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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이 놓이는 그곳 | 책을 읽다 2023-09-2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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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이 사는 세계

헨리 페트로스키 저/정영목 역
서해문집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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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고민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고민 중 다른 사람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하느냐 할 것 같은, 또 일부의 사람은 무척 공감해줄 것 같은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책장 문제다.

 

내 사무실의 책장은 이제 포화 상태를 넘어서 과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 책과 선반 사이의 틈에 집어 넣기도 하고, 책을 이중으로 세우기도 하면서 버티는 중이다. 몇 년 전부터는 구입하는 책의 비중을 줄였음에도 이 지경이 되었다. 지인은 내 사무실의 책장을 보고는 꾸안꾸라고 했지만, 의도치도 않았고, 꾸밈의 요소도 전혀 없다. 더 문제는 책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대충 주제별로 모아 놓았고,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책들은 또 함께 두었는데도, 꼭 찾으려고만 하면 한참 걸린다. 나중에 보면 이중으로 세워놓은 책 뒤에 숨었거나, 틈에 눕혀져 있거나... 그렇다.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당연히 잘 보지 않는 책을 처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알 거다. 잘 보지 않는 책? 그런 게 어딨나? 어떻게든 처리하기 위해서 꺼내든 책을 보면 이건 언젠가 다시 볼 것 같다(사실 실제로 올 여름 그런 책이 몇 권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려놓는다. 별 수 없다. 최소한 퇴임할 때까지는 어떻게든 유지할 밖에.

 

꼼꼼함의 대명사, 헨리 페트로스키가 책장(책꽂이)에 대해 쓴 것은 놓쳤었다. 물리적 힘을 읽기 위해 책장을 펼치고서야 놓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헨리 페트로스키라는 것도, 그리고 책에 관한 책이라는 것도, 이중으로 놓친 셈이었다. 볼 것 없이 바로 읽었다.

 


 

앞에서 책에 관한 책이라고 했지만, 우리말 제목대로 책이 사는 세계’, ‘책이 놓여지는 공간에 관한 책이다. 책장이 되었든, 책꽂이가 되었든, 책궤가 되었던, 심지어 바닥이 되었든 그런 공간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에만 집중한 책이냐? 그건 또 아니다. 원제만 봐도 그렇다. “The Book on the Bookshelf”. ‘책장에 놓인 책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여전히 중심은 책이란 얘기다. 말하자면 책과 책장 얘기를 다 한다. 하기야 책장 얘기를 하면서 거기에 놓이는 책 얘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책의 모양이 변하면 당연히 책장도 그 모양과 역할이 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말이다.

 

책장에 관한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먼 옛날 처음 두루마리로 책을 만들던 시절 그 두루마리가 놓여졌던 선반이며 상장 이야기에서, 도서관이 생기기 전 도서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수도원 등에서 책을 두고 읽었던 회랑, 혹은 열람실 얘기를 하고, 책을 두는 방식에 관한 얘기, 책장의 재질과 책장을 벽에 직각으로 두느냐, 평행하게 두느냐 등의 문제, 넘쳐나는 책들을 계속 보관하기 위한 절대적 임무를 어떻게 완수하느냐의 얘기 등등. 생각해보면 모두 다 책장에 관해서 해야만 하는 얘기인데, 이렇게 읽지 않으면 책장에 관해서 도대체 책 한 권이 어떻게 나와? 이럴 수 있는 얘기들이다.

 

