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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읽은 책 | 책읽기 정리 2023-03-3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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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 달 동안 읽은 책을 정리한다.

확이해보니 2월보다는 훨씬 많이 읽어 모두 23권을 읽었다. 책을 어느 정도 읽는지는 바쁘다, 바쁘지 않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돌출 일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관건인 것 같다. 3월엔 돌출 일정이 별로 없었다. 말하자면 루틴대로 흘러갔던 한 달이었고, 그래서 좀 더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은 3월 한 달 동안 읽은 책 목록이다.

제목

저자

출판사

도둑맞은 뇌

대니얼 샥터

인물과사상사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부북스

생명해류

후쿠오카 신이치

은행나무

전쟁 기획자들

서영교

글항아리

생명의 비밀

하워드 마르켈

늘봄

감각의 거짓말

기 레슈차이너

프리렉

모든 것에 화학이 있다

케이트 비버도프

문학수첩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제임스 체셔, 올리버 우버티

윌북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휴머니스트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박건호

휴머니스트

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스티븐 존슨

한국경제신문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어크로스

호기심 많은 로맨틱 과학자의 독서 기행

이원식

미들하우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슈테판 클라인

포페스트북스

독의 발견

후나야마 신지

북스힐

은유란 무엇인가

김용규, 김유림

천년의상상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바츨라프 스밀

김영사

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블랙피쉬

서점의 시대

강성호

나무연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출판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월등히 과학 관련한 책을 많이 읽은 한 달이었다.

대니얼 샥터의 도둑맞은 뇌,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명해류, 하워드 마르켈의 생명의 비밀, 기 레슈차이너의 감각의 거짓말, 케이트 비버도프의 모든 것에 화학이 있다, 스티븐 존스의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이원식의 호기심 많은 로맨틱 과학자의 독서 기행, 슈테판 클라인의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후나야마 신지의 독의 발견, 바츨라프 스밀의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12권으로 절반이 넘는다.

과학교양서 가운데 요새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드디어 읽었고, 좋아하는 작가인 스티븐 존스의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와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명해류가 나와 부리나케 읽었다. 스티븐 존스는 역시! 였지만, 후쿠오카 신이치는 조금 실망했다.

 

소설과 문학 관련한 책으로는,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에이미와 이저벨,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2를 읽었다.

토머스 만이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책은 다른 어떤 필요에서 의해 계획해서 읽는 책에 포함되지만, 역시 대가들의 작품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도, 조지 손더스는 검증된 작가이니만큼(조지 손더스의 것은 소설이 아니지만) 역시 좋았다.

 

역사 관련한 책으로는(사실 과학으로 묶은 책도 과학사가 많으니 역사라 해도 좋을까?), 서영교의 전쟁 기획자들, 박건호의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김성호의 서점의 시대정도인데, 단순히 어느 시대를 다룬 역사책이 아니라 주제를 담고 있는 역사책들이다.

 

그 밖에 제임스 체셔와 올리버 우버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과 김용규의 은유란 무엇인가를 더 읽었다.

 

다시 이 책들에 지금 느낌대로 평점을 매겨보면,

제목

저자

평점

도둑맞은 뇌

대니얼 샥터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

생명해류

후쿠오카 신이치

★★★★

전쟁 기획자들

서영교

★★★★

생명의 비밀

하워드 마르켈

★★★★☆

감각의 거짓말

기 레슈차이너

★★★★☆

모든 것에 화학이 있다

케이트 비버도프

★★★★☆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제임스 체셔, 올리버 우버티

★★★★★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박건호

★★★★☆

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스티븐 존슨

★★★★★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

호기심 많은 로맨틱 과학자의 독서 기행

이원식

★★★★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슈테판 클라인

★★★★☆

독의 발견

후나야마 신지

★★★★

은유란 무엇인가

김용규, 김유림

★★★★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바츨라프 스밀

★★★★☆

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

서점의 시대

강성호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가르시아 마르케스

★★★★☆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가르시아 마르케스

★★★★☆

 

