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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빌헬름 슈미트 저/장영태 역
책세상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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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빌헬름 슈미트 지음  |  장영태 옮김  |  [책세상]



(소풍 - 철학으로의 초대)

'남녀 두 사람이 같은 한 침대에서 서로 등을 지고 반대 방향으로 어긋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자는 손에서 책을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다.' 이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의 저자 빌헬름 슈미트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철학으로의 소풍]을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림 속에 포착된 어느 한 순간의 실존적 고독이 고스란히 부각되어 있는 듯하다. 슈미트는 소외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소외는 근본적이며, 속일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25면) 이 그림은 호퍼의 다른 작품처럼 정적과 부조리할 정도로 느껴지는 햇빛과 고독으로 가득한 한 삶의 에피소드를 표현해내는 듯하다. 어쩌면 그림 속의 남자가 손에서 책을 놓고 생각에 잠겨있는 순간이야 말로 비로소 ‘철학으로의 소풍’이 가능한 순간이 아닐까. 


왜 호퍼는 [철학으로의 소풍(Excursion into philosophy)]라는 제목을 이 그림에 붙였을까. 소풍은 우리의 흔한 일상은 아니지만 우리 삶에 친숙한 요소이다. 나아가 익숙한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소풍은 ‘매우 짧은 여행’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리가 사는 ‘다른’ 현대 속의 바쁜 스케줄(삶이 아닌)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구조를 잠시 벗어나 ‘나’를 찾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본다. 호퍼가 ‘사실주의 화가’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의 그림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림의 인물과 배경이 어우러져 내뿜는 정적, 고요함의 정서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묘하게도 그림은 너무나 ‘사진적’이란 느낌을 주고있다. 사진에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배경의 사물이 담긴다. 사진 작가는 자신이 보는 대상의 어느 한 프레임만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만 보이는 액자, 일부만 보이는 창문, 조각나있는 햇빛. 이렇게 호퍼는 실존적 삶의 한 순간을 담았다. 이 순간을 저자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이 정지의 순간이, 철학과 성찰의 순간으로서의 정지가 본보기로 포착되어 있다.”(22면)

이 정지의 순간은 슈미트가 호퍼의 그림에서 지적한 ‘의미없는 햇빛’이 충만한 공간과 이를 가득 채운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 ‘무의미한’ 햇빛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이 ‘정지한 순간’의 중요성은 슈미트 역시 사소한 것이 아닌 오히려 매우 소중한 시간임을 재인식하고 있다. “빈 시간은 자신의 일관성을 회복하고, 새롭게 형상화할 수 있는 자기의 시간인 것이다.”(124면)


결국 호퍼의 그림에서 그림 속 남자가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 이 순간은 그림 속 다른 한 곳에서 무심히 보이는 창 밖의 풍경처럼 자신을 밖에서 바라보게하는 시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슈미트는 이 ‘빈 시간’을 통해서 비로소 주체는 ‘시간을 소유’하기에 이르며 “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들을 위한 그리고 다른 일들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시간을 소유한다는 것’을 ‘편안하게 살아온 실존의 형식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곧 ‘나 자신으로부터 거리두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한편, ‘시간 소유하기’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어린 왕자>중에서, 여우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을 흔히 떠올리듯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저자가 ‘익명성과 보편성을 떨쳐’버리고, ‘특수성’을 갖게 됨을 의미할 것이다. 이름을 지어주고,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주는 것이 곧 ‘나의 시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 - 아름다운 삶을 위한 소품)

책을 다 읽고 호퍼의 [철학으로의 소풍]을 다시 살펴보니 저자는 독자들을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하는 시간으로 초대하기 위해 이 그림을 제시한 것 같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삶의 기술’로서의 철학은 탁상공론과 같은 ‘철학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삶에 활용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기능성을 염두해둔 듯하다. 이 책에는 ‘쾌락누리기’, ‘쾌활함’, ‘분노’, ‘반어와 멜랑콜리’와 같은 다양한 주제로의 ‘짧은 여행’을 의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점은 저자 빌헬름 슈미트가 책 전반에 걸쳐 ‘주체적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소품으로서의 철학하기’를 줄곧 말하려는 듯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나를 낯설게 바라보기’가 아닐까.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나 자신으로부터 거리 두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에드워드 호퍼의 [철학으로의 소풍]일 것이다. 


