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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제퍼슨은 도대체 몇 번이나 나오는 거야! | 책을 읽으며 2011-03-3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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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은 당연히 토머스 J. G. 마셤이다. 빌 브라이슨이 하고 있는 내 집 여행에서 내 집인 오래된 목사관이 바로 마셤 목사가 처음 짓고 (1851) 살았던 집이니까.

 

그리고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미국의 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다. (이걸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쉽다. 책 맨 뒤의 인명색인을 확인하면 되니까. 물론 읽으면서 . 제퍼슨이 참 자주 등장하네쯤은 느낄 수 있다. 인명색인은 그 느낌을 확인하는 차원이다.)

 

빌 브라이슨이 쓴 이 책이 각종 다양한 것에 대한 잡학을 펼친 것이니만큼 제퍼슨이 등장하는 장면들도 각종 다양한 분야일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제퍼슨은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제퍼슨 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적게 등장하는 편이다. (제퍼슨은 15장면, 프랭클린은 5장면. 한 장면의 서술 길이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럼 제퍼슨은 어떻게 등장하는지 살펴보면,

 

우선 마셤 목사의 증조부가 창시한 생물계절학의 헌신적인 추종자로 맨 먼저 등장한다. (30)

 

그리고는 제퍼슨은 식품 분야의 위대한 모험가로 등장하는데, 빌 브라이슨은 제퍼슨의 업적 중 하나로 아메리카의 역사상 처음으로 감자를 길이로 썰어서 튀긴 것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 그는 미국 독립 선언서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미국 프펜치프라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셈이다. (105)

 

다음으로는 유명한 얘기 중 하나인데, 노예에 관한 것이다. 200명 이상의 노예를 두고 있었고, 25명은 집 안에서 부리는 노예였다는 것 (139). 그런데 그와 여자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얘기는 없다.

 

조명관 관련한 부분에서 빛의 밝기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아르강 램프 얘기가 나오는데, 그 부분에 제퍼슨은 이 아르강 램프의 최초의 열광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148) 또한 난방이 잘 되지 않던 시절 북아메리카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잉크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글쓰기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기록을 남긴 사람으로도 등장한다. (157)

 

그리고 새뮤얼 존슨과도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식당(dining room)에서다. 제퍼슨은 자신의 저택인 몬티첼로에 식당을 마련했다는데, 이게 당시에는 상당히 대담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231)

 

뉴욕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뉴욕 주를 관통해서 이리 호까지 이어지는 운하 때문이라는데, 이것은 Clinton’s Folly라 불릴 정도로 어리석은 일로 간주되었고, 제퍼슨도 이 아이디어를 정신 나간 짓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238) – 제퍼슨이 한 말이라면 하나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빌 브라이슨!

 

그러고는 제퍼슨은 한참을 등장하지 않다가 다시 등장하는데, 바로 와인이다. 한 때 토머스 제퍼슨이 소장했던 와인이라는 평판을 가진 와인이 51 9,750달러는 가치가 매겨졌다는 얘기. 그러나 그 와인을 입수한 후 그 와인을 자랑하려다 음식 카트에 부딪혀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이게 1989년의 일이란다. 이에 대한 빌 브라이슨의 표현이 더 재밌다. “이로써 한 때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었던 것이, 졸지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카펫 얼룩으로 변했다.” (341)

- 제퍼슨과 와인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제퍼슨은 대통령 임기 첫 해에 7,500달러 (오늘날로 따지면 12만 달러)를 와인에 지출했고, 8년 사이에 2만 병의 와인을 구입하기도 했다. (362) 정말 대단한 와인 광신도였던 셈이다.

 

제퍼슨에 관해서 가장 본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그의 저택인 몬티첼로에 대해서다. 빌 브라이슨은 이 세상에 그런 집은 다시 없었다고 하고 있는데, ‘구세계로부터 고개를 돌려서 새로운 미지의 공허를 바라보았다고도 하고 있다. 사실 보지 못한 나로서는 과연 그런 찬사가 과한 것인지, 아니면 합당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빌 브라이슨이니까 이해하고 믿기로 한다. (356) 또한 제퍼슨이 이 몬티첼로를 짓는데 들어간 자재를 직접 만들어야만 했던 사연 (365~366)은 미국 독립 전쟁과 맞물려 있다.

