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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는 중요하다 | 책을 읽다 2021-08-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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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는 지리

미야지 슈사쿠 저/오세웅 역
7분의언덕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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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마음으로 이런 일본 책을 보면 부러움이 앞선다. 분량이 많은, 전문적인 내용을 깊게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지면서도 간명하게, 읽기 좋게 추려내는 책들을 일본에서는 많이 펴낸다. 그건 이런 책을 수용할 수 있는 독서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우리보다 인구가 2.5배 정도 많다는 것도 큰 이유이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저자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책쓰기와 책읽기에 관한 전통도 이런 쪽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부담스럽지 않지만, 기본적인 지식만큼은 충분히 다루고 있는 이런 책을 많이 나오는 건 부럽다.

 

이른바 대입 학원의 (우리 식으로 치면) 일타 강사인 미야지 슈사쿠가 쓴 경제는 지리는 그런 전형적인 일본 번역서다. 미야지 슈사쿠는 지리(地理, geography)지구상의 이치로 파악하며 지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지리는 물론 역사와 경제, 문화 등을 통합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지리에 관한 지식은 다시 현재의 경제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지리학자가 쓰는 지리, 지정학에 관한 책들이 다들 그렇게 얘기하고, 그런 식으로 지리를 다루지만, 미야지 슈사쿠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주로 경제)를 다루면서, 아주 세부적인 것은 일단 미뤄두면서 핵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인이 쓴 책이니만큼) 일본과 관련된 지리적 문제, 그리고 그 지리와 관련된 경제의 문제를 중심으로 쓰고 있다(그래서 더 한국인이 쓴 세계 지리적 문제를 읽고 싶은 것이다).

 

학원 강사이지만 대입 관련한 내용만으로 책을 쓴 것도 아니지만, 학원 강사이니만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만큼은 아주 철저하게 깨닫고 있는 듯하다. 내용이 요점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래서 중언부언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핵심 내용은 장면을 달리 하면서 다시 등장해서 외우라고는 하지 않지만 저절로 이해하고, 머리 안에 저장되는 느낌을 준다.

 

물론 깊이 면에서 아쉬운 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물론 매스컴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지만) 팀 마샬의 지리의 힘과 같이 굵직굵직한 지리적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지리 문제, 즉 지역, 혹은 국가 내의 문제와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입지, 자원, 무역, 인구, 문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 입체적인 조망은 어느 하나에 깊이를 주는 것만큼이나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반도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외국인을 보면 우리의 국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런 것도 모른다며 비웃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 중에 보츠와나가 어디 붙어 있는지, 혹은 베네수엘라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것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지, 우리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는지를 물으면 몇 가지라도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지리는 중요하다. 특히 세계가 좁아지고 더욱 연결된 현대에는 더욱 중요하다. 아는 사람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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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역사, 인류의 역사 | 책을 읽다 2021-08-3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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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빨강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저/고선일 역
미술문화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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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빨간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빨강은 오랫동안 가장 존엄하고 귀한 색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었다. 프로테스탄트 혁명 이후 색에 대한 색, 특히 강렬하고 눈에 잘 띄는 빨강에 대한 거부 이후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지만, 빨강은 여전히 국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색이며, 많은 상징과 의미를 지닌 색이다. 교통신호 등에 쓰일 때는 금지와 위험의 신호이며, 사람의 관심을 끌어당기기 위한 글자나 문양에 쓰이는 색이다. 또한 감각적 쾌락과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색이며, 기쁨을 나타내며, 따라서 축제의 색이기도 하다. 여전히 위엄과 영예를 보여주는 색이기도 하며, 심하게는 호전적 느낌까지 주는 활력의 색이기도 하다. 이런 빨강의 등장에서부터 지금의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바로 인류 감각의 역사이며, 또한 (그 감각이건 정치적 의사이건) 표현의 역사이기도 하다.