빌헬름 슈미트는 성찰적, 철학적 ‘삶의 기술’을 이야기하기 위해 세네카, 아리스토넬레스,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고대 철학자 뿐만 아니라 몽테뉴, 니체,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하이데거, 아도르노, 빅토르 프랭클, 미셸 푸코와 같은 익숙한 이름의 철학자, 사상가를 소환한다. 책을 읽는 도중에 받은 느낌은 어쩌면 이 책은 몽테뉴의 <수상록>과 재독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저작들 사이의 어느 한 지점 즈음인 인상을 준다는 점이었다. 흥미롭게도 역자 후기에서 책의 역자도 역시 한병철 교수를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무한 긍정의 성과 사회’나 근대를 ‘부정성의 제거’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부정성의 긍정’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한병철교수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있다. 반면 에세(essai)라는 자기 탐색적이고 성찰적인 글쓰기 장르를 처음 시도했던 몽테뉴 처럼 저자 자신의 개인적 성찰을 담고 있지는 않으나 주제의 선정 및 책의 구조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울러 ‘성찰적 삶의 기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몽테뉴의 글쓰기 방식은 은연중에 이 책의 저술과정에도 분명 영향을 준 요소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가상공간에 대한 사유의 확장)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슈미트는 과거의 철학자, 사상가들을 소환하여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에 대해 성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과거의 철학자들이 다루어 본적없는 ‘가상공간’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한병철의 저작에서 ‘정보’와 ‘지식’의 구별짓기를 시도하며 그 특징을 설명하듯, 슈미트도 ‘정보’와 ‘주체적 지혜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슈미트는 ‘정보’를 ‘일상의 사물을 밀어내버리는 기형적인 물건들’이라는 빌렘 플루서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기형적인 물건들’인 정보가 떠다니는 무한한 가상공간의 현실을 긍정할만한 점이 있다면 이는 ‘탈중심적 정보 전달 공간’으로서의 기능일 것이다. ‘정보의 바다’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해본다면,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담고있는 이 공간을 하나의 사전, 나아가 도서관으로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을 가상공간에 마련된 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구입하거나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정보를 ‘어떻게 얻고, 정보의 중요도의 순위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슈미트는 지적하고 있다. 곧 우리의 삶이 충만해지도록 이러한 행위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의 ‘관리’는 여전히 주체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정보의 사용 주체로서 우리에게는 의무가 주어지는데 그것은 “정보와 통신이 한도를 넘어설 때 그 양을 줄이고 성찰의 공간을 다시 획득하는 것이 삶의 수행에서 의무가 된다.”(224면)라는 점이다. 우리가 정보를 관리하는 주체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주체성을 상실하게 될 것을 슈미트는 다시금 경고한다. “타자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려면 자신의 고유한 정보능력을 획득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보 엘리트’에게 자신을 내 맡기는 길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229면)라는 것이다. 곧 우리가 정보의 ‘수문지기’가 되라는 주문일텐데, 이 주장은 ‘정보’에 관해 의심을 갖고, 근거를 찾아내며, 독자적으로 판단하라고 말하던 언어학자 촘스키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정보로 넘쳐나는 가상공간을 만약 몽테뉴가 21세기를 살면서 목격하고 체험해 보게 된다면, 아마도 ‘삶의 주체’로서 이와 같은 입장을 표명했을 것같다. 




(죽음을 부정하는 시대-우리는?)

언젠간 다가올 ‘죽음’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피력한 몽테뉴의 <수상록> ‘죽음에 대하여’를 보면,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정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면 만족한다는 몽테뉴의 독특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자연의 질서인 반면, ‘죽음’에 대한 관점 및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나 현대는 ‘죽음’이 거부당하는 시기라고 서경식 교수는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조부/조모만 해도 모두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이 병원/요양원이 되어 버렸다. 가정에서 ‘죽음’은 금기시되어 버렸고, 거부당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슈미트는 “삶의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지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아니다.”(43면)라고 강변한다. 곧 타인의 죽음은 곧 나의 유한성 내지는 한계를 자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이해된다. 앞서 슈미트가 제시했던 에드워드 호퍼의 [철학의로의 소풍]도 역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삶의 한계’에 대한 인식의 순간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이유는 슈미트가 “철학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한계의식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44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하다.


