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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루투갈의 정복자들 | 책을 읽다 2022-12-3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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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로저 크롤리 저/이종인 역
책과함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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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변방에서 비롯된다.

포르투갈이 16세기 유럽의 아시아 및 아메리카 정복에 최선두에 섰던 것은 그런 명제가 타당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도 있었지만 한 국가가 변하는 정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그것에만 달려 있지 않다.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던 국가가 그 상황을 타개하고자 오랜 세월에 걸친 각고의 분투가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으로 진출한 것이었고, 그에 이은 정복 사업이었다.

 


 

 

로저 크롤리는 바로 그 포르투갈이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반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인도를 지배하게 된 활약상을 이 책 한 권에 집약시키고 있다. 시작은 '항해왕' 엔히크라고 할 수 있다. 남쪽으로의 진출을 위해 전진 기지를 구축하고, 배를 만들고, 항해 경험을 축적한 결과가 그가 죽은 후 그의 후예들에 의해 결과가 나타났다. 헨히크의 지도 하에 역량을 쌓은 포르투갈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 바스쿠 다 가마, 프란시스쿠 알메이다,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로 이어지면서 놀라운 정복의 역사를 펼쳐나갔다.

 

사실 대강만 알고 있던 이 역사에 대해 읽으며 정말 놀란 것은 그 일이 벌어진 속도다. 알부케르크가 인도 제국을 거의 석권한 건 처음 디아스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넘어 간 지 겨우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이고, 바스쿠 다 가마 이후로 따지면 겨우 몇 년 후였다. 그들의 모험심, 부에 대한 열망, 종교적 사명감이 겁쳐지면서 그 놀라운 속도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폭력성이다. 그들은 정복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인도양으로 진출했고, 끝까지 지켰다. 무역을 통한 부의 획득만이 그들의 목적이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인도양의 민족들은 이미 자급자족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고, 아랍을 통해 평화롭게 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익이 되었다면 뒤늦게 나타난 포르투갈과도 평화로운 무역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계에 침범하여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던 게 포르투갈의 방식이었다. 그 과정과 결과가 500년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로저 크롤리는 그 정복의 과정을 찬양도 아니고 비판도 아닌, 아주 건조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피 튀기는 전장의 상황도 묘사할 뿐 흥분하지 않는다. 그들, 그리고 그들의 후예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에게 넘기고 있는 것이다. 배울 사람은 배울 것이고, 비판할 사람은 비판할 것이다. 흥미진진한 무협소설처럼 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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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크롤리 | 책을 읽으며 2022-12-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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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로저 크롤리 저/이재황 역
산처럼 | 2015년 08월

 

부의 도시 베네치아

로저 크롤리 저/우태영 역
다른세상 | 2012년 08월

 

바다의 제국들

로저 크롤리 저/이순호 역
책과함께 | 2010년 01월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로저 크롤리 저/이종인 역
책과함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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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기회와 상승, 쇠퇴의 역사 500년 | 책을 읽다 2022-12-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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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의 도시 베네치아

로저 크롤리 저/우태영 역
다른세상 |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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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에 쫓기던 로마제국민 중 일부가 갯벌이라 더 이상 쫓을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불모의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세워진 도시가 베네치아다. 역사는 452년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베네치아가 공식적으로 멸망한 것은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서였으니 베네치아의 역사를 1천년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시오노 나나미의 베네치아 역사에 대한 책 바다의 도시 이야기의 부제도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

 


 

 