제임스 체셔와 올리버 우버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와 스티븐 존스의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만 별 다섯을 온전히 주게 되는데, 고민을 좀 한 책들이 많다(고민이 별 의미도, 영향도 없긴 하지만). 이를테면, 하워드 마르켈의 생명의 비밀, 기 레슈차이너의 감각의 거짓말,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2같은 책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제임스 체셔,올리버 우버티 저/송예슬 역
윌북(willbook) | 2022년 10월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스티븐 존슨 저/강주헌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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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의 이야기, 혹은 이상화된 병적 사랑의 이야기 | 책을 읽다 2023-03-3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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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콜레라 시대의 사랑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송병선 역
민음사 | 200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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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1>을 읽고

 

콜레라에 대한 사랑 전체에 대한 독후감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영역을 개척했다고 일컬어지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3년 후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궤도에서 벗어난 듯 아닌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소설이다. 발표 직후에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대체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나는 소설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평가할 능력이 없기에 읽은 느낌 몇 가지만 정리해본다.

 


 

 

우선은 소설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플로렌티아 아리사에 관한 생각이다. 그는 십대 후반 시절 우연히 마주친 한 소녀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그의 오랜 구애를 결국 타의에 의해 깨어지고, 50년이 넘는 절절한 바라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50여 년이 흐르고 결국은 그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아마 이 소설의 낭만적 성격을 강조한다면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50년이 넘도록 불씨를 지펴온 사랑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의 주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마음 먹는다는 부분에 따옴표를 쳤다.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사랑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는 페르미나 다사라는 여인의 무엇을 사랑했을까? 사랑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 하지만,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사랑에는 때문에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없다. 그저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이것도 때문에에 해당하는가?)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좌절 후에도 그녀를 평생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그녀를 계속 바라본다. 한 여인의 모든 것을 이상화시켜놓고, 그것을 찬미하고, 좌절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는 페르미나 마사를 사랑했다고 하지만, 그의 사랑에는 페르미나 마사라는 현실의 여인이 없었다. 이건 병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이 사랑을 찬양했다기 보다는 이 병적인 집착을 풍자했다고 본다.

 

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622번이라는 황당한 숫자 때문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만남도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대체로는 욕정 때문이었고, 분명한 범죄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룻밤을 함께 한 여인이 남편에게 살해되도록 했고, 하녀를 강제로 임신시키고는 그녀의 애매한 연인의 짓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보호자로 위임받은 소녀를 1년 동안 정성을 들여 연인으로 만들고(무려 60살에 가까운 나이 차이!), 페르미나 다사와의 관계가 시작되자 무정하게도 관계를 끊어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역겨운 애정 행각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반 세기가 넘는 사랑의 기다림을 아름답게 그리고자 했다면 이처럼 역겨운 행보를 자세히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 이 사랑의 병적인 측면을 보여줬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어떤가? 그는 분명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남미의 상류 계층을 상징한다. 과거의 유산이면서 현대성을 동시에 갖는, 어쩌면 혼종의 인간이다. 그의 결혼 생활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1권에서는 거의 그렇게 보인다),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의, 어쩌면은 절박했던 외도는 그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한 페르미나 마사의 대응은 현실적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과정은 너무나도 부르주아적이다. 여기에 아름다움은 없다. 역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비꼬고 있다.

 

말하자면 나는 이 소설을 사랑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그 사랑을 도구화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 내지는 풍자로 읽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소설 첫머리의 늙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망명객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얘기와 맨 끝에 수십 년을 연인 관계를 이어온 노인 커플이 배에서 노에 맞아 살해되는 얘기를 의미심장하게 읽었다. 이 소설가가 노인의 삶, 노년의 사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비록 플로렌티아 아리사의 사랑은 병적이었지만, 70, 80이 되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콜레라는 1권에서도 배경이었다. 그 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여전히 구시대적이지만, 후베날 우르비노만이 현대적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남녀의 관게에 대한 생각, 노인에 대한 생각, 폭력에 대한 생각 등이 그렇듯이. 2권에서도 콜레라는 플로렌티아 아리사와 페르미노 마사의 사랑(?)을 감추어주는 중요한 속임수와 영원한 도피(그럴 수는 없겠지만)의 도구가 되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그려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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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간 불씨를 지펴온 사랑에 관한 이야기 | 책을 읽다 2023-03-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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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콜레라 시대의 사랑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송병선 역
민음사 | 200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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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미나. 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며 당신은 영원히 나의 사랑이라는 맹세를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서 말이요.”

