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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샤일록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피에 젖은 땅》을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1-04-3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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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저/함규진 역
글항아리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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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샤일록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 《피에 젖은 땅 (Blooldlands)》(2021)을 읽고

 

 

‘저 멀리 애처롭게 스러져간 생은 얼마나 될까’

 

 

76년 전 오늘(4월 30일), 베를린의 ‘총통벙커’라고 불린 깊고 어두운 곳에서 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함께 순수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제국 건설의 꿈도 막을 내렸다. 이 남자와 측근들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갖고 있었다. 이 시점에 그의 명령으로 죽어간 사람은 이미 600만 명에 달했지만,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마저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1930년대 초부터 1945년 까지 독일과 소련 사이의 동유럽에서 전쟁과 폭압으로 죽어간 사람은 나치가 살육한 유대인 수의 두 배가 넘었다. 우리에게 ‘아우슈비츠’로 알려진 학살의 역사는 같은 시기, 동유럽에서 벌어졌던 살육 과정의 단지 일부일 뿐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유럽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주목한 부분이다. 《피에 젖은 땅》에서 저자는 이 책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지도자들이 내린 명령으로 살육당한 사람들의 역사”(22)임을 밝히며, 이를 위해 ‘블러드랜드’라는 지역을 소개한다. 블러드랜드란 대략 현재 독일의 동쪽인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의 서부까지, 북쪽으로는 발트해와 남쪽으로는 흑해 사이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대략 12년간, 블러드랜드에서 나치와 소비에트 세력의 정책으로 스러져간 사람이 1400만 명에 달한다. 이 숫자에는 전쟁 중에 전사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 10여 개국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유럽을 배경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보다 큰 틀에서 긴밀하게 연결 짓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흔히 개별적으로 연구되곤 했다면, 저자는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어 10개 언어로 된 문헌을 면밀히 조사하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동유럽 역사, 특히 히틀러와 스탈린이 주도한 대량학살의 역사를 한 흐름 속에서 조명했다.

 

 

간혹 다양한 사례와 희생자 통계에 압도되어 의미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는 책에서 피해자 및 희생자들이 남긴 메시지들을 간간이 소개하고 있다. 나는 두 명의 폴란드계 문인을 떠올리며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보고자 했다. 한 명은 독일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이하 라니츠키)다. 라니츠키는 이 책에서 꽤 상세히 소개되는 바르샤바 게토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남았던 인물이다. 그는 훗날 부모와 형제를 죽인 나라의 문학에 대해 글을 쓰는 평론가가 된다. 또 다른 인물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다(이하 쉼보르스카). 그녀는 1931년부터 평생 블러드랜드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도시 크라쿠프에서 살았다. 블러드랜드의 어느 곳에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가는 동안, 두 사람은 엄혹했던 시대에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했고, 이들을 목격했으며, 마침내 생존했다. 책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이 있던 시공간이 어떠했을지, 그리고 이 시기를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해보고자 했다.

 

 

‘작은 상처 안에 내 몸을 누일 것이다’

- 스탈린의 대공포 시대와 히틀러의 야망에 스러져간 이들

 

 

이 책의 초점은 1933년부터 1945년 사이, 동유럽의 블러드랜드라는 제한적이고 보다 명료하게 정의된 프레임에 속에 놓여 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분기점을 중심으로 읽어나갔다. 첫 번째 분기점은 1933년 블러드랜드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발생한 기근이었다. 이 사건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시행된 5개년 경제계획의 결과이기도 했다. 당이 농민들로부터 무리하게 거두어들인 곡물을 해외로 수출하여 발생한 기근으로, 이는 무엇보다 스탈린이 만들어낸 정치적 재앙이자 학살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스탈린이 심각한 기아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집단화 과정은 농업대신 산업을 육성 하고자 했기에, 농민들은 농지 몰수 및 강제 이주를 당하며 삶의 기반을 완전히 잃고, 공장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여기에 더하여 스탈린은 식량 징발을 강제하여, 자국민을 굶주림 및 이와 관련한 질병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최소 330만 명(대부분이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죽어갔다.

 

 

소비에트 공산당에서 강력한 권력을 거머쥔 스탈린이 벌인 대표적인 잔혹 행위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스탈린의 대공포 시기(1937-38)에 이루어진 학살이며, 다른 하나는 소련이 독일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시기(1938-41)에 자행한 폴란드 박멸 행위다. 대공포 시기에 스탈린은 자신의 정적 레닌이 암살당한 것을 계기로 유대계였던 트로츠키와 그의 동료를 축출하거나 누명을 씌워 처형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군대나 정당, 내무인민위원회 등 내부 조직 숙청과 기관 장악에서 나아가 사회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는 기근으로 많은 농민들이 죽어간 소련 령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부농으로 ‘밝혀진’ 이들을 강제이주 시키거나 총살했던 ‘부농박멸작전’이 있고, 주로 폴란드계를 대상으로 했던 ‘민족 박멸 작전’이 있다. 저자는 이 두 ‘작전’에서 처형된 이들이 62만 5483명에 달한다고 언급한다(192). 스탈린의 대공포시대는 스탈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테러행위였다.

