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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사람들 이야기 | 책을 읽다 2023-08-3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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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사단 약국

김현주 저
도서출판도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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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한 작품인 <항생제 사용법>이란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전혀 기대치 않게 좋은 소설집을 읽었다.

 


 

 

아홉 편의 작품이 마치 연작처럼 읽힌다. 모두 삶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인물들이고, 또 그런 삶에서도 위기를 맞고 있다. 거의 모든 인물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죽거나, 혹은 그들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보호자 없는 삶의 신산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버티어오며, 일구어놓은 삶의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자꾸 뒤돌아본다. 현재에서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이동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그러다 다시 과거의 다른 시점으로 이동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 가족, 그리고 누군가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꾸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은 분명 퇴행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해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내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나를 이해시키고 싶은 걸. 그래서 꼭 그런 삶을 살지 않았지만 공감이 간다. 누구에게나, 그러니까 나에게도 나름의 아픈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다른 이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설이 꼼꼼하다. 허물어져가는 거리의 모습, 철길 건널목 양쪽의 모습, 캄보디아 톤레삽 호수의 풍경과 거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같은 배경뿐만 아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묘사가 꼼꼼하다. 그래서 더욱 몰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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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우리가 우리가 되기까지 | 책을 읽다 2023-08-3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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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류의 진화

이상희 저
동아시아 | 202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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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 역사를 지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35억 년이 넘는 지구상에서의 생명의 역사와 비교하자면, 길게 잡아야 수백 만년, 짧게 잡으면 십수 만 년밖에 되지 않는 인류 진화의 역사는 찰나의 역사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바로 우리의 역사, 인류 진화 역사에 정말 관심이 많다. 관심이 많다는 얘기는 많은 것이 밝혀졌다는 얘기가 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고, 또 논란도 많다. 논란이 많다는 것 자체가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의 이상희 교수가 인류의 기원에 이어 인류의 진화에 관한 책을 냈다. 사실 인류의 기원역시 인류의 진화에 관한 내용이니 아주 관련이 있는 책이고, 중복되는 내용도 없을 수 없다. 차이점을 찾으라면 인류의 기원이 흥미로운 테마(이를테면 원시인은 식인종이었을까? 백설공주의 유전자라는 게 있을까? 미토콘드리아 시계의 원리가 흔들린다 등)를 잡고 그것에 대해 이러저런 얘기를 해나가는 방식이라면, 인류의 진화는 그보다는 좀더 정통적으로(?) 인류의 진화와 관련한 여러 내용들을 화석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얘기하자면 인류의 기원이 좀 더 읽는 재미가 있다. 반면 인류의 진화를 통해서는 이 분야의 연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져 왔고, 또 어떤 방향으로 향해가는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고인류 화석의 연대를 판단하는 문제라든가, 화석종들을 동일한 종으로 판단한 것인지에 관한 문제, 어떤 증거를 고인류의 증거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문제, 데니소바인과 같은, 온전한 화석이 아닌 DNA 증거로 밝혀진 존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문제 등을,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지만, 그대로 꽤 상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15장의 아시아 기원론(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가 인류의 기원이 되는 장소라고 여겼다고 한다)에서부터는 동아시아, 한반도의 고인류 화석, 내지는 연구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다소는(아니, 좀 심각한가?) 미심쩍은 북한의 연구 결과와 남쪽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육지였을 서해안에서 새로운 고인류의 증거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민족이라는 신화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철퇴를 내리고 있다. 아주 과학적인 계산법으로 말이다. 이는 인류의 기원에서 얘기했던 ”70억 인류는 정말 한 가족일까?“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지는 인류가 왜 서로를 반복해서는 안 되는지에 관한 고인류학의 교훈이기도 하다.

