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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계간지 《녹색평론》 | 기본 카테고리 2023-10-3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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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녹색평론 (계간) : 가을호 [2023]

녹색평론 편집부
녹색평론사 |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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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계간지 녹색평론

2023년 가을 183

 

 

고등학교 시절에 기억나는 영어 선생님 한 분이 있다. 남학생들만 바글바글하던 교실(당시 한 반에 50명 넘었음. 연대 추정 금지!)은 언제나 산만한 편인데, 어느 날 그 영어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갑자기 책 한 권을 꺼내서 글 한 편을 읽어주겠다고 하셨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영어는 못해도 수업을 집중하던, 겉보기 모범생이었는데 그날 선생님이 읽어주신 이야기에 꽤나 몰입했던 것 같다.

 

 

책에 실렸던 글은 짧은 여행기였는데,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거대한 대륙을 횡단하며 보고 생각했던 것들을 적었던 글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나중에 대학에 가서 그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을 다시 기억해냈던 것이다.

 

 

당시에 그 영어 선생님이 읽어주셨던 책이 바로 녹색평론이었다. 이 책이 생태, 기후, 자연에 관한 글들이 주로 실리는 계간지임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후에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해서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나의 생각과 관심사가 형성된 과정에는 이 잡지의 영향이 제법 클지도 모른다. 책과의 만남이 길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꽤나 중요하다고 믿었던 이슈들에 대해 이 책은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어서 좋았다. 환경문제나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녹색평론의 공이 클 것이다.

 

 

오랜만에 녹색평론을 구입해보았다. 그런데 오랜 시간 이 잡지를 내고 글을 쓰셨던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신 후, 몇 년 간 발간이 중단되었다가 최근에야 다시 복간되었다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 잡지가 최악의 상황에서 복간된 것이지 모른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하여 세금을 들여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엄혹한 시대에 녹색평론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나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이제 더 심각해졌지만, 녹색평론과 같은 책을 예전만큼 구입하지는 않을 듯하다. 관련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회가 주어지면 자주 녹색평론을 읽어볼까 싶다.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기후, 생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입장에서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이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183호는 내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관한 글을 포함하여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가 큰 주제인 듯하다. 이제 기후와 환경은 정치와 분리불가능하다. 오늘날 모든 실천적인 학문의 분과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이유다. 천천히 읽어보려 한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에 녹색평론의 글 한 꼭지를 읽어주셨던 영어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하다. 나에게 녹색평론과의 느슨한인연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지금은 은퇴하신지 꽤 되었을 것 같은데, 어디서든 건강하시길 빈다.

 

 

 

#녹색평론 #후쿠시마오염수 #녹색평론183#녹색평론사 #오염된바다흔들리는민주주의

 

#출판예산삭감반대 #독서진흥예산삭감반대 #지역서점활성화예산삭감반대

#문학나눔예산축소반대 #출판이곧문화다 #책과함께하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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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소리, 나의 진실에 가 닿는 글쓰기 | 기본 카테고리 2023-10-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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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상황과 이야기

비비언 고닉 저/이영아 역
마농지 |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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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소리, 나의 진실에 가 닿는 글쓰기


<상황과 이야기>

: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

(원제: The Situation and the Story)
 

비비언 고닉(Vivian Gornick) 지음
이영아 옮김 [마농지] (2023)

 

 

 

최근에 비비언 고닉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읽게 된 상황과 이야기외에 멀리 오래 보기라는 비평집도 최근에 나온 계기로 주목하게 되었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는 작가 소개를 보니, 유도라 웰티, 마거릿 애트우드, 어슐러 K. 르 귄 등등 내가 더 읽고 알고 싶은 대가들처럼, 그녀 역시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지금도 그런 작가인 듯하다. 이번에 읽은 책 상황과 이야기에서는 자신을 꺼내어 보여주는 글쓰기, 곧 에세이나 회고록 등의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고닉은 흥미로운 회고록 작가로 영국인인 애컬리(J.R. Ackerley)를 꼽는다. 그는 아버지의 사후,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의 비밀스러운과거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딴살림을 차리고 이중생활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젊은 시절 아버지가 남창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동성애 작가로서 아버지의 삶에 호기심을 느꼈던 걸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고닉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그것만은 아니었으리라 깨닫게 된다.

 

애컬리는 아버지에 관한, 그리고 부자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회고록 아버지와 나 My Father and Myself에 담았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를 오랜 세월이 지나 들려주는데, 그동안 아버지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보다 결국 자신이 아버지를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음을 말한다. 나아가 그가 회피해왔던 진실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는 점을, '작가 중의 작가' 고닉이 독자들에게 차근차근 일러주는 것이다.

 

고닉은 여기에서 상황이야기의 차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애컬리는 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3년이 아니라.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들려준 것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기 때문이다. 꺼내 놓는 데 30년이 걸린 것은 이야기였다."(25)

 

처음엔 곧바로 다가오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는 작가가 자신의 진실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1896년에 태어났고 내 부모님은 1919년에 결혼했다." 이런 문장을 말하는 목소리라면 어떤 주제든 품위 있고 허심탄회하게 이여기할 것이다. 이 목소리로부터 짙은 감정과 선명한 지성, 독창적인 표현과 놀라운 솔직함이 흘러나올 것이다.(25-26)

 

자신과 부모님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이렇게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폭발하게 만드는 문장이라니.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위해 30년을 기다린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선전포고문이다. 고닉 역시 이야기를 소재삼아 독자가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당연히 애컬리의 책 역시 읽고 싶어진다.

