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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 오락이라는 영화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영화 | 영화 2018-04-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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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안소니 루소
미국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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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면,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할 수 없다. 이번 것이 시리즈의 세 번째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도 어쩌다 보게 되면 놀라긴 한다. 저렇게 각 영화의 주인공들을 모아 놓는다는 발상도 그렇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솜씨도 그렇고. 어쩌면 유치하지만, 그 유치함을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대담함도 놀랍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영화는 오락이다. 예술을 운운하지만, 시작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오락거리다.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무엇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도 결국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보게 하기 위해서는 볼 만한 무언가를 영화 속에 넣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벤져스>는 아주 그 영화의 의미에 충실한 셈이다.

 

좀 어지럽긴 했다. 대결이 한 장소에서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고, 그 대결들이 그렇게 정돈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시간도 길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다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은 정의(정의가 무엇인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악()만 보여줄 뿐인데, 그 악도 뭔가 내용이 있는 듯 하다)가 승리하지 못하는데, 만약 정의가 승리하는 게 끝이라고 하더라도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야 후속편을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 제작자는 영리하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오역 논란이 있다. 알고 봤으니 그게 오역인 줄 알 수 있었다. 특히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지막 대사는 더욱 그렇다. 어차피 심오한 내용은 아니다. 잘못 번역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런 오락 영화에서 번역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돌아다니는 해적판 번역(엄청난 오역을 포함한)을 보고도 영화는 그럭저럭 이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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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시계를 거꾸로 돌린 이유 | 책을 읽으며 2018-04-2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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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에서 북한이 표준시를 우리나라(남한)에 맞추기로 했다는 소식을 봤다. 사실 우리나라의 표준시는 일본 동경에 맞춰진 거라 정확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방 후 독립적으로 일본과 30분 차이 나는 표준시를 사용했지만, 1960년대에 일본을 기준으로 한 표준시로 돌아갔었다. 북한은 2015년 표준시를 30분 늦췄다. 그걸 이번에 다시 남쪽과 같게 맞췄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오늘 『세계의 이면에 눈뜨는 지식들』에서 관련 글을 읽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의 편집부에서 엮은 책에서 관련한 제목은 <북한이 시계를 거꾸로 돌린 이유>. 여기서 인위적으로 시간을 지배하려는 시도를 비판하고 있는데, 북한의 주체력(김일성이 출생한 1912년을 원년으로 한다)이나 인도와 중국의 방대한 국토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시간대를 고수하는 일, 프랑스 혁명 당시 달력 자체를 완전히 개조했던 일, 베네수일라의 차베스가 자체적인 시간대를 옮겼던 일과 비교하고 있다(“현대의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중앙 정부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북한이 시간대를 원래대로 돌려놓기로 하는 바람에 이 글의 시효성은 떨어졌다. 이렇게 금새 왔다갔다 하는 태도를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켰던 판문점의 시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세계의 이면에 눈뜨는 지식들

톰 스탠디지 편/이시은 역
바다출판사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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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닌 세계사 | 책을 읽다 2018-04-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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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저/이상희 역
추수밭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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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읽으면서 제목을 다시 봤다. ‘농담’? 무엇이 농담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원제(독일어 Weltgeschichte to go))가 무슨 뜻인지를 찾아 봤다. 그냥 세계사. ‘농담, 말하자면, 우리나라 출판사의 농담같은 번역, 혹은 해석인 셈이다.

 

물론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라 아마추어 역사가(실제 직업은 저널리스트). 그러니 전문적인 역사에 대한 연구는 아니다. 그러나 아마추어라는 말의 본래 의미대로(‘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 역사라는 대상에 대해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그것을 바라보고 서술하려고 한다.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관심 갖는 대상으로서 바라본 역사는 좀 다를 것이란 건 누구나 짐작할 만한 일이다.

 

스스로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부당하다는 느낌, 편협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앞에서 스스로 유럽 중심주의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말은 없다. ‘역사는 편견이다라는 소제목까지 달고 있는 판에야. 감안하고 읽을 읽을 수 밖에 없고, 그 유럽 중심주의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가 중요한 셈이다.