헨리 페트로스키는 사소한 것에 거()한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거의 목숨을 걸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으면서는 우리가 이렇게 정말 많은 것을 해결해가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유지하는 데 정말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필요했구나, 그런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내 책장을 본다. 뭔가 수를 내긴 내야 한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긴 했다. 헨리 페트로스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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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에 묶인 책 | 책을 읽으며 2023-09-2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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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랫동안 눕혀져 있었다. 애초에 두루마리 형태였을 때는 그게 당연했다(상자에 세워져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코덱스 형태를 거쳐 지금과 같은 형태의 책이 되었을 때도 한참은 서가에 눕혀져 있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다고 한다. 가장 많은 책을 보여한 수도원이라고 할 지라도(중세에는 수도원이 지식 보급과 유지에 가장 큰 역할을 했으므로) 보유한 책이 수백 권을 넘기가 힘들었으니 눕혀 놓더라도 공간의 문제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책을 보관하는 문제가 생길 정도로 책이 늘어나자 책을 서가에 세워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세워서 보관할 때 지금과는 달리 책등이 보이게끔 하는 게 아니라 지금과는 반대로, 즉 앞마구리를 보이도록 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이상해 보이지만 그렇게 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랬던 이유 중 하나는 책 표지를 만들면서 책등에 아무런 표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라든가 저자 이름을 책등에 적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책에 대한 정보는 쪽지 같은 데다 적고 책에 끼워 넣었으니 앞마구리를 보이도록 놓는 게 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편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예전에는 책에 사슬을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헨리 페트로스키의 책이 사는 세계에서 옮긴다(앞의 얘기도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책에 아직 사슬이 달려 있었는데, 사슬을 책 앞표지나 뒤표지의 세 가장자리에는 아무 데나 부착할 수 있었지만 책등에는 쉽게 또는 효과적으로 부착할 수 없어서였다. (중략) 책들이 선반에 수직으로 놓이게 됐을 때, 표지 위쪽에 부착된 사슬은 책 앞마구리나 옆면으로 흘러내리면서 책들 사이에 혹은 페이지 사이에 끼어 손상을 입혔을 것이다.” (116)

 

그러니까 지금과 같이 책등을 보이도록 책장에 세워두게 된 데에는 책이 흔해지면서 도둑질해갈 염려가 줄어들고, 책등에 책에 관한 정보를 새겨넣게 되면서라는 얘기다.

 


 

책이 사는 세계

헨리 페트로스키 저/정영목 역
서해문집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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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바인더 클립, 그리고 '작은 거시기' | 책을 읽으며 2023-09-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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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페트로스키의 물리적 힘에서는 우리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만나거나 쓰는 기구들에 대한 발명 이야기가 적지 않게 소개되고 있는데, 먼저 얘기했던 캔 따개도 그것 중 하나다. 몇 가지를 더 소개하자면, 먼저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오늘도 지하철역을 이용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이게 편리하다는 건 다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발명되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 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어떤 회사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에스컬레이터를 지금과 같이 실용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름도 escalator라고 붙인 것이 바로 오티스(OTIS)라는 것이다. 바로 엘리베이터회사인데, 오티스는 바로 엘리베이터를 지금과 같이 실용화한 장본인이다. 그러니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발명은 아니지만) 한 인물(또는 한 회사)에서 실용화된 셈이다. 그럼 발병은 누가 했을까?

 

지금은 일상이 된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미국 최초의 특허는 1859년 매사추세츠주 소거스에 살던 발명가 네이선 에임스(Nathan Ames)가 받은 회전 계단이다. 많은 발명이 그렇듯 에임스의 발명 뒤에 많은 개선이 일어나면서 다른 발명가들이 후속 특허를 얻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에임스의 발명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뉴욕 시민 제시 리노(Jesse W. Reno)가 발명해 1896년 코니아일랜드에 설치된 무한 컨베이어 또는 엘리베이터만큼은 예외였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escalator)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은 리노도 다른 발명가도 아닌 오티스엘리베이터회사다.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는 장치, 즉 엘리베이터와 비스듬하게 움직이는 장치를 구별하기 위해 그런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미국 특허청은 이 신조어를 기술적 용어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오티스사가 1900년 파리박람회에 최초의 에스컬레이터를 선보이면서 이 이름을 상표로 등록했다. (218)

 


 

 

그리고 바인더 클립이 있다. 바인더 클립이라고 하면 이름이 생소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종이 뭉치를 묶는 집게다. 이걸 누군가 발명했다고 생각했어나? 싶으면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엄연한 발명품이다.

 

이 기발한 도구는 워싱턴 DC에 거주하던 발명가 집안 출신의 10대 소년 루이스 발츨리(Louis E. Baltzley)가 발명했다. (중략) 나중에 쉽게 집고 쌓을 수 있는 포커 칩과 가루를 담는 통의 뚜껑, 게임 테이블 옆에 비치된 유리잔 홀더를 발명한 루이스는 글 쓰는 일이 주 업무였던 아버지가 원고를 순서대로 유지하도록 돕고 싶었다.

