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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많이 낼수록 많이 인용되는가? | Science 2016-09-3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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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생산성’ 문화, 기성연구자-젊은연구자에 다른 영향

오철우



1980-2013년 논문 낸 연구자 2800만 명의 학술정보 DB분석




로 연구자의 성과는 논문 출판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연구자사회에선 일찌감치 논문 출판을 독려하거나 그 흐름을 꿰뚫어보려는 여러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출판하라, 아니면 사라지리라(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있다. 각고의 연구결과를 담아 논문으로 발표한 뒤에 그것이 연구자사회에서 많이 인용될수록 연구자는 높은 신용 또는 명성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할 때 신용 또는 명성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명성을 얻은 연구자는 명성의 효과로 더 자주 인용되고, 그렇지 못한 신진 연구자는 무명 탓에 덜 인용된다는 부익부 빈익빈의 “마태 효과”(Mattew Effect,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성경 마태복음 25장 29절)라는 말도 있다.


논문생산성이 클수록 논문이 많이 출판되어 좋은 논문도 많아지는 걸까? 최근 방대한 연구자 학술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살펴 논문 출판 수와 인용 수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와 네덜란드 연구자는 과학저널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에서, 1980-2013년에 논문을 낸 2807만여 명 연구자의 학술 정보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연구 경력이 많은 연구자들에선 많이 출판할수록 많이 인용되는 논문의 출판비율도 높다는 패턴이 나타나며, 젊은 연구자들에선 이런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논문의 초록 일부이다.


“1980-2013 기간에 걸친 연구자 28,078,476명의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해서, 우리 논문은 평균적으로 개인 연구자가 출판한 논문 수가 많을수록 가장 많이 인용되는 그룹에 들어가는 논문의 비율이 더 커짐을 보여준다. 이런 연관성은 나이 든 연구자 집단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며, 최근 연구자의 집단에서는 그 규모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된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런 결과는 기성 연구자한테선 될수록 많은 논문을 출판하는 전략이 높은 인용지수 논문의 출판 비율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지 않았지만 그런 패턴이 젊은 학자들한테선 늘 관찰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논문)


논문 출판 수와 인용 수의 패턴에 어떤 세대차가 있는 걸까? 논문을 보도한 <더 사이언티스트(The Scientist)>의 뉴스를 보면, 1980-1985년에 첫 논문을 냈던 나이 든 연구자 집단에서는 연구자가 출판한 논문 수가 늘수록 가장 많이 인용되는 상위 1% 논문의 출판비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패턴은 의생물학 분야, 자연과학 분야, 법·예술·인문학 분야, 사회·행동과학 분야 가운데 의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논문을 다량 생산할수록 주목받는 논문의 출판비율도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이런 패턴이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활동에선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사이언티스트>의 보도를 보면, 2009-2013년 기간에 첫 논문을 낸 신진 연구자 그룹에선 30편 넘게 논문을 낸 경우에 상위 인용 논문의 출판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조사 결과에서, 논문의 질과 인용지수를 동일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이런 해석보다는, <더 사이언티스트>가 보도했듯이 덜 알려진 신진 연구자가 낸 논문의 가치가 발견되고 인용되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다른 연구자들이 자기 논문의 출판 기회를 높이려는 전략적인 이유 때문에 이미 널리 알려진 저명 저자의 논문을 지속적으로 인용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일종의 마태효과와 연관된 해석으로 여겨진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논문을 많이 내지 못하는 연구자들은 학계를 떠나고 연구역량을 인정받은 나이 든 연구자들이 학계에 남아 지속적으로 많은 논문을 내는 게 현실이기에, 그런 나이 든 연구자의 논문이 더 자주 인용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논문 다량 생산의 전략은 경륜 있는 연구자들한테 훨씬 더 유효한 것일 수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신진 연구자들한테 무작정 다량의 논문을 발표하기를 요구하는 문화는 연구자사회에 좋은 논문을 양산하는 데에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출판하라, 아니면 사라지리라” 식으로 논문 다량 생산을 독려하는 문화는 학계 전반에 좋지 않은 요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젊은 연구자들한테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이번 논문의 저자는 <더 사이언티스트> 보도에서 지적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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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2016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수상작) | 이벤트 관련 2016-09-3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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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인생의 단편적인 서사
길 위의 기타 연주자, 이민자, 조직 폭력배… 분석할 수 없는 부스러기
이야기를 담다

-

  ♠  2016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수상!   ♠

-




이 세계 도처에 굴러다니는 무의미한 단편에 대해
그 단편이 모여 세계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
그 세계에서 다른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




오랜만에 독서를 끝냈다는 것이 아쉬운 책과 만났다.

_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

이 책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만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의혹을 던질 뿐…. 그리고 잠자코 옆에 있어 준다. 언제까지나… 돌멩이나 강아지처럼. 내게는 이 책이 필요하다. _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

이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타인의 삶을 팔짱끼고 구경하는 관찰자가 아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모두 담긴 듯한 이 책은 인생극장과 너무나 닮아 있다.

_사회학자 노명우

◈ 사회학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쓰다
사회학자는 연구 대상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것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이를 위한 주요 방법론으로 인터뷰나 통계 자료, 사회학 이론 등을 사용하는데, 이로 인해 전문적이고 냉정한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띤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이와 같은 통상적인 사회학적 방법론과 시선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그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서술 역시 기존 사회학자들이 흔히 취하던 관찰자적, 학술적 서술이나 판단, 단정적 어투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 그 옆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 놓을 뿐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저자의 관심사이자 일본 사회의 소수자로 흔히 거론되는 오키나와인, 재일 코리안, 피차별 부락민, 장애인, 게이, 이주 여성 등이거나, 우리 곁에 흔히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던 주변인(복장 도착자, 조직 폭력배, 거리의 연주자, 방치된 아이들, 가정폭력의 희생자 등)이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사회구조적 차원으로 손쉽게 치환하여 분석하거나 폭력적으로 재구성하지 않는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삶을 만들어 낸 곡절과 개인의 역사, 사회적 폭력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눈에 띄지 않던 보통 사람들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시화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이면을 곰곰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에세이이자 사회학적 저술이다. 