 

인류 진화 얘기는 늘 흥미로우면서 혼란스럽다. 화석종의 학명부터가 매우 혼란스러우며(내가 그런 지경이라면...), 책마다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통일된 견해가 부족해 보이며, 여러 주장이 나름의 증거를 가지고, 또 나름의 반대 증거를 무시하며 내세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분야와는 또 달리, ‘최신이라는 게 정말 최신인 경우가 많다(이를테면 2021년의 논문에 의하면, 심지어 2023년에 발표된 바에 의하면). 그만큼 역동적인 분야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역사를, 우리 존재의 뿌리를 찾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 p.182. '호주의 학자 앨프리드 월리스' -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 원리를 발견한 월리스는 영국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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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왜 유명해졌나? | 책을 읽다 2023-08-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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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인슈타인의 전쟁

매튜 스탠리 저/김영서 역
브론스테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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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세계적 과학 스타였다. 그가 일본으로 초청되어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식민지 조선 땅에서까지 알려져 그를 모셔오고자 대표단이 급파되었다는 얘기를 민태기의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가 생생하게 전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의 동쪽 끝(그들이 보기에)에서도 그 난리였는데, 유럽에서는, 미국에서는 어땠을까?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물론 그의 상대성이론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매력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해하기 힘들다는 과학이론으로 단지 뛰어난 과학자, 유명한 과학자를 넘어서는 대중적 아이콘이 되었다는 것은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은 1905년 스위스 특허국 소속 직원이었을 때라는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해에 상대성이론 말고도 광전효과(이것을 노벨상을 받는다),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1905년은 기적의 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바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특허국 소속 직원이 논문 하나로 대번에 유명해질 이유는 없었다. 그것도 그 이론의 실제적인 의미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도 드문 판에. 다만 막스 플라크와 같은 독일 과학의 지도급 인사가 알아봤고, 그 덕에 아인슈타인은 독일 과학계 내에서 조금 유명해지며 베를린에 입성할 수가 있었다. 그것도 몇 년 후에.

 

