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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페터 피셔 저/이승희 역
다산초당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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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다시 쓰는 시시포스의 과업’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1-01-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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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명이란 무엇인가

폴 너스 저/이한음 역
까치(까치글방)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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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 5단계로 이해하는 생물학

폴 너스(Paul Nurse) 지음 | 이한음 옮김 | [까치]

 

생명을 다시 쓰는 시시포스의 과업

 

대학 시절에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생명의 본질적인 특성을 설명해보려는 시도였다. 물론 슈뢰딩거가 활용하는 다양한 물리학 개념을 따라가기엔 벅찼지만, 생명 또는 생명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에 대한 슈뢰딩거의 신념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신념은 종교적 신념과는 달랐다. 그 대신 열역학법칙이나, 볼츠만의 통계적 관점에 토대를 두고 타당한 논리를 구성하여 설명해보고자 했다. 물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한 물리학자의 대담한 제언이 얼마나 많은 자연과학도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떠올려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양한 학자들이 동일한 제목을 걸고 생명현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후대의 우리는 많은 이들이 생명 현상에 대해 설명하려고 고심했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작업을 요구하는지는 지금까지 나온 책들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한 생물학자가 이 커다란 주제를 건드린 셈이다. 이번에는 영국 유전학자 폴 너스가 집필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대 생물학이 바라보는 생명 현상을 살펴본다. 그는 세포 분열의 조절에 관한 주제를 오래 연구했고, 암치료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하지만 그는 효모균을 주요 실험 대상으로 하여 세포 분열 주기에 관한 메커니즘을 연구했고, 여기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을 읽은 후의 인상은, 저자가 슈뢰딩거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시각을 반영했던 기획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대신 저자가 생명 현상을 정의하는 여러 측면을 일관되고 통합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정리하고자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부단히 발전하고 있는 최신 생물학의 이해에 바탕을 둔 설명이기에 새롭게 배운 부분은 상당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잡하고 잘 드러나지 않는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생명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밝혀진 세부 사항과 지식들을 포괄적이고 전체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이 책은 생물학 서적이지만 보통 등장하는 세포 혹은 유전자를 설명하는 그림은 단 한 점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물 흐르듯 다섯 가지 키워드를 따라 생명 현상을 설명하지만, 어떤 문장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마 몇 시간의 수업과 책을 읽어야 하는 밀도 있는 내용들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가 핵심적인 사항들만을 뽑아서 설명해 나가기 때문에 책이 빨리 읽히진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책의 성격상 저자가 설명하고자 했던 생명 현상의 특징적인 다섯 가지 측면에 대해, 그리고 내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간추려 각각 두 문장 정도로 요약해보았다.

 

(1) 세포: 세포는 모든 생물의 구조적/기능적 기본 단위로서, 이 세포의 분열은 생물이 성장 및 발달하는 토대가 된다. 우리는 엄청난 수의 신체 세포와 그 외의 세포가 모여 끊임없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하는 존재다.

(2) 유전자: 유전자는 생명의 설계도로서, 생명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하는 명령문이다. 이중 나선 구조로 이루어진 유전자는 생물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하며, 오랜 시간을 견딘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

(3)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자연선택은 다윈이 제안한 모든 생물의 진화 메커니즘이다. 유전학적 관점에서 생명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지려면, 개체가 번식할 수 있어야 하고, 유전 체계를 지녀야 하며, 이 체계에 다양성이 존재하여 변이를 허용해야 한다.

(4) 화학으로서의 생명: 생명이 어떻게작동하는지 생화학적 관점(특히 생명을 물리·화학적 기계로 바라봄)에서 설명한다. 선형 단백질 중합체 사슬이 3차원 구조를 갖추며 독특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갖게 되어, 생명활동에 토대가 되는 촉매 역할을 비롯한 모든 화학 반응을 수행하게 되었다.

(5) 정보로서의 생명: 전체로서 기능하는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정보의 이동과 저장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세포막으로 구분하는 생명 내부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생명은 외부 세계와 내부 상태의 정보를 끊임없이 모으고 활용하여 이에 대응한다.