그 베네치아의 역사를, 노련하고 섬세한 역사저술가 로저 크롤리는 시작과 끝까지를 모두 이야기하는 대신, 공화국이 번성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쇠락에 드는 시점까지 500(사실 더 엄밀하게는 300년이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500년의 역사도 면면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중요한 변곡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즉 국가 성장의 일대 도약을 이룬 제4차 십자군(가장 치사하고 더러운 전쟁이었지만)에 대한 이야기가 1부의 중심이고,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벌인 같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제노바와의 대결, 그리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최종적인 승리가 2부의 이야기다. 3부는 쇠락의 이야기인데, 1400년대 중반부터 오스만제국(여기서는 오토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과의 대결에서 점차 밀리면서, 끝내는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몇몇 중심인 시점을 잡고, 그 시점의 격렬했던 대응을 통해 베네치아가 어떤 국가였는지를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를 바다의 도시로 칭했는데, 로저 크롤리는 바다나라라고 하고 있다. 로저 크롤리는 베네치아의 정체성을 도시가 아니라 국가로 보고 있는데, 특히 이탈리아반도 북쪽의 작은 본거지만이 아니라 지중해 전역에 걸쳐 만들었던 식민지와 교역지를 가진 하나의 제국으로 베네치아를 그려내고 있다.

 

사실 보잘 것 없는 뻘밭에서 시작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솟아오르고,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장엄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특히 베네치아가 도약하게 되는 계기가 된 제4차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군이 또 다른 기독교국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약탈한 전쟁이었다. 그것은 장사꾼의 잇속이 있었고, 종교적 대의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베네치아의 실용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그것 때문에 돈만 아닌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히고, 교황으로부터 파문까지 당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후로도 몇 백 년 동안 한결같은 노선을 유지한 베네치아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베네치아의 처세를 오늘날의 외교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만 실용적이고, 냉철한 이성에 기초한 그들의 외교술이야말로 현대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기회주의적 외교술을 그대로 현대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냉철한 상황 판단과 실용적인 노선은, 외교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도 어떤 시사점을 주지 않을까 싶다.

 

로저 크롤리는 베네치아라는 도시국가와 그곳의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베네치아는 불모지였지만 분명히 풍요로웠다. 부는 흘러넘쳤지만 마실 물은 모자랐다. 엄청나게 강력했지만 지리적으로는 취약했다. 봉건주의는 없었지만 지독할 정도로 통제되었다. 그곳 시민들은 냉정하고, 낭만적이지도 않았으며, 종종 냉소적이었지만 환상의 도시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발휘했다.” (507)

 

바로 이런 양면적인 면들이 베네치아를 이해할 수도 있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게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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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와 제노바 | 책을 읽으며 2022-12-2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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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 지중해를 두고 가장 격렬하게 경쟁한 것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도시국가가 베네치아와 제노바다. 많은 책들이 베네치아라는 도시에 대해서 쓰는 데 반해, 제노바에 대해서는 거의 없다. 반면 제노바 출신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책이 없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다. 이것만 봐도 두 도시국가가 어떤 성향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로저 크롤리는 부의 도시 베네치아<9장 수요와 공급>에서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대결을 쓰면서 두 도시국가를 극명하게 비교하고 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베네치아는 고요했고, 제노바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였다. 두 해양 공화국은 거울에 비친 모습 같았다. 비슷하지만 좌우가 바뀐 것처럼 정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이름조차 서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 제노바의 뱃사람들도 베네치아 뱃사람들만큼 강인했으며, 상인들은 베네치아 상인들만큼 이익을 탐했다. 아드리아 해에 있는 경쟁자들처럼 제노바인들은 저돌적이고, 실용적이고, 무자비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기질은 사뭇 달랐다. 베네치아인들은 정부의 통제를 받았으며 코뮌의 기업들에 의해 움직였다. 이는 도시의 불안정한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섬들에 물이 넘치거나, 석호에 토사가 쌓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주민들은 서로 협력해야 했다. 이에 비해 제노바인들은 개인주의가 강했고, 사기업을 선호하는 특징을 지녔다. 외부의 냉정한 관찰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196~197)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두 도시국가의 이러한 기질의 차이는 자연히 충돌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로저 크롤리는 제노바인들의 개인주의적 특징이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고 쓰고 있다.

