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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코드(돌, 물, 피, 돈, 불, 발, 꿈)로 읽는 유럽 도시, | 책을 읽다 2023-01-3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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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

윤혜준 저
아날로그(글담)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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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를 소개하고 있지만 여행기가 아니다. 하나의 장이 한 도시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여행기가 아닌 이 책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 , , , , , 이라는 7개의 주제, 혹은 소재를 두고 장을 구성하고 있고, 그 장에는 여러 도시가 섞여 있다. 시대도 어떤 일관성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곳으로 가면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이 좋고, 무엇을 먹으면 좋다는 식의 여행 안내서는 아니다. 대신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를 보다 보편적으로 알려준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 책은 더욱 좋은 여행 안내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식이다.

를 다룬 3장은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 1세기 로마의 콜로세움, 18-19세기 파리의 콩코르드광장과 런던 스미스필드 축산시장, 12세와 18-19세기의 프라하 유태인 묘지, 19-20세기 부다페스트 벰 광장이 그 풍경들을 이루고 있다. ‘라는 소재를 통해 유럽의 도시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심란하고도 처절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 도시를 종적인 역사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한 주제를 통해 횡적으로 연결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시간만 된다면 이렇게 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도시를 둘러보고 공부해도 좋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7개의 코드와 관련해서 좀 비대칭적인 것은 사실이다. ‘이니‘ ’과 같은 코드와 관련해서는 떠오르는 도시들이 있다. 그리고 나의 어줍잖은 예측이 거의 70, 80퍼센트 정도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은 이니, ’이니 하는 코드다. 순교자 후스의 도시 프라하,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15세기의 피렌체 같은 경우는 의 이미지가 선명하고, 드레스덴의 참혹한 폭격도 그럴듯해보인다. 그런데 돈 조반니가 처음 공연된 프라하의 극장, 프랑스에서 초기 기차역이 생긴 파리 생라자르역은 불과 좀 멀리 떨어진 느낌이고, 이탈리아의 음식을 다룬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신선하다. 도시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도전적이면서도 배울 게 많은 시도다.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도 상당히 달라질 듯하다.

 

그런데 한 가지. 저자의 성격이랄까, 지향점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진보의 야만성이라든가, ‘혁명이 뿌려댄 같은 것에 관한 반복적인 언급은 그가 무엇을 혐오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가 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은 유럽의 도시가 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서술의 방식을 보면 그가 무엇을 중시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실제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불편하면서도 의미 있는 책. 좀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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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식물들 | 책을 읽다 2023-01-2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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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식물을 위한 변론