아울러 슈미트는 죽음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낯설게 이야기하기’를 시도한다. “죽음은 솔직함의 극단적 지점이며, 더 이상 회피를 용납하지 않는 진리의 순간이다.”(109면) 곧 죽음이란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개인의 삶이 ‘완성’되는 시점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우리는 모두 생명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우리가 죽음의 면전에서 제기되는 마지막 질문을 상상한다. “그것(나의 삶)은 아름다운 삶, 충만한 실존이었나?”(109면)라고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20여 년 전 나의 학창 시절에 읽어본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마지막 연을 떠올려본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시에서 나는 ‘죽음’에 대한 염려, 두려움, 또는 부정성을 발견할 수 없다. 자신의 ‘짧았던 인생’을 ‘소풍’으로 보았던 시인은 바로 자신에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노라 말하길 희망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한 장인 ‘죽음을 동반하는 삶에 대하여’에 표현한 슈미트의 의도는 천상병 시인의 이 싯구에 모두 담겨있다고 본다. 



(오늘의 소풍을 끝내며)

이 책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룻밤에 읽어내는 책이라기보다 독자의 일상에서 독자의 눈에 띄는 주제 하나를 읽어보고, 다시 책을 내려 놓은 다음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 문장, 한 문장 긴 호흡으로 텍스트를 따라가며 음미해보면, 급한 마음에 빨리 읽을 때 전혀 다가오지 않았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오기도 했다. 이 책이 한병철 교수의 저작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점 또 하나는 이 책이 한병철 교수의 책보다 조금 더 ‘추상적’(혹은 막연함)이라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슈미트는 독자와의 적절한 ‘거리두기’를 의도함으로써 ‘독자 나름의 소풍’으로 초대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고, 혹은 우리 각자의 보다 긴 삶이 이러한 ‘짧은 여행’인 소풍들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도 오늘의 ‘소풍’을 마무리하고, 다음 ‘소풍’을 새롭게 기대해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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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근현대 편 | 기본 카테고리 2017-02-1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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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근현대편

구민정,권재원 공편
휴머니스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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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근현대편 - 마키아벨리에서 아렌트까지>

구민정/권재원 엮고 해설함 [휴머니스트]



20년 가까이 중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쳐온 교사인 저자들은 여러 주요 정치사상가들의 문헌 하나를 선정하여 핵심적인 부분 중 꽤 많은 양의 발췌를 통해 해당 사상가들의 목소리를 조금씩 그러나 생생하게 들려준다. 나아가 부분 부분 저자들의 해설로 정리를 해주어 쉽지만은 않은 내용들을 독자들이 되새김질할 수 있는 기회를 더해준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저자들도 언급하듯, 책 한 권에 한 명의 사상가를 다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나 많은 사상가들의 사상을 한 두 페이지로 정리한 책들과는 구별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상당한 양의 발췌 내용이 포함되는데, 저자들이 가려뽑은 내용과 추가로 읽어볼만한 사상가들의 저서 목록을 더하고 소개하고 있는 점은 책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정치철학이라는 것이 매우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각 사상가들의 삶 자체와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각 사상가들의 저작에서 상당한 양의 발체문에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사상가들에 대한 특히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소개가 좀더 자세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대체로 보아 각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나 관련 저작, 그리고 시대 배경에 대한 연관성은 짧은 지문에도 불구하고, 꽤 주의깊게 마련되어있으므로 이 책의 범위나 한계에 대한 부분은 독자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같다. 


이 책에 인용된 각 사상가들의 생각들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이들의 사상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핵심적인 발췌부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은 나의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고,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8명의 사상가들을 다 정리하는 것보다는 보다 나에게 흥미를 주는 사상가 한 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요즈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한나 아렌트에 대한 소개가 책의 마지막에 나와 있어 특히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20세기를 온 몸으로 살다간 정치철학자로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에 많은 생각거리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사상가라는 생각을 한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수용소 생활을 겪어보기도 했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저술을 통해 ‘전체주의 사회의 기원’이 대중의 분열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을 ‘원자화’시킴으로써 