​◈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
이 책은 모든 개인의 삶에는 의미 있고 완결적인 서사와 줄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애초에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다양한 이야기의 집합이며, 각자는 그것들을 조합하여 (완결적으로 보이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 그러한 이야기를 모아 세계를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사람들의 구술은 종종 말을 더듬고, 문장이 되지 못하며, 기억의 오류나 허장성세로 부풀려지기도 하지만, 이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대로 그들이 살아온 평탄하지 못한 삶과 세계를 보여 준다. 인터뷰에서 저자가 드러내는 감정의 혼란함이나 착각과 오독은 그것을 읽고 있는 우리의 대상화된 동정심이나 편견을 고스란히 비추어 준다.


‘평범한’ 사람(일본인, 남성 등)은 애초에 별도의 (주로 부정적인) ‘딱지(labelling)’나 경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주변인과 소수자(오키나와인, 재일 코리안, 여성, 장애인, 게이 등)는 사회가 붙인 ‘딱지’를 떼어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여러 차별 반대 운동은 바로 이를 목표로 한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딱지가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한 점에 주목한다. 딱지가 붙여진 채, 딱지의 가치를 전도시키고, 딱지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품는 것, 이로 인해 또 다른 의미에서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차별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딱지에 대해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딱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 보통 사람들이 들려주는 보통 생활의 기록
개인의 생활사를 구술 채록하는 가운데 떨어진, 분석할 수 없는 부스러기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는 저자의 ‘무의미함’에 대한 애착이 일관되게 드러나 있다. “애당초 우리가 각자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단지 무의미한 우연으로 이 시대, 이 나라, 이 동네, 나 자신으로 태어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대로 죽는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은 단지 허무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과 타인, 세계의 결여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평범함’에서 벗어난 무의미한 단편을 곱씹을수록 세계를 좀 더 새롭고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이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심판관의 관점에서 판정내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사회학자’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그는 타인의 삶을 팔짱끼고 구경하는 관찰자가 아니다.… 슬픈  목소리, 비장한 목소리, 서러운 목소리, 항의하는 목소리, 비꼬는 목소리 말고 인간은 또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인간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모두 담긴 듯한 이 책은 인생극장과 너무나 닮아 있다. 사회학자가 사람들의 삶을 기술하려면,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인생의 특성에 걸맞아야 한다. 만약 인생이 단편으로 이루어진 모자이크라면 그 단편을 기술하는 언어 역시 단편의 모자이크이어야 한다. 그래서 기시 마사히코는 섬세하게 인생의 단편을 모자이크 하며 이 책을 썼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와 마음속으로 친구가 되었다.

_노명우

사회 전체의 미래를 응시한 ‘언어.’

_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이 책은 기묘한 ‘바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대단한 모험은 아니다. 기묘하게 단편적인 장면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사회. 한순간 반짝이는 이질감. 그것들을 영화적으로 이어 가는 젊은이의 편집 기술에는 번뜩이는 꾀까지 느껴진다. 지나치게 아름답다.

_철학자 지바 마사야

세계를 이해하는 실마리의 한끝을, 온몸과 온 영혼으로 제시하는 사회학자의 내공이 가슴에 파고들어 잊기 어렵다.

_에세이스트 히라마쓰 요코

저역자 소개

지은이 기시 마사히코 (岸政彦)
1967년생으로 사회학자이다. 오사카시립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를 수료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류코쿠(龍谷)대학 사회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주제는 전후 오키나와의 노동력 이동과 아이덴티티, 도시형 피차별 부락의 구조와 변용, 생활사 방법론 등이고, 에스니시티(ethnicity), 차별, 사회 조사 실습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오사카 번화가를 자주 어슬렁거리며 재즈와 동네 산책을 좋아한다.『동화와 타자화—전후 오키나와의 본토 취직자들(同化と他者化─戦後沖縄の本土就職者たち)』,『거리의 인생(街の人生)』등을 썼다.


옮긴이 김경원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한양대학교 비교역사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을 지냈다.『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공저)를 썼고,『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우리 안의 과거』,『가난뱅이의 역습』,『일본변경론』,『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반지성주의를 말하다』등을 옮겼다.

이 책의 차례

한국 독자에게 드리는 글
머리말—분석 안 되는 것들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진다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
토우(土偶)와 화분
이야기의 바깥에서
길 위의 카네기홀
나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
웃음과 자유
손바닥의 스위치
타인의 손
실유카 나무에 흐르는 시간
야간 버스의 전화
평범하고자 하는 의지
축제와 망설임
자신을 내밀다
바다의 저편에서
시계를 버리고 개와 약속하다
이야기의 조각

맺음말




본문 맛보기

어떤 강렬한 체험을 남에게 전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야기 자체가 된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빙의하여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때 이야기의 매개 또는 그릇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살아 있기 때문에 잘라 내면 피가 난다. 이야기를 도중에 갑자기 중단당한 그의 침묵은 끊긴 이야기가 지르는 조용한 비명이었다.… 나아가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기반을 이루는 서사는 단 하나가 아니다. 애초에 자기라는 것은 다양한 이야기의 집합이다. 세계에는 가벼운 것이나 무거운 것, 단순한 것이나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사가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자기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우리는 이야기를 모아 자기 자신을 만들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모아 세계 자체를 이해하고 있다. 어떤 행위나 장면이 즐거운 술자리인지, 악질 성희롱인지, 우리는 그때마다 정의 내린다. 다양한 이야기와 ‘화법’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_60~61쪽「이야기의 바깥에서」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 가든 있을 곳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가고 싶다.
자기가 있을 곳에 대한 이야기는 다 나왔다고 할 만큼 새로운 맛이 도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역시 자꾸만 되돌아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있을 곳이 문제로 떠오르는 때는 반드시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든지, 아니면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없을 때든지, 둘 중 하나다. 따라서 있을 곳은 늘 반드시, 부정적인 형식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라면, 있을 곳이라는 문제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조차 없다. 있을 곳이 문제가 되는 때는 반드시 그것이 ‘없을’ 때에 한정된다.
소수자(minority)라고 불리는 사람들, ‘당사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들 소수자나 이른바 ‘보통 시민’은 모두 기본적으로 자기가 있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일이나 가족이나 인간관계 등으로 골치가 지끈지끈 아플 때만, 잡다한 일에 마음이 얽매여 눈코 뜰 새 없을 때만, 우리는 있을 곳의 문제를 잊고 지낼 수 있다. 우리에게 있을 곳이란 없든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그 문제를 잊고 있을 뿐이든지, 둘 중 하나다.
      _80~81쪽「나가는 것과 돌아오는 것」


