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에나의 밑줄긋기
http://blog.yes24.com/ninguem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ena
남도 땅 희미한 맥박을 울리며...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2·4·7·9·10·11·12·13·14·15·16·17기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25,349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끄적이다
책을 읽으며
책읽기 정리
Science
책 모음
이벤트 관련
나의 리뷰
책을 읽다
옛 리뷰
한줄평
영화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과학이슈 14기파워문화블로그 몽위 문학신간 리커버 이그노런스 주경철의유럽인이야기 파인만에게길을묻다 12기파워문화블로그 물리학
2011 / 0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최근 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재미난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 
ena님! 우수리뷰 선정되신 거 축하.. 
저도 이과를 선택해서 이공계열 대학을.. 
우수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 ..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새로운 글

2011-05 의 전체보기
콜리스틴 내성 녹농균에 대한 논문 발표 | Science 2011-05-31 14:14
http://blog.yes24.com/document/424254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오늘 저희 실험실 논문이 출판 발표되었습니다.

느낌으론 한참 전에 게재 허가를 받았는데 이제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널이 3개월에 한번씩 출판되는 것이라 늦어지기도 했지만,

이 논문에 발표된 연구에 추가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논문 제목은 “Identification of nonclonal Pseudomonas aeruginosa isolates with reduced colistin susceptibility in Korea”이고,

Microbial Drug Resistance 6월호에 실렸습니다.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에 대해서, 그리고 폐렴간균 (Klebsiella pneumoniae)에서 콜리스틴 (colistin) 내성에 관한 연구들을 했었고, 논문도 계속 냈는데,

이번 것은 그것을 녹농균 (Pseudomonas aeruginosa)로 연장시킨 것입니다.

사실 아시네토박터와 녹농균은 더불어 비발효균(non-fermenter)라 해서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을 만큼 비슷한 세균 종류입니다.

지금은 아시네토박터가 더 각광(?)을 받지만

전통적으로 녹농균이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연구도 많이 되어 있는 세균입니다.

 

요즘 유럽이 슈퍼박테리아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장출혈성 대장균에 의한 감염인데,

뉴스 가운데 많은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이 세균에 대한 치료로

어떤 항생제를 쓰면 신장의 기능이 나빠진다는 얘기를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항생제가 콜리스틴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그람 음성)세균에 대한 치료 항생제로 쓰이는 것이

바로 예전에는 신장독성의 문제 때문에 쓰이지 않았던, 콜리스틴과 같은 항생제입니다.

오랫동안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 내성률이 높지 않은데

실험을 해보면 쉽게 내성이 유도되는 것으로 보아서

사용량이 늘면 내성이 늘어날 것은 거의 명약관화해 보입니다.

 

저희 논문에서는 우리 나라 녹농균 중 7.4% 정도가 콜리스틴에 비감수성 (내성과 중등도 내성 포함)을 보이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서로 유전자형이 달라 독립적으로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으나

일부는 똑 같은 유전자형을 갖는 것도 있어서 이들은 아마도 동일한 클론이 전파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유럽의 슈퍼박테리아 파동에서도 보듯이

항생제 내성은 멀리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아들이 그린 그림, 임페스티 태란 | 끄적이다 2011-05-31 10:32
http://blog.yes24.com/document/424177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아들이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고 건네네요.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캐릭터라고 합니다. 

아빠도 당연히 알거라고 하면서 건넸지만

유감스럽게도 전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은 별 흥미가 없어서...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5)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영원한 삶은 재앙 | 책을 읽으며 2011-05-30 17:18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423466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는 전체적으로는 물리학 교양 서적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수학도 있고, 생물학도 있고, 또 철학도 있지만 (물론 철학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지만) 가장 공들여서, 그리고 가장 전문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물리학이다. 

 

물론 그렇기에 그 부분이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자꾸 건너뛰기를 반복하고 말았다. 

반면 아마도 부록 같은 '영생의 삶'에 대한 사유 부분은 여러 번 읽게 된다. 
무한한 우주에서 무한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런 상상은 '영원한 삶'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는데, 
인류가 단 한 순간도 꿈을 꾸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바로 그 삶. 
바로 '영생'!

그런데 그 영원한 삶은 악몽과 같은 것이란 걸 '무한'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냥 저자의 이야기를 옮겨 적어 본다. 