가능했다는 주장은 나에게 매우 신선하고 놀라운 내용이었다. 우리의 삶이 팍팍해져도 개개인이 모여 촛불을 들수 있었던 것은 왜곡된 권력을 가진 이들의 ‘원자화된 개인주의’를 노리는 술책에 대한 저항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수많은 시민운동가들이 왜 그토록 ‘연대’를 강조해왔는지, 그리고 ‘연대’가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는지 나는 한나 아렌트를 소개하는 이 책에서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전체주의가 어떻게 개개인의 인간성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했는지를 새롭게 따라가 보았던 기회가 되었다. 특히 나치 절멸 수용소에서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머리 모양으로 삭발당한 수용자들의 사진을 통해 인간이 아닌 하나의 요소로 전락해버린 사회의 극단적인 면모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현재 미국이나 대한민국의 여권 정치인들에게 대중은 인간성이란 것이 소멸하거나 생각할 가치도 없는 하나의 표상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 정신에 역행하는 일련의 수많은 사건들과 정치인들의 행보는 대중의 냉소주의와 개인주의를 먹고 사는 듯하다.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 계몽사상가들의 행보를 떠올려보면, 최소한 이들은 과거 고대 사상, 예컨대 고대 그리스 및 로마를 잊지 않고,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통해 현재에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했다. 오늘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을 보면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에 대한 참여를 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당장 취업하고, 가정을 갖고 생활해나가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올바른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잠시 서서 고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전체주의적인 생활구조/속박 속에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지켜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대’의 가치와 인간성의 회복임을 생각해본 기회가 되었다.   



(정리)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가 완전하지 않음을 역사로부터 배웠다면, 수많은 사상가들이 제기한 물음들은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담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 이해가 된다. 인류사에서 언급되는 여러 성격의 ‘혁명’만 보더라도, 역사의 반복성을 수긍하게 된다. 요새 언론에서는 ‘4차 혁명’이라는 용어가 화두인 것 같다. 그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무언가 새로운 대상이 우리의 삶의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른 성격을 갖는 삶의 양식이 매번 다른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더라도, 아주 본질적인 면에서 우리가 정말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진다. 예컨대 삶과 죽음의 문제는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복지국가가 되어도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을지언정,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대를 거듭해도 우리 삶의 본질은 역시나 되풀이 된다는 점은 어느 한 편으로는 온전히 사실은 아닐지라도, 다른 관점에서는 틀린 말도 아닌 것이다. 중세의 오랜 기간을 사이에 두고, 그리스 로마의 사상과 문화가 재발견되고 재해석되어 르네상스라는 시기가 탄생했듯, 정치철학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며 다시 ‘인간에 대한 가치로의 회기’를 반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한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8명의 정치사상가들에 대한 정보만으로 근대 이후에 영향을 준 사상의 흐름을 개관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의 진정한 효용은 나와 같이 정치철학에 생소한 일반 독자나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사상의 일면을 알아가는데 토대를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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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헌법의 상상력』 서평단 모집 | 새소식 2017-02-1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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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판매]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 저
사계절 | 2017년 02월


안녕하세요, 리벼C입니다.
『헌법의 상상력』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신청 기간 : ~2월 22일(수) 24:00

모집 인원 : 20명

발표 : 2월 23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헌법’은 한 국가의 정치, 정부조직, 국민 개개인의 일상생활, 권력의 제한 등을 규정하는 최상위의 지위를 갖는 규범이다. 그리고 이것의 바탕에는 한 시대의 변화상과 민중이 요구하는 가치들이 담겨 있다. 헌법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가 보이는 이유다. 정확히 말해서 그 나라의 역사가 그 나라의 헌법을 만든다.


요즈음 대한민국 헌법이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곧 있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여기저기에서 개헌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면, 변화의 한 축이 정치체제 개편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국가의 정의와 민중의 가치를 보장한다는 다른 한 축 역시 존재해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제1호(제헌헌법)가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9차례에 걸쳐 일부 또는 전부 개정되면서 현재의 헌법 제10호(1987년 10월 29일)에 이른다. 헌법이 바뀌던 매 순간마다 한국 현대사는 크게 요동쳤다. 이 변화를 읽는 일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읽는 일이며, 단순히 정치 체제의 변화를 넘어 이곳의 정의와 가치가 어디로 흘러왔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 『헌법의 상상력』은 지금껏 대한민국 헌법이 우리에게 보장하고자 했던 정의가,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제공하고자 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와 가치가 무엇인지 내다보는 기회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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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털은 그저 털이 아니다!' | 기본 카테고리 2017-02-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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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헤어 HAIR