 

저자는 이렇게 생명현상을 몇 가지 주요 키워드에 입각하여 설명했는데, 각각이 사실상 따로 떨어진 내용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는 단지 관점을 옮겨 생명의 다른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저자 폴 너스는 오랜 시간 (효모)균의 세포 분열을 기반으로, 그 중에서도 세포 주기를 제어하고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고 그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가 분열하는 현상 그리고 외부 세계와 분리하는 세포 막 내부의 모든 화학 반응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연구 결과는 암세포에 대한 이해와, 치료에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었다. 책에서 줄곧 드러나듯이 그는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더할수록 우리가 생명 활동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입장을 취한다.

 

자연선택개념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생명의 진화 기작이다. 이번 독서는 유전학의 발전 이후 세포 혹은 분자 수준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적 측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과 동일한 대상으로 분열하는 원핵생물과 달리 대부분의 다세포 생물들은 진핵생물로서,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 체계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곧 진화의 관점에서 어떤 생물 집단의 유전 체계에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변이의 가능성이 높고 이를 대물림할 수 있다면 그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저자가 언급한 사항 세 가지 중 마지막 항목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생물이 경쟁에 유리한 유전자 변이체를 지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생물이 죽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경쟁에 유리한 유전자 변이체를 지닐 가능성이 있는 다음 세대가 그들을 대체할 수 있게”(79)되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이 격어야만 하는 현상인 죽음이 내겐 새롭게 다가왔다. 다시 말해 자연은 각 개체가 소멸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매번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변이를 도입하거나 발현하여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자연이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생명체에게 요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우연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전에는 죽음이란 현상을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생물학을 이해하게 되면 오히려 스토아 학파나 몽테뉴처럼 죽음에 초연해지는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계(세포막) 밖의 세계에 대응하여 경계 안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생존해야 하는 입장에서, 생명의 소멸, 죽음 역시 생명 활동의 일부라는 점에 비로소 수긍이 간다.

 

저자는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다섯 단계를 지나 생물학 연구의 의미와 역할을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전체적인 인상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과학자로서, 과학자가 적극적으로 세계에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생명의 화학적, 정보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생명을 이해하는 능력뿐 아니라, 생명 활동에 개입하는 능력도 늘어난다.”(165) 그는 앞선 장에서 시도한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새로운 장에서 새로운 기술 가능성과 그 기대를 이야기하고, 이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들도 언급한다. 다만 유전학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인지, 황금벼와 같은 유전자 변형(GM)작물과 합성생물학에 대해 낙관으로 일관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 부분은 아직 보다 공정하고 지속적인 후속 연구를 통해 활용 가능성과 우려 사항, 가능한 부작용 등에 대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에 의한 인위적 선택으로 품종을 개량해온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현대 생물학에서 유전자 편집 등을 통해 생물체에 변이를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결과가 인간이 자연에 주고 있는 스트레스에 한 가지 더 추가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우려는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 준 사례들을 고려할 때 타당하며, 그래서 전문가뿐만 아니라 비전문가 모두가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전자 변형 작물이나 새롭게 만들어낸 생명체가 인간과 함께 사는 모든 생물과 환경에 예기치 못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닐지는 분명히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이 부분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우려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이런 사항들은 사회 전체가 주도하여 공공의 논의와 다양한 관점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요구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본적으로 생명 현상에 대한 개별적이고 세세한 지식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부분을 넘어 생명을 포괄적이고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을 이해하는 다섯 단계의 개념 중에서도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 현상을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본인이 언급한 바에 비추어 이해해보면, 생명은 복잡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계라는 시각에서 더 나아가 목적을 가지고 전체로서 작동하는 살아 있는 화학적/물리적 정보 기계이다. 곧 생명은 외부와 내부의 정보를 관리하고 조정하며 제어하는 존재로서 바라보고 있다.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가능해진 유전자 발현 메커니즘은 유전자나 촉매 반응에 주로 의존하는 효소가 일종의 스위치로서 기능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스위치 제어는 생명이 존속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유지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대물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은 다른 생물학 관련 서적과 달리 단 한 점의 그림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의도는 무엇보다 세세한 지식 보다는 생명 현상에 대한 맥을 하나의 호흡으로 설명해보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싶다. 다만 밀도 있고 핵심적인 내용을, 쉬지 않고 들려주는 것 같아 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이 군데군데 있었고 다소 지치는 지점이 있었다. 이런 부분은 저자의 설명이나 옮긴이의 주석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정리하면, 이 책은 아주 간결한 언어로 담백하게 생명 현상에 대한 특징들을 담아 낸 책이다. 물론 간결한 언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쉽거나 가벼운 것은 아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유전학자이자 암 연구에 오래 매진해온 대가 나름의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명 현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맥을 짚어준다고도 정리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쩌면 이 작업은 결코 도달하기 힘든 목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생명 현상을 다시 쓰는 이러한 작업은 인류가 생명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깊게 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시도해야할 시시포스의 과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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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와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 | 기본 카테고리 2021-01-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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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저/신승미 역
나무의철학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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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삶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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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The Gospel of Eels: Sons, Fathers, and the World's Most Mysterious Fish)

