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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나이트』, 가면을 쓴 군상들 | 책을 읽다 2020-04-3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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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매스커레이드 나이트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현대문학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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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코르테시아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매스커레이드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나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읽었지만 『매스커레이드 이브』는 읽지 못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배경과 이전 사건을 연결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 대체로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게 무언지 한 마디로 끊어내어 말할 수는 없어도, 배경과 인물, 사건의 전개 등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작품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함에서 느껴지는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감상이 신기하고, 그래서 그의 작품을 다시 찾게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호텔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간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많은 데도 호텔이라는 장소가 더 특이한 것은 그곳의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장소라는 호텔의 특징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곳을 드나들게 한다. 더욱이 그곳의 직원들도 그렇다. 물론 훌륭한 호텔리어들은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겠지만, 그들의 미소가 늘 진심만은 아니란 것은 너나 없이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감추고 있는 호텔은, 역으로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곳일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도 가면을 쓴 인물들을 등장시키더니, 여기서는 여장을 한 남성뿐만 아니라, 아예 가면을 쓰고 참석하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파티를 배경으로 삼았다. 누구나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가면을 쓴 사람들이라는 상황을 극대화시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긴박감보다는 사람들의 관계에 더 중점을 둔다. 거기서 따뜻함이 피어 오르는데, 이성적인 등장인물들도 어느 샌가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패턴이다. 특히 감동적인 스토리를 통해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에게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멋진 반전을 선사한다. 두 편의 감동 스토리를, 모두 연극이었던 것이다. 순수함?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난데 없이 말콜 글래드웰의 『타인의 이해』가 생각났다. 타인을 잘 알 수 없다는 메시지를 역사적으로, 여러 조사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 책이다.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많은 자료 없이 오해하여 믿게 되는 경우를 보여주는데, 이 소설에서의 상황도 그 일종이 아닌가 싶다. 뒤틀릴 대로 뒤틀린 인간을, 엘리트 형사도, 노련한 호텔리어도 알아내지 못한다. 의심하도록 하고, 그 의심이 풀리면 오히려 더 믿어버리는 인간의 심사를 이용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인간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놀라웠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사건의 전모가 사건의 전개 속에서 자연히 그 암시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진술과 회고를 통해서 밝혀진다는 점이다. 다소 안일한 게 아닌가 싶다. 다만 여러 인물들의 진술 속에서 사람이 자기 위주로 남을 판단하고, 서로 달리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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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에 관해 묻다 | 책을 읽다 2020-04-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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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덕의 시간

오승호 저/이연승 역
블루홀6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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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름은 오승호’. 우리말 이름인데, 제목에는 일본어가 있고, 옮긴이까지 있다. 그렇다. 재일교포다. 그의 이 작품은 2015년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다. 에도가와 란포상이라는 이름은 히가시오 게이고 소설을 읽으면서 익숙해진 상이다. 일본 추리문학계 신인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한다. 몰랐지만 재일교포가 이 상을 수상했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좀 보도가 되었다고 한다(확인해봤더니 그랬다). 여러 사정으로 이 소설을 충분히 관심을 받을 만하다.

 


『도덕의 시간』은 작품으로도 그런 관심에 답을 한다. 극적인 요소를 다소 인위적으로 과장시킨 면은 있으나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반전과 예상을 넘어서는 반전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물론 도덕이라는 주제를 너무 의식하긴 했다. 하지만 신인으로서 문학상에 도전하는 입장에서는 소설의 기법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 담아야 하는 메시지에도 크게 신경을 썼어야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더욱이 추리소설이라는 외피를 두른 소설이 너무 주제에 신경을 쓰면 기본적으로 독자를 긴장시켜야 하는 추리소설의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 소설은 주제를 통해서 긴장감을 높여간다.

 

그리고 10여년 전의 사건과 전혀 무관한 현재의 사건을 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이 소설에 정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경우 그냥 인물이나 어떤 상황을 연결시킬 수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연결 고리가 없으면서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단지 도덕이라는 주제로만 연결되는 것도 아닌.