 

50년 간 불씨를 지펴온 사랑에 관한 이야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가 주인공이고, 거기에 후베날 우르비노가 있다. 하지만 1권에서는 이 세 명이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늙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망명객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를 검시하는 의사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서 시작한다. 80대에 이르도록 후베날 우르비노는 남 부러울 데 없는 재산과 명성을 이어왔다. 그리고 그의 아내 페르미나 다사와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단 한 차례의 결혼의 위기가 고작 비누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베날 우르비노는 앵무새 잡다 사다리에서 넘어져 죽고 만다. 그에게나 갑작스레 미망인이 된 페르미나 다사에게는 허망한 죽음이었지만, 그로 인해 반세기를 넘게 마음 속에만 품어온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무려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대 중반의 페르미나 다사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린 사생아이자 전신 기사 보조 플로렌티노 아리사 이야기다. 오랜 망설임과 그에 이른 결단. 편지로 이어진 사랑과 결혼 약속. 하지만 페르미나 다사의 짝으로는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어림없다고 여긴 페르미나 다사의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2년 동안의 끔찍한 여행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동안에도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는 전신을 통해서 사랑을 주고받는 깜찍한 연인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페르미나 다사가 돌아오고 재회한 순간,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이별을 통보받게 된다.

 

그리고 페르미나 다사와 후베날 우르비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후베날 우르비노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남자였다. 의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의사가 되어 돌아왔다. 그 역시 페르미나 다사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한다. 계속된 거부에도 끈질긴 구애에(아버지는 이미 허락했지만) 페르미나 다사는 갑자기 마음을 열고 결혼하게 된다. 그들은 그 후로 50년이 넘게 부부로 살아간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어땠을까? 그는 끝까지 페르미나 다사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후베날 우르비노가 죽기를 바랬고, 그후에 그녀와 다시 이어질 것이라 굳게 믿고 살아간다. 그 사랑의 고통을 잊기 위해, 혹은 남자로서의 욕망을 어찌할 수 없어 많은 여인들을 만나고 몰래 육체적 사랑을 나누지만, 페르미나 다사를 향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1권의 내용이다.

 

사실 1권에서 보이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페르미나 다사를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하고 싶은 여인으로 이상화시켜 놓은 존재다. 그녀와의 실제적인 감정의 교류는 거의 없으며, 온갖 미덕을 얹어 놓은 이상적인 여인이 바로 페르미나 다사다. 그러니 그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 오히려 페르미나 다사는 사랑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다 결국은 현실로 돌아선다. 수동적이기 그지없는(이상화시킨 존재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별 것 없어 보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플로렌티노 아리사와는 달리 페르미나 다사를 현실의 존재로서 바라본 후베날 우르비노는 사랑과 구애에 능동적이다. 그래서 사실 50(아이구 이건 반세기다!)을 이어온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랑은 무섭기까지 하다.

 