바인더 클립은 1915종이를 묶는 클립이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얻었고, 이후 100여 년 동안 그 겉모습은 발츨리의 특허 신청서 그림에서 묘사된 것에서 거의 변하지 않아 개선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243)

 

 

 

그 다음은 정말 놀랄만한 발명품(!)이다. 우리가 피자를 배달시켰을 때 항상 따라오는 것, 그럼에도 뭐라 부를지 모르는 것, 그래서 그냥 그 플라스틱 조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진짜 이름은 (영어로) 여러 가지로 불렸는데, ‘뚜껑 지지대(lid support)’, ‘피자 스태커(pizza stacker)’, ‘피자 세이버(pizza saver)’ 등등이다. 헨리 페트로스키는 이것에 가장 널리 쓰이는 이름은 작은 거시기(little thingy)’라고 하여 우리와 별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발명가 클라우디오 트로글리아(Claudio Troglia)는 피자 파이와 상자를 따로 떼어놓는 방법을 생각해내 1974피자분리기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다리가 셋 달린 미니 스툴처럼 생긴 이 장치는 피자 중앙에 꽂는 것이다. 10여 년 뒤 뉴욕 딕스힐스에 살던 카멜레 비탈레(Carmela Vitale)가 플라스틱 삼발이로 받은 특허는 트로글리아의 발명을 전혀 언급하지 않지만, 사실상 동일한 문제를 해결했다. (268)

 


 

 

이 간단한 플라스틱 조각이 우리에게 선사한 멀쩡한 피자를 생각하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적 힘

헨리 페트로스키 저/이충호 역
서해문집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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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힘', 그 모든 것 | 책을 읽다 2023-09-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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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물리적 힘

헨리 페트로스키 저/이충호 역
서해문집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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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페트로스키의 책으로 맨 처음 접한 것은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였다. 그저 여러 잡다한 사물에 대한 역사와 이유를 다루는 책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포크에 대해서만 다루는 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책은 거의 포크에 대해서만 다루었다. 포크 하나로 책 하나를 만들어 내다니... 대단했고, 또 좀 기이하단 생각도 했다. 더군다나 과학기술의 실패를 분석하고 있어 더욱 그랬다. 다음으로 읽은 것은 연필이었다. 그게 내가 이미 읽은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의 저자의 책이란 걸 모르고 읽었다. 연필. 이 단순한 물체에 대해 600쪽에 달하게 써냈다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는데, 보니 그게 헨리 페트로스키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의 주제, 혹은 소재에서 그 가장 밑부분까지, 그리고 가장 먼 데까지 나아가서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능력. 그게 헨리 페트로스키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물리적 힘을 만났다. 이 책은 이전의 포크나 연필처럼(그리고 내가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간 책이 사는 세계에서의 책장까지도) 어떤 특정한 사물에 집중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대신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온갖 에 대해, 어쩌면 자질구레한, 또 정확하게는 반드시 필요한 지식을 소개하고 있다. 공학자의 관점에서.

 


 

 

공학자가 생각하는 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중력과 같이 우리가 지구상에서는, 아니 우주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조건의 힘이기도 하고, 건물을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고, 음료수 뚜껑을 딸 때 필요한 힘이기도 하고,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돌을 높은 데까지 올릴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공학자들은 그런 일에 들어가는 힘을 계산하고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계산하고, 음료수의 병뚜껑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고, 달 착륙선의 모양과 무게는 어때야 하는 지를 결정한다.

 

나아가 힘은 전화기에서도 필요하고(전자력), 대중교통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자판을 눌러야 할 때 필요한 힘도 있다. 어느 정도의 힘을 써야 숟가락을 들고 내 입 속으로 적절히 음식을 옮길 수 있는지 우리는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도 다 계산이 되는 힘의 크기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심지어 피자를 배달 할 때 흐물흐물해진 위쪽 커버가 피자와 닿지 않도록 만드는 조그만 삼발이 플라스틱을 고안할 때도 힘에 대한 지식은 필요하다. 힘이 작용하지 않는 데는 없다. 그걸 느낄 수 있든, 그렇지 않든.

