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에나의 밑줄긋기
http://blog.yes24.com/ninguem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ena
남도 땅 희미한 맥박을 울리며...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2·4·7·9·10·11·12·13·14·15·16·17기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20,209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끄적이다
책을 읽으며
책읽기 정리
Science
책 모음
이벤트 관련
나의 리뷰
책을 읽다
옛 리뷰
한줄평
영화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과학이슈 14기파워문화블로그 몽위 문학신간 리커버 이그노런스 주경철의유럽인이야기 파인만에게길을묻다 12기파워문화블로그 물리학
2021 / 0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최근 댓글
ena님! 우수리뷰 선정되신 거 축하.. 
저도 이과를 선택해서 이공계열 대학을.. 
우수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 .. 
오아~ 축하드립니다. 독후기도 잘 .. 
우수 리뷰어로 선정되심을 축하드립니다..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새로운 글

2021-03 의 전체보기
우리는 호모 우르바누스(Homo urbanus)다. | 책을 읽다 2021-03-31 21:5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11102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메트로폴리스

벤 윌슨 저/박수철 역/박진빈 감수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호모 우르바누스(Homo urbanus). 우리는 도시 인류라는 걸 부정할 수 있을까? 현재 세계의 도시 인구가 40억 명을 넘어섰으니, 전체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 자체만으로 호모 우르바누스를 확언할 수는 없다. 얼마나 도시에 거주하느냐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인류가 얼마나 도시에 의존하고 있는가이다. 사실 그것은 우르크라는 인류 첫 도시가 생겨난 이후부터 그렇다. 인류의 역사는 대체로 도시를 중심으로 기억되고, 또 서술된다(비주류의 역사, 역사의 오솔길을 기록한 하랄트 하르만의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도 결국은 도시를 중심으로 서술할 수 없었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것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류하면서 이루어졌고, 그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다름 아닌 도시였다. 도시는 역동성과 창의성이 피어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지 않았을 때부터 인류의 역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지 않지만 결국은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애석한 일이고, 부당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이를 부정하기엔 너무 많은 증거가 있다.

 

벤 윌슨은 그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시 중에서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즉 대도시. 어느 정도 규모의 도시를 메트로폴리스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따질 수 없다. 시대별로 그 도시가 가지는 의미가 달랐다. 그 시대에, 그 지역, 혹은 국가에서 결정적인 역할, 즉 많은 것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했다면 그것은 메트로폴리스, 즉 엄마 도시(mother city)였다. 그 메트로폴리스의 선구가 되는 도시, 즉 우르크 등으로부터 하라파와 바빌론,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로마와 같은 고대의 도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바그다드와 같은 중세의 이스람 도시를 거쳐 뤼벡과 같은 근대의 무역을 선도했던 도시, 리스본, 믈라카, 테노치티클란, 암스테르담과 같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에 있었던 도시들을 이야기한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도시들이다. 런던, 멘체스터, 시카고, 파리, 뉴욕, 바르샤바, 로스엔젤레스. 그리고 비록 우리에겐 덜 익숙하지만 가장 커다란 도시 중 하나인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로 끝을 맺고 있다.

 

이렇게 벤 윌슨이 주목한 도시들을 열거했지만, 각 도시들에 대한 얘기에서 그 도시만을 주목하고 서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각 장마다 하나의 도시(혹은 몇 개의 도시)를 제목에 두고 있고, 또 많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도시는 그 장에서 하고자 하는 도시의 성격에 관해서 중심에 둘 수 있는 도시일 뿐이다. 이를테면, 파리에 대한 이야기를 파리 증후군이라는 제목으로 하고 있지만, 그 장에서는 근대 이후 현대로 이르는 과정에서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 그 도시를 거닐고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파리뿐만 아니라 시카고와 런던에 대한 얘기도 적지 않게 등장시키고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한 바르샤바를 중심에 두고 있는 12<섬멸>에서는 상하이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있고, 독일이 폭격한 영국의 도시들, 영국이 폭격한 독일의 도시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도쿄도 있고, 레닌그라드, 모스크바도 있다. 제목이 섬멸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도시들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도시들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잊혀지지 않았으므로) 결국은 그 파괴된 도시들이 재건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시의 불멸성이랄까?