 

색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미셸 파스투로의 전문 분야이자 장기인데, 이 빨강의 역사야말로 인간과 색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유럽을 중심으로 볼 수 밖에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빨강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색이란 걸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했으며, 또 거부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각 부(part)의 제목대로, 빨강은 원초의 색에서, 선호하는 색으로, 수상한 색으로, 위험한 색으로 부침을 겪어왔지만, 그 부침 와중에도 개인과 사회에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아왔다. 빨강이 늘 위험을 나타내고, 혹은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과 영광, 아름다움의 색이 되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여 고귀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이 의복에 쓸 수 있는 색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사치와 타락의 상징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빨강의 아류인 분홍이 대세를 장악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역사는 한 가지 색이 그저 파장의 범위로만 파악되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며, 문화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변주를 이루면서 인간의 역사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정치적 빨강도 그렇다. 지금 우리는 명백히 빨간색을 공산주의의 상징적인 색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피를 끓게 하는 색이 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과 역겨움을 넘어 배격해야만 하는 색이 되기도 한 것은 정치적 빨강이다. 그런데 그 빨강이 정치적인 의미를 띠며 공산주의의 상징이 되기까지는 단선적인 역사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셸 파스투로는 보여준다. 미셸 파스투로가 이 정치적인 색에 대해서 길지 않게 쓰면서 덧붙인 문장은 우리가 이 의미의 빨강뿐만 아니라 모든 색, 아니 모든 상징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재빠르게 동일시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환원주의적태도는 색에게서 정서적, 시적, 심리적, 몽환적 의미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색의 본래적인 특성을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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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빨강의 역사 | 한줄평 2021-08-3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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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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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사람을 만든다 | 책을 읽다 2021-08-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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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독서독인 讀書讀人

박홍규 저
인물과사상사 | 201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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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한 게 있다. 요새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이 과연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지금은 무척 바쁠 테니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야 접어둬야 할 것 같지만(그러나 그래도 그들이 뭔가를 읽고 있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어떤 독서를 통해 자신들의 현재가 이뤄졌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듣고 싶다. 그게 그들이 내놓는 휘황찬란한 공약보다, 다른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네거티브보다 훨씬 더 그들이 어떤 이인지, 과연 믿을 수 있는 이인지를 보여주리라 믿는다. 저자로서가 아니라(모든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갖고 있다), 독서가로서 어떤 사람인지가 그 사람의 비전과 사람됨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떤 책을 읽었는지와 함께 그 독서가 어떤 형식의 것이었는지, 그 독서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다. 어떤 인터뷰에서도 그에 관한 질문은 없고, 후보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빈약한 독서량 때문인 건지, 독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회를 기자들과 후보들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실망스러운 일이다.

 

박홍규의 독서독인은 인물을 판단하는 데 그 사람의 독서를 보는 것이 유효한 방법이라는 것을, 아니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권력가, 혁명가 들의 독서(讀書)를 통해 사람을 읽고 있다(讀人). 그가 쫓아간 사람은 모두 스무 명. 이들은 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독서를 통해(혹은 독서에 반해) 권력을 쟁취한(내지는 훔친) 인물들이고, 또 한 부류는 독서를 통해 사회와 권력의 부조리를 깨닫고 권력의 맞선 이들이다. 전자의 부류에 포함된 인물들에는 독서에 심취했지만, 그 독서가 비뚤어지게 작용한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인물도 있고, 독서가 유명한 나폴레옹, 마오쩌뚱, 호찌민과 같은 인물도 있다. 링컨의 경우엔 그의 독서에 대해 조금 의심하고 있으며, 독서의 깊이 부족으로 인해 최악의 학살 국가를 만든 폴 포트와 같은 이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박홍규 교수는 이 전자에 포함된 인물들에 대해서 거의 모두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그나마 좀 나은 인물을 들라면 호찌민 정도다. 링컨에게도 그를 노예 해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던 제국주의자로 평가할 따름이다(그래서 그를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꼽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반면에 독서를 통해서 권력에 맞선 인물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지만, 대체로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행동하는 혁명가라기보다는 영국박물관 독서실(리딩룸)의 죽돌이로서 독서가로 보낸 마르크스라든가, 여기서 아나키스트로 평가받는 톨스토이, 독서를 통하여, 또 저작을 통하여 실천적인 사상가로 거듭났던 간디, 유교적 병폐를 가차 없이 비판했던 루쉰 등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박홍규 교수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체 게바라다. 자신의 태생적 조건을 독서로서 뛰어넘고 전투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를, 박홍규 교수는 자유로운 인간’, ‘독서하는 인간으로 평가하며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다. 그는 전체주의적으로 정해진 교육 체제를 벗어나 스스로 추구하는 독서야말로 진정한 자유, 따라서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독서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공부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는 자는 혁명가일 수 없다.” (281)고 쓰고 있으며, 이 전형이 바로 체 게바라다.