이후로 아인슈타인은 아직 특수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자신의 이론을 일반적인 이론으로 발전시키고자 갖은 애를 쓴다. 1916년에 이르러서야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때 이르러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것이 예측된다. 매튜 스탠리는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이 얼마나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또한 선취권 다툼까지 있었다는 걸(예를 들어 수학자 힐베르트와)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시기는 바로 1차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였다. 그러니 그의 이론이 독일 밖으로 알려지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독일 내에서도 그의 정치적 입장 등으로 대대적인 호응이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영국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19년 개기일식이 예상되자 브라질과 적도 바로 아프리카의 프린시케섬으로 팀을 둘로 나누어(자신은 프린시페섬으로 갔다) 사진을 통해 중력에 의한 빛의 휘어짐 현상을 관측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선언했다. 바로 그 사건으로 전 세계의 언론이 뉴턴을 넘어서는 천재, 새로운 세계관을 선포한 선지자로서 아인슈타인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아인슈타인은 스타로 떠올랐다. 바로 에딩턴의 관측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튜 스탠리는 바로 이 이야기, 즉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 이후 일반상대성이론을 생각해내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과정을 다룬다. 이 이야기에서 스탠리는 다른 책에서는 달리 아서 에딩턴을 아인슈타인과 거의 동등한 주연급으로 다루고 있다. 독일의 아인슈타인과 영국의 에딩턴을 서로 교차시켜가며 그들의 고난과 활약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승리가 바로 둘의 공동 업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그런 이론을 발전시켜나가고, 또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론이 예측한 것을 관측해냈다는, 시기적 문제만이 아니다. 바로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이 전쟁에서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스탠리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전체주의 쪽에 서서 성명을 발표한 93인의 명단에 포함되기를 거부했고, 끝까지 전쟁에 반대했다(물론 그 파급력은 아직 별로이긴 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전쟁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에딩턴의 상황이었다. 에딩턴은 퀘이커교도였다. 퀘이커교도는 전쟁을 반대한다. 따라서 많은 신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해서 수모를 당하거나 심지어 감옥에 갔다. 에딩턴은 뛰어난 천문학자로, 전쟁 초반 왕립천문대의 수장이었으므로 징집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청문회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국가에 필요한 과학 자원으로 인정되었고, 참전하지 않고 자신의 과학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역시 평화주의자였고, 국제주의자였다. 전쟁 시기 과학계는 분열되었다. 영국의 과학자는 독일의 과학자를, 독일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과학자를 경원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연합국은 과학계를 재건하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과학자들 아예 배제해버리기도 했다. 에딩턴은 결연히 반대했다. 에딩턴의 개기일식 원정은 그의 평화주의적, 국제주의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만나보지도 못했고, 단 한 차례 개인적으로 연락해보지도 않았던 영국의 천문학자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드 지터의 편지를 받고 상대성이론에 대해 알게 된다. 그 이론을 연구한 끝에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증명이 국제과학 네트워크 복원에 중요하다는 것을 믿었다. 그 신념이 전쟁이 끝나자마다 모두가 경원시하던 적국의 과학자가 세운 이론을 증명하는 원정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에딩턴의 관측과 아인슈타인의 유명세는 세계대전 이후 국제 과학계에 독일의 과학자가 복귀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이클 스트레븐스의 지식 기계에서는 근대 과학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에딩턴의 개기일식 관측이 여러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음에도 그의 그런 신념이 아인슈타인의 예측치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스탠리는 여러 가능성이 있음에도 아인슈타인의 예측치만을 발표하는, 에딩턴이 주관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데이터가 스스로 말한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것은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과학자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것을 주관적으로 어떤 것을 취사선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에딩턴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은 그 이후의 반복된 관측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스탠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고, 그의 이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또 어떻게 유명해지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전 단순하게 과학자의 과학에 관한 일만은 아니었음도 굉장히 이성적이지만, 또한 굉장히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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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학, 뜨겁고 아픈 역사 | 책을 읽다 2023-08-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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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민태기 저
위즈덤하우스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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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가을, 아인슈타인은 일본을 방문한다. 아직 노벨상을 타기 전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수상 소식을 받았다. 일본은 세계적 과학 스타에 열광했다. 도쿄는 물론, 교토, 후쿠오카, 센다이, 심지어 삿포로까지 강연회가 이어졌고, 비싼 입장권은 모조리 팔려나갔다.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식민지 조선에서는 조선교육협회의 이름으로 몇 명의 일행이 일본으로 향했다. 조선교육협회는 민립대학 설립을 준비 중이었고, 아인슈타인을 조선으로 초청해 그 동력을 얻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아인슈타인 붐이 일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일정을 세세하게 보도하기도 했고,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을 소개하는 기사가 시리즈로 연재되기도 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조선 땅을 밟지 못했지만,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나아가 과학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듬해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전도유망한 학생들이 조선에 들어와 상대성이론 순회 강연회를 연 것이다. 역시 성황이었다. 과학으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이들이 있었다. 식민지 조선은 무기력하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에 아인슈타인을 맨 처음 소개한 인물은 황진남이다. 그는 함흥에서 태어나 하와이를 거쳐 캘리포니아대학을 다니다 3.1 운동 이후 대학을 그문두고, 안창호를 따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베를린대학과 파리의 소르본대학을 다니고 귀국한 후에는 여운형과 함께 좌우가 모두 참여하는 건국을 추진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으로 갔고, 1970년 오키나와에서 쓸쓸히 사망했다.

 

최규남이라는 인물이 있다. 황진남이 아인슈타인을 소개하고 있던 그해에 연희전문 수물과(수학과+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야구선수로도 유명했던 그는, 졸업후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으로 유학간다. 그리고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리학 박사다. 해방 이후 5대 서울대총장을 지냈고, 문교부 장관도 지냈다.