 

원제도 세계사라는 제목이지만, 세계사(혹은 유럽사)를 기술하고 있지는 않다. 대전환의 순간들, 도시, 영웅, 철학, 예술, 발명, 악당, 연설 등에 대해서 쓰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역사 속의 악당들과 보통사람들>이라는 장에서는 역사 속의 악당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단 두 명. 히틀러와 나폴레옹만 등장시킨다. 이것도 희한한 일이다. 히틀러가 악당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나폴레옹을 히틀러와 비견시키는 것은 다소 모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쇤부르크의 글을 읽다보면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악당을 규정짓는 것은 매우 작위적이며, 그것 역시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히틀러가 악당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그도 역시 보통사람들에서 나온 악당이라는 얘기다. 나폴레옹이라는 영웅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악당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역시 지금은 이해하기도 힘들고, 더더욱 받아들일 수도 없는)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나중에 가면 좀더 호의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인용 형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이렇게 쓰고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의아함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사실 농담이라는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이 이해 가는 측면도 있다. 이 책은 진지하지만, 전적으로 개인적이다. 그는 대부분의 장마다 해당 분야의 Top10을 소개하고 있다. 한 가지만 보면, 인류 역사를 바꾼 영웅 Top10으로, 모세, 바울, 제노비아, 카를 대제, 마르틴 루터, 마리 앙투아네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야누시 코르차크, 넬슨 만델라, 할리드 아사드를 꼽고 있다. 누구도 이 명단과 같은 Top10을 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래서 어쩌면 농담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쇤부르크의 시점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만이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읽은 것은 분명하다. 알려진 역사를 새로이 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알아내는 방법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끝에 쇤부르크는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잘못 알려진, 혹은 진실을 포함하면서 과장된, 오해된 역사 자체도 역사에 속한다. 그것을 바로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 오해와 과장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쇤부르크가 그것들을 소개한 의미는 그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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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블로거 4월 미션 | 책읽기 정리 2018-04-2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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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의 부활을 외치다. | 책을 읽다 2018-04-2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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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저/박상현,이승연 공역
어크로스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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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승리를 드높여 부르는 시대에 아날로그의 역할이 있음을, 아니 아날로그가 반격을 가하고 있음을 쓰고 있다.

 

LP판의 부활, 몰스킨 노트의 도약, 카메라 필름의 불사(不死), 보드 게임의 유행은 아날로그가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는 예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가지고 아날로그의 반격을 얘기하기는 좀 약하다. 아날로그가 다시 각광을 받는 것은 앞의 예들과 같은 감성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바로 아날로그가 실제로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독립 잡지라는 인쇄물, 서점(북컬쳐) 등의 오프라인 매장, 로봇이 아닌 노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토대로 한 공장 등은 디지털 경제의 허상과 함께 아날로그가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이익을 내고, 실제의 고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도 아이들에게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주는 것이 오히려 학력 저하를 가져오며,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대면만이 대안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책도 디지털의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디지털만으로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발전도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아날로그만의 영역이 있으며, 아날로그가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아날로그의 세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pdf 파일로 제공되는 논문을 스크린 상에서는 거의 읽지 못하며 프린트해야만 읽게 된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서점을 찾아가서 한 권씩 사고, 책은 온전히 종이로 된 책을 읽지, ebook은 도무지 정감이 가질 않는다. 스마트폰을 쓰고는 있지만, 메모와 일정은 프랭클린 플래너를 이용한다. 아마도 세월이 지나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디지털의 영역이 커지더라도 아날로그의 영역은 여전히 남겨질 것이며, 디지털의 세계를 향유하더라도 아날로그의 감성을 향유하며 이용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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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아날로그의 반격 | 한줄평 2018-04-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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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디지털의 세계에서 아날로그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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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산업이 일자리 창출에 효율적이지 못한 이유 | 책을 읽으며 2018-04-2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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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디지털 진보가 실제 생산성을 높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 산업에서 그토록 인기가 있는 창조적 파괴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

 

그토록 각광받는 디지털 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효율적이지 못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브린욜프슨과 매카피는 테크 회사들의 이른바 슈퍼스타적인 성격이 그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디지털 테크 산업은 독점 기업들에 의해 좌우되며, 경쟁사가 거의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디지털 제품의 소비 성향은 표준화를 선호하며, 지배적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컴퓨터들끼리 효과적으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서로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포맷을 이용해야 한다. 초기 스타트업 단계에는 이런 새로운 표준을 세우기 위해 경쟁하는 수십, 수백 개의 신행 회사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가장 큰 회사들만 돈을 벌게 해주며, 나머지 회사들은 떨어져 나간다.” ( 298)