소수자는 ‘재일 코리안’, ‘오키나와인’, ‘장애인’, ‘게이’라는 식으로 언제나 손가락질당하고, 딱지가 붙여지고, 지목 당한다. 그러나 다수자(majority)는 ‘일본인’, ‘내지인’, ‘건강한 사람’, ‘이성애자’라고 손가락질당하고, 딱지가 붙여지고, 지목 당하는 일이 없다. 따라서 ‘재일 코리안’의 상대어라고 하면 편의적으로 ‘일본인’이라는 말이 끌려 나오지만, 애초부터 이 두 단어는 같은 평면 위에 나란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쪽은 색깔에 물들어 있다. 이에 반해 다른 쪽은 다른 색깔에 물들어 있지 않다. 이쪽에는 애당초 ‘색깔이란 것이 없는’ 것이다.
한쪽에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다른 한쪽에 ‘일본인이라는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쪽에는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애초에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도 없는’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평범함’이다.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바로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_166쪽「평범하고자 하는 의지」

…사회에 의해 물들여지고 딱지가 붙여진 존재가 ‘평범해지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실은 그것이야말로 다양한 차별 반대 운동이 지닌 하나의 커다란 목표였다. 우선 처음 내세워지는 운동의 목표는 딱지를 떼어 내고, ‘무징표’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피차별 부락 문제는 ‘거기에서 태어났다/거기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 의한 차별이다. ‘자, 그러면 다들 그곳을 떠나서 그곳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가면 어떤가?’ 누구라도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척 가슴 쓰라린 일이다. 애초부터 그것 자체가 늘 ‘나는 누구일까?’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번 붙여진 딱지를 간단하게 벗겨 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딱지가 붙여진 채 딱지의 가치를 전도시키고, 딱지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품는 것, 이것이 평범함이 된다. 한마디로 차별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딱지에 대해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딱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_167~168쪽「평범하고자 하는 의지」

인터넷 속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로 우리는 ‘타자’를 무서워하는구나 싶다. 거기에는 까닭도 없고 근거도 없는 공포가 충만해 있다. 동시에 그 반동으로 음습하고 병적인 증오가 가득 차 있다.
언제나 떠올리는 것은 오가와 사야카가 그려 낸 것 같은, 타자와 함께 즐기는 ‘축제적’이라고 할 만한 행복한 만남이다. 물론 오랜 기간에 걸친 필드워크의 과정에서 끔찍하게 싫은 일이나 신변의 위험을 느낀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실로 즐거운 듯) 묘사해 낸 것은 축제처럼 흥청거리는 길 위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로부터 들은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그것은 단지 불행한 만남의 형식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뚜렷한 공포를 동반한 폭력적인 체험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있는 법이다.
만남은 폭력적일 수도 있다.    
       _176쪽「축제와 망설임」

벽을 넘는다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벽을 넘지 않는다면, 그 여학생을 비롯해 우리는 우리를 지켜 주는 벽 바깥쪽에 사는 사람들과 영원히 만나지 않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도 진정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우리 다수자들은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방벽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그 때문에 벽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벽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벽에 의해 비호를 받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국가에 의해 가정이나 동료로부터 찢겨 나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을 국가와 떼어 내어 생각하는 일이 허용된다. 다양한 ‘특권’에 의해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활에도 개인적인 고민이나 고통은 한없이 존재하지만, 다수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로서 그것을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게 벽에 의해 보호받으며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우리의 마음은 벽 바깥의 타자에 대한 까닭 없는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다. 확실하게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은 지극히 쉽사리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한다.
       _180~181쪽「축제와 망설임」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품고 들여다본다 한들, 자기 안에는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단지 거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긁어모은 단편적인 허드레가 각각 연관성도 없고 필연성도 없이, 또는 의미조차 없이, 소리 없이 굴러다닐 뿐이다.
나 자신의 성격이나 타인을 대하는 방식도 본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의 버릇이나 어법을 모방하여 조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인격도 타인의 몇몇 인격을 모방해서 합성한 것이다.
그것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나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정말로 작은 조각 같은 단편적인 것이, 단지 맥락도 없이 흩어져 있을 따름이다.
이것도 또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자신’ 같은 듣기 좋은 말을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왜 그러냐 하면, 원래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참으로 별 볼일 없고, 대단치 않고, 아무 특별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지나간 인생 속에서 진절머리 날 만큼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런 특별한 가치가 없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과 지속적으로 씨름하며 살아가야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노래하는 노래는 됐고, ‘시시한 자신과 어떻게든 맞붙어 타협해야 하지, 그것이 인생이야’ 하는 노래가 있다면, 꼭 듣고 싶다.
       _187~188쪽「자신을 내밀다」 

 

 

[이벤트 참여 방법]

1. 이벤트 기간: 2016.9.30 ~ 10.5 / 당첨자 발표 : 10.6

 

2. 모집인원: 5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필수)
  - 스크랩 주소,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7일 이내에 개인 블로그, 온라인서점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 미 서평시 이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 됩니다
  - 아이디는 다르지만 주소가 같은 중복당첨자는 선정에서 제외 됩니다.(이로인해 최종 인원이 달라질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저/김경원 역
이마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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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승리』와 『꽃을 읽다』 | 책을 읽으며 2016-09-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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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어 핸슨의 『씨앗의 승리』를 읽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올해 『꽃을 읽다』라는 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어 씨앗과 꽃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꽃이나 씨앗이나 모두 번식을 위한 식물의 도구인 셈인데, 꽃이 외향적이라면 씨앗은 내향적이다. 