 

최윤식, 김영식, 한위건, 이춘호, 이태규, 도상록, 우장춘, 리승기, 이여성, ... 이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과학의 부흥을 꿈꾸던 이들이다. 판타 레이에서 유체역학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였던 민태기가 이번에는 놀랍게도 우리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그속에서 고군분투했던 과학을. 비록 제목은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이라고 해서 아인슈타인을 부각시켰지만, 아인슈타인은 식민지 조선에 과학의 열정을 타오르게 했던 계기였을 뿐,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과학의 꿈을 조선에 펼치고자 했던 선구적인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민태기가 그리고 있는 이 역사는 단순한 과학사가 아니다. 모두 그 시대를 살아간 과학자였다. 시대의 좌절, 시대의 혼란이 고스란히 그들의 삶에 엉겨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서재필의 귀국에서부터 시작하고, 친일의 역사를 다루고, 변절의 역사,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한글 운동, 해방 이후 좌우 대립 등등이 모두 등장한다. 그 시대를 살다간 과학자들의 삶이 과학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럼에도 과학을 모토로 살다간 이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시대의 우리 과학의 역사를 찬란하다, 위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나라의, 한 사회의 과학 수준이라는 것은 어떤 한 명의 위대한 과학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과학 수준은 정말 별로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몇 명의 뛰어난 과학자, 과학에 관심을 가졌던 선각자만으로 우리의 과학 수준이 놀라웠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한 그 한 움큼밖에 되지 않았던 우리의 과학자들도 여러 갈래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과 친일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고, 해방 이후에는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과학이 그런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안된다. 누구나, 특히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이들은 모두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상처로 얼룩졌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황진남의 생애가 그걸 아프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런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과학이 있다. 어려운 시기에, 온갖 갈등에도 놓지 않았던 과학의 꿈이 100년이 세월이 지나 지금 우리의 과학이 되었다.

 

정말 모르던 얘기들이 많다. 인물들부터 낯선 이름에 헉헉거렸다. 조금 부끄럽다 생각했고, 그래서 정말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인물들의 관계는 더더욱 놀라웠다. 이것들을 어떻게 다 알아냈을까 싶을 정도다. 많은 자료가 뒷받침되었겠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은 도전 정신과 함께, 역사와 과학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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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을 배경으로 삼은 일본 근대소설과 글 | 책을 읽다 2023-08-2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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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간단한 죽음

기쿠치 간 등저/박현석 역
현인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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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스페인독감이 등장하는 일본 근대 소설, 혹은 글을 모았다.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스페인독감은 아시아 동쪽 끝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크게 번졌었다(일제 치하의 한반도에서는 무오년 독감이라 불렸다). 그러니 당시 소설이나 여타 글에 이 질병이 소재, 혹은 배경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봐도 알 수 있듯, 당시에는 스페인독감, 또는 스페니쉬 인플루엔자라는 명칭은 잘 쓰지 않았고, 대개는 유행성 감모(感冒)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아직은 감기와 독감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고, 전염의 경로도 대충만 파악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 근대 소설에서 그린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과 겹친다. 실제로 기쿠친 간의 <마스크>,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도상>(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에선 <길 위에서>이란 제목으로)이란 작품은 두 책에 모두 실려 있다. 내가 읽기로는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이 먼저지만, 우리나라 출간 시점으로 보면 간단한 죽음1년 이상 먼저다. 그리고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은 대학 번역 강의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때 번역의 수준은 조금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간단한 죽음이 스페인독감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면,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은 스페인독감뿐 아니라 결핵, 한센병, 매독 등 다른 감염질환도 소재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처럼 많은 작가들이 스페인독감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작품을 쓴 것을 보면 당시 일본 사회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소설만이 아니라 편지라든가 일기 같은 글도 포함하고 있는데, 작가들도 스페인독감으로 곤욕을 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금은 아쉬운 점은, 스페인독감과 관련해서 그 증상이라든가, 경과 등이 자세히 묘사된 작품이 별로 없고, 또한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도 조금은 피상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대체로는 개별적인 질병 치레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예외라면 기쿠친 간의 <마스크> 정도가 아닐까 싶고, 역시 기쿠치 간의 <신처럼 나약한>에서 스페인독감에 걸린 환자에 대한 묘사가 그나마 사실적이다.