 

서쪽으로는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던 제노바인들은 지중해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다 강하게 인식했으며,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 건조 기술 역시 보다 빨리 발전시켰다. 일찍이 1291년 제노바의 두 형제가 인도로 가는 항오를 찾기 위해 지브롤터 관문 밖으로 항해했다. 1492년 신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이 제노바 선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용감무쌍하고, 창의적이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혁신적인 것이 제노바의 개인주의적 천재성이 갖는 특징이었다.”

 
 

 

 

부의 도시 베네치아

로저 크롤리 저/우태영 역
다른세상 |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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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마지막 불꽃, 로도스섬 공방전에서 레판토해전까지 | 책을 읽다 2022-12-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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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바다의 제국들

로저 크롤리 저/이순호 역
책과함께 | 201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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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지중해 경계는 1565~1571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로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502)

 

지금은 지중해를 세계의 중심에 있는 바다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적어도 유럽과 아랍, 북아프리카에서는 그 바다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왔다. 그 지중해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많은 싸움이 있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살라미스 해전이 있었고, 로마의 패권, 그리고 이집트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악티움 해전이 있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지배 야욕을 허문 레판토 해전이 있었다. 레판토 해전을 마지막으로 지중해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규모의 해전은 없다. 레판토 해전은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한 싸움이자, 로저 크롤리가 말한 대로 지중해의 대체적인 현재를 만든 최종적인 싸움이었다.

 


 

 

그러나 레판토 해전은 그 싸움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1453년 메메드 2(로저 크롤리의 전작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의 번역에서는 메흐메트 2세라고 칭하고 있다)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수도로 삼으며 이스탄불로 개명한 이후, 오스만 제국은 서쪽으로 진군을 꾀했다. 육지 쪽으로는 빈에서 그 진군이 멈추었지만, 16세기 내내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 베네치아, 그리고 교황의 싸움이었던 레판토 해전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의 지배권을 두고 여러 중요한 싸움이 벌어졌다. 로저 크롤리는 1523년의 로도스섬 공방전에서 시작하여 프레베자 해전, 몰타섬 공방전, 키프로스섬 공방전을 거쳐 최종적으로 레판토 해전에 이른 양 세력의 처절했던 지중해에서의 싸움을 그야말로 현장을 중계하듯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명령을 내려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지중해 지배권의 교두보인 섬을 점령을 시도하면 서방측은 소수의 병력으로 기적적으로 막아내거나, 혹은 처절하게 패퇴하는 양상을 보였다. 로도스섬 공방전은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몰타 섬에선 구호기사단의 승리로, 키프로스섬은 다시 오스만 제국의 차지가 되었고, 그리고 마지막 레판토 해전에서는 에스파냐, 교황, 베네치아 동맹군이 승리를 거둔다. 이렇듯 일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하게 벌어졌던 것이 바로 16세기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의 충돌이었다.

 


 

 

60년에 걸친 불연속적이면서도 연속적인 대결의 결과를 역사는 대체적으로 기독교 세력의 단결에 의한 승리로 기록한다. 일단 전적으로 기독교 세력의 승리라고도 볼 수 없었다. 승리의 나팔을 소리 높여 불었지만, 그나마 경계선을 지켰다는 데서 그들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오스만 제국은 금세 함대를 구축하여 지중해 동부를 여전히 지배했다. 또한 기독교 세력의 동맹이라는 것도 매우 허술하기만 했다. 그 시기 내내 기독교 세력은 끊임없이 반목하고 서로를 경계했다. 단적인 예로 몰타섬의 성 엘모 요새가 함락하자 베네치아에서는 기쁨의 함성이 올랐다고 한다.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1(혹은 카를 5)나 그의 뒤를 이은 필리페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함대의 보전을 최우선하면서 좀처럼 교황이 내세운 성전(聖戰)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레판토 해전에서 그들의 협력은 교황의 끈질긴 설득과 협박, 필리페의 이복동생이지만(사실은 그래서) 권력 기반이 취약하기에 모험이 필요했던 돈 후안의 활약과 베네치아의 경제적 이해득실이 빚어낸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열정과 냉정이 서로 기회를 엿보다 한순간에 화학적으로 융합했던 것이다. 그 불길에 오스만 제국의 야욕이 저지당했다. 그리고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물론 그 쇠락의 기울기는 매우 작어서 수백 년이 걸렸지만).

