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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몰이해 | 책을 읽으며 2020-05-3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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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을 잘 읽는데, 중간에 덜컥 걸리는 데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부분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쓴 부분이다. 

<여자, 동양, 노예 그리고 제국주의>라는 글에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주요 골자로 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

"다윈의 진화론은 진화의 속도와 차이를 인정했다."


제국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다윈의 진화론에서 찾았다는 인식인 셈인데, 그걸 '악용'했다고 지적하는 점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일단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약육강식'이 주요 골자가 아니다. 진화론은, 흔히 하는 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게 더 가까운 얘기일 텐데, 사실 그것도 그렇게 옳은 표현은 아니다. 진화론은 어떤 평가를 하지 않는다. 단지 오래 살아남고, 자손을 많이 남기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진화의 속도와 차이를 인정한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하여,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해서 우생학, 인종론 등이 나왔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악용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고등동물/하등동물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다윈 스스로 그랬다). 그것은 진화의 속도와 차이는 단지 현상적인 것이지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저
민음사 | 2015년 05월

 

밤 10시까지 388쪽까지 읽다. 


*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 참여하며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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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다, 도시를 탐구하다 | 책을 읽다 2020-05-3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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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로버트 파우저 저
혜화1117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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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는 관광객의 눈이 아니라 생활인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그곳의 이면을 파헤치며 이해하려 했다. 그는 자신이 생활을 영위했던 도시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가 거쳐간 도시는 비록 전세계를 망라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도시들이었고, 그 도시들에서 그 도시만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머물렀던 도시 가운데는 서울과 대전이 있고, 또한 전주와 대구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방문했다. 단지 그가 우리의 도시 가운데 몇 군데를, 우리말로 썼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의 도시를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가 더 흥미롭다. 또한 왠지 관심이 가는 도시들, 이를테면 일본의 도쿄와 교토 등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도시의 이미지와 그곳에서 외국인 생활자로서 느낀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흥미롭다.

 

그는 서울을 비빔도시라고 했다.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듯한 이 말을 자신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복잡하고 다채롭게 섞이고 혼합됨으로써 서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섞인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그 섞이는 과정이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지적한다. 섞이는 과정 속의 갈등 때문이다. 갈등은 부딪히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면서, 어쩌면 도시의 다이내믹한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특히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서울과 도쿄를 비교하기도 한다(그는 도쿄에 먼저 살았었고, 그 후 서울에 더 오래 살았다). 그는 일본의 도쿄를 야마노테와 시타마치로 구분하는 데 동의하고(야마노테는 외부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개발하는 쪽, 상인들의 동네였던 시타마치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다), 서울의 강남과 도쿄의 야마노테를 비교한다. 일단 도쿄의 야마노테는 메이지 유신의 탈아 정신에서 비롯된 데 비해, 서울의 강남은 박정희 시대의 군사적 발전 모델에 뿌리가 있다. 둘 다 발전과 개발의 욕망의 산물이지만 그 뿌리가 다르다. 그래서 파우저는 야마노테에서는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를 느꼈지만, (강남에 개발되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강남에서는 계획 도시의 엄격함과 권위를 느낀다. 그건 삭막함이었다. 물론 그런 이미지는 2000년대 들어서 바뀌지만 우리가 도시를 개발하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느낌인 셈이다.

 

그런데 그가 언급한 몇 군데의 도시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일본의 교토다. 그에게 그곳은 직장 면에서는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준 곳이었지만, 고도(古都)로서 간직한 어떤 푸근함이 그 스트레스를 풀게 한 곳이었다. 내겐 한 여름 걸어서샅샅이(?) ‘탐구’(?)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가 군데군데 얹어 놓은 사진들이 익숙하고, 또 기억이 새로워진다. 다시 가고 싶다기 보다는 그곳에서 지낸 시간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비록 파우저와 같이 생활인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도시에 살면서, 도시의 확장과 개발, 그리고 쇠락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그 쇠락을 어떻게 하면 극복하고 살 만한 생활의 터전으로 도시를 간직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한옥 보존을 위한 활동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도시의 핵심적인 특성인 확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래된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과 개발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나도 내가 살아온 곳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장면들이 있다. 그건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반추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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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탐구하다 | 책을 읽으며 2020-05-3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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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관광객이 아니라, 생활자로서 자신이 살았던 도시의 속내를 관찰하다.