 

주제에 너무 빠지면 미스터리 소설 본연의 맛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했지만, 역시 이 소설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역시 도덕이라는 질문이다. 도덕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기능한다. 그래서 도덕은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도덕의 보편성을 밀고 나갔을 때, 보편적 도덕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될 때, 도덕의 특수성을 무시했을 때는 잔인해진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도덕은 그것 자체로도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도덕의 보편성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럼 사회의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는데? 그 질문을 이 소설은 던진다. 물론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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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14 장면 | 책을 읽다 2020-04-2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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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정기문 저
푸른역사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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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문 교수는 역사 교사들조차 세계사를 기피하고, 수능에서 세계사를 선택하는 학생이 5%도 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는 그런 세계사맹()을 극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힘들게, 자세히 공부하면 힘드니까, 역사의 척추가 되는 주요한 주제들에 대한 이해부터 단단히 해놓고 거기에 살을 붙여나가면 역사에 대해 흥미도 가지게 되고, 또 쉽게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갈 수 있다고 여기고 14개의 주제를 정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른 고려도 있지 않나 싶다(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다). 14가지 주제라고 했지만, 거의 연대기 순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각각은 하나의 주제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주제어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것들이고, 장면이며, 현상이다. 그래서 14가지 테마라기보다는 서양의 14개의 장면이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할 것 같다. 그리고 14가지라는 것에도 조금 의심이 가는 게 대학의 한 학기가 15, 16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14가지는 한 주에 하나씩 딱 한 학기 강의로 적당한 구성이다. 정기문 교수가 정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이렇게 구성하고 썼는지는 모르지만(강의에 교재로 어떤 것을 정해놓았는지 보면 되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의도 자체가 이 책에 대한 어떤 평가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명저가 강의 원고였다. 대학에서 강의를 위한 책이 명저가 되지 못할 까닭은 없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연대기 순으로 역사 전반을 다룬 책은 흥미도가 떨어진다.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 현대에 이르는 서술 방식은 당연히 고리타분하다.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방식 자체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돌파구 중 하나는 서술의 방식, 또는 글솜씨다. 그리고 또 하나는 좀 색다른 시각일 것 같다. 색다른 시각은 다른 연대기 서술에서는 잘 다루지는 않지만, 그 책에서만큼은 전체에 어울리면서도 역시 중요한 역사적 장면을 포착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정기문 교수의 이 책은 조금 흥미도가 떨어지려다가도 다시 흥미도를 올리는 방식의 책이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작해서 아테네의 민주주의, 로마제국, 봉건제도,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러시아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여타의 일반적 통사 서술과 그다지 차별점을 가지지 못한다. 사실 그런 역사들을 버리고서 서양사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그러니 그런 장면, 역사를 고르고 서술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그 한 주제에서 서술하는 품은느낌대로 표현하자면, 부드러우면서 날렵하다. 한 상황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면서 상황, 상황을 연결해나가는 모양새가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좀처럼 지루하지 않다. 별 특별할 것 없는(많은 사람들이 요새는 잘 모른다고는 했지만), 장면들을 서술하면서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을까, 저자도 아마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장황하지 않으면서, 핵심을 주로, 그러면서도 풍부하게. 이 어려운 미션을 용케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물론 주제마다 그 달성 정도는 조금씩 다르긴 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통사 형식의 책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장면도 있다. 이를테면, 의회제도 수립에 관한 것이라든가, 미국 독립에 관한 내용, 독일 통일의 과정, 그리고 끝으로 유럽 통합. 다른 데서 전혀 다루지 않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렇게 르네상스나 프랑스혁명과 같은 수준의 위상을 가지고 다루는 경우는 별로 없는 내용들이다. 이건 정기문 교수의 선택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 책에 관통하는 주제가 어떤 것인지를 나름 짐작해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했는데, 그런 서양의 독특함과 함께 서양의 역사가 굴곡은 있지만, 자유의 증진이라는 큰 틀에서 보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 거의 유럽의 역사이지만, 큰 틀에서 부담 없이 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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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를 읽다, 과학맹(盲)을 발견하다 | 책을 읽으며 2020-04-2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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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새벽에 깨어 서양사 읽기에 한껏 몰입했다. 

정기문 교수의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를 통해서. 

중세의 봉건제도, 영국의 의회제도 수립, 르네상스, 종교개혁의 전개, 그리고 과학혁명까지. 

이제 확실하게 근대로 넘어갈 순간에 멈췄다. 