 

아버지와 나의 서술자 애컬리는 아주 호감 가는 사람이다. 그가 세련된 정직함을 내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감상적인 자존심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있는 단단한 진실에 닿을 때까지 불안을 벗겨내고 또 벗겨내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그를 독자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26)

 

에세이라는 장르를 그동안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유는, 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고난과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솔직함이라고 여긴 듯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강박적인 피해의식까지 덤으로 독자에게 얹어주거나 작가의 솔직함을 강요하는 느낌을 받곤 했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의 소설은 아주 마음에 들어 감탄하기도 하지만, 막상 같은 작가의 에세이는 읽기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고닉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런 에세이들은 아직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묻혀 있는 자신의 고갱이, 진실에 가 닿는 노력을 다 하기도 전에 출간부터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에세이든 회고록이든 화자와 이야기 사이에도 독자가 숨 쉴 여지가 필요하다. 자전적 글쓰기 작가라면 과거의 자신과 거리를 두는 훈련이 중요할 것 같다. 적어도 읽는 독자로서 나는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는 점, 아울러 그만큼 어려운 지점이라 생각한다.'작가들의 작가' 비비언 고닉은 대가답게 바로 이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고닉은 자전적 에세이나 회고록이 청승맞거나 피해의식으로 범벅된 글이 아니라,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매력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책을 펼쳐 고닉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책 속으로]

[1]

"애컬리는 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3년이 아니라.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들려준 것은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기 때문이다. 꺼내 놓는 데 30년이 걸린 것은 ‘이야기’였다."(25)
 

[2]

"나는 1896년에 태어났고 내 부모님은 1919년에 결혼했다." 이런 문장을 말하는 목소리라면 어떤 주제든 품위 있고 허심탄회하게 이여기할 것이다. 이 목소리로부터 짙은 감정과 선명한 지성, 독창적인 표현과 놀라운 솔직함이 흘러나올 것이다.(25-26)
 

[3]

"<아버지와 나>의 서술자 애컬리는 아주 호감 가는 사람이다. 그가 세련된 정직함을 내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감상적인 자존심의 매끄러운 표면 아래 있는 단단한 진실에 닿을 때까지 불안을 벗겨내고 또 벗겨내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그를 독자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26)

 

 

 

 

#상황과이야기 #비비언고닉 #회고록 #에세이쓰기 #글쓰기 #이영아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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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일까 | 기본 카테고리 2023-10-2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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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저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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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만든 종이 인형을 사용함)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일까

: 정보라의 환상문학 단편집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가제본을 읽고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 (2023)

 

 

 

《저주토끼》《고통에 관하여》를 읽고 이제 ‘보라 월드’의 세 번째 작품과 만났다. SF 및 환상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지기 전에 정보라 작가는 이미 문학연구자이자 번역가로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번역가로 내놓은 도서를 고려하면, 폴란드의 세계적인 과학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SF 작품집 《로봇 동화》까지 네 번째 만남이다. 내게 SF는 테드 창을 비롯하여 비교적 익숙한 장르다. 하지만 환상문학은 아직 적응하는데 여전히 애를 먹고 있다. 아직 문학이라는 ‘자유공간’에 적응하는 단계가 필요한가보다.

 

 

이번에 만난 단편 소설집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수록될 작품 10편 가운데 4편이 묶인 가제본이다. 이 중에서 <감염>은 다른 단편보다 조금 긴 작품으로, 중편소설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이번에 읽은 환상소설 중에서도 특히 몰입하며 읽었다. 이제 겨우 정보라 작가의 작품 몇 편을 가지고 작가의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괜찮을까 싶기도 하지만, 대신 나의 ‘엉뚱한’ 읽기를 독서의 과정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해석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정보라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 나름의 고유한 결이 있는 것 같다. 무언가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괴상한 독특함이 있다.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저주토끼》에서처럼 죽음과 더불어 초자연적인 현상이 공기처럼 공존하는데,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바로 이 ‘기운’이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고 해야 할까. ‘죽음’이란 현상만 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 미지의, 불가해한, 삶의 필연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 첨단 과학의 시대를 비집고 줄곧 존재하는 무언가가 감지되는 것이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부분적인 내용과 감상을 남겨본다. 조금 긴 작품 <감염>에서는 ‘전통적인’ 물리적 폭력과 현대 사회의 미디어 기술로 새로 ‘발명’된 수단으로서의 폭력 문제가 얽혀 있다. 저자는 인간이 자행하는 폭력에 대해 주목하고 탐구한다. 평생 무고한 삶을 살아온 인간이 현대 기술의 마수에 붙들려 폭력을 자행할 수밖에 없게 되는, 숨 막히게 갑갑한 상황이 설정되어 있다.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괴이한 상황이다. 폭력이 싫어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은, 또다시 폭력을 사용해야만, 이 부조리하고 섬뜩한 상황을 벗어날 가망이 보일뿐이다. 작품 속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당신이라면, 그러니까 파리잡이풀에 걸려든 파리처럼 걸려든 덧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몸의 움직임은 점점 더 둔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이러한 감각을, 기업과 자본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규정하고 통제하고 있는 현실로도 치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환상소설은 우리 사회의 내면을 비추어주는 우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일지 모르지만, 맥락에 따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진실을 비추어줄 수 있겠다.

