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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렌스의 탄생 136주년,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느낀 것들’ | 기본 카테고리 2021-09-1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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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귀향

D.H. 로렌스 저
열화당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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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D.H. 로렌스의 자전적 에세이

D.H. 로렌스(D. H. Lawrence) 지음 | 오영진 옮겨엮음 | [열화당]

 

 

‘D.H. 로렌스의 탄생 136주년,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느낀 것들

 

오늘(2021911)‘9·11사건이 발생한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지만, 문학사에서는 소설가 D.H. 로렌스의 생일이기도 하다. 지난달에 그의 자전적 에세이 귀향을 읽고 미뤄두었던 독후 기록을 간단히 남겨본다. 그는 136년 전(1885) ‘오늘영국 중부지방 노팅엄의 탄광촌 이스트우드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45년간의 짧은 생을 누리다가 프랑스의 방스 지역에서 사망했다. 그는 평생 폐렴으로 고생했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로렌스의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 하나는 부인 프리다를 만난 일이다. 로렌스는 27살이던 1912년에 노팅엄 대학 교수 어니스트 위클리의 부인 프리다 위클리를 만났다. 같은 해에 프리다는 저명한 교수 남편과 세 아이를 포기하고 로렌스를 따라 평생 함께 한다. 로렌스의 사후 5년 째 되던 1935년에 프리다는 새 애인을 방스로 보내 로렌스의 시신을 화장한 뒤, 뉴멕시코 주 로키 산맥 자락에 위치한 카이오와 목장으로 가져오게 했다. 이 목장은 로렌스와 프리다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었다. 프리다가 사망한 후 두 사람은 이 곳에 함께 묻혔다.

 

에세이 모음집 귀향은 로렌스가 생전에 일간지나 잡지 등에 기고하여 발표한 글들을 국내의 영문학 전공자가 선별하여 번역한 결과물이다. 이 에세이집은 자세한 정보 없이 로렌스에 대한 관심만으로 찾은 도서였기에, 큰 기대 없이 읽었다. 내가 보기에 이 에세이들은 인간 로렌스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로렌스의 내밀한 생각과 문제의식을 그의 목소리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꼼꼼하고 충실한 번역자의 주석은 기대이상이다. 로렌스의 작품이나 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책머리에 상세한 로렌스의 연보와 다양한 사진은 반가운 자료들이었다. 이 책에 실린 로렌스의 사진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28(1913)의 청년 로렌스의 모습이다. 병색이 짙고 앙상하며 침울한 눈빛을 하고 날카롭게 렌즈를 응시하는, 잘 알려진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 사진에는 평생의 반려자가 될 프리다와 막 만나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자전적 소설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후 찍은 당당한 모습의 로렌스가 있다. 책을 덮은 후에도 생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눈망울로 의기양양하게 렌즈를 바라보는 로렌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책에는 6편의 비교적 짧은 자전적 에세이와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라는 다소 긴 에세이가 담겨 있다. 근대화의 한 복판에 선 문인으로서 그의 에세이에는 비판적인 관찰과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자전적인 에세이에서 로렌스의 시선은 날카롭다. 또 목소리는 줄곧 솔직하며, 때론 격정적이다가 우울해지기도 한다. 귀향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고향의 전원지대를 이야기할 때 풍경의 아름다움과 풍경이 주는 신비한 매력을 놓치지 않는다. 반면 근대화로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선, 사라져간 인간의 삶에 대해 안타까움과 상실감을 드러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고향에 대해 우울감을 토로한다. “내 고향 지역으로 가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66)라고 말이다. 근대화와 고향, 그리고 상실은 그의 작품을 이해할 때 중요한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로렌스의 에세이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은 그가 버릇처럼 지니고 있던 계급에 대한 자의식이었다. 그가 계급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일종의 분열적인 자의식이 느껴질 정도다. 하층노동자(광부) 아버지의 자녀로서 글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된 로렌스는 세간의 기준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인 셈이다. 번역자에 따르면 그는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민중에 대한 공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정신적 귀족주의를 가진 인물이었다. 귀족 혹은 신사 계급이 되려고 발버둥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나온 노동자 계급에도 진정으로 속하기 어려웠다. 계급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일종의 경계인이었던 것이다. 고향의 전원풍경에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타지에서 살 때보다 오히려 고향에 불편함을 느꼈던 경계인. 청년이 되어 고향을 떠난 이후 20년 가까이 부유하듯 방랑생활을 했던 로렌스는 계급의 어느 쪽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접할 때, 작가의 관점과 의식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계급 문제를 염두에 둘 수 있겠다.