 

그래서 이 책은 도시의 역사와 도시의 성격, 그리고 도시의 나아갈 바 등등을 종과 횡으로 엮어놓았다. 모든 도시와 모든 역사, 도시가 갖는 모든 성격을 다 다룰 수 없으므로 어디선가 성긴 자국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 두터운 도시 보고서를 통해서 우리가 호모 우르바누스임을 자각할 수 밖에 없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도시의 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 그런 자각은 도시를 다시 보게 하고, 또 그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피맛골 (feat. 《메트로폴리스》) | 책을 읽으며 2021-03-29 19:41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9952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외국 저자의 책을 읽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대목에서 우리 문화라든가 제도 등에 대해서 접하고 놀랄 때가 있다. 오늘은 벤 윌슨의 메트로폴리스에서 그랬다. 이런 책에서, 게다가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다룬 장에서 피맛골의 유래를 읽는다. 몰랐던 것은 아닌데 신기해서 옮겨 본다.

 

유교 영향권의 도시들에서 공공 공간은 거룩한 곳, 의무적 의식 절처에 따라 운영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조선 시대(1392~1897)에 평민들은 한양의 간선도로인 종로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는 양반들과 마주칠 때마다 절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아가 치민 나머지 종로 바로 옆에 나란히 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피맛골, 말을 피하는 거리로 알려진 그 비좁은 길은 군데군데 들어선 식당과 상점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 얘기하고 어울리는 장소였으며 한양이라는 대도시의 공식적인 부분을 관할하는 규칙에서 벗어난 비공식적인 공공 공간이 되었다.” (133)

 

근데 이 부분을 이렇게 다시 읽다보니 원서의 영어는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메트로폴리스

벤 윌슨 저/박수철 역/박진빈 감수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03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4        
스노의 '두 문화'에서 진짜 얘기했던 것 | 책을 읽으며 2021-03-29 13:1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9807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독서 습관 캠페인 : 오늘 읽은 책 참여

강양구의 강한 과학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 가운데는 내가 읽은 책들이 적지 않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지만, 워낙에 고전인지라 다른 책들에서 그 내용을 반추하게 만드는 책들도 있지만(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책들이 그런 책들이다), 읽지 않았음에도 마치 읽은 것처럼 여겨지는 책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C.P. 스노의 두 문화. 강양구는 이 책을 지도가 필요한 책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나의 경우에 비춰서도 그렇다.

 

읽지 않았음에도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에도 그 내용에 대해 적절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영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바로 그 경우가 이 두 문화. 내가 이 두 문화라는 책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강양구의 강한 과학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던 두 문화의 메시지는 인문사회과학과 과학, 공학이라는 두 문화(Two Cultures)’ 사이의 갈등을 우려하고, 이를 해결하여 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양구에 의하면(실제로는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은 두 문화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책입니다. 소노는 두 문화에서 과학도 모르면서 지식인 행세를 하는 이른바 문과지식인을 조롱하고 질타합니다. 과학기술에 무지한 이들이 세계를 관리하면서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는 거죠.” (149)

 

문과 쪽의 셰익스피어와 이과 쪽의 열역학 제2법칙을 동등하게 두고 비교하는 것을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책에서 읽었었는데(과학,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었다), 그게 실은 스노가 먼저 얘기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강양구는 주로 이렇게 편협한 시각에서 반대쪽으로 비판했다는 점에 주목을 하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과학 쪽이 인문학 쪽에 대한 이해보다, 인문학 쪽의 과학에 대한 이해가 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스노처럼 극단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이 부분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마크 트웨인이 고전에 대한 정의에 관한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

-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마크 트웨인이 이렇게 얘기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의 것으로 알려진 많은 경구들이 실제로는 마크 트웨인의 것이 아닌 걸로 밝혀진 게 적지 않다.

 

 

강양구의 강한 과학

강양구 저
문학과지성사 | 2021년 03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3        
어떤 과학책을 읽을 것인가 | 책을 읽다 2021-03-28 21:3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9427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금.토.일 리뷰 이벤트 참여

[도서]강양구의 강한 과학

강양구 저
문학과지성사 | 202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23권의 과학 도서를 통해 과학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고 있다. 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여기 소개하는 책을 읽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여러 현실적인 이유를 포함해서), 이런 책을 읽었을 때 가장 효과도 높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드시 청소년에게만 유효한 책들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성인들도 과학책을 읽어야 하고, 또 안내가 필요할 때가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안내서다.