카트에 넣는다. 




『꽃을 읽다』 책 소개

어린 시절부터 곤충과 식물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던 곤충학자인 저자는 우리가 꽃에 대해, 특히 인간사에서 꽃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선사시대 이래로 모든 대륙과 문화권을 막론하고 인류가 꽃에 매혹된 이유와, 상상 가능한 온갖 목적과 기쁨을 위해 꽃을 이용해온 역사를 추적하는 책을 소개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선 꽃의 식물학적인 분석, 즉 꽃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그들의 생식방법과 기원, 진화과정을 훑어보는 것에서 시작해, 야생의 꽃들이 어떻게 재배되면서 우리의 정원으로, 화원으로 들어와 판매까지 되었는지 살펴본 후, 식품과 향수로서의 역할은 물론 문학과 미술, 신화 등을 비롯한 인류의 문화사에서 꽃이 어떤 영감을 주었고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를 찬찬히 훑어본다. 그야말로 꽃에 대한 모든 것이다.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꽃의 은밀한 역사를 추적하며 독자들에게 향기로운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꽃을 읽다

스티븐 부크먼 저/박인용 역
반니 | 2016년 04월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저/하윤숙 역
에이도스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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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책을 읽다 | 책읽기 정리 2016-09-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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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5권의 책을 읽었다.

많이 읽은 편인데, 그럴 만한 상황이어서 그랬다.

마지막 동안 (『무신론자의 시대』) 갖고 씨름했기에 그나마 열다섯 권에 그쳤다. (2016년으로 따지면 110 읽었다.)

 

목록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마이클 가자니가, 『뇌, 인간의 지도』

무라카미 미쓰루, 『맥주, 문화를 품다』

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이주은, 『스캔들 세계사』

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캐스 R. 선스타인, 『우리는 극단에 끌리는가』

이은희, 『하리하라의 이야기』

최형선, 『낙타는 사막으로 갔을까』

콜린 매컬로, 『풀잎관 1

콜린 매컬로, 『풀잎관 2

콜린 매컬로, 『풀잎관 3

콜린 매컬로, 『포르투나의 선택 1

콜린 매컬로, 『포르투나의 선택 2

콜린 매컬로, 『포르투나의 선택 3

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이러고 보면, 다섯 권이긴 하지만, 콜린 매컬로의 『풀잎관』과 『포르투나의 선택』이 각각 권씩이 섞여 있다. 당연히 9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책을 고르라면 역시 콜린 매컬로의 『풀잎관』과 『포르투나의 선택』다. 밖에 마이클 가자니가의 자서전 『뇌, 인간의 지도』이나 이은희의 『하리하라의 이야기』도 인상 깊게 읽었지만 콜린 매컬로의 <Masters of Rome> 시리즈의 강렬함에는 미친다. 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는 지적 방대함으로 말하자면 놀랍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지루하다.

 

다른 달과 마찬가지로 이번 달에도 읽은 책들에 대해 다시 평점을 매긴다.

 

마이클 가자니가, 『뇌, 인간의 지도』 ★★★★☆

무라카미 미쓰루, 『맥주, 문화를 품다』 ★★★★

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

이주은, 『스캔들 세계사』 ★★★☆

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

캐스 R. 선스타인, 『우리는 극단에 끌리는가』 ★★★☆

이은희, 『하리하라의 이야기』 ★★★★★

최형선, 『낙타는 사막으로 갔을까』 ★★★★☆

콜린 매컬로, 『풀잎관 1 ★★★★★

콜린 매컬로, 『풀잎관 2 ★★★★★

콜린 매컬로, 『풀잎관 3 ★★★★★

콜린 매컬로, 『포르투나의 선택 1 ★★★★★

콜린 매컬로, 『포르투나의 선택 2 ★★★★★

콜린 매컬로, 『포르투나의 선택 3 ★★★★★

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



뇌, 인간의 지도

마이클 S. 가자니가 저/박인균 역
추수밭 | 2016년 06월

 

맥주, 문화를 품다

무라카미 미쓰루 저/이현정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브루투스의 심장

히가시노 게이고 저/민경욱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07월

 

스캔들 세계사

이주은 저
파피에 | 2013년 10월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정준호 저
후마니타스 | 2011년 05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캐스 R. 선스타인 저/이정인 역
프리뷰 | 2011년 10월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이은희 저
한겨레출판 | 2016년 02월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최형선 저
부키 | 2011년 03월

 

풀잎관 세트

콜린 매컬로 저/강선재,신봉아,이은주,홍정인 공역
교유서가 | 2015년 11월

 

포르투나의 선택 세트

콜린 매컬로 저/강선재,신봉아,이은주,홍정인 공역
교유서가 | 2016년 06월

 

무신론자의 시대

피터 왓슨 저/정지인 역
책과함께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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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보다 중요한 건 연구 자율성" | Science 2016-09-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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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중론 “연구비보다 중요한 건 연구 자율성”

[연구자율성 높이자] 

노벨상 수상자 104명 연구비 최초 분석


동아사이언스




과학이라는 생태계를 숲에 비유하면, 연구비는 숲을 풍요롭게 가꾸는 양분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6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국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연구비(4.29%)를 지원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는 이유도 이처럼 과감한 투자에 있다. 하지만 과연 연구비를 많이 주기만 하면 뛰어난 성과가 나올까. 혹시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법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진 않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핵심 업적 데이터를 수집해 연구비 항목을 집중 분석했다. 우선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노벨상 과학부문(물리, 화학, 생리·의학) 수상자 123명의 수상 핵심 업적에 해당하는 논문 161편을 모았다(2000~2008년 성과는 기존 논문(doi:10.1096/fj.09-148239의 결과를 참고). 논문 저자가 자신이 받은 도움에 대해 기록하는 이른바 ‘논문 사사(acknowledgement)’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논문을 게재하는 저널마다 정책이 조금씩 다르지만, 저자는 논문 사사에 자신이 어디로부터 어떤 연구비를 지원받았는지, 연구비의 형태는 무엇이었는지 기록하게 돼 있다. 따라서 논문 사사를 확인하면 연구비 지원 여부와 특징을 알 수 있다. 아무런 연구비 정보가 없는 논문은 저자에게 직접 연락해 출처를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총 104명의 논문 142편에 대해 연구비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정보를 분류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연구비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연구 자유’라는 사실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2000년~2015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수상 업적 논문에 기록한 연구비 형태. 파란색 점은 물리학상 수상자이고 주황색 점은 화학상 수상자, 녹색은 생리의학상 수상자다. 연구자가 직접 제안하는 연구 과제를 지원하는 그랜트 형태의 연구비를 지원 받은 노벨상 수상자가 (기관에서 기획안 연구 과제에 지원자를 받아 연구비를 수여하는 콘트랙트 형태보다)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풀뿌리 연구’ 지원금이 노벨상 낳는다