이 대단한 집인 몬티첼로는 제퍼슨 사후 거의 폐허가 되었다가 1923년에 토머스 제퍼슨 기념재단에 의해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나서야 비로소 1954, 200년이 지나서야 제퍼슨이 의도했던 모습대로 서게 되었다. (370)

제퍼슨의 몬티첼로는 페인트와 관련해서도 등장하고 (386), 해충을 쫓기 위한 철사 방충망과 관련해서도 등장한다. (391) 또한 몬티첼로는 미국 최초로 실내 화장실이 설치된 집이었다. (429) 어떻게 이렇게 빌 브라이슨이 몬티첼로에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해지낟. 아마도 몬티첼로와 같은 집을 가지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본다면 그럴 수 있겠다.)

또한

 

그런데, 제퍼슨은 몬티첼로과 관련한 대목에서 기록 혹은 성실함의 종결자로 등장하는데, 제퍼슨은

“50년 동안 한번도 침대에 누운 채로 아침 해를 맞이한 적이 없다고 장담했으며, 83년의 생애를 한시도 허비한 적이 없었다. 그는 열성적인 기록자였다. 언젠가는 무려 7권의 공책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일상생활의 가장 현미경적인 세부 사항을 기록하기도 했다. 매일의 날씨, 철새의 이주 대형, 꽃이 피어난 날짜 등을 철저하게 적었다. 자신이 쓴 1 8,000통의 편지 사본을 보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받은 5,000통의 편지 사본도 보관했고, 무려 650쪽이 넘는 서한 기록에 모조로 꼼꼼하게 기록했다. 단돈 1센트까지도 수입과 지출을 기록했다. 1파인트짜리 항아리 하나에 완두콩이 몇 개나 들어가는지 기록했다.” (360)

- 바로 이러한 제퍼슨이니에 이 책에 그리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길렀던 250종의 식용 식물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으면서 거의 저택 몬티첼로 자체의 물품 명세서는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기 책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끝으로 제퍼슨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통령인 제퍼슨이 총을 조립하는 장면이다. (478)

 

참고로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미국 2달러 지폐의 인물이 바로 토머스 제퍼슨이다. 지난 해 미국 학회에 참가했다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아이들 선물로 초콜렛을 사면서 지갑에 남아있던 달러를 탈탈 털었는데, 계산하는 직원이 놀라면서 물었었다.

이거 2달러짜리 지폐인데, 내도 괜찮아요?”

난 그냥 괜찮다고 내버렸는데 (진짜 탈탈 털었으니까),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가 된다. 그 후의 약간의 불운이 그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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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긍정의 배신] - 긍정이 당신의 뒤통수를 노린다! | 끄적이다 2011-03-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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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입니다!

[서평단 모집]
'긍정'은 어떻게 신자유주의 '명랑' 전도사가 되었나!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
304쪽|값 13,800원 (3월 28일 출간 예정)

이 책을 ‘강추’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신뢰하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 한명숙 전 총리

 

바버라 언니 말을 새겨듣고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하위 80퍼센트에 속하는 우리는 짐승의 지옥에 처해질지도 모른다. ‘경제적 착취의 대상으로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지면’ 엘리트들은 우리를 분리 소거해 버릴 테니까. - 황인숙 시인

 

“누군가 이런 책을 쓰기를, 평생 기다렸다."
 - 한나 로진, <뉴욕타임스> 북 리뷰

 

“오프라 윈프리, 디팩 초프라에게 말하노니, 제발 이 책을 읽어라! 똑똑하게 생각하는 건 언제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 - 프레더릭 크루스 『Follies of the Wise』저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만 보고,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가리고 저마다 자신의 쳇바퀴에만 열중하게 만드는 ‘긍정주의’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자!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병원에서도 혹은 내 옆의 친구조차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긍정의 배신>은 초대형 교회부터 기업 및 경제 현장은 물론이고 자기 계발의 강박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까지, 긍정이 판치는 세상의 음모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달콤한 환상을 주는 긍정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방법, 바로 이 책 속에 있습니다. 

미국 출간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각 매체의 찬사를 받은 반면, <시크릿> <긍정의 힘> 독자들과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긍정의 배신>을 먼저 읽고 솔직한 감상을 들려주실 독자를 찾습니다.
 독자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지금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참여하세요!