커트 스텐 저/하인해 역
MID 엠아이디 | 2017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털에 관한, 털을 둘러싼 과학과 인류문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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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Hair: A Human History>

커트 스텐(Kurt Stenn) 지음  |  하인해 옮김  |  MID

 

 

(‘털은 그저 털이 아니었다’)

언젠가 나의 머리카락이 하루에 얼마나 자라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달에 1 cm 정도 자란다고 가정하고 계산했더니, 머리카락은 4 나노미터(nm)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거리는 DNA 이루고 있는 염기쌍 10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는 거리(대략 3.4 nm) 맞먹는다. 분자 크기 세계에서 본다면 머리카락은 매초에 DNA염기쌍 10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는 거리만큼 '격렬하게' 세포분열을 단백질 합성을 하여 피부 위로 밀어올리고 있다는 말이다. 두피 아래에서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격렬한 생명현상이 바로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털은 그저 털이 아니다라는 말이 다시 보이게 것이다.

 

이제 다루게 <헤어> 손에 넣기 전에, 아내가 나에게 야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같다라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 적이 있다.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리 심신이 유기적인 존재라고 하여도, 과연 생각만으로 단백질 합성 속도가 빨라질 있다는 말이 사실일까? 스트레스에 의한 심리적인 영향이 소화불량, 불면증과 같은 생리적 변화를 야기하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전혀 근거없는 말도 아닐 같다. 나는 우선 부당하게 아내로부터 받은 의심의 눈길대신 머리카락의 성장에 대한 진실을 설명하고 아내의 미안해하는 눈빛을 보겠다는 사심가득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 커트 스텐은 병원 의사이자 과학자로서 평생 털과 모낭을 연구해온 독특한 전공을 가진 인물이다. 책에서 저자는 책을 쓰게 동기를 이발소에서 경험한 일화로부터 말하고있다. 이발사와의 대화 털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과소평가하는 태도를 보고 지구 위에 사는 존재자로서 털이 갖는 중요성과 의미를 폭넓게 소개하기로 결심한다. <헤어>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털에 대한 과학적 배경지식으로부터 풀어나가는데, 털의 구조 성장주기와 같은 생물학적 기초지식에서부터, 진화적 의미, 탈모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소개한다. 2부에서 저자는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 자체 대한 인문적 고찰을 하고있다. 무엇보다도 매우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임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털에 얽힌인류사적 측면을 이야기한다. 비버의 털과 가죽을 얻기 위한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결과와 영국이 양모 산업의 전모 등을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털에 관한 과학적 배경지식)

우선 박사 커트 스텐이 설명하는 털의 역할은 우리 몸에서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생물이 지구상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진화해온 역사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원시포유류인 오리너구리는 조류나 파충류처럼 알을 낳지만, 새끼가 알에서 부화하면 포유류처럼 젖을 먹는다. 오리너구리는 조류, 파충류, 포유류의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원시포유류로서 진화의 단계를 지지해주는 증거다. 이러한 진화 단계를 고려하면 생물체와 외부세계를 구별짓는 경계로서의 표피(보호막)’ 어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형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조류의 경우, 표피가 가는 섬유형태로 갈라져 깃털이 반면, 포유류는 바로 형태로 진화했다는 식이다.

 

털에 관한 흥미로운 배경지식을 하나 하나 알아가면서 나의 흥미를 강하게 끌었던 부분은 미스터리한 성장 주기에 대한 부분이었다. 우선 저자는 털의 기본적인 가지 성장주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털의 성장기에는 진피에 있는 모낭세포에서 맹렬한속도로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시기로서 모간() 1달에 1 cm 피부 밖으로 밀려나온다. 다음 단계인 휴지기에서 세포분열은 중단되고 성장이 정체상태에 이르며 머리카락은 피부에 단단히 고정되는 시기이다. 시기가 끝나면 탈락기 이어지는데, 털이 빠진다. 사람은 매일 50-100개의 머리카락이 정상적으로 빠지게 되는데, 시기에 빠지는 머리카락이 탈락기 있는 녀석들인 셈이다.