 

박홍규 교수는 스무 명의 외국인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정작은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체적인 독서는커녕 읽지 않는 국민, 더 읽지 않는 권력자, 지식인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왜곡된 독서 문화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으며, 철 지난 이론과 사상에 대해 한국에서만 환호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비꼬고 있다. 왜곡된 독서가 잉태한 괴물 같은 권력자 이야기를 보면 또 오싹해지기도 하지만, 난 그래도 왜곡되었어도, 철 지난 이야기라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 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교양과 나의 의견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다름 아닌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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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내성, 우리가 지금 토의해야할 문제 | 책을 읽다 2021-08-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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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성 전쟁

무하마드 H. 자만 저/박유진 역
7분의언덕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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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은 뭔가 잘못 설명된 것은 없는지를 신경 쓴다. 잘못된 숫자나 오탈자도 다른 경우보다 더 신경 쓰인다. 내가 잘 모르던 새로운 내용은 없나,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은 없나 찾게 된다. 만약 내가 쓰게 된다면 덧붙일 내용은 없을까, 이런 내용은 별 필요 없는 내용은 없는지도 보게 된다. 말하자면 스스로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어찌 안 그럴 수 있을까?

 

무하마드 H. 자만의 내성 전쟁은 그런 까다로운 기준에 비추더라도 무척이나 잘 쓰고, 만든 책이다. 크게 잘못 설명한 부분은 없어 보이고, 그러면서도 내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거나 잘 모르던 내용도 없지 않아 그냥 알고 있던 내용 반복해서 읽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이건 이 책이 잘 쓴 책이란 얘기다). 잘못된 숫자나 오탈자가 거의 찾지를 못했다(이건 잘 만든 책이란 얘기다). 물론 내가 덧붙이고 싶은 얘기도 있고, 이런 얘기는 전체에서 비중이 좀 커졌다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그냥 그건 글을 쓰는 데 판단 차원의 얘기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항생제 내성에 관해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려주고, 또 대단히 교훈적이기도 한 책이다.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코로나 19(COVID-19)의 시대에 어쩌면 조금 제껴둔 문제가 되어버린 느낌도 들지만, 이 팬데믹 이전에도, 그리고 이 팬데믹이 지난 이후에도 꾸준히 우려에 우려를 더하고, 심각성에 심각성을 더해가는 문제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문건이지만 2016년에 발표한 영국 총리 산하의 TF 팀을 이끈 짐 오닐의 <항생제 내성 보고서>(현재의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50년에는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사망자가 (주목! 세균 감염 자체가 아니다. 항생제 내성이 아니라면 치료가 가능한 이가 추가로 사망할 숫자다) 전 세계에서 연간 1,0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추월하는 것이다(암에 의한 사망자가 감염에 의한 사망자를 추월한 게 20세기 초중반이었다). 상징적인 예측이고, 그게 그대로 현실화될지는 그 미래에 가보지 않은 이상 분명하지 않으나 그만큼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심각하다.

(항생제 내성 문제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예는 18세기 이후 다시 제정된 경도상(Longitudinal Prize)의 주제가 항생제 내성이라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은 인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얘기다.)

 