 

 

한편 히틀러는 1939년 봄,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라고 군에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여름,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함께 침공한다는 합의를 했다. 1939년 9월 1일에 독일은 탱크와 보병을 앞세우고, 폴란드 비엘룬시를 공습하며 침공했다. 며칠 후 독일 공군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도 공습하며 수만 명의 시민과 군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16세였던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에 크라쿠프에서 부상당한 폴란드 병사들을 봤던 기억을 되살려, 훗날  9월에 관한 기억이라는 제목의 시에 담아내기도 했다. 소련은 9월 17일에 50만 명의 군인을 앞세우고 폴란드로 들어갔다. 9월 28일에는 독일과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이하 ‘라인’)이라는 새로운 국경을 확정하며 양국의 우정을 확인하는 새 조약에 서명했다. 이로써 폴란드인들은 제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독립을 얻었지만, 11년 만에 다시 나라를 잃었다. 이 ‘라인’의 동쪽에서 소련군은 15만 여 명의 젊은이를 붉은 군대에 강제 편입시켰고, 새 질서에 위협이 될 만한 폴란드인 집단을 강제 추방시키기에 이른다. 이때 폴란드인 13만 9794명이 카자흐스탄이나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만약 쉼보르스카가 소련군이 점령했던 ‘라인’ 동쪽의 리비프 같은 곳에서 살았다면, 그녀와 가족은 아마도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를 탔다가 시베리아 초원의 어딘가에 묻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당시 폴란드계 소련인들이 폴란드 문화나 카톨릭교에 대해 보인 호의를 국가 간 첩보활동에 동참했다고 하며, 묵주를 가진 사람에게도 수용소 10년 형을 내렸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었을지도 모른다(175). 하지만 시인의 가족은 나치가 점령했던 ‘라인’의 서쪽에 있었다. 물론 이곳에 있던 폴란드인들의 고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독일은 무엇보다 인종적 우월성에 집착했기에, 오랜 역사를 보유하고 지식인이 많았던 폴란드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기에 이른다. 특히 폴란드의 옛 수도였고, 쉼보르스카가 살던 크라쿠프에서는 수많은 대학 교수들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만약 쉼보르스카의 부모가 교수와 같은 지식인이었다면, 시인의 가정 역시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에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과거에 지방 영주의 관리인이었기에 나치의 우선적인 처분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을 것 같다. 이 시기에 폴란드인에 대한 독일과 소련의 유린 행위는 주로 총살에 의지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대략 20만 명의 폴란드인이 살해되었고, 약 100만 명이 자신의 터전에서 추방당했다. 당시에 특히 유명한 사건으로는 카틴 대학살이 있는데, 소련은 폴란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재소자 4410명 전원을 카틴 숲에서 총살했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궁금했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 아우슈비츠는 이 시기에 세워졌지만, 아직 본격적인 학살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의 강제 수용소는 노동력을 위한 집단 수용시설이었고, 가끔 의료적인 ‘안락사’를 위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에 쉼보르스카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는 책에 소개된 정황과 크라쿠프의 위치로만 짐작해볼 뿐이다. 크라쿠프는 아우슈비츠와 대략 50 km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주요 가스 학살 공장이 들어서게 되는 헤움노, 트레블린카, 소비부르, 마이다네크, 베우제츠 등에 둘러싸여 있었다. 스나이더는 30-40년대의 12년 동안 민간인 및 전쟁포로의 사망자를 1400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 숫자의 약 4분의 1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1933년-1941년 사이)에 이미 사망했다고 언급한다. 또 1400만 명의 절반 정도는 사실상 제대로 된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굶어 죽은 이들이었다. 이렇게 나치의 살육 시설에 둘러싸인 옛 도시에서 장차 폴란드의 대시인이 될 소녀가 견디어내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나를 태웠다’