 

“‘아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유키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평소 발그레하던 가와노의 얼굴에는, 임종을 맞이한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검푸른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입술은 보랏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84)

 

여러 소설과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골라보라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편지에 들어있는 한 문장이다.

가슴 속 삭풍 기침이 되었구나.“ (105)

 

또 하나는 구니키다 고쿠시의 <감기 한 다발>에서 스페인독감(스페니쉬 인플루엔자)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것을 쓴 부분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같은 저승사자라도 콜레라나 페스트와는 달리 인플루엔자라고 하면 왠지 그 손은 가늘고 휠 듯하며, 얇은 비단을 통해서 보는 보석의 아련한 빛조차 느껴지게 하지 않는가?“ (260)

 

당시 일본인들이 다 그렇게 여기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지금의 생각과도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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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읽는 역사 | 책을 읽다 2023-08-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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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한순구 저
삼성글로벌리서치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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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학(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은 꽤 흥미있고, 의미있다. 역사 속의 승리자들이 어떻게 승리를 거머쥐었는지는 통쾌하지만, 그 승리에서 뭔가 교훈을 얻어내기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또한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기보다는 단지 우러러보아야 할 대상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실패자, 그것도 성공에 가까이 다가갔던 실패자들의 이야기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하면 그 실패를 막을 수 있고, 승리로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순구 교수의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도 바로 그런 역사 속 실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게 저자의 전공이다. 바로 경제학 교수다. 경제학자가 역사 이야기를 쓰는 게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모든 학문에는 역사가 있으니까. 경제학 역시도 인간의 삶에 관한 것이니까. 그 가운데서 경제적으로실패한 이에 대한 얘기 역시 흥미로울 것이다. 그런데 그가 쓴 역사 이야기의 소재를 보면 일단 갸우뚱거려진다. 전혀 경제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항우라든가, 한신, 당 태종, 삼국통일의 주인공 김춘추와 김유신 등등.

 


 

 

그런데 한순구 교수의 전공을 보면 이해가 간다. 바로 게임이론이다. 스스로 경제학을 연구하는 게임이론가라고 하고 있고,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역사 속 인물,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 혹은 성공은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고 보고 있으며, 그들의 선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땠으면 성공에 이르거나, 혹은 실패를 최대한 막을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이라고 해서 무시무시한 것만은 아니다. ‘비협조적 게임’, ‘백워드인덕션’, ‘섀플리 밸류’, ‘홀드업문제, ‘레퓨테이션게임’, ‘밴드왜건 효과’, ‘세컨드 무버’, ‘혼합전략’, ‘대리인 문제’, ‘데드라인등등의 용어를 보면 낯설어보이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것 같다(결국 대단한 결과로 이어졌지만). 하지만 비협조적 게임을 내가 임명한 부하들이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가?”, 백워드인덕션을 내가 더 많은 일을 하고, 공동 많이 세웠는데, 승진은 다른 사람이 하는가?”, 레퓨테이션 게임을 작은 실수, 작은 허점이 왜 거대한 파국으로 이어지는가?”, 밴드왜건 효과를 사람들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거의 결과가 나올 때쯤 한쪽으로 쏠리는 이유는?”과 같은 질문으로 바꾸는 금세 이해가 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말이다.

 

몇 가지 인상 깊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교수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저자인 한순구 교수가 교수라서 그런 것일 게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서나 여기의 게임이론이 적용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익숙한 곳에서 예를 찾은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 역사의 예를 적지 않게 들고 있다는 점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몰락,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혼노지의 변’),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투(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성 전투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일본 역사에서 굵직한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지만, 특히나 일본 역사에 더 어두운 우리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이례적이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이 독자의 여러 눈높이를 고려하고 있고, 또 일본 역사에서의 의미와 함께 현대에 주는 교훈까지 그렇게 이질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참에 일본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한순구 교수가 조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자신이라면, 게임이론에서 가르치는 것이라면... 하는 전제를 두고 실패한 역사 속 인물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역사 속 가정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부질 없다고 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작업이 없다면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를 적지 않게 잃어버리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단지 흥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그리고 그런 가정과 조언은 그대로 현대 사회의 문제로 이어진다. 물론 저자의 조언이 100% 정답일 수도 없고, 더 복잡해진 사회에서 그게 실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 특히 게임이론이 역사와 현대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이 짚고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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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불편함과 과거 찾기 | 책을 읽다 2023-08-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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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우스터리츠