오류가 눈에 띤다.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형질을 결정하는 염색체 DNA가 단백질 덩어리이고, 이는 자연 상태에 무한히 존재하며, 강한 전기적인 자극 등을 받으면 생명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11쪽)


우선 DNA는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다. DNA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유전정보를 통해서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유레이와 밀러의 실험에 관한 것 같다. 유레이와 밀러의 실험은 DNA, 단백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기적인 자극을 준 것이 아니라 원시 지구 상태에서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몇 가지 물질을 넣고 전기적인 자극을 준 것이다. 그랬더니 일부 아미노산(단백질의 단위체)가 나왔다는 것이다. 바로 생명체가 된 것도 아니다. 너무 비약했고, 세부 내용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 자체가 잘못되었다. 

정기문 교수는 머릿말에서 세계사맹(盲)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과학맹(盲)도 문제다.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정기문 저
푸른역사 | 2019년 06월

 

아침 7시 30분까지,  212쪽까지 읽다. 

*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 참여하며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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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들에 관한 역사 | 책을 읽다 2020-04-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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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食史

정기문 저
책과함께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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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문 교수의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과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을 읽고는 다른 책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내 손에 먼저 들어온 게 바로 이 책이다.

 

여기서 식사란 食事가 아니라 食史’, 그러니까 먹을 것에 관한 역사란 얘기다서양사를 전공한그것도 정치사 위주로 공부한 역사학자가 먹을 것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쓴다는 게 조금 어색해 보일 지도 모르지만이 역사학자는 꽤 진지하게 먹을 것에 관한 역사에 대해 찾아보고생각하고그리고 썼다사실 역사라는 게 살아가는 일에 관한 기록이고살아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먹을 것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일이니역사학자가 먹을 것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사회 저변의 변화에 관한 연구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다어떤 경우에는 생존과 관련해서또 어떤 경우에는 즐기기 위해서혹은 부의 축적을 위해서 먹을 것의 역사는 변화를 거듭했고또 그것이 역사가 되기도 했다.

 

역사학자 정기문이 관심을 가진 먹을 것은사실 광범위한 것은 아니다모든 것을 다 다루겠다고 되지도 않을 용을 쓰진 않은 것이다특히 세계사와 관련해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들을 골랐다육식포도주치즈홍차커피초콜릿이 그것들이다그렇게 특이해 보이지는 않는다특히 포도주라든가홍차커피초콜릿에 관한 것은 먹을 것에 관해서혹은 근대 무역에 관해서 쓰는 저자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관문이 되는 것이다그래서 그 부분에 관해서는 아주 특별한 느낌을 갖지 못한다대신 빵이라든가치즈에 관한 역사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역사여서 그런지 보다 집중이 된다사실 빵이라든가 치즈 자체는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라서 그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다(커피라든가 차와 같은 경우는 그것의 이동이 가져온 파급력에 대한 선지식이 있어서 그런지 늘 마시면서도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빵의 역사와 치즈의 역사를 보면현재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그러나 언제나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가 있다.

 

거기에 더 들여다보기를 통해 올리브를 좋아하는 유럽 남부와 버터를 즐기는 유럽 북부(이 관계는 포도주와 맥주와의 관계와 대응된다)에 대한 얘기는 유럽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 될 수도 있다.

 

특별한 주제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흥미롭다그게 더군다나 우리가 늘상 접하는하지만 우리 안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저 물 건너 온 것이라면 그 기원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그걸 쉽게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역사학자가 그걸 이렇게 소상히 알려주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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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수학 | 책을 읽다 2020-04-2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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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롭 이스터웨이 저/고유경 역
반니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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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특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기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정확성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수학 시험에서 정답이 1.4인 경우, 1.5를 써놓고 비슷하니 맞게 해달라고 우길 수는 없다. 어떤 수식을 증명할 때도 적어도 논리상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수학이란 정확한 답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롭 이스터웨이의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전혀 다룬 수학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정확한 답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가끔 이게 정확한 답이지만라고 할 때 나오긴 한다). 대충 어림한 답을 구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이것을 명확하게 수학이라고 하고, 또 더 유용한 수학적 사고이기도 하다.

 

숫자의 합이나, 곱을 계산할 때 암산을 쉽게 하는 방법(이를 테면 45 x 19 같은 경우, 45 20을 곱한 다음 45를 뺀다는 식), 어림해서 대충 구하는 방법, 일상에서 어림값을 추론하는 방법(페르미 추정법이라고 하는 것) 등이다. 예를 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고양이의 수를 추론하거나 서울에서 화장실 변기로 내려가는 물의 양을 계산하거나 할 때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을 추론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학적, 과학적 사고 방식을 키우는 데는 의미가 있으며, 대학이나 기업 입사 면접에서 던져지는 질문의 방식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한 군중의 숫자를 세는 방식 같은 것은(우리의 경우 촛불 집회 때 참석 인원의 수를 세는 것), 언론을 읽는 방식과 관련해서 의미가 있고, 마일과 킬로미터를 환산하는 방법 같은 것은 미국을 여행할 때 유용할 것이다.