 

로저 크롤리는 지중해의 시대를 장렬하게 불태운 시기를 역동적으로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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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다 | 책을 읽다 2022-12-2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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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로저 크롤리 저/이재황 역
산처럼 | 201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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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꼭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다. 동양(Orient)과 서양(Occident)이 나뉘고 연결된 도시라는 상징성, 그리고 그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점이 나를 이끈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수백 년 전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겠지만 그 느낌도 가져보고 싶다. 시대와 시대를 구분하는 시점으로 여겨지는 전투이니.

 


 

 

1453529. 우리가 지금은 동로마 제국혹은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는,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그냥 로마라고 부르던 제국이 멸망한 날이다. 제국이라고 했지만 당시에는 이미 제국으로서의 면모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명맥만 유지하던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튀르크라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그저 오스만, 혹은 무슬림이라 불렀다. ‘터키라는 국명은 튀르크에서 왔지만 실상 튀르크는 서방에서 부르던, 대체로 멸시하는 투의 말이었다(그 국가명이 최근 튀르키예로 바뀌었다). 오스만 제국은 그야말로 기세가 세계 지배를 꿈꿀 만큼 기세가 드높았다. 아랍 지역을 석권하고 유럽의 발칸 반도와 지금의 세르비아 등의 지역을 식민지로 삼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섬처럼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있었을 뿐이다. 콘스탄티노플이 그대로 유지되리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건설되고 제국의 수도가 된 콘스탄티노플은 천혜의 요충지였다. 두 면이 바다에 접한 세모꼴의 도시의 남쪽 바다는 물살이 세 접근이 힘들었고, 한쪽 바다, 즉 크리소케라스(주로 금각만金角灣이라고 부른다)는 좁은 입구를 쇠사슬로 잠궈 버리면 안전했다. 육지 쪽은 해자, 외성, 내성으로 이루어진 삼중 성벽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단 한 차례도 외부에서 무력으로 점령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성이었기에 그토록 위축된 위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파티흐(정복자)’ 메흐메트 2세는 선대 술탄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콘스탄티노플 점령에 나선다. 그의 나이는 겨우 21살이었고, 아직 권력 기반이 굳건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공격의 이면에는 권력 기반 강화에도 있었다. 그러니까 만약 공격이 실패한다면 그는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시간을 끌어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반대편에는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있었다. 전쟁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40대 후반, 아직 건장한 황제였다. 그는 방어에 성공할 수도 있다고 믿지 않았다. 최선을 다할 뿐이었으며, 탈출을 권유하는 측근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