맷 칸데이아스 저/조은영 역
타인의사유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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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을 하지만, 땅에 고정된 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종자로 번식하는 푸른색의 식물에 관해서는 굳고 굳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식물에 관한 책들이 조금 천편일률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적어도 내가 읽은 책에 한해서는). 식물에 대한 고정관념이라는 게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걸 교정하는 차원에서 아주 다양한 식물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다. 화려한 사진과 함께. 그런데 그걸 그냥 천편일률이라고 하면서 외면할 수 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식물의 매혹이라는 것이 그저 한번 보고 나고, 설명을 듣고 나면 그냥 다 이해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도 많고, 열매를 맺지 않는 식물도 많으며, 종자로 번식하지 않는 식물도 적지 않다.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식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우리 주변의 생태계에 대해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길이지만, 그게 늘 쉽지 않은 것은 우리가 식물을 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맷 칸데이아스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식물을 위한 변론>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한다. 생태학을 전공한 저자는 식물 덕후이기도 한데, 그게 어릴 적부터 식물에 푹 빠져 살아온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면서 점점 식물의 매력에 젖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식물을 키우고, 공부하면서 생태계의 배경, 즉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식물의 다양한 진면목을 소개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정말 얘기할 것이 많지만, 그걸 다 얘기할 수 없은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자신의 채석장 경험에서 식물에 매혹당한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식물의 성()과 이동(주로는 씨앗의 이동), 생존을 위한 다양하고도 기묘한 방법, 식충식물들의 세계, 그리고 기생식물에 대해서 소개한다. 주제 하나하나가 우리가 정말로 식물을 너무편향되게 생각해왔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이를테면 식충식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다윈도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실험을 하고, 논문도 썼던 식충식물을, 우리는 끈끈이주걱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식물의 육식성이 10개의 식물 과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이러한 특성이 식물에게 매우 보편적이고, 성공적인 전략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런 식물의 육식성이 식물의 방어 기작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며, 새로운 유전자에 의해서 생겨는 습성이 아니라 기존의 유전자가 기능을 달리하면서 생겨났을 거라는 최근의 연구 결과는 육식성의 메커니즘이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입이 크게 변형된 파리지옥이 있는가 하면, 물에 빠뜨리는 것과 같은 원리로 곤충을 잡아먹는 파인애플과의 식충식물도 있고, 함께 존재하는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소화시켜 영양분을 흡수하는 식충식물도 있다. 흰개미를 유혹하는 무늬를 지니고 있는 식충식물도 있고, 박쥐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척하며 잡아먹는 식충식물도 있다. 끈적끈적한 잎에 걸려든 먹잇감을 잡아먹는 식물도 있는가 하면, 통발과 같은 전략을 써서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도 있다. 가만히 있는 식물이라는 게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정말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면서 동물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놀랍게 소개하고 있는 것은 기생식물의 세계다. 기생식물이라니... 식물이라면 광합성을 하는 존재가 아닌가? 즉 독립영양생물이라고 해서 햇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지구상의 모든 영양분의 원천을 만들어내는 생물이 아닌가? 그런데 엄연히 기생하는 식물이 있다. 이들 기생식물은 당연하게도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식물이나 곰팡이 등에 기생해서 영양분을 얻어내 살아간다. 사막겨우살이, 새삼, 산호란, 수정난풀, 트리트테릭스 아필루스, 라플레시아 같은 식물이 바로 그런 식물들이다. 이것들 역시 단순하지만은 않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생물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광합성을 하지 않으므로 굳이 녹색으로 보일 이유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이들 식물은 매우 황폐해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매우 화려한 색깔이 지니며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기생식물은 식물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존재인 셈이다.

 

저자가 이렇게 식물의 다양성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저 매혹적인 식물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원에 심기 위해서 아무 제약 없이 캐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식물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는 이유는 이러한 식물의 다양성이야말로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그런 목적을 지닌 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이 책에서 만나는 여러 식물들의 화려하고도 기묘한 삶에 대한 매혹에 더 많이 마음이 기운다. 물론 그렇게 매혹당했을 때 식물을 함부러 다루지는 않을 것임에는 분명하니 저자의 목적에 어느 정도는 부합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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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식물 | 책을 읽으며 2023-01-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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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관한 책들은 대체로 기기묘묘한 식물의 한살이를 다룬다. 우리가 아주 단순하게 알고 있는 식물이 그처럼 다양하고, 또 신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전력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읽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책을 접할 때마다 새로운 식물을 접하는 느낌이 들며 신기해한다. 물론 전에 읽었던 그 식물을 잊고 다시 감탄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걷는 식물은 처음 알게 되었다. 맷 칸데이아스의 식물을 위한 변론에서다. 이 걷는 식물을 꼭 소개하고는 싶고, 어디다 넣기에도 너무 독특한 식물이어서 조금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결국 <식물의 이동>이라는 장에 넣었는데, 이것만 보면 꼭 들어맞는 장의 제목이긴 하지만 실은 이 식물의 이동이란 대체로 씨앗의 이동을 말한다. 그만큼 식물 자체의 이동은 정말 말 그대로 식물(植物)답지 않은 셈이다.

 

그것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우림에 살고, 영어권에서는 걷는 야자(walking palm)’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크라테아 엑스르히자(Socratea eaorrhiza)라는 식물이다.”