"만일 삶이 영원하다면, 발전도 긴박한 상황도 성취감도 없을 것이다." (308쪽)

"결혼은 어떻게 될까? 
일부다처제가 확산될까?
가족 간의 갈등이 매우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점진적인 가정 해체를 초래할까? 
대가족은 늘어나는 구성원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해체될까?
가부장주의는 사라질까?
가족의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감소할 것이 분명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좀 더 평화롭게 공존하게 될까?" (309쪽)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종교들은 어떻게 될까?
그런 종교들은 초점을 삶의 양에서 질로 바꾸게 될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도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어떤 종교들은 현 상태로 지속되는 영원한 삶은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삶은 다가올 위대한 일들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기 때문에, 
천국의 문 앞에 영원히 무무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309쪽)

"결혼하는 사람은 무수한 친척들을 새로 얻을 것이다.
기술자는 견습생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공학자는 고려해야 할 사항과 참조해야 할 전례가 무한히 많아서 
대형 프로젝트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끝없는 문의와 상담 때문에 지체된 미완성 프로젝트로 가득 찰 것이다. 
개인적인 성취감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 당신의 친척들인 무수히 많은 경험자들의 조언이 끊임없이 들려올 것이기 때문." (314쪽)

"의심이 팽배하고, 비밀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비밀은 결국 드러나고, 아주 오래 지속되는 결혼은 드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불미스러운 비밀이 드러나서 깨지는 결혼보다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깨지는 결혼이 더 많은 것이다. 
우정도 마찬가지로 위태로워질 것이다.
(중략)
가능한 모든 것이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때
밀려드는 심리적인 압박감은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다.
사람들은 충만하고 활기찬 유한한 삶이 보람없는 영생보다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314쪽)

바로 유한한 삶이 우리 문명, 아니 우리 세계의 기초인 셈이다. 
그런 유한 삶 때문에 영생을 약속하는 종교가 나오지만, 
사실은 영생에 대한 약속은 기만일 수 밖에 없단 생각이다. 
이는 '저 세상'에서의 무한한 삶 역시도 마찬가지로 재앙에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런 무한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유한한 삶이야말로 목표를 만들고, 
비록 좌절할 때가 많지만 성취감의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 기대야말로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유한한 삶보다 불멸을 더 선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들은 삶의 유한성을 전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 순간 더 오래 살기 위해 노력할 이유는 있지만, 

삶을 영원히 지속할 까닭은 없다." (317쪽)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부정의 직업, 과학자 | 책을 읽으며 2011-05-29 22:3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422761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랜디 올슨의 <말문 트인 과학자>는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소통 능력 부족, 대책 없는 고지식함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래도 전직이 과학자인 만큼 과학자의 행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과학이라는 작업이 과연 무엇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정말 그럴 듯하고, 공감이 간다. 바로 부정의 정신이 바로 그것인데 물론 랜디 올슨은 이걸 비판의 근거로 삼는 듯하다. 바로 이런 부정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과학자들은 비호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지만 적어도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고 있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래 그렇지. 그래야 하지이렇게 받아들이게 된다.

 

과학이란 작업의 핵심에는 한 단어가 있다.

바로 아니다이다.

과학은 이미 정립된 요소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요소들을 걸러내는 학문인 것이다.” (185)

 

사실은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것과 과학을 잘하는 것은 꼭 일치하지가 않는다. 물론 상관 관계가 없을 순 없겠지만, 기존의 것을 잘 받아들이는 공부와 그것을 부정해야만 하는 과학의 운명은 사실 서로 호응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과학자는 어떤 글을 읽을 때 글쓴이가 잘못 생각할 수가 있다는 걸 가정하고 읽는다. 그리고 글쓴이는 데이터나 인용문들을 제시하며 자신이 틀리지 않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다. 논문에 포함된 모든 가설마다 과학자는 이걸 그대로 믿어도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읽는다.
글쓴이가 데이터에 관련된 그래프나 도표 혹은 인용문을 제시할 때 역량 있는 과학자라면 거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포착한다.

그렇게 모든 데이터를 검토하고 인용문들을 뒤져봐도

제시한 가설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내지 못할 때,

비로소 긴장을 풀고 , 이 정도면 넘어가도 되겠네라고 안도하는 것이다.” (185)

 

바로 그렇다.

내가 논문을 읽을 때의 모습이 그렇다.

그래야만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태도가 다른 책을 읽을 때도 툭툭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쓴 독후감은 좀 가시가 돋혀 있다.

(그러니 비호감일 수 밖에)

 

부정의 직업을 살고 있는 운명.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조금이나마 따뜻해져야 하는 것.