소설 속에서 콜레라는 그들의 사랑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만 시대적 배경으로서 도시의 음울했던 상황을 나타낸다. 인상적인 것은, 현대적 지식으로 무장한 20세기의 의사 후베날 우르비노(아마도 그는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파스퇴르와 코흐의 세균병인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와 과거의 의학에 머물러 있던 자비스런 후베날 우르비노의 아버지 아우렐리오 우르비노가 대비된다는 점이다. 아우렐리오 우르비노는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자신이 감염되어 죽게 되는 등 영웅이 되었지만, 후베날 우르비노가 나중에 기록을 검토해본 결과, 아버지의 방법은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발견한다. ‘콜레라 시대는 그렇게 비과학의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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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삶과 물고기의 존재 여부 | 책을 읽다 2023-03-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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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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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읽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디서도 검색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사전 정보 거의 없이 읽기 시작했다. 알고 있던 건 어떤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굳이 먼저 알아보지 않았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는 애매하기 그지없어(그걸 과학자의 삶과 연결시키기에는) 더욱 이 책이 무엇을 얘기하는지를 짐작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과학 기자였던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에 천착한 것은 그에게서 어떤 위안과 삶의 용기를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수많은 물고기에 학명을 부여한 미국의 어류학자였다. 황량한 중서부에서 태어나 꽃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지만 그에 비아냥을 들으며 자랐다.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도 의욕 없는 일을 하다 어느 날 문득 루이 아가시라는 걸출한(그러나 죽을 때까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분류학자의 신문 광고를 보고 그의 자연학교(?)에 들어가 어류분류학자의 길에 접어든다. 그후로는 승승장구였다.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태도가 한몫했다. 명성이 올라갔고, 결국 스탠퍼드 부부가 새로 설립하는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부임하고(1891년 갓 마흔 살의 나이에) 화려한 경력을 쌓게 된다. 그 사이에 아내가 죽고, 자식들이 죽고, 지진으로 30년 동안 모은 어류 표본들이 다 부서지는 역경을 겪지만 결국 모두 극복해낸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여기까지만 읽으면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그로부터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지점을 향해 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위주로 대학에 채용하였으며,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제인 스탠퍼드(남편 릴런드 스탠퍼드는 이미 죽고 없었다)와 대립했다. 그러다 제인 스탠퍼드는 하와이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마침 조던의 해임이 논의되던 시기였다. 룰루 밀러는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에 조던이 관여했다는 정황을 여러 가지 제시한다. 물론 조던은 그것에 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조던이 명예총장으로 물러난 이후의 행적은 더욱 의심스럽고, 룰루 밀러에게(그녀에게만은 아니지만) 분노를 일으킨다. 조던은 프랜시스 골턴이 창안한 우생학이라는 사이비 학문을 미국으로 가져온 초기의 인물 중 하나가 된다. ‘부적합자에 대한 불임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녔으며, 몇몇 주에서 법제화되었 을 때는 환호했다. 룰루 밀러는 이 부분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과거에 혐오감을 드러낸다. 한번도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것이고, 그들이 그토록 증오한다던 히틀러의 행위가 그대로 자신들의 나라에서 처참한 형태로 저질렀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렬한 우생학자로 남아 있었다.

 

사실 룰루 밀러는 조던이 그렇게 된 데에 대해 그 시점을 짚어나간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이 조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면서도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논란이 있는 것이기에) (나는 그가 첫 아내가 죽자마자 어린 학생과 재혼하는 장면서부터 의아했다), 결정적이지 않고, 더 근원적인 부분을 되짚어나가고, 결국은 찾아낸다. 바로 루이 아가시와 함께 했던 페니키스 섬이었다. 그곳에서 조던은 루이 아가시로부터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을 배웠다. 비록 조던은 진화론자였고, 루이 아가시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만큼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체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자연의 사다리의 개념은 인간이 다른 동물에 우위에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에도 위계를 인정했다. 바로 이 지점이 자신에 대한 무한 긍정으로 인한 빠른 회복력을 가져왔고, 부적합자에 대한 무자비한 인위적 도태를 추진하게끔 했던 것이다.

 

룰루 밀러는 명예에 아무런 타격 없이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가 허물어진 것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기한(cladistics)의 연구 결과에 의해서라고 지적한다. 물고기, 어류라고 하는 계통군은, 이른바 단계통군(monophyly)가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르는 집단은 동일한 선조에서 유래한 모든 자손들을 포함하는 계통군이 아니라는 말이다. 포유류와는 달리. 그러므로 조던이 평생 동안 자랑스러워했던 어류 분류학자라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운 게 그 분류군이 단계통군이 아니라더라도(어류가 아니더라도) 그 그룹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여전히 많다. 단계통군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한 업적으로 취급된다. 그러므로 어류가 진화적으로, 계통발생학적으로 의미 있는 계통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류 분류학에서의 업적이 훌륭하다면 여전히 훌륭한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를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물고기라고 하는 지점은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물고기를 버린다는 의미에 대해서는 곱씹게 된다. 그것은 기존의 개념, 비록 틀렸지만 그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다면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개념을 주장하는 대신, 비록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 안락함의 세계에서 뛰쳐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연의 사다리라는 어쩌면 당시에 보편적인 개념을 강고하게 간직한 채 그것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불합리한 주장까지도 열렬하게 주장한 것과는 분명 차별적인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의문의 여지 없이 베스트셀러다. 물론 조금 감동적이고(아주 많이는 아니고), 과학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고, 미국 우생학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고 있기도 해서 흥미롭다. 그러니까 충분히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만큼 팔릴 정도? 책이 읽히는 것도 어느 정도의 관성이 있다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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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 | 한줄평 2023-03-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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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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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여, 영원하라 | 책을 읽다 2023-03-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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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점의 시대