- 최종해결책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내가 주목한 두 번째 분기점은 1941년 6월 22일에 시작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다. 이날 독일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깨뜨리고 소련을 침공했다. 새로운 재앙이 시작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1933년-1941년까지의 시기를 소련이 대량학살 대부분을 담당하다가 독일이 학살에 가세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1941년의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는 히틀러의 학살 작업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500만 명이 넘는 유대인과 300만 명이 넘는 전쟁포로를 포함하여 1000만 명 이상이 정치적으로 학살당했다. 이 두 번째 분기점부터는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을 더 많이 떠올렸다. 라니츠키는 베를린에서 가족과 지내다가 1938년 10월 28일 오전, 독일 경찰의 방문을 받고 폴란드로 추방당한다. 스나이더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38년 10월, 독일은 폴란드 시민권이 있는 유대인 1만7000명을 독일 제국에서 폴란드로 추방했다.”(197) 라니츠키는 가족과 함께 이 때 독일에서 추방된 폴란드 유대인 그룹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정의 밤’ 폭력 사건은 라니츠키 가족이 떠난 지 2주 후인 11월 9일에 발생했다. 반유대주의적 폭력은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분기점(1941년-1945년)에 대한 부분을 관심 있게 읽었다. 그 이유는 저자가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나치의 조직적 학살 기반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그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탁월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히틀러가 악인이었기 때문이거나, 집권 초기부터 유대인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던 것이 아니었다. 규모 300만 명의 독일군은 동쪽으로 빠르게 진군하면서, 1941년 말까지 300만 명 이상의 소련군 포로를 생포했다. 소련군 포로들은 부족한 식량과 추운 날씨, 열악한 이송 여건 등으로 260만 명이 사망하고, 적어도 50만 명이 독일인의 손에 총살당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나치 친위대는 노동 수용소 성격을 지니던 장소를 본격적인 살육시설로 바꾸기 시작했다. 일명 ‘학살 공장’의 네트워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의 해상력과 공군력에서 영국에 대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에, 대륙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제국 건설 외에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히틀러의 정치적 야망에 인종주의적인 성격이 가미되면서, 유대인들은 제국건설을 위한 최종 해결책의 대상이 되었다.

 

다시 라니츠키가 머물던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가본다. 동부 전선에서 독일은 식량 및 보급품의 부족,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을 맞았고, 소련을 몇 주 만에 무너뜨리고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전격적 승리’는 점점 불가능한 목표가 되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바르샤바 근교로 갔던 라니츠키 가족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전에 이미 조성되었던 바르샤바 게토로 들어가게 되었다. 게토 시절 라니츠키는 독일어 번역 작업을 하며 평생 함께할 아내 토지아와 결혼을 했고, 아내와 함께 거의 마지막까지 게토에 남았다. 반면 그의 부모님과 형, 직장 동료와 두 아들은 가스시설이 있는 트레블린카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쉼보르스카의 시집 검은 노래에 수록된 시 유대인 수송은 수용소로 이송되는 열차 안의 풍경을 그린다. 죽음을 직감한 유대인들의 절망을 시인은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다. 라니츠키는 1943년 1월 18일 새벽, 트레블린카 수용소로 떠나는 행렬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극적으로 행렬에서 이탈했고, 2주 가까이 게토에 숨어 있다가 2월 3일에 게토를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라니츠키의 자서전  나의 인생에는 부부가 어느 폴란드인의 집에서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숨어 지내며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회상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볼 뿐이다.

 

 

트레블린카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곳이 라니츠키 부부의 가족이 사망한 곳이기도 했고, 또 이 수용소가 폐쇄된 이후 학살의 중심이 아우슈비츠로 옮겨가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를 비롯한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 노동수용소에 처형장이 더해진 학살 공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저자는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노동력과 식량 확보와 같은 경제적 규모의 문제에 따른 정치적 해결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나치의 살육 공장 시설 네트워크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의 동쪽과 서쪽에 걸친 폴란드에 주로 세워진 것은 이 지역이 독일과 소련이 충돌하던 핵심지역인데다, 장기화되는 전시상황, 그리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지역이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주요 정착지였다는 상황도 고려해야할 듯하다. 이 시기에 독일이 벌인 ‘라인하르트 작전’으로 1942년에 베우제츠, 소비부르, 트레블린카 등지에서 폴란드 유대인만 약 130만 명이 가스 시설에 처형되었다(456). 여기에 약 100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은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벨라루스와 바르샤바 봉기로 폴란드인 등의 소수 민족들에 대한 독일군의 보복과 총살이 계속 이어져 수십 만 명의 희생자가 더해졌다.

 

 

독일이 패망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눈엣가시였던 일본이 힘을 잃자 사실상 가장 큰 승리를 거머쥔 소련은 이제 냉전 구도로 접어들고 있었다. 전후 새로운 재앙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 다시 불어오고 있었다.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적 최종해결책은 이제 스탈린의 전후 인종청소 작업에도 이용되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적 명분이 가미되면서 유대인은 물론 독일인에 대한 보복과 소수민족 박해로도 이어졌다. 이 시기의 재앙적인 만행과 인권 유린을 더 자세히 정리하지는 않겠다. 다만 서구 유럽 문화에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폴란드인 등 다양한 민족이 여전히 큰 고통을 당했지만, 절대 다수는 인종주의라는 허울에 스러져갔던 유대인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유럽 사회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독하고 욕심 많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희곡은 정의가 샤일록을 응징하는 모양새로 끝난다. 이처럼 유대인에 대한 오랜 편견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희생 대상을 찾던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언제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벌거벗은 진실이 그 이유를 누설하진 않으리라’

- 대량학살과 인간본성에 대한 생각

 

 