 

강양구 기자는 청소년들을 염두에 두고 소개하는 책을 세 부류로 나누고 있다.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 책’, ‘청소년들이 읽을 때 지도가 필요한 책’,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지 의문이 드는 책’. 대체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을 소개하는 책은 읽어야 할 책을 꼽지 (본격적인 비판서가 아닌 이상) ‘꼭 읽어야 할지 의문이 드는 책을 다루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런 부류로 분류한 책이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하자면 많은 매체에서 필독 도서로 소개되는 책이라는 것과, ‘지도가 필요한 책즉 조심해서 책이 이야기하는 바를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할 책들이 적지 않게 소개하는 것을 보면 강양구 기자가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썼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과학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소개하는 책의 성격을 봐서도 그렇다.

 

그러니까 이 책은 과학에 대한 고민을 위한 책이다. 과학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신성시하는 태도를 경고하고 있으며, 과학의 폐해에 눈감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원자폭탄이나 DDT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가 바로 그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데 적절한 안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과학의 내용보다는 과학의 태도에 관한 책에 치우쳐 있다. 과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의식을 지닌 과학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현재의 과학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에 대한 소개는 부족하다(그런 책으로는 바러바시의 링크라든가 쾀멘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정도다). 그래서 당연히 필요한 얘기이지만,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과학자가 되도록 의욕을 고취하는 데는 한 쪽이 부족해 보인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4        
[한줄평]강양구의 강한 과학 | 한줄평 2021-03-28 21:37
http://blog.yes24.com/document/1409426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평점

좀 아쉬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인류사의 의붓자식 | 책을 읽다 2021-03-28 14:5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9185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하랄트 하르만 저/이수영 역/강인욱 해제
돌베개 | 2021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먼 고대사로부터 이어진 세계사라고 해도 익숙한 역사가 있다. 4대 고대 문명이라든가, 그리스-로마의 역사에서 이어지는 유럽의 역사, 그리고 중국의 역사 같은 것들이다. 혹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를지는 몰라도 잉카-마야 문명도 그 이름만큼은 무척이나 익숙하다. 우리는 이런 주류의 역사를 통해 인류사를 파악하고 있다. 그렇게 인류사를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는 다른 역사는 부록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고, 또 세계사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역사의 의붓자식인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가령 우리 한반도의 역사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이 역사가 굉장히 훌륭하다고 여기고, 의미가 있다고 여기지만 과연 서양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중국 역사의 한 귀퉁이쯤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으며, 심지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거의 한 줄의 인용 정도로 지나갈 지도 모른다. 현대에 관심을 받지 못한 역사는 잘 기술되지 않았고, 반복해서 잊혀져 왔다.

 

하랄트 하르만은 인류의 역사에서 주류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중요성을 간과했던 역사도 있고, 최근에야 발굴되고 인정받는 역사도 있다. 신화 속에서 존재하며 허구의 역사로 인식되다가 실제의 역사로 밝혀진 것도 있다. 잠깐이라도 세계사의 중심에 섰던 역사도 있다. 지금은 그 영향마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간 역사도 있지만, 그 역사의 영향이 면면히 현재에 이르는 것도 있다.

 