항생제 내성과의 전쟁은 페니실린(혹은 살바르산, 또는 설폰아미드) 이후에야 벌어진 전쟁이 아니다. 미생물 사이에서는 이미 벌어지고 있던 치열한 전쟁이었고, 그 전쟁의 무기를 인류가 취득한 것이 바로 항생제다. 그 이후로는 내성 전쟁은 인류와 미생물 사이의 전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플레밍이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이미 언급했던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항생제 성공의 찬가를 드높이 올리는 순간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다. 무하마드 자만은 바로 그 항생제 내성의 역사와 현실을 장면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그런 항생제 내성의 역사와 현실을 스케치하듯이 보여주거나, 또는 학문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미국에서 감염질환, 항생제 내성을 전공하고 연구하고 있는 저자답게 제3세계 국가나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 등을 포함하여 전 세계를 이 이야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항생제 내성과 싸우고 있는 의사, 연구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많은 과학 교양도서가 그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을 세운 위인급의 과학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고 있는 데 반해 이 책은 그 분야의 바닥에서 일하는 이들에서 최종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직면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거의 모든 분야(저자가 지목하는 분야는, 과학자와 혁신가, 사회과학자, 경제학자, 인도주의자, 정책 입안자, 보건계 종사자이다)가 토론하고 힘을 합해야 하는 문제다. 거기에는 바로 우리도 포함된다. 평생 세균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없듯, 항생제 한 알 먹지 않은 사람이 없듯 이 문제에 관계없는 이는 없다. 바로 우리가 토의해야 할 문제다. 이 책은 그 토의를 위한 텍스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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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킨, 한 모금의 숨결 속 공기를 이야기하다 | 책을 읽다 2021-08-2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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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샘 킨 저/이충호 역
해나무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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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가 동료 원로원의원들에게 무자비하게 암살당한 게 기원전 44년이니 2천년도 훌쩍 지났다. 그때 카이사르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숨은 지금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 샘 킨은 몇 가지 단순한 계산을 통해(그러나 사전 지식은 있어야하는) 그가 마지막 숨 속에 포함되어 있는 기체 분자 중 일부가 지금의 우리도 폐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밝힌다(“한때 카이사르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 중 일부가 그토록 먼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폐 속에서 춤추고 있다”, 20). 당연히 카이사르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생물의 세포를 거쳐 갔던 기체들이 여전히 우리의 기체다. 우리를 둘러싼 기체는 우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샘 킨은 우리를 둘러싼 공기, 혹은 기체의 불멸성을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번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 기체에 관한 것이다. 지구상에 공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공기의 조성과 성질을 점차 알아가면서 그 공기를 인간이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그리고 그 힘을 제어하거나 혹은 과용하면서 생긴 현대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원소의 발견과 이용에 관한 이야기와 흡사한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소의 성질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체로서의 성질을 다루고 있으며, 그 기체의 성질은 예측불가능한 면이 많이 기묘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웃음가스와 관련된 마취제와 관련된 이야기라든가, 날씨를 조절하고자 하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는 기체를 우리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 또한 절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알려준다.

 

샘 킨은 공기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책으로 여기고 있다. 공기 속에는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질소가 있으며, 없으면 살 수 없는 산소가 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가 있으며, 어떤 다른 것과도 반응하지 않는 고귀한(nobel) 원소인 아르곤 같은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더할 나위 없는 이야기거리가 탄생한다는 것을 샘 킨은 보여준다. 가장 많이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이용할 수 없는 질소를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하버와 보슈에 관한 이야기,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산소가 지구에 존재하면서 벌어진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 비활성 기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다, 그래서 주기율표에 하나의 기둥을 더 세우는 것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 치부하던 과학자들이 어쩔 수 없이 주기율표를 수정해야만 했던 이야기 등등.

 

이런 기체에 관한 내용들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친숙하게 전달한다. 이런 방식을 샘 킨 특유의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친숙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화학 관련한 책 쪽에서는) 샘 킨을 넘어서는 이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화산 폭발 경고에도 산을 버리지 않은 이라든가, 최초로 산소를 이용해서 은행털이를 시도했다 실패한 이들은 과학자가 아니지만 기체의 힘을 보여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예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냉장고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음에도 내 기억 속에는 없는 얘기이기도 하다.

 

샘 킨이 마지막 장에 배치한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다.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기 전 외계 행성을 찾아나선 인류가 어떤 기체, 공기를 맞닥뜨릴 것이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샘 킨은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우리 생애에는 물론,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 그런 살만한 외계 행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그 외계 행성을 향해 수많은 사람을 싣고 떠날 수 있을지, 혹은 그렇게 떠난 우주선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른지, 그곳이 인간이 살만한 곳일른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를, 나는 역설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지만, 상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보다 훨씬 가능성 있는 이야기는 이 지구를 잘 살려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무려 50억 년 후) 태양계 자체가 붕괴되어버리겠지만, 그때는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 인간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동안은 이 지구를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카이사르, 아니 그 이전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공기는 현재의 것이기도 하고, 미래의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어떤 숨을 쉴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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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 한줄평 2021-08-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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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역시 샘 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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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는 서로가 서로를 잉태한다 | 책을 읽다 2021-08-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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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현대문학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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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이 극명하게 상반된 인상을 가진 두 동물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암시한다. 백조와 박쥐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바로 에셔의 그림이다.