책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추었을 법한 지점이 독일과 소련의 정치적 대량학살이기에, 이 부분을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간 사회에서 대량 학살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게 될까? 저자는 대량학살의 사례로 히틀러의 유대인 최종 해결책(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소련 침공 직후 생포한 소련 전쟁 포로를 굶기기, 레닌그라드 봉쇄, 그리고 스탈린의 우크라이나 대기근 정책 등을 거론한다. 대량학살이 일어난 사례를 보면, 히틀러의 신념체계와 독일인들이 처했던 경제적 규모의 문제가 대량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대량학살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에 소개된 여러 대량학살 사건으로부터 대량학살의 메커니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대량학살의 씨앗이 되는 지도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는 소수더라도 지도자에게 충성을 보이는 무리가 존재한다. 여기에 스탈린이 주장하던 ‘유대인의 음모’ 혹은 히틀러의 ‘아리안 신화’와 같은 허구적 명분이 필요하다. 이 허구의 신화는 집단 구성원들의 결속을 더해주는 힘도 지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대량학살의 초기 단계에 이를 막을 세력이 없었거나 미약했다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가 처형 대상과 수행자의 목숨 사이에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있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존을 선택하고 학살임무를 맡은 수행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는. ‘모비 딕’을 끝까지 추적해서 복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선장 에이해브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광기 앞에 의문을 품은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있다. 하지만 스타벅도 선원들을 선동하는 에이해브를 끝내 저지하지 못하고, 결국 소극적 동조자가 되어 함께 파멸을 맞는다. 현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대량학살의 여러 특징 중에서 이 부분에 주목해본다. 대량학살로 이어지기 전에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하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다른 세력이 있었다면, 대량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학살은 분명히 인간에 의해 저지되고 중단될 수 있었다.

 

 

다시 잠시 더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스탈린이 기획했던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서방세계에 잘 알려지지 못했던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맺고 싶었던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11월에 소련을 정식승인하게 되는데, 이런 정세로 스탈린이 기획한 테러와 학살이 내부적으로 은폐되는 것에서 나아가 서방 세계로부터 외면 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 1일 새벽, 대대적인 공습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하지만 스나이더에 따르면 이들은 아무런 실질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만일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더라면, 폴란드인, 벨라루스인들에 대한 학살 및 강제이주, 그리고 300만 명에 달하는 소련군 포로들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나치의 살육 공장 네트워크의 건설이나 레닌그라드 봉쇄로 스러져갔던 많은 이들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티머시 스나이더가 결론에서 제시하는 대량학살에 관한 문제의식 역시 이 지점을 향한다. 저자는 “그런 (대량학살) 정책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706)라고 묻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위해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이들이 ‘왜 대량학살을 벌였는지 그 동기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작업이 바로 우리 인간, 혹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샤일록과 같은 인물이 존재했기에, 그러한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니다. 샤일록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샤일록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왜 그러한 행동이 ‘당연하게 말이 되었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나도 샤일록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란 사람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아직 헉슬리가 언급한 통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에서의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와 인간이 구성하는 집단의 보편적인 구성 원리를 파악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독일의 소련 침공에 대응했다면, 최소한 자국민을 많이 학살하며 은폐되었던 스탈린식 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외에서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나치의 살육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대량학살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외부 세력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단계, 사람에 의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병사는 당신들의 시가 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땅》을 읽는 내내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검은 노래》를 곁에 두고 펼쳐보았다. 이 글의 소제목은 모두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거나 조금 수정하여 가져왔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자신의 책에서 아우슈비츠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살육공장에서 스러져간 이들은 생존한 사람이 거의 없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우슈비츠는 기존의 강제노동시설에 살육시설이 더해졌기에, 생존자들의 증언이 더 잘 알려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다만 저자도 책에서 한정한 시공간에서 자행된 살육이 유대인에 대한 희생자 수보다 최소한 2배 이상 많다는 점도 상기시켜준다. 또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의 4분의 3정도는 1943년 봄에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화장 복합 시설이 들어섰을 때 이미 희생된 상태(677)였음을 지적한다. 소련의 경우를 포함하면, 소련과 나치 체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된 이들의 90%이상은 이미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 가동되기 전에 발생했다. 이 지적은 이 시기의 역사를 조금은 다른 각도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저자가 책에서 초점을 맞추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좀 더 폭넓고 균형감 있게 이 시기에 벌어진 대량학살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40-45년 사이, 처칠은 이 지역의 식량을 강제로 징발하여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도인을 굶주림으로 사망하게 만든 사건에 책임이 있다. 처칠이 내린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팔과 인도 동부 벵골 지역을 통해 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올 수 있다는 전략적인 우려와 판단에서 취해지긴 했지만, 이 역시 정치적 학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 사건은 블러드랜드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벗어나 있지만, 대기근이 의도적으로 유발된 정황, 그리고 영국에 의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외면당했던 정황이 있기에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비교하기에 좋은 사례로 여겨진다. 저자가 1945년 이후 소련이 승리를 거머쥔 뒤 독일인에 대한 스탈린의 강제 이주 및 전후 인종청소와 반유대주의적 행보를 언급하고 있는데다, 1958-60년에 마오쩌둥의 중국이 기근으로 약 3,000만 명을 죽게 했다는 언급(774, 주석7)을 한 이상, 연합국 측의 유사 학살 행위 역시 함께 언급되었더라면 보다 균형 있는 서술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저자의 논점 하나는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정치적 대량학살의 기원과 그 여건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그 기원을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따져보고 있다(27). 또 저자의 다른 논점은 유럽 사회에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인종주의, 특히 반유대주의를 재발견한 점이다. 허구적 기준인 ‘피’를 잣대로 삼아 인종을 평가하고 편견을 용인해온 서구 유럽의 역사가 1930-40년대, 블러드랜드라는 특정 시공간 속에서 상호작용하여 어떤 재앙을 낳을 수 있었는지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인종’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해 자행되는 크고 작은 폭력을 접하고 있다. 역사가 끊임없이 재발견되고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 현재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지라도, 우리에게는 대량학살을 막을 수 있는 잠재력과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스나이더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정확한 숫자를 기반으로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러져간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작업도 함께하며 인간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이해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샤일록은 원래 악독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샤일록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새롭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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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 새소식 2021-04-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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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멀린 셸드레이크 저/김은영 역/홍승범 감수
아날로그(글담) | 2021년 04월