현생 인류의 등장 이전, 쇠닝겐 창으로 대표되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문화에서 시작해서 중앙 아시아와 아나톨리아, 현대의 동부 유럽과 그리스 일대,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이르는 지역을 방대하고 훑고 있다. 이른바 4대 문명 중에는 인도 문명 정도나 곁다리로 등장할 뿐이다. 발음하기도 힘든 지역과 인물들의 이름은 이 문명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낯선 것인지를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하랄트 하르만은 그 문명을 일군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문명을 일구었는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고고학, 언어학, DNA 분석 등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서 DNA 분석을 이용한다는 것은 여기에 소개하는 연구 성과가 최신의 것을 반영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 연구 성과는 기존의 생각을 뒷받침하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고 깊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구 중심이라는 것은 별 수 없다. 전체적으로도 서구 중심적이지만(서술할 문명을 고르는 것부터), 아메리카로의 이동이라든가, 중국 신장 지구에서 발견된 누란의 금발 미녀 미라에 대한 설명 등에서 특히 그런 면모를 읽을 수 있다(어차피 이 책은 독일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니).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 출신의 저자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이 책에 대해 해제를 쓴 강인욱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식민지를 많이 보유했던 영국이 자신의 식민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했던 것에 비하면, 독일은 보유했던 식민지가 적었던 탓에 다른 유럽 국가의 역사가가 관심을 갖지 않는 지역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고 한다. 역시 제국주의적인 목적과 관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조금은 결이 다른 역사서도 접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역사는 편집되기 마련이며, 그 편집에는 편견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문명들은 사라져 갔거나, 파괴되었다. 흔적을 남겼으니 우리는 그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해석이 다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부단히 극복하려고 하겠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그 문명과 역사를 해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 문명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을 존속한 문명이 그 중심을 옮기거나 파괴되는 것은, 내 생각에는 어쩌면 필연적인 듯하다. 우리의 도시가 영속하리라 믿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처럼.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4        
도스토옙스키 단편 읽기 | 책을 읽다 2021-03-27 20:1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8690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웃음과 풍자 코드로 읽는 도스토옙스키 단편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저/서유경 역
걷는사람 | 202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표지의 인상마냥 도스토옙스키는 음울한 느낌이다. 인간 군상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데 가차 없다. ‘웃음과 풍자 코드라 했지만 가볍지 않다. 여전히 그는 인간의 본성에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더 천착하고, 그런 본성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

 

여섯 편의 단편을 실었다. 단편임에도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장황한 문장은 여전하다(당시 러시아에서는 글자 수에 따라 원고료를 받았고, 도스토옙스키는 오로리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했기에 글자 수를 늘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읽다보면 그런 장황함은 도스토옙스키의 특징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고, 역하게 느껴지지 않는 힘이 있다.

 

다소는 황당하지만 그 황당한 상황이 이야기하는 바가 있다. 악어에게 잡아 먹혔는데, 악어 배 속에 멀쩡히 살아남아 밖의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상황, 게다가 그 악어 주인은 절대 악어의 배를 가를 수 없다고 하고, 또 많이 이들이 그걸 인정하는 상황은, 특히 현대라면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통해 그 당시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있던 러시아의 배금주의라든가, 인간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게 읽게 되는 작품은 <끔찍한 일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이 작품은 매우 소란스럽지만, 또 매우 처절하다. 고위직의 공무원이 우연히 찾아가게 된 직장 부하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벌이는 소동을 통해 교양이라든가, 지위가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보여준다. 또 마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듯, 사람이 술에 취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느낌도 있다. 내가 그러겠구나, 하는...

 

이 작품들로 도스토옙스키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다고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그래도 그의 장편으로 가는 길목에서 숨을 돌리고 익숙해지기에는 적당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5        
애덤 스미스와 에드워드 기번 | 책을 읽으며 2021-03-26 20:2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8048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레오 담로슈는 더 클럽을 새뮤얼 존슨과 제임스 보즈웰을 중심에 두고 그 밖에 인물들을 그들을 종횡으로 연결시키고 있는데, 그래도 애덤 스미스와 에드워드 기번 같은 잘 알려진 인물들에 더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애덤 스미스와 에드워드 기번이 더 클럽에서 중심 인물은 아니었다. 1764년에 처음 만들어진 더 클럽에 애덤 스미스는 1775년에, 에드워드 기번은 1774년에 선출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새뮤얼 존슨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심지어 존슨은 애덤 스미스를 두고 자신이 봤던 최고로 멍청하고 따분한 개새끼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보즈웰도 그에게서는 존슨의 힘, 날카로움, 그리고 생기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오 담슈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런 생각들을 문서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다.” (487)

 

새뮤얼 존슨과 애덤 스미스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너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레오 담슈르의 평가를 보면,

존슨은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에 대하여 고민하는 도덕주의자였다. 반면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사회과학자였다. 존슨은 기회만 생기면 이러저런 잡다한 글을 많이 발표하는 수필가였지만, 애덤 스미스는 이론가였고 수년 동안 공을 들여 공식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489)

 