 

털의 성장 주기를 새롭게 알게되면서 나의 관심을 끌게된 것은 털이 미스테리한 주기를 갖는 경우이다. 예컨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셀 있고, 호르몬에 따라 머리가 벗겨질 있다.”(61) 같은 경우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바로 뒤에 미국 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 < 소용돌이에 빨려들어서> 소개하며, 젊은 어부의 이야기 꺼낸다. 젊은 어부는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밤새 극심한 파도와 싸우면서 하루만에 머리전체가 하얗게어버린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문득 목소리 소설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2015)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어느 대목을 떠올린다. 책에서 저자는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 여성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는데, 잔혹한 전투 현장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만에 머리가 하얗게어버린 여인들의 증언이 나오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있을까, 과장은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런 증언이 건이 아니었다. 커트 스텐은 "드물기는 하지만 의사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끔직한 정신적 충격으로 모발이 갑자기 변하는 현상을 목격한다."(63면)라는 점도 덧붙이고 있는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인터뷰기록을 읽을 때는 어린 러시아 여군들이 받았을 스트레스의 강도를 보여주겠거니 했지만, 어쩌면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우선 커트 스텐은 포의 소설 인물을 언급하면서 머리카락이 하얗게어버린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를 설명하는 사례로 소설 인물을 점은 우선 저자의 설명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나아가 하루만에 머리카락이 하얗게어버린 이유로 저자는 엉뚱하게도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 원인으로 들고 있다. 죽을 뻔한 고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대부분의 까만 머리카락이 빠져 하얗게 두피가 드러났다는 설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인터뷰한 전직 여군들을 인터뷰했다면 과연 원형탈모 이유로 설명할 있었을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등장하는 전직 여군들이 전쟁에 참여한 나이대가 대부분 10 후반이었다. 극심한 전투의 스트레스로 하루만에 원형탈모가 일어나 검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하얀 두피가 드러났다라고하면 10 후반의 젊은 여성들이 하루만에 대머리가 되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해보인다. 커트 스텐은 탈모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한 장치로서 머리카락이 하얗게어버린 젊은 어부를 언급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고, 인간의 심리적 요인이 신체에 주는 영향이 긴밀하고 직접적인 존재이다. 머리 색에 대한 저자의 설명대로 피부 아래에 있는 멜라닌 색소 전쟁과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색소의 분포에 영향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부분은 당분간 나의 궁금증으로 남을 같다.

 

(털의 문화적 기능 메시지 전달 수단)

<헤어> 읽기 전까진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굳이 오랜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털에 관한한 단지 단편적인 사례들로서 나의 경험 속에 존재할 뿐이었다. 예를 들어 학창시절 두발 규정에 대한 반감과 삭발 학생에 대한 반항아/이단아로서의 처벌에 대한 기억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빡빡머리 군복무 시절이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길고 단정하지 못한 , 머리카락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못하는 메시지를 주었다. 또는 의도적인 장발 세력으로서 6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히피족들을 있다. 이들은 긴머리를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하며 저항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저자는 집단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서 삭발은 비인간화와 정복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라고 말한다. 사형수를 처형하기 전에 머리카락을 삭발하는 과정은 사형수로부터 인간다움 흔적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1431 다르크가 화형당하기 , 1793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서기 삭발당한 사례에서 인간다움을 제거하는 과정 분명히 찾아볼 있다. 특히 이렇게 희생당한 대상이 여성 경우, 삭발은 메시지의 잔인함을 더욱 극대화한다고 있다. ‘인간다움의 제거에서 나아가 여성다움의 제거라는 기능이 더해짐으로써 이러한 메시지의 강렬함은 더욱 극적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있다. 희생자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삭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떠오르는 사례는 나치가 기획한 유대인 절멸 수용소에서 찾아볼 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나치의 비인간화절차로서 수용되어있던 유대인들에게 동일한 옷을 입히고, 몸에 모든 털을 깎아버림으로써 각자의 개성을 말살한 점을 있다. 같은 옷을 입고, 동일한 머리 모양을 이들을 이름이 아닌 수감번호로 불리며 개성을 박탈당한 집단이 되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존엄성이 제거된 것이다. 유대인 수용소의 생존자 알려져있는 프리모 레비의 증언으로부터, 공간에서 피수용자들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자각이 희미해진 상태에 익숙해져가는 상황을 레비의 증언에서 엿볼 있다. 이제 <헤어> 통해 (주로 머리카락) 강렬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준다는 의미에서 털은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이해할 있게 되었다.