 

흔히 로렌스는 외설시비에 휘말린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세계관과 문제의식을 조금씩 들여다보면서 곱씹어볼만한 주제를 더 발견한다. 아직 로렌스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에게 -사랑-은 하나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삶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 “나는 삶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온통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83)라며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게는 생명을 지닌 존재의 본질적인 생기/활력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나는 생이 있는 곳에는 본질적 아름다움이 있음을 안다.”(83)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문명의 근대화가 사람들로부터 생기/활력을 앗아가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양산한다고 바라보았을 것 같다.

 

()’에 관한 주제에서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관하여라는 꽤 긴 에세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견해를 밝힌다. 그는 오늘날 사랑이라는 것이 사이비라고 일갈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가장 큰 기만이다. (...) 특히 사랑 문제에서는 사이비 감정만이 존재한다. (...) 그리고 사이비 정서로는 결코 진정한 성이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속일 수 없는 어떤 것이 성이다.”(114-5)라고 말이다. 그에게 은 무엇보다 서로에게 거짓이 없고 자연스러운 그 무엇이었을 테다. 작위적이고 기만적인 문명에 대비되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 이것이 곧 그가 바라보고 추구했던 ()’이면서 동시에 의 참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로렌스에게 ()’()’은 진정한 사랑이 매개가 된 동일한 대상의 두 모습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의 다른 이름이듯 말이다.

 

로렌스의 자전적인 에세이를 읽으면서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그의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과 경계인으로서 부유하듯 살았던 실제의 삶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또 계급의 어느 쪽에도 진정으로 뿌리내리고 속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 뿐 아니라 사망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귀향이라는 글에서 그는 죽어서도 부유하게 될 자신의 모습을 직감했던 것일까.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도 고려해봄직하다. 근대화로 인간이 잃어버린 진정한 삶(그리고 성)의 의미를 말이다. 끊임없이 부유하면서도 집요하게 회복하고자 추구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가치가 아닐까 싶다. 에세이집 귀향에서는 평생 안주하지 못했던 한 작가의 고독하고 앙상한 어께를, 상실과 위기에 이른 현대인의 모습과 함께 볼 수 있었다.

 


1913626일 촬영한 사진. D.H. 로렌스(당시 28). 1912년 아내가 될 프리다와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잠시 귀국하여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직후의 모습.

 

 

[책 속으로]

 

[1] "나는 온갖 집착과 타락에 맞서 싸우며 내가 그토록 애써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81)

 

[2] "나는 삶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온통 잘못되어 있음을 안다." (83)

 

"다른 무엇보다 우리는 생과 그 움직임에 민감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83)

 

[3] "우리가 목표로 살아야 할 것은 바로 생이며, 생기, 상상력, 각성, 그리고 다른 존재와 맺는 접촉의 아름다움이다. 완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야말로 불멸이 되는 것이다." (84)

 

[4] "오늘날에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것이 사이비다. 다른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가장 큰 기만이다." (114)

 

[5] "그러나 오늘날, 특히 사랑 문제에서는 사이비 감정만이 존재한다. (...) 그리고 사이비 정서로는 결코 진정한 성()이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속일 수 없는 어떤 것이 바로 성이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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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 인간의 선함은 우리 안에 있다 | 기본 카테고리 2021-09-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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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짐 디피디 저/장상미 역
갈라파고스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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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 가장 어두울 때의 사랑에 관하여

(The Day the World Came to Town: 9/11 in Gander, Newfoundland)

짐 디피디(Jim DeFede) 지음 |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 인간의 선함은 우리 안에 있다

 

오늘(2021911)은 미국의 ‘9·11 사건이 발생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에 복학생이었던 나는 TV를 통해 강박적으로 재현되던 영상을 기억한다. 한 대의 비행기도 아니고 여러 대가 납치되어 미국의 상징적인 무역센터 건물 두 동과 펜타곤을 공격했던 사건. 수천 명의 사람들은 전 세계가 목격하는 가운데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이 가상현실과도 같은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20. 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 이들의 가족, 친구들은 각각 어떤 경험을 하고 또 트라우마를 겪었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사건이 있던 당일 미국의 영공은 순식간에 폐쇄되었다. 당시 미국 상공에 있던 4546대의 비행기는 미국 내 착륙이 금지되었다. 이들은 하늘에서 출발지로 회항하거나 주변국 공항에 임시착륙을 해야 했다.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발생한 한 사건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캐나다의 소도시에 모이게 되었다. 저널리스트 짐 디피디의 기록 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9·11사건 당일, 캐나다 뉴펀들랜드 주의 작은 섬 갠더(Gander)에 위치한 공항에 임시 착륙했던 사람들이 경험한 6일간의 기록이다.