 

신청 기간 : 4월20일 까지

모집 인원 : 5명

발표 : 4월21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신청 전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세상을 부패시키는 존재가 세계를 만든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미시 세계의 잠재력을 탐구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은 바로 곰팡이, 즉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에서 시작되었다. 곰팡이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개체수, 종수, 종의 나이 등에서 인류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이 곰팡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곰팡이가 지닌 능력과 잠재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곰팡이는 돌을 먹고 흙을 만들며, 식물을 자라게 하고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데다 지구 대기의 성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이 놀라운 생물을 이용한다면 우리는 당면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물론이고 지구 온난화, 식량 생산 문제까지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는 시적인 문체와 과학적 사실들, 그리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한데 엮어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곰팡이의 놀라운 세계를 들여다본다. 곰팡이, 즉 균이 만들어내는 우리 자연의 경이로움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생태계의 긴밀한 네트워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흙 속의 뿌리부터 우리가 숨 쉬는 대기까지, 균이 만들어낸 세계를 조명하다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나 이상하고 경이로워서 과연 이 생물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생명체가 있다. 이 생물은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며, 지구 전체는 물론 우리의 몸과 공기 중에서도 발견되는 생명체다. 대체로 아주 미세한 존재이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유기체 중 가장 큰 몸집을 가진 개체도 있고, 이 지구상에서 수억 년 동안 살아왔다. 단단한 암석까지 거뜬히 소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능력 덕분에 이 생물은 지구상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가장 먼저 육지에 정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생물은 생명체가 맨몸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알려진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모든 생명체들을 말살시켜버리는 핵 방사선 속에서도 문제없이 무한히 번성할 수 있다.


이 놀라운 생명체는 바로 곰팡이, 즉 균이다. 곰팡이는 어디에나 있는 흔한 존재이지만 우리 시야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곰팡이는 주위 환경부터 우리 몸속까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곰팡이는 지난 10억 년 동안 그래왔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지탱하면서 동시에 변화시키고 있다. 곰팡이가 없었더라면 6억 년 전 녹조류는 민물에서 벗어나 육지로 올라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식물이 육지로 올라오지 못했더라면 동물 역시 물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지구의 생태계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균, 다시 말해 곰팡이는 우리 생활에서 빵이나 술, 또는 약의 원료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곰팡이가 인간의 체내에 흡수될 경우, 환각 증상이나 정신 질환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곰팡이가 플라스틱, 폭발물, 살충제, 심지어는 원유까지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획기적인 기술 개발에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곰팡이가 땅 아래에서 식물과 식물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는 기존의 생태계 연구 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스미소니언 열대 연구소의 전임 연구원으로 파나마 열대 우림의 지하 균류 네트워크를 연구한 젊은 균학자 멀린 셸드레이크가 식물학, 미생물학, 생태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에 대한 지식을 엮어, 독자들을 곰팡이의 놀라운 세계로 인도한다. 시적인 문체와 과학적 사실들을 통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곰팡이들의 놀라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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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때’ -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를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1-04-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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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잉그리트 폰 욀하펜,팀 테이트 공저/강경이 역
휴머니스트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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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때다'

-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다음 날 몸에 무리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히틀러에게 바쳐진 아이로,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지켜나갈 독일인이 되도록 운명 지워진 저자의 뿌리 찾기 여정이 계속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50-60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믿고 살아온 삶의 토대와 믿음이 체계적으로 가려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의 저자 잉그리트 폰 욀하펜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리아인신화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이 신화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라고 불렸다. 그녀의 본명은 에리카 마트코. 생후 1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강제로 나치의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생이별을 했다. 이 책은 인생의 후반에 15년 이상 지속되었던 자신의 뿌리 찾기 여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라는 세상의 편견과 수치심을 이겨내고 용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 개인의 역사이자, 우리가 알아야할 지난 세기의 역사다.