 

 

‘원래부터’ 남을 때리는 취미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과연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죄를 짓지 않겠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소설은 충격적인 설정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은 폭력의 속성을 서늘하게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말 “폭력이란 이상한 것”(63)이다. 처음에 폭력 가해자가 벌벌 떨면서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했더라도, 자기혐오의 지점을 지나 무의미한 폭력 행위가 반복되고, 점차 폭력에 무뎌져간다. 폭력에 대한 몸의 중독이라고 해야할까. 오래 달리는 마라톤 주자들이 먼 거리를 달리며 극심한 고통을 느끼다 결국에는 이 고통에 몸이 적응하며 심지어 쾌감까지 동반하는 ‘러너스 하이’ 상태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가해자는 폭력 자체에 점차 익숙해져가는 것이다. ‘원하지 않은’ 폭력 가해자는 피해자를 점차 대상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건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쾌락이 조응하는, 괴이한 상황이다. 내가 폭력을 가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혐오하고, 동시에 몸이 기억하는 쾌락의 감각을 또다시 갈망하는 존재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허리띠로 상대방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상황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가해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섬뜩하다. 작가의 장편소설 《고통에 관하여》에서 읽었던 ‘고통과 쾌락의 근원은 같다’란 대목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것이 폭력에 저항하면서도 폭력에 길들여진 인간이 상황에 따라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저자가 어떤 모티브로 이 이야기를 구상한 것인지 궁금하다. 다만 이 묘한 상황을, 현대인의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문제에 있어서 여러 사례를 꼽아볼 수도 있겠다. 현재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 무고한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화면을 통해 지구의 한 지역에서 공포와 고통으로 절망하고 일그러지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이 때 관련 기사를 트위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 나르는 우리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기사를 결코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플랫폼에 있는 ‘좋아요’를 누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들의 소식을 알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여지도 분명히 있을 테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 뉴스를 ‘리트윗’하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하고 있을까. 당장 화면 속에서 울부짖는 이들의 고통보다,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이 더 아프지 않은가.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화면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위해 방영되는 라이브쇼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특히 소설 속 사건이 시작하는 계기는 한 남자가 폭행과 강간을 당하는 동영상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에게 전송된 사건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감염>이란 작품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다른 두 단편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와 <리발관의 괴이>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괴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공포는 존재가 정체를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갖는 두려움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죽음’은 의인화되고 있지만, 얼굴은 없다. ‘죽음’은 상상하기 힘든 검은 형체로 상상되는 듯하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에서 죽음은 단지 불시에 닥치는 현상만이 아니다. 두 남자의 죽음은 묘한 상황에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살인이면서 동시에 자살이 되는, 기이한 죽음이었다.

 

 

이 대목에서 해당 단편을 읽던 밤,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밤늦게 이 단편을 읽고 양치질을 했는데, 이날따라 혀에 상처를 입었다. 거품을 뱉어내던 순간, 피가 섞인 시뻘건 액체가 입에서 나왔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시라. 지금까지 한 번도 칫솔모에 혀가 깊게 찔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새빨간 눈의 저주’라는 생각을 하며 얼얼한 혀를 느끼며 겨우 눈을 감았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눈을 뜨니, 방의 윤곽이 어슴프레 보였다. 붙박이 장 옆의 구석에서 새빨간 눈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금 늦게 잠들었던 날이다. 밤늦게 소설을 읽은 후유증이다. 잠이 드려는 순간 카톨릭 기도 ‘영광송’의 한 구절을 닮은,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문구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또 <리발관의 괴이>에서는 예측 불가한 진행이 있고, 사명감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이발소 주인과 역사학자 사이의 몸싸움이 단편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단편은 잔인한 모티브임에도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대신 작가의 ‘블랙유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옛날 서부 영화에서 착한 주인공이 악당을 총으로 쉽게 죽이는 반면, 주인공은 악당에게 붙잡혀 있다가 살아난다. 대부분 그 이유는 악당이 자신이 잡은 주인공 앞에서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과묵한 악당보다 말이 많은 악당이 더 흥미롭긴 하지만, 악당은 항상 말이 많아 주인공에게 당한다. 역사학자와 이발소 주인의 엉뚱한 대화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정작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찰의 목숨을 빼앗는 존재는 키작은 노인이었다. 죽을 법한 사람은 살아나는 대신, 공무에 태만한 경찰은 죽임을 당한다. 노인은 사람들 앞에서 태연하게 살인을 하며, 머리 없는 경찰의 시체를 끌고 사라질 뿐이었다. 이 상황적 ‘괴이함’이 정보라식 환상소설의 한 가지 결일까 싶었다. 그의 소설에는 전형적인 대결과 해결의 구도 대신,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예상치 못한 탈주로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에서 발생한 사건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리발관의 괴이>의 묘미는 무시무시하고 긴급한 상황에서도, 역사학자와 이발소 주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역사 논쟁’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내 친구 좀비>는 30대 중반의 대학 동창들에 관한 이야기다. ‘선이’라는 동창이 보이는 ‘이상’ 행동은,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산만한 성격에서 그치는 것 같진 않다. 결혼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다른 두 동창과 달리, ‘선이’는 점차 친구들의 옷차림과 말투, 행동 등을 따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 ‘선이’의 행동은 아이들의 그것과 닮았다. 유아가 있는 집의 엄마가 이유식을 아이에게 먹일 때를 떠올려보자. ‘선이’는 엄마가 숟가락에 이유식을 떠서 ‘아’하고 입을 벌리면 아이도 입을 벌리고 따라하는, ‘거울 단계’에 있는 유아를 닮은 것이다. 또 그가 유학생활을 한 친구를 보면 ‘선이’는 ‘나도 유학갈거야, 엄마가 보내준댔어’라고 대응하며, 결혼한 친구를 보고 ‘나도 결혼할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소설의 설정에서 내 시야에 들어온 부분은, 동창들이 ‘선이’에게 전화할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며 근황을 묻는 ‘선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선이’가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림자처럼 ‘선이’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선이’는 이유식을 먹으며 엄마를 따라하던 단계에서 나아가 정신적으로 더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아직 유아의 ‘거울 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의 배후에 바로 ‘선이’의 엄마가 있었다. 이 단편에서는 새빨간 눈을 가진 존재나, 검은 덩어리의 ‘죽음’과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평생 ‘선이’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켜보는 어머니의 존재만으로도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이제 ‘선이’가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종종 ‘좀비’같이 초점을 잃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엄마로부터 벗어하지 못했던 것이다. 30년 넘게 엄마의 욕망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내면화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선이’와 엄마의 관계를 보면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녀를 비롯하여 타인의 욕망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욕망으로부터, 혹은 관습의 구속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보라의 환상소설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서 진실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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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안톤 허 저
어크로스 | 202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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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세계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번역가다