 

맷 칸데이아스는 이 세상에 걸어 다니는 식물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이 종일 것이라.”라고 하면서도 진짜 발로 걷는 식물을 상상하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데, 그가 이 식물을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마침 식생이 거의 없는 비탈진 언덕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나는 저 멀리 나무가 끝없이 이어진 경치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 정말 이상한 야자 두 그루를 보았다. 하나의 굵은 줄기 대신에 뾰족한 촉수처럼 보이는 십여 개의 막대가 나무의 밑둥을 받치며 기대어 둘러싸고 있었다.” (136)

 


 

 

그렇다면 이 야자가 왜 걷는다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일까?

 

“(열대 우림의) 숲에서는 나무가 주기적으로 쓰러진다. 이 쓰러진 나무에 깔린 식물은 대부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걷는 야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무가 쓰러지면 함께 넘어졌던 걷는 야자가 그 밑에서 걸어 나오는것이 실제로 목격되었다. 비결은 저 기울어진 뿌리에 있었다. 걷는 야자의 줄기는 어느 부위에서나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나무가 쓰러지면 줄기가 새로운 뿌리를 흙으로 내려 보낸다. 이 과정이 속도를 내면, 걷는 야자는 제 몸을 짓누른 가지가 없는 새로운 장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쓰러진 줄기를 뒤로 남긴 채 숲 지붕으로서의 여행을 계속한다.”

 

말하자면 넘어진 나무 둥치를 피해 새로운 뿌리를 내면서 마치 걷는 것처럼 이동해 간다는 얘기다. 비록 식물이 진짜 걷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신비한 세계 아닌가?

 

식물을 위한 변론

맷 칸데이아스 저/조은영 역
타인의사유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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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식물을 위한 변론 | 한줄평 2023-01-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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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매혹적인 식물을 만난다. 그러나 그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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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여러 가지 방법 | 책을 읽다 2023-01-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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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저/박한선 감수/김병화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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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역사라고 했을 때, 과연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궁금했다. ‘역사라고까지 했으니,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은 아닐 것이다(그런데 그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은 우리가 재화를 얻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럼 그 역사를 어디서부터 얘기할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자 가장 궁금해해야 할 것은 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할 지에 관한 것이란 걸 알게 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이 어릴 때 작은 녀석(아들)을 내 사무실에 데려갔다 왔더니 나중에 아빠는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해서 계속 컴퓨터로 놀더라는 것이었다. 아들 녀석의 눈에는 그리 보였겠다 싶었다. 그 녀석의 나이에 컴퓨터로 하는 것은 놀이이지 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잘 분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서핑하는 것은 일일까? 아닐까? 어딜 여행갈까 궁리하거나, 연예계 가십이나, 어제 프로야구 결과를 찾아보는 것은 명백히 일이 아니겠지만, 과학계의 이러저런 일들, 혹은 논문들을 이것저것 뒤져보는 것은 내겐 일이다. 그렇게 보면 앞에서 내가 일이 아니라고 한 것도 명백히 일인 사람도 있다. ‘은 일 아닌 것과 구분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제임스 수즈먼이 일의 역사를 통해서 내내 하는 얘기도 바로 그 일이 아닌 일사이의 구분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인류가 등장하기 전의 것은 건너뛰고라도 인류가 등장하고서는 모든 행위가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 일이 아닌 것이 없었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러다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일과 일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봐서 일이 아닌 것은 그들에게도 일이 아니었을까? 지금 현대인이 일을 보는 관점과 수십 만 년 전, 수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일을 보는 관점을 비록 굉장히 다를지 모르지만, 또 본질적인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수즈먼은 인간의 일, 즉 노동의 역사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데, 그 역사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몇 지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이 불을 다루게 된 시점이다. 이 시점은 굉장히 중요한데 바로 인간이 생존을 위한 일 외의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다음은 농경이 탄생하는 시점과 연관된다. 다른 책이라면 농경!’이라고 못을 박아버리지만, 저자는 이 시점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시점에서 인류의 변화가 농경에 의한 것인지, 농경이 결과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시점(12000년 전쯤)에 인류는 식량을 저장하고, 재배하는 방식을 시험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타인과 환경과의 관계를 재정립했으며, 즉각적인 요구 조건이 아니라 지연된 요구 조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미래의 결핍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도시의 형성이다. 도시의 형성은 당연히 분업으로 이어진다. 분업은 생존과는 관련이 없는 직업을 탄생시켰다. 8000년 전쯤 생성된 도시에는 에너지를 획득하는 사람보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 사제 등으로 부른다. 드디어 불평등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며,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또 달라진 것이다. 마지막은 공장의 출현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는 에너지의 소스가 인류가 탄생하기도 훨씬 전에 지구적인 규모로 생성된 화석 연료로 바뀌었다. 화석 연료는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연료로, 우리는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규모와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시의 수와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고, 농업의 양상도 달라졌다.