 

저자는 수수께끼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감정을 40년이 다 되도록 철저히 외면했다고 했다. 11세에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님을 알았을 때, 그리고 자신이 에리카 마트코라는 이름이 적힌 서류를 끊임없이 접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저자는 52세가 되던 1999년 어느 날 한 적십자 지원의 전화를 받는다.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 저자 잉그리트가 그렇다라고 답한 순간, 그녀는 에리카 마트코를 발견하는 여정의 시작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동안 묻혀 있던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나는 이 결정이 저자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와 예기치 못할 감정의 기복과 마주해야 하는 과정이었을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은 20세기 유럽 역사를 휘감았던 소용돌이의 한 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치의 제2인자이자, 히틀러 친위대장 이었던 하인리히 힘러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던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무엇보다 히틀러와 힘러 세력이 부활하려고 했던 인종적 순수성은 특히 힘러의 신비주의적 믿음이 더해져 종말론적 비전을 갖게 되고, 극도로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레벤스보른, 생명의 샘이라고 불린 이 프로젝트는 다윈의 진화론이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해석된 19세기 말의 우생학적 전통에서 극단으로 나아간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것, 그래서 우수한 인종이 더 번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과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논리는 나아가 열등한인종의 소멸이 자연법칙 상 예견되어 있으며 당연한 결과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했다. 그 결과, ‘열등한이들에 대한 탄압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그 한 예로, 나치 세력은 아리아인의 기준에 미달한 사람들은 불임수술을 통해 씨를 말리는 야만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저자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까지 적어도 32만 명이 법에 따라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고 한다(111). 이처럼 아리아인의 신화를 실현시킬 야심찬 조직이 바로 레벤스보른이었고, 이 목표의 설계자가 바로 하임리히 힘러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과거사에 대한 전후 독일 사회의 은폐 분위기였다. 저자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게오르크 릴리엔탈 박사의 도움을 받아 여러 관공서에 자료 문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협조적으로 대응했다. 이 점은 저자처럼 자신이 레벤스보른의 아이였으며, 자신이 성장했던 환경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이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게 된 사회의 장벽이었다. 저자는 독일이 통일되었지만, 독일인들의 집단기억은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87)라고 이야기하며, 뿌리 찾기에 걸림돌이 되는 외부적 환경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는 일본과 비교하여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여러 면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고 살아갔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치의 프로젝트와 연루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본인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이 프로젝트의 정확한 내막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과 조롱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적국의 아이를 밴 여성의 아이들이라고 말이다. 이는 지역 사회와 양부모 및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상실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 자신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인류사의 커다란 오점이 된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들이 노출된 현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치심은 강력한 감정이다. 그리고 전후 독일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친위대처럼 비난과 공포의 대상이던 조직에 연루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152)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이 주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왜 금기시되어 왔을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공서들이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애초에 왜 비협조적으로 나왔는지를 말이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레벤스보른 출신 모임에 나가면서 수수께끼 퍼즐 같던 자신의 과거를 좀 더 맞춰 나갈 수 있었다. 이 모임에 오기까지 많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은 예외 없이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받은 상처로 고통 받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라고 여겼던 기젤라가 사망할 때까지 진실을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슬로베니아(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친부모가 자신을 대신해서 건네받은 아기를 받아들였으며, 이후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격한 분노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을 만나 이들의 경험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비로소 상처받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뿌리 찾기 과정을 따라가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의 모임 레벤스푸렌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슬로베니아에서 만났던 80대의 생존자들이 모두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 점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연관된 오명의 역사와 내면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제대로 이해하고, 세상으로 나오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기억에 남았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무조건 덮으려는 사람들에 맞선 이들의 용감한 행보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성장했지만, ‘정직하고 떳떳해지려고 몸부림치던 한 세대’(9)의 이야기라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자신의 후손들에게, 그리고 멀리 아시아에 있는 한 독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가족을 찾고, 역사를 알아간 한 평범한 독일인의 이야기이면서, 의도치 않게 나치 핵심 세력에 연루된 세대를 대변한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한 장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또 상처받은 존재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자기 삶의 궤도를 찾고,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깨달게 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겪었을 좌절과 슬픔, 그리고 기쁨의 감정과 자신을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모두 담겨있다. 자신의 삶을 세상에 내놓기 까지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는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이제껏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 말에 더하여, ‘이제 배워야 할 때라고 자신이 지나온 여정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제 후손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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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되기’는 동사다: 대체 불가능한 인간관계의 우화 | 기본 카테고리 2021-04-1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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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저/홍한별 역
민음사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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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인간관계를 묻는 철학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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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 지음 | 홍한별 옮김 | [민음사]

 

 