취재팀은 104명 중 외부에서 지원받은 연구비를 기록한 88명(84.6%)의 논문을 분석했다. 가장 많은 수상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한 기관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 39명이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2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88명 중에서 67명은 자신이 받은 연구비의 종류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했는데, ‘그랜트(Grant)’와 ‘콘트랙트(Contract)’라는 형태로 나뉘었다.

 

미국 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에서 연구 프로그램 관리를 맡고 있는 송민경 프로그램 디렉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그랜트는 ‘연구자가 원하는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비’다. 한국연구재단의 ‘이공학 개인 기초연구 지원사업’ 등 한국의 기초연구비 지원사업 일부가 성격상 그랜트에 속한다.

 

반면 콘트랙트는 ‘국가가 연구 주제와 목표, 방법 등을 기획한 뒤 이를 수행할 연구자들을 모집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형태를 ‘국책사업(기획과제)’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그랜트와 콘트랙트의 차이는 상향식(Bottom-up)과 하향식(Top-down)이라는 점이다.

 

분석 결과 핵심 업적의 연구비를 외부에서 받았다고 기록한 88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49명(55.7%)이 그랜트를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의 절반 이상이 그랜트만으로 자신의 연구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랜트와 콘트랙트를 모두 받아 연구한 경우는 12명(13.6%)이었다. 콘트랙트만 받았다고 기록한 수상자는 6명(6.8%)뿐이었다. 형태를 기록하지 않은 사람은 21명(23.9%)이었다. 연구비 지원 형태를 명확히 기록하지 않은 논문도 그랜트로 추정되는 성격이 많았다(지원기관이 NIH, NSF인 경우 등).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레프코위츠 미국 듀크대 의대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연구자가 ‘본능을 따라’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연구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레프코위츠 교수는 “나는 연구 경력 내내 NIH와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HHMI)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다”며 “특히 HHMI의 연구비는 특정 주제가 아니라 연구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5년 동안 무얼 연구하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5년 뒤에는 그 동안 이룬 학문적 성과에 대해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계속 지원할지 여부가 결정된다. 

 

풀뿌리 연구의 가능성을 믿는 NIH의 연구비 지원 철학

 

그렇다면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에서는 어떤 정책과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위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중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NIH를 취재했다. NIH는 올해 약 36조 원(323억 달러)의 재정을 생명현상과 인간행동 연구에 투자했다. 그 중 83%가량(약 268억 달러)이 NIH 외부의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나머지 예산 중 11%는 NIH 산하 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이 사용한다). 이 가운데 콘트랙트에 해당하는 예산(9%)을 빼면 NIH는 전체 예산의 약 74%를 연구자들이 스스로 제안하는 상향식 제안 연구, 즉 ‘풀뿌리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만 30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NIH의 지원으로 원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송민경 디렉터는 “콘트랙트는 선진 연구 성과를 빠르게 따라가는 추격형 연구나 급히 필요한 연구과제(감염성 질환 치료제 개발 등)에 적합한 지원 방식”이라며 “노벨상을 비롯한 선도형 연구 성과는 그랜트 형태의 지원을 받은 연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최대 5년 동안 그랜트를 받을 수 있고, 이후 평가를 거쳐 같은 연구 주제로 또다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NIH 재직 당시 연구비 지원 심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명경재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장(UNIST 교수)은 “198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첵의 경우 40년 이상 한 가지 주제로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고 말했다.

 

또 NIH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연구비를 지원 받은 과학자는 매년 지난해의 연구 성과와 지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무가 없다. 연구가 당초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전문 과학자들인 NIH의 연구 프로그램 디렉터와 상의해 연구 목표를 수정할 수도 있다. 송 디렉터는 “연구자가 연구 목표를 수정했다고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며 “모든 것은 연구비 지원 기간이 끝난 뒤 연구자가 이룬 과학적인 성과를 가지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2000~2015년 노벨과학상 수상자 중 수상 업적에 소속 연구기관 외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경우(파란색은 물리, 주황색은 화학, 생리의학은 녹색). 논문을 확인하고 직접 e메일을 보내 확인했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외부 연구비 지원 일체 없었던 노벨상 수상자 비율도 16%


취재팀의 논문 분석 결과 흥미로웠던 사례는 외부 연구비 없이 연구한 경우다. 초고해상도 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로 201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에릭 베치그 박사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저는 고용된 신분이 아니었고, 내가 가진 돈으로 연구했습니다. 소속 없이 연구하던 때가 제 경력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간이었어요. 자유롭게 호기심에 따라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외부로부터 아무런 연구비 지원 없이 노벨상 업적을 냈다. 34세의 나이에 벨연구소를 그만 둔 그는 8년 동안 아버지가 세운 회사에서 일하다가 42세에 다시 그만뒀다. 그리고 벨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5만 달러(약 5600만 원)를 모아 집 거실에서 초고해상도 현미경의 초기모델을 만들었다. 그때 나이가 45세였다.

 

베치그 박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소속 기관 외의 기관에서 연구비를 받지 않은 경우는 꽤 많았다. 104명의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16명(15.4%)이 소속 연구기관에서 제공하는 연구 장비와 연구비만으로 업적을 냈다. 분야별로는 물리학이 6명, 화학이 3명, 생리·의학이 7명이었다.