 

우리는 무척이나 정밀한 세상에 사는 것 같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대충 빨리 계산하는 능력이 필요한 때도 의외로 많고, 어떤 것의 숫자나 규모를 추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그런 게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수학 점수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도구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그런 능력을 길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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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우리에게 수학이 필요한 이유 | 책을 읽다 2020-04-2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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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학의 쓸모

닉 폴슨,제임스 스콧 공저/노태복 역
더퀘스트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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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인공지능, 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시대라는 것을 부정할 이가 있을까 싶다. 그 힘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이 정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게 이세돌 9단과 바둑대결을 펼친 알파고 때문이었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AI는 우리 세계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 알파고는 그걸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었을 뿐이다(또 그걸 노린 것이기도 했다). 2020년 현재 AI는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을 만큼 보편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AI가 무엇인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더 중요하게는 AI가 어떤 원리에 작동하는 것일까?

 

이 책의 원제는 “AIQ (Artificial Intelligence Quotient)”, 인공지능지수다. IQ, EQ를 비롯해서 수많은 지표가 우리 주위를 떠도는데, 저자는 AIQ라고 하여 또 하나의 지표를 설정한 것 같지만, 정작은 이건 어떤 값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AI에 깔린 원리를 이해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다. AI가 그냥 단순히 인간의 지능을 흉내내서, 인간의 일을 대신하거나, 혹은 인간의 능력을 앞서서 대신하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그게 어떤 특징을 지닌 것이며, 논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수인 셈이다

 

AI를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통계와 확률을 이해하는 것이다. AI가 확실성이 아니라 확률을 다룬다는 점에서, 통계적 법칙에 의거해서 따라야 할 명령이 무엇인지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한다는 점에서, AI는 수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AI를 이해한다는 것은 수학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수학이야말로 현대 사회를 떠받치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얘기가 된다. , 수학은 쓸모가 있는 것이다(다만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늘 수학이 무슨 쓸모가 있냐고 하지만, 사실 역사상 진지하게 수학이 쓸모 없다고 한 적은 없다. 더 중요하게는 쓸모가 없었던 적은 더더욱 없다).

 

닉 폴슨과 제임스 스콧이라는 통계학들은 AI가 활용되는 역사와 예를 통해서 AI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며,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첫 번째 예는 바로 우리에게 더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Netflix이다. Netflix의 시작은 비디오대여점이었다. 수많은 비디오를 대여하고, 사람들의 선호도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가 쌓이자 그것을 확률에 의해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추천 시스템이 되었다(그 아래의 논리로 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의 생환 확률에 관한 잘 알려진 얘기가 있다). 조건부 확률이라는 근거에 기초한 AI를 통해 Netflix는 개인화에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는 데이바 소벨의 『유리 우주』에서 소개한 헨리에타 레빗이 등장한다. 그녀는 20세기 초반 하버드 천문대의 컴퓨터(계산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천문대장의 호의, 내지는 선경지명에 힘입어 박봉으로 천문 관측을 하고 계산을 했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지만, 명예는 대체로 천문대의 남성들에게 돌아갔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우주의 크기를 재는 방법이었다. 맥동변광성의 밝기 주기가 변하는 것을 토대로 밝기를 알아낼 수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컴퓨터라 불렸지만, 지금의 컴퓨터 비슷한 것은 전혀 없이 연필과 종이로 이 일을 했다. 그런데 이게 왜 AI와 관련이 있을까? 바로 패턴이다. 입력을 예상되는 출력에 대응시키는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시킨다. 그게 AI라는 것이다. 레빗이 맥동변광성의 패턴을 통해서 우주의 크기를 알아낼 수 있었듯이 말이다.