 

이벤트 기간 : ~ 2011년 3월 30일


이벤트 참여 방법 :
이벤트페이지 스크랩 후 스크랩 주소를 덧글로 남겨주세요.

스크랩 주소만 있어도 됩니다. 서평 신청 이유 길게 안 쓰셔도 됩니다!

 

당첨자 발표 : 2011년 3월 31일 오후 3시

 

당첨자 서평 게재 마감일 : 2011년 4월 16일

 

참여하신 분 중 5분을 추첨하여 『긍정의 배신』서평도서를 드립니다.

 

★ 당첨되신 분들은 도서 수령 후 2주 이내에 리뷰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작성된 글은 홍보 및 기타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미리 공지하여 드립니다.

★ 마감일까지 서평을 쓰지 않으신 독자님은 다음 서평단 선정시 우선적으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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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쓴 에디슨 | 책을 읽으며 2011-03-2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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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 에디슨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

우리의 집에서, 즉 우리의 사생활에서

에디슨의 발명품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몇 차례 등장하진 않는다.

그건 빌 브라이슨이 적고 있는 대로 그의 발명품들이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한번 등장하면 그에 대한 얘기는 길다.)

 

에디슨에 대한 빌 브라이슨의 언급들은 재미가 있다.

우리가 에디슨을 위대한 발명가나

어린 시절의 아둔함과 창조성의 모호한 경계의 인물, 혹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운운의 경구의 주인공 정도로

기억하는 것도 그에 대한 진실일지 모르지만

빌 브라이슨은 적어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하고 있다.

조금은 야유가 섞이지만

그것은 빌 브라이슨 특유의 발칙함때문이며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에 가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에디슨에 조금 가혹하다면

에디슨이 그만큼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디슨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모아보았다.

 

“1877년부터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빛을 만들려는 탐구를 시작한 에디슨은 이미 멘로 파크의 마술사라는 별명으로 알려지던 중이었다. 에디슨은 완벽하게 매력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속임수나 거짓말을 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고, 여차하면 특허를 훔치거나 언론인에게 뇌물을 주고 호의적인 기사를 얻어냈다. 그의 동시대인 가운데 한 사람의 말을 빌리면, 그는 양심이 있어야 마땅한 곳이 진공 상태인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취적인 근면했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직가였다.” (164)

 

사실 이 모두는 토머스 에디슨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전구를 만드는 데에서 발휘되었다기보다는, 대규모의 상업용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방법을 만드는 데에서 발휘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략) 토머스 에디슨 덕분에 전기 조명은 그 시대의 경이가 될 수 있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전기 조명이 에디슨의 발명품들 가운데서도 그나마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제 구실을 했던 극소수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 (169)

 

그들(미국인들)은 진보의 관념에 워낙 매료되었던 나머지, 과연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물건을 발명하곤 했다. 이런 현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토머스 에디슨이었다. 뚜렷한 필요나 용도가 없는 물건을 발명하는 데에 있어서라면 세상 누구도 그보다 더 뛰어날 (또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나쁠’) 수가 없었다.” (275)

 

에디슨이라는 인물이 이 세상에 아직 없는 어떤 물건을 만드는 데에 뛰어나다는 사실을, 동시에 이 세상이 어떻게 그 물건을 이용할지를 예측하는 데에는 끔찍하게 서투르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는 축음기를 여흥의 도구로 사용하는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에는 완전히 실패했고, 다문 그 물건을 구술 작업과 음성 기록을 위한 장치 실제로는 그는 이를 말하는 기계라고 불렀다-로만 생각했다. 여러 해 동안이나 그는 활동사진의 미래가 스크린 상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데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는 누군가가 표를 사지 않고도 몰래 관람실로 들어와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는 그 장치를 오직 손으로 돌리며 들여다보는 상자 안에만 가둬두었다. 1908년에는 항공기에 아무런 미래가 없다고 자신 있게 단언했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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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존슨을 다시 만나다 | 책을 읽으며 2011-03-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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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존슨을 다시 만났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에서 처음 그 이름을 읽었고,

<편집된 과학의 역사>에서 금방 다시 만나 반가웠던 그 이름을
(http://blog.yes24.com/document/3452465)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도 만났다.
영어사전 편찬자였으니 언어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누구보다도 박식한 빌 브라이슨이니 새뮤얼 존슨이 안 나올리가 없다.
아마도 그의 <발칙한 영어 산책>에도 나왔을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는 이렇게 나오고 있다.
"새뮤얼 존슨은 가능할 때면-물론 대개 가능했다-정오까지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144쪽)
 