 

공간을 기묘하게 해석하여 불가능한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묘사했던 에셔는 위의 그림에서는 날아가는 하얀 새와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검은 새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한쪽이 백조라면, 다른 쪽은 박쥐인 셈인데,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소설이 그렇다. 1984년의 사건이 2017년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설정은 그가 즐겨 사용해온 방식이다.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사건, 혹은 그 업보가 현재로 이어져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다가 약간의 의구심이 점점 커지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결과로 끝나는 것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여러 차례 사용해온 방식이다. 100쪽 남짓에서 범인이 잡혔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사건에 뭔가가 더 있음을 짐작케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것을 감추지 않으며 사건의 이면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함께 찾아보자고 한다.

 

사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비난받을 수도 있으며, 동시에 동정심의 대상도 될 수 있다. 대학생 시절 사기당한 할머니를 대신해 항의하다 살인을 저지른 변호사는 그 사건 자체로는 비난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비난의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살인을 대신 자백한 구라키의 경우엔 그의 행동이 인도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숙이게 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봐서는 살인자를 두 번씩이나 은폐한 셈이다. 그런 행위가 감성적으로는 옹호할 수 있지만, 조금만 정신 차리고 이성의 영역으로 돌아오면 과연 옹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지점이다. 살인자로 잘못 몰려 자살한 가장의 딸로서 자란 이의 입장에선 또 어떨까? 자신의 아들이 실제 범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또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 사건의 진실을 파고들고자 할 때 그 행동을 극구 말리는 변호사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들도 사법 체계 내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재판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니 말이다. 물론 소설을 읽으면서도 답답하지만 말이다.

 

가해자의 아들은 정상의 생활로 돌아온다. 피해자의 딸은, (현상적으로는 여전히 피해자의 딸이지만) 결론적으로는 가해자의 딸이 된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뒤엉킨 관계에서 그것을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에셔의 그림에서와 같이 그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잉태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35주년 작품이라고 한다(2016년의 라플라스의 마녀30주년 작품이라고 했으니 계산상으로도 맞다). 97번째의 작품. 많이 썼다. 그 작품들 가운데는 아주 수준 높은 작품도 있지만, 가끔 범작(凡作)도 눈에 띤다. 이 소설은 따지자면, 꽤 괜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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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킨의 책이 왔다 | 책을 읽으며 2021-08-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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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샘 킨의 팬이다. 

<사라진 스푼>을 읽었고, 그 후에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뇌과학자들>을 출판되자마자(정확히는 출판된 소식을 알자마자) 읽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기대했는데 한참을 감감무소식이었다. 

<뇌과학자들>이 번역 출판된 게 2016년이었는데, 가끔 샘 킨이라는 이름을 넣고 검색해봐도 신간 소식이 없어 Amazon에서 검색까지 해봤다. 

http://blog.yes24.com/document/13490345

원서로는 두 권의 책이 더 있었고, 빨리 번역되어 나오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올 초였던가. 알라딘에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이라는 책이 나온다는 게 뜨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판사 사정으로 발간이 미뤄진다는 사정과 함께. 

그러고 한참 기다렸고, 그 책이 오늘 내 앞에 놓이게 되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샘 킨 저/이충호 역
해나무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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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평범성에 대해 관용적이다, 굿 이너프(good enough) | 책을 읽다 2021-08-2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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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굿 이너프