패트릭 스벤손(Patrik Svensson) 지음 |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뱀장어와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자로서 현대 생물학의 아버지라고 여겨진다. 그는 터키 연안의 큰 섬 레스보스에서 머무는 동안 동물과 자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에 그는 자신이 저술한 동물의 역사17세기 까지 자연 과학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상황을 다르게 보면, 인간의 자연과학 탐구 방법론이 2,000년 넘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특히 생물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뱀장어 연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뱀장어의 내부 장기 배치와 아가미 구조에 대한 글을 방대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연구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혁신했던 프로이트 역시 젊은 시절 뱀장어 연구로 연구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청년 프로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 관찰 기법에 따라 아드리아해 뱀장어를 연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로이트 사이에는 2,000년의 시간 격차가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뱀장어를 매우 진지하게 연구했다.

 

스웨덴의 신문 기자 패트릭 스벤손은 자신의 책 ,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에서 줄곧 유럽 뱀장어의 생태에 초점을 맞추고, 이 뱀장어가 얼마나 신비에 싸인 존재인지 설명한다. 이 책의 뚜렷한 특징은 저자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교대로 전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홀수 장에서 뱀장어에 대한 연구와 역사적 자료를 소개한다. 이어서 짝수 장에서는 가족과 관련된 개인적인 기억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와 추억을 뱀장어를 매개로 회상하고 있다. 평생 도로포장 인부로 일했던 아버지와 보육원을 운영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노동자 계층의 자녀였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했던 기억을 돌아보며 뱀장어가 자신과 아버지 사이를 이어준 연결고리였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뱀장어가 우리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통찰하게 해주는 존재임을 이야기하며 두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뱀장어는 우리에게 식당 메뉴에서 흔히 보는 존재이지만, 의외로 뱀장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특히 이들은 비밀스럽고 독특한 본성 때문에 오랫동안 산란지가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설 제목처럼 대서양에 위치한 광막한사르가소 바다가 유럽 뱀장어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정도다. 그렇다면 알에서 깨어난 조그만 뱀장어들은 저자의 고향까지 6,000 km가 넘는 대장정을 거쳐 왔다는 의미가 된다. 도대체 몇 센티미터 밖에 안 되는 뱀장어들이 대서양의 서쪽 한복판에서 어떻게 북유럽 해안까지 이동할 수 있었을까. 이 사실만으로도 신기하지만 뱀장어가 여러 번 변신을 하고, 바닷물과 민물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알게 되면 뱀장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동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뱀장어의 비밀스러운 기원과 생태를 알아내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탐구와 그 여정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대서양 한 복판에 있는 사르가소 해가 유럽 및 아메리카 뱀장어가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다.)

 

뱀장어는 알에서 부화한 후 네 번의 변태를 거쳐 다시 태어난 산란지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뱀장어의 엄청난 이동거리를 고려한다면 이 작고 평범해 보이는 뱀장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현재 인간은 뱀장어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 긴 여정을 따라 이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저자는 아마도 인간이 이 질문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뱀장어는 멀리 떨어진 강과 웅덩이가 있는 민물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살아도 어느 시기에 알을 낳기로 결정하면 자신의 갈 길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뱀장어의 특성을 보고 사람도 뱀장어처럼 자신이 선택한 길에 그토록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49)라고 묻기도 한다. 인간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뱀장어의 관점에서 이 존재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해양 생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의 집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뱀장어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슈미트는 뱀장어의 유생 상태를 찾아 그 산란지를 밝히기 위해 대서양에서 20년 가까이 뱀장어를 추적했던 인물이었다.