"실제로는 새뮤얼 존슨이 1755년에 펴낸 사전에만 이 단어(식당, dining room)가 등재되었을 뿐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이 자택 몬티첼로에 식당을 마련했을 때에만 해도, 이는 상당히 대담한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 식사는 어떤 방이든지 자기가 편한 곳에서 작은 탁자에 놓고 먹었다." (231쪽)
 
"1755년에 새뮤얼 존슨은 여전히 이것("런천(luncheon)")을 식품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정의했으며 -"사람이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만큼의 음식"- 이후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천천히, 이 단어는 최소한도의 교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의 중반쯤 먹는 식사를 가리키게 되었다." (236쪽)
 
이렇게 새뮤얼 존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쓰고 있자니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무슨 특별한 애정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어떤 한 사람, 혹은 단어 등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계속 지나치나가
우연히 내 의식 안에 포착되어 계속 의식되는 것을 겪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하고, 혹은 전형적인 것 같을 뿐이다.
그래도 이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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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고기에서 나온 MRSA를 비교해보니 | Science 2011-03-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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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나온 MRSA에 관한 제 논문을 소개합니다. 

 




매스컴 때문에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MRSA) 

여러 면에서 문제라는 것은 많이 알고 있습니다. 

MRSA는 과거에는 병원 내에서만 나온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등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지역사회 감염 MRSA, 이른바 CA-MRSA에 대해 보고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 병원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MRSA 감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CA-MRSA는 병원 MRSA와는 일반적으로 다른 클론 (clone)입니다. 

미국에서는 USA300 clone이라는 것이 CA-MRSA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ST72라는 클론이 대표적인 CA-MRSA 클론입니다. 

우리나라는 병원과 지역사회의 구분이 있으나 마다 한 형편이라

MRSA도 병원 것과 지역사회의 것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되어

병원 MRSA의 대표적인 클론인 ST5 ST239 CA-MRSA로 나오고, 

반대로 ST72가 병원 내에서도 돌기도 합니다.  

 

그런데,  ST72 MRSA라는 것은 외국에서는 드문 

우리나라에 상당히 고유한 MRSA 종류라는 게 특이합니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가 궁금해지는데

아직까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ST72에 해당하는 메티실린 감수성 황색포도상구균 (MSSA)에 내성 관련 유전자 덩어리인 SCCmec이 들어가서 내성 균주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실제 ST72 MSSA는 드물게 나오는 형편이라 확실하지는 않은 추론입니다. 

 

제 논문은 ST72에 해당하는 균주들을 비교한 논문입니다. 

2-3년 전부터 동물 (고기)에서 ST72 MRSA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과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수의과학검역원에 의뢰를 해서 균주를 얻고, 

토양에서도 나온 ST72 MRSA도 포함해서 

유전체 상의 여러 부위의 염기서열을 비교함으로써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어떤 관련을 갖는지는 그림을 보고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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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심의 진화 | 책을 읽으며 2011-03-2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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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음의 두 뉴스 중 어떤 쪽에 더 반응하는가?

 

일본 대지진으로 숨진 사람이 9,000명을 넘었습니다. 일본 경찰청은 오늘 사망자가 9,079명으로 늘어났고, 실종자도 만 2,645명으로 집계되는 등 지진으로 인한 사망, 실종자가 2 1,724명으로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YTN)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예요….”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나미에(浪江) 정에 사는 나베시마 유키(鍋島悠希·12) 양과 유스케(悠輔·7) 군 남매는 대지진으로 부모와 헤어진 지 열흘이 넘었지만 울지 않는다. 찾고 또 찾으면 언젠가는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대지진이 일어났던 11일 평상시와 다름없이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유키 양은 대피 경보가 울리자 평소 훈련했던 대로 가까운 산으로 급히 피했다. 쓰나미가 물러간 뒤 산을 내려와 지나가던 대형 트럭의 짐칸을 얻어 타고 대피소로 갔다. 하지만 대피소에는 가족 누구도 없었다. 나미에 정에 있는 신사(神社)의 사무소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는 차를 타고 대피하다 쓰나미에 휩쓸린 뒤 실종됐다.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나미에 정에는 후쿠시마 원전에서부터 20km 이내여서 갈 수 없었다. 현재 경찰과 자위대도 구조작업을 멈추고 철수했다. 다행히 대피소를 떠돌다 유치원에 갔다 실종됐던 남동생 유스케 군을 기적적으로 만났다. “유스케, 내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 유키 양은 오랜만에 웃었다. 유키 양 남매는 15일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남매는 울지 않은 채 잡다한 집안일도 돕고 있다.” (동아일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 두 번째와 같은 사연에 사람들은 더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그걸 인식가능희생자효과라고 한다. , 고통받고 있는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을 때 더 큰 동정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심리학> 353) 그래서 사람들은 수십 만 명이 학살당한 르완다나 다르푸르의 얘기보다 단 한 명의 아기가 납치되어 잔인하게 살해된 얘기에 더 큰 동정심을 가지고 성금을 보내게 된다. 아마도 언론들도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 대지진 보도에서도 몇 명이 죽었다는 것은 그냥 단신처럼 취급하고 구체적인 사람의 얘기는 공들여서 보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연에 가슴 아파하고