그리고 제노바 출신으로 뛰어난 전략을 가진 주스티니아니도 있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포판으로 성벽이 무너지면, 또 끊임없이 북구 작업을 하며 방어를 이어갔다. 로저 크롤리는 콘스탄티노플 방어전에서 그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거의 두 달에 걸친 포격과 막강한 공격에 대항했던 처절했던 방어전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로저 크롤리는 이 전투의 행방이 새로운 전투 기술, 즉 포격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수도 없이 쏟아진 폭탄 세례에 방어군은 그것을 복구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지속적으로 군사의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오스만 측의 군사력이 월등히 앞섰던 것도 있고, 배를 산을 넘어 크리소케라스만으로 옮긴 대담한 전략과 한 조심성 없는 병사가 작은 성문 하나를 잠그지 않았다든가 하는 여러 에피소드도 있지만 그래도 전쟁의 성패를 좌우한 것은 시대가 변해가고 있던 상황에서 그 시대의 산물을 누가 더 적절히 활용했느냐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1453. 바로 이 해를 기점으로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이들이 많다. 대체로 이 해를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면서 그리스 출신의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넘어오면서 문화적인 변혁의 기운도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그즈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는 것과 맞물려 시대적 변혁이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끝까지 도시를 방어하던 콘스탄티노스 11세도, 끝까지 도시를 점령하고자 했던 메흐메트 2세도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겠지만, 그들은 시대와 시대를 구분짓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관한 많은 기록들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또한 우리도 그런 시각에서 그때의 상황을 듣는다. 간단히 예기하자면, 핵심은 오스만의 비인간적 도륙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무자비함을 비판하면서 기독교 세력의 단결을 호소한다. 그러나 크롤리도 강조하듯 당시의 관행에 비추어보면 점령 이후 메흐메트 2세의 처사는 매우 온건한 편이었다고 한다. 이후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도시에는 이슬람교도뿐 아니라 기독교도, 그밖에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섞여 살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아들에게 살해 당한 이유 중 하나로 그런 처사를 들기도 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은 바 있다.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현장감 있다. 비록 편견을 가진 기록이 많지만 그것들을 적절하게 인용하며 당시의 상황을 현실감 있게 전하려고 한 저자의 의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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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이 납치됐다, 백은의 잭 | 책을 읽다 2022-12-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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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소미미디어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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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부터. ‘백은(白銀)’이라는 걸 봤을 때부터 이건 스키장 얘기라는 걸 알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못 말리는 스노보드 매니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니까 말이다. 눈보라 체이스연애의 행방, 질풍론도에서 이미 그 면모를 보여줬으니 하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이 소설의 배경이 어디쯤이란 것은 알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다. 뭔가 했는데, 작가의 말을 보니 알 수 있다. ‘하이잭(hijack)’에서 가져온 말이란다(하이잭은 미 서부 개척 시대 갱들이 마차를 납치할 때 달리는 마차 옆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하듯 하는 말에서 비롯된 말이다-이건 작가의 말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백은의 잭이란 스키장에서의 납치 사건, 혹은 스키장 납치를 의미한다(소설은 두 번째의 의미다). 그럼 어떻게 스키장을 납치할 것인가? 그거야 스키장을 범인이 자신의 통제 하에 두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물론 협박을 통해. 이런 대충의 얼개가 짜졌다면 이 얘기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작가의 몫이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물론 그는 훌륭하게 해낸다.

 


 

 

이 소설의 묘미는 속도감이다. 설원을 가로지르는 스키와 스노보드의 속도만큼이나 소설의 속도가 스릴 만점이다. 단 며칠 사이의 일을 속도감 있게 서술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다는 것은 스토리의 정교함과 작가의 필력 덕분이다(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가). 거기에 겨울 스포츠에 대한 지식과 애정까지 갖추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소설에서 스릴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대부분은 공포스러움에서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의 스릴은 바로 글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는 속도감에서 나온다. 장면을 상상하면서 느끼게 되는 속도감!

 

거기에 예상을 깨는 구성도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중간 정도에서부터 이 사건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이런 류의 소설에서 악()은 힘 있는 세력에게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게 이 소설이 가지는 반전의 매력이다. 그저 단순히 그게 아니었어!”란 식으로 독자를 놀리듯 정반대의 결론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결론을 둔 채, 그것에 맞선 대응이 반전이 되는 구조다. 생각해보면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한 많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그랬다. 그래서 결론에 놀라면서도 놀림을 당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어쩐지 따뜻함도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백은의 잭의 주인공 격이 네즈 쇼헤이는 눈보라 체이스연애의 행방에도 등장한다. 여기서 그때의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아닌 줄 알았는데 <옮긴이의 말>을 보니 맞다. 찾아보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키장을 배경으로 쓴 소설 중 이 백은의 잭이 먼저다. 또 찾아보니 2011년이 이미 백은의 잭이 번역되어 나왔었다. 이렇게 거슬러 읽어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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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바르트부르크에서의 1년 | 책을 읽다 2022-12-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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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루터의 밧모섬