 

헨리 페트로스키는 자신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비롯하여 어린이들의 놀이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평상시에 접하는 모든 것들에서 힘을 찾아내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 도시를 상징하는 고층건물에서도 힘이 어떤 식으로 필요하고, 어떤 위험성이 있으며, 공학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확인하고 제어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그래도 공학 아닌가?), 그런 부분만 적절하게 잘 참으면 정말 놀랄 만큼 재미있고, 신기한 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갖가지 힘들을 다 느낄수 있다.

 

그런데 저자 소개에서 이게 그의 마지막 책이라는 글을 읽고 찾아보니 올해 6월에 죽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그의 관심사에 대한 강박 같은 철두철미함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니 아쉽다. 대신 못 읽은 책(책이 사는 세계)이 있으니 그것부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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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캔 따는 방식은 누가 발명? | 책을 읽으며 2023-09-2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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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보편적인 캔 뚜껑을 따는 방식은 탑-(pop-top) 방식이라고 한다. 고리 모양으로 생긴 것을 뜯어내듯이 당겨 따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지레 원리를 이용한 날카로운 깡통 따개가 따로 있어 그걸 돌려가며 땄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잘 할 수도 없었고, 가끔 다치기도 했다. 그럼 탑-톱 캔을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헨리 페트로스키의 물리적 힘에서 만난다.

 

어멀 프레이즈(Ermal Fraze)는 오하이오주 테이턴에서 기계 공구 작업을 운영하는 공학자였다. 1959년 어느 날, 소풍에 나선 프레이즈는 목이 말라 음료수를 찾았지만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아무도 깡통 따개를 가져오지 않아서였다. 편리한 지레 도가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프레이즈는 갈증을 달래지 못한 것에 짜증만 내는 대신에 아예 따개가 달린 캔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리를 잡아 뜯어 여는 캔을 발명하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알루미늄 팝통(pop-top) 캔의 전신이다. (109)

 

1959년이면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데, 우리나라에 도입되는 데는 한참 걸렸던 모양이다. 근데 페트로스키가 덧붙인 그림(어멀 프레이즈가 고안한 따개 달린 캔)을 보면 지금 것과 좀 다르다. 따개를 바로 들어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옆으로 비트는 방식이었던지 뚜껑이 나선 모양으로 나뉘게 되는데, 아무래도 위험스러워 보인다. 오늘날처럼 따개를 위로 들어올리는 방식은 1970년대에 발명되었다고 한다.

 


 

 

 

물리적 힘

헨리 페트로스키 저/이충호 역
서해문집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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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시시하다 | 책을 읽다 2023-09-2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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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서유리 역/추혜연 그림
위즈덤하우스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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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읽은 게 분명한 소설. 아마 연합 써클(예전엔 동아리를 그렇게 불렀다)에서 독서 토론을 했었을 거다.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아마 어떤 거창한 교훈 같은 것을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 아닌가. 데미안아닌가. 그리고 여학생도 참여하는 연합 써클이 아닌가.

 

다시 읽은 데미안은 시시하다. 이미 어떤 내용인지 대충은 알고 읽어서 그런가? 열 살 남짓에서 스물 살 갓 넘을 때까지 주인공의 성장을 담은 소설이다. 그 나이에 얼마나 대단한 걸 깨달았을까 싶다. 그 나이를 거치는 성장 소설이 다 유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소설은 유치하지는 않다. 다만 시시할 뿐인데,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깨닫는 것들이 상당히 상식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아브락사스로 대표되는 선과 악, 밝음과 어두움과 같은 대비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양면성은 상당히 존중할 수 있는 깨달음이긴 하지만, 그게 그저 작가의 사유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질 뿐, 주인공들의 삶에서, 특히 삶의 경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뿌리 없는, 추상적 사유에 그쳐버리는 느낌이 든다. 진지하지만 진지함을 가장하는 것 같고, 깊지만 깊음을 가장하는 것만 같다. 단지 표면만 긁어대며 제발 내 소리 좀 들어달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마지막에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는 데 진지한 경험이 바탕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을 때의 장면이다. 그런데 거기서도 싱클레어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다기보다는 데미안을 통하는 듯하다. 지독한 수동성이다.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 새가 알을 깨어야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적극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소 멀게 느껴진다.