-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

 

 

2022년 클래식 음악계를 뜨겁게 했던 기사가 기억난다. 18세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일이었다. 그는 결승에서 난해하기로 잘 알려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었다는 평을 받았던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엄청난 노력에 대해 많은 이들이 놀람과 동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가 쓴 에세이 하지 마라고는 안 했잖아요?를 읽다가 두 가지 무관해 보이는 상황이 뚜렷하게 대비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를 보고 라흐마니노프의 곡에 대해 알게 되고 작곡자의 재능과 음악적 유산을 확인하지만, 피아니스트가 작곡한 곡이 아니라고 연주자를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주자가 갖고 있는 연주에 대한 견해와 접근법, 곡에 대한 이해의 깊이, 연주자 개인의 삶이 반영된 공연 자체를 칭송하고 열광한다. 하지만 번역가에 대한 인식은 정반대다. 그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유려하게 번역한 번역물들에 대해 번역자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아마 현장에 종사하는 많은 번역가들은 이 상황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부커상 수상 최종 리스트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원작자인 소설가와 더불어 외국인에게 유려한 문장으로 소개한 번역가 안톤 허의 이야기는 그동안 당연시되어왔던번역·출판계의 관행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나 역시 어느 작가분이 글쓰기에 비해 번역 작업을 하찮게 여기는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가로서 안톤 허가 부커상 수상 리스트에 원작자와 함께 오른 사례는, 여태껏 순수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시되었던 장르 문학작품으로 이룬 성과였기에, 그 놀라움과 기쁨이 더욱 남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 출판시장에서 주목하는 작품을, 한국문학 번역가가 장르 문학을 가지고 기획하여 내놓았다는 것. 이는 원작의 작품성과 더불어 그의 번역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견해들뿐 아니라, 책에 쓰이지 않았지만 그동안 번역가로서 겪었을 지난한 시간들을 읽어낼수 있었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스스로 실력을 갈고 닦은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저자의 커다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내가 믿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점이지만, 어떤 일에 대해 재주와 기량을 갖추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여기에 우선해야할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인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고 저자에 대해 존중하게 된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기술자가 되지 않으려면 누구든 이 부분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 일거라 믿는다.

 

책에 소개된 번역가로서의 경험담도 흥미롭고 유익했지만, 무엇보다 책에 수록된 세 편의 강연록이 좋았다. 이 글들은 해외 명문 대학에서 개최된 번역 관련 행사에 저자가 초청받아 진행한 강연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언어라는 것은 지식에 대한 접근을 도와주는 도구이지만, 권력과 권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한국의 한 유명 정치인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 정치인은 고학력에 총명했으며, 수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이었지만, 영어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작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며 게으름 피우는 별 볼 일 없는 번역가 아저씨일 뿐입니다. 그런 제가 저토록 대단한 분을 가르치다뇨? 하지만 우리 둘 중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쪽이 제가 아니라 그분이라니... 이제 바로 미제국이 저에게 준 특권입니다. 시민권도 아니고, ‘squirrel'이라는 단어를 제대로발음할 수 있는 능력.”(214)

 

제국의 언어가 대한민국과 같은 종속국에 대해 갖는 위상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싶다. 오히려 해외의 저명인사들과 학자들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에 감탄하고, 해외 K-팝 팬들이 한글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배우려는 모습과 얼마나 대비가 되는가. , 오직 제국의 언어 영어를 어린 자녀에게 배우게 하려고, ‘필리핀 이모저렴하게국내에 제도적으로 도입하자고 공공연하게 논의하는 공무원 및 정치인들의 저렴한의식수준도 떠올려볼 수 있다. 저자는 언어, 번역이라는 관심사를 중심으로 국가번역기관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면면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강연을 듣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지구상에서 제일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선포한다. 이는 젊은 번역가의 단순한 치기가 아니다. 묵묵히 어려운 여건을 감내하며 지금껏 현장에서 일해온 번역가들의 생각을 함께 전해준 것이기도 하다.