 

캐나다 동쪽 귀퉁이에 위치한 뉴펀들랜드 주 갠더 섬은 인구 1만 정도의 소도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승객과 승무원 6595명을 태운 비행기 35대가 비상착륙을 했다. 도시 인구의 과반수가 넘는 인구가 순식간에 나타나 언제 이륙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상황은 딱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안타까워만 할 것인지, 아니면 뭐라도 도움을 주어야 겠다라고 결심하고 몸을 일으킬 것인가. 갠더 시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후자의 방법을 택하고 지체 없이 실천에 옮겼다.

 

하늘 길이 곧바로 열리지 않게 되자 이 뉴피(뉴펀들랜드 주민)들은 집에서 이불과 담요, 베개를 가져와 건네주려고 3 km에 가까운 줄을 섰다. 구세군과 적십자는 지원품을 여기 저기 떨어진 대피소로 실어 날랐다. 어느 약사는 지역 약국과 협력하여 세면도구와 칫솔을 대량 주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 상인들은 수천 달러어치의 물품을 무상으로 기부했다. 많은 가정이 사람들을 자신이 집에서 샤워를 하고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했다. ·관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주도적으로 찾아 움직였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다. 갠더 주민들의 행동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단지 물질적인 도움만 제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는 승객들이 충격과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이들의 감정마저 돌보아 준 부분이 인상 깊다. 주민들은 이 불청객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공감했다. 또 자신들과의 공통점을 찾고 승객들이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갠더 주민들은 인종과 종교의 이질성에 주목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며, 최대한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이 뉴피들은 타인을 도우려는 의지가 본능인 듯 보였다.

 

한 가지 더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갠더에 내린 사람들 중에 구소련 국가 몰도바 출신의 난민 서른여덟 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영어를 몰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갠더 주민들은 일주일 동안 무언극과 몸짓의 달인이 되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저자는 아마도 소통의 문제로 이들의 이야기를 책에 풀어놓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아프가니스탄인 390명을 구출해온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9·11사건 발생 후 한 달 뒤, 미국이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년이 지나 올 8월 말일, 미군의 철수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므로 특별기여자신분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된 아프가니스탄인의 운명은 바로 20년 전 발생한 9·11사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수년 전 예멘 난민과 관련한 이슈로 처음 몸살을 알았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난민이 발생하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나중에 고려해보더라도, 갠더 주민이 보여준 행동은 분명히 우리에게 유대감의 가능성과 환대의 상상력을 전달해주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개인을 보호하기위한 정치·사회적 장치가 부족했던 과거에 생존을 보장하는 길은 서로 힘을 모으는 것, 그리고 환대를 통해 가능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의지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길만이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을 테다. 우리는 현재 단절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 종교, 성별, 경제적 격차 등으로 분리되고 서로가 고립되어 간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구성원이 원자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유대감을 느끼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뉴펀들랜드인들은 임시 착륙한 항공기 승객을 받아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곁을 내주고 이들이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9·11사건이 있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이들은 갠더 주민들과 가족처럼 유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족과 같은 유대감과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수 있다는 점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우리 인간은 모두 어떤 조건과 상관없이, 가족처럼 연결될 수 있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임을 갠더 시민들은 입증했다. 종교, 피부색,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말이다. 정확히 20년 전 오늘있었던 사건은 인간의 선함, 그리고 천국이 바로 우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를 발견하는 일은 오로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책 속으로]

[1] "뉴펀들랜드인은 포위당한 사람처럼 산다. 섬에 고립된 채 거친 날씨를 속수무책으로 겪다 보니, 살아남으려면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17)

[2] "뉴피가 이름 모르는 사람을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록샌과 클라크도 곧 알게 되었다." (78)

[3] "온 세상이 망가지는 와중에 지금, 바로 여기, 지구상의 구석진 조그만 마을에서만큼은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니 안심이 되었다." (215)

[4] "갠더에는 증오도 분노도 공포도 없었다. 오직 공동체 의식만이 살아 있었다. 여기서는 모두가 동등하고,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았다." (216)

[5] "갠더는 살기 안전한 곳이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이제는 16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비극이 자기 삶과 어떻게 직결되는지 알게 되었다. 온 세계가 마을에 왔을 뿐 아니라, 세계의 문제도 함께 다가왔다." (259)

[6] "갠더가 마법 같은 공간이라서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마다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 재난 앞에서 한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그렇다면 우리도 누구든 똑같이 행동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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