제임스 레스턴 저/서미석 역
이른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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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독일의 아우구스투스 수도회 소속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면벌부를 비롯한 로마 교황청을 고발하는 95개조 논제를 게시한다. 그로부터 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와중에 4년 후 1521년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가 주관하는 보름스 회의가 열린다. 루터는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회의에 참석하여 자신의 신학을 논파하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카를 5세는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지만 며칠간 신변 보장을 약속하고, 루터는 보름스를 떠나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는 중 납치극을 벌이고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1년 후 비텐부르크로 돌아가기까지 루터는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를 보낸다. 제임스 레스턴의 루터의 밧모섬은 바로 바르트부르크 전후의 루터를 그려내고 있다. ‘밧모섬이란 복음사가 요한이 계시록을 썼다고 전해지는 그리스의 외딴 섬인데, 루트는 바르트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상황을 거기에 비유했다(아이러니하게도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며 <요한계시록>에 대해 제일 의구심을 품었다).

 

마르틴 루터에서 촉발된 종교개혁은 유럽을 변모시켰다(나는 종교개혁이라는 용어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은 그가 개혁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이므로). 루터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새로운 교리와 예배 형식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95개조 논제를 발표하고 난 후 점점 교리를 완성해나가고 개혁의 방향이 잡혀 갔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바르트부르크에서의 1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임스 레스턴도 강조하고 있고, 해제를 쓴 황대현 교수도, 옮긴이 서미석도 모두 가조하고 있듯이, 나도 이 1년간의 바르트부르크에서 가장 놀랍고 큰 성과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독일어 성경은 아니었지만(그렇게 알려지기도 했었다), 저잣거리 사람들의 말로 옮겨진 성경은, 이른바 종교개혁의 진짜 의미를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믿음이 대리자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믿음의 근거에 접근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야말로 개혁의 가장 크고도 중요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큰 흐름이 되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잘 알려진 것이지만 당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인쇄술이 루터의 저작을 빨리, 널리 퍼뜨리면서 종교개혁이 힘을 얻었다는 것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종교개혁을 추진해나간 루터의 영적인 모습과 함께 지도자, 중재자로서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여 일어난 농민 반란에 대한 태도라든가 유대인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그는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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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상, 혹은 종교 | 책을 읽다 2022-12-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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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본 사상사