댄 애리얼리는 그런 당연한(?) 효과를 실험으로 검증해보았다. 사전에 감정적으로 유도된 사람일수록 더 많은 동정심을 갖게 된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사람들은 일단 통계적인 정보를 접한 후에는 다른 이의 비극에 대해 특별히 더 높은 수준의 동정심을 갖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러니 냉철하고 계산적인 사람들은 커다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뿐더러 동정심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 이성적 사고 방식과의 동정심 혹은 이타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데, 댄 애리얼리의 이 실험과 통찰은 그냥 그렇다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상식밖의 경제학>같은 행동경제학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그렇다면 어쩌라는 건데?”하는 비판에 대한 답인 듯도 싶다. 그건 일반 사람들이 동정심을 느끼기 어려운 분야에 대해서 (예를 들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는 많은 기부금에 몰렸지만 더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 에이즈에는 훨신 적은 기부금에 들어온다) 정부와 비영리조직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나서는 것은 정치적으로 유리한 행동이긴 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덜 받는 분야에 원조의 손길을 뻗어야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대통령이 언론에서 하게 다룬 하나의 사건에 관심을 가져 일선 경찰서를 찾아가는 것보다 사람들이 동정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는 전체적인 숫자와 관련된 사안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와는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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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 책을 읽으며 2011-03-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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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가 도착했다. 

중앙일보에 난 책 소개를 보고 바로 주문을 했었던 터다. 
빌 브라이슨인데 안 읽을 수가 없다. 
덤으로 끝에 함께 소개된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시크릿 하우스>도 주문하려고 했는데, 이건 품절이란다. 그래서 함께 주문한 것이 <시크릿 패밀리>다. 
그런데 지은이를 보니 그가 바로 <E=mc2>을 쓴 사람이다. 
내가 본 가장 훌륭한 과학 교양 서적 중의 하나가 바로 <E=mc2>이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까치
568쪽, 2만5000원


초컬릿이며 사탕, 비스킷으로 가득 찬 방에 들어간 어린아이의 심정이 이럴까. 이 책은, 읽을수록 감당하기 힘든 진수성찬을 맛보는 기분이다. 언뜻 위압적인 제목에 제법 부담스런 분량인데도 그렇다.

 지은이 덕분이다. 미국 출신이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인 브라이슨의 유머 감각과 정심박대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저서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나를 부르는 숲』은 읽는 이를 데굴데굴 구르게 할 정도로 웃음을 자아냈다. 고급스런 유머 작가인가 싶었는데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선 깊이와 재미를 두루 제공하는 과학사 전문가로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엔 은근한 웃음과 감탄스런 탐구정신이 어우러졌다.

1790년대 유럽에서는 기름 먹인 양모와 말총을 자기 머리카락과 뒤섞어 머리모양을 하늘 높이 치솟게 하는 것이 유행했다. 사진은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탈의실 편’에 실린 그림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일상생활의 역사를 파고 든 것이다. 영국 노퍽 주의 한 목사관(館)으로 이사간 지은이는 어느날 다락에 올랐다가 지붕으로 이어지는 비밀문을 발견한다. 지붕 위에서 주변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던 그는 문득 역사를 이렇게 보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전쟁이나 국제조약을 연구하는 데 공을 들이면서 왜 먹는 것, 자는 것, 성행위 등 일상의 역사는 소홀히 하는가란 의문을 품은 것이다.