 

저자는 요하네스 슈미트의 경이로운 행적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넓어졌다면, 분명 슈미트와 같이 분명한 목표를 가졌던 사람덕분일 것이다. 이 인물이 보여준 삶의 행적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는 뱀장어의 본능과 숱한 실수와 방황을 겪으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교차되어 내게 다가왔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뱀장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 채 태어나 나이가 먹고, 자손을 낳으며 소멸에 이른다. 하지만 저자는 슈미트의 삶을 보고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마침내 의미를 찾을 수 있다”(96)라고 평가한다. 내게는 저자의 언급이 파우스트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조물주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고 말하는 유명한 대목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좌충우돌하고 방황하는 존재이지만, 뜻하는 바가 있는 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게다가 슈미트는 오랜 방랑 끝에 인류에게 뱀장어에 관한 많은 중요한 사실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책에서 뱀장어는 아마도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저자와 아버지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뱀장어에 대해 탐구해왔던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저자는 무언가의 근원을 찾는 사람은 또한 자신의 근원을 찾는다”(92)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단지 뱀장어의 기원만을 염두에 둔 언급이 아닐 것이다. 회고적인 성격의 글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근원 또한 탐색한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정은 악성 종양 때문에 소멸(죽음)로 나아간 아버지의 삶을 되짚어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의 산란지로 되돌아가는 뱀장어들의 여정과도 닮아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뱀장어는 자신이 부화한 곳에 이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좌절된 열망이 어쩌면 방황하는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뱀장어와 인간 모두는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뱀장어의 신비로운 생태에 더하여 이들 앞에 큰 시련이 놓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 위기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로 다양한 요인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영향으로 뱀장어가 바이러스와 기생충에 감염되고, 확산되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만든 산업용 독성 물질을 비롯하여 발전소의 수문과 둑 같은 물리적 장애물이 개체 감소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오랫동안 문제가 되고 있는 과도한 뱀장어 포획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가 뱀장어의 멸종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모든 요인들이 뱀장어의 생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뱀장어의 멸종 위기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뱀장어는 그 생태적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멸종 위기종의 판정처럼 번식개체수로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뱀장어가 정확히 얼마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뱀장어 낚시를 하며, 생물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배워온 저자는 독자에게 뱀장어의 소멸에 대한 경각심을 마지막으로 일깨워 준다.

 

정리해본다. 이 책은 뱀장어에 대해 알고자 했던 사람들의 탐색 과정을 따라가면서도 저자의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저자는 뱀장어가 매력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아마도 이 대상이 지식과 믿음 사이의 교차점이기 때문’(37)이라고 언급한다. 이건 존재를 이해하는 일에 틈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은 어쩌면 끝나지 않을 탐색 과정으로 남게 되는 일인지 모른다. 유럽 뱀장어에게 사르가소해는 세상의 끝이지만 한편으로 세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물론 개체 대부분은 이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멸된다. 인간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뱀장어가 모두 같은 목적지를 지향하지만 저마다 다른 능력을 지니고, 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정확히 같지도 않다고 전한다. 뱀장어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밟아가는 삶의 여정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그 근원인 죽음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이와 같이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지만, 여기에 이르는 여정은 각자가 다르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여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자문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담긴 뱀장어의 이야기는 놀라운 지식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은유다. 그리고 나는 저자의 통찰을 믿기로 한다. 저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뱀장어와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들은 내게 줄곧 이런 삶의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해주었다. 이 책은 지금 내 삶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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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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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20세기를 살았던 문학비평가의 자서전 - 《나의 인생》 | 기본 카테고리 2021-01-1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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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인생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저/이기숙 역
문학동네 | 2014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개인의 내밀하고 자세한 기록이자, 20세기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었던 가장 참혹한 역사를 겪은 인물의 생생한 역사적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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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Mein Leben

: 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Marcel Reich-Ranicki) 지음 | 이기숙 옮김 | [문학동네]

 

 

파란만장한 20세기를 살았던 문학비평가의 자서전

 