다니엘 S. 밀로 저/이충호 역
다산사이언스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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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대한 반론, 혹은 보완이론을 내세우는 이론은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스티브 제이 굴드와 닐스 엘드리지의 단속평형설이라든가, 여러 진화론자들이 주장한 협력이론 같은 것들이 있다. 창조론자, 혹은 지적설계론자들은 이런 이론들이 제기되는 것을 (다윈의 이론이 아니라) 진화론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론들도 사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진화를 보다 더 정확하고 폭넓게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이론을 내세우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다. 1930년대 이론 진화론은 유전학과의 결합을 통해 종합설(Modern synthesis), 혹은 신다윈주의(neo-Darwinism)이 주류가 되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에드워드 O.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지만(그게 진화학의 주류가 되었다고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이에 대한 추가 이론과 보완, 반론들이 이어지는 것은 진화학, 혹은 진화론이 학문으로서 건강함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니엘 밀로의 굿 이너프이론도 그런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포섭하지 못하는 자연의 진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 볼 수 있다. ‘굿 이너프(good enough)’충분히 훌륭한이란 뜻으로, 자연선택에서 얘기하는 최적자(the fittest)에 대한 선택보다는 진화는 넓은 범위의 다양성을 용인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자연이라는 힘은 어떤 것을 선택한다기보다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것만을 도태시킨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서 저자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보다는 자연도태(natural elimination)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요새는 natural selection을 자연선택이라고 번역하지만 오랫동안 자연도태라고 번역했었다. 아마도 일본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그때의 자연도태는 여전히 natural selection이고, 번역한 이충호 씨는 이와에 있었던 용어를 가져다 쓴 것 같은데, 밀로가 주장하는 것은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밀로는 우선 다윈의 자연선택이 불충분한 설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상징적으로, 진화 내지는 자연선택의 상징, , 진화의 아이콘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 나선다. 진화의 아이콘이란 기린, 비둘기와 개 등의 가축화의 비유, 갈라파고스제도의 핀치, 그리고 인간의 뇌다. 자연선택은 모든 생물 현상에 적용되는 것인 만큼 무엇을 예로 들어도 될 것이나 밀로는 가장 강력하고도 대중적인 설명에서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를 파고들고 있다. 기린의 긴 목에 대한 라마르크의 설명(용불용설)을 비판한 다윈(주의자)의 설명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하고 있으며(이는 논리적인 설명이기도 하고, 또 최근의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에 대해서는 그것이 진화의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인간의 뇌에 관해서도, 뇌가 커짐으로써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설명을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인간의 큰 뇌는 생존을 위해서도 커다란 장애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자연선택의 결과라는 기존의 설명은 잘못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굿 이너프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굿 이너프 이론은 중성(neutrality)’에 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전자에 대한 기무로 모투의 이론(유전자에서 대부분의 변이는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은 중성적인 것이다)에서 나아가 표현형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변이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연선택의 재료, 대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변이 자체가 생존에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넓은 변이는 과잉상태를 낳게 되는데, 과잉이 나쁘고, 그것들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합리주의적 견해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

 

3부는 인간에 대한 내용이다. 이 부분은 조금 이질적이란 느낌이다. 왜냐하면 앞에서는 인간(특히 뇌)의 진화를 다른 생물이나 기관의 진화와 달리 생각하면 안된다는 투였는데, 여기서는 인간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인간은 어느 시점 이후 다른 동물과는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밀로는 다른 이들은 거의 얘기하지 않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자신은 설명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미래를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다니엘 밀로의 책을 이미 접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중독자. 그러니까 이 책의 3부는 이전 책에서 했던 주장의 요약이며, 조금 더 나아갔다면 진화윤리학의 비판인 셈이다. 인간에게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미래중독자를 읽으며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도 그 부분은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그 이후에 전개되는 얘기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이를테면 우리의 탁월함에 대한 욕구는 심심함에 대한 반응이라든가, 탁월성을 요구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든가 하는 것들).

 

이런 내용을 쓰면서 다니엘 밀로는 걱정이 되기는 했나 보다. 자신의 이론이 다윈과 맞서는 것으로 읽히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에, 여러 차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신에 자신의 이론이 그저 다윈의 이론에 대해 보완 정도가 아니라 거의 비슷한 정도로, 대등하게 취급받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그의 이론은 독창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며(사실 그의 예들도 처음 접하는 것이 아니다), 논리가 아주 정합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다만 평범성에 대한 옹호, 그리고 진화를 최적자에 대한 선택이 아닌 상대적인 적합성에 대한 선택, 내지는 도태로 보는 관점을 아주 흥미롭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진화에 대한 조금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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