이방인이 아니라 그 문화에 속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느낀 한국의 서울과 대전, 전주, 대구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많다.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로버트 파우저 저
혜화1117 | 2019년 05월

 

아침 7시 30분까지, 끝까지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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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 책을 읽다 2020-05-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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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공저/김아림 역
책세상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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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학 교육을 비롯한 고등교육 개혁을 앞장섰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초대소장이었던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는 1939 10 <Harper’s>지에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The Usefulness of Useless Knowledge)”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1921년 교육위원회에서 작성했던 메모에서 비롯된 이 글은 우연한 발견에 힘입은 인간의 호기심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진보적 기술의 강력한 힘이라는 것 자신의 지론을 밝히고 있다. 진정학 혁신가는 마르코니가 아니라(“마르코니는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헤르츠와 맥스웰이며, 마이클 패러데이, 프리드리히 가우스, 군론(group theory)를 창시한 수학자들, 알버트 아인슈타인, 파울 에를리히 등이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지적 활동의 쓸모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당시 시대상에 대한 지적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상황에 대해, “인류의 진짜 적은 인간의 정신이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틀에 가둬 주조하는 사람이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물론 독일과 이탈리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플렉스너의 생각은 그대로 강의 없이 자유로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설립과 활동으로 이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인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는 플렉슨의 에세이를 이어 쓰고 있다. 제목은 <내일의 세계>. 플렉스너의 생각을 요약하고 반추하며, 현재 순수 학문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미국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지만, 미국만이 아닐 뿐더러 그나마 나은 곳이 미국이다)을 개탄하고 있다. 물리학자 로버트 윌슨이 1969년 의회 청문회에서 입자 가속기의 쓸모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이 나라를 지킬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답변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내일의 세계를 위해서 지금 당장 쓸모에 집착하여 순수 학문(이 구분에 대해서도 노벨상 수상자 George Porter의 말을 빌어 응용된 연구아직 응용되지 않은 연구로 나누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이 위축되고 쇠퇴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당시에는 소년들의 물리학이라 불리며 이론적 탁상공론으로 비춰졌던 20세기 초반의 양자역학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미국 국민총생산의 30%가 양자역학에 의해 탄생한 발명에 기초한다. 그렇게 따지는 것도 사실은 이런 논의에서도 조금 불경스러운 것이긴 하다.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에 기초한 학문 활동의 가치는 그 자체로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가끔 내가 하는 과학 활동이 아마츄어스럽지 않은지 생각하곤 한다. 그런 생각은 스스로 어떤 경우엔 부정적이고, 또 어떤 경우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다. 직업인데, 프로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 비판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무엇을 좋아해서 한다는 의미에서 아마츄어리즘(amateurism)이야말로 과학에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일 년에도 수차례 작성해야 하는 연구계획서와 보고서에는 활용 방안또는 그 비슷한 것을 쓰는 부분이 있다. 과학자들이 가장 곤란해 하는 부분 중 하나다(아닌 이들도 있을 테지만). 나는 정복같은 말까지는 쓰지 않지만, ‘획기적 전환같은 말을 쓰긴 한다. 3년 만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연구를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겠지, 아니 그럴 수 있는 데에 조금의 기여라도 할 수 있겠지 하면서 그런 말을 쓸 수 밖에 없다. 쓸모없는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인상은 주지 않기 위해서. 쓰는 사람도 그렇지만, 읽고 평가하는 사람도 이해하겠지 생각하면서.

 

이런 책이 나왔다고 해서 상황이 쉽게 바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당장 쓸모가 눈에 띄지 않는 연구를 한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것 정도의 위안은 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책 좀 읽어보라고 할 수는 있다. 조금씩 바뀌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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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도시에 대해 쓴다면 | 책을 읽으며 2020-05-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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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외국어 전파담>을 우리말로 쓴 로버트 파우저가 또 우리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쓴 <도시 탐구기>. 

그가 살았던 도시에 대한 탐구다. 

읽기 시작하며 내가 살았던 마을과 도시를 생각해 본다. 

만약 쓴다면 나는 로버트 파우저와는 달리 쓰겠구나.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로버트 파우저 저
혜화1117 | 2019년 05월

 

아침 7시 30분까지 47쪽까지 읽다. 


*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 참여하며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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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 한줄평 2020-05-3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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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쓸모'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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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의 선구자, 윌리엄 스미스 | 책을 읽다 2020-05-2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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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를 바꾼 지도