W. G. 제발트 저/안미현 역
을유문화사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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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불편한 소설이다. 내용과 형식이 다 그렇다. 그런데 소설 읽기의 불편함은 다분히 소설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불편해야 한다. 그 불편함 속에서, 혹은 불편함을 뚫고서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불편함을 견뎌냈을 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화자가 있다. 어떤 인물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우스터리츠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화자에게 전달한다. 화자는 이야기에 거의 개입하지도 않는다. 화자는 거의 아우스터리츠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문다. 그래서 소설에서 반복되는 문구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이다.

 

아우스터리츠는 1939년 가을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던 시기, 체코 프라하에서 네 살의 나이로 영국 구조 단체의 유대 어린이 호송 작전으로 영국으로 보내졌다. 웨일스 지방의 목사 집안에서 자란 그는 자신을 데이비드 일라이어스라고 알고 지내다, 열 네 살 학교 교장 선생님에 의해 자신의 본명을 알게 된다. 집안에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양부모가 돌아가시고, 성인이 된 후 자신의 과거를 찾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가 화자에게 간헐적으로 전달하는, 하지만 장황한 이야기다.

 


 

 

네 살 적 일어난 일을 기억할 수 있는가? 나는 뭔가 기억나는 것 같지만, 그 기억을 믿을 순 없다. 그게 과연 그때의 일인지 분명하지도 않으며, 정말 있었던 일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아우스터리츠는 어느 순간 그 장면을 기억해낸다. 리버풀의 어느 대합실에서 가슴에 배낭을 안고 있는 한 소년을 보고 난 이후다.

 

내가 회상할 수 있는 한 처음으로 그 순간에 나 자신을, 반 세기도 더 전에 영국에 도착해서 내가 이 대합실에 분명히 와 본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어요. 이것을 통해 내가 빠진 상황이란 많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기술할 수 없는, 내 속에서 느끼는 일종의 강탈이고, 수치와 염려, 혹은 당시 그 낯선 두 사람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다가왔기 때문에 말문이 막혔던 것처럼 그것에 대한 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어요.”

 

아우스터리츠는 륙색을 매고 다니며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결국 프라하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낸다. 그리고 희미하게 드러나는 비극을 확인한다. 예상했던 바다. 그 당시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처했던 보통의 삶이 그러했던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던 아버지는 프랑스로 갔고, 배우였던 어머니는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기차에 태워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거와 그 과거에 대한 기억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를 폭로한다. 거의 그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이제 이 소설의 불편함을 얘기할 때다.

우선은 형식의 불편함이다. 문단이 없다. 320쪽의 소설이 단 서너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서 잠깐 숨을 돌려야 할지 난감하다. 문장들도 길다. 어떤 문장은 마침표 없이 여러 페이지로 이어진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기억, 아우스터리츠의 기억을 표상하는 것일까? 그 긴 문장들, 단락지어지지 않는 글을 읽으며 자꾸 앞뒤를 헤매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를 곱씹을 수밖에 없다.

 

아우스터리츠는 공간을 헤맨다. 건축과 거리, 장치들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담긴 상징성에 대해 쏟아놓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데려다 놓고 이야기를 하다,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여정에 낯섦을 강요하는 듯하다. 그렇게 생경한 공간에서, 생경한 이미지를 가지고 다시 그 얘기를 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공간을 이용하고, 기억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했다.