 

다른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과 번역가의 활동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두 가지 경력에서 어쩌면 틀림없이 죽음의 계곡’(38)이 있다는 점이다. 번역가로 치면, ‘죽음의 계곡은 본격적인 경력을 지속하기 전에 겪게 되는 공백 기간을 말한다. 유명한 작가, 유명한 번역가가 아닌 이상, 생존을 위해 N잡러가 되기도 하는 기간이다. 죽음의 계곡에서 번역가는 세상 물정을 배우고,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험대가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창작자로서 이 시기는 누구나 정말 배고픈시기일 것인데, 경제적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로서는 경험과 소재를 모으는 식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번역가로서 지속성을 얻어 경력으로 나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죽음의 계곡을 어떻게 겪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시기를 영혼의 어두운 밤’(49)이라고도 불렀다. 이 시기를 거쳐 살아남은 번역가에게는 언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진리를 발견하고,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죽음의 계곡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실제로 많은 번역가 지망생들이 이 시기를 통과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꺾여버린다.

 

번역은 혼자 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원작자나 여러 에이전트, 출판사, 독자 등과 상호작용이 필요하기도 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배려가 부족하고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번역 과정이 그 자체로 재난일 수 있겠다. 저자의 경험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번역가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외국어·모국어 실력 외에 열린 마음가짐이다. 단순히 출판 업에서 번역가가 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를 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톤 허가 옥스퍼드대학 강연에서 번역가는 영원한 학생입니다. (...) 박식한 대가가 되는 순간, 당신은 죽습니다.”(172)라고 말했을 테다. 번역가야 말로 궁극의 학습자, 궁극의 독자’(175)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넘치고, 통통 튀는 말과 행동에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또 때로는 발칙한표현으로 기성의 관행을 비판하는 사람. ‘번역가로서 구석에 처박혀 닥치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191)라고 강연에서 당당히 말하며, 오늘도 한국문학 도서를 뒤적이는 번역가의 모습이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일에 대한 자부심에 더하여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과 배려심을 지닌 저자의 모습을 보며, 타존재(다른 사람과 비인간 모두를 포함하여)에 대해 주목하고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좋은 번역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저자와 같이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지닌 번역가들이 자부심을 갖고 종사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책 속으로]

[1] “결국 훌륭한 번역가란 명문 대학을 졸업한 번역가나 원어민번역가가 아니라 번역과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번역가이므로.”(30)

 

[2] “문학번역은 두 언어의 피상적 이해를 뛰어넘어 출발어의 문학 전통과 도착어의 문학 전통을 잘 파악한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37)

 

[3] “긴 공백 기간 생존을 위한 안전한 돈벌이도 모색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각오한 후 계속 문장을 갈고닦으며 이것저것 시도하길 바란다.”(39)

 

[4] “한번은 국내 대학에서 강연을 하는데 한 대학교수가 번역 지원금이라는 인센티브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번역 지원금 체제가 불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전문 문학번역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 K팝이 잘나간다고 해서 한국문학도 잘나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블랙핑크에 열광하는 팬들이 갑작스레 황석영 소설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까?”(43)

 

[5] “죽음의 계곡은 번역가가 세상 물정을 배우는 곳이며 자신이 정말로 문학번역이라는 일에 스스로의 운명을 맡기고 싶은지 고민해 보는 기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 죽음의 게곡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돈을 모으지만 경험과 소재를 모으기도 한다. 나는 이 시기에 온몸으로 언어를 익히고 언어 속에서 자리를 잡는다고 생각한다. 번역가들은 육체가 어디에 거주하든 항상 자신의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48)

 

[6] “번역가에게 언어란 항상 돌아갈 수 있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느 고장과도 같다. 죽음의 계곡에서 우리는 이 고장의 지리를 익히며 과연 내가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고 싶은지,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즉 달리 은유하면 죽음의 계곡은 일종의 영혼의 어두운 밤이기도 하다. 이 어두운 밤이 지나면 언어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진리를 발견한다. 그 진리는 자신이 문학번역이 아닌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49)

 

[7] “부모님 말은 절대 들어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기 인생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실수를 해도 자신의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63)

 

[8] “실패란 없다. 성공으로 가는 과정만 있을 뿐. 다시 말해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많은 경우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실패는 뭔가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연구 과정이다.”(137)

 

[9] “미국의 작가이자 번역가 로렌스 시멜은 (...) (번역) 제안서를 제출하는 작업을 정보 수집과 네트워킹의 일부로 보라고 했다. 첫타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성공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보면 일종의 대화의 과정이라고도 했다.”(137)

 

[10] “어떤 텍스트는 번역을 할 때는 그 텍스트를 풀어헤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때 생성되는 초고는 매우 무겁고, 장황하고, 난해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정확하지만 매우 읽기가 거북한, 대한민국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번역이죠. 모든 전문 문학번역가는 풀어헤친 번역을 다시 함축적 언어로 촘촘하게 짜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원서의 내용만이 아닌, 페이스까지 번역해야 하는 건 물론입니다.”(169)

 