 

AI에서 자율주행차가 빠질 수는 없다. 언젠가는 보편화될 자율주행차가 주변의 물체를 인식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논리를 베이즈 규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잃어버린 잠수함의 위치를 찾는 데 이용되며 그 효용성을 널리 알린 게 베이즈 규칙이다(이 내용은 여러 책에서 소개되어 왔다). 그리고 유방암 진단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 실제 유방암에 걸렸을 확률에 대한 것도 베이즈 규칙에 바탕을 둔다(이 역시 여러 책에 소개되어 왔다). 베이즈 규칙은 수많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데이터를 찾아내는 규칙이다.

 

그레이스 호퍼의 얘기는 솔직히 낯설다. 컴퓨터 언어의 선구자라고 하는 이런 인물이 미국에서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탔었는지 모르지만, 그 유명세가 여기까지는 도착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에만 훨씬 많은 에너지를 써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컴퓨터에 명령을 넣는 원리라든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것보다는 말이다. 앞으로도 그런 경향은 변하지 않겠지만, 어떻게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명령을 따르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방식을 통해 영어를 자연스런 한국어로 번역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레이스 호퍼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은 그걸 아주 설득력 있게, 그리고 쉽게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 뉴턴의 실수(또는 드무아브르법칙), 피임법의 효과에 대한 오해, 나이팅게일의 업적(그녀의 과학적업적은 간호가 아니라 통계, 혹은 통계의 그래픽화이다!) 등을 통해 AI가 어떤 원리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는지를 알려준다. AI가 무조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도 쉽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AI가 분명 우리의 미래에 긍정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AI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문제들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연산만 할 줄 아는 알고리즘에 맡길 수 없다.” AI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우리 삶에 깊이 파고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모든 것을 AI가 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걱정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AI는 그래도 기계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할 때라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이 없는, AI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의미를 잃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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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들』, 정밀성의 역사 | 책을 읽다 2020-04-2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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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완벽주의자들

사이먼 윈체스터 저/공경희 역
북라이프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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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혹은 과학, 산업의 역사는 정밀함과 정확함을 추구해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그 속도는 느렸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면서는 정신 없으리 만큼 빨라졌고,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것은 필요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욕망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정밀성의 역사에 대한 책의 제목을 완벽주의자들(The Perfectionists)’라고 지은 것은,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완벽한 정밀성, 정확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다르지 못할 지점에 대한 끊임 없는 갈망 같은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인텔의 칩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허용 오차를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에 다다랐다고 하고 있어, 과연 이 수치가 실제 가능한 것인지, 혹은 상상으로만 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지만 이 역시도 0(zero)는 아니다. 말 그대로의 의미로는 완벽하지 않다는 얘기다. 산업 혁명 시기 이래로 놀라운 천재들과 끈질긴 연구자, 기술자들이 추구해온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들 역시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벽자(Perfect Man)’가 아니라 완벽주의자들이었다. 추구할 가치로서의 완벽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정확성과 정밀성의 구분이다.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서 책의 앞머리에서부터 저자가 잘 정리하고 있는데, ‘주의와 주목을 뜻하는 어휘에서 온 정확성(accuracy)’는 무언가의 진정한 가치를 최대한 가깝게 묘사하거나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분리와 연관된 의미들에서 생겨난 정밀성(precision)’은 미세(minuteness)라든가 세부(detail)이라는 의미들과 연관이 있으며, 핵심 가치가 아니더라도 최대한 세세하게 묘사하고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확성은 목표로 하는 가치에 충실한 것이고 정밀성은 그 행위 자체에 충실한 것이다.” 그림의 과녁을 비유로 들자면, 가운데에 가깝게 총알이 집중되는 것이 정확성이라면, 정밀성은 어디든지 탄착 지점이 몰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확성과 정밀성은 일치할 수도 있고, 그것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이먼 윈체스터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은 분명 정밀성이다. 옳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오차를 줄이느냐는 것이 관심 사항인 것이다.

 