그게 미션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100년 전쟁의 향방을 바꾼 우박 | 끄적이다 2011-05-27 15:21
http://blog.yes24.com/document/420411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엊그제 반디의 <날씨와 역사>란 책의 서평단 모집에 당첨이 되었고, 
그 책이 방금 내게 도착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사이언스타임즈'에 날씨가 역사 (특히 전쟁)의 줄기를 바꾼 예에 대한 글이 실렸다. 
"기후와 전쟁"이라는 연재물 중 세번째 글인데 앞의 글부터 읽어봐야겠다. 
물론 <날씨와 역사>도 읽어야겠지만


100년 전쟁의 향방을 바꾼 우박

'얼음 폭탄'에 멈춰 선 영국군

2011년 05월 27일(금) 

14세기 초반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서쪽 지역을 반이나 지배하는 프랑스 최대의 귀족이었다. 개혁을 통해 군대와 재정을 강하게 한 영국 왕은 프랑스의 실질적 지배에 욕심을 냈다. 

여기에는 날씨의 영향도 컸다. 1250년께부터 소기후 최적기의 온화하던 날씨가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소빙하기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습하고 기온이 낮은 날씨가 이어졌다. 

1310~1320년의 10년간은 특히 비가 많이 내려, 농사에 타격을 입었다. 영국과 유럽은 고통에 빠져들었다. 밀 값은 3배나 올랐다. 영국 어느 지방에서는 아사(餓死)와 병사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을 정도다. 프랑스도 다를 것이 없었다. 프랑스 북부의 밀과 포도 재배 지역에 흉작이 들어 100만 명이 사망했다. 영국 왕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프랑스의 실질적인 지배가 필요했다

마침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후손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 에드워드 3세는 어머니가 카페 왕조 출신임을 내세워 자신에게 프랑스 왕위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남계(男系)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살릭법’을 들어 에드워드 3세의 왕위계승을 거절하고 필립 6세를 왕으로 옹립했다.

에드워드 3세, 6차에 걸쳐 프랑스 침공



▲ 에드워드 3세의 초상화 
프랑스를 공격할 명분을 찾던 에드워드 3세는 플랑드르 지방으로 수출하는 양모 공급을 중단시켰다. 

프랑스 북쪽 지방의 플랑드르는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역이었다. 양모공급 중단으로 프랑스 경제가 어려워지자 프랑스의 필립 왕은 프랑스에 있는 영국 땅인 기옌 지방의 몰수를 선언했다. 기옌 지방은 가장 좋은 포도주의 원산지인 보르도가 속한 곳이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고 이때부터 무려 6차에 걸쳐 프랑스를 원정 공격하게 된다.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배후에서 공격할 수 있는 해군력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에드워드 3세는 먼저 프랑스 해군을 공격했다. 슬루이스 해전에서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해군을 철저히 격멸했다. 에드워드 3세는 육상에서의 싸움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가장 큰 승리는 1346년 크래시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에드워드 3세는 이 전투에서도 슬루이스 해전과 마찬가지로 날씨의 도움으로 승리했다.

1348년에서 1351년 사이에 흑사병인 선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했다.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죽어갔다. 흑사병으로 잠시 전쟁을 쉬었던 에드워드 3세는 1356년에 다시 프랑스를 공격했다. 

그는 푸아티에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프랑스 왕을 사로잡았다. 1359년 11월 10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영국군은 랭스로 진격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프랑스 왕실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곳이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이곳을 점령해 프랑스의 왕위에 오를 계획이었다. 프랑스 도시들은 요새를 쌓고 아예 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랭스는 겨우내 영국군의 공격에 저항했다.

에드워드 3세는 전쟁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1360년 4월 13일 그는 샤르트르로 진격해 갔다. 진격해 가는 중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공기가 무섭게 차가워졌다. 강한 폭풍우와 함께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둘기 알만 한 크기의 우박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짐을 실은 수레는 강풍에 날아가고 병사들은 우박에 맞아 쓰러져 갔다. 우박과 함께 내려치는 번개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전기에 감전돼 쓰러졌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병사와 천 마리 이상의 말이 죽었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엄청난 피해였다. 

기세등등 영국군, 우박에 초토화


▲ 백년전쟁 당시 전투도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할 때에 여호와께서 큰 덩이 우박을 내리우시매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여호수아 10장 11절)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우박으로 승리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던 동맹군이 우박으로 패배를 당했다. 이때 우박(雨雹)에 맞아 죽은 병사의 수가 이스라엘군의 칼에 맞아 죽은 병사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고 한다. 정말 우박에 맞아 그렇게 많은 병사가 죽을 수 있을까? 