에드워드 기번도 (애덤 스미스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존슨과 보즈웰이 증오했다. 더 클럽에서 애덤 스미스보다 더 존재감이 없었던 에드워드 기번이었지만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무척이나 즐거워했다고 한다. 기번이 역사서(로마제국쇠망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존슨은 역사를 쓰는 것은 대부분 추측일 뿐이라고 폄훼했지만, 기번은 그에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인도에 파견된 육군 장교였던 윈스턴 처칠이 읽고 또 읽었다는 로마제국쇠망사와 에드워드 기번에 대해 레오 담슈르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로마제국쇠망사에서 우리가 근거로 삼아야만 하는 것은 전부 먼 과거에서 온 단편적인 애매한 증거일 뿐이다. 때때로 그 증거는 그럴듯하게 보인다. 하지만 기번은 당시 누가 그 증거를 작성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가 그 증거를 써내려간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도 생각하라 말한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그들을 증오했던 적들의 기록에서 나온다. 기번의 위대한 업적은 독자가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513)

 

애덤 스미스와 에드워드 기번이 국부론로마제국쇠망사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모두 1776년이었다. 한 달 간격이었고, 역시 모두 런던의 스타라한&카델사라는 출판사를 통해서였다.

 


 

더 클럽

레오 담로슈 저/장진영 역/김경집 추천
아이템하우스 | 2020년 08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3        
새뮤얼 존슨과 '더 클럽(The Club)' | 책을 읽다 2021-03-26 11:3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7755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더 클럽

레오 담로슈 저/장진영 역/김경집 추천
아이템하우스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18세기 유럽, 특히 영국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새뮤얼 존슨. 꼭 그때만도 아니고, 영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가 쓴 글, 그가 한 말은 종종 인용된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해서 길게 소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주로는 사전 편찬자. 혹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작가 등으로 소개되고, 어떤 경우에는 대단한 근시의 소유자였던 것이 그를 소개하는 멘트일 때도 있다. 새뮤얼 존슨이 그렇게 의미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만큼 그가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이들이 별 것 아닌 양 그의 말이라고, 글이라고 인용할 리는 없다.

 

새뮤얼 존슨은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존슨 박사라 불렸지만, 옥스퍼드를 1년 만에 그만 두었고(학비가 없었다), 나중에야 그 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희곡과 시로는 성공이랄 수 있는 성과를 얻지 못했고, 비평문을 쓰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혼자 힘으로 영어사전을 남김으로써 그를 설명하는 가장 흔한 표현인 사전 편찬자로서 명성을 드높였다. 그의 글이라고 인용하는 것들은 대부분 영어사전에서 온 것이다. 단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다소는 냉소적이었지만, 독창적이었고, 셰익스피어 등에서 예문을 가져옴으로써 나중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선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우울한 인물이었다. 많은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당연히 천부적인 언어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인물이 대체로 그렇듯이 능숙한 유머 감각이 있었다. 그는 문인을 비롯한 많은 명사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 우정은 일종의 네트워크였고, 그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것은 당시의 문화 지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그 네트워크로서 더 클럽(The Club)’이 있었다(Club은 커피하우스나 선술집에서 모임을 갖고 비용을 각자 갹출하는 문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764년 우울증에 빠진 새뮤얼 존슨을 건져내고자 그의 친구이자, 유명한 초상화가, 왕립미술아카데미 총장 조슈아 레이놀즈는 한 모임을 제안했다. 매주 금요일 한 술집(터크즈 헤드 태번)에서 만나 정해진 주제 없이 자유로운 토론 모임을 갖자는 것이었다. 새뮤얼 존슨, 조슈아 레이놀즈, 에드먼드 버크, 에드워드 기번,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9인이 창립 회원이었던 더 클럽18세기 영국 문화의 지형을 가늠케 할 수 있는 표본과 같은 것이었다.

 

제임스 보즈웰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귀족이자 판사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골칫덩이였다. 난봉꾼이었고, 런던이라는 왁자지껄한 대도시를 사랑했다. 억지로 변호사가 되고, 정계에 진출하고자 했지만, 그에게 그 방면의 능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능력이 있었다. 그는 매일매일 일기를 썼으며, 그 일기는 매우 꼼꼼했다. 새뮤얼 존슨을 만난 이후,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새뮤얼 존슨의 가 되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아버지처럼 따랐고, 또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기록했다. 그리고 새뮤얼 존슨이 죽은 이후 그의 전기인 존슨전을 남김으로써 새뮤얼 존슨과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길 수 있었다. (제임스 보즈웰은 1773년에야 더 클럽의 회원이 된다.)