 

이 정도가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일, 노동의 역사의 뼈대다. 여기에 저자가 많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따라가지만 단순한 인류 진화의 역사가 아니라, 그 역사에서 한 측면, 그것도 가장 중요한 측면을 중심으로 바라보면서도 아주 포괄적인 진화사이다. 수렵채집인들의 여유로운 삶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으며, 현대에 들면서 오히려 일에 허덕거리는 상황에 대해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명 비판도 아니다. 어쩌면 일과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경로는, 물론 결정론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러한 전체 맥락의 커다란 얘기도 매우 중요하고, 교훈적이며,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긴 얘기들, 수렵채집부족의 얘기, 고고학자, 인류학자에 관한 이야기, 혹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과로사로 인정받은 일본 NHK 기자 사도 미와의 이야기 등은 이 책을 더욱 다채롭고 집중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린고고학자 비어 고든 차일드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끝내는 것은 사실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을 구별하는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농업혁명이 인류에게 그리 축복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힌 거의 최초의 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주장이 새로운 증거에 의해 반박될까 항상 걱정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그 반대인 것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일과 휴식의 구분이 매우 애매해진 시대에 살고 있고, 나 스스로도 점점 그렇다. 사람들은 쉴 권리를 주장하지만, 너무 일하는 시간을 적게 주면, 더 많이 일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대부분이 보기에 절대 이 될 수 없겠지만, 나는 나름 을 한다고(최소한 비슷한 걸 한다고, 어쩌면 이라고 불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일에 관해서 참 생각할 게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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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깃털이 성적 매력과 관련이 없다니... | 책을 읽으며 2023-01-2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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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공작의 꼬리 깃털 때문에 잠 못 들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자연선택 이론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그 쓸모 없어 보이는 화려한 깃털은 다윈을 꽤나 골치아프게 했지만, 그는 1871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라는 책에서 멋진 해결책을 제안해냈다. 제목에도 있듯 성선택(sexual selection)’이었다. 지금은 자연선택과 거의 대등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진화의 요인이다. , 생존 자체에는 별로 쓸모없거나, 심지어 손해일지라도 이성(異姓)이 좋아해서 선택하는 형질이라면 폭주해서 과장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작의 꼬리 깃털은 이로써 타당한 이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많은 형질이 이것으로 설명되었다(다윈은 건강과 여러 다른 고민거리로 잘 못 들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데 제임스 수즈먼의 일의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이제는 공작의 꼬리가 다윈이 생각했던 것처럼 공작에게 신체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다. 공작이 포식자를 피하려고 공중에 날아오르는 속도를 시험한 연구자들은 큰 꼬리가 서둘러 날아오르고 도피하는 능력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또 짝짓기 상대를 정할 때에도 공작 꼬리는 별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61)

 

여기까지는 손해가 없다는 것이지 성적 매력이라는 이점이 없다는 얘기이지만, 이어 소개하는 일본 도쿄 대학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그들은 7년 동안 시즈오카에 있는 이즈 캑터스 공원에 있는 암컷과 수컷 공작 무리들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중략) 놀랍게도 그들은 짝짓기의 성공과 꼬리 특징 사이에 상응하는 점을 찾지 못했다. 암컷 공작은 가장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수컷이든 전혀 눈에 띠지 않는 꼬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수컷이든 똑같이 열렬하게 짝을 지었다.”