강성호 저
나무연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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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잊었던 기억들이 솟아났다. 그 기억들은 아련하지만 분명하다.

첫 기억은 초등학교(그땐 초등학교였지만) 시절 학기 초면 참고서를 산다고 차를 타고 나갔던 면사무소 소재지의 책방이다. 참고서만 사는 게 아쉬워 어머니를 힐끔 거렸지만, 끝내 다른 책은 내 손에 들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책은 고프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성화에도 종종 전집을 구입했으니까. 어느 해인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누군가 책을 팔았다. 동화책 한 권을 사고 책장이 헤질 때까지 읽었다.

 

제주시로 전학을 간 이후에는 광양로터리의 서점들이 내 방앗간이었다. 역시 주로는 참고서가 내 구입 목록이었지만, 가끔 다른 책을 손에 들고 나올 때는 손으로 여러 번 표지를 닦아 내렸다.

조금은 암담했던 재수 시절엔 매주 일요일 오전마다 30분을 걸어 교보문고를 가는 것이 낙이었다. 그 휘황함! 없는 것이 없어 보였다. 한두 번 멀리서 봤던 연예인 생각도 난다.

대학 시절의 서점은 그냥 생활 공간이었다. 녹두거리의 그날이 오면전야’. 앉아 책을 읽다 서가에 붙여놓은 약속 메모를 보고 술 마시러 가고. 대학 시절 그 서점이 없었으면 어찌 지냈을까 싶기도 하다.

한참 세월이 흘러 사당역에 있던 반디앤루니스도 내 추억의 장소다. 병원과 학교를 왔다갔다하던 시절 사당역을 거쳐야 했다. 그럴 때면 늘 들렸던 곳. 한 권의 책을 사고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에 오르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구비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에 대한 상으로 몇 권을 더 사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면서부터는 그곳에선 들춰보면 책만 고른 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곤 했다. 미안함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이러고 보니 내가 살아온 길이 서점으로도 줄줄이 엮인다(떠오른 것 중 적지 않은 것도 많다). 어쩔 수 없다. 책의 인간은.

 


 

 

강성호의 서점의 시대를 읽었다. 알게 된 것도 많지만, 나의 서점 편력을 회상할 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독립 서점이 많이 생겼다. 나는 독립 서점들의 탄생이나 연명에 크게 기여하지 못해 왔지만, 많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서점을 통해 추억할 거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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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서구의 것만이 아니다 | 책을 읽다 2023-03-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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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저/김아림 역
블랙피쉬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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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과학사 책은 대개 비슷한 순서를 따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고대 그리스, 이집트 등에서 시작해서 중세를 잠깐 거치면서, 중세 유럽의 과학에 대한 평가가 어찌 되었든 이슬람의 과학을 얘기한다. 하지만 이슬람 과학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것이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유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고, 그 다음부터는 거의 전적으로 유럽의 과학혁명에 대해서 소개한다.