물리학 분야 수상자들의 특징은 분명했다.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지 않았거나(이론물리학), 연구 수행 당시 민간 기업체 연구소 소속(니치아화학공업, 스탠다드통신연구소, 벨연구소)이었다. 기업에서 연구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제공했기 때문에 외부 연구비를 지원받을 필요가 없었다.

 

화학과 생리·의학 분야 수상자들은 주로 국가 혹은 민간 재단에서 세운 연구소 소속이었다(10명 중 8명).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MRC)와 프랑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소에서 여섯 명의 수상자가 나왔고, 호주의 공립병원에서 두 명이 나왔다. 유일하게 대학 소속인 수상자는 피터 맨스필드 교수(영국 노팅엄대)로, 물리학자이지만 자기공명영상(MRI)기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생리·의학상(2003년)을 탔다.

 

공립, 사립, 기업체 소속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이들 모두 연구비를 지원해 주는 연구소 소속이었다. 그렇다고 이 연구소들이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3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 산하 분자생물학연구소(LMB)는 정부로부터 연간 약 4000만 파운드(약 580억 원)를 지원받는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총 예산 규모의 평균(약 1978억 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랜트형 지원 중요하지만 목표 뚜렷한 대형 연구는 콘트랙트형 필요”

 

 “그랜트를 조금 받긴 했지만, 중성미자 진동변환을 발견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정부에서 슈퍼카미오칸데를 중요한 과학실험장치로 선정하고 건설 예산을 지원해 준 것이 중요했습니다. 슈퍼카미오칸데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과학자 자율성을 높이는 데 그랜트형 연구비 지원이 유리하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연구 성격에 따라서는 콘트랙트형 지원을 빼 놓아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탄 카지타 타카아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과 미국 정부가 거대 실험장치의 건설비를 지원한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슈퍼카미오칸데를 이용해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콘트랙트 형태의 지원을 받아서 탄생한 노벨상 수상 업적들은 대규모의 실험장비를 필요로 하는 연구가 많았다. 중성미자를 발견(2002)하고,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성과(2015) 외에도 인공위성을 발사해서 우주 엑스선원(2002)과 극초단파 우주배경복사(2006), 우주 가속팽창(2011) 등을 확인한 것 등이다. 그리고 대부분 물리학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18건 중 15건, 생리·의학 2건, 화학 1건). 즉, 콘트랙트형 지원이 빛을 발하는 영역은 연구 목표가 뚜렷하고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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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블로거 11기 9월 미션 수행 결과 | 이벤트 관련 2016-09-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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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블로거 11기 9월 미션 수행 결과


마이클 S. 가자니가, <뇌, 인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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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미쓰루, <맥주, 문화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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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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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스캔들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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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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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 R. 선스타인,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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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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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선,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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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매컬로, <풀잎관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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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매컬로, <포르투나의 선택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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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왓슨, <무신론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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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받기도 힘들고 받아도 힘들었어요" | Science 2016-09-2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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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율성 높이자]국내 신임 교수 ‘이공계’씨의 첫 연구비 취득 이야기

“연구비, 받기도 힘들고 받아도 힘들었어요"


동아사이언스




한국 정부에서 과학자들에게 주는 연구비 규모는 이제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연구비 생태는 어떤 상황일까.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취재팀은 국내 과학기술분야 연구자 10명을 인터뷰한 결과, 안타깝게도 한국의 연구비 지원 구조는 덩치만 클 뿐 내실은 없는 기형적인 구조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한국의 국가 R&D 지원 구조가 과학자들의 사기를 꺾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우려했다. 취재팀은 이들 가운데 7명이 지적한 문제를 가상의 인물인 ‘이공계’ 교수가 연구 과제에 응모할 때부터 연구를 마치기까지의 과정을 시간 흐름 순으로 엮어봤다.

 

#Intro. 연구의 시작

내 이름은 이공계. 부모님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라고 지어 주신 이름이다. 국내 대학에서 생명과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대학부설병원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5년 동
안 일했다.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 잇따라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고, 교수가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감사하게도,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과 함께 연구실을 꾸렸다. 마침 좋은 연구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이제 연구비만 있으면 연구에 돌입할 수 있다.

 

 

#1. 대학입시보다 더한 연구비 경쟁률

때마침 정부 연구비 지원사업 공고가 났다. ‘이건 정말 대박 아이디어야’라는 생각으로 과제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경쟁률이 무려 20대 1이다.

 

→ 한국 과학자들이 연구비를 따기 위해 피튀기는 경쟁을 하는 이유는 국가 연구비 구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약 19조 원의 R&D 예산에서 기초과학에 약 5조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국립대 인건비와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원금 등을 제외하면 실제 풀뿌리 연구(일선 과학자들의 상향식 제안 과제)에 투입되는 예산은 2조~3조 원에 불과하다.

 

한국의 정부 R&D 예산은 각 부처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지원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곳이 미래창조과학부다(34.3%, 2015년 기준). 미래부와 교육부의 연구비 지원을 담당하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연구재단이 집행하는 연구개발 예산은 약 2조7807억 원이다(기초, 응용, 개발 연구 포함). 연구재단에 문의한 결과, 그 중 풀뿌리 연구와 기획과제의 비중은 각각 1조1095억 원(39.9%)과 1조4988억 원(53.9%)이었다. 이는 노벨상 수상 업적의 다수가 상향식 과제에서 나왔고, 미국 국립보건원(NIH) 전체 예산의 74%가 풀뿌리 연구에 투자된 것과 대조적이다.

 

기획과제에 참여할 수 있는 연구자가 아주 제한적이라는 것도 큰 문제다. 대부분의 기획과제는 연구 주제와 방법이 아주 구체적으로 짜여져 있어 몇몇 연구자만 지원할 수 있다. 과제 기획에 참여한 연구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다.