정밀성의 역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무척 쉽지 않은 문제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 분야에서 점점 더 정밀해지는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해 나갈 수 있다. 또는 현대의 정밀한 분야들을 모아 놓고 이런 정도다!’라고 놀라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이먼 윈체스터가 추구한 방식은 연대기적이면서도, 연대기적인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허용 오차가 극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대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기술하고 있으면서도, 그 서술하고 있는 분야를 서로 달리 하고 있다. 와트의 증기 기관을 가능하게 한 윌킨슨의 신기술(허용 오차 0.1인치)에서 시작하고 있다. 물론 인류 최초의 정밀한 도구라면서 고대의 안티키테라 기계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정밀성의 역사는 바로 산업의 역사라는 것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기계를 만드는 기계를 고안하고, 호환 가능한 부품이라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해낸 헨리 모즐리로 넘어간다. 그를 산업 시대의 창조자라고 부르는 것 역시 정밀성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추구되었는지를 분명하게 짚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무엇일까? 바로 총과 시계다. 시계는 쉽게 이해가 가지만, ? 이런 생각이 들지만, 총이야말로 앞에서 헨리 모즐리가 처음 시도하고 성공한 호환 가능한 부품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무기를 부품으로 제작하여 갈아 끼운다는 발상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시도하고 성공함으로써 전쟁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물론 사이먼 윈체스터가 전쟁의 피해에 대해서 깊게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밀성의 역사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어쩌면 정밀성에 대해서 무슨 얘기가 가능할까 하는 자동차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롤스-로이스와 포드의 T-모델을 비교한다. 둘다 정밀성에 관해서 일대 도약을 이룬 자동차라는 의미에서는 동일하지만, 그게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롤스-로이스를 개발한 헨리 로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동차의 가치를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최고급 자동차를 만드는 데 집중한 반면, 헨리 포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자동차를 이용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두 목표 모두 정밀성을 요구하는 과제였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를 예술가를 자처하는 기술자가 꼼꼼하고 유연하게 정밀성개혁가를 자처하는 기술자가 매몰차고 단호하게 이용할 정밀성이라고 칭하면서 서로 다른 정밀성의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일단 모두 성공했다.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롤스-로이스가 망했으므로 그 방향의 정밀성이 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또 다른 고가의 수제품들이 여전히 부자들의 선호(나아가 부자가 아닌 이들의 부러움)를 받는 것을 보면 여전히 두 방향의 정밀성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제트 엔진이나 카메라의 얘기를 거쳐 저자는 당연히’ GPS의 세계와 반도체 칩의 세계로 접어든다. 말해 무엇 하겠나 싶다. 그것들은 현대 과학의 총아다. 그러므로 가장 최고의 정밀성을 추구하며 보장한다. 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는 초현대 문명이 어떤 기반 위에서, 어떤 정밀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GPS도 반도체 칩도 그 정밀성의 한계를 정해지는 게 설명의 차원의 아니라 목표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나치게 정밀성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 사이먼 윈체스터는 균형을 이야기한다. 그가 균형을 위해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일본의 시계 세이코(SEIKO)와 칠기 공예를 대비시킨다. 반도체 칩에서 세이코의 정밀성으로 차원을 낮춘 것이나, 왜 칠기 공예를 더듬었는지는 조금 의아한다. 요새의 감정(이성인가?) 때문에 덤덤히 읽지는 못하지만, 사실은 그냥 무심히 읽고, 그냥 공감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그냥 우리의 예로 치환시켜 이해해도 별 문제는 없다.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밀성의 역사는 사실 숨가쁘다. 숨 막힌다. 이런 세계에서 숨을 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며, 조금은 정밀함에서 초연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끝에 보니 사이먼 윈체스터의 아내가 바로 일본 출신이다. 이해할 만하다).

 

인간이 얼마다 더 작은 오차를 허용하며, 정밀함에 목숨을 걸지는 모른다. 아마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 세상은 또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정밀함을 추구해온 역사를 통해 증기기관이, 무기가, 시계가, 비행기가, 자동차가, GPS, 반도체 칩이 우리 삶을 바꾸어 온 것을 보면, 또 예상치 못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말하자면, 정밀함의 역사는 앞으로도 혁명의 역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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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끌고, 끌리고, 서로 어우러지고, 혹은 서로 밀어내며 (『뉴턴의 아틀리에』) | 책을 읽다 2020-04-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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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뉴턴의 아틀리에