인간-되기는 동사다: 대체 불가능한 인간관계를 묻는 우화

 

 

*탁월하게 생각하도록 된 이런 두뇌도 장래에는 한 사상가가 만들어낼 게다.거의 200년 전, 독일의 한 문인이 남긴 문장이다. 그는 훗날 인공지능 기술과 생명을 합성하는 단계에 이른 후대의 과학기술을 상상이나 했을까.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처음 발표한 클라라와 태양을 읽으며, 언젠가 마주쳤던 괴테의 문장을 떠올렸다. 이시구로는 화자인 인공지능로봇의 시선을 따라가며 로봇과 공존하는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인공지능로봇 AF(Artificial Friend)인 클라라는 아이들을 돌보는 로봇이다.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클라라는 조시라는 소녀에게 선택받고 조시의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 여느 AF와 달리 클라라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다. 클라라는 인간을 관찰하며 이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배워간다. 클라라가 돌보는 조시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통해 개선되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다. 그녀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들은 불안해한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클라라는 조시가 될 것을 부탁받는다. 클라라가 마주하는 혼란스러움은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붙들었던 물음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AF와 인간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클라라의 남다른 호기심일까? 클라라나 인간 모두 어떤 상황에 의문을 품을 수 있었지만, 인간은 구성원들과 충돌하고 반목하며 관습에 도전하기도 한다. 조시의 아빠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름의 의지를 바탕으로 행위를 이끌어내는 인간의 특성이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물론 클라라는 조시의 건강을 해치는 것으로 보이는 연기 나는 기계를 파괴하고자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되기의 과정이 결코 저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시가 사망할 것에 대비해 새로운 조시를 제작하는 카팔디는 극단적인 환원주의자로 보인다. 그는 인간에게 고유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느낀 클라라는 자신이 조시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조시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욕구와 충동, 감정을 똑같이 갖추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조시의 가족이나 그녀를 아는 모든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기억을 복원해야 하는, 광범위하고 역동적인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건 조시 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442)있었다. 그렇다면 이 인간-되기 관계를 전제로 한 비가역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기억을 토대로 모든 존재가 함께 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이 인간에게만 고유한 건 아니다. 다만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관계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상상하며 행동하기에 그 자체로 고유하다. 이 특별함은 비교 불가능한 것일 테다.

 

클라라가 인간을 학습하면서 혼란스러워한 점이 바로 인간관계의 복잡 미묘함이다. 유전자 편집을 거쳐 개선된아이들의 모임에서 조시가 달라지는 모습을 포착한 클라라는 인간의 다양한 페르소나에 혼란스러워 한다. 규칙적인 패턴과 징후를 찾는 클라라에게는 새로운 도전과제였을 것이다. 인공지능로봇이 이런 징후의 근원과 의미를 찾는 일이 가능할까? 이시구로의 소설은 인간-AF 사이에 형성되는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거리를 던진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클라라가 헛간에서 해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해의 무늬가 헛간에 머물 때 이 곳은 해의 관대함이 드러나는 성스러운장소가 된다. 해의 무늬가 헛간에서 서서히 물러나며 다른 모습으로 반사하고 희미해지는 장면이 클라라의 간절한 기도와 교차하며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 순간에 클라라는 인간의 사랑을 이해하고 구현해낸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인류의 조상도 이 과정을 거쳐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클라라와 태양인간-되기라는 문제와 인간이 맺는 모든 관계에 대해 묻는 한 편의 철학 우화였다.

 

 

 

*이 문장은 전영애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 <파우스트> [도서출판 길](2019)에서 인용함.

**#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기쁨

***Ver.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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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읽는 피노키오’ | 기본 카테고리 2021-04-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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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판본 피노키오

카를로 콜로디 저/엔리코 마잔티 그림/이시연 역
더스토리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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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피노키오(Pinocchio)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 지음 | 엔리코 마잔티(Enrico Mazzanti) 그림

이시연 옮김 | [더스토리]

 

 

성인이 되어 읽는 피노키오

 

어렸을 때 읽던 동화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어떤 점이 다르게 느껴질까? 초판본 피노키오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한번은 읽어보았을 이 책의 내용을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에서 구체적인 사항들을 기억하여 비교할 수는 없지만, 거짓말을 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잘 알려진 모티브 외에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내용도 여러 가지 보인다.