[11] “배움은 스스로의 무지를 애도하게 해줍니다. 가장 멀리 여행해야만 에덴이라는 곳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습니다. (...) 번역가는 영원한 학생입니다. 그리고 항상 대가 master가 될 위험에 처해 있죠. (...) 박식한 대가가 되는 순간, 당신은 죽습니다. 차라리 민망함과 창피함 그리고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했을 때의 난감함을 선택하세요. 그런 느낌들은 좋은 징조입니다.”(172)

 

[12] “교수도 일종의 학생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됩니다. 가르치는 행위야말로 학습의 한 형태가 아닐까요? (...) 이건 특히 번역가들에게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번역가야말로 궁극의 학습자, 궁극의 독자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번역가는 자신이 배운 것을 자신의 언어로 구사하니까요. 번역가의 모든 지식과 무지는 번역에서 드러납니다.”(175)

 

[13]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도 자신의 언어가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계인의 교신처럼 자신의 바깥에서 노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버니지아 울프의 여성의 전문직이라는 에세이도, 시애틀 서브루너리 출판사에서 출판될 예정으로 제가 지금 번역 중인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라는 시론집도 이 방법을 묘사합니다.”(198)

 

[14] “한국은 미제국의 종속국 client state이니까요. 문자 그대로 한국은 미국의 클라이언트 client’입니다. 미국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도록 미국에 많은 돈을 내고 미국의 무기를 아주 많이 삽니다.”(210)

 

[15] “한국에서 영어는 지식의 접근 이상인 의미를 가지며, 권력의 접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211)

 

[16] “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작업을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며 게으름 피우는 별 볼 일 없는 번역가 아저씨일 뿐입니다. 그런 제가 저토록 대단한 분을 가르치다뇨? 하지만 우리 둘 중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쪽이 제가 아니라 그분이라니... 이게 바로 미 제국이 저에게 준 특권입니다. 시민권도 아니고, ‘squirrel'이라는 단어를 제대로발음할 수 있는 능력.”(214)

 

[17] “식민주의자들은 절대 현지 언어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배척은 주한 미국인들한테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지 언어를 배울 바엔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자신을 도와줄 한국인 영어 사용자를 찾으려 들죠. 번역은 결국 식민주의자들이 현지에서 지시를 내리기 위한 혹은 그들이 착취하는 주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셈입니다.”(215)

 

[18] “한 언어 안에서의 특정한 단어가 다른 언어에서 100퍼센트 같은 뜻과 정서적 울림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번역은 단어에서가 아니라 단어 사이의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의미는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그 방향으로 손짓할 수밖에 없는 무엇입니다. 이런 절박한 손짓이 바로 번역입니다.”(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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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같은 존재의 고통을 넘어 찾는 삶의 선택지 | 기본 카테고리 2023-10-2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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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저
다산책방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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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같은 존재의 고통을 넘어 찾는 삶의 선택지

- 고통에 관하여 On Suffering

정보라 지음 | [다산북스] | (2023)

 

 

외출할 때면 무더운 여름날에도 반바지를 거의 입지 않는다. 어릴 때 놀이터에 있는 정글짐에 올랐다가 발이 미끄러져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난 후 기다란 흉터가 왼쪽 정강이에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도 내 흉터에는 관심을 갖지는 않지만, 반바지를 입으면 왠지 모르게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고 정강이가 시린 느낌이 들곤 했다. 성인이 되어 같은 부위에 또다시 상처가 난 후에는 외출 시에 반바지를 거의 입지 않았게 되었다. 이처럼 몸에 난 상처는 한동안의 통증과 더불어 고스란히 흉터로 남기도 한다. 흉터는 몸이 기억하는 고통의 증거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 고통에 관하여는 등장인물들의 흉터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흉터에 대한 묘사를 보면, 내 흉터 부위에서도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떤 통증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고통의 감각이 고스란히 기억나는 경우도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을 보고, 나는 현실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가이자 문학연구자, 그리고 번역가인 저자가 고통에 관한 고찰을 본격적으로 하려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에게 고통이란 주제는 삶에 대한 탐구의 출발점에 불과했다. 환상문학, SF가 어우러진 단편집 저주토끼와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에서도 고통을 중심으로 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고민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몸은 존재의 감옥, 고통은 삶의 그림자

 

이 세상에 고통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특별한 수행자나 소수의 취향은 예외로 하자. 지구상에서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고통을 갈망하기 보다는 회피하려 할 것이다. 인내심이 약한 나는 누구보다도 고통을 두려워하기에, 고통은 무조건 피하려 한다. 정글짐에서 또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절박한 바람에는 주목하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소설에서 한 제약회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진통제를 개발한다. 세상에서 고통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종교집단이 있었으니, 이들의 교리에선 고통의 존재가 핵심이었던 까닭이다. 그들은 모든 삶의 경우, 고통과 절망을 통해서만 지혜와 초월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들의 교리에서 고통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들에겐 고통만이 진실이었던 것이다. 제약회사와 교단, 두 진영의 대립과 갈등은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에 대처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동상이몽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생명을 지닌 존재의 고통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부부가 경영하는 제약회사의 아들 가 호수에서 만난 춤추는 불빛이 대답한다. “네 몸이 고통의 근원이자 쾌락의 근원이고, 모든 인지와 정서와 감각의 근원”(63)이라고. 불빛에 따르면, 고통은 인간이 육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육신()이 곧 무덤이고 여겼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128)된 존재로 그려진다. 몸을 바라보는 관점은 고대 서양철학과 종교 집단의 주장이 결을 같이 하는 셈이다. 존재의 고통이 에 기인한다는 것. ‘춤추는 불빛이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빛은 무형의 존재, 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몸을 지닌 존재는 어떤 경우든 살면서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이때 몸은 상처로 인한 고통의 기억을 때로는 흉터의 형태로 보존한다. 또 몸의 고통은 존재의 감정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존재에 기입되는 상처는 우리의 신체 및 마음의 상처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제약회사의 경영주였던 부모로부터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삶이 망가져버린 에게는 무기력, 우울증, 자해 시도, 트라우마와 같은 상처의 흔적이 남았다.