 

새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데미안은 없는 존재가 아닐까? 그는 그저 싱클레어가 가상으로 설정한 존재로 그가 어려움에 처할 때 기대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로 상정한 것이 아닐까? 에바 부인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서 설정한 이상적인 존재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또 다른 이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이 작품에서 헤르만 헤세가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전쟁은 세계를 깰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던 같다. 그는 전쟁으로 부서지고 새로 건설될 세계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나는 긍정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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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가 사형된 까닭 | 책을 읽다 2023-09-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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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카밀로 호세 셀라 저/정동섭 역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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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대학시절 내 도서목록 거의 앞자리를 차지했던 소설이다. 대학 합격 이후 노벨문학상 타이틀을 막 단 이 소설을 읽었었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다만 어떤 음산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 작가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이 흘러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다시 읽었다.

 

소설은 연쇄 살인을 저지를 가난한 농부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사형 당하기 직전 써서 남긴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는 폭력적이고, 냉담한 환경에서 자랐다. 야만적인 환경에서 자란 파스쿠알도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되었고, 결국은 여동생의 남편이자 아내의 정부를 죽였고, 자신의 어머니도 죽였다. 존속 살인이며, 현대 법체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처벌하는 범죄 중의 하나다. 수기는 어떻게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편지로 고백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파스쿠알이 사형을 당하게 된 범죄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이 충격적인 점 중 하나인데, 술을 마시고 동네 친구를 칼로 여러 차례 찔렀음에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고, 아내의 여동생을 죽였음에도 몇 년 만에 출소했고,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했음에도 스페인 내전 상황에서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 마을의 지주인 돈 헤수스 백작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사정은 수기에 거의 담겨 있지 않다. 맨 앞에 덧붙인 글과 저간의 사정으로 짐작해서 알아낼 수 있을 뿐이다. 이 파렴치한 연쇄 살인범은 어떻게 그토록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방면되었을까? 작가는 이게 다 법체계의 문제, 공화국의 의도가 있었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어머니까지 죽인 망나니 같은 살인범을 풀어주어 마을의 존경받는 귀족까지 살해하게 만들었다면, 이 체제는, 이 정부는 문제가 많다. 타도되어야 한다.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 혹은 반란은 그래서 정당화된다.

 

카밀로 호세 셀라에게는 친프랑코, 친파시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체제 순응적인 작가였고, 작품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어 있다. 셀라는 자비로운 귀족을 살해한 파스쿠알이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썼다. ‘심장이 굳어 버린 여자인 어머니는 죽어 마땅하기에 그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지만, 농민들에게는 착취 계급이었던 지주인 귀족의 살해는 반성해야 마땅한 것이다. 묘하게 대립점이 옮겨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쪽의 첨예한 대립을 얘기해야 마땅한 문제를 그것들의 부차적인 성질을 부각시켜 다른 문제인 양 다루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이런 정치적 편향성을 배제하고 읽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과 불안 심리를 한 농부의 파괴적인 폭력과 그에 따른 처절한 몰락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스쿠알 두아르테는 그런 사회적 혼란 시기에 삶의 안식처를 끝내 찾지 못한 사회적 희생양이다. 셀라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그는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풍부하고 강렬한 문장을 구사하여, 인간의 나약함을 도발적으로 보여준다.”라고 했다. 부정할 순 없다.

 

파시즘 정권 하에서 호세는 검열관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작품(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포함하여)도 검열 대상이 되어 1946년까지 출판이 금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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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이 밝히는 자존감의 정체와 방향 | 책을 읽다 2023-09-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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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김학진 저
갈매나무 |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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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에 대한 책은 주로 자기계발서라는 장르로 묶인다. 증거, 혹은 근거보다는 당위와 사례를 중심으로 스스로 어떤 마음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얘기이고, 마땅한 충고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얘기를 책 한 권을 읽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사실 그래서 많이 거의 읽지 않는다(핑계일까?).

 

심리학을 과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망설여질 때가 있다. 특히 설문조사와 개인적 추측에 기초한 심리학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분명 과학이라고 여겨지는 심리학이 있다. 바로 뇌과학의 성과에 기초한 심리학의 경우가 그렇다. 편견일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뇌과학을 배경으로 하여, 직접 실험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최선의 추론을 시도하는 심리학은 훨씬 믿음직하다(물론 여기에도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김학진의 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과 같은 경우다.