스에키 후미히코 저/김수희 역
AK(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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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 일본의 사상(思想)‘이란 게 뭐지?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저자도 <들어가며>의 첫머리에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나카에 조민의 발언,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엔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말까지 인용하고 있다. 근세 이후 서양 철학의 수입에 의존해온 사상적 흐름뿐 아니라 아주 오랜 과거부터 지배 권력에 순종을 거듭했던(적어도 전체적인 흐름은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 사상이란 게 없는 민족, 국가가 있겠는가? 아무리 조야하고 주류의 흐름이 아니더라도 과거부터 의식의 흐름을 지배해온, 혹은 그 주류에 반대해온 생각이 모인 사상은 반드시 있다. 스에키 후미히코는 서구 사상에 의존 해오던 일본이었는데, 최근 들어 서구 사상계마저 새로운 사상적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사상의 수입이 끊겼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는 일본의 사상으로 버텨야 하며, 바로 이 시점이 일본의 사상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사상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녀는 일본 사상의 흐름을 대전통‘, ’중전통‘, 소전통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는 사상이 품는 규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시대적 구분과 다름 없어 보인다. 즉 전근대의 사상을 대전통, 근대의 것을 중전통, 전후(前後)의 것을 소전통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만 여기서 전통이란 단순한 시대 구분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상이 전통으로 중층화되면서 축적되었다는 의미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대전통의 구조에서는 신불과 왕권이 축을 이루며, 학예와 생활이 그 양 축에 의존하고 있었다(여기서 신불이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신도를 의미하고, 불은 당연히 불교를 의미한다). 또한 중세 왕권 구조와 천황 중심 구조가, 무가와 공가가 축을 이루는 구조가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중전통이 메이지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를 의미하니까 대전통의 구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중전통에선 막부 체제가 붕괴하면서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 구조로 전환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천황이 가부장이라는 위치에서 모든 것이 기준이 되었다. 서양으로부터 수입한 사상도 이 틀 안에서만 수용되었다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전통이 형성되는데, 저자는 평화, 인권, 민주 등의 보편적 원리가 등장했다고 본다. 그리고 천황이라는 상징’(저자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은 논의의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의 흐름은 일본의 사상 역시 정치 구조에 몹시도 의존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왕권과 신불이 양극을 이루었다고는 하고, 중층적이었다고는 하나 저울의 추는 분명히 기울어져 있었고, 막부 체제는 그런 구조를 심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그나마 유지되던 긴장이 메이지 유신 이후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것으로 나타난다. 비록 왕권이 천황과 섭관, 천황과 상황, 조정과 막부 등으로 변천해왔고, 신불도 그 양상이 단일하지 않고 복잡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사상적 흐름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게 보면 일본에서 모든 사상을 흡수해버리는 것이 천황제가 아닌가 싶다. 이것은 근세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도 천황에 대한 논의 앞에서는 모든 게 멈춰버리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천황은 현실적인 권력의 측면에서도 신불의 측면에서도 모두 가장 정점에 서 있었고,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신에서 인간의 위치에 내려왔다고는 하지만(그런 선언 자체가 나는 조금 우습다), 여전히 일본 모든 사상의 종착점이자 걸림돌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를 과거를 통해 미래를 응시하다로 정하고 있다. 여기서 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 저자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다소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상적 흐름을 서술하던 저자가 책의 마지막을 재해와 테러, 대량 참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대략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상황을 저자는 근대에 해결을 미루어왔던 것들에 대한 대가라고 본다. 재해를 막을 수 없지만(특히는 일본에서는), 그것을 통해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태도 역시 그렇다. 그게 철학의 미래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사상이 뭔지는 궁금하다. 종교 말고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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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것들의 역사 | 책을 읽다 2022-12-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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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흐르는 것들의 역사

송현수 저
엠아이디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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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수 박사의 유체역학 3부작(커피 얼룩의 비밀,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을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커피 얼룩의 비밀이 다양한 음료에 적용되는 유체역학의 원리를,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서 유체역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은 생물로 관심을 돌려 생물에도 유체역학의 원리가 적용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모두 특색이 있고, 재미있었다.

 

이전 3부작이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역사로 눈을 돌렸다. 역사 속에 유체(遺體)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흥미로운, 혹은 결정적인 역사가 어떤 것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아홉 꼭지에서 다루는 역사는 의외로 매우 친숙하다. 로마 제국의 물, 다빈치의 유체 연구,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타이타닉호의 침몰, 보스턴의 당밀 홍수, 후버 댐의 건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의 독일 댐 폭격, 원자폭탄 개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 이 중에서 보스턴 당밀 홍수나 영국 공군의 독일 댐 폭발 작전 정도만 조금 낯설다면 낯설까(물론 이 얘기도 다른 데서 몇 차례 접하긴 했지만), 다른 역사는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송현수 박사는 이 역사 속 이야기들에서 유체역학을 끄집어내고 있다.

 


 

 

유체라는 게 말 그대로 완전히 고정된 물건이 아닌 흘러 다니거나 유동성이 있는 물질이다. 공기라든가, 물이 대표적이고, 점성이 있는 물질들, 이를테면 혈액이라든가, 석유, 당밀 같은 것도 해당한다.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라는 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항이 많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역사는 그런 유체를 이용하고 정복해온 역사이기도 하며, 또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혹은 인류가 스스로를 과신하여 큰 피해를 입은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도 재미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 송현수 박사의 이전 3부작만큼은 아니다. 너무 자잘하게 끊어서 그런가? 아니면 수식이 많이 들어있고, 어려운 용어가 많아서 그런가? 설명하려면 필요했을 터이지만, 그래도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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