 브라이슨은 자신이 사는 목사관을 탐방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물론 인류사의 전반이 아니라 런던에서 ‘만국 산업박람회’가 열렸던 1850년 이후, 그러니까 근대의 형성기 150년 동안의 ‘사소한 것들의 역사’를 다뤘다. 벽에 달린 두꺼비 집 안을 들여다 보며 조명, 석유, 전기의 발전과정을 살피고, 화장실에서 위생과 목욕의 역사를 조명하는 식이다. 한데 이것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부엌’ 편을 보자. 18세기 영국에선 불량식품이 판을 쳤는데 런던의 빵은 “백묵, 명반, 골회의 혼합물로 맛은 싱거운데다가 신체에는 파괴적”이란 평을 들을 정도였다. 당시 가계지출의 80%가 식품 관련이고, 그 중 80%가 빵 값이었는데도 그랬다. 당연히 단속이 엄격했을 수밖에. 빵 무게를 속인 제과업자는 한 달 동안의 중노역 형에 처해졌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유형도 논의됐다. 빵을 굽는 과정에서 증발작용을 통해 무게가 줄었으므로 제과업자들은 본의 아니게 실수를 범할까 걱정스러웠단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덤이었다. 13개를 뜻하는 영어의 관용적 표현 ‘제과업자의 12개(baker’s dozen)’은 빵 12개를 사는 고객에게 1개씩 더 얹어준 데서 유래됐다.

 얼음 사용, 통조림 등 식품보관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영국 귀족의 식탁에서도 ‘작은 애벌레’가 꿈틀거리는 음식을 보기 일쑤였다. 이에 착안한 미국인 프레데릭 튜더는 1844년 매사츠세츠 주의 웨넘 호수 얼음을 런던에 가져가 팔았는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를 본 노르웨이 사람들(지은이는 약삭빠름을 이야기할 때 머리에 쉽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아니란 풍자를 곁들였다)이 오슬로 인근 호수의 이름을 웨넘으로 바꿔가며 이 수지맞는 시장에 끼어들었다고 한다.

 누구든 평생 30% 안팎의 시간을 보내는 ‘침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침실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의 불순물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 탓이었다. 이 때문에 개인 불순물의 혼합 위험성을 감소하기 위해 부부에게 트윈 침대가 권장되었다. 심지어 미국의 의사 중에는 “피부 털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독성 물질이 함유되었으므로 침구 아래 공기는 극도로 불순하다” “미국 사망자들 가운데 최대 40% 가량은 잠자는 동안 건강에 나쁜 공기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도 나온다. 남성의 정액은 자연산 불로장생약으로 간주했다. 그러니 결혼한 부부라도 정액은 ‘검소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했기에 부부생활도 최대 1개월에 1회까지만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는 지금 깨끗하고 따뜻하며 배부른 상태를 위해 누리는 갖가지 편의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너무 익숙한 탓이다. 책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얼마나 많은 선구자들의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일깨워 준다. ‘집’ 또는 ‘일상’이란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시크릿 하우스』(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생각의 나무)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일상 행위를 과학적으로 조명했는데 쉽고, 재미있게 교양을 쌓을 수 있는 탁월한 책이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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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 위대한 희망을 꿈꾸고 있는지 | 책을 읽으며 2011-03-2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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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감정을 이길 수 있고,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 아니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 믿고, 기대한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그러한 우리의 희망적인 기대가 그저 기대일 뿐이라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은 그러한 비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성의 승리에 대해 갈망을 하고 희망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댄 애리얼리의 <경제심리학>은 그러한 총체적인 비이성적의 승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개별적 사안에 대한 통찰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실험. 우리가 단지 직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들에 대한 실험이 바로 이 책의 요점이자 모든 것이다. 직관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실상은 그 직관이 오류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결과를 보는 것이며, 그 결과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바로 실험이다. 너무나 당연한 듯한 이 책의 몇 가지 내용조차도 빛이 나는 것은 댄 애리얼리의 정교하고 세심한 실험들 때문이다.