 

제발트는 독일 출신이면서 영국에서 살았고, 독일 문학을 가르치며,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기록을 보면 영문 시집도 냈다). 그래서 자신의 독일어가 어떤 독일인도 쓰지 않는 언어라고 했다고 한다.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일 게다. 그런 독일어로 쓰인 소설을 읽는 독일인은 어떤 낯섦 속에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제발트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뒤로 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노벨 문학상이 주어졌을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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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은 질병을 어떻게 그리고 있나 | 책을 읽다 2023-08-2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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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

김애양 저
도서출판재남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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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인간의 삶에서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면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데 좋은 소재이기 때문에 소설에서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 아픔에 동조하거나, 혹은 악인의 경우에는 천벌이라 여기며 고소해한다. 또한 소설 속의 질병은 질병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증상에 대한 설명이 뛰어나거나, 병의 진행 과정에서 사람의 심리를 잘 묘사한 소설(이를테면,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같은 경우)의 경우가 그렇다.

 


 

 

현직 산부인과 의사이자, 수필가인 김애양의 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은 자신이 읽어 온 소설들에서 질병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모아서 소개하고 있다. 무려 39편이나 된다. 질병을 묘사한 소설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여기에는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있는 감염질환에 대한 소설이 가장 많다(운명(임레 케르케스)의 봉와직염, <베짱이>(안토 체호프)의 디프테리아, 나나(에밀 졸라)의 천연두, 페스트(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카밀로 호세 셀라)의 공수병, 유령(헨리크 입센)의 매독, 깨어진 거울(애거사 크리스티)의 풍진, 로스할데(헤리만 헤세)의 뇌막염, 마의 산(토마스 만)의 폐결핵, <우표 수집>(카렐 차페크)의 성홍열, 감정 교육(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아구창). 그만큼 항생제나 백신이 등장하기 전 인류가 감염에 취약했으면서, 감염이란 것이 돌발적인 것이고, 고통스런 진행 과정과 함께 급작스런 죽음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소설의 소재로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애양씨가 소개하는 질병 가운데는 질병인 듯, 질병 아닌 듯 한 것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바를랑 살라모프의 콜리마 이야기에 등장하는 꾀병’,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미망인들>에서 한 신사의 죽음의 원인이 되는 약물 부작용’, 루이스 피란델로가 쓴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사시’, 아이작 싱어의 적들, 어느 사랑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상 임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우리들의 시대에를 통해서 보여주는 출산의 위험성, 몰리에르의 상상병 환자에서의 건강염려증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걸 질병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이것들로 인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또 실제로 질병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무리해서 포함시킨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 밖에도 췌장암(이반 일리치의 죽음), 위암(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현병밤은 부드러워, 뇌졸중(광인) 등과 같은, 지금도 심각하게 여겨지는 질병도 있는가 하면, 각기병(게 가공선), 포피리아증(파울라), 해표상지증(<스타의 아들>), 강경증(루이 랑베르)와 같은 낯설거나, 혹은 요즘은 거의 잘 볼 수 없는 질병들도 있다. 전립성 비대증이나, 알츠하이머병, 졍맥류성 궤양(1984에 나온다는데, 나는 이것에 거의 주목하지 못했었다), 충수염, 마약중독, 간질, 선천성 대사이상 증후군, 천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녹내장 등과 같은 친숙한 질병들도 소설들은 다루고 있다.

 

읽은 속설들도 있고, 읽지 않은 소설들도 많다. 읽었더라도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다루기도 해서,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글도 있다. 다만 작품의 줄거리에 소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짤막한 게 좀 아쉽다. 여기의 글들이 잡지에 미리 실었었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독자들에게 소설을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게는 풍부한 자료로서 더 의미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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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가설은 오류투성이" (주디스 리치 해리스) - 가만한 당신(최윤필) | 책을 읽으며 2023-08-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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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가설』로 유명한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개성의 탄생』을 읽다 검색해보니, 그녀가 2018년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과정을 마쳤지만, 박사과정 진학은 거절당한 후 강직성 척추염과 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인해 주로 집에서 독립연구자로 대학교재를 집필하고, 책을 썼다. 주류학계의 관성적인 이론을 비판했기에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한국일보의 최윤필 기자가 <가만한 당신>이라는 코너에서 그녀에 대해 썼다. 