 


 

 

김학진 교수는 우선 자기감을 이야기하고, 여기서 자존감으로 나아간다. 자기감이란 나의 생존을 위해 환경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있는 느낌을 말한다. 그리고 자존감이란, 자기감의 하위 개념으로 환경 중에서도 내가 아닌 타인(사회적 환경)과의 관계를 말한다. 나와 환경과의 불균형이 있을 때 몸에 질병이 오듯, 타인과의 상호관계에 문제가 생겨, 즉 자존감에 불균형이 오면 우울증과 같은 마음에 병이 생긴다. 김학진 교수는 이와 같은 심리적 문제가 생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생물학적 근거란 무엇일까? 김학진 교수가 주목하는 뇌의 부위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이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익숙한 상황에 대한 반응을 조절한다면(즉 내부의 신호에 민감), 배내측 전전두피질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응과 관계 있는데(즉 외부의 신호에 민감), 바로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이 두 부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책에서 다양한 조절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역시 책에서 소개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숨어 있는 조절 기제가 있을 것임에 분명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만 이해하더라도 우리 뇌에서 나와 환경 사이의 기대와 반응과 관련한 조절 작용에 대해서 상당한 이해해 다다를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인정 중독에 관한 것이다. 인정 중독이란,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알리는 다양한 신체 신호를 무시하고 사회적 보상에만 몰입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어려운 말은, 실은 나(신체 내부 신호)보다 남(외부 환경의 신호)에 기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심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인정 중독으로 말미암아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존감을 훼손하면서까지 남의 평가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김학진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게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은, 그런 상황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야 최소한의 조언이라도 먹힌다고 본다. 실은 문제를 알고,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런 잘못된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의외로 받아들이게 된 부분도 있다. 행복과 관련한 감정에 대한 것이다. 행복감이란 기대하지 않은 보상이 유발한 순간적 감정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감이 들면 보상에 대한 기대 수준을 수정하여 새로운 균형점을 설정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새로운 균형점, 즉 높아진 기대 수준 때문에 불행의 범위가 증가하여 불행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

행복을 얻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불행의 가능성을 커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 이미 한번 떠난 지금보다 불행했던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행복해지고자 애를 쓰는 것, 그것 자체가 불행이 증가하는 원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그렇다면 행복 추구의 노력을 포기하란 말인가? 그건 아닐 듯 한데... 어쩌면 이에 대한 해답은 이 부분에 대한 얘기에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 좀 뒤에 나오는 얘기, 즉 명상과 관련해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높이는 명상은 모든 감각을 극도의 민감한 상태로 유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을 불쾌하게 느끼는 정도는 현저히 낮은 반면, 고통에 반응하는 뇌의 반응은 매우 예민하다고 한다. 이렇게 외부 자극에 민감해지는 것은, 효율적인 감정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행복감은 그렇게 외부 자극에 민감해져, 그 자극에 대해 적절히 반응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김학진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 버튼이 눌리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뇌과학에 기초한 심리학의 성과(김학진 교수 연구실에 수행한 연구를 포함하여)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들이 당장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고 여기는 것은 과한 기대다. 하지만 이런 성과들이 모이고, 또 어떤 사회적, 개인적 노력이 보태지면 조금씩 삶이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물론 우선은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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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향신료가 쓰인 이유, 부패 때문이 아니라 | 책을 읽으며 2023-09-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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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의 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는 음식의 역사에 관한 책이니만큼 많은 음식의 기원과 변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다음은 그중 몇 가지다. 잘 몰랐던 것들이다.

