자, 미국 통계학회의 명예회원이 됐다.

나이팅게일은 통계를 잘 사용하면 인류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법률과 정부의 부적절함, 정치 체계의 무능함, 사회를 이끄는 자들의 답답한 몽매함’을 오직 통계 연구로만 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선 모든 사람들이 통계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현애 서울대 간호대 부학장은 나이팅게일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나이팅게일은 통계자료를 표나 그래프로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를 바꿨습니다. 즉 통계를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데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수정하는 처방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나이팅게일의 업적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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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연구로 감염 case 논문 발표하는 일 | Science 2011-02-2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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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SGM (Society of General Microbiology)에서 내는 Journal of Medical Microbiology 2011 3월호에 저희 논문이 나왔습니다. (Yang HJ, Yim HW, Lee MY, Ko KS, Yoon HJ. Mycobacterium conceptionense infection complicating face rejuvenation with fat grafting. Journal of Medical Microbiology 2011; 60:371-374.)

 

대전에 있는 을지대학교 병원의 선생님들과 함께 쓴 논문입니다

재작년에 인체조직을 보내면서 거기에 있는 균을 동정(identification)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배양을 시도했고, 아슬아슬하게(?) 자란 균을 가지고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동정을 했더니 Mycobacterium conceptionense라는 균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Mycobacterium conceptionense는 결핵균으로 잘 알려진 Mycobacterium tuberculosis (TB)와 같은 속(genus)에 속하는 균입니다. TB가 굉장히 늦게 자라는데 반해 이것과 더 비슷한 것들은 좀 빨리 자라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Mycobacterium conceptionense 2006년에야 새로운 종으로 등록이 되었고, 사람에게서 나온 것도 그 후로 단 한 case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정리를 해서 논문으로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임상적인 특징들에 대해서는 을지대학교 병원의 분들이, 저희는 동정에 대한 것과 미생물학적인 것에 대해서 썼죠


사실 요즘 이런 일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랑 가까운 분들 뿐만 아니라 친하지 않은 분들도 해당 병원에서 동정이 잘 되지 않는 세균이나 좀 특이한 세균의 동정을 부탁하고 저는 무료로 해줍니다. 결과 논문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함께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죠. 저는 나름대로 공동작업을 통해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남들은 어찌 보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논문은 한번 reject의 아픔을 거치긴 했습니다. 그런데 수정해서 똑 같은journal에 다시 투고한 결과 게재 허가(accetance)가 났고 낼 수가 있었던 논문입니다. 조금은 뚝심을 발휘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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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민족과 우연히 생긴 제국? | 책을 읽으며 2011-02-22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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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 7장의 제목은 이상한 민족이고, 8장의 제목은 우연히 생긴 제국이다. “이상한 민족이란 독일인, 즉 게르만족을 의미하는 것이고, “우연히 생긴 제국은 일본을 의미한다.

 

우선 이상하다는 의미는 도대체 왜 독일인이 그런 나치즘에 경도되고 세계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말하자면, “1933년 이전엔 많은 사람이 보기에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국가였던 독일을 히틀러 같은 병적인 사람이 어떻게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는지” (345)에 대한 의문이다. 히틀러의 제3제국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수많은 지적 엘리트, 즉 현대 국가와 시민 사회의 원만한 운영에 너무나 중요한 대학 졸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352)는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유태인에 대해 극단적인 적대 정책을 썼던 독일이 사실은 유태인과 비유태인들이 예외적으로 빠르게 동화되던 사회였다는 점에서 의아스럽다. 그러나 니얼 퍼거슨의 설명은 사실 그게 이상하지 않다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독일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고 (적어도 1920년대, 1930년대 상황에서만큼은), 정권을 잡은 후엔 물적 토대도 만들었던 것이다. – “1930년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경제 기적이 발생했다고 느꼈다. 민족 공동체라는 개념은 화려한 웅변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완전 고용과 높은 임금, 안정된 물가, 빈곤의 감소, 값싼 국민 라디오, 돈이 적게 드는 휴가를 의미했다.” (361) 하지만 어쨌든 독일은 가장 폭력적인 차별과 국제질서를 뒤흔들어버린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되었다. 그게 그들이 이상한 민족이라는 평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점이다.

 

그러나 우연히 생긴 제국이라는 장은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그건 그 제국이 일본이라는 점에서, 그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당연한 감정이랄 수 있다. 니얼 퍼거슨이 쓴 우연히 생긴 제국이라는 말에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 게다가 일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아주 의도적인 힘으로 식민지를 만들었고, 힘으로 눌렀던 그들의 조선 지배는 무시되고 있어서 사실 불편의 정도를 넘어설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우리가 영국인들이 자기네 제국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즐겨 생각하듯이, 몇몇 제국들 역시 그러했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417)라는 니얼 퍼거슨의 글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일본이 이 새로운 식민지 개발에 전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었다” (420)이라는 대목은 그게 조선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중국에 대한 얘기라 할지라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증오의 세기>를 절반 넘게 읽어가고 있는 중이다. 20세기의 역사를 전쟁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지적인 면에서 흥미롭지만 사실 버겁다. 단순히 새로운 관점이라는 말로 인정해버릴 수 없는 대목에는 더더욱 삐걱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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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와 히틀러 | 책을 읽으며 2011-02-1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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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동의 규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충성스럽고 잘 훈련된 군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 규율 없이는 어떤 발전도 이룰 수 없고, 어떤 지도자도 유능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삶과 재산을 그런 규율에 바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럴 의향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야만 더 큰 선을 목표로 하는 리더십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목적이야말로 전쟁 때만 성스러운 책임으로 환기되던 통일된 의무감을 갖게 하고 우리 모두를 결합시킬 것임을 확신하면서, 나는 그런 리더십을 제공할 것이다. 이 서약을 하고 나면 나는 공동의 문제에 일사불란하게 착수하는 데 헌신한 이 위대한 국민의 리더 자리를 주저 없이 맡을 것이다.”