사이먼 윈체스터 저/임지원 역
사이언스북스 | 200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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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 솔직하게 이 평범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하게도 이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어쩌면 이 사람의 이름과 업적은 지금 기준으로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을 만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찰스 다윈의 업적을 기리는 정도를 생각하면 이 사람의 업적 정도는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어야 하지 않나 싶다. 찰스 다윈은 너무했다 싶으면, 그의 생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지질학 원리』의 찰스 라이엘은 어떤가? 찰스 라이엘을 앞선 세대의 지질학자로서 윌리엄 스미스가 현재 잊혀진 상황을 보면 조금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윌리엄 스미스라는 인물은 무슨 일을 했을까? 그가 남긴 것은 영국의 지질도이다. 영국 전역의 지층 분포를 색으로 표현한 지도. 사이먼 윈체스터는 세계 최초의 지질도인 이 지도를 세계를 바꾼 지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지도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세계를 바꾼 지도라고까지 했을까? 우선 윌리엄 스미스가 활동한 시기를 봐야 한다. 1800년 초반이었다. 아직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충격을 주기 전이었다. 성경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과학적 사고가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던 시기였다. 지질학은 지구의 나이가 성경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다. 지층의 분포가 규칙적이며, 지층이 생성된 연대가 서로 다르고, 각 지층마다 발견되는 화석이 달라 지층이 언제 생긴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지도를 통해 보여준 윌리엄 스미스야말로 바로 그 지질학을 있게 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는 진화론에 대해서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지만, 지구라는 존재가 성경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화론이 탄생할 수 있는 바탕을 깔아 주었다는 의미에서 세계를 바꾸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정보는 산업혁명 시대에 광물의 정보를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제공함으로써, 산업적인 의미에서도 세계를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윌리엄 스미스는 이른바 고상한 신분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으로 지질학적 지식을 얻었다(‘지질학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신분으로 당시 처음 생긴 (주로 귀족을 비롯한 고상한 신분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지질학회에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자신의 업적마저 표절당하기까지 했다. 그런 일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빚에 쪼들리며 채무자 감옥에까지 수십 일 갇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해피엔딩이었다. 결국은 그의 업적은 인정받았고, 울러스턴 메달이라는 지질학 분야의 최고상을 최초로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업적은 거의 잊혀졌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은 그렇게 각광받는 학문 분야의 선구자인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과 시대를 복원한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은 과학이란 그냥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진짜 선구적인 과학은 그냥 편하기 나오는 것이 아님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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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하는 것과 입증하는 것의 차이 | 책을 읽으며 2020-05-2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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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어렴풋이 가정했지만 그것을 확신을 가지고 선언하고 종이 위에 입증해 보인 것은 스미스뿐이었다.” (『세계를 바꾼 지도』, 241)

 

어떤 일을 해낸 사람 뒤에서 그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라고, 나도 생각은 했었다고 힐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 있다. 사람의 아이디어란 사회적 산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다(이를 테면 전화기 발명 같은 경우가 그런 예이다. 그레이엄 벨만이 그 아이디어를 내고, 특허를 낸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걸 현실화해내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 아이디어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그걸 생각해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그저 생각했던 것이라고, 나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중얼거리기 전에 왜 그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세계를 바꾼 지도

사이먼 윈체스터 저/임지원 역
사이언스북스 | 200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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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지질도를 만든 이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 책을 읽으며 2020-05-2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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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완벽주의자들>, <교수와 광인>에 이어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으로 <세계를 바꾼 지도>를 읽는다. 세계 최초의 지질도를 만든 윌리엄 스미스에 관한 이야기다. <완벽주의자>나 <교수와 광인>보다도 잘 모르던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과학사에서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의욕이 난다. 


"하이 리틀턴의 먼스 핏이 지질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레고르 멘델이 완두콩을 심었던 모라비아 지방의 정원이 유전학에서, 갈라파고스 군도가 진화론에서, 시카고대학 풋볼 경기장이 핵융합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94~95쪽)



세계를 바꾼 지도

사이먼 윈체스터 저/임지원 역
사이언스북스 | 2003년 05월


아침 7시 30분까지, 101쪽까지 읽다.


*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 참여하며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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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식물의 이름은 어디서 왔나? | 책을 읽다 2020-05-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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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이름은 왜?

이주희 저
자연과생태 | 201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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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아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그 이름이 어디서 온 것인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알면 그 대상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것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 대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황소라든가, ‘황새노랗다는 뜻이 아니라 크다를 의미하는 것을 알면 그것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그것들을 바라보는 자세도 달라진다.

 

스스로는 많은 생물 이름을 다루지 않았다고 했지만, 상당히 많은 우리의 동식물 이름을 다루고 있다. 이미 조금은 알고 있던 것도 있고(참치가 바른 말이 아니고, 원래 다랑어라는 것 같은 것이나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부르는 이유, 대게의 가 대나무라는 뜻 정도), 처음 듣는 것들은 참 많고(이를 테면, ‘이란 이름 자체가 크다라는 데서 온 것 같은 것, ‘검다에서 유래했다는 것, 자작나무가 순우리말이라는 것 등등), 읽으며 그럴 듯 싶은 것도 많고(두루미, 까마귀, 제비, 까치와 같이 울음 소리에서 온 명칭들이 대표적이고, 해오라기 혹은 하야로비가 희다라는 뜻을 같는 것),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도 있다(도마뱀이 꼬리를 토막내고 도망가는 뱀이라는 뜻이라거나, 느티나무가 누런 회화나무라는 것 같은 것).

 

사실 이런 이름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아는 게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모르더라도 우리는 참치라 부를 것이며, 백조가 원래 고니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백조의 호수라고 부를 것이다. 호랑이가 고유어인지 한잣말인지도 사실 그것을 쓰는 입장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한번 더 생각해본다.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왜 생물을 부르는 이름을 선취하려 할까? 그 이름에 자신이 생각하는 뜻을 부여하려 할까? 원래의 뜻을 잃고 이상하게 불리는 동식물의 경우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정말 똑같을까?

 

지적 유희로서도 이름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아는 게 의미 있지만, 그 과정에서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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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중독의 증상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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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