1986년 방글라데시에 떨어진 1㎏짜리 우박으로 92명의 사람이 죽었다. 1988년 인도에서는 야구공만한 우박이 떨어져 250명의 사람이 죽은 일도 있었다. 우박을 맞으면 정말 죽을 수 있다.

100년 전쟁을 시작하면서 날씨는 철저히 에드워드 3세 편이었다. 그러나 이젠 날씨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믿음에 신실했던 그는 우박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프랑스 왕이 되는 것을 신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전투에서 진 적이 없는 그가 먼저 프랑스에 휴전협정을 제의했다. 그는 휴전협정을 통해 프랑스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며, 포로로 잡은 프랑스 왕을 엄청난 몸값을 받고 풀어줬다. 그러나 프랑스 왕위를 내놓으라는 요구는 철회했다. 우박이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를 바꿔 버린 것이다.

글: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날씨와 역사] 서평단 모집 당첨 | 끄적이다 2011-05-25 14:52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418698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날씨와 역사> 서평단 모집에 당첨되었습니다.

서평단 모집 당첨은 지난 번 <긍정의 배신>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날씨와 역사>는 서점에서 들었다가 놓았던 책이라 더 욕심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아들의 그림 | 끄적이다 2011-05-23 15:08
http://blog.yes24.com/document/417040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어제 아들이 책상에 앉아서 그려놓은 그림입니다.

제 책의 안쪽 색표지가 떨어졌는데 거기다 그렸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인간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나. | 책을 읽으며 2011-05-22 10:1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415862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인간의 뇌가 구현할 수 있는 신경 구조들에 대한 연구에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약 1070,000,000,000,000 (10 70조 제곱) 가지이다. 참고로 가시적인 우주 전체에 있는 원자의 개수는 겨우 1080개이다. 뇌는 약 1027개의 원자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이 무한하다는 느낌은 그 개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자들의 집단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연결의 엄청난 개수에서 나온다.”

- 존 배로 지음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41.

 

10 70조 제곱의 생각을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게 많은 생각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 몇 개쯤의 생각을 할까?

한 십만 개쯤?

(하루는 86,400초이고, 1초에 한 개 이상의 생각을 한다고 했을 때)

그러면 100일이면, 천만 개쯤.

3 (대충 1,000)이면 1억 개쯤의 생각을 하고,

90년쯤 산다고 하면 (정말 오래 사는 것이지만) 30억 개쯤의 생각을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10 70 제곱의 생각에는 턱도 없이 미치지 못하는 개수이다.

그럼 그 많은 생각의 가능성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는 것일까?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저 계산을 어떻게 했을까?

무슨 근거로 10 70 제곱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느냐는 것이다.

그 숫자를 생각하기도 힘든데

 

그러나 이해가 되는 것은 역시 생각 역시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겨우(!) 1027개의 원자 (원자다! 분자나 세포가 아니라)를 가지고

저 많은 생각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이다.

물론 그 신비를 느끼고 감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엘리베이터 문구는 왜 안쪽에 부착되어 있을까? | 책을 읽으며 2011-05-21 11:18
http://blog.yes24.com/document/414802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빌 브라이슨의 삐딱함은 그 삐딱함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곤혹스러운 것이지만 그걸 읽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통쾌함을 준다.

그리고, 가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은 무릎을 치게 하는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적이 적지 않다.

 

<발칙한 미국학>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엘리베이터에 대한 삐딱한 질문들이다.

엘리베이터에는 왜 정격하중 550킬로그램같은 문구가 씌어 있을까? 그리고 그 문구는 왜 엘리베이터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부착되어 있는가? 이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동승자들을 향해 저는 몸무게가 95킬로그램쯤 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하고 물어야 하는가?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사람들에게 내려달라고 말해야 하는가?” (226)

 

그리고 <발칙한 미국학> 10여 년 전, 20년 동안 외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사람이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다시 느끼고, 바라보게 되는 (전적으로) 미국에 대한 얘기지만 적지 않게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그건 보편성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고, 그만큼 우리나라가 미국과 비슷하게 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가령 이민자에 대한 얘기(124)는 미국 정부와 사람들의 근시안적인 시각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상황에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얘기이며, 점점 복잡해지고, 선택에 대한 곤혹스러움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얘기이다.