(<가만한 당신>은 2권까지 읽었는데, 이 기회로 3권까지 나온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부고는 책에 실리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하기 나름? 양육가설은 오류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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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다른 사람과 다른가? | 책을 읽다 2023-08-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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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개성의 탄생

주디스 리치 해리스 저/곽미경 역
동녘사이언스 | 200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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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양육 가설이라는 책으로 크게 주목받은 독립 연구가이다. 여기서 주목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것도 포함된다. 비판은 주로 제도권 연구자들에게서 나왔다. 사람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이 환경, 즉 양육(물론 양육은 환경보다 좁은 개념이다)이 결정적이라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었기 때문에, 기존 연구자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건강 문제 때문에 거의 집에서 연구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오히려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또한 어떤 세부 학문 분야에도 포함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기존에 공고화된 이론을 반대할 수 있는 자격과 함께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양육 가설에 이어 낸 개성의 탄생, 이란의 일란성 접착쌍생아, 랄레흐와 라단 비자니의 얘기로 시작한다. 스물 아홉 해 동안 늘 함께 했던 랄레흐와 라단은 위험스런 분리 수술을 결정했고, 결국은 수술 도중 사망했다. 해리스가 주목한 것은 그들의 비극이 아니다. 접착쌍생아, 즉 그 누구보다도 유전적으로 동일할 수 밖에 없는, 또한 환경적으로도 분리될 수 없는 둘이 성격이 매우 달랐다는 데 해리스는 주목했다. 왜 그런가? 바로 개성이란 것은 왜 생기는가?에 대한 문제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당연히 유전적인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개성의 절반(이 책에서는 45%라고 하고 있지만) 가량은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앞의 접착성 일란성쌍생아를 비롯하여 많은 일란성 쌍둥이, 이란성 쌍둥이, 형제자매는 왜 그렇게 다른가? 유전적인 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은 무엇 때문인가? 이 책은 그 나머지 반을 찾기 위한 긴 논증이다.

 

우선 해리스는 기존의 논의를 정리하고 비판한다. 범인을 찾아 나서는데, 일단 다른 사람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거나, 적어도 용의자라고 데스크에 올려진 것들을 검토한다. 그것들은 양육, 유전자-환경 상호작용, 가족 내 환경(출생 순서), 유전자-환경 상관관계 같은 것들이다. 해리스는 이 용의자들의 문제점들을 조근조근 지적한다. 사실은 원숭이 소동이라든가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 차이 등을 주장한 논문, 내지는 연구자들을 추적하여 그 주장들이 토대가 허약할 뿐만 아니라 연구 자체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이 더 흥미진진하다. 아무튼 그런 추적의 과정 등을 통해 기존의 가설들을 내친다.

 

그러고는 새로이 제시하는 것들은 바로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 바로 이 세 가지다. ‘체계라고 해서 딱딱해보이는데, 모두 타인과의 관계와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다. 관계 체계는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목표를 지닌 것으로 타인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내고 그것을 또한 다른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화 체계란, 집단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목표를 지닌 것으로 자기 집단에 속하면서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심을 갖는 것을 포함한다. 지위 체계란,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쟁을 통해 지위를 향상하고, 또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더 많이, 바로 알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이 세 가지 체례를 통해 다른 사람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사실 해리스의 주장은 그대로 따라가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이 왜 잘못 되었는지에 대한 논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주장도 다른 사람에 의해 비슷한 방식(물론 연구 과정 자체에 대한 문제점 지적은 아닐 것이지만)으로 논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을 사회에 적합하게 만드는 것으로,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성향과 자신이 속한 사회규범과 관습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려는 경향, 그리고 사회의 다른 성원들과 경쟁하려는,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앞지르려는 성향”. 이와 같은 말은, 물론 많은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서 나오는 말이지겠지만, 어쩌면 당연한 말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해리스는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앞으로 자신의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론보다는 간단하지는 않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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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