 

종교집단에서 우려하던 문제는 결국 우리가 기피하는 고통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반면 제약회사는 몸의 통증을 지각하는 경로를 어떻게 차단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진통제가 하는 역할이다. 우리는 고통을 싫어하지만, 고통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다. 몸의 감각과 인지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고통은 존재의 지속을 도와주는 경고 신호가 된다. 따라서 고통 없는 상태에서 존재는 불시의 위험에 극도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고통이 사라져버리면 집단 전체가 소멸해버릴 수도 있다. 지극히 실존적인 문제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에게 이런 상황은 딜레마다. 이제 고통은 존재가 불가피하게 짊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이란 우리 삶에 늘 동행하는 그림자나 다름없다.

 

제약회사 경영주의 아들이었지만 어린 시절 늘 아프고 고통스러워했던 는 호숫가에서 불빛과 대화를 나눈다. 그는 불빛에게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고통은 몸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불빛의 대답에 이어, ‘몸이 없이, 고통 없이 존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빠를 걱정했던 어린 은 오빠가 고통을 느낄 때 약을 먹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점에서 가 불빛에게 한 말은 또 다른 질문을 내게 던진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제약회사를 물려받은 은 사이비종교 교단의 와 마주한다. 태는 제약회사에 폭탄테러를 가하여 경의 부모를 죽게 하고 체포된 상황이었다. 갈등을 빚던 집단의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흉터를 발견하는 장면은, 각자 다른 이유로 얻은 흉터를 들여다봄으로써 서로의 고통을 탐색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은 몸을 지닌 존재는 그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기에, 어떤 환희나 쾌락, 고통과 괴로움도 이를 감각하는 존재 자신만의 것이라고 일러준다. 신체의 물질성에 따른 고통은 존재에 필연적이면서 동시에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오빠 에게 약을 먹으라고 말한 것도, 결국 오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목격한 상황을 떠올려본다. 버스가 한 정거장에서 서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자, 곧이어 할머니 두 분의 격앙된 목소리가 버스 전체로 퍼져나갔다. 두 분의 대화는 대략 이랬다.

아휴, 왜 내리고 있는데 밀고 그래요?”

아니 내리는 건지, 막고 있는 건지 모르겠잖아요.”

내가 허리가 아파서 빨리 못 내려가요.”

 

할머니 한 분은 만성적인 허리 통증으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야 하는 분이었는데 당신의 처지를 이해받지 못해 분노하셨다. 다른 할머니는 성격이 다소 급한 분일 수도 있고, 허리가 아닌 다른 신체 부위에 고통을 겪고 계실지 모르는 일이었다. 중요한 건 별개의 신체를 지닌 존재로서 고통은 지극히 개별적이라는 것, 그렇기에 개인의 고통을 타인이 온전히 이해할 것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마찬가지로 타인은 내 정강이의 흉터를 보고 상처를 입었을 당시에 무척 아팠을 것이라고 공감할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내가 고통을 두려워한다고 해도, 타인이 내 고통을 대신해줄 수도 없다. 몸의 흉터는 개별적인 존재의 상처가 고통을 동반한 회복 과정을 거치며 몸에 남은 흔적, 특정 신체의 기억이다. 흉터에는 고통에 얽힌 개별적인 서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는 각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흉터라는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잠시 서로에게 끌리는 듯했지만, 흉터만으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고통에 관해서는 존재와 존재 사이에 근본적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드리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소설은 내게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우리가 삶에서 불가피한 고통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여기에 고통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빠질 수 없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통증과 진통제에 관한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접하고, 이를 소재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에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이 넘쳐난다. 사이비종교가 개인과 사회에 가한 직·간접적인 폭력, 약물 남용과 중독, 테러에 의한 희생 등이 이어진다. 제약회사에서는 무모하게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또 부모로부터 성폭력과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흉터와 트라우마를 간직한 과 같은 인물들도 등장한다. 비록 소설 속의 현실이지만, 현실만큼이나 엉망진창이고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지 않은가. 이때 상처 입은 이들을 사회적 존재로서 고립되고 관계로부터 지속적으로 이탈되면, 회복불능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상처 입은 인간이 치유와 회복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소외되고 고통과 슬픔 속에 잠식되어 삶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통과 더불어 사는 법

 

소설을 읽으며 깊은 내상을 입었던 의 운명이 줄곧 궁금했다. ‘다행히이야기는 희망적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현실에서 늘 부당하게 고통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삶도 이야기에 담겨 있다. 트렌스젠더 형사 의 삶뿐만 아니라, ‘동성의 결혼, 그리고 두 사람이 자신들의 아이를 갖기로 하며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설계하는 것이다. 소설 곳곳에서 옅게 드러나는 삶의 모습들은 거친 땅을 뚫고 막 모습을 드러낸 연초록 새싹처럼 느껴졌다. 몸을 지닌 존재들이 마침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발견은 우리가 삶에서 어떤 선택지를 상상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테다.