 

수즈먼은 바로 남아프리카의 베짜기새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는데, 그것이 공작 깃털의 비밀을 열 단서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결국 잘 모른다는 얘기인 셈이다. 다만 베짜기새의 둥지 얘기로 유추해보건데, 그리고 이 책의 주제에서 짐작해보건대 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인 듯하다.

 

물론 공작의 깃털 이야기가 또 하나의 다윈의 실수를 덧붙이는 것은 아니다. 성선택은 여전히 공고한 이론이고, 많은 현상들을 설명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우리가 알아내야 할 것이 아직도 정말 많다는 것을 얘기하는 강력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저/박한선 감수/김병화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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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본의 운명은 왜 달랐는가? | 책을 읽다 2023-01-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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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일 근대인물 기행

박경민 저
밥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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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근대사는 왜 그렇게 달랐을까? 역사가가 아닌 박경민 씨는 바로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인물에서 찾았다. 1850, 즉 조선에서 강화도령이 철종으로 등극하고, 일본에는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른바 흑선(黑船)을 끌고 함포를 쏘며 개항으로 요구한 해부터(놀라우면서 내가 몰랐던 것은 페리가 일본에 올 것은 일본에서는 1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905년 을사조약(혹은 을사늑약)에 이르는 55년의 기간 동안 조선과 일본에서 활동인 인물들을 다루며 그들이 어떻게 달랐고, 어떤 선택을 했으며, 어떤 운명을 맞았기에 두 나라의 운명이 완전히 갈라졌을까에 대한 자신의 답을 찾고 있다.

 


 

 

소개하는 일본인 21명이 모두 긍정적인 인물도 아니고, 한국인 16명이 모두 부정적인 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제어해나가는 어떤 흐름이 있었고, 한국(조선)에서는 개혁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인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제거되어 나가는 역사가 일관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이 한반도에 부정적이고, 세계사와 일본의 현재에 큰 부담과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당시에 일본의 미래에 대해 격정적으로 고뇌하고 행동한 인물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이 결국은 대정봉환,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막부를 없애고, 서구화의 길로 나아가는 초석을 닦았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조선은 세도정치에 매몰되어 있었고,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으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권력의 중심부에 들지 못했다. 물론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물쭈물하며 뒤로 내빼는 고종을 비롯하여, 여러 인물들의 배신과 능력 부족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특히 저자는 고종에 대해 굉장히 좋지 않은 평가를 하고 있다. 혼군(昏君)이라는 표현까지 하고 있는데, 그가 다룬 한국인 16명에는 없지만 곳곳에 등장하고 있는 고종은 우유부단하고, 공보다 사를 앞세웠고, 추진력도 없던, 격변의 시대, 혼란의 시대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지도자, 군주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가 헤이그 밀사 등을 파견했다는 것, 을사늑약을 끝까지 승인하지 않았다는 등으로 그가 일제에 저항했다고 하지만, 그건 다 뒷북이었고, 주도적으로 나선 것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결국은 망국의 최종적인 책임은 최고 책임자인 임금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저자가 역사를 직시하자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비참하고 비굴한 결과로 이어진 그 55년의 역사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해한다.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인물들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그들이 우수하다고 우러러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과거를 직시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혹은 수수방관했던, 혹은 능력이 부족했던, 혹은 아깝게 좌절했던 인물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섰던 일본의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능력을 키우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나가야할 것인지를 깨닫고 배우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성도 필요하고, 비판도 필요하고, 공부도 필요하다.

 

이 책에서 다른 부분과 함께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일본과 한국의 인물뿐 아니라 외국 인물 2명을 더 소개한 것이다. 바로 원세개(위안스카이)와 베베르인데, 원세개는 10여 년 동안 조선의 총독처럼 지내면서 온갖 패악질을 했고, 또 중국으로 복귀해서는 역시 군벌로서 중화민국의 초대 통령까지 이른 인물이다. 그의 출세의 기반이 조선이었다는 점이 놀라우면서도도 씁쓸하다. 그리고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의 경우에는 원세개와 반대 지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물론 러시아 공사로서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했겠지만, 그와 동시에 조선의 이익도 함께 생각했던, 그리고 을미사변의 참상을 객관적으로 보고해서 그 진상을 나중에라도 알 수 있게 한 인물이다.