 

여기에 아시아의 과학은 명나라 시기의 정화의 원정쯤이 들어가면서 잠깐 소개하지만, 의도는 왜 중국의 과학이 몰락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1800년대 말부터는 일본의 과학(주로는 물리학 쪽)이 들어가거나 그렇지 않거나 한다. 그런 과학사 책에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과학이 들어설 여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과학사에 유럽을 제외한 지역은 잠깐 잠깐의 예외적인 시기가 아닌 이상 별로 기여한 바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1543년에 나온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유럽의 과학혁명을 촉발시킨 혁명적인 저작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고, 무엇을 기반으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무엇에 반대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하지만). 제임스 포스켓은 코페르니쿠스가 오래된 이슬람 전통을 기반으로 연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11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델의 모순을 지적한 이집트의 이븐 알하이삼, 15세기 사마르칸트에서 활약한 알리 쿠시지는 이미 지구가 행성 궤도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가정하고 모형화한 바가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들의 연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단독으로 과학혁명을 촉발시킨 외로운 천재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세계적 규모의 문화 교류에 힘입은 업적을 남겼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뉴턴도 마찬가지였으며, 린네도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혁명적인 업적을 남긴 것이 아니라 유럽과 유럽을 넘어서 타 지역의 연구 성과들을 받아들여 그런 성과를 남긴 것이었다.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과학사를 독특하게 쓰고 있다. 한 가지는 과학사의 감추어진 부분을 들춰내고 있는 것인데, 앞서 얘기한 대로 과학의 활동이 그렇게 편협하게 한 지역만을 중심으로 펼쳐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과학사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전통의 과학만이 아니라 중남미(잉카와 아즈텍 등), 아시아(인도와 중국, 일본 등), 중동(이슬람 문화권), 아프리카의 과학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과거 한때 놀라운 수준에 올랐었다는, 이른바 황금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성과가 유럽의 과학과 교류하면서 과학적 성과를 이루는데 이바지했으며, 그런 과학의 전통이 한때의 전성시대를 거치고 사그라든 게 아니라 면면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두 번째는 과학의 역사를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과 함께 살피고 있는 것이다. 책의 구성 자체가 그러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제임스 포스켓은 15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 16, 17세기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무역과 종교 네트워크, 18세기 유럽의 제국주의화와 더불어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노예무역의 시대, 19세기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민족주의의 발흥과 산업 전쟁의 시기, 그리고 20세기의 이데올로기 갈등과 반식민지 민족주의, 공산주의 혁명 등 네 차례의 세계사적 변화가 과학과 과학자들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과 과학자들은 세계사적 흐름과 무관하기 고고하게 과학의 진리를 탐구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가 연결되면 될수록 세계사적 흐름에 강렬하게 반응하면서 과학 활동을 했다. 그런 경향성은 유럽의 과학자도 그랬지만, 다른 대륙의 과학자들은 더욱더 절실했다.

 

   
 

 

제임스 포스켓은 현대의 과학을, 과학사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과학사만을 따라가서는 곤란하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학사는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되어 꽃을 피운 과학이 아니라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면서, 혹은 반목하면서 발달할 과학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의 전개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한번 읽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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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고립된 천재가 아니었다 | 책을 읽으며 2023-03-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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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뉴턴이 수줍음 많고, 과묵한 연구자라는 인상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조폐국의 책임자로 오래 일하면서 위폐 단속에 열을 올렸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런 인상은 조금 가실지 모르겠다. 그런데 과학자로서 뉴턴은 어떻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떨어지는 사과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 말고, ’거인의 어깨와 같은 감동적이지만(물론 실상을 알고 보면 그런 감동도 사라지긴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 말고.

 

서양 유럽 위주의 과학사를 탈피하여 잊힌 과학의 반쪽 역사를 복원한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에서는 뉴턴의 과학 활동이 네트워크적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런 과학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증거로 여러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다음은 요약이다.

 

“1687년 출간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흔히 계몽주의의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내러티브에서 뉴턴은 보통 이성적인 원리를 적용해 과학 활동을 벌이는 고립된 천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프린키피아를 읽다 보면 명백히 알 수 있듯 이런 묘사는 부정확하다. ... 뉴턴이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것... 그 이유는 그가 고립되어서가 아니라 외부와 무척 잘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제국과 노예제, 전쟁을 포함한 더 넓은 외부 세계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주요 과학적 돌파구를 만들 수 있었다. 만유인력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뉴턴은 노예선을 타고 탐사하는 프랑스 천문학자들과 중국에서 동인도회사 간부들이 수집한 데이터에 의존했다.” (177)

 

 