 

좀더 밝은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여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은 탈출한 공주 연기한다. 하루의 짧은 일탈을 맛보는 고귀한 존재로 등장하는데, 오드리 헵번의 보편적인 이미지는 우아함 있다. 이미지의 형성에 헵번의 헤어스타일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고 있다. <로마의 휴일>에서 로마에 국빈으로 머무는 동안 로마 시내로 탈출한 공주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미용실을 지나치는 장면이 나온다. 공주는 미용실에 들어가 머리를 귀밋머리 단발로 자르게 된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은 공주의 변신 대한 욕망을 대변한다. 번쯤 일반인들처럼 거리를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데이트도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이 영화의 장면에 나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면의 여러 자아중에서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자아를 선택한다는 의미로서 장면의 역할을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우연치 않게 지나치게 되는 장면이지만 머리카락이 분명한 메시지 전달 수단임을 확인해보는 또하나의 사례가 것이다.

 

(인류사에서 털이 끼친 영향들)

인간의 털이 아닌 동물의 털과 가죽을 벌거벗은 인간 이용하게 됨으로써 털을 가진 동물의 수난사는 인류사에서 이미 일찌감치 시작되었음을 <헤어> 보여준다. 16세기에 이미 가장 인기있었다는 비버의 모피교역으로 17세기 서유럽에서 비버가 사실상 멸종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탐욕은 다시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눈길을 돌려 북아메리카에서 비버 모피를 유럽에 들여오는 교역이 활발해졌다. 결과 1840년대 이미 북아메리카의 비버 가죽교역은 이미 붕괴하게 되었다. 물론 과정에서 저자는 모피를 찾아 아메리카 원주민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며 누비던 서구인들이 북미 대륙의 지도를 만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언급대로 비버를 거의 멸종상태에 만들면서 제작한 지도작성 작업이 인류에 기여 일이라 말할 있을까. 인간의 탐욕대로 숲을 약탈하고 파괴함으로써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멸망을 가져왔듯이, 모피를 얻기위해 다른 동물을 수없이 멸종시키고 생태계를 교란시킨 인간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연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대용물을 다시 찾아 나설 것이지만 동물들의 털이 인류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같다.

 

인류의 문화에 영향을 끼친 동물털의 예로 저자는 잉들랜드의 양모산업을 이야기한다. 13-14세기 중세 유럽에서 돈이 되는양모 무역은 급속하게 확장되었고, 양모무역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바로 은행, 금융의 기원이 양모 무역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메디치가가 부를 축적할 있었던 ,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부스의 가문이 양모 무역에서 부를 축적할 있었던 배경은 바로 과의 관련성을 다시 조명해주고 있다. 그만큼 중세 말기에 양모무역은 이미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이해된다. 보다 흥미로운 점은 잉글랜드의 양모가 오늘날 어떻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양모 산업의 전통을 갖게 되었는지에 관해서이다. 13세기 궁정의 조직적인 노력으로 플랑드르 지방의 앞선 양모 산업 관련 종사자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잉글랜드에 귀화시킨 , 그리고 국가적으로 양모 수출입에 대한 통제등을 통해 오늘날 후손들은 전통있는 양모 산업의 전통을 갖게되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우리는 털이 단지 털이 아님 충분히 인정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만큼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에 있어 털은 신체 외부 환경와 내부를 경계짓는 표피의 변형으로서 개체 자체의 생존에 지극히 중요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개체들의 삶에 깊숙히 영향을 주고받는 변수였던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책을 읽기 내가 품었던 사심어린 독서의 목적을 상기해본다. 머리카락이 야한생각을 많이 해서 빨리 자라는 아님을 주장할 있는 단서가 있을까. 저자는 모발의 성장을 남성호르몬의 안드로겐이 주는 영향과 견주어 언급하는 대목은 보인다. 일단 안드로겐 농도가 급상승하는 사춘기에 2 성징으로서 음모와 겨드랑이와 다리에 털이 나는 뿐만 아니라 털이 두꺼워지는현상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모발이 빨리 성장하는 것에 관한 언급은 분명 찾아볼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야한 생각하기라는 심리적 동인이 생리적으로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 확신할 있어야하는데, ‘야한 생각을 많이 하는 안드로겐의 분비와의 관계에 대해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야한 생각을 많이 머리카락의 빠른 성장 대한 아내의 비난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머리카락은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탈모 진행되거나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 불균형하게 분비되도록 영향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한 생각을 하는 행위 모낭 하부 세포의 세포분열을 더욱 빠르게 하여 단백질을 빨리 합성한다는 말보다(단백질 합성 속도의 상한선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탈모 확률이나 남성호르몬의 불규칙한 분비 가능성을 극소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한 생각을 하는 행위 머리카락을 빨리 자라게 해주지는 못해도, 머리카락의 성장에 제한이 가거나 호르몬 분비가 불규칙하게 분비되어 성장 저해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머리카락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해준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머리카락의 성장 속도를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각종 스트레스 환경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우리가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 인식할 있지 않은가.