 

전체적으로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 많았으며, 또 그저 이름만 알고 있는 인물들의 자세한 삶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들자면 편집이다. 본문에서 그냥 설명해도 될 내용을 굳이 각주에 넣어 글읽기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고, 또 인용문의 양식도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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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읽은 옛 이야기 속 질병들 | 책을 읽다 2023-01-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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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상한 나라의 모자장수는 왜 미쳤을까

유수연 저
에이도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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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기시감에 대해서부터. 제목에서부터 어떤 책들을 떠올렸다. 박신영 작가의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가 그것인데, 동화나 소설을 모티브로 역사를 다루는 책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1<19세기의 그림자>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화나 소설에서 소재를 가져와 질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식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흥미를 많이 끄는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것이다(참고로 나는 박신영 작가의 책을 무척 좋아한다). 의사이니 질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터이지만, 그 이야기 모두를 동화와 소설 같은 옛이야기에서 끌어오는 것은 모든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같은 방식에서 저자는 의사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잘 녹여내고 있는데, 이런 식이다.

 

신경과 의사답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매트 해터(이 양반이 제목에 등장하는 이상한 나라의 모자장수)가 수은중독으로 인한 신경계 이상이 있을 것이라 추론하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는 여러 가지 가설을 떠올리는데, 신경증적 증상, 예를 들면 조현병을 그 중심에 둔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에서는 카렌의 무도병이 역사적인 사건(아마 박신영의 책에서도 다루지 않나 싶다)과 관련이 있으면서, 역시 신경과 의사답게 헌팅턴 무도병이나 시든햄 무도증을 추정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에서도 (합스부르크 가와 마찬가지로) 근친혼으로 인한 부작용인 조현병이 어셔가의 몰락의 원인으로 진단한다. 원래의 작가들은 정확히 몰랐겠지만, 의사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다.

 

좀 일반적인 이야기도 있다. 성냥팔이 소녀가 죽게 되는 이유가 저체온증이라든가, 백린 중독이라는 것이나, 서양의 뱀파이어가 태양을 피하는 이유가 포르피린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그렇다.

 

감염에 관한 얘기는 개인적인 이유로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결핵으로 죽는다는 설정이나, 셜록 홈즈의 든든한 동료이자 조수인 왓슨이 장티푸스에 걸렸었다는 것, 작은 아씨들에서 셋째가 성홍열(scarlet fever)에 걸려서 죽는다는 것 등이 그렇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어가기도 한다.

 

1부가 이렇게 의사로서 19세기의 동화, 소설, 오페라에서 소재를 얻고 있다면, 2<오래된 현재>는 좀 더 먼 과거로 간다. 즉 신화의 세계가 주 무대다. 그래서인지 톤도 달라지는데, 의사로서의 직업 감각보다는 신화 애호가로서의 저자의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물론 의사의 모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여기의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늑대가 남긴 상처>라는 제목의 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빨간 두건(또는 빨간 모자)라는 동화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2부에 있을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동화 자체에서 어떤 질병을 가져온다기보다는 몇 단계를 건너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동화의 늑대에서 서양 중세의 늑대 공포를 읽고, 거기서 늑대에게 물린 상처와 다른 질병, 즉 전신 홍반성 루푸스(systemic lupus erythematosus)로 건너간다. 사실 루푸스를 자가면역질환으로만 알고, 얘기했었는데, 그 어원이 늑대에서 온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생각하지 못한 게 지적 게으름을 의미하기도 할 만한게, lupus가 바로 라틴어로 늑대란 뜻이니(그리고 학명도) 말이다. 심지어 이걸 한자로 낭창(狼瘡)이라고 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바로 늑대를 의미하는 것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봤으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적 게으름을 만회해주는 게 이런 책읽기이기도 하다.)