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저/김아림 역
블랙피쉬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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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명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 책을 읽다 2023-03-2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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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바츨라프 스밀 저/강주헌 역
김영사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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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에서도 그랬는데, 바츨라프 스밀의 책은 현란하단 생각이 든다. 단지 그가 언급하는 숫자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사고의 엄밀성이 뻗어 나오고, 뻗어가는, 그 가지들은 저절로 그의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물론 숫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모든 사고의 근거는 숫자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그의 숫자는 통계 속에 등장하는 그 숫자 그대로이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계산된 숫자이기도 하고, 엄정하게 추론에 의해 추산된 숫자이기도 하다. 사실은 그의 숫자 역시 선택된 숫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가능성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것이다), 그런 숫자에서 계산되어 나오고, 다시 추산된 숫자들은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철저히, 적절히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객관적이라 부를 수도 있고, 주관적이라 부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객관적인 것인지, 주관적인 것인지가 아니다. 주관적이라면 편협한 것이라 여기고, 객관적이란 것이라면 그의 생각이 아니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과거에 대한 인식과 그에 근거한 현재에 대한 판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그 객관성과 주관성이 아슬아슬하게 엮여 있거나,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에 놓여 있거나, 혹은 그 둘을 넘어선 지점에 있다. 우리는 어쩌면 그런 현란함에 현혹되는지 모르지만, 그의 근거에 설득되는 경향이 있다.

 


 

 

바츨라프 스밀이 이 책을 쓰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에너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쓰고 있다. 이는 (그의 개념이 거의 그렇듯) 물리학적인 의미이기도 하고, 산업적인 의미이기도 하며, 또한 식품영양학적이기도 하다. 그 다양한 분야에서의 의미를 하나로 통합하고, 앞으로 그 개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음으로는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존과 삶에 대해 쓰고 있다. 무엇을 먹어 왔는지, 그 먹을 것을 어떻게 마련해왔는지, 그것을 에너지의 측면에서 쓴다. 그리고 현대 문명의 네 기둥에 대해 쓴다. 어쩔 수 없이 이 부분이 나중에 기억하고 인용하기 좋은 부분이기도 한데, 그 현대 문명을 뒷받침하는, 아니 결정적으로 유지시키는 4개의 물질은 바로 콘크리트, 강철, 플라스틱, 암모니아. 콘크리트, 강철, 플라스틱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암모니아에서는 고개를 가웃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다시 기억해보자. 앞에서 무엇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그는 식량 생산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대의 8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그 능력이 기저에는 수소와 질소가 1:3으로 결합되어 있는 암모니아가 있다. 물론 지금도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발명해내지 못했다면 지금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밀은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 전자 문서‘? 물론 대단한 것이지만 우리의 현대는 이런 것에 기본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이야기한다. 앞의 현대 문명의 네 기둥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게 바로 화석 연료이며, 이것은 앞으로도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는 좀 딴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한다. 세계화에 관해서. 세계화가 네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마치 세계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것은 다음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한 밑밥 같은 것이다. 세계화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앞으로도 어떨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은 그의 불가지론이라는 지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그리고 위험에 대해, 환경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해 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뻔한디 뻔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댄 강대국과 강대국의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아냥 거리고 있으면서, 그런 상황이 환경, 즉 지구온난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비관주의자와 기술만능주의자 모두를 배격하고 있다. 비관주의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지구가 금방 말하지는 않을 것이며, 기술만능주의자들이 이야기하듯 인간이 가진 기술로 금세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해결해 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고 선언을 하더라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그것 하러 모이면서 쓴 이산화탄소가 더 문제라며 역시 조롱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단 얘기. 그럼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들고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스밀은 앞에서부터 종종 해오던 이야기를 다시 한다. 바로 지금 수준으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 소비 수준을 줄이고, 지금의 기술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것.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읽을 때는 그의 현란함에 빠져 모두 동의하는 것 같았지만,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의 진단과 해결책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다. 그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진짜 절체절명의 지구 위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며, 어떤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는 적어도 숫자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면서 비관적인 전망을 잔뜩 늘어놓으며 협박하거나, 근거 없이 무책임하게 희망 사항만 읊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들끼리야 대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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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 한줄평 2023-03-2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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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정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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