 

니얼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에서 1933 3월의 연설에 대한 이 인용문을 읽으면서 솔직하게 거의 속아 넘어갔다. 1933년이라면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다는 그 해가 아닌가? 말만 보면 옳기만 한 이 연설은 물가는 터무니없이 떨어졌고 세금은 증가했다. 국민들의 지불 능력 또한 줄었다.” 라는 비참한 경제 상태를 언급하고 있으니 더욱 1차 세계 대전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던 독일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저 공동의 문제에 일사불란하게 착수하는 데 헌신한 이 위대한 국민의 리더 자리를 자임한 이는 다름아닌 히틀러라고 생각하기가 편했다. 그러나 이 연설문의 주인공은 바로 대공황을 극복해내고, 또한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그래서 미국에서 유일하게 3번 대통령을 연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이다. 니얼 퍼거슨은 루스벨트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물론 상당히 반어적이긴 하지만).

 

부패한 금융가들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했다고 그토록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실업 문제의 해결책으로 국가 개입을 그렇게 대담하게 제안하고, 자신을 지원하지 않을 경우 법령에 의해 입법부를 장악하겠다고 그토록 뻔뻔하게 위협하고, 청중의 애국심에 불을 지피기 위해 민족국민이란 말을 그토록 냉소적으로 거듭 써먹은 선동 정치가는 누구인가?” (333)

 

그럼 아돌프 히틀러는 그 며칠 후, 1933 3 21일 새로이 선출된 제국의회에서 어떤 연설을 했을까? 니얼 퍼거슨은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영원한 기반을 보호하고자 한다. 우리의 민족 정체성과 그 정체성에 내재된 가치를 보호하고자 한다. (중략) 농민, 시민, 노동자는 다시 한번 하나의 독일 민족이 되어야 한다.”

 

이 유사성! 그런데 왜 이 둘은, 두 국가(니얼 퍼거슨에 의하면 너무도 유사했던 경제적 상황과 정체를 갖고 있던 미국과 독일)는 완전히 상반된 길을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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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문체반정, 보수반동인가? | 책을 읽으며 2011-02-1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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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文體反正)정조의 보수반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백승종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을 읽다 문득 정조를 성군으로 일컫는 이덕일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선왕을 말하다 2>를 펼쳐봤다.

이때 (천주교 문제가 불거져나온 시점) 정조가 남인 신서파를 보호하기 위해 들고 나온 논리가 문체반정이다” (<조선왕을 말하다 2> 316)

문체반정은 상당히 떠들썩한 사건이었으나 실제로는 일부 노론 인사에게 반성문을 요구하고 반성문을 쓰면 관작을 회복시켜준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반성문 쓰기를 거부한 박지원에게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은 데서도 문체반정을 일으킨 정조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조선왕을 말하다 2) 318)

 

그런데 백승종은 이렇게 쓰고 있다.
문체반정은 특정한 정파를 억누르려는 정책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집권층인 젊은 세대를 상대로 한 정조의 문화투쟁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148)

 

무엇이 옳을까? 정조는 개혁군주였을까? (이덕일의 주장처럼, 혹은 많은 사람들의 견해 또는 바램처럼) 아니면 성리학적 이상에 치우진 보수군주였을까? (백승종의 비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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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끼면 더 쉽게 화상을 입는다 | 책을 읽으며 2011-02-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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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석기 시대>는 기존의 의학 상식과는 조금 다른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한다.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인데, 비타민의 효용성, 환경오염과 암과의 관련성, 일조량과 암 발생의 관련성, 선크림이 오히려 피부암에 대한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 그리고 선글라스가 화상을 더 쉽게 입도록 한다는 것 등등이다. 이 밖에도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 대충 골라본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들을 진화의학, 혹은 다윈의학의 견지 해석하고 있는데, 이 연구 결과들이 믿을 만하다면, 그리고 일관적인 결과라면 정말로 귀담아야 할 것이다.

 

비타민 A, C, 비타민 E 제제의 가치를 조사한 67개 연구들을 검토한 결과 비타민을 추가 섭취함으로써 생명이 연장되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음이 밝혀졌다. 때로는 되레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비타민 A를 과잉 섭취한 사람들은 사망률이 16퍼센트 높아졌고, 비타민 E를 과잉 섭취하면 4퍼센트 높아졌다. 비타민 C의 경우에만 차이가 없었다.” (144)

                                      

암으로 인한 사망 가운데 기껏해야 5퍼센트가 환경오염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하는 수천 가지의 천연 물질도 일정량이 넘으면 인공 물질들만큼 암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193)

 

거무스레한 사람들이 일조량이 적은 지역에 살면 쉽게 비타민 D 공급 부족 상태가 될 수 있다. (중략) 연구자들은 미국에서 발생하는 암 환자 중에서 매년 2만 건이 넘는 사례가 사람들이 피부 유형에 비해 햇볕을 너무 적게 쬐어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210)

 

그런데 선크림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시중에 파는 선크림이 피부암에 걸릴 위험을 명백히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15~216)

 

선글라스를 끼면 뇌와 송과선이 일조량을 실시간으로 통제하지 못하게 되므로 피부를 태양으로부터 보호하기가 더 어렵다. 그럼으로써 쉽게 화상을 입는다.”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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