 

치즈가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현재의 지식으로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다. 치즈 제조는 기원전 7000년경의 암각화와 적어도 기원전 4000년경의 고고학 유적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내가 안 쓰고는 못 배기는 비유적 표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수렵과 목축의 역사가 치즈 속에서 재연된다는 것이다. 수렵에 대응되는 단계에서, 공기 중에 노출된 우유는 마치 박테리아를 무작위로 잡아들이는 덫처럼 놓인다. 그다음으로 우유가 시큼해지끔 놓아두는 환경을 조절함으로써 어떤 유익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실상 이는 특정한 박테리아를 방목한다는 뜻이다.” (160)


 

 

부패한 고기와 생선을 위장할 필요성 때문에 향신료 수요가 생겨났다는 생각은 음식사에서 가장 그릇된 믿음 중 하나다. 이것은 진보의 신화, 즉 옛날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무능했다거나, 머리가 나빴다거나, 필요한 것을 조달할 능력이 떨어졌다는 가정에서 파생된 믿음이다. 오히려 중세의 신선 식품은 생산과 소비가 국지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것보다 더 신선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략) 어쨌든 요리에서 향신료가 수행한 역할을 결정한 것은 미각과 문화였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요리는 비쌌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화되었다. 향신료가 선호된 이유는 그것이 아랍 요리를 모방한 당신 전형적 오트퀴진의 결정적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338~339)

 

미국의 초콜릿 백만장자 밀턴 스네이블리 허시(Milton Snavely Hershey)는 매우 자비로운 고용주였고, 더욱 놀라운 점은 그의 공공 기부액과 사업가적 천재성이었다. (중략) 초콜릿 제조업과 공공 자선의 연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초콜릿 사업가들은 금주, 우애, 형제애, 검약에 집착하는 급진적 신교도인 경향이 있었다. 일례로 영국의 초콜릿 사업가들은 거의 모두가 퀘이커교도였다. 하지만 이런 자질은 기업이 커지며 가족 전통이 사라지고 수익 동기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소멸했다.” (429~430)

 


 

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저/유나영 역
소와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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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역사 | 책을 읽다 2023-09-2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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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저/유나영 역
소와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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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라고 하지만, 옷과 집은, 그래도 먹을 것 다음이다. 먹지 않고서야 생명이란 걸 유지할 수 없으니.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것이 먹을 것의 역사일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오랜 역사 동안 먹을 것이란 풍족했던 적이 없으니, 생존을 위해 먹는 행위는 그다지 편차가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의 음식의 세계사 여덟 번의 혁명을 보니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음식의 역사에도 수 차례의 변곡점이 있었으며, 그 흐름의 안에서도 문화별로 정말로 다양성이 있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거의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음식과 음식 문화가 소개되고 있다.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는 인류사에서 여덟 차례의 혁명적 변화가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고, 음식의 역사를 통해 인류사를 깊게 알아가는 길이다.

 


 

 

우선, ‘조리. 말하자면 그냥 날것으로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의 재료를 어떻게 가공한다는 얘기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의 이용이다.

 

다음은 의례화. 생존 자체를 위해 그냥저냥 먹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차를 따라서 먹게 된 것이다. 음식에 절차가 생긴 것이다.

 

세 번째는 사육이다. 말하자면 음식의 재료 차원에서의 혁명이다. 채집이나 사냥을 통해서 음식의 재료를 얻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가지고 키워서 얻어낸 것이다.

 

네 번째는 앞의 사육과 연결되는 것으로 농업이다. 여러 식물들이 개량의 과정을 거쳐 재배되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에서 이뤄졌지만, 어떤 것이 재배하게 되었는지는 지역마다 다르며, 일단 재배된 작물의 전파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뤄졌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이것이 반드시 인류에게 긍정적인 면만 가져온 것이 아니란 것은 많은 저자들이 지적해 온 바이긴 하지만, 일단 이 흐름에 올라선 후에는 되돌릴 수 없었다.

 

그 다음은 계층화를 들고 있다. 이것은 앞의 의례화와도 연결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계급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음식을 먹게 된 것을 말하는 계층화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음식 문화 혹은 절차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의례화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혁명으로 들고 있는 것이 무역인데, 이 장에서 말하는 무역은 상품으로서 음식물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간 것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후추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반면 생태 교환은 이식(移植)이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와 같은 작물들이 구대륙으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음식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혁명은 산업화이다. 다양한 음식물이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간단하게만 살펴봤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정말 굉장히 다양한 음식과 음식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런 여덟 번의 혁명이 순차적으로 이뤄졌고, 한 혁명이 끝난 후 다음의 혁명이 온 것이 아니란 점이 아니다. 혁명들은 서로 교차하고 있고, 한 혁명의 와중에 다른 혁명 역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혁명의 과정과 결과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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