- 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中


구글을 봐도 그렇고, 네이버를 봐도 그렇다.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저/박상현,이승연 공역
어크로스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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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 책을 읽다 2018-04-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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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고미숙 저
북드라망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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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만남이 뜻밖에 의미가 생기듯 책도 그럴 때가 있다. 고미숙의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도 그런 경우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비교한, 말하자면 교차 평전인 셈인데, 다산에 대한 책은 좀 읽어 봤어도 연암에 대한 책은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점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이 책에서도 주요하게 다루는) 정조의 문체반정에 관한 책에서 읽었을려나.

 

책은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한 둘이 한번도 만난 기록이 없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시작한다. 그건 그들이 아주 다르다는 얘기다. 나중에 명명한 실학(實學)’이라는 공통분모로 생각했을 때는 의아한 일이지만, 아마도 둘은 상대를 모르지 않았겠지만 같은 길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질도 달랐고, 지향점도 달랐고, 걸어간 길도 달랐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책은 모두 대단했지만, 아주 다른 형식과 내용과 영향력을 지녔다.

 

연암의 글은 물이고 다산의 글은 불이다. 연암은 지혜와 유머가 흘러넘치고 다산의 글은 박학과 격정이 솟구친다. 연암이 좁쌀 한 알에서 우주적 징후를 간파하고자 한다면, 다산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담아내겠다는 결기로 충만하다. 연암의 생애는 뱀처럼 매끄럽다. 변곡점이 있긴 하지만 급격하게 꺾이는 대목은 드물다. 스스로 물처럼 흘러갔기 때문이다. 반면 다산의 행로와 동선은 급격하다.” (32)

 

이러한 둘은 비교하는 것은 조선 후기 지성사의 가장 큰 별이자 지도였던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지향해야 하는 지점의 다양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심에서 태어나 변방을 지향한 연암이나 주변에서 태어나 중심을 지향한 다산이나, 지위와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간 연암이나 자신의 경륜을 세상을 향해 쏟고자 했던 다산이나 아주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어느 쪽을 택했든 둘은 별이고, 지도였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 길을 걷든 진실되게, 분명하게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미숙은 연암과 다산 모두를 큰 인물로 쓰고 있고, 그들의 저술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연암에 대한 전문가이니 어쩔 수 없이 연암을 위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어쩌면 다산을 비판하고 싶은데, 형평성 차원에서 그러지 못한다는 느낌도 가끔 준다. 혹은 다산의 무게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너무 쉽게 같은 쪽의 인물로 묶어 버리는 둘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단 한 가지, 왜 명리학 얘기는 자주 하는지둘은 이해하는 데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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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찰스 다윈 | 책을 읽다 2018-04-2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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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윈 평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공저/김명주 역
뿌리와이파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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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에 대한 평전으로 가장 유명한 것으로 두 권짜리 재닛 브라운의 『찰스 다윈 평전』과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와 제임스 무어가 쓴 『다윈 평전』을 꼽는다고 한다. 이미 재닛 브라운의 것은 두 번이나 읽은 터에 데스먼드와 무어의 책도 읽어야 했다. 찰스 다윈이라는 위대한 과학자에 대해 무수한 평가가 있어 왔는데, 그것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재닛 브라운의 책과 직접 비교해가면서 읽지 않았고, 또 다 읽은 다음에도 무엇이 다른지, 무엇이 비슷한지 꼼꼼하게 목록화한 것은 아니지만, 내 결론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재닛 브라운의 것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더 많이 짚는다는 느낌은 나지만, 그게 아주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 알고 있던 찰스 다윈이라는 인물을 다시 확인하는 느낌이 크다. 물론 새로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게 정말 새로운 것인지, 이미 읽었던 내용인데 잊었던 것인지 불분명하다. 아마도 새로운 것은 별로 없지 않나 싶다.