 

생명과학 전공 A 교수는 “연구에 대한 구체적인 키워드를 너무 많이 넣어서 다른 연구자들은 참여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과제 제안 요청서(RFP)를 보면 특정 인물의 이름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생명과학 전공 A 교수
작년에 교수 한 사람당 약 1억 원 정도를 지원하는 기초연구사업(그랜트)에 지원했습니다. 12개 과제를 선정하는데 240개의 과제가 지원했더군요. 경쟁률이 20대 1이었죠. 반면 교수 한 명에게 7억~10억 원을 5년 동안 지원하는 국책사업(기획과제)은 경쟁률이 많아야 3대 1이었어요.

 

 

#2. ‘비전문가’가 심사하는 내 연구 주제
첫 번째 도전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를 했다. 이번에는 어렵사리 서류평가를 통과해 발표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심사위원이 내 연구 분야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 연구비 지원 대상자를 선정할 때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DNA 복구와 관련된 연구 제안을 발생학 전공자가 평가하는 식이다. 이는 국내에 세부 분야별 연구자 그룹이 적고, 서로 학연이나 공동연구 등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연구비 지원 대상 선정에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않게 하려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평가자를 섭외하게 된다.

 

현업을 떠난 지 오래된 연구자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생명과학 전공 B 교수는 “결국 연구 제안의 깊이나 창의성, 혁신성보다는, ‘과제수행 잠재력’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하나의 기준인) 논문을 얼마나 많이 냈는지, 논문을 낸 저널의 피인용지수(임팩트 팩터·논문이 얼마나 인용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에 의존해 평가하게 된다”고 한탄했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문제를 보완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작년부터 심사위원 자격 규정을 완화했다”며 “같은 학과에 속한 교수이거나, 지도교수가 같은 경우 등이 아니면 심사위원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명과학 전공 C 교수
제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연구 제안서를 평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평가할 수 있는 건 과거 논문 발표 기록밖에 없더군요.

 

지구과학 전공 D 교수
오랫동안 직접적인 연구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심사위원들이 비슷한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심사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3. 내 연구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손’
재수 끝에 어렵사리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학생들과 기뻐했는데, 이게 웬걸. 시어머니가 한둘이 아니다.

 

→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비 지원 기관의 과도한 요구와 간섭을 지적했다. 정부 연구비는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처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지원된다. 각 부처마다 연구 과제를 관리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연구자에게 과도한 간섭을 한다.

 

생명과학 전공 B 교수는 “과제당 1년에 1편 이상 국제학술논문을 발표하도록 종용하거나, 발표 예정 논문을 자신들에게 ‘사전 검열’ 받도록 제도화 한 기관도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그로 인해 논문 발표 시점을 놓치거나 내용을 온전히 담지 못해 저평가되고, 게재 거부를 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요구사항도 많다. 정보통신공학 전공 E 교수는 “매년 연구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것 외에도 정부 부처나 국회에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보통신공학 전공 E 교수
장기 기초 연구 과제로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지원 기관에서 느닷없이 산업화 계획을 요구하면서 처음 계획과 다르게 끌고 가려고 하더라고요. (요구하는대로) 안 하면 돈을 못 준다고까지 말하면서요.

 

기계공학 전공 G 교수
국가연구개발성과를 관리한다고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 논문 숫자를 세서 보고하라고 합니다. 매년 논문 숫자를 채워야 하니까 덜 익은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내는 경우가 있죠. 그런 논문은 그야말로 세상에 나오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는 건데, 그냥 실적용이죠 뭐.

 

 

#4. 평가는 천편일률, 장기연구는 ‘그림의 떡’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5년 동안의 연구를 마쳤다. 학생들과 노력한 끝에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만족스런 성과를 얻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연구 성과를 평가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논문을 낸 학술지들은 영향력지수가 그렇게 높지 않아서 조금 걱정이 된다.

 

→ 한국의 국가 R&D 예산은 대부분 응용연구나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춘 콘트랙트 형태다. 이른바 ‘추격형 연구’에 적합한 방식이다. ‘선도형 연구’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기초연구비 지원 규모를 확대했지만, 평가 방식은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초연구 과제를 대상으로 피인용지수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얼마나 냈는지, 특허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따지는 정량적인 평가 방식이다. 논문 개수와 저널의 영향력이 과학적인 성과를 대표하는 지표가 아님에도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량적인 평가를 주로 한다. 한국연구재단의 경우 2014년부터 평가자들에게 정량적 평가를 지양하고 정성적 평가를 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부처마다 상황이 달라 연구자들이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연구 주제로 반복해서 연구비를 지원 받을 수 없는 구조 역시 문제다. 중복 연구를 방지한다고 만든 기준인데, 연구비 지원 기간이 끝나면 같은 연구 주제로 다시 지원 받을 수 없다. 결국 새로운 분야로 연구 주제를 바꾸거나, 자신의 연구를 새롭게 포장하는 ‘신조어’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198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토마스 첵에게 40년 이상 한 가지 주제를 연구하도록 지원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보통신공학 전공 E 교수
미국에서 연구할 때 한국에서 방문한 교수와 다른 연구자들이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어요. 컴퓨터과학 분야에서는 학술지보다 콘퍼런스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것을 더 높이 치는데, 한국에서 방문한 교수가 자기는 꼭 저널에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연구 실적을 평가할 때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에 등재된 저널에 논문 몇 개를 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기계공학 전공 F 교수
연구 과제를 선정할 때 ‘주제 중복성’을 따지기 때문에 본인이 연속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힘들고, 다른 누군가 비슷한 주제로 과제를 하고 있어도 연구비를 받기 힘들어요.

 

#5. 실패 두려워하는 ‘생계형 과학자’ 만들어
다행히 나쁜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동료 교수 중 한 명이 ‘불성실 실패’ 판정을 받
고 지원받은 연구비 일부를 회수조치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새로운 연구 과제에 지원해야 하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있기는 하지만 실패할 위험이 높아서 고민이 된다….

 

→ 미국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정보통신공학 전공 E 교수는 한국의 연구비 지원사업에서 연구 성과를 성공과 실패로 구분하는 점에 놀랐다. 과제 수행 기간이 끝나면 연구 결과를 평가하는데, C~D등급을 받으면 상세 평가를 실시한다. 그리고 성실히 연구를 수행했다고 판단되면 ‘성실 실패’로 인정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불성실 실패’ 평가를 받은 연구자에게는 연구비 환수나 3년 동안 연구개발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등의 불이익이 주어진다.