80세가 되도록 하루에 두 번 씩 면도하는 노인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태어나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세기를 마무리하던 1999년에 자신의 삶을 기록한 문학비평가가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을 집필하던 당시까지도 하루에 두 번 씩 면도한다고 언급했다. 다소 강박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동을 보였던 이유가 뭘까? 그 실마리를 찾으려면 약 60년 전에 저자가 겪었던 체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선 회고록의 제목은 나의 인생이다. 저자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라는 인물이며, 20세기 독일 최고의 문학평론가였다. 좀 더 단서를 추가하자면, 그는 폴란드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나치 점령기에 폴란드의 유명한 바르샤바 게토에서 있었고,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살아남았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마르셀이 80세가 다 되도록 하루에 두 번 면도를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게토에서의 체험과 관련이 있었다. 나치에 의해 바르샤바 게토에서 수용자로 생활하던 어느 날 나치는 유대인 이주를 명령한다. 이 때 이주명령은 유대 사회에서 추방, 곧 가스실에서의 죽음을 의미했다. 이주대상자에 선정되는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나치 협력 기관에 고용되지 않은 경우, 그리고 특히 옷차림이 지저분하고 추레한 사람, 거기다 면도까지 하지 않은 유대인은 곧장 가스실로 가는 줄에 가서 섰다’(231). 특히 저자처럼 머리가 검었던 이는 수염이 자라 금방 지저분해져 보일까봐 하루에 두 번 면도를 하게 되었다 것이었다. 그러니까 게토에서 면도를 잘 하는 것은 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습관이었던 것이다. 미미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특히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 에피소드를 통해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문득 대학시절 수강했던 화학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강의를 맡았던 한 노교수는 어느 날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에 관한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전쟁 중에 가족 상당수가 북한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때 상당히 흥분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전쟁이 끝난 지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그런 기억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오셨던 것 같다. 전쟁의 상흔을 가졌던 사람의 모습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도 이런 맥락에서 이 경험을 분기점으로 하여 다른 인물이 된 것만 같다. 특히 마르셀은 연로하신 두 부모가 가스실로 가는 기차를 탈 때까지 부모를 배웅해야 했다. 어느 날 저자는 이 기차를 탈 뻔했던 아내를 구출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극한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형선고를 받고 가스실로 떠나는 열차를 바로 앞에서 본 사람은 그 상흔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240)고 말이다.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

 

저자는 게토에서 언제나 함께 하기로 약속하며 결혼했던 아내와 가스실로 향하게 될 열차로 가는 도중 극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게토 지역을 탈출하고, 어느 폴란드 식자공 부부의 집에 숨어 나치의 폴란드 점령기를 보내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저자는 참혹한 게토에서의 삶에도 사랑은 있었다고 증언한다. 다만 사랑하는 연인들을 매일 같이 매순간 짓누른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내일도 살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고 한다. 죽음의 공포 속에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원체험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생존자들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저자 마르셀은 전쟁을 겪고 살아남았지만 한 가지 의문을 끊임없이 되묻는다. “왜 하필 우리가 살아남았을까?”(280) ‘형은 왜 죽어야 했으며, 자신은 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말이다. 물론 이건 우연이긴 했지만 이후 70년 간 살면서 이 질문을 계속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경험 자체가 없는 나에게는 지나치게 단순화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를 일종의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으로 이해한다. 마르셀은 이 느낌을 이렇게도 표현하고 있다. “동포가 죽어갈 때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은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272) 이러한 감정은 어떤 사고로 가족과 지인을 잃었을 때, 특히 현장에서 같은 경험을 한 생존자에게도 볼 수 있는 감정으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가족이나 지인, 그리고 옆에 있던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감과 더불어 겪게 되는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나치 시대에 수용소에서 생존했던 또 다른 작가 프리모 레비의 증언에서도 생존자로서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포에 대한 부채의식을 읽은 기억이 있다.

 

 

휴대용 조국이 된 문학

 