 

하나, 남성중심적인 신경과학의 연구결과 편견을 비판한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의 저서 <젠더, 만들어진 >에서도 언급하듯이, 과학의 급속한 발달로 현대 신경과학 분야는 fMRI 같은 뇌활동부위 영상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코델리아 파인이 비판하고 있는 바대로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부위에 대한 기록을 심리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야한 생각에 의한 머리카락의 성장 결부지어볼 있을 것같다. 다시말하면 뇌활동 전위를 기록한 자료만으로 피검사자가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떤 심리적인 반응에 기인했는지 소급해서 심리적인 원인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시 정리하면, 나의 머리카락이 매우 자란다고 하더라도 사실이 내가 야한 생각을 많이 이라는 심리적인 동인 하나로 소급해서 지적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히려 야한 생각을 많이 한다면(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벗어남으로써 탈모예방이나 불균형적인 호르몬 분비 문제를 예방할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오히려 야한 생각을 함으로써 건강한 모발 지키는데 오히려 도움이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일 수는 있지만, 아내의 비난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렇다.

 

<헤어>를 읽고 받은 인상을 다시 떠올리자면, 털은 그저 불필요하게 신체에 난 존재가 아니라, '나'라는 개체가 인간이라는 종의 계통이 겪어온 진화 과정의 흔적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인간의 문화가 발생한 이래로, 털은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담는 수단으로서 기능하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 나아가 '벌거벗은 원숭이'로서 다른 동물의 털과 가죽을 이용하기 위한 인류 욕망의 대상으로서 털과 관련한 경제활동은 인류 역사의 무대에서 중심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서의 털에서 더 나아가 DNA라는 인간 고유의 정보를 담고 있는 머리카락은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정보를 지닌 수단으로서 중요성이 재평가되어야할 것 같다. 털은 그저 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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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 새소식 2017-02-0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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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 > 철학 ]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빌헬름 슈미트 지음

장영태 옮김

16,800







‘아름다운 삶’을 위한 일상의 철학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기 위한 기술로서의 철학


우리가 사는 삶은 우리 ‘자신의’ 삶인가?

  삶은 우리가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요소들 그리고 우리를 마음 내키는 대로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힘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고유한 삶입니다. 누구 또는 무엇이 삶을 좌지우지하더라도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삶의 기술은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진지한 시도입니다.


  삶의 기술에 대해, ‘숙련된 삶’에 대해 그리고 의식적인 삶을 위해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근거와 논증을 탐구하고, 개념들을 해명하고, 구조와 그것에 근본적으로 연관되는 사항들을 발견하고, 조건들을 숙고하고 가능성들을 분석하는 철학적인 행위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삶이 처한 상황을 해명하는 데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아름다운 삶을 위한 몇 가지 철학적 사고와 방법을 담은 책입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서평단 모집


인원 | 총 10명

기간 | ~2월 13일(월)까지

발표 및 배송 | 2월 14일(화)

신청방법 | 이 글을 스크랩한 후 URL + 책에 대한 기대평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활동방법 | 도서를 받고 3월 1일까지 리뷰를 작성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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