 

우선 저자인 카를로 콜로디의 프로필을 간단히 살펴본다. 동생과 함께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참가하고 풍자적인 정기 간행물을 만들었다는 이력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신문 기자로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어린 독자를 주 대상으로 연재한 피노키오같은 책을 여러 권 발표했다. 간단히 정리된 콜로디의 행보를 보면서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떠올렸다. 카잔차키스 역시 정치운동에 깊이 참여했고, 정치적인 성격의 정기간행물을 만들었으며, 유럽 전역을 다니며 기자로 활발한 언론인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 카잔차키스는 젊은 독자를 위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소설을 연재하여 책으로 펴낸바 있다. 두 작가의 행보를 볼 때 이들은 당대의 지성인으로서 여러 모로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문체 모두 때론 다소 투박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작품이 주는 생명력, 혹은 힘이 느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인이 되어 읽은 피노키오에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점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어린 독자들을 일깨워주려는 저자의 소박한 촌평 또한 정감이 간다. 간결한 이야기 속에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통찰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이를테면 피노키오가 자신의 금화를 훔쳐간 강도(고양이와 여우)를 고소하기 위해 판사에게 간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동화는 가식적이고 겉치레를 중시하는 기성사회를 이렇게 풍자한다. “판사는 큰 원숭이였습니다. 늙은 큰 원숭이는 그의 많은 나이와 하얀 수염, 특별히 그의 유리 없는 금테 안경 때문에 존경받는 인물 같았어요.”(114) ‘벌거벗은 임금님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어린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언어유희의 장면들도 나온다. 예를 들면 사기꾼 고양이와 여우가 빨간 가재여관에서 고양이는 위장이 아파서 빨간 숭어 서른다섯 마리와 파르마산 치즈로 요리한 소고기 요리를 사 인분밖에 먹지 못했다고 하는 대목이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눈과 귀를 붙들만한 재미있는 상황이다. 또 피노키오가 두 사기꾼에게 속아 죽을 고비에 처해 있을 때, 요정이 불러온 돌팔이 의사들이 피노키오를 진찰하고 진단을 내리는 장면이 있다. 선생님들의 소견이 알고 싶다는 요정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는 식이다. “제 소견으로는 꼭두각시 인형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죽은 게 아니라면 아마도 살아 있다는 확실한 징후겠지요!”(93) 이 대목은 풍자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어린 독자들의 시선에서 이상하게 보일 것이 확신하지만 어른들은 무시하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모순을 조롱한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만든 직후부터, 피노키오는 뭐든 자기 멋대로 하는 존재다. 아직 충분한 교육과 분별력을 갖지 않아 줏대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유혹과 감언이설에 쉽게 영향을 받아 문제를 일으키고, 고생을 겪는 단초가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이 악하기만 하거나 애초에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보다 유연한 시선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작품 전반에 고려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보답을 기대하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독자들은 친절을 베풀 수 있을 때 베푼다면 언젠간 그와 같은 친절을 받을 수 있다”(243)는 귀뚜라미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서양 문화는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피노키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적 사랑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저자가 이야기 중간에 개입하여 전달하는 교훈들은 다분히 기독교적인 윤리관을 반영하는 내용이 많다. ‘훔친 돈은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거나 부모와 가족을 공경하고 존중하라는 언급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또 제페토 할아버지와 피노키오가 거대한 상어의 뱃속에서 만나는 장면도 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상어 뱃속 장면은 성경의 요나서에서 영향을 받았음직하다. 성경에서 요나는 하느님의 눈을 피해 배를 타고 세상의 끝으로 도망치려한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피노키오 역시 할아버지로부터 달아나든, 주변 인물들에 의해 한눈을 팔아 새로운 모험으로 이어지든, 언제나 파란 머리 요정의 손길이 피노키오의 주변에 언제나 머물고 있다. 이렇게 신과 같은 요정의 보살핌은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는 과정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피노키오가 겪는 수많은 모험과 고통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배움이 주가 되는 성장의 시기에 성실하고 부지런해질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 각자 일을 가지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는 여러 조건들을 제시한다. 물론 지금의 가치관에 잘 어울리지 않는 가치관일 수 있지만, 동화가 쓰인 시간적, 공간적 배경 속에서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는 덕목을 일러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노키오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피노키오가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특징이다. 하지만 책에는 거짓말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에는 길어지는 코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다리가 짧아지는현상이다. 이 책에는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는 종류(?)의 거짓말만 등장한다. 다리가 짧아지는 유형의 거짓말이 어떤 것인지는 이야기에 나와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짧아지는 것과 코가 길어지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싫어할까? 갑자기 어린 독자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피노키오는 대략 140년 전에 쓰인 동화다. 단테와 보카치오와 같은 문인들을 배출한 피렌체 출신의 작가에 의해 바로 이 지역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원래 성인을 위한 도서로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피노키오가 작품 속에서 겪는 모험에는 사회의 모순과 이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반영되어 있다. 많은 동화가 그렇듯이 다소 잔인해 보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물론 나중에 아동을 위한 도서로 용도 변경(?)이 이루어지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모험적인 요소와 교훈적인 요소가 균형 있게 포함되었을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이 동화는 당시 이탈리아인들이 공유하던 세계관과 윤리적 가치관, 집단의 무의식적 측면도 읽어낼 수 있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무형의 가치들은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대 사람들인 우리가 여전히 이런 고전 동화를 읽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앎을 확장하는 활동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의 주요 독자는 아동일 테지만, 성인이 되어 피노키오를 읽는다는 것은 아동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우리의 과거와 만나며,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재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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