 

놀라운 것은 이 책에 실린 60편의 글이 독립적인 칼럼임에도 글들이 서로 이질적이지 않고,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의도하에 한꺼번에 씌여진 것처럼 (가끔 아닌 것도 있지만).

그게 빌 브라이슨의 능력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린네의 이명법과 자본주의 | 책을 읽으며 2011-05-16 00:1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409109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하워드 블룸의 <천재자본주의 vs 야수자본주의>는 인류의 성공적인 사례 모두를 자본주의와 연관시키는데, 어찌 보면 견강부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저자의 탁월한 직관(!)과 독창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인데, 바로 린네의 이명법(二名法)이 그것이다.

이명법이란, 생물학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 중 하나로

생물체의 학명을 속명(genus)와 종명(species)으로 기재하고 끝에 명명자의 이름을 쓰는 방식을 말한다. (명명자의 이름을 쓰는 것은 필수 사항은 아니다.)

절대로 하나의 종에 서로 다른 학명이 나올 수가 없고, 이 학명만 보면 이 종이 어떤 분류의 체계에 놓이는지, 그래서 특징은 어떤지를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 내 애초 전공이 분류(taxonomy)라고 할 수 있으니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리라 본다.

 

그런데 이런 생물학의 명명 체계가 도대체 자본주의의 승리, 탁월함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워드 블룸은 바로 린네가 처음 제시한 명명 체계가 사람들의 에고(ego)를 자극함으로써 서로 새로운 식물과 동물을 찾으려고 자발적으로 나서게 했다고 본다.

끝에 명명자의 이름을 쓰는 것도 그렇고,

그것 말고도 종명을 새로이 정하는 것은 분명히 명명자의 고유 권한이고

그것이 제대로 된 명명법이고 최초의 것이라면 영원히 남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린네는 (과연 의식했을지는 모르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의 공명심에 불을 지펴 중산층이 과학에 큰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고, 과학 기술은 상거래 대상으로도 발전하게’ (515) 했다는 것이다.

 

“1732년 어느 스웨덴 목사의 아들은 인간 개인의 에고를 활용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쓰도록 만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중략) 발견자의 이름을 식물 이름에 넣어 그 이름이 영원히 남도록 한다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발견에 나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마이클 베곤 (Michael Begon)이라는 부자는 새로운 식물 종 발견을 위하여 서인도 제도로 떠나는 두 명의 과학자를 후원했다. 그리고 그 과학자들이 발견한 식물들 중 한 종류의 이름에 베고니아(begoni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린네는 이처럼 자신의 업적, 자신의 공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새로운 동식물 계보 찾기에 나서는데, 이 때 그가 이용한 마케팅 방법은 입소문 마케팅이었다.” (514)

 

 

모르겠다.

나도 새로운 종의 이름을 붙여서 논문으로 발표한 경험이 적지는 않다.

그리고 이름을 붙여 발표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희열을 느낀다.

그게 나의 에고와 연관짓는 것도 당연할 듯 싶다.

그렇다면 하워드 블룸의 린네의 이명법과 교묘한 자본주의와의 연관짓기는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것 때문에 전문 과학자,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소양은 갖춘 아마추어 과학자가 아닌 수만 명의 중산층 남성들이 매우 일요일, 그리고 휴가 때마다 새로운 식물 찾기에나섰을까?

그리고, 정말로 그런 성공이 자본주의와 관련은 있는 것일까?

 

잘 알려진 종들의 이름에 가장 많이 붙여진 명명자의 이름은 무엇일까?

바로 Linnaeus(린네)이다.

L.만으로도 표시되는데, 얼마나 독점적인가?

린네는 남들을 생각할 여유는 없이 자신의 명성에만 신경을 썼다.

잘 알려진 종들의 이름에 가장 많이 붙여진 명명자의 이름은 무엇일까?

바로 Linnaeus(린네)이다.

L.만으로도 표시되는데, 얼마나 독점적인가?

린네는 남들을 생각할 여유는 없이 자신의 명성에만 신경을 썼다.

오히려 린네의 독점욕이 자본주의와 더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1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많이 본 글
스크랩이 많은 글
[서평단 모집]『과학을 만든 사람들』
[서평단 모집]『5리터의 피』
[서평단 모집]『앵무새의 정리1, 2 』
트랙백이 달린 글
경제학과 전쟁, 그리고 과학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책중독의 증상이 나오는데...
오늘 353 | 전체 1052997
2010-11-2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