 

이 흥미로운 책을 읽으면서 직업병 생각을 했다. 의사들은 직업병처럼 책을 읽으면 항상 질병을 생각할까? 많은 의사가 많은 책을 읽을 만큼 여유는 있지 않겠지만, 남들보다는 글에서 질병을 더 많이 생각하겠지? 그것 자체가 지적인 연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데, 그것을 남들에게 잘 알려주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적 네트워크를 남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고맙다는 생각도 했다. 다만 나도 역시 직업병 같은 것으로 책에서 작은 오류 하나를 지적해본다. 맨드레이크 얘기를 하면서 맨드레이크 속에 친절히 괄호를 넣고 (species)라고 하고 있는데... ’’genus’. 다른 건 못 찾고 이런 사소한 걸 트집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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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이상한 나라의 모자장수는 왜 미쳤을까 | 한줄평 2023-01-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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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직업병 같은... 하지만 즐거운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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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회의 진화적 기원, '사회성 모둠' | 책을 읽다 2023-01-2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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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블루프린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저/이한음 역
부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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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내용만 봐서는 이 책의 저자가 신의 화살의 저자와 같다는 걸 쉽게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사회학과 네트워크과학, 생물학을 결합시키고, 결론으로는 연대 의식을 강조한 신의 화살의 문제의식(https://blog.naver.com/kwansooko/222515728283)이 이 책에서는 보다 보편적인 인류의 역사와 미래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과 비슷하게 인간의 본성을 희망적으로 설파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해제>에서 정재승 교수가 잔뜩 소개하고 있기도 한데, 대표적인 것으로 로빈 던바의 프랜즈, 리디아 덴워스의 우정의 과학,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와 같은 책들이다. 대결과 투쟁보다는 협력을 더 우위에 두었기 때문에 인간이 이 위치에 와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얘기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이렇게만 요약한다면 이 책들에 담긴 많은 사례와 통찰력을 무시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쩌면 대결로 치닫는 세계에 대한 경고, 혹은 안타까움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기는 한다.

 

의사이자, 생물학자이자, 사회과학자인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는 자신과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얻은 과학적 발견들을 이 책에서 정리하고 있는데, 특히 진화인류학과 사회학의 성과가 주를 이룬다. 그 성과들을 크리스타키스는 인간의 본성 중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데 가져다 쓰고 있으며, 그것을 사회성 모둠이라는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적으로 계승된 보편적 특정들의 목록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 사회성 모둠은 다음과 같다.

 

(1) 개인 정체성 소유와 식별

(2) 짝과 자녀를 향한 사랑

(3) 우정

(4) 사회 연결망

(5) 협력

(6) 내집단 편애(자기 집단 선호)

(7) 온건한 계층 구조(상대적 평등구의)

(8) 사회 학습과 사회 교육

 

이것들을 다시 더 간략하게 사랑, 우정, 협력, 학습’.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크리스타키스는 이러한 본성이 그저 인간이 의도적으로 발달시켜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에 존재하는 청사진(, 블루프린트 blueprint)과 같다고 본다. 이것들이 우리의 유전자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얘기는 우리가 이러한 본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저자가 언급하는 예들 가운데는 비극적인 예, 파멸적인 예, 적대적인 예 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해낸 예들도 함께 존재하는데, 그 극복해낸 경우들에는 하나같이 사회성 모둠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그는 사회성 모둠이 보편적인 본능이라는 것을 그저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끼리, 돌고래, 침팬지 등 많은 동물들의 연구를 참고한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사랑, 우정, 협력, 학습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런 유전자는 인간만이 습득한 것이 아니라 본래 존재하는 본능적인 것이라는 얘기다(“코끼리는 친구를 사귄다. 돌고래는 협력한다. 침팬지는 문화가 있다.”).

 

저자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 낙관한다. 다만 어떤 조건 아래에서 그렇다. 우리의 이 본성을 잘 이해하고, 잘 가꾸었을 때 좋은사회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진화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란 것을 강조하지만,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 특히 생물학의 성과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불편한 진실마저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내는 힘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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