 

레오 담로슈의 더 클럽은 바로 그 더 클럽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이들에 대해 쓰고 있다. 중심은 당연히 새뮤얼 존슨과 제임스 보즈웰이다(제임스 보즈웰이 더 클럽의 중심 멤버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의 기록으로 더 클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후세 사람들이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새뮤얼 존슨과 제임스 보즈웰의 성장과 행보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던 이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초상화가로 대성공했고, 더 클럽을 제안했던 조슈아 레이놀즈, 훌륭한 웅변가였고, 정치인으로 활약했고 에드먼드 버크, 당시 최고 배우였던 데이비드 개릭, 새뮤얼 존슨의 아낌없는 후원자였던 스레일 부부, 그리고 당시 더 클럽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있는 인물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누구보다도 유명한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와 로마제국쇠망사의 에드워드 기번 등이 레오 담로슈가 주목하고 삶을 추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레오 담로슈는 책의 첫머리에 이것은 비범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쓰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별처럼 빛나는 지식인들이었던 그들은 작은 모임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우정을 쌓았다. 그 모임 자체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거기서 나누었던 대화는 그들의 자양분이 되고, 그 모임을 나와서는 영국 문화, 나아가 유럽 문화를 살찌웠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 읽는 것은, 그냥 그 시대를 읽는 게 아니라 그 시대가 그 이후의 시대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책에는 삽화가 많다. 당시 런던 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초상화들이다. 그 삽화들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는 레오 담로슈는 삽화들을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의 중요한 보조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거리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초상화에서도 그 인물의 성격을 알아내고 있다. 프롤로그에 따로 이 삽화들을 많이 실은 이유에 대해 쓸 만큼, 이 책에서 그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그림들만으로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소란스러우며 모순되고 폭력적인 18세기 런던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새뮤얼 존슨을 비롯한 그가 살아 있던 인물로 되살려내고자 하는 인물들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9        
벌이 살충제에 약한 이유 | 책을 읽으며 2021-03-25 11:1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07307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게 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벌은 살충제에 약하다. 그런데 다른 벌레들은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획득하는 데 반해 벌은 별로 그런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살충제에 더 취약하다. 그래서 벌의 집단 사라짐이 가속화되는데, 왜 그럴까? 벌의 사생활에서 소어 핸슨은 벌과 꽃의 관계에 대한 진화의 원리에 기대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애초에 벌이 화학 물질에 그토록 약한 이유가 무엇일까? 표적 곤충들은 모두 살충제에 내성이 생기는 것 같은데 왜 벌은 그렇지 못할까? ...

... 매뚜기 박각시나방, 딱정벌레, 진딧물, 장님노린잿과의 벌레들, 그리고 잎과 줄기와 씨앗과 뿌리를 공격하는 그 밖의 모든 해로운 생물은 착화합물의 독성을 없애야만 생활이 가능하다. 이들 생물은 주로 먹은 식물의 끊임없이 진화하는 화학적 방어를 극복하기 위해 수백 만 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이러한 일을 해왔다. ...

... 그러나 벌은 다르다. 벌은 꽃가루 매개자의 역할을 하므로 식물의 입장에서는 벌을 쫓아내기는커녕 오히려 끌어들여야 하며 그 결과 어떠한 방어용 화학 물질도 거의 포함되지 않은 달콤한 꽃꿀과 단백질이 풍부한 꽃가루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 덕분에 벌은 계속해서 수월하게 영양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는 곧 해로운 화합물이 든 먹이를 상대해야 할 진화적 경험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였다. 해충 벌레들이 식물의 화학 물질을 처리하거나 피해가기 위해 이용하는 태생적인 대사 경로가 벌에게는 없는 것이다.“ (294~295)

 

 

벌의 사생활

소어 핸슨 저/하윤숙 역
에이도스 | 2021년 03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3        
1 2 3 4 5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많이 본 글
스크랩이 많은 글
[서평단 모집]『과학을 만든 사람들』
[서평단 모집]『5리터의 피』
[서평단 모집]『앵무새의 정리1, 2 』
트랙백이 달린 글
경제학과 전쟁, 그리고 과학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책중독의 증상이 나오는데...
오늘 148 | 전체 1050110
2010-11-2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