김상욱,유지원 저
민음사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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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스런 물리학자김상욱과 타이포그래픽 전문가유지원이 함께 작업한 책의 제목이 뉴턴의 아틀리에’. 제목에서부터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간다. 저자들도 맨 앞에서부터 설명하고 있듯이 뉴턴은 과학자이고, 아틀리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장이다. 과학자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분야, 그리고 남의 분야에 대한 생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융합되지 않는다고 많이들 생각하는 두 분야가, 실은 서로 아주 가깝다는 것을 둘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더 큰 관심이 가는 쪽은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김상욱이 아니라, 유지원 쪽이다. 『글자 풍경』이라는 전작의 느낌 때문에도 그렇지만, 더 큰 이유는 궁금해서다. 과학자가 예술에 대해서 쓰는 것은 흔하지는 않더라도 그리 드물지는 않다. 에릭 켄델이 뇌과학과 추상화를 (인상 깊게) 연결시킨 예도 있고, “미술관에 간 ~” 시리즈로서 화학자, 수학자, 의학자, 물리학자(!) 들도 있다. 그러니 김상욱이라는 물리학자가 예술에 대해서 그들과는 조금 달리 썼겠지만, 미리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신 예술 쪽의 인사가 과학에 대해서 제대로 쓰기는 쉽지 않다. 이게 선입견이고 편견일지 모르지만, 그 선입견과 편견을 입증시키는 예는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그들이 과학에 대해서 언급하더라도 잘못된 개념에 바탕을 두거나, 혹은 아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는유지원은 어떨까? 그게 궁금했다.

 

짧은 글들에서 유지원의 과학 실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과학에 대한 이해도는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엔트로피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세포막의 특성과 기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튜링의 업적도 잘 파악하고 있다. 더 중요하게는 과학을 잘 아는 예술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식이 아니라 현대 과학의 성과와 흐름, 그 양태를 예술에 적용시킨 예들을 보여주고 있고, 스스로 그것을 응용한 프로젝트를 학생들과 수행하기도 한다. 모든 글에 과학적 내용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자신의 전공인 서체에 대한 얘기만 하기도 하고, 음악에 대해서만 얘기하기도 한다. 늘 부지런히 사고하고, 읽고, 자유롭게 적용하는 그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가장 인상 깊은 글을 꼽는다면 , 마침표는 쉼표를 낳고…”. ? 이 짧은 글에서 동양과 서양의 서체의 특성, 마침표와 쉼표의 제작 원리, 거기에 쿼크, 양성자, 중성자를 등장시킨다).

 


김상욱은 다소 전형적이다. 주로 그림을 두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이를테면 에 대한 글에서는 (상당히 예상이 가능하게) 조르주 쇠라의 그림(점묘버)을 꺼낸다. 예상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피카소의 그림을, 밀레의 그림을 앞에 두고 그 감상을 써낸다. 물론 거기에 과학을 넣는다. 과학자도 그림을 좋아하고, 심지어 과학자는 그것을 과학으로 풀어낼 수 있다. (나도 과학자라는 명칭을 붙이고 살고 있으므로) 싫지는 않지만, 역시 끌리는 쪽은 과학자가 아닌 쪽이 과학을 (제대로) 끌어온 경우다.

 

그래도 좋았다. 하나의 단어를 모티브로 하여 얘기하는데 둘이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의 보편성을 깨닫게 되었고, 또 아예 딴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는 생각의 다양성을 엿보았다. 서로가 끌고, 끌리고, 서로 어우러지고, 혹은 서로 밀어낸다. 이 정도면 둘은 충분히 자신들의 의도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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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그대로 빛을 발산한다 | 책을 읽으며 2020-04-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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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스런 물리학자 김상욱과 함께 쓴 『뉴턴의 아틀리에』에서 그래픽디자이너, 타오프그래픽 연구자 유지원이 쓴 글을 읽는다. (문장의 순서는 내 맘대로 바꿨다. 양해 바람)

"한글은 소리의 느낌과 글자의 모양이 체계적으로 일치하는, 세계에 유례가 드문 문자다. 한국어 '빛'은 그 글자의 모양이 빛 같다. 의미와 심상과 소리가 그 글자의 모양에 필연으로 일치하는 기막힌 만남이 한 국어 '빛'에서 행운처럼 일어나, '빛'은 그대로 빛을 발산한다." 


그 비슷한 걸 읽었었다. '술'에 관한 고종석의 글이었다. 술 마시면서 종종 읊어대던 '아는 척'이었다. 대충 기억해서 적으면, 'ㅅ'은 술의 쏘는 맛을, 'ㅜ'는 넘기는 기분을, 'ㄹ'은 술의 액체성을 나타낸다. 


이제 하나 더하게 됐다. '술'에 이어 '빛'. 근데 이 '빛'에 관해서는 언제 얘기하지?


뉴턴의 아틀리에

김상욱,유지원 저
민음사 | 2020년 04월

 

11시까지,  222쪽까지 읽다. 

*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 참여하며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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