괴테를 비롯한 대문호를 배출하고, 칸트와 헤겔과 같은 대철학자를 배출한 독일이 20세기에 유대인 절멸이라는 잔혹한 인간성의 극단을 낳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종종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20세기를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새겨진 집단적 트라우마로부터 저자를 구원했던 건 무엇보다 문학, 특히 독일 문학이었다. 나치 병사들이 유대인들에게 모욕과 굴욕을 안기고 수모를 주었을 때 저자는 문학을 통해 견디고 스스로를 돌볼 힘을 유지했던 것 같다. 특히 아내가 된 토지아와 문학을 이야기하며 기쁨을 느끼고, 문학을 알았던 이유로 게토에서 번역 일을 하며 버틸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게토에서 탈출하여 폴란드 부부 집에서 숨어있을 때에도 문학은 유용했다. 마르셀은 매일 밤 주인을 도와 일을 하면서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자신이 읽은 문학을 이용하여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자신의 민족을 핍박한, 그것도 절멸시키려 했던 국가의 언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이 언어로 이루어진 문학을 사랑하고 알리는 역할을 했던 저자의 입장이었다. 저자에게 이런 상황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한 재일동포 작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모국어로 익히고 야만의 시대를 겪고 살아남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전후 일본 문학을 예찬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 결과 일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면 마르셀의 경우와 비교하여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의 정서로 바라보았을 때 이런 상황은 사실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저자가 폴란드에서 태어났음에도, 마르셀에게 독일어는 모국어나 다름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10대가 되기 전에 이미 독일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독일어로 독서를 시작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명 평론가로서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와 교류한 경험을 기록하는데, 그 중에서 20세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예후디 메뉴인과의 인연을 기록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1940년대 바르샤바 게토 시절, 아내 토지아와 함께 이웃집에 초대되었는데, 음반을 통해 메뉴인의 연주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당장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시기에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처음 듣는 메뉴인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였다고 증언한다. 저자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 음악을 들었던 아내와 이웃들은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저자는 바르샤바에서 메뉴인의 연주를 직접 보았고, 1960년 초에는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메뉴인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1978년 가을, 중국 난징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메뉴인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특히 흥미롭다. 메뉴인은 마르셀에게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유대인이군요. (...) 우리가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독일 음악을 연주하고 독일 문학을 전파하는 것, 그건 정말 좋은 일이죠.”(476) 고국과 멀리 떨어진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다 서로 말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을 두 사람을 상상해 본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유대인 예술가 혹은 평론가의 심정이란 이런 것일까.

 

저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반복해서 언급한 것은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폴란드가 나치로부터 해방된 후 저자는 곧바로 아내와 폴란드 장교로 입대했다. 이후 정보장교 및 영사관 업무로 베를린과 영국을 다녀오고 귀국했지만, 폴란드 공산당 노선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출판사에 배치되어 독일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며, 독일 작가들과도 교류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는 이후에 마르셀이 연구여행을 가장하여 독일로 망명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생존을 위해 하루아침에 문학평론가로서 본격적으로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자가 기록한 이런 에피소드를 따라가 보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삶의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내가 가는 곳에는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문학이 있었다”(274)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인상도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 솜씨에 힘입은바 크겠지만 말이다. 마르셀에게 문학은 그의 삶을 이끌어준 신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문학, 그것도 독일 문학이 내 휴대용 조국”(335)이라고 했다. 조국 폴란드를 떠나 독일로 망명한 사건도 그에겐 독일 문학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을 말해주는 것 같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방랑하던 유대인들, 특히 작가나 예술가들에게 문학 또는 예술은 정말로 이들의 휴대용 조국이었다는 견해에 공감할 수 있었다.

 