 

의 부모는 안전함과 신뢰에 바탕을 둔 관계 속에서 자녀들을 돌보지 않았다. 반면, 부부인 9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떨어져 지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재회한 뒤, 관계에 대한 확신 속에서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다시 쌓아나갈 수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존재가 보여주는 온전한 삶으로의 길, 회복을 향한 삶의 의지가 연대감 속에 비로소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서 상처 입은 삶이 고통을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엉망진창인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출발점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신뢰와 교감에 있었다.

 

존재의 고통,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잘 보살펴야 덧나지 않는다. 소설은 존재가 상처를 돌보는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안전한신뢰감 위에 교감을 쌓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흉터투성이의 는 서로에게 잠시 끌리는 듯했다. 이들 사이에 고통에 대한 공감이 있었을지 모르나, 신뢰감 속에 구축된 교감이 없었다. ‘의 몸과 마음에 오랫동안 심각한 고통과 상처를 안겨준 부모를 사라지게 해주었다. 그러나 고통의 제거가 곧바로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그의 삶을 통제하며,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을 되갚아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와 지속될 수 있는 부정적인 관계를 단호히 거부한다. 의미 없는 고통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이제 은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고통은 또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와 다른 상황은, 이제 이 안전한 관계망 속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상처 입은 존재가 여럿이 함께 고통과 마주하며 삶을 지속할 용기를 건네줄 것이다.

 

상처와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길은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정신과의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외계인-‘인간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견딘다’(284)는 배움을 에게 전한다. 이때 삶의 의미는, 사이비종교집단이 신도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던 삶의 의미와는 구별된다. 흉터를 통해 고통의 기억과 마주하여 자신의 존재 의미를 탐색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고통과 두려움에 삶이 고립되거나 심지어 잠식되지 않으려면, 내 몸과 마음에 남은 흉터를 살펴보고, 자신의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소설이 끝날 무렵 과 어머니는 을 쓰다듬고 토닥거리며 서로를 포옹한다. 이는 숱한 상처와 흉터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당당히 살아갈 자격이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이 소설은 고통을 매개로, 상처투성이에 때로는 엉망진창인 우리 삶을 탐구하고 끌어안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가 있던 교단에서 고통이 삶의 본질이라 보았던 점은 틀리지 않았다. 몸은 모든 고통의 근원이며 감옥인 것이다. 하지만, 몸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반이기도 하다. 교단은 고통만을 숭배한 나머지, 타인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했으며, 나아가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려 했다. 결국 교단의 왜곡된 교리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신뢰가 아닌, 혐오와 파괴적인 관계로 사람들을 이끌었던 셈이다. 이는 삶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했다. 신뢰에 바탕을 둔 타인과의 접촉과 교감으로 형성된 안전한관계망이야말로, 존재가 삶을 붙들고 계속 나아가게 한다. 이때 존재와 존재 사이에 전달되는 온기와 연대감은 삶을 지속시키는 연료가 되어준다. 몸을 지닌 존재의 삶에서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이 이루어낸 포용과 연대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이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통과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는 한 말이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고통에 관한 진실을 탐구하면서, 삶이란 온몸으로 마주해야하는 과정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저자가 삶의 고통에 보다 취약한 존재들에 대해 연민과 공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때 작은 위안을 받았다.

 

 

 

[책 속으로]

[1] "고통과 쾌락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 고통과 쾌락은 같지 않지만, 그 근원은 같아.

빛나는 것이 효에게 답했다.

- 네가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느끼는 이유는 몸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야. 네 몸이 고통의 근원이자 쾌락의 근원이고, 모든 인지와 정서와 감각의 근원이야.(63)

 

[2]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128)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128)

 

[3] 경이 함께 당황했다. 현이 질문을 조금 구체화해서 다시 물었다. "왜 저예요? 왜 결혼이죠?"

경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141-142)

 

[4] "교단은 고통을 숭배했으므로 인간의 고통을 통제하거나 경감시키거나 제거하려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멸하고 적대시했다."(188)

 

[5] "고통은 위험신호이며 우리 몸이 세상과 의사소통하는 방식이라고 강연에서 지도자는 말했다. 그러므로 고통을 차단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가 위험을 자각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고통은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230)

 

[6] "물리적인 신체를 갖는다는 것은 욕구의 발생과 그것의 한시적인 충족이 반복되는 생존의 투쟁이며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또한 고통이라는 쓸쓸한 결론이었다."(234)

 

[7] "그리고 경은 깨달았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다.

부모가 이룩한 세계로, 경을 가두었던 과거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다."(265)

 

[8] 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 회사하고 평생 다시는 관련되지 않을 거야."

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일해서 먹고살 거야."(266)

 

[9] "지구의 인간은 우리와는 다른 신경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는 내내 삶의 일부로서 고통을 느끼고 삶의 끝으로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고, 결국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어떠한 존재 방식인지, 무엇을 바라고 어떤 이유에서 그 고통을 견디는지 알고 싶었습니다."(284)

 

[10] "몸을 가진 존재는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지구에서 그것을 배웠습니다."(289)

 

[11]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301)

 

[12]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승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推動)이었다."(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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