 

비도덕적인 연구자들을 걸러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실패 판정에 대한 연구자들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처음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연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실패할 위험이 있지만 성공했을 때 영향력이 큰 연구에 도전하지 못하게 만든다.

 

지난 8월 18일에는 불성실 실패 판정으로 연구비 환수 조치를 받은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에 제기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기계공학 전공 G 교수는 “후배들에게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정부 돈을 받지 말고, 차라리 숨겨서 긴 호흡으로 연구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고 한탄했다.

 

기계공학 전공 F 교수
연구라는 것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비를 환수당할 수 있다면 무서워서 연구하기 힘들 거예요. 중간평가에서 탈락해 연구가 중단되거나 연구비가 삭감되는 경우도 있고, 최종평가에서 기준점수를 넘지 못해 연구비를 환수당한 과제도 있습니다.


 

#Outro.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후진도 양성하겠다’는 꿈을 안고 과학자가 됐지만, 한국의 연구비 환경은 녹록치가 않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비 지원과 평가를 경험하면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한 연구자는 “기회만 있다면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말했다.

 

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은 “많은 연구자들이 실험실 구성원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연구를 하는 ‘생계형 과학자’로 길들여져있다”고 말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이 창의적인 연구 과제에 연구비를 지원하기 위해 과제를 공모했지만, 지원한 국내 연구자들의 과제 제안서가 천편일률적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그걸 풀겠다거나,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풀겠다는 도전은 없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기존의 문제를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풀어보겠다는 정도의 제안을 해 왔다.

 

국 이사장은 “노벨상급 좋은 연구 성과는 소재를 선택하는 방법부터 연구 수행 방법까지 모두 달라야 한다”며 “지금처럼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그런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동아사이언스 탐사취재 일환으로 진행된 과학동아 10월호 특집

‘데이터로 본 노벨 생태계’ 중 일부를 발췌, 게재한 것입니다.



과학동아 최영준,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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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책을 읽다 2016-09-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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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신론자의 시대

피터 왓슨 저/정지인 역
책과함께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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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임오군란이 있었던 해이다

해에 유럽에서는 니체라는 병약했던 철학자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1883 출판) ‘신의 죽음 선언되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한반도라는 지리적 거리보다 더한 거리감을 느낄 밖에 없다.)

 

이후 니체는 현상이 되었다. 이후의 어떤 철학도, 어떤 예술도 니체에 공감하거나, 혹은 니체에 반대하는 철학과 예술이 밖에 없었다. (Nothing) 시대, 혹은 무신론자(Atheists) 시대가 것이다. 니체의 선언으로 신이 죽거나, 혹은 죽은 신에 대한 선고가 이뤄진 것은 아닐 것이다. 니체는 시대의 변화를 읽었고, 변화된 시대에서 인류가 새로운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공감했던 것이고.

 

사실은 이후의 세계를 보면 혼란스럽다. 오히려 종교에서의 극단성은 커지면서 존재감이 두드러지기도 보이니까 말이다(피터 왓슨은 예로 살만 루시디에 대한 이슬람교의 대응을 든다). 우리의 경우도 20세기를 전체적으로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는 못할 같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종교가 힘을 잃으며 삶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것만은 분명한 같다. 특히 종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일관된 답을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점점 긍정의 대답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같다. 종교는,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숫자와는 별개로 살아가는 대한 의미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종교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20세기 동안의 커다란 사건, 차례의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 등을 통해 신의 의미가 달라져 버렸다(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 사회학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았다. 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는 바로 그들의 질문과 대답에 관한 책이다. 우선 방대하다. 수백 명에 달하는 철학자, 예술가, 사회학자, 심지어 과학자 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모두 니체를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그렇지만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것이 피터 왓슨의 생각이다) 니체 이후, 신의 죽음 이후 인간의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하려고 했다. 무용가, 화가, 시인, 소설가, 실존주의 철학자, 현상학자, 실용주의자, 나치, 공산주의자, 과학자, 심리학자, 종교학자 등등 당대의 거의 모든 사상가들을 망라했다고 있을 정도로 방대하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여기에 소개하는 모든 책들을 피터 왓슨이 읽었을까 하는 의심이 정도다.

 

어떤 답을 주지는 않는다. 물론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건전하고, 사소하고 평범한 생활에서 의미를 찾는 활동 등에 강조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는 하지 않는다( 책은 주장을 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소개를 위한 책이므로). 또한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은 거슬린다. 과학자가 그런 삶의 자세와 의미에 대해서 답을 하는 것은 아닌데도 그런 대한 답을 과학자들의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과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책의 주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과녁을 잘못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은 분명 20세기 사상사이다. 사상들 중에서도 신의 영향력이 줄어든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대답의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질문과 대답을 것은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사상만은 아니다. 동양의 사상은 신의 죽음을 이야기할 만한 계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살고 있으며,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충분히 살펴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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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무신론자의 시대 | 한줄평 2016-09-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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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단절>과는 또 다른 분야의 엄청난 스케일. 20세기 사상사를 정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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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책에서 만나는 빌 브라이슨 | 책을 읽으며 2016-09-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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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 같은 책에서 접하게 되는 저자들은 모두 철학자거나, 시인, 소설가 등이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같은 과학자, 혹은 과학저자도 등장하지만 모두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이들이다.

그런데, 예외가 등장한다. 바로 브라이슨. 비록 킹웰이라는 철학 교수가 인용한다는 내용으로 등장하지만( 브라이슨은 여기서 한동안 영국에서 살았던 미국 작가 소개되고 있다), 그래도 반갑기 그지없다.

 

브라이슨은 영국 사람들이 곧잘 쓰는 , 그래도 달라진 있네’, ‘투덜거려 봤자야’, ‘ 잘못될 수도 있었어같은 어구에 표현되어 있듯이 유쾌하게 기대를 낮출 아는 기술에 정통해 있기 때문에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600)

 

브라이슨의 어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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