 

이런 느낌이 데스먼드와 무어의 책이 재닛 브라운의 책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재닛 브라운의 책을 먼저 읽었다는, 개인적인 독서 경험 때문에 데스먼드와 무어의 『다윈 평전』을 재닛 브라운의 『찰스 다윈 평전』과 비교할 수 밖에 없는 것일 뿐이다. 어느 것을 읽어도 다윈에 대해서 아주 방대하게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방대한 개인사가 언제라도 매우 인상적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이라면,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쓰기 전에도, 쓴 이후에도 매우 열렬한 연구자였다는 점이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이론만이 아니라,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혹은 그 밖의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에 따개비, 딱정벌래, 난초, 지렁이 등 온갖 생물들을 직접 키우면서 연구한 사람이 바로 찰스 다윈이었다. 물론 그가 『종의 기원』을 쓰지 않았다면 과학사에서 스쳐가듯 언급되는 인물로 머물렀겠지만, 그저 『종의 기원』의 저자로만 그를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그에 대해서 반쪽만 아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연구자로서의 찰스 다윈의 면모를 아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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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희망과 좌절의 기억 | 책을 읽다 2018-04-0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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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저/박찬원 역
문학동네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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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나오는 이상의 땅, ‘아르카디아(Arcadia)’. 오래 전부터 그런 이상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적어도 그들이 꿈꾸고, 만들고, 지키고자 했던 그 땅은 지금 없다. 이상에 대한 염원은 결국 실패의 운명을 지닌 것일까?

 

아르카디아』은 결국은 좌절에 관한 이야기다. 70년대 미국 사회. 수십 명의 사람들이 버려진 땅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틀을 갖추게 된 그 사회는 관심을 받으며 성공의 길로 접어드는가 했다. 하지만 가장 정점의 순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상 사회에 대한 염원으로 뭉쳤던 이들은 흩어진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지난 날을 회상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하며 살아간다.

 

그 아르카디아라고 명명했던 그 땅에 최초로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 겨우 1kg을 넘을까 말까 했던 작은 아기. 그래서 비트(bit)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아르카디아의 성장과 함께 커가고, 소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아르카디아의 몰락을 함께 한다. 수십 년이 지나고 사진작가가 되어 어린 시절 사랑했던 소녀를 다시 만나고 딸을 낳지만, 중년이 된 그 소녀는 어느 날 사라진다. 딸과 살아가는 비트는 아버지, 어머니의 불행에 이어,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다시 아르카디아로 돌아간다. 비록 그곳은 변했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기억은 남아 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비트는 분명히 서로 아주 친밀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가까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는 공동체, 음악과 이야기와 생각과 기쁨과 소박한 행복이 있는 세계를 꿈꿨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른들이 만들어가던 아르카디아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랑했던 소녀, 그러나 도망쳐버린 그 소녀 헬레는 네 기억은 우리의 어린 시절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미친 곡예 같은 짓을 하고 있던 거야.”라며 과거를 아름답게 채색하려는 비트에게 일격을 가하고, 이상의 땅, 아르카디아도 부정한다. 아마도 과거에 대한 태도가 둘의 삶의 방향을 갈라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아파하지만, 그래도 버티는 비트와, 결국은 도망쳐버리는 헬레.

 

비트는 좌절된 이상의 땅으로 돌아온다. 비록 어린 시절, 어른들이 고뇌하며, 땀을 흘리고, 만족하기도 하다 반목하기도 하고, 결국은 좌절하여 뿔뿔이 흩어져버린 아르카디아지만, 아르카디아의 상징처럼 태어난 작은 인간, 비트가 돌아갈 곳은 그곳이었던 것이다. 이상의 꿈을 꾸고, 노력하고, 좌절하고, 그렇게 살아가다 결국은 그 이상의 꿈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다름아닌 로런 그로프의 단어들이고 문장들이다. 운명과 분노(아르카디아』가 두 번째 장편소설이고 『운명과 분노』가 세 번째의 것이지만,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운명과 분노』가 먼저다)에서도 그랬겠지만, 거기서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섬세하고, 화려한 단어와 문장들의 향연이 『아르카디아』에서 펼쳐진다. 운명에 저항하고, 굴복하기도 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그들의 삶보다 더 다채롭다. 그래서 책장을 바삐 넘기다가도, 멈춘 채로 단어와 문장들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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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