문학비평가라는 자리는 태생적으로 작가들과 가까워지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이 늘 좋은 것도 아니며, 비평가의 열렬한 찬사와 호평에도 불구하고 평을 듣는 작가들은 으레 비평가가 비판한 것을 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평론가로서 그가 많은 작가들과 경험했던 우정과 반목을 기록한다. 저자는 비평가와 작가와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는 평론가가 작가의 최근작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471) 그러니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 하인리히 뵐이나 지크프리트 렌츠와 같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경우도 있지만, 페터 한트케처럼 저자를 증오한 나머지 심지어 마르셀이 죽기를 바랄정도였던 관계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우선했던 것은 자신의 삶에 기쁨을 주는 존재로서의 문학, 곧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에 대해 마르셀은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되풀이해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 그것은 바로 문학에 대한 사랑 없이는 비평도 없다는 말이다.”(393) 저자에게 문학은 세계 변화를 목표로 한거창한 기획으로서의 문학이 아니었다. 대신 문학이 자신에게 주는 기쁨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길 원했던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아내와의 대화였다. 저자는 아내의 80세 생일날 자신의 자서전을 마무리하는 말을 생각했다며, 조용히 시집을 읽던 아내에게 머뭇거리다 알려준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죽음의 고비를 함께 넘고 60년을 지켜보면서 배우자를 바라보는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보았다. 두 사람은 가스실로 떠나는 열차로 가는 행렬에서 극적으로 함께 탈출했고, 극도의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를 함께 겪었다. 게다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부모들을 배웅해야 했다. 또 수많은 지인들이 가스실에서 사망했던 반면, 자신들은 왜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평생 물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외도 경험도 솔직하게 밝히고 있는데, 아내를 힘들게 했던 이런 경험도 결국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참혹한 시기를 함께하면서도 절대로 헤어지지 않기로 약속했고,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마르셀이 마지막에 사용한 문구는 꿈이야, 현실일 리가 없어, 우리 둘이 함께 있다니.”(497)였다. 이 소박한 문구처럼, 저자는 게토에서 탈출할 때에 나이든 배우자가 생일날 편안히 시집을 읽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말 그대로 두 사람은 꿈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서로 느꼈을 법하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마르셀의 자서전은 감동적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이 책에는 동료 독일 작가들의 언행과 역사가 논쟁을 통해 전후 독일 지식인 사회에 지배적이었던 독일인들의 견해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해국의 지식인들이 갖기 쉬운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비롯하여, 피해자의 관점에 공감하지 못하고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독일인들의 시선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개인의 내밀하고 자세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20세기에 인간이 경험할 수 있었던 가장 참혹한 역사를 겪은 인물의 생생한 역사적 증언이기도 하다. 나는 저자가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에 맞서 이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사회에 살고 있다면, 바로 이런 인물들의 삶과 용기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췌문 모음]

[1] "195810월 말, 알고이 지방의 그로스홀츠로이테에서 ‘47그룹총회가 열렸다."(11)

 

[2] "야만과 잔혹함이 우연이나 자의와 한패가 될 때 의미와 논리를 따지는 질문은 현실을 모르는 한가한 생각이라는 것을 그때만 해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169)

 

[3] "게토에서의 사랑을 매일 같이 매순간 짓누른 것은 우리가 내일도 살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곳에서의 사랑은 불안하고, 재빠르고, 초조하고, 성급했다. 그건 굶주림과 발진티푸스의 시대, 끔찍한 공포와 처절한 굴욕의 시대에 나누는 사랑이었다."(196)

 

[4] "당시 옷차림이 지저분하고 추레한 사람, 거기다 면도까지 하지 않은 유대인은 곧장 가스실로 가는 줄에 가서 섰다. 나처럼 머리가 검은 사람은 당시 하루에 두번 면도를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이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 두 번 씩 수염을 깎는다."(231)

 

[5] "부모님을 연세 때문에라도 - 어머니는 58, 아버지는 62세 였다 - ‘생명번호를 받을 가능성이 없었다. (...) 그 때가 부모님을 뵙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234)

 

[6] "사형선고를 받고 가스실로 떠나는 열차를 바로 앞에서 본 사람은 그 상흔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240)

 

[7] "굶주림보다 무서운 건 죽음의 공포였고, 죽음의 공포보다 무서운 건 끝날 줄 모르는 굴욕이었다."(254)

 

[8] "그 때 나는 정확히 몰랐지만 예감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동포가 죽어갈 때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은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272)

 

[9] "내가 가는 곳에는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독일문학이 있었다."(274)

 

[10] "죽음의 공포는 수년 동안 우리의 일상사였다. 그런데 전쟁의 끝이 다가올수록 해방된 우리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의문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의문이었다. ? 왜 하필 우리가 살아남았을까?"(280)

 

[11] "문학이 있어야 비평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학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작가들에게 우리가 빚지고 있는 것을 과소평가하거나 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308)

 

[12] "훌륭한 평론가란 언제나 명료함을 위해 글을 단순하게 쓰는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자신이 전달하는 내용을 알기 쉽고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위태로울 만큼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392)

 

[13] "내 경우야말로 취미와 일, 열정과 직업이 완전히 일치한 사례였다."(442)

 

[14]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는 평론가가 작가의 최근작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471)

 

[15] "나는 세계 변화를 목표로 하는 문학에는 전혀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 문학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480)

 

[16] "꿈이야, 현실일 리가 없어.

          우리 둘이 함께 있다니."(496)

- 아내의 80세 생일날 떠올린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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