 

이러한 댄 애리얼리를 비롯한 여러 사회과학자들의 실험들은 다분히 사변적인 것으로만 여기던 사회과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생물학을 하고 있고, 현대 생물학이란 거의가 실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사변적인 사회과학에 의문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가끔(사실은 자주일 수도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도대체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그 궁금함은 사실은 반감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정교하지 못한, 근거가 불충분한 사변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의 실험들은 사회과학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치는 댄 애리얼리가 얘기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있다 해도 직관은 단지 직관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공공정책과 공공제도를 더욱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기를 바란다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한 더 많은 실증적인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효과를 알 수도 없는 계획에 수십 억 달러의 돈을 쏟아 붓기 전에 먼저 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소규모의 실험들을 행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실험들을 충분히 행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접근법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431~432)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회과학은 어떤지 궁금하다. 내가 상황을 모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자격도 없지만, 과연 사회과학의 위대한 희망을 꿈꾸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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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책을 발견하다 | 책을 읽으며 2011-03-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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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 얘기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내가 읽은 책일 때, 그건 상당히 기분 좋은 경험이다.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책에선 대충의 내용을 알려주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다.

댄 애리얼리의 <경제심리학>에서도 그런 기분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바로 자카리 쇼어의 <생각의 함정> (171)과 대니얼 길버트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가 그 책들이다. <생각의 함정>은 자신의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집착한 부정적인 예로 토머스 에디슨을 소개하면서,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는 적응과 행복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면서.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난 그 책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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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는 조금 다르다 | 책을 읽으며 2011-03-1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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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두 권이나 사버린 (http://blog.yes24.com/document/3433323) 댄 애리얼리의 <경제심리학>을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댄 애리얼리는 <상식 밖의 경제학> (Predictably Irrational)을 읽고 팬이 되어버린 경제학자이다. 그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내가 찾아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정해버리는 것이었다.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에 대한 책들은 많이 나왔다. 경제학이니, 심리학이니 서로 학문 분야를 서로 달리 부르지만 결국은 비슷비슷한 예를 통해 기존에 합리적이라 믿고 있던 (혹은 믿고 싶었던) 인간 행동의 오류를 짚어내는 책들이다. 서로 다른 분야를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접근하는 방향은 다르고, 또 몇 가지의 새로운 연구 내용을 포함하지만 그 쪽 분야에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독자의 입장에서 별로 달라 보일 것도 없다.

 

하지만 댄 애리얼리의 책은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는 그는 저술가가 아니다. 무슨 얘기냐면,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모아서 그것을 해석해서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란 얘기다. 그의 책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연구 내용이 가장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좀더 생생하다.

 

일단 1장과 2장을 읽었다. 개별적인 장(chapter) 스스로 완결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생각을 하게 한다.

 

1장의 제목은 높은 인센티브의 함정이다. 너무 많은 인센티브가 오히려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내용이다. 너무 많은 인센티브를 받는 CEO들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가 업무에 도움을 주는, 적당한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제안하는 글이기도 하다. 내 입장에서는 논문 인센티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대학에서는 논문 쓰기를 장려하기 위해서 논문 1편 당 얼마씩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별로 그 액수는 다르다. 물론 주지 않는 대학도 있다. 그런데 그 액수가 어느 정도여야 논문을 많이 쓰고, 더 좋은 논문을 쓰게 하는데 적당한지에 대해선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대학 당국에서도 생각해봤을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예산 범위 내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전부이지 않았을까 싶다. 받는 입장에서는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보다 편당 2배 정도 더 많은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아마 지금보다 조금은 더 열심히 논문을 쓰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지금보다 덜 쓰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게 편당 5배라면 어떨까? 아마도 지금보다 덜 쓸 것 같다. 예를 들어 10편을 쓰던 것을 2편만 써도 되니, 4편 정도 써서 두 배를 받는 것이 고생도 덜 하고 인센티브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댄 애리얼리는 이것을 실험을 통해서 증명하고, 설득력 있게 얘기하고 있다.

- 그러나 난, 더 많이 받고 싶다. 나는 주는 입장이 아니므로

 

2장의 제목은 일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직업 혹은 일의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직업의 의미는 중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잘 설명되어 있다. (제대로 기억은 못하지만) 생계 수단뿐만 아니라 자아 실현의 수단이라는 점. 그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2장이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실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이다. ,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노동에 대한 충분한 동기가 되지 않으며 노동의 의미를 박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나친 분업이 